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괴로움으로 가득해 (2)
베르세르크는 눈을 떴다. 살아 있나? 어떻게? 주위를 파악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든 의문은 그것이다.
들썩.
다음으로 느껴진 것은 배 위의 기척이었다.
그녀는 굳은 몸을 이완시키는 한편, 팔근육을 최대한 풀어낸 후 넝마가 된 옷을 풀어헤쳤다. 몇 겹의 옷자락이 전부 들춰내지자, 그녀의 맨살이 보였다.
검은 핏줄이나 우툴두툴 부풀어 오른 돌기 따위가 모조리 사라져 깨끗한 살이었다. 비록 예전에 얻은 흉터는 여전히 있었더래도.
꽉.
“……?”
정정하겠다. 흉터뿐 아니라 그녀의 뱃가죽 면적보다 작은 거북이도 있었다.
지느러미라 해야 할지 물갈퀴라 해야 할지. 사람으로 따지면 팔다리일 부위로 사람 살갗에 찰싹 붙어 있는 거북이였다.
“뭐야, 이건?”
거북이가 이런 것도 가능하던가? 그보다 품속에는 대체 언제 들어온 거지?
그녀는 거북이를 들어 올리며 의아함을 표출했다. 곧 호응해 줄 누군가를 그리며 한 행위─다소 무의식적이었더래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만들었던 거짓은 그녀가 인정한 순간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혹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상실한 태양이 그리워 쥐고 있던 모닥불은 더 이상 없다.
베르세르크는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비참해졌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유도 모른 채 살아남아 느끼는 비참함이었다.
“…슬프군.”
이럴 바에야 그곳에서 죽었으면 좀 나았을까.
태양도 뜨지 않는 곳에서 스러진 그녀의 자매가 그러하듯, 그녀 또한 유해조차 수습되지 않는 처참한 끝을 맞이했다면 차라리 좋았을까.
“시작은 달라도 끝은 닮고자 했는데.”
그 어린 날에 정한 애도의 방식 그대로 죽어 버렸다면, 분명 미련마저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것마저 불가능했나.”
그녀는 파닥거리는 거북이를 바닥에 내려 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려 둔 탓에 뒤집힌 채로 바닥에 닿은 녀석이 버둥거리며 팔다리를 휘적거렸다.
그것이 조금은 가여운가 하여, 베르세르크는 그것의 등껍질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반동으로 뒤집어진 거북이가 엉금엉금 땅을 기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흙이 거북이의 물갈퀴에 밀리며 약간씩 자국을 남겼다.
“깨셨습니까?”
“……?”
그걸 구경하길 잠시. 몇 미터 밖에서 누군가의 상처를 봐주던 이가 입을 열었다.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남성이었다.
“깨셨으면 아크메이지님을 찾아가세요. 전 전했습니다.”
남성의 태도 또한 비슷했다. 인상만큼 뾰족하다.
그게 본성인지는 글쎄. 그것보단 여유가 부족해서 성마르게 된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선생님! 붕대가 다 떨어졌습니다!”
“아까 천 삶았잖아요! 그거 찢어서 쓰세요!”
“그것도 다 썼습니다!”
“미치겠네!”
“의무병, 다리 개방 골절 환자!!”
주변만 봐도 그렇다.
베르세르크는 사방에 우글우글 놓인 환자들과 계속해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며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이들을 힐끗 보았다.
의도는 악마기사나 어린 사냥꾼, 붉은 머리 사제를 찾고자 함이었으나, 그보단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예컨대 돌아다니는 의무병은 제법 많지만, 그들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의무병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다는 것 따위가.
“의무병?! 의무병?! 손 남는 사람 없어!?”
와중에 막 도착한 환자를 든 이가 외쳤다. 그에 반응한 건 베르세르크에게 말 걸었던 남성이었다.
“울고 싶다, 진짜…….” 한숨도 돌리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치료하게 된 그는 대단히 고단해 보인다.
“이쪽… 이쪽입니다!”
“다리 개방 골절! 들었지?!”
“예……!”
남성은 비좁은 곳에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해 환자를 눕힌 후, 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심부름을 하던 소녀─손이 부족해서 동원한 것 같다─에게 외쳤다.
“여기 진통제! 그리고 지혈에 쓸 붕대를, 붕대…….”
“그, 방금 진통제가 다 떨어져서 드릴 게…….”
“뭐?”
“저도 받으러 갔는데 진통제가 더는 없대요.”
그러나 상황은 악화일로만 걷는 듯하다. 진통제와 붕대는 치료, 그것도 외상 치료의 기본 중 기본인데 그 두 가지가 다 떨어져서야.
하다못해 진통제는 환자가 좀 더 참는 것으로 덜어 내도 되지만, 붕대는 없으면 출혈 환자를 다 버리는 셈 쳐야 한다.
전사로서 치료에 대한 기본 지식은 어느 정도 탑재하고 있던 베르세르크는 혀를 찼다.
“사제들은, 사제들은? 거기도 남는 인력 없대? 출혈이라도 잡아야 하는데…….”
“물어보고 올게요. 하지만 아마…….”
