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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33화 (233/389)

233화 괴로움으로 가득해 (6)

“…아직 집계된 건 없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 중, 마법사 차림이되 나는 처음 보는 이가 말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내 눈을 향했는데, 그 시선이 어찌나 투명한지 나는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치, 악마기사가 아닌 진짜 나로서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정확한 수를 묻지 않았다.”

“그래도 돌려줄 답은 같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지. 나는 눈꺼풀을 반쯤 내리깔았다. 집계된 건 없다. 돌려줄 답은 같다. 방금 들은 두 개의 답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중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내가 날뛰긴 했구나 싶어서.

“왜 죽이지 않았지?”

“글쎄. 확실한 처형이 준비되지 않아서?”

확실한 처형?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고민하다가, 상황 수습 하느라 처형할 준비가 부족한 거겠거니 정도로 대충 알아들었다.

그래도 기절해 있는 사람 목만 치면 되는 거, 왜 안 건드렸는지는 의문이지만… 제대로 자리 깔고 죽이고 싶었나 보지. 아니면 일행이… 일행이 막아섰거나.

“어디까지 기억하지?”

그사이, 내 질문에 전부 대답해 줬던 마법사가 이젠 본인이 하겠다는 양 내게 물어 왔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답을 고민했다.

“…신호탄을 쏘던 순간까지.”

“신호탄, 인가.”

그러자 이번엔 상대가 침묵했다. 흰자위도 동공도 없이 파르란 눈이 나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될 걸 알았고?”

다행히 진득한 시선은 머지않아 거둬졌다. 하나 대신 주어진 질문은 참으로 많은 걸 생략한 것이라.

포 떼고 차 뗀 채 대뜸 물어보기만 하면 나보고 어쩌란 건지… 나는 답을 가늠하기 위해 눈살을 살짝 좁혔다.

분명 이렇게 될 걸 알았느냐, 랬지. 그렇단 건 뭐, 폭주할 걸 알면서도 싸웠느냔 물음으로 해석해도 되나? 되겠지?

한데 그런 물음이 지금 중요한가?

“알았다고 답하면, 나는 죽는가?”

격노가 터졌을 때 내가 굉장히 위험해진다는 건 인정한다. 기억은 못 할지언정 남은 흔적만으로 위협 수준은 충분히 알 만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내가 격노 터질 만한 상황이 과연 있었나? 이성이 불분명해질 정도로 나를 자극할 만한 게 있었어?

“혹 몰랐다고 답하면, 나는 사는가?”

반면 당시의 상황은 어땠지? 폭주하면 위험하단 가능성 하나만으로 나란 인력을 뒤로 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었나? 내가 빠져도 저들끼리 해결할 수 있었느냔 말이야.

“무가치한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격노의 후폭풍이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내겐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격노의 위험성을 알지언정 대삼림의 일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격노가 터지리란 상상은 당최 하질 못했으니까.

그러니 결국 이건 사고다. 불행이 선의를 이긴 사고다.

“인제 와서 달라질 건 단 하나도 없다.”

선의로 포장한 채 넘기기엔 피해가 너무 커서, 결국 누구 한 명은 책임져야만 할 사고일 뿐이라고.

“…그러니 각자 할 일을 해라.”

문득,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굳이 비유하자면 탈력감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나는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무도 이걸 뭐라 할 수는 없으리라. 비록 결과가 좋지 못하단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었으니까.

정말, 최선을.

* * *

“저걸 저대로 내버려 둬도 되는 건가?”

“되니까 저렇게 두는 거겠지. 최소한 나가려 들지는 않잖아.”

“그렇지만… 세르게이 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나? 나는 뭐… 당장 처형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은─”

마이스터는 철창 앞을 지키며 떠드는 병사들을 보며 입술을 삐뚜름하게 내렸다.

오늘 경비는 귀 얇고 입은 가벼운 세르게이군. 그의 눈은 차분히 가라앉되 어딘가가 모난 색을 띤다.

“기강 개판이네.”

“헉!”

“…대명장님.”

“아, 세르게이 기사님에게 한 말은 아니에요. 거기 병사들한테 한 말도 아니고.”

