242화 이런 생에도 (5)
“그 인간이 의뢰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였어.”
타협 끝에 겨우 얻어 낸 정보는 그것이었다. 막대를 단단히 바닥에 박던 정보상이 무릎을 접은 채 쪼그려 앉았다.
“정확히 어떤 정보요?”
“말 그대로야. 악마기사는 악마기사란 존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사 갔어. 그의 행적, 행보에 대한 추측, 의문 전부.”
“…그가 그걸 왜 사 갔는데요?”
“정보 사 가는 사람이 그걸 말해 주겠어?”
정보상의 너스레에 데스브링거는 눈살을 구겼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또 빼는 건가? 아니면 정말 몰라서 저리 말하는 걸까? 두 가지 사고가 교차했다.
“아… 이제야 알겠군.”
반면 마이스터는 무언갈 아는 눈치였다. 정보상도, 데스브링거도 깜짝 놀라 그를 보았다. “뭘 봐?” 까칠한 반응이 돌아왔다.
“알아요?”
“설마 알아?”
“글쎄. 일단 이야기나 계속하지? 아니면 그게 끝이야?”
“악마기사가 산 정보를 물었잖아? 그럼 이게 끝이지.”
…솔직한 심정으론 마이스터의 멱살을 잡아서라도 숨기고 있는 것을 털어 내고 싶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데스브링거는 마이스터와 대화를 미뤄 두며 정보상의 무릎을 부츠 앞코로 찼다.
“말하지 않은 게 있잖아.”
“사 간 이유까진 정말 몰라!”
“그거 말고.”
데스브링거는 정보상이 박던 막대를 대신 박으며 고갯짓을 했다.
“악마기사에 대한 정보는 내가 열람 가능한 선이야. 그런데 왜 말하길 거부한 거지?”
정보 자체도 그렇지만 누가 어떤 정보를 사 갔는지도 그는 들을 수 있다. 처형할 사람을 선별, 추적하기 위한 데스브링거 고유의 권한이었다.
그런데 정보상은 어째서 그걸 숨겼을까. 밝혀지면 의심을 살 걸 알면서도?
“…젠장, 알았어. 알았다고! 정보길드에도 보고를 안 한 의뢰라 그랬다, 왜!”
“…길드가 알면 경을 쳤겠군.”
정보 자체의 등급이 낮아도, 길드 몰래 정보를 파는 것 또한 규칙에 어긋나는 짓이다. 데스브링거는 그제야 저치의 선택을 이해했다.
“길드에게도 비밀로 할 수 있어?”
“할 수는 있죠. 했다가 걸리면 목이 잘리니까 그렇지.”
“흠. 그런 위험은 왜 감수했는데?”
“…내가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본인이 먼저 요구했으니까. 위험한 짓인 만큼 보수도 많이 줬고. 무엇보다 의뢰 내용 자체를 봐. 본인이 본인 정보 사겠다는 거잖아? 이건 정말 뒤탈 없는 의뢰였다고.”
누군가의 정보를 타인에게 팔 경우, 정보 팔린 사람이 판 사람에게 원한을 가질 수 있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뒷돈 먹고 판 게 걸려서 길드에게 버림받은 상태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나도 보통은 이 짓거리 안 해. 이번 건 정말 문제 될 일 없겠다 싶어서 해 준 것뿐이지.”
“흐음.”
“진짜야. 내가 이 자리에 오면서 뒷돈 먹다 죽은 놈들을 얼마나 봤을 거라 생각해?”
그는 실제로 그렇게 죽은 이를 너무 많이 봤다. 해서 제법 몸을 사리려 하는 편이었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악마기사가 내준 의뢰는 본인이 본인 정보를 사는 것이다 보니 원한 살 일도 없을 것 같아 받아들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악마기사잖아?”
물론, 이 선택엔 악마기사가 그 전 의뢰로 길드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한몫했긴 했다. 담당자가 그였던 덕에 가운데 낀 그도 꽤 많은 이권을 챙겼으니까.
상대가 선의로 해 준 일은 아니라곤 하나, 제법 호의를 베풀고 싶어질 수준의 이권은 받아 챙겼다 이거다.
