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괴로움으로 가득해 (5)
“후회하진 않아?”
김태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녀석이 빼먹은 주어를 뒤늦게 덧붙였다.
“후원해 주기로 한 거.”
그의 손엔 아직 불 붙이지 못한 담배가 들려 있다.
“담배 치워.”
“응? 왜?”
“금연한댔잖아.”
“…단체 방에서 금연할까 말까 하더니, 진짜 하냐?”
“그럼 진짜 하지, 가짜겠냐.”
내 말에 김태균은 입을 뻐끔거렸다. 이해 안 가는 일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하루에 한 갑이 기본인 흡연자였다. 반년 전에는 하루 두 갑, 심하면 세 갑도 피웠었고.
“언제부터?”
“한 달 전?”
“아니, 미친. 진짜?”
하나 삶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을 내는 데 있어 금연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또 있을까. 내 갑작스러운 금연의 계기는 그것이었고, 지금껏 인내하도록 한 원동력도 그것이었다.
난 어이없어 하는 김태균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고 대신 당근 스틱을 쥐여 주었다. 얼떨결에 주황색 채소를 들게 된 김태균이 허망한 얼굴을 했다.
“하루아침에 끊는 게 돼?”
“되던데.”
사실 많이 근질근질하긴 하다. 그런데 사람이 가오가 있지, 끊겠다고 해 놓고서 궁색하게 다시 피우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아버지가 당근 스틱을 매일같이 손수 챙겨 주고 계시는데.
“미친 새끼…….”
“그러지 말고 이참에 너도 금연해. 우리 중에 흡연자 너밖에 없어.”
“아니, 그걸 어떻게 하냐? 금연은 해내는 놈들이 이상한 거야!”
“뭐라는 거야. 그냥 네가 참을성 없는 거겠지.”
나는 들고 다니는 휴지 조각으로 으스러트린 담배를 감싼 후, 내 입에도 당근 스틱을 넣었다. 오독오독 씹히는 게 담배 대용으로도, 입가심거리로도 좋았다.
“진짜 개미친 새끼…….”
그걸 본 김태균도 결국 입에 당근 스틱을 물었다. “이게 맛있냐?”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찻잎에 미친 놈이 채소는 질색하는 건 웃긴 게 맞는 것 같다.
“후회 안 해.”
더불어 후원에 대한 것도… 처음엔 이게 맞나 싶었지만, 이제 와선 확신이 섰다. 나는 이걸 후회할 일이 없을 거다.
“네가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도?”
멈칫거렸던 김태균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툭 뱉듯 물었다. 나는 그가 보지 못하리란 걸 앎에도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고통스러웠는데도.”
“시발, 시발. 넌, 넌 진짜…….”
오독, 오독. 당근 스틱이 입안에서 잘게 부스러져 사라졌다.
“넌 진짜 호구 새끼야.”
“그러게.”
“누가 가해자 자식까지 신경 쓰는데… 그것도 피해자가…….”
“하지만 혼자 남기엔 그 애는 너무 어렸는걸.”
“남은 가족들이 잘 지켜 주겠지!”
“없대. 다 알아봤어. 감옥 간 아빠 빼고 그 애 가족은 한 명도 없어.”
그리고 그 애의 하나뿐인 가족을 감옥에 보낸 건 나였다. 합의 없이 받을 수 있는 실형 중 최고형을 받도록 손을 쓴 건 우리 부모님이었고.
“넌 시발, 그걸 왜 알아보는데!”
“그러게. 왜 알아봤을까.”
기실, 합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별로 미안하지 않다.
암, 그 사람이 실형을 살게 된 건 결국 본인 업보였다. 최고형을 살게 된 것도, 내 꿈을 박살 내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진창에 처박은 시점에서 마땅한, 어쩌면 부족한 대가라는 생각밖에 안 들고.
“…다른 애도 많잖아. 부모가 죽어서든 감옥 가서든 혼자 남겨진 애들은 차고 넘치잖아. 근데 왜 하필 그 애냐? 왜, 왜 너한테 그 지랄을 낸 놈 자식을…….”
하지만 그렇게 남겨진 자식은?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하는 그 아이는?
그런 작자도 가족이랍시고 의지한 채 살 수밖에 없던 그 애는 대체 무슨 죄야.
“그렇지만 봐 버렸는걸.”
내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 안다. 그 애가 그렇게 된 건 나의 잘못이 아니고, 그 애를 끌어안을 의무 또한 내게 없다. 나는 그저 피해자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미… 존재를 알아 버렸는걸.”
하지만 그래.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다.
“그걸 어떻게 외면해.”
나란 사람이, 남의 불행을 떠안은 채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인 건 정말 어쩔 수 없어.
“멍청이.”
“알아.”
“호구 새끼.”
“좀 그렇지.”
“…진짜 후회 안 해?”
“응.”
하므로 나는 어렴풋한 친구를 두고 웃었다.
“난 대가 없는 헌신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가장 어려울 때 내밀어진 손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너희에게 배웠는걸. 그걸 배웠는데 내가 어떻게 후회하겠어.”
혹은 내 기억을 엿보고 있는 이에게 미소 지었다.
