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28화 (228/389)

228화 괴로움으로 가득해 (1)

“죽여야 합니다!”

데스브링거는 그 외침을 들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토옥. 간이로 만든 쇠창살이 손에 닿았다. 일손이 부족한 와중에도 장인들을 시켜 최우선으로 만든 쇠창살이다.

“이 순간에도 악마가 힘을 회복하고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지금 당장 죽여야……!”

“어떻게? 어떻게 죽일 것입니까? 용사도 쓰러져 깨어날 기미가 없고, 마법사들도 대부분 기절한 상태인 지금, 어떻게?”

“그건 어떻게든……!”

또한 그 안에는 쇠사슬과 밧줄을 이용해 단단히 구속된 자가 고요히 숨 쉬고 있으니.

“하. 좋습니다. 어떻게든 한다 치죠. 그런데 그러다 모험가가 죽기는커녕 악마만 깨어나 버리면?”

“그건……!”

“그땐 어쩌실 겁니까? 악마가 그때 한 말이 힘을 회복할 시간을 벌고자 거짓을 속삭인 게 아니라, 전부 진실 나열이었다면, 그땐 어쩔 겁니까!”

데스브링거는 무릎을 꿇어 상대와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시야가 진짜로 얽히는 일은 없었다.

상대는 깨어나지도 않았고, 깨어났더라도 축성된 천이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이상 사위를 볼 수 없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주교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목이 반쯤 베여도 수 분 만에 회복해 낸 그 능력을! 그걸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다고 악마를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성주님도 보지 않았습니까! 그게 다시 깨어나기라도 하면……!”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전부 죽겠지요. 예. 압니다. 하나 악마가 깨어나는 조건이 저 모험가를 죽이려 드는 행위란 것도 알죠. 주교님은 진정 베뮈르헨의 시민들이 다 죽는 꼴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저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닙니다, 성주님!”

“그런 의도가 아니긴! 지금 당신이 한 말이 베뮈르헨 시민 전체를 확률 낮은 도박에 올리자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러나 데스브링거는 달랐다.

“주교님,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는 아십니까?”

“…저도 눈과 귀가 있습니다. 성주님께서 얼마나 노력하고 계신지, 그럼에도 닿지 않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설마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마안? 정말 알고 계신 게 맞습니까? 정말 알고 계시다면, 주교님께서 하실 말씀은 ‘하지만’ 따위가 아니어야 합니다!”

“성주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보다 신속한 협조와 모두의 단결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정말 위협하는 건 저이가 품고 있는 대악마가 아니라 부족한 식량과 의약품이란 말입니다, 주교님!!”

그는 축성된 천에 감긴 얼굴을 기억했다. 그 기억으로 말미암아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 내는 것도 가능했다.

“성주님, 저도 그건 잘 알지만─”

“됐습니다! 그딴 말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이 자리에서 베뮈르헨의 성주로서의 제 입장을 확실히 해 두죠.”

그래, 그는 저 아래에 어떤 얼굴이 있는지 알았다.

“저는 절대로! 절대로 저자에게 손을 대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베뮈르헨의 시민들이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설사 신께서 내 행위를 반대할지라도 건드리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성주님!!”

…그 얼굴이 어떻게 스스로의 목을 그었는지도 알았다.

데스브링거의 얼굴이 철창에 닿았다. 울고 싶었다.

“절 이단으로 치부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나 그것은 모든 대피가 끝나고, 시민들이 안도의 숨을 돌릴 수 있는 순간 직후여야 할 겁니다.”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더불어, 베뮈르헨 마탑 지부도 저와 동일한 태도를 취하기로 했으니, 그들을 찾아가 서로 시간 낭비 하는 일은 피하길 바랍니다.”

그사이 뒤에서 오가던 고함이 잦아들었다. 이어 철걱철걱하는 쇳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그건 성주와 그의 기사들의 것임을 곧내 알 수 있다.

“프란츠.”

“예.”

“병사 다섯을 붙여 주지. 감옥 앞을 지키게.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도록!”

“예!”

“또한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전부 베어 버리게. 이후에 벌어질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질 것이네.”

“걱정 마십시오.”

성주는 주변의 모두보고 들으라는 양 크게 외쳤고, 기사 하나와 병사 다섯 명은 감옥을 둘러싸듯 서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감옥 앞에 앉아 있던 데스브링거는 몇 번 눈총을 받았다. 넌 뭔데 여기 있느냐는 그런 눈총이다.

그러나 끝끝내 그는 쫓겨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성주가 그의 얼굴을 알았고, 2차로 성주가 손짓을 하며 주변 이들에게 내버려 두란 신호를 주어서였다.

데스브링거는 그 사소한 배려가 조금 감사했다. 악마기사를 비호해 준다는 점에서, 조금 더.

“그럼 나는 이만 가 보지. 서쪽은 접촉도 안 되고 있고, 혼란을 틈타 도망친 범죄자 새끼들도 곳곳에서 지랄 중인 상황인데 여기에까지 병사를 낭비해야 한다니 정말 화병 나시겠군.”

