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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40화 (240/389)

240화 이런 생에도 (3)

아크메이지는 거대한 신성력만 발하며 입은 조개처럼 다물고 있는 인퀴지터를 보았다. 청년의 녹음처럼 푸르고 생기 넘치던 눈동자는 더 이상 활력도 빛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반짝거리도록 환하게 웃던 입도 그렇다. 날이 더해질수록 싱그럽게 웃을 줄 알던 이는 막 신전에서 나올 때처럼 딱딱해졌다.

전부 한 사람의 부재가 가져온 변화였다.

“법사 나리.”

하나 저 변화는 한 사람에게만 찾아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두고 크게 흔들린 이는 이곳에도 한 명 더 있었다.

“성주가 사람을 보냈습니다요.”

아크메이지는 삭풍처럼 마르고 차가운 얼굴의 데스브링거를 보며 잠시 말을 골랐다. 그 잠깐 동안 훑은 이의 눈가는 그림자를 빼도 거뭇하기 짝이 없다. 아마 밤마다 잠을 설쳐서 그런 것일 테다.

살이 내리며 뺨에 잿빛이 돌기 시작한 얼굴이 후드의 그늘 속에 숨어 멀쩡한 척을 했다.

“…그렇군. 용건은 들었나?”

그렇지만 그런 걸 지적했다간 분위기만 엉망이 될 것이다. 앞서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해서 아크메이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데스브링거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부정을 표했다.

“알겠네. 내가 직접 들으면 되겠군. 위치는 그곳이고?”

“예.”

목적이었던 인퀴지터의 안위도 확인했겠다, 손님까지 있다면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녀가 일하는 장소기도 하고.

하므로 아크메이지는 순순히 고개를 주억인 후, 발길을 돌렸다. 데스브링거도 이 소식을 전해 줄 의도로만 이곳에 온 것인지, 그녀를 따라 걸음을 돌렸다. 방향은 달랐다.

“…베르세르크도 그곳에 있나?”

저쪽 방향이면 아마 집을 보강하는 걸 도우러 가는 거겠지. 인퀴지터가 힘을 쓰고 있다곤 하나, 이 바람이 언제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모릅니다요.”

“…알겠네. 너무 무리하진 말게.”

그렇지만 저들의 행위가 과연 맞는가, 라고 물으면 도무지 긍정하기가 어렵다.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여유가 없는 상황인 건 맞으나, 먹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마저 마다한 채 일하는 건 어딘가 비틀린 게 맞는 까닭이다.

솔직한 마음으론 그들의 행위가 헌신이 아닌 자기 학대고, 봉사가 아닌 혹사라고 일갈하고 싶다. 그러지 않고선 배기지 못할 마음임을 아니 차마 그러지 못할 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네의 영향력이 더 컸던 모양이야…….”

아니, 애초에 일갈하더라도 저들이 듣기는 할까?

아크메이지는 관련해서 무언가 말이라도 붙이려 하면 완강한 반응─자리를 뜨거나, 강도 높은 자책을 보이거나 하는─을 보이던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결코 말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 자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아크메이지님.”

“아, 나를 찾았다고 들었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나마 다행이랄 게 있다면, 저 둘과 다르게 베르세르크는 자기 학대 수준까진 안 갔단 점이다. 뭐, 요즘보면 그쪽도 영 상태가 안 좋긴 매한가지다마는.

심지어 베르세르크의 경우는 악마기사가 떠난 것 자체에 충격받았다기보단 무언가 다른 게 껴 있는 듯싶었다.

다른 말로는, 침잠하는 이유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원인을 모르니 해결 방안 또한 찾을 수 없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다들 해답 없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지.

아크메이지는 머리 한쪽으로는 일행들의 상황을 떠올리고, 다른 쪽으론 전령의 말을 들었다.

그다지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일행의 형편 자체가 난제인 점만 빼면, 아마도.

“사절 역할인가…….”

와중에 전령이 전한 성주의 부탁은 참으로 고된 것이라. 산군이 어렵사리 적는 대삼림의 문자 몇 개로 간신히 소통해야 한다는 건 일단 미뤄 두자.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할 건 그게 아닐 테니까.

대신 아크메이지는 산군이 있는 자리를 쳐다보았다. 금빛 막 덕에 체감되지 않는 비바람은 이 막을 벗어나는 순간 자연의 위대함을 알려 줄 터였다.

“알겠네. 그리하겠다 전하게.”