“그래, 될 리가 없지…….”
거기에 신전 사람들은 왜 안 보이나 했더니만. 여기서 안 보일 뿐, 거기도 이미 일은 하고 있나 보다. 하물며 그쪽도 여유가 없긴 매한가지인 듯하고.
“붕대, 남는 붕대라도…….”
하기야 신성력으로 사람의 목숨을 붙잡을 수 있는 만큼, 중상자 중에서도 금명간에 죽을 만한 이들을 도맡는 경향이 있는 게 신전이다.
하니 그런 점만 고려하면 어쩌면 그쪽이 여기보다 더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여긴 그래도 경상자나 죽을 위험이 덜한 중상자들뿐인데, 거긴 손이 모자라는 즉시 사람이 죽어 나갈 테니까.
하다못해 베르세르크가 아는 붉은 머리 사제가 있다면 상황이 좀 나을 수도 있겠으나… 과연 용사가 남을 치료할 여건이긴 할까?
그녀가 기억하는 도시의 싸움은 결코 뒤를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뀌엑.
문득, 거북이가 이상하게 울었다. 그와 동시에 베르세르크를 의아하게 만들 의문도 떠올랐다.
맞아. 뒤를 생각할 수 없는 싸움이었지. 그런데 그녀 자신은 왜 이렇게나 멀쩡한 상태일까? 살아 있는 건 둘째 치더라도, 부상은 좀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그 어린 사제가 아직까지도 깨어 있어, 같이 다녔던 동료랍시고 특별 대우─치료─라도 해 줬나?
아니, 그 이전에 거북이 등딱지에서 그녀를 데려온 건 대체 누구지? 용사가 했다고 하기엔 그 어린 사제는 판데모니엄 뭐시기만으로도 벅찼을 것 같은데… 시간을 맞추는 것도 그렇고.
툭.
그때 베르세르크의 손에 미적지근한 온기가 닿았다. 엉금엉금 긴 거북이가 그녀의 손등 위에 올라온 바람에 느껴진 온기였다.
“뭐냐.”
가라. 그녀는 거북이를 툭 굴렸다. 꽉. 뒤집어진 거북이가 버둥거리더니 이번엔 제 힘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다시 엉금엉금 그녀에게로 기어 왔다.
그녀를 어미라고 인식하는가 싶었다.
“…나, 참.”
작은 거북이가 이리 아둥바둥 달라붙을 일인가. 그녀는 이걸 버리고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챙기기로 했다.
암, 그녀는 약한 걸 싫어할 뿐이지, 어린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살기 위해 악바리 근성을 발휘하고 있는 어린 것이라면 더 그랬다.
앞으로 계속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어도, 바다에 놓아줄 때까지 챙겨 줄 의향은 있다.
“잘 붙어 있어라. 떨어지면 버리고 간다.”
그녀는 넓은 어깨에 거북이를 놓은 후, 몸을 일으켰다. 찾고자 했던 이들도 안 보이겠다, 대현자가 불렀다던 언질도 있겠다. 슬슬 떠나고자 함이었다.
다만 그렇게 몸을 세우자, 아까 헤쳐 놓은 옷이 허리춤에서 팔락거렸다. 제법 거슬렸다. 그렇다고 다시 입기엔 너무 넝마였고.
“흠.”
어차피 붕대로도 못 써먹을 만큼 더러우니 찢어도 상관없겠지. 그녀는 그런 판단 끝에 그것을 찢어 내듯 벗었다.
바닥에 내버려진 옷이 그녀의 가죽신에 짓이겨졌다.
뀍.
옷과 함께 날아갈 뻔했던 거북이가 항의하듯 울었다.
“거북이는 다 너처럼 우는 거냐?”
꾸엑?
그녀는 아크메이지를 찾기 전, 번잡한 치료소부터 벗어났다. 암, 대현자의 위치를 물어보기엔 치료소는 너무 바빴다. 치료소 바깥의 상황을 알 것 같지도 않았고.
꿰엑.
“난리도 아니군…….”
그렇지만 치료소 주변이라고 뭔가 나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베르세르크는 패잔병처럼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며 숨을 길게 뱉었다.
정신 차리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망연자실한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이들이 더 많았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광경이었다.
“병사들은 대체 뭘 한 거야. 왜 악마가 도시에서 나타난 거냐고…….”
“시바알… 이게 다 귀족들 때문이야. 귀족들이랑 신전이 짜고 쳐서 수호신을 죽이는 바람에 벌받은 거라고…….”
거기에 저딴 소리나 지껄이고 있어서야.
“나약하긴.”
도시를 버리고 피난해야 했다는 충격이야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서?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그나마 안전히 대피했을 주제에 도시 잃은 충격 하나 못 이겨 남이나 원망하는 꼴이라니, 괜히 기가 찬다. 저들을 위해 죽은 병사들이 아깝다.
그녀는 구해 줬더니 감사는커녕 보따리 잃어버렸다고 망연자실해하는 자들을 경멸하며 마저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병사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놔, 놔……!”
“팔 부러트리기 전에 멈춰!”