“인류로서 악마를 잡는 데 최전선에 서는 사람을 안 도울 수 없지. 그래서 부탁을 들어준 거야. 남의 정보 사는 것도 아니고 자기 정보 사 가겠다는데 그거 하나 못 배려해 줄까 싶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걸 그대로 고백해서야 쓰나. 정보상은 뻔뻔하게 둘러댔고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적당히 이해했다. “정보길드원이 저렇게 호구일 리 없는데.” 누군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마지막까지 의심을 멈추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래서, 정말 사 간 이유 몰라요?”
“몰라.”
“아는 것 같은데.”
“빌어먹을, 내가 이래서 직장 동료 만나기가 싫다니까. 말을 들어 처먹질 않아요.”
정보상은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떨곤 눈치를 보듯 목소리를 죽였다.
“됐고… 약속 지켜.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준 건 내 한 목숨 아까워서도 있지만 의뢰자와 약속한 걸 최대한 지키고 싶어서도 있으니까.”
“모두에게 비밀로 하는 게 약속이라면, 이미 깨진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신전이나 길드 전체가 알게 된 상황은 아니잖아.”
신전이나 길드에 잡히면 그 정보를 알게 될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 십, 이십?
“두 단체에 밝혀지는 것보단 그냥 당신 두 사람에게만 말하고 덮는 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거든, 난. 최악보단 차악이라 이거지.”
더불어 신전과 정보길드는 악마기사에게 호의적이지 못하지만, 이 둘은 다르다. 정보상은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 판단했다.
“…왜 보호해요?”
“응?”
“여기까지 왔으면 그 사람이 악마를 몸에 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처형을 피해 도망갔다는 것도 알 텐데.”
하나 그 최선을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하기야 이상할 만했다. 어떤 사람에게도 정보를 파는 게 길드 방침이면서, 그렇게 모인 정보로 뒤가 구리다 싶은 사람은 죽어 버릴 수 있도록 은근히 정보를 내비치는 것도 길드니까. 악마기사가 숨겨 둔 사정쯤 되면… 신전에 접촉해서 정보를 팔 만한 성향의 지부장도 꽤 되는 편이고.
“그야… 의뢰인이니까?”
그렇지만 그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그는 악마기사가… 기억이 없는 상황에서 금수처럼 악마만 잡아 온 그 모험가가 다소 불쌍했다. 그래서였다. 의뢰인이라는 명목으로 숨겨 주는 건.
“설마 이것까지 뭐라 하는 건 아니지?”
뭣보다 신전이나 마탑 같은 기타 세력에게 보고하지 않고 몰래 움직이는 건 이쪽도 똑같지 않은가. 그 사실을 가지고 그에게 뭐라 하면 안 될 것이다.
“그건 아니고요.”
“그럼 볼일은 이걸로 끝인 것도 맞고? 나 이제 가도 돼?”
“비밀 조항을 어겼으니 위약금은 내야죠.”
“뭐?”
“위험수당이라며 더 받아 챙겼을 거 아닙니까. 내놔요. 나리한테 돌려주게.”
“염병…….”
데스브링거는 뻔뻔하게 손을 내밀었고, 정보상은 결국 마지못해 품속을 뒤졌다. 곧 주머니가 나왔다.
“차라리 잘됐지. 처리하느라 골치가 다 아프던 상황이니까.”
툭. 거기서 굴러 나온 건 무언가의 발톱이다.
“미친, 이걸 받아 처먹었어?”
“불만 있으면 대금 치른 사람한테 말해. 나도 이걸로 값을 치른다고 했을 때 엄청 놀랐다고!”
정보상은 그리 외치곤 이를 박박 갈았다.
“베뮈르헨에 와서 돈으로 바꿀 예정이었는데, 하필이면 도시가 또 망해서는…….”
이곳에 굳이 직접 걸음한 고생이 없어진 게 그를 불만케하는 듯했다. 그마저도 연기인지 진심인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서도.
“그보다 이젠 정말 끝이지? 가도 되는 거지?”
“그럴 리가요.”
“아, 또 왜.”
“악마기사가 산 정보, 나한테도 팔아요.”
“스토커냐?”
“닥치고. 안 팔 겁니까?”
“씨… 앙.”
그러나 여기서 그를 붙잡는다고 더 얻을 만한 것은 없다. 데스브링거는 마지막으로 악마기사가 사 갔다는 자료만 구매하고자 뜻을 밝혔다.
