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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39화 (239/389)

239화 이런 생에도 (2)

[아이고. 하늘이 꾸리꾸리하더니마는 진짜 비 오네.]

네 번째 지원군이 도착하거든 꼬리를 떼기로 마음 먹었을까. 그들이 도착하기 전, 조악한 천막촌에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어이 비가 오는군.” 다만 문제는, 이것이 보슬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천을 뚫을 기세로 무겁게 내리는 비란 점이라. “마법사들은?” 심지어 바닷가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람도 거셌다. “글쎄요. 청산호 대현자님이 구속된 것도 모자라 마탑 전체가 이단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태다 보니 아마 협조는…….” 무리 지은 인간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바람이 뭐 이리 세데요. 태풍도 아니고.]

[태풍 맞을걸?]

[엥, 진짜요.]

[응.]

와중에 이것이 진짜 태풍의 전조였을 줄이야.

산군은 곧이곧대로 육귀의 말을 받아들였다. 힘을 대부분 잃었을지언정 태곳적 짐승이란 격이 어딜 가는 건 아니기에 가능한 믿음이었다.

[쟈들 다 날아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십니다.]

[날아가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글킨 한데…….]

그렇지만 지금은 믿음의 근원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산군은 서둘러 육귀를 정교하게 감쌌다. 공기와 파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지언정 그것들을 이겨 낼 힘이 지금의 육귀에겐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신한 육체가 새의 둥지처럼 작은 거북이를 꽁꽁 둘러쌌다. “가장 큰 근심이 사라졌는데도 상황이 어째 나아지질 않는군.” 똬리 튼 몸 가운데에는 폭신하게 깔린 풀잎과 먹이용 과일이 가득하다.

[사람 또 죽어 나갈 거 아닙니까.]

지난 며칠간, 외상으로 인해 죽어 나간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신의 힘을 다루는 자가 그 곁에 있었으므로 마땅한 결과였다.

하나 그렇다고 죽는 자가 아예 안 나오는 것 또한 아니었으니.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 나가는 자들은 신의 힘으로도 구할 수 없다. 그런 건 신성력 조금 쬔다고 나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니 오늘 밤도 아마 고비가 될 것이다.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곤 하나, 여전히 인간들의 거주지는 열악했다.

[아, 빛이다.]

[맞기 전에 예방한다? 힘들 텐데.]

한데 그런 예상을 뒤엎고, 인간들이 만든 천막촌에 금빛 막이 덮였다. 인간들이 용사라 부르는 붉은 머리 인간이 나선 게 분명했다.

금빛 막이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사람들을 보호했다. “…신전이 기세등등해지겠군.” 일부 인간이 심기 불편해 하는 게 바람결을 타고 흘러왔다.

[아가 참 고생이네요.]

하나 그들의 안심은 너무 이르다. 아무렴 저게 가 봐야 얼마나 가겠나? 하물며 태풍은 아직 제대로 오지도 않았는데.

[태풍인 걸 모르는 거지.]

[아이구…….]

이러다간 정작 힘을 써야 할 때 못 쓸 것이다. 산군은 그것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조언을 해 주고 싶어도 말이 안 통하는 입장이라 안타까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산군의 꼬리가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반영하듯 들썩거렸다. “어떻게든 마법사들을 설득하도록.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맡겨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봐라, 어느 인간도 같은 입장이지 않은가. “그러다 신전이 저희까지 이단으로 몰면 어떡합니까?” 물론 약간의…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우린 이미 끝났다. 사람들이나 보호할 준비를 해라.” 그래도.

[정신 사나워.]

[아가 쪼매 불쌍하잖습니까.]

[본인이 자초한 건데 뭘 새삼스레…….]

[그래도요.]

[인간들 싫어진 거 아니었어?]

[뭐어…….]

육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의 긴 인내심도 인간들의 추태에 많이 깎여 나간 것이 작금이니까. 다른 말로는 대부분의 인간을 실망스럽게 여기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힘을 남에게 쓸 줄 아는 자는 여전히 좋다. 이 동정심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었다.

[지가 착하니까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저 아는 선조님도 좀 괜찮다 하시지 않았십니까.]

