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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37화 (1부 완결) (237/389)

237화 괴로움으로 가득해 (10) - 1부 完

데스브링거는 망연히 천막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의 앞에 누워 있는 인퀴지터는 여즉 깨어나질 못한 채다. 언제까지 자려는 건지 모르겠다.

“제발 빨리 일어나십쇼…….”

악마기사만큼이나 고생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란 걸 안다. 그러나 데스브링거는 차마 인퀴지터가 늦게 일어나는 걸 바랄 수 없었다.

암, 지금 상황을 유효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인퀴지터뿐이었다.

“대현자님 둘이서 막는 것도 이제 한계란 말입니다…….”

악마기사가 깨어난 것도 모자라, 어떤 결론이든 받아들이겠노라 말한 순간 의견의 대립은 격렬해졌다. 또한 당연하게도, 유력한 쪽은 ‘처형을 집행한다’ 쪽이었다.

대현자 둘이 악마기사를 비호할지언정, 마땅한 증거나 명분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성주도 본인이 깨어나서 수긍했는데 그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으로 넘어가는 중이고.

“빌어먹을…….”

하나 막을 명분이 없고 본인이 순응한 죽음이면 정말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애초에 이런 상황에 내몰린 채로 내리는 결정이 진정 본인의 결단이긴 한가?

악마기사가 위험한 건 사실이나, 그 위험한 힘 때문에 다들 살아남았으면서.

“이젠 그 망할 재수탱이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어…….”

마주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이스터가 악마기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분명 박탈감이 들려나.

그렇지만 그래도 좋다. 악마기사가 이렇게 죽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비참한 끝을 마주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는 제가 악마기사에게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사람임을 입증당해도 좋았다.

그래도 좋았다…….

촤악.

그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크메이지를 둘러업고 있는 베르세르크였다.

며칠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사방을 돌아다녀서인가. 그녀 주위의 공기는 유독 가라앉아 있다. 새벽 공기와 닮은 서늘함이고 무거움이다.

“오셨… 법사 나리는 왜?”

“과로로 기절해 있는 걸 발견했다. 담당 치료사들도 피곤해 보여서 그냥 네 쪽으로 데려왔다.”

베르세르크의 말에 데스브링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차마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넘겨 주십쇼.”

그는 베르세르크의 도움을 받아 아크메이지를 옆에 눕혔다. 덩치에 비해 가벼운 몸이 데스브링거를 더욱 짓눌렀다.

털에 가려 티가 덜 나지만, 전보다 살이 더 빠지신 것 같다.

“거북이는?”

“…저기서 자고 있습니다요.”

“그래.”

작지 않은 덩치의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가 나란히 눕자 천막의 절반이 들어찼다. 데스브링거와 베르세르크가 한쪽에 앉고 나면 더하다. 천막 내부엔 이제 더 이상의 여유 공간이 없다.

자연히 쪼그려 앉은 두 사람이 다리를 교차해서 뻗었다.

“…우린 이대로 어떻게 될까요.”

“글쎄. 달라지는 건 악마기사의 존재 여부뿐이라 생각한다만.”

글쎄.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데스브링거는 베르세르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혹여 베르세르크는 악마기사의 처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투사 나리는 기사 나리가 죽어도 괜찮습니까?”

하나 그렇게 물어본 순간, 베르세르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음울한 눈은 많은 대답을 대신한다.

“그가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님은 알고 있다.”

나지막한 한마디가 상황을 요약했다.

데스브링거의 고개가 다시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참담함이 가슴 안쪽 심장을 너덜너덜하게 찢었다.

“으음.”

하나 그렇게 비감에 젖어 드려는 무렵, 한 사람의 신음 소리가 상황을 뒤바꾸었다. 각자 눈꺼풀을 닫고 적막을 곱씹으려던 두 사람의 고개가 황급히 돌아갔다.

* * *

인퀴지터는 새까만 세상을 두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곳은, 이곳은 신의…….

“신이시여.”

그녀는 용사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 신탁을 내리받던 순간을 되새겼다.

그 순간도 이랬다. 주변은 검었고, 그녀는 칠흑 속에서 오직 그녀 자신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은, 신은…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명령만을 남겼지.

“이 미천한 종이 감히 묻나이다.”

일방적으로 남겨지는 말에 당시의 그녀는 오직 순응만을 보였던가.