친구의 얼굴이 무너져내렸다.
.
.
.
「당신이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요? 당신이 당신만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저는…….」
나는 까마득한 어둠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잔 것인지,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많은 것을 지켜보았는지. 기묘한 감각이었다.
「무엇이 최선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런 감각이어도, 온통 어둠뿐인 세상이라도.
「저는, 저는 그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앞에 있는 존재만큼은 뚜렷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건, 당신이 좋은 사람이란 거겠죠. 저희의 내기 상대가 되기엔 정말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잿빛 머리와 창백한 뺨. 좌우 색이 같은 눈동자. 정복, 그러니까 제복을 연상시키는 단정한 차림새. 그리고…….
「그러니까 당신만큼은 반드시 돌아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저를 원망하세요. 전부 제 잘못이 맞아요. 당신의 고난, 시련, 역경 전부 제 탓이에요. 제가 원인 맞아요. 전부, 전부 제가 나쁜 놈이라서 그래요.」
…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더 이상 알려 들지 마세요. 당신은 저만 원망하면 돼요. 그 이상 알지 마세요.」
너는, 너는 그저…….
「무지가 당신을 구할 거예요.」
그저…….
「…미안해요.」
나는 다가오는 손을 피하지 않았다. 못 했다, 쪽에 조금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시야가 까무룩 검어졌다. 다시 추락이다.
* * *
아, 기억을 지워야 하는 부분이 정해져 있어서 편하군. 쯧. 저번엔 얼마나 귀찮았는지…….
「…….」
왜 울상이야? 결정한 건 넌데. 아니면 불쌍한 척하며 그레트헨의 동정심이라도 사고 싶은 거야?
「닥쳐. 동정받을 자격도 없다는 건 나도 잘 아니까. 나는 단지… 단지… 됐다. 네놈이랑 말을 섞느니 혀 깨물고 죽는 게 낫지.」
오… 그럼 지금 바로 혀 깨물고 죽어야겠네? 이야, 너무 감사한걸.
「꺼져, 버러지.」
잊지 마. 아직까진 인간들이 그릇을 내버려 두고 있지만, 이 일대를 떠나기 전 다시 처형이 집행되기라도 하면 그땐…….
「…….」
큭. 그보다 그레트헨이 어떻게 나올지 참 기대되네. 과연 기억을 잃은 그가 인간들의 입으로 폭주의 사실을 전해 듣고도 처형을 거부할까?
「…잠깐, 설마 그것도?」
어리석은 것, 난 분명 내기에 걸었어. 이 일대를 떠나기 전까지 어떠한 형태의 위협도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이건 사기야!」
무슨 소리야. 네가 조항을 잘 설정 못한 탓이지, 이게 왜 사기가 돼?
「너……!」
그보다, 아. 드디어 정신차리는군. 자, 이제 어떻게 되려나?
* * *
‘눈 떠, 머저리. 처형해 달라고는 내가 다 말해 뒀으니, 그대로 이어 가란 말이야. 언제나처럼 호구같이!’
차르륵. 깨자마자 쇳소리가 귓구멍 사이로 파고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뜨려 한 눈꺼풀은 눈가를 누르는 무언가의 존재로 인해 시도 자체가 안 된다.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촤륵.
나는 혹시 몰라 몸을 살짝 비틀어 보았다. 누운 것 같지는 않고 앉아 있는 것 같은데… 사지에 영 감각이 없다. 그러니까 힘은 분명 들어가는데 움직여지는 느낌이 안 나고, 행위를 시도하는 것 자체도 힘겹다고 해야 하나.
입가도 볼이 눌리고 당기는 게 내가 뭘 물고 있나 싶기도 하고.
“음?”
문제는 이 역시 어째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래, 이 감각은 주로 150편쯤 전 당해 본 일과 유달리 닮았어. 사지 결박이나 재갈 문 것 같다는 점에서 특히─
“왜 그러지?”
“아뇨, 그게, 움직인 것 같아서…….”
─가 아니라 잠깐. 이거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진짜 그거 아닌가? 정말 리얼로 속박당한 상태인 거 아니야?
나는 멍멍하던 귓속으로 새로운 목소리가 파고드는 걸 인지했다. 사람 목소리.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던 일? 용암 악마한테 처맞고 신호탄 빵.
그 후는? 몰루.
그럼 내가 지금 구속(추정)된 이유는? 이것도 몰루… 라고 하고 싶지만 솔직히 이유는 한정되어 있다. 내가 또 격노 터져서 난동 부렸거나 한 거겠지. 정작 내 머릿속엔 격노가 발동된 기억이 없다마는 어쨌든.
별개로 주변에서 목소리가 들리고, 내가 제압되어 구속되었다는 건 사건이 끝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지점만큼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쓰러질 때까지만 해도 도시가 전멸로 끝나도 이상할 게 없다 싶긴 했거든. 그렇지만 날 제압해 가둘 여력이 있는 걸 보면 최소한 전멸은 피한 것 같지. 응. 역시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안 움직이는데?”
“착각인가……?”