그런 날씨를 헤치고 산군이 있는 성까지 갈 걸 생각하면 다소 까마득하나… 이것에 걸린 목숨 수를 생각하면 가지 않을 수도 없다.

그녀는 성주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바로 가는 게 낫겠나?”

“달리 말씀하신 건 없으십니다만, 그래 주신다면 감사할 것입니다.”

“알겠네. 그럼 바로 가지.”

“호위를 이곳으로 데려오겠습니다.”

“고맙네.”

호위를 이곳까지 데려오려면 십 분 정도 시간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하여 아크메이지는 채비를 갖출 시간을 가늠하고는 근처에 있던 천막의 입구를 열어젖혔다.

발에 족쇄를 걸고 손으론 작업을 하던 이가 고개를 살금 들었다.

이단 의심을 받고 있다곤 하나, 이 난처한 상황에서 대현자란 인력을 놀릴 수도 없는 노릇. 해서 구속된 채 힘을 빌려주던 청산호다.

참고로 아크메이지가 일하는 곳도 여기였다. 감시자… 라고 한다면 조금 거창하고, 대현자 둘을 붙여 두면 능률이 올라가기에 어쩔 수 없이 결정된 사항이었다.

내통의 위험? 안타깝게도 작금의 상황은 그걸 고려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됐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는 줄 안다더니, 딱 그 짝이지.”

“다 듣고 있었나?”

“이건 천막 코앞에서 떠든 사람이 잘못한 거라 생각하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아크메이지는 어깨를 으쓱였다.

“몰염치한 건 맞는 이야기나, 어쩔 수 없잖은가.”

주제가 도로 돌아갔을 때엔 청산호가 손가락을 멈췄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건 맞아. 어쩔 수 없었지. 이 세상도, 그도 어쩔 수 없었어.”

그의 눈은 무언가를 향한 회한으로 가득 차 버리고 만다.

“그렇군. 이 이야긴 그만함세. 입만 씁쓸해질 뿐이니.”

그 눈빛과 어딘가 미묘한 단어 선정에 아크메이지는 미간을 다소 좁혔다. 그녀의 손은 청산호가 구속되기 전 넘겨준 도구를 막 꺼내 든다.

달칵. 범위 내 소리를 흡수하는 도구가 천막 내부의 목소리들을 삼켰다. 이제 천막 바로 앞에 서 있는 신전의 감시병은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 어떤 마법사도 이 도구의 존재를 신전에 보고하지 않아 가능한 꼼수였다.

“그보다 그라니. 악마기사 얘긴가?”

아크메이지 또한 이것을 위해 입을 다무는 중이었다. 여기서 악마기사의 선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청산호뿐이었다.

뭐, 악마기사가 떠난 후 그에 대해 끝없이 침묵을 지킨 것도 바로 청산호지만.

“글쎄.”

“친구에게 말 하나 못 해 주나.”

그보다 ‘그도 어쩔 수 없었다’인가.

아크메이지는 청산호가 오랜만에 내준 단서를 두어 번 곱씹었다. 그렇게 충격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암, 그녀는 기존에도 악마기사가 괜히 이곳을 떠난 게 아닐 거라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청산호가 그의 탈출에 협조─본인은 부정하고 있지만, 솔직히 실수란 말이 진실일 리는 없잖은가?─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나는 악마기사를 믿네. 자네의 선택 또한 신뢰해.”

그도 그럴 게, 신전에서 말하듯 악마기사의 탈출에 진정 악마가 관여했다면─악마기사가 악마에게 먹혔다거나 악마의 꾐에 빠졌다거나 하는 식으로─설마 청산호가 눈치 못 챘겠나? 눈치챈 주제에 이번처럼 순순히 보내 줄 리가 있고?

하니 악마기사의 도주는 오롯이 그의 의지로써 이뤄졌음을 믿는다. 따라서 그 선택을 존중할 의향도 있다. 그는 그리 믿어도 되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신뢰와 별개로, 나는 알고 싶을 따름이야. 그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하나 상대를 믿는 마음과 상대를 알고 싶은 마음은 양립할 수 있다. 몰라도 믿을 수는 있으나 상대를 이해하는 건 상대를 알아야만 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아크메이지는 악마기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너무나도 많이 놓쳐 버렸기에, 이번 마지막 조각이라도 잡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저 그런 마음뿐이었다.

“이래도 침묵할 텐가?”

“…….”

그렇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알겠네.”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놓친 건 결국 그녀의 탓이었으므로.