“…너무 화내진 마십시오, 성주님. 신전도 만약을 걱정해서 저러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아네. 저들의 걱정도 틀린 건 아니라는 거.”

하지만 그 호감이 어느 이상을 넘기진 못했다.

“사실 나도 내가 잘하는 건지 의문이야. 만약 이 광경이야말로 악마가 바란 모습이라면… 그땐 공격할 기회도 없어질 테니까.”

암, 그가 보기에 악마기사를 비호하는 성주의 태도는 결국 그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게 없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만약을 걱정하지 않을 수도 없지. 대현자께서 한 말도 있고.”

“성주님…….”

“후… 부디 저 모험가가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만약 폭주하던 악마기사가, 아니 악마기사의 육신을 차지한 악마가 시민들을 건드렸다면… 그도 절대 저런 반응은 안 보였겠지. 주교 앞에선 쩌렁쩌렁 외쳤으면서 지금은 회의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아무튼, 부탁하네. 프란츠.”

“예.”

그래도 호의는 호의다. 데스브링거는 그의 생각이 끝까지 바뀌지 않기를 바라며, 철창에 닿았던 이마를 떼었다.

“…기사님. 정말로 이게 맞는 겁니까? 악마를… 악마를 지키는 게 정말 맞습니까?”

“조용. 우리가 할 일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지, 그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 마음에 걸린다면, 생각을 바꿔라.”

“……?”

“명령에 대한 네 의문은 결국 저 안의 존재를 향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 터. 하면 그 두려운 것을 다시 마주하기 싫어서라도 너는 이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

문득, 근처에 서 있던 기사와 병사의 담화가 그의 뇌리를 찔렀다.

“저 자를 죽이려 드는 행위야말로, 그 속의 악한 것을 일깨우는 행위가 되니까.”

『너희가 이놈의 심장에 칼날을 박으려는 순간, 내가 튀어나오리란 사실 통보.』

지난 새벽, 몇 번이고 떠올렸던 광경이 머릿속을 다시금 복잡하게 만들었다.

『물론 내 입장에선 네놈들이 그래 주는 게 더 좋긴 해. 그러면 내기에선 내가 이기게 될 테고, 이 그릇은 내 차지가 될 테니까.』

악마기사의 얼굴을 한 악마는 여러모로 예상 외의 행실을 보였다. ‘분노’라 자신을 소개한 주제에 여유에 젖어 나른한 음성부터가 그랬다.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목소리나 말투만 따지면 그 악마보단 평상시의 악마기사가 분노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래. 이렇게 경고를 해 주는 것도 내기의 조건이니까.』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를 것으로 사람들을 혼란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걸 어떻게 믿지?』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아까 말했잖아, 나도 너희가 안 믿고 공격해 주는 쪽이 좋다고. 암, 다 죽여 버리는 것만큼 편한 것도 없잖아?』

녀석은 자신이 한 말이 인간을 어떻게 분열시킬지 전부 아는 눈치였다. 자신의 말을 믿는 쪽과 믿지 않는 쪽… 그 둘로 나뉘어 이후 지지부진하게 싸울 걸 전부 알고 의도적으로 내질렀단 말이다.

『사실, 내기만 아니었어도 진즉 너흴 다 죽여 치워 버렸을 텐데…….』

그건 솔직히 말해서 ‘분노’라는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거짓, 기만, 사기, 농락, 선동. 뭐 그딴 것에 더 가깝지.

『봐… 그레트헨과의 내기가 날 막아서는 꼴을…….』

그렇지만 그걸 안다고 그 술수에 놀아나지 않을 자가 과연 있을까?

악마가 성주의 목을 붙잡으려 든 순간, 대응은커녕 반응조차 못 한 인간들이?

…악마가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면, 혹은 그것이 뇌까린 말이 진실이란 가정하에 그레트헨과의 내기가 악마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눈앞에서 성주가 죽는 꼴을 실시간으로 관람했을 자들이?

『정말이지,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아? 난 그저 너흴 다 죽이고 편하게 지내고 싶을 뿐인데… 왜 그레첸은 날 막아서는 걸까?』

‘내기’란 것은 육안으로 보이는 게 아니었다. 하나 성주의 목을 쥐어뜯으려던 악마의 손이 종이 한 장의 간격을 두고 파들파들 떨리며 더는 전진하지 못하는 꼴은 모두가 보았다.

그것이 가증스럽게 동정을 구하다 말고 키득키득 웃는 모습도 매한가지였다.

그것은 장갑에 가려지지 않은 손등에 핏줄이 불거지도록 힘을 쓰다가, 끝내 거둬들이며 눈꼬리를 휘었다.

『뭐, 됐어. 그레트헨은 불쌍할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지만… 너흰 그러지 않을 거잖아.』

정말이지, 끝까지 교활한 악마였다.

『그렇지? 그럴 거지? 그레트헨의 헌신도, 희생도. 전부 무시한 채 처형해 줄 거지? 내가, 내가 내기에서 이기게 해 줄 거지?』

자신의 위험성을 선전하되 그것에 정말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 긴가민가하게 만들며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구도를 짜 버릴 줄 아는, 실로 교활한 악마.