원칙적으로 막히는 일도 아니기에─악마기사란 개인의 자료는 돈만 지불하면 누구든 살 수 있었다─그는 나름 떳떳했다. 아주 약간… 악마기사 보기 미안할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모은 거 다 불태웠는데 그걸 또 모으라고……?”
“이번엔 길드에 알려져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각 세력에서, 특히 신전에서 구매할 텐데.”
악마기사가 도주한 이상, 그를 쫓기 위해서라도 몇 세력에선 그의 정보를 얻으려 들 거다. 그걸 고려하면 비밀리에 취합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다들 알게 될 테니까.
“그렇긴 한데… 하. 시간은 좀 걸려.”
“얼마나?”
“한 달?”
“그건 너무 오래 걸리는데… 기억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일단 대충 넘겨주면 안 됩니까?”
“내가 그걸 다 기억할 정도로 똑똑해 보이냐??”
“그 자리까지 먹었는데 멍청하지도 않겠죠.”
“제엔장. 돈 더 내놔.”
결과적으로 그 거래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약간의 금액이 깨지긴 했으나, 기억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빠르게 받을 수는 있게 된 거다. 추후 제대로 된 정보 꾸러미까지 포함해서.
“망할, 다신 보지 말자고. 당신도 우리가 만났다는 게 신전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지는 거 알지? 아까 그 이단심문관 단속 잘해.”
“당신이야말로.”
“알았으니까 꺼져요.”
이제 더는 잡을 필요 없다. 데스브링거와 마이스터는 그를 보내 주었다. 그들을 찔러 봤자 정보상까지 같이 잡혀갈 뿐이니 입 놀릴 걱정은 결코 하지 않았다.
남은 건 그들을 목격했을지 모를 사람들의 입단속과 허위 정보를 뿌려 두는 것이다.
“그래서, 알아요? 나리가 저 정보 산 이유?”
“알지. 넌 몰라?”
“…예. 그러니까 말해 주시죠?”
“음, 싫은데.”
“장난해요?”
“미안하지만, 진심이야. 내가 너한테 말해 줄 이유가 없잖아.”
그렇지만 그 작업이 실행되려면 또 하나의 타협이 필요했으니. 데스브링거는 마이스터의 배신 아닌 배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왜…….”
“왜냐니? 내가 지금 감을 잡을 수 있던 건, 악마기사에게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가 있어서야. 그리고 그건 내가 함부로 입에 올릴 만한 게 못 되지. 내가 너한테 말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고.”
“…….”
“그러게, 진작에 들을 만한 사이가 되지 그랬어?”
문제는, 그래. 마이스터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당최 없단 점이었다.
정보를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남의 사정을 떠들지 않는 게 보통이고, 그런 걸 전해 들을 사이가 되지 못한 것도 데스브링거의 탓이 맞으니까.
“하지만, 저는…….”
“별개로 전부터 궁금했는데, 너는 왜 악마기사를 따르는 거야?”
반면 마이스터는 마이스터대로 궁금했다.
아무렴 저치가 말하는 걸 보나, 악마기사의 태도를 보나. 그는 주변인에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듯했다. 한데 그런 사람을 왜 이리도 따르는 걸까. 무엇이 그리 좋아서?
“너를 아끼지 않는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마음을 쓸 이유 있어?”
돌아오지 않을 답을 기다리는 것만큼 무가치하고 힘겨울 일도 없을 텐데.
생략된 말에도 데스브링거는 굳은 얼굴을 깨지 않았다.
“…그런 당신은요.”
한참 만에 그가 꺼내 든 건 도저히 할 말이 없을 때나 하는 되묻기 패다.
“나? 나는 악마기사를 향한 대우가 부당하다 싶어서 나선 건데?”
하나 마이스터는 그 질문에 당당히 답할 거리가 많았다. 그건 데스브링거의 패착이다.
“물론 도망간 시점에서 부당한 대우니 뭐니 하는 것도 더는 의미가 없지. 그러니까 변호는 더 이상 안 해. 나만 이단으로 몰릴 테니까.”
“그럼 지금 정보상을 찾아온 건?”
“궁금해서. 솔직히 다 그러지 않나?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것이 변하면 모두들 궁금해하잖아.”