“…무고한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 희생은 올바른 것일까?”

“……?”

“가장 흔하되 가장 귀한 것을 바쳐 어리석고 아둔한 것들만을 보존하는 건 과연 현명한 일일까.”

한데 오랫동안 함묵하던 이가 처음으로 길고 긴 힌트를, 자신이 악마기사에게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 주었다. 적어도 아크메이지가 보기엔 그러했다.

“…도덕 문제인가?”

청산호가 아닌 척 잔정이 많은 사람이란 건 알았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불쌍하다고 도박수를 내던질 만한 성격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건 도덕 문제가 아니야. 자격을 논하는 말이지.”

“……?”

그러나 아크메이지의 생각이 멎기 전, 청산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참지 않기로 했고, 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내겐 그를 막을 자격이 없었으니까. 오직 그뿐이다.”

어딘가 모호한 구석이 있는 말이었다. 그가 참지 않기로 했다니? 악마기사가?

…그 자신을 악마 취급하며 은근히 죽음만을 바라던 그가?

“조금만 더 말해 주게. 그는 무엇을 참지 않기로 한 거지? 대체 무엇을 알았기에, 결코 선택하지 않으리란 수단까지 동원하기로 한 건가? 그는, 그는 대체…….”

샤기의 귀로 철을 덧댄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마 그녀를 호위하고자 오는 병사일 테다. 더는 시간이 없다.

“말 못 해.”

“청산호.”

“그가 허락하지 않았다.”

더는,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아크메이지는 소리를 없애는 도구를 끄며 다음을 기약했다. 물론 이번이 운 좋았을 뿐이며, 다음은 없을 거란 건 그녀도 청산호도 잘 알았다.

그녀는 서둘러 옷가지를 챙겼다.

“시간이 나면 내 손자 놈이나 보러 가줘. 어찌 지내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가운을 걸치고 천막을 열어젖히려던 차, 청산호가 툭하니 내뱉었다. 아크메이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식을 못 듣고 있나?”

“나는 이곳을 못 벗어나니까. 그놈도 이곳에 출입할 권리가 없고.”

이것은 힌트일까 아닐까.

아크메이지는 머릿속을 열심히 굴리되, 입으로는 순순히 긍정을 뱉었다.

“알겠네. 다녀오는 길에 한번 찾아보지.”

열어젖힌 천막 너머로 그녀를 지켜 줄 병사들이 보였다.

* * *

발명품으로 사람을 돕고 싶어도, 소재와 도구가 없으면 의미가 반쯤 사라지는 게 기술이란 것이라.

고로 발명가이자 과학자이며 공학자를 겸하고 건축가이기도 한 기술가, 마이스터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다.

“뭐 해?”

“사람 찾기.”

딴짓이었다.

“아직도 찾아?”

“예.”

놀랍게도 특별한 재능 낭비는 아니었다. 아무렴, 난민촌의 구획 지정이나 배수로의 경로는 한 번 짜면 끝이니 오래 붙잡고 있을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걸 계획할 인재가 그뿐인 것도 아니고.

마법사이자 발명가로서도 마찬가지. 앞서 말했지만, 소재와 도구와 시간이 없는 그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껏해야 도시에서 뜯어 온 펌프로 정수기를 만들고,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난로를 곳곳에 설치해 주는 것이 다였지.

하다못해 배터리조차도 추락시켜야만 충전이 된다는 애매함과 배터리를 연결해서 가동하는 마법 아이템이 존재치 않는단 현실 때문에 못 써먹는다. 그걸 개선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래서야 일반 노동 외에 할 게 있겠는가?

하여 마이스터는 담배 피우고 싶어 근질거리는 손가락과 입을 두고 눈동자를 굴렸다. 지원군이 추가로 도착하고 저지대 침수를 대비해 천막 일부를 이전시키느라 어수선해진 천막촌 사이사이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원하는 상대는 여즉 보이지 않았다. 악마기사가 탈주한 이래 매일같이 찾았음에도 그랬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된 것인지. 정말 찾기 어렵다.

“대체 누구길래?”

“며칠 전에 지원 온 모험가요.”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마이스터는 알고 싶은 게 생기면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궁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모험가? 왜?”

“그 사람에게 할 말이 있어서.”

여기에 더해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나, 마이스터 자신만큼은 악마기사가 사라지기 전 무언가를 전달받았음을 안다.