마이스터는 세르게이의 검을 만들던 순간을 떠올리며 새삼 유감을 되새겼다.

뭐만 하면 누구누구는 이게 좋다더라, 누구누구는 저게 좋다더라 하며 제작에 간섭했던 행위에 대한 유감이다.

“별개로… 병사들 기강을 다잡을 필요는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요 며칠 고생한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도시를 지키고자 키워진 게 병사들인데… 악마를 왜 지키느니 뭐니 하며 온갖 불만을 토해 내고 낭설을 조장하며 민간인들을 분열시키는 건 좀 그렇잖아요.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걸 텐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세르게이 옆 병사의 어깨를 쥐고 손에 힘을 주었다.

대명장이라도 기사를 막 대할 권리는 없기 때문에─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그나마 만만한 병사를 대용품으로 삼은 것이다.

졸지에 휘말린 병사가 딱딱히 굳었지만 별로 알 바는 아니다.

그는 어깨를 주물러 주는 척하며 손가락에 힘을 꾹꾹 담았다. 차마 비명은 못 지르겠던 병사가 입을 지르문 채로 자신의 상관에게 눈짓 헬프를 쳤다.

“제 말이 틀렸나요, 기사님?”

“…대명장님 말이 맞습니다. 이에 대해선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세르게이는 세르게이대로 이미 죽을 맛이었다. 그날 뒤로 마이스터와 마주칠 때마다 말로 갈굼당하는 게 그의 실정이었던 까닭이다.

아니, 말로만 당하나? 무기 문제로 공방에 방문할 때마다 순서가 밀리는 건 기본이고 바가지를 쓸 때도 많았다. 실력이 압도적이고 마감만큼은 절대 지켜서 울며 겨자 먹는 느낌으로 맡길 뿐이지.

“그런데 여긴 왜 오셨는지…….”

“머리가 있으면 이미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설마 기사님의 얼빠진 얼굴을 구경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래. 그렇겠지. 세르게이는 자연스럽게 제 지능을 돌려 까는 대명장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깝치지 않는 건데. 매번 되새기는 후회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럼 죄인을 보러 오신……?”

“이상하다. 여기에 죄인이 있었나……? 나는 그냥 내 손님을 보러 온 건데.”

“예? 왜 손……?”

그러나 세르게이는 몰랐다. 그가 그때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그는 결국 눈치 없음과 지능 부족으로 마이스터에게 미움받았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참 이상하지 않아요? 다들 똑같이 목에 붙이고 다니는 게 머리인데 사람마다 이렇게까지 성능 차이 날 일인가……. 못 알아 처먹었으면 됐어요. 그냥 비켜요.”

“…그, 함부로 접근하면.”

“이것 참… 세르게이 기사님께서 정식 절차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지 몰랐네. 앞으로 기사님 의뢰를 받을 때마다 참고해야겠네.”

“…안 되지만 대명장님께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죠.”

마이스터는 결국 물러날 거면서 1분 넘도록 손해 보게 만든 기사를 두고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지난 일주일간 밤잠 아껴 가며 물건 만드느라 피곤한 상황이건만 덕분에 더 짜증이 났다. 아주 고오오오마웠다.

“하여간 몸만 앞서는 머저리들은.”

그렇지만 저런 머저리라도 융통성은 있으니 다행이다.

그는 말은 잘 통하되 원칙에 너무 철저한 디트리히나 프란츠를 떠올리며 그들이 오늘 당번이 아님에 감사했다. 그들이었다면 정말 성주님을 뵙고 허락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땅.

각설하고, 이렇게까지 떠들었으면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철창 안의 사람은 여즉 무소식이다.

그는 창살을 한 대 쳤다.

스윽. 그제야 안쪽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마저도 그를 힐끗 본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왜 동의했지?”

하지만 듣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 마이스터는 창살에 기대듯 앉은 채 물었다.

“그러다 진짜 죽어.”

툭 내뱉어지는 한마디는 갑갑한 속내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온 것이다.

“진짜로 처형당할 수도 있다고.”

이런 기분은 연구가 막혀서 방황할 때 외엔 느껴 본 적이 없는데. 마이스터는 불쾌함에 품속을 뒤적였다.