마이스터가 여기까지 온 건 따지고 보면 가십을 좇는 호사가의 심정에 가까웠다. 악마기사를 위했다기보다는, 악마기사란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궁금해서 이유를 찾았다 이거다.
하니 다음이 없다. 그는 더 이상 악마기사를 위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인간 된 도리로서, 그의 개인사를 지켜 주는 것 외에는.
“…….”
그것을 깨달은 데스브링거가 또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는 실패한 건가?』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이가 처음으로 내보인 회한이 망막 위로 다시 떠올랐다. 『나는 정녕 그분을 도울 수 없는 건가?』 천하에 다시 없을 고집불통 막무가내가 소리조차 못 내고 울던 모습이. 『그분께 구원이 죽음이란 이름으로 존재한다면, 나는.』 빛이 추락하던 그 광경이.
“…그러면, 그러면 안 됩니까?”
그렇지만 포기해야 할까?
그 바보 같은 샌님도 무너졌으니 그 또한 그만둬야 할까?
“사람을 따르는 데 이유가 꼭 있어야 합니까?”
데스브링거는 난데없이 품에 들어왔던 사탕을 떠올렸다. 너무도 귀해서 아직도 채 다 못 먹고 들고 다니는 그 사탕을 기억했다.
그건 그때의 그가 받기엔 너무 과분한 단맛이었다.
“명확하게 설명하라고 하면 몇 개든 말할 수 있습니다요. 그분께 사죄할 일이 있어서, 그분은 이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니라서, 그분은…….”
그러니까… 그것이 참으로 달았으니까.
그는 그 단맛을 악마기사에게도 나눠 주고 싶었다. 오직 그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런 걸 바라고 물으신 겁니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라는 말로는 부족합니까?”
정말로, 그뿐이었다.
“아니.”
마이스터가 끝내 눈꺼풀을 내렸다.
“그럴 수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어.”
자색 눈동자는 언젠가의 순간을 그리듯 한순간 아득한 빛깔을 띤다. 갈색 속눈썹이 팔랑 다시 올라갔다.
“그렇지만… 그래서 앞으론 어떻게 할 건데? 그를 쫓아갈 거야? 넌 용사랑 같이 다니잖아.”
“…몰라요. 어차피 전 용사 보고 이 여정에 합류한 것도 아니고.”
“대책 없네.”
마이스터는 데스브링거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말은 못 해 줘.” 덧붙인 말은 데스브링거의 힘을 쭈욱 빠지게 하는 성질의 것이다.
“대신, 머리가 머리카락 화분 용도로 있는 것만 아니면 알아차릴 수 있을 힌트를 주지.”
“…뭐요?”
“사람이 무언갈 사는 이유는 그게 자신에게 없어서야.”
그러나 실망은 너무 일렀다. 마이스터의 힌트에 데스브링거는 눈을 깜빡였다.
없으니까 산다. 그리고 악마기사가 산 건 자기 자신의 정보. 하면 악마기사는……?
“아 그렇지. 악마기사가 내게 준 물건도 도로 받아가.”
“…나리가 댁에게 뭘 줬어요?”
“신전에 보여 줄 게 필요해서 어쩔 수 없었어.”
“뭔 소리예요?”
“그러니까… 하. 내가 이런 것까지 전부 떠먹여 줘야 해?”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것도 알겠는데 그거 가지고 더럽게 유세네. 데스브링거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세한 설명을 뜯어냈다. 다행히 악마기사가 마이스터를 더 높게 사서 물건을 맡겼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어쩔 수 없었다’였지.
“이건…….”
그렇지만 악마기사가 마이스터에게 넘긴 물건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 어느 아이가 직접 땋아 선물했을 실팔찌가 손바닥 위에 올라왔을 때.
데스브링거는 ‘정말로 어쩔 수 없어서였을까?’라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당신의 손에는 여전히 실팔찌가 매달려 있을까?
“…산군이 움직인다.”
그러나 데스브링거의 생각이 정돈되기도 전, 마이스터가 저 너머의 광경을 두고 입을 열었다. 우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빗줄기 속에서 춤을 추는 건 산군의 거대한 몸뚱이였다.
하얗고 긴 몸이 빗속을 내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