또한 그의 설득에도 영 항의할 의향이 없어 보였던 악마기사가, 처형을 받아들일 생각으로 만만해 보였던 그 사내가 그것을 받은 날 도주를 감행했다는 사실도.

우연이라기엔 너무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 혹시 너한테 걸린 혐의 문제… 는 아니지?”

“억측은 아니지만, 불쾌하네요. 그딴 이유면 제가 대놓고 찾겠어요? 의뢰를 X같이 했으니까 따지려고 찾는 거지.”

“아…….”

한데 그것이 정말 악마기사의 마음을 바꾼 원인이라면, 대체 무엇이 적혀 있었기에 이런 결과를 낼 수 있던 것일까?

마이스터가 보기에, 악마기사란 자는 쉽게 마음이 뒤집어질 성정이 아니었는데.

“그거라면 길드를 통하는 게 낫지 않나.”

“길드 돌아가는 꼴을 보세요. 걔네가 일하는 것보다 그냥 내가 직접 찾아서 따지는 게 더 빠를걸.”

“그것도 그렇긴 하지.”

지금 찾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대체 뭐가 원인이 돼서 그 강직한 놈이 탈주까지 감행했는지 알아야만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

모험가라고 해서 전달 물품을 알리란 법은 없지만, 안다 해도 비밀 조항을 들먹이며 그에게 안 알려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 미련이 안 남을 테니까.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조심해. 신전이 알면 내통이다 뭐다 또 오해할지도 몰라. 너 아직 혐의도 다 못 벗은 상태잖아.”

하나 그런 행동을 상대가 만류했다. 마이스터가 이단 혐의를 받고 있음을─제 조부 면회조차 허락 못 받을 정도로─아는 탓이었다.

물론 그 충고에 마이스터는 코웃음만 쳤다.

“큰일은 무슨. 증거도, 실증도 없이 주장과 의견만 가득한 억지 전개에 제가 당할 것 같아요?”

악마기사가 탈출했던 밤, 그와 만난 건 사실이다. 신전은 모르겠지만 악마기사에게 항의할 것을 권유하거나, 그에게 몰래 물품을 전달한 적도 있고.

그러나 고작 그 이유로 그를 이단으로 내모는 건 과하게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그가 진정 이단이었다면─이단이 될 일은 영원히 없겠지만─이렇게 의심받을 형태로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 텐데.

“음, 아. 생각해 보니 주의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머리 장식장들이랑 입씨름하기도 귀찮긴 할 테니까.”

“아니, 내 말은 그런 의미가…….”

만일을 대비해 빌려온 아이템이 있긴 하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다. 거기에 사고를 좀 더 해 보니 상대란 놈들이 어째 조목조목 반박을 해 줘도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신전 놈들은 신앙이 모든 것의 사유가 될 거라 생각하는 머저리들이니까.

하니 그런 것들과 대화했다간 그의 시간도 낭비되고, 머저리들이랑 말 섞으면서 뇌가 오염되는 기분도 받을 터.

“조심할게요.”

“그래…….”

마이스터는 그만의 이유로 상대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대는 살짝 질린 기색이었으나, 더 이상 뭐라 하진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느낌이다.

“……! 찾았다!”

“오.”

그러다 잠깐, 마이스터는 기어이 그때의 그 모험가를 발견해 냈다. 회색 꽁지머리에 평범한 얼굴. 확실했다.

“이봐, 모험─!”

하지만 마이스터가 그 모험가를 부르기 전, 누군가가 먼저 그 모험가를 붙잡았다. 눌러쓴 후드와 그 사이에 솟은 녹색 귀. 이름은 모르는 데 생의 끝은 함께할 뻔했던 그 녀석이었다.

“저 녀석이 왜…….”

녹색귀가 저 모험가를 왜 찾는 것일까. 서로 멱은 왜 잡는 거고?

마이스터는 잠시 머릿속에 단서가 있나 뒤적여 보았다. 그 와중에도 그의 다리는 착실히 그쪽으로 향했다. 뭔진 몰라도 일단 찾은 사람 놓치긴 싫어서였다.

“여기 있었군요.”

“…뭐야, 신전? 또 왜?”

다만 저 모험가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녹색귀에게 말 건 걸 보면 그쪽이 목적일 수도 있고─이 제법 많은 모양이었다.

마이스터가 모험가에게 볼일이 있노라 제대로 밝히기도 전에 생전 처음 보는 잿빛 머리의 이단심문관까지 끼어들었다.

졸지에 교집합적으로만 서로의 얼굴을 아는 네 사람이 한자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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