자, 그러면 이제 어쩔까. 주변 소리를 들으며 정보를 수집할까, 그냥 깨어난 걸 알릴까.
나는 갈등하다가 끝내 후자를 택했다. 이 상태로 오래 있기엔 너무 답답했다. 목이, 목이 특히 더 갑갑해.
촤르륵.
“어! 움직인다!”
“깼, 깼다!”
“…어, 어?”
나는 간지러운 목을 긁기 위해 머리를 움직였다. 목에 무언가가 걸린 건 확실한지 어깨와 뺨이 맞닿을 때마다 목 쪽에서 딱딱한 뭔가가 걸렸다. 숨이 막혔다.
철컹!
“나리!?”
간지러워. 그보다 숨 막혀. 답답해. 답답하다고. 누가 이것 좀 풀어 봐. 다른 거 다 필요 없으니까 목만큼은 제발…….
털썩!
“나리!”
손이라도 자유로웠으면 뭔가 나았을까. 하지만 손으로 목을 만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몸을 꿈틀거리다가, 그대로 앞을 향해 넘어졌다.
촤르륵. 둔탁한 통증이 어깨와 머리에 닿는 사이, 쇳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빌어먹을! 나리! 나리, 제 말 들립니까!?”
“뭐, 뭐야. 왜 저러는 거야?”
싫어. 싫다고. 이건 진짜.
숨 막혀.
“잠@#$% 열#[email protected]#$&$요!”
“#@$^! 자@[email protected]%*$라!”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촤르륵. 촤르르륵.
“@#$%&%%^#$!”
“#$^&[email protected]#@!”
“#@%&$^#$─!”
나는 무력함에 바르작거렸다. 숨이,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코로 쉬어야 하는데, 분명 코는 멀쩡히 안 막히고 있는데…….
목이, 목이 졸리는 것 같아서.
“#@%^%$#$!”
그사이 왔다 갔다 하던 수십 개의 소리 중 하나가 가까워졌다. 무언가가 내 몸을 짓눌렀다. 싫다. 나는 뿌리치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손은 여러 개였고, 그중 하나가 내 목을 잡았다.
철컥.
목에 걸려 있던 것이 하나 사라졌다. 드디어.
“풀$%#@.”
“하지#@%%@#$.”
더불어 입가를 조이던 압박감도 사라졌다. “*@#@#.”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목은 간지러웠다.
“대#@%^님! 위험……!”
“#@%^%$. @%%@#$게 위험@%%@#$나? 난 패닉%&$^#$밖에 #$%&%%^#$. 넌 #$%&%라.”
“#$%.”
숨은, 다시 쉴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갑갑해. 뭔가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있는지도 모를 무언가를 찾고자 목을 어깨에 비비기라도 하려 노력했다. 서걱! 그러나 그게 성공하기도 전에 팔을 묶고 있던 감각이 먼저 사라졌다.
내 손이 빠르게 목으로 향했다.
“%%^#$.”
“%&$^#$.”
간지러워. 간지럽다고…….
나는 손끝으로 붕대를 벗겨 내고 목을 긁었다. 목에 걸린 쇳덩이는 이미 사라졌는데도 이상하게 숨 쉬기가 힘들었다. 무언가가 계속 있는 것 같다. 간지럽다.
“쯧. @%%@#$알고 @%%@었#$?”
“…이렇@% 심#[email protected]^$.”
“#@$고, 말$#^라.”
“음, 비슷^$#@ 봐서 그$%^# 안 #@$% 게 나을 #@$%?”
“#@러다 목에 #@$%@# 같#@$%.”
“감#@$야죠. $#@^@# 잘못 건#[email protected]# @#$%람이 더 다#@요. @#$인도 #[email protected]^ 저쪽이 #[email protected]보다 힘이 [email protected]# 셀 &^$$#.”
까드득. 기어이 손끝에 더운 액체가 닿았다. 그래도 답답했다. 살갗이 다 벗겨지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다는 게 증명될 것 같았다. 나는 손톱을 더 세웠다.
핏방울이 손가락을 거의 다 적시고 나서야 간지러움이 좀 가셨다.
“…로 목은 안 건드리는 게 낫겠군.”
주변 사람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려온 것도 그쯤이었다. 나는 이명 사이로 들리는 단어를 이해하고자 잠시 집중했다. 건드리는. 낫다. 내가 건진 단어는 두 개였다.
“나, 나리.”
그 뒤는 좀 더 나았다. 나는 단어에 집중하다 말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퍽 낯익다는 걸 깨달았다.
살아 있었구나.
“안, 안대 풀 테니까…….”
삐이이이. 이명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가 사뭇 조심스럽다. 미약한 기척이 눈가에 닿았다. 사르륵. 눈을 막고 있던 천 자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나, 리.”
그러자 수척해진 데스브링거 뒤로 무기를 든 병사들과 이단심문관들이 보였다. 사제들도, 마법사들도, 기사도 있었다.
다만 전부 공포에 질린 채로.
“나리, 괜찮…….”
“얼마나 죽였지?”
그 광경으로 말미암아 나는 확신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얼마나 죽였지?”
나는 아무래도 여기서 죽어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