배운 것의 흑백이 명료하여 되새길 질문이 없고, 배운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였으며, 의심보다 복종이 불신보다 순응이 더 편했던 사람이라서 감히 의문 하나 못 품어 봤던가.

“어째서 저였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는 신이 무언가 말을 하기 전, 그녀가 품어 온 의문을 해소하고자 마음먹었다.

질문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와 동치되는 게 아니고, 의문을 갖는 것이 상대를 경배하지 않는단 의미가 아니며, 세상이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단 걸 배워 버린 사람의 용기였다.

“어째서 그였습니까?”

그녀가 구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힘이 이다지도 부치는 걸 깨닫고 만 필멸자의 기도였다.

“어째서 베뮈르헨은…….”

전지전능한 신의 답이 그녀는 이제 필요했다.

어째서 부족한 그녀가 용사로 선택된 것인지.

어째서 그 헌신적인 사내는 고통받아야만 하는 것인지.

어째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신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죽어 나가야만 했는지.

어째서, 어째서…….

“신이시여, 부디 제게 답을…….”

[────]

“……?”

[──가─]

그러던 찰나, 그녀의 뇌리에 어떠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다. 따지자면 귀를 통해 새어 오는 문자에 더 가까웠다. 혹은 보다 본질적인─

[북쪽── 가─]

반짝.

저번에도 이랬던가? 기억을 더듬으려던 순간 인퀴지터는 또한 보았다. 어둠뿐이던 세상에 빛 하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추락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생겨났다거나. 가려져 있던 것이 이제야 보였다거나.

본래 그곳에 있던 것이 드디어 눈을 떴다거나.

[북쪽으─ 가라.]

수천, 수만 혹은 셀 수도 없는 숫자의 눈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머리 위, 정면, 발치 그 모든 암흑 속에서.

[그─에서 너─ 답을 구하─라.]

세상이, 자연이, 미지가.

인간이 영원히 경외해야 할 것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 길 ─은 자를 ──라.]

어둠이 깨지며 세상이 밝아졌다.

* * *

“허억!”

인퀴지터는 반사적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환기되지 않은 공기 특유의 퀴퀴함이 코와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환자를 위함인지 약간의 훈기가 느껴졌다.

“샌님!”

“깼나.”

따스한 기운은 폐부에 온건히 파고들었으나, 그로 인해 명정한 이지를 곧바로 되찾진 못했다. 인퀴지터는 몇 번 더 숨을 고르며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천막 한쪽에 내건 호롱불이 주변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밝혀 주었다.

멀쩡히 서 있는 데스브링거와 베르세르크, 한쪽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크메이지. 이렇게 셋이었다.

그들의 얼굴 모두를 확인하자,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걱정이 살풋 풀려났다. 이제 악마기사의 안위만 확인하면 근심은 거의 다 풀릴 것이다.

인퀴지터는 알게 모르게 밝아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세 사람 다… 살아 계셨군요.”

다만 그렇게 입을 여니 컬컬한 목소리가 나왔다.

나이든 노파와 썩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 퍽 생경한 기분이었다. 인퀴지터는 몸을 일으키며 제 목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몸은 괜찮은 겁니까요?”

“나쁘진, 큼큼, 않다. 조금 찌뿌둥 하긴 하지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듯, 몸이 다소 굳었다는 느낌은 있다. 그러나 그건 몇 번 움직이면 해결될 가능성이 크므로 문제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상황은?”

오히려 그녀의 몸 상태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잠들어 있던 동안 바뀌었을 상황이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도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악마기사는 어디 있는지 의문을 품으며 서둘러 두 사람을 채근했다.

참고로 꿈에서 들은 신탁은 잠시 미뤄 두었다. 그건 나중에 전달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세 사람 다 멀쩡한 것을 보면 나쁘지만은 않은 모양인데─”

“…그게.”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재촉당한 두 사람의 얼굴은 점차 굳기 시작했다. 그녀가 바란 것과 썩 다른 반응이었다.

“…많이 안 좋은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그런가. 그런 상황인가.

하지만 이대로 불안에만 젖은 채 무지만을 지킬 순 없다. 인퀴지터는 자세를 바로 한 채 설명을 기다렸다.

곧 데스브링거의 차분한 음성이 천막 안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지원군이 도착해 한숨 돌린 상태다, 이건가.”

“정리한다면요.”

“하.”

한데 놀랍게도, 시간을 들여 구한 대답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단 좋았다. 아무렴 사람들 전원이 몰살당하는 미래는 피했고, 위협적인 악마─탐욕과 정체 모를 거북이─들도 전부 제거가 된 상태 아닌가.