더불어 용사는 유일하게 매일 감사 인사를 하러 오는 인간이다. 그 정도로 성실하고 착한 것을 그저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선조님 돌봐 준 인간들도 용사랑 같이 고생할 긴데.]

또한 이 마음은 육귀도 공통된 데가 있을 것이다. 육귀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을 정도로 후안무치한 자가 아니고, 알에서 막 깨어난 그를 돌봐 준 자들은 아직 저곳에 있으니 말이다.

[…그럼 힘이나 좀 빌려주든가. 태풍 진로 틀게.]

아니나 다를까. 육귀가 결국 툴툴거리며 수긍했다. 힘이 없어서 잠자코 있었을 뿐, 지금껏 나름 신경 써 왔던 것이 분명하다.

산군의 입꼬리가 헤죽 올라갔다.

[좋십니다.]

[참 나. 마기에 먹히려던 것도 정화해 줬는데 이젠 태풍까지 막아 줘야 하다니… 회복에만 전념해도 모자랄 상황에 웬 고생이람.]

[히히.]

[뭘 웃어. 이거 네 힘으로 하는 거야.]

본인도 나서고 싶었으면서 타박하기는. 산군은 육귀가 뭐라 하든 히죽히죽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힘이 쭉 빠진 건 다음 순간이었다.

[흐엉.]

인간들이 있던 해안가를 직격할 예정이었던 태풍은 아무도 모르게 진로를 틀어 남쪽으로 내려갔다. 또한 산군은 그 대가로 고개를 들 힘도 잃게 되었다.

동그랗게 말린 몸 위로 거대한 머리가 뉘었다. 입가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징징거림이다.

[오늘 치 식량은 못 내주겠십니다…….]

[오늘 치는 무슨. 최소한 사흘은 힘 아껴야 할걸.]

그런 산군이 불쌍하지도 않은지, 육귀는 계속해서 핀잔을 주었다.

애초에 격에 맞지 않는 힘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느냐. 네 격이 조금만 떨어졌어도 축생들이 신의 힘을 쓸 때처럼 엄청난 격통이 따랐을 것이다. 실없이 웃지만 말고 앞으론 네 몸 생각해서 결정 좀 내려라.

돌고 돌아 말하지만 결국 본의는 걱정이었다. 산군은 대삼림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에 또다시 헤실헤실 웃었다.

[어쩌다 이런 걸 자식이라고 낳아서…….]

[아, 지가 뭐 우쨌다고요.]

[됐다, 이 실없는 놈.]

[힝.]

[그보다 감당 가능할 거는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멀쩡하네. 이건 의외인데.]

아무리 직계라지만 예상보다 더 부작용이 적다. 육귀는 그 지점에 골몰했다.

[세대를 거쳐도 피가 흐려질 일이 없으니 격이 유지되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상한데.]

[넹?]

[너 뭐 이상한 거 먹고 자란 건 아니지?]

[음… 지가 변질된 마력에서 나고 그래가 마력이랑 마기랑 온갖 걸 다 처먹고 살긴 했지요……?]

[그건 그냥 특질이 생긴 거고. 내 말은… 너보다 격 높은 것들을 먹거나 뭐 그랬냐는 거야.]

[어… 아!]

그리고 그 궁구는 기어이 진정한 원인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 여기에 원래 호랑이님이 살지 않았십니까.]

[그랬지?]

[근데 그분이 쪼매 타락해가… 인간들이 쓱싹해 버렸다 아입니까.]

[…걔도 타락했어?]

[듣기로 인간 하나한테 미쳐서 그랬다는데… 암튼 그래가 사체만 쪼매 남은 것이 어쩌다 지한테도 좀 왔십니다.]

[허이고, 아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그으… 지가 알기로 서쪽도 그리 됐을 긴데.]

[…….]

진실을 찾은 산군과 육귀 사이의 공기가 오묘하게 가라앉았다.

한쪽은 어딘가 뻘쭘해서, 한쪽은 나름 태곳적 짐승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죄 타락했다는 사실이 어딘가 뒤숭숭해서.