그러나 원하는 것─담배─은 찾았을지언정 피울 수는 없었다. 이곳엔 불이 없다.

“거부해.”

그는 그것에 진한 탄식을 흘렸다. 답답함이 배가됐다.

“넌 죽인 사람 없어. 아니, 완전히 없지는 않겠지만… 네가 살린 사람보단 한없이 적겠지.”

철컹. 그의 머리가 창살에 닿았다.

“이건 동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인 발언이야.”

건물째로 소멸시키는 공격 범위에 휘말려 죽은 자들이 없을 거란 낙관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기존에 대피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어느 하나쯤은 낙오되었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수가 많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그 망할 녹색 머리와 거닌 거리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낙오된 민간인이 그 집요한 악마들과 흘러오는 용암 속에서 생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인원마저 전부 죽어 있었을 확률이 높다.

“너는 사람을 구했어. 보다 많은 사람을, 어쩌면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전부를.”

그에 반해 저치가 한 일은 어떤가.

본인이 아니라, 그 안의 골칫덩이가 한 일일지언정 가장 위험한 악마를 제거했단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시 해안가에 세워졌다던 머맨들의 둥지도 마찬가지다.

그곳에 머맨들이 둥지를 틀려 했다던 모험가의 증언이 맞다면 그 또한 차후 강대한 위협이 됐을 터. 그걸 미리 날려 버린 것 또한 저 기사다.

해안가에 멈춰 섰던 거북이를 사살한 것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마들을 내쫓은 것도, 전부!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네 힘은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겠지. 약간의 조절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그런데 왜 벌써부터 포기하려 드는 거야?”

심지어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 성주가, 다른 인간들이 죽지 않은 것이 그를 증명한다.

결국 모든 증언과 정황을 모아 따져 보거든, 베뮈르헨의 사람들이 이만큼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음엔 악마기사의 노력이 있단 거다.

그러니 그가 죽을 이유가 없다. 잠재적인 위협이라는 이유로 죽을 필요 또한 없었다.

구원받은 주제에 그의 위험성을 경계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살아도 됐다.

“그러니까…….”

“제어되지 않는 힘은 없느니만 못하다.”

적어도 그의 의견은 그랬다.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다.

“글쎄, 과연 그럴까? 우린 대악마가 얼마나 강한지 이제는 알았어. 거기에 용사 혼자로는 모든 순간을 감당할 수 없음이 알려졌지. 그런 마당에 대악마를 혼자 상대할 수도 있는 너를 함부로 처형하는 게 진정 맞는 일일까?”

마이스터는 제 과거를 더듬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나리는 결코 살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이미 복수라는, 악마라면 전부 죽여야 한다는 감정에 매몰된 상태니까요. 이미 충분할 정도로 감정적이니 감정적인 호소는 씨알도 안 먹힐 거란 거예요.』

오기 전 녹색 머리가 찾아와 한 말이 잠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확실한 명분과 이성적인 논리가 있다면 또 몰라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전… 전 멍청해서 도저히 할 말을 떠올릴 수 없었으니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도록 깨달아 제게 대신 부탁하겠다던 이의 말이다.

“넌 모르겠지만, 머맨들이 내뱉는 산성액은 철을 부식시키고 사람에겐 화상을 입혀. 반면 내가 개발한 염기탄은 피부 자체를 녹이지. 둘 다 사람에겐 X같은 독이라 이거야.”

그는 그것을 떠올리며 마른 목구멍을 쥐어짰다.

“하지만 그 둘을 섞으면 정작 주변에 아무 피해를 입히지 않는, 그냥 물이랑 똑같은 물질이 돼. 독이 독을 만나서 더한 독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중화해서 안전하게 변한다고. 네가 그 위험한 힘으로 더 위험한 악마 새끼들을 조지는 것처럼.”

이게 통할까? 그건 잘 몰랐다. 그렇지만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논리임은 확실했다.

“그러니 빌어먹을, 본인 힘이 위험하단 이유만으로 죽을 거면 차라리 조절을 할 생각을 해. 넌 인류가… 인류에게 주어진 두 번째 패야.”

스스로도 좀 거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직 효율과 합리성만을 따진 논리.