가까이 다가가니 병사들이 하는 일이 보였다. 그들은 난동 부리던 이를 제압하는 중이었다.
“이봐, 병사.”
“안 그래도 X같은 상황인데─ 뭐야?”
“아크메이지는 어디 있지?”
“이봐, 지금 우리 하는 거 안 보… 누군데 당신?”
신경질적으로 난동자의 팔을 꺾으며 고개를 돌리던 병사가 멈칫거렸다. 베르세르크의 살벌한 근육과 인상에 말을 고친 것이 딱 보였다.
여전히 얼굴엔 모남이 남아 있지만서도.
“아크메이지에게 고용됐던 모험가다. 오라는 지시를 하달받았는데, 위치를 몰라서 묻고자 한다.”
“…정말 모험가라면 패부터─”
“어! 당신!”
그러던 차,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버럭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 있었군요!”
“날 아나?”
“성벽에서 세이렌과 싸웠잖아요.”
아, 그걸 본 병사인가. 그녀는 목을 긁었다. 안타깝지만 그녀는 저 병사를 본 기억이 없다.
“모험가 패는 잃어버렸다.”
더불어 모험가 패도 없었다. 전투 중에 상실한 건 확실한데─아까 옷 버릴 때 못 봤으니까─어디서 잃어 먹었는지는 글쎄. 돌아다닌 전장만 해도 넓게 잡아 세 종류인지라 가늠도 안 된다.
“그럼 말해 줄 수 없어. 당신이 누군 줄 알고 그런 걸 함부로…….”
한데 하필 지금 걸린 병사가 좀 빡빡한 이인가 보다. 베르세르크는 귀찮게 됐다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크메이지님이라면 저쪽으로 가면 되실 겁니다. 아까 봤습니다.”
“야!”
“걱정하는 바는 알겠는데, 대충 해 둬. 성벽에서 싸운 사람이 병사 아니면 모험가지 누구겠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 입으로 대현자에게 고용됐다고 하잖아! 그걸 믿냐?”
“그건 그런데… 세이렌 수십 마리를 사냥한 실력자면 대현자에게 고용될 만하지 않나? 난 괜찮다고 본다.”
“아오…….”
그렇지만 행운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손을 들어 주었다. 베르세르크는 기억도 안 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된 병사를 긍정적으로 판단하며, 그 병사가 알려 준 방향으로 다시 이동했다.
다행스럽게도 마법사 무리는 그곳에 있었다.
신전 사람들과 함께였다.
“남는 손 없어?!”
“사제님!”
“…그 사람은 포기해! 이 상황에선 못 살려!”
아, 그래. 마법사들도 치료 마법이 가능했지. 그녀는 신전 사람들과 뒤섞여 있는 마법사들을 보며─손에서 금빛을 흘리면 사제, 희푸른 빛을 흘리면 마법사였다─아까 치료소보다 더한 상황을 잠시 지켜보았다.
“사제님! 서쪽으로 대피한 사람들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데, 생존자들 말로는 그쪽에 부상자가……!”
“…이쪽도 손이 부족해! 거기 살아남은 사제는 없다고 하던가?!”
“시민들을 악마들로부터 보호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살해당하셨다고 합니다……. 해서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빌어먹을!”
아크메이지는 그중 가장 상처가 심한 이들이 모인 곳에 있었다.
신성력보다 효과가 덜할지언정 여러 사람을 동시에 치료하는 그녀는 벌써 다섯 명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중이다.
“왔나? 그럼 저쪽부터…….”
“날 찾았다고 들었다.”
“음? 아, 아. 자네였군.”
베르세르크는 아크메이지를 방해하지 않는 선까지 접근한 후, 눈을 또다시 굴렸다.
혹시라도 용사가 움직이고 있나 찾기 위함이었는데, 아쉽게도 어린 사제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자네의 활약에 먼저 감사를 표하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피해는 더 컸을 거야. 정말 고맙네.”
“난 감사 인사를 듣고자 그 자리에 남았던 게 아니다. 그러니 필요 없다.”
“그런가.”
“그보다, 상황은?”
“…어디까지 알고 있나?”
“거의 없다. 거북이 등껍질 속에 머맨 둥지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 싸운 게 내 마지막 기억이다.”
데스브링거나 악마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부상자 대열에는 없나 보다.
“더불어 그때의 나는 제때 지원이 오더라도 살 가망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단 것 역시 기억한다.”
“…그렇군.”
“해서 묻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은 건가?”
하면 그 셋은 대체 어디 있을까. 설마 그녀조차 합류하지 못한 사망자 대열에 이름을 올린 걸까? 설마?
“…나도 잘 모르네. 다만… 데스브링거의 증언에 따르면 아마… 악마가 자넬 구했을 걸세.”
“…악마가?”
베르세르크는 유일하게 해답을 가진 이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죽은 것 같지는 않다. 죽었다면 그녀의 표정은 오롯이 슬픔으로 가득 찼을 테니.
하지만…….
“혹은 악마기사가.”
세상엔 죽음보다 더 비참한 삶도 있다.
베르세르크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직감하며 자리에 앉았다.
꾸악.
어깨의 거북이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