최악의 경우 모든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던 형편이니만큼, 이 정도 결말은 거의 최선에 가깝다. 좋은 일이 맞다.

“정작 도시를 구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은 지금 가둬 둔 채 처형을 논하고 있고?”

오직 단 하나, 단 한 사람의 처우만 빼고.

“안내해라.”

“…가게요?”

“그럼 가야지, 안 가겠나?”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효율적임은 부정하지 않겠다. 한 사람으로 인해 모두가 불안해하는 상황이라면, 그 한 사람에게 약간의 제지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해받을 수 있는 것과 별개로 진정 옳은 일인가? 작금의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 해서 정당성까지 갖추고 있어?

“한낱 가능성을 핑계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지 멀쩡한 성인을 두고 범죄자가 될 수 있으니 죽여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즉, 억지다. 피해 입기 싫은 자들의 억지.”

반면 악마기사는 이미 온 힘을 다해 도시를 구했다. 그 과정에서 악마의 힘이 쓰였다 해도 그렇다.

그가 어떻게든 악마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고, 누구도 그에게 피해 입지 않은 시점에서 그가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단 말이다!

“난 그런 억지를 들어 줄 생각이 아주 조금도 없다! 알았나? 난 그분의 헌신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돌려드릴 거다!”

하니 인퀴지터는 아주 당연하게 악마기사의 생존을 논했다. 결코 의심할 필요 없는 그녀의 진리였다.

“그가 스스로 죽고자 한다면?”

가만히 있던 베르세르크가 한마디 얹은 건 그때였다.

“지금 악마기사의 처우에는 분명 타인의 의사가 많이 영향을 끼치긴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의견을 걷어 낸 후에도 악마기사가 과연 살고자 할 것 같나?”

“……!”

“만약 주변인의 의견과 상관없이 그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면? 그땐 어쩔 거지?”

“그, 그건…….”

예전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의 투사가 심드렁한 형태로 본인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무기력한 얼굴은 예전에 논했던 대화를 다시 거론한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운명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세운 무릎 위에 올려진 팔뚝이 마치 죽은 사람의 것처럼 축 늘어졌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설득할 겁니다. 어떻게든!”

“그런가… 여전히 네 선택은 그것인가.”

그렇지만 그녀는 죽은 사람이 아니다. 늘어진 팔과 연결된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세상을 오랫동안 관조함으로써 무언가를 예견해 낼 수 있게 된 자의 움직임이다.

“마음대로 해라.”

그렇지만 무언가를 통찰해 냈다고 해서 모두가 움직이려 들지는 않는다. 베르세르크도 마찬가지였다.

“운명 아래서 발악하는 건 모든 인간의 권리니까.”

그녀는 자신의 예측을 핑계로 인퀴지터에게 간섭하는 대신, 언제나처럼 방관을 택했다. 퇴락한 금빛이 감기는 눈꺼풀을 따라 가물어졌다.

“…가자.”

그렇지만 그 모든 행위가 마치 그녀의 실패를 예지하는 듯해, 인퀴지터는 괜히 찝찝해졌다. 인간이라면 전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불안이었다.

“그래요.”

하나 그녀가 깨어나는 그 몇 시간 사이에 설마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데스브링거가 악마기사를 지금껏 대충 지켜봤을 리도 없고, 밤이라서 잠깐 숙소로 돌아오기만 했을 것 같은데.

설마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겠어.

“아, 악마기사를 뵙기 전에 병동에 먼저 들르지. 아니면 악마기사께서 계신 곳이 더 가까운가?”

“아뇨, 병동 쪽이 더 가깝죠.”

“그럼 그쪽 먼저.”

인퀴지터는 그녀의 상식을 따라 멋대로 판단했다. 댕댕댕댕. 그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은 건 채 10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기사가 사라졌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사이로, 누군가가 외쳤다.

“악마기사가 사라졌다!!”

베르세르크의 말이 맞았다.

운명은 그녀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 * *

[하이고마. 도시가 우짜다 이 꼴이 됐답니까.]

[배고파.]

[마, 코앞까지 왔다 아입… 오잉. 기사님 일행들 아녀?]

[배고파아.]

[아, 쪼매 기다려 보시라 안캅니까. 근디 기사님은 어디 가셨담.]

그리고 망가진 대지에 초목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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