마이스터의 손이 본인의 머리를 마구 털었다. 『이건 모두를 위한 희생이다.』 그가 가장 싫어하던 말과 비슷한 논조의 말을 직접 하게 될 줄이야. 기분이 참 별로였다.

“동전을 던져 두 번 다 앞면이 나왔다.”

와중에 그게 먹혔는지, 먹히지 않았는지. 대화를 거부할 것 같던 상대가 또 한 번 대꾸해 주었다.

조한 음색은 굉장히 피로한 사람의 것 같다.

“하면 다음에 던졌을 때도 앞면이 나올 거라 생각하나, 너는?”

별도로 말의 내용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치는 그가 우연히 만든 오류에 넘어갈 만큼 멍청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내가 도박사의 오류를 범할 정도로 멍청해 보여? 확률이 50:50인 건 나도 알아.”

그가 처형 거부를 권유한 건 그런 우연 맹신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약간의 동정과 약간의 공감을 계기 삼아 지난 일주일간 꾸준히 생각한 끝에 ‘가능하다’라고 결론 내린 행위지.

“하지만 이건 동전 던지기처럼 독립된 사건이 아니야. 전 판의 결과가 다음 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아무렴, 이독제독의 이치는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좋게 맞물렸을 때나 가능한 실리다. 하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익만 좇는 도박꾼이던가? 그건 아니다. 그들을 설득하려면 마땅한 명분 또한 준비되어야 한다.

“특히 그 내기란 거, 변수로 삼기엔 충분한 거 아닌가?”

그리고 그는, 그게 준비되었기에 이리 제안하러 왔다. 명분을 찾지 못했다면 그도 동정을 이유 삼아 무턱대고 살라는 말은 안 했을 것이다.

“악마가 힘을 비축할 시간이 필요해서 입바른 말을 한 것인지 아닌지 고민도 됐지만, 네가 깨어난 시점에서 그 내기란 건 아마 진실이었겠지.”

물론,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면 그건 이 명분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건 악마기사의 협조가 있다면 해결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도 써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악마기사가 ‘내기야말로 악마를 제어하는 데 쓸 수 있다’란 결론을 내려 주면 그때부터는 다른 이들이 머리를 쓰면 될 일이니까.

“…무슨 소리를.”

“아니면, 내기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거나 그 외 제한이 있다거나 한 거야?”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마이스터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기가 어떻게 성립되는지, 어떤 조건으로 구상되는지 알아내기만 한다면 이용해 먹을 방법 따윈 무궁무진하게 세울 수 있다고.

하지만 내기 자체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거나, 성립될 때 무언가가 필요한 거라면… 그건 곤란하다. 마이스터는 염두에는 뒀으나 바라진 않았던 최악의 경우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 설득하기가 좀 힘든데…….”

사실 마이스터 본인은 이딴 모든 실리와 명분이 없더라도 악마기사가 죽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암, 목숨이라는 빚을 져 놓고 너 위험하니까 죽어 줄래?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공포에 질려 생각을 멈춘 자들은 좀 다르다.

한없이 답답한 나머지, 종종 망치로 머리를 깨 버리고 싶다는 욕망은 좀 들지만… 그렇다고 생존자 90%의 머리를 전부 깨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마이스터에게도 그 정도 인내심은 있었다.

“쯧. 왜 말이 안 통하는 머저리들을 설득하려고 머리를 써야 하는 거지? 딱 봐도 이게 맞는 일 아닌가?”

그래, 그 정도만 있었다.

그는 공포라는 쓸모없는 감정으로 인해 효율성과 생산성과 도덕심에서 전부 손해를 보는 인간들을 떠올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이럴 땐 역시 주먹과 망치가 답이 아닐까? 약한 유혹이었다.

“…어쨌든, 내기는 안 되는 게 확실해?”

그래도 참아야지. 그는 다시 유혹을 떨쳐 낸 후 본 주제로 돌아왔다.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내기란 건 뭘 말하는 거지?”

다만 그런 그를 기다리는 건 도리어 자신이 더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표하는 악마기사라.

마이스터는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 잘못됐다.

연구 도중 시약 잘못 넣었을 때와 같은 싸함이 마이스터의 등골을 스멀스멀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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