그런 이유의 가라앉음이었다.

[…그래. 고인물은 썩는 것이 자연이니까.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었던 걸지도.]

그러나 그 어색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는, 육귀가 억지로 주제를 집어넣었다.

조그만 거북이가 머리를 팔다리에 파묻고 몸을 웅크렸다.

[그런 점에서 네가 그것들을 먹은 건… 차라리 나은 일인 것 같다. 잘했어.]

[옙.]

칭찬을 받았지만 영 희희낙락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산군은 꼬리로 이마를 긁으려다가, 그럴 힘도 없어서 추욱 늘어졌다.

기사님은 이럴 줄 알고 그에게 심장을 줬던 걸까? 대신해 떠올린 상념은 그나마 숨통을 틔어 줄 만한 종류의 것이다.

산군은 기사가 그에게 심장을 준 것이 진정 우연이었는지 이리저리 따져 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금방 주변 상황이 잊혔다.

“사냥꾼도 오늘은 더 이상 보내지 말도록. 이미 나간 이들이 있다면 서둘러 돌아오도록 하게 하고.”

“네.”

“후… 정말이지 산군께서 먹을 것을 하사하시는 게 그나마 다행이야.”

그러나 그런 산군이 하나 놓친 것이 있다면, 그가 가볍게 넘긴 어떤 사항이 어떤 이들에겐 결코 가볍지 못했단 것이었다.

* * *

“산군께서 더는 은혜를 내려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비바람 때문에 식량을 구하러 갈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러다간 임시 거처의 분위기가 또다시 바닥을 기게 될 겁니다.”

힘을 과도하게 사용한 산군이 보다 빠른 회복을 위해 잠에 들었을까.

시간이 됐음에도 내려오지 않는 자비에 약간의 불길함을 느끼던 인간들은, 그게 하루를 넘어 다음 날까지 이어지자 시급히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시시각각 줄어드는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회의였다.

“장작도 부족합니다. 이러다간 내려간 기온에 동사하는 사람이 나올 거예요.”

“하천도 시시각각 불어나고 있습니다. 저지대가 침수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좀더 찾아보면 부족한 건 고작 식량뿐이 아니다. 지원군이 몇 부대나 도착했음에도 그랬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그래서 방도는?”

“최대한 아껴야 합니다.”

“그것뿐인가?”

“…송구합니다.”

“후…….”

최대한 아껴야 한다, 최대한 돌려써야 한다, 최대한, 최대한…….

그런 걸 누가 몰라서 이 자리를 만들었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괜찮은 꾀를 내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식량과 장작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그에 대한 문제는 할 수 있는 한 아끼는 쪽으로 가지. 저지대 침수는 천막의 위치를 옮기는 것으로 해결하게. 배수로도 계속 작업하고.”

“예.”

“그럼 회의는 이만 파하지. 아, 자네는 남고.”

하므로 성주는 답 없는 문제를 푸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사람들을 그냥 내보냈다.

고작 이십 분 남짓 이어진 회의 한 번에 10년은 늙어 버린 얼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법사들은 어찌 됐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협조를 약속했지만 사기가 영 좋지 않습니다. 초반처럼 열정적인 태도는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가…….”

그러나 그것만이라도 감지덕지다.

암, 개인주의가 심하다지만 선구자를 향한 존경심은 있는 곳이 마탑이고, 그들의 제일 가는 선각자는 이단 혐의를 받아 잡혀간 마당이 아니던가.

심지어 그 여파로 이단 혐의가 마탑 전체를 향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대현자를 향한 존경심보다 강했던 마법사들도 이쯤 되면 반감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청산호의 영향으로 다들 책임감만은 높아서 망정이지.”

베뮈르헨의 마탑이 청산호의 것이 아니라 하얀 까마귀가 관장하는 마탑이었다면 어땠을까. 죽는 이들이 더 많이 나오진 않았을까.

“신전은.”

“지금은 잠잠합니다.”

“하, 염치가 있다면 그래야지.”

신전과 그들이 대립하도록 만들었던 악마기사도 없다. 악마기사에게 협력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청산호도 얌전히 구속되어 감시하에 힘을 빌려주고 있다.

악마기사를 비호하던 또 한 명의 대현자나 그의 동료 그리고 깨어난 용사조차도 마찬가지다. 잠들어 있던 용사는 둘째 치더라도 나머지 인사는 어떻게든 악마기사를 옹호하며 극진히 대접하려 들었던 게 선명한데, 그들은 지금 아무 말도 얹지 않고 있다. 상황을 고려한 배려가 분명했다.

한데 이런 마당에 신전이 감히 분란을 일으키려 들었다? 하면 그들은 더 이상 신을 따르는 자라 불리지 못했을 것이다.

“용사께서는? 몸은 괜찮으시다던가?”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 걱정 마시라 하셨습니다.”

함에도 여전히 신전은 성주의 마음에 차지 않는지라.

그는 신전과 용사를 분리해 물었다. 사람 괴롭히기만 하는 신전과 달리, 용사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 주었으므로 더더욱 그리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분의 안위는 확실히 챙기게. 지금 그분이 흔들리면 모두가 힘들어질 거야.”

아무렴, 그녀가 없었다면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이들은 지금의 몇 배가 되었을 것이다. 식량 배급이 줄었다고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수 또한 그렇다.

거대한 이적 자체가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한 용사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또 한 번 고난을 겪었어야 했을 테다.

“최대한 그러고는 있습니다만, 그분께서 어찌 자신만 편의를 누릴 수 있겠느냐며 한사코 거절을 하시는 바람에…….”

“그럼 설득할 생각을 하게. 지금은 같은 음식을 먹는단 동질감으로써 줄 위로보다, 그분이 내는 힘이 가져오는 영향이 더 커.”

괜히 동질감 주겠답시고 피죽 따위나 먹다가 쓰러지는 꼴을 보느니, 좋은 것을 몰아주어 기력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한데 그것조차 생각 못 할 인사여서야.

성주의 따끔한 눈초리에 변명하던 이가 입을 다물었다.

“마지막으로… 아크메이지께 여쭤보게. 산군께 혹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타진하러 가 볼 의향이 있느냐고. 수락했을 때를 위한 호위도 미리 뽑아 두고.”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가 보게.”

“예.”

산군께서 괜히 일을 그만뒀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나, 지금은 그 자비 하나가 너무 급한 상황이다.

성주는 몰염치를 감수하더라도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두통은 슬슬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될 수준이다.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 급사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군.”

“서, 성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내내 말없이 그를 보좌하던 부관이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방금 발언은 결코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조악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 주 가까이 쪽잠으로만 연명한 몸은 천근만근이나 다름없다.

“성주님, 멀리서 지원군의 깃발이……!”

“…쉴 시간이 없나.”

그러나 그렇게 겨우 붙인 엉덩이조차 그는 곧 떼어야 했다. 일어나기 위해 무릎에 힘을 주자 잠시 시야가 하얘졌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그는 비틀거리려던 몸을 부관의 힘으로 버틴 후, 눈을 몇 번 껌뻑였다. 시야가 도로 돌아왔다.

“부관, 내가 죽으면 우리에게 덧씌워질 모든 죄를 내게 넘기게.”

하나 시야가 돌아와도 그의 몸이 한계에 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해서 성주는 만일을 대비해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청산호의 죄도 마찬가지야. 만약 그 죄가 확정이 되면… 사실 내가 명령한 거라고 증언해. 청산호가 뭐라 하든, 알았지?”

“미치셨습니까? 그렇게 되면 성주님은……!”

“무덤조차 갖지 못하겠지. 근데 뭐 어떤가? 어차피 나 죽은 뒤에 무덤이 생기든 말든 난 보지도 못할 텐데. 부모도 반려도 자식조차도 없으니 피해 입을 이들도 없고.”

“청산호 님이 싫어하실 겁니다.”

“그럼 전해. 내 일가의 장례식에서 다정하게 굴었던 업보라고.”

그렇지만 이건 말 그대로 대비일 뿐이다. 성주는 추레해진 망토나마 제대로 여미며 나갈 준비를 했다.

아직 그는 살아 있고, 할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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