『너흴 믿어. 그러니 가능하면 근 시일 내에 부탁해.』

심지어는, 그래.

그것은 꺽꺽대며 소리 없이 웃다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성주인가. 용사는 살았나?』

『……?』

『아직 살아 있다면… 그녀에게 전해라.』

그것으로 새로이 튀어나온 건, 현시점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으니, 확실한 처형을 준비하라고.』

정말이지, 인간을 괴롭게 만드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아는 악마였다.

『곧 보게 되겠지만… 악마를 죽이긴 쉽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보다 확실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반드시 전해라.』

그래, 너무나도 잘 알아.

『…미안하다.』

빌어먹기 짝이 없게도.

서걱!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에 데스브링거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아, 미안.”

이어지는 사과는 목의 절반을 베고 간 단검의 날과 솟구치던 핏줄기를 시야에 불러온다.

잔상처럼 남은 기억이 한순간 데스브링거를 겁에 질리도록 했다.

“미친, 제대로 자르라고.”

“미안하다고 했잖아.”

“미안하면 네가 작은 거 먹든가!”

“뭐 이 자식아?”

하나 이번에 들린 소리의 원인은 그런 게 아니었다. 교대할 인원조차 부족해,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해야만 했던 병사들의 식기가 범인이었을 뿐이지.

“둘 다 그만. 이마저도 못 받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그걸 가지고 다투고 싶나.”

“죄, 죄송합니다.”

데스브링거는 그 모습을 보며 철렁였던 가슴을 다독였다. 이 시간까지 무언가 먹지도 못한 위장이 허기를 호소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깟 먹을 거 하나 구하자고 이곳을 떠나긴 싫었다.

샌님과 투사 나리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아크메이지도 사람들을 살리느라 바쁜 지금, 악마기사의 곁을 지킬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저 사내가 깨어나, 또다시 스스로를 죽이려 들거든 그것을 말리려 들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대현자님.”

“수고가 많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일단 이것.”

한데 그렇게 한참을 웅크린 채로 있었을까. 새로운 기척이 더해졌다. 목소리와 기사의 부름으로 보아 대현자, 청산호 같았다.

“전해 달라더군.”

“그러시군요.”

“두 번째로는 성주가 상태를 봐 달라고 부탁해서고.”

“호위하겠습니다.”

“마음대로.”

그러고 보니 청산호는 사람의 본질을 본다고 했던가. 그 본질이라는 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저 사람이 보는 결과가 악마기사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악마기사를…….

“들지.”

상념은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대현자의 기척이 데스브링거의 바로 옆에서 멈춘 까닭이다.

덩달아 고소한 냄새가 풍겨 왔다. 마치… 음식 냄새 같았……?

“손 떨어지겠다. 빨리 받아라.”

“……?”

상황 파악을 위해 고개를 들자마자 데스브링거는 청산호에게서 무언가를 건네받고 말았다.

반쯤은 떠밀린 건네받음이었다.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얼굴 쪽으로 그릇이 밀려 들어왔으니까.

“감사합니다요……?”

“쯧.”

데스브링거는 나무 그릇─급하게 깎아 낸 듯 마감도 제대로 안 되어있는─에 담긴 수프를 보고 대현자를 보았다.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그는 타인의 등에 업혀 있는 상태다.

조금 떨떠름해졌다.

고맙긴 한데… 대현자가 왜?

“네놈 보호자가 부탁한 것이니 의아하단 눈은 치워. 겸사겸사 챙겨 온 것뿐이니까.”

다행히 데스브링거의 의아함은 금방 풀렸다.

하긴, 성주가 상태를 봐 달래서 왔댔지. 그리고 성주가 미친 게 아니고서야 상태를 봐 달라는 대상은 악마기사일 테니… 말 그대로 겸사겸사 받아 온 모양이다. 보호자는… 아마 아크메이지일 것 같고.

“…장관이군.”

별개로 데스브링거는 대현자가 내뱉은 말을 듣자마자 반감이 들었다.

그놈의 본질이 정말 가늠도 안 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현자가 악마기사의 본질에서 좋은 걸 볼 것 같진 않거니와─악마가 있으니까─악마를 품고 있는 사람에게 ‘장관이군’ 따위의 말을 하는 건 솔직히 놀리는 것으로밖에 안 들리는 까닭이었다.

“인간이란 종에게 환멸 난 지는 참으로 오래됐는데도…….”

하지만 데스브링거가 욱해서 한마디 하기 전, 청산호가 먼저 말을 정리했다.

“처음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돌아보고 싶어졌어.”

잘은 모르지만… 그건 신전과 다르게 악마기사를 긍정하는 말 같았다.

그러니까, 단순히 악마기사를 살려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넘어서 악마기사란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주는 듯한, 그런 말 같았단 말이다.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었군.”

하나 그렇기에 서럽다.

대현자가 저런 찬사를 내민다 해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 태반은 악마기사와 악마를 동치시킬 것이 분명했으므로.

당신의 헌신은 보답받기는커녕 알아봐 주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 이 세상이었으므로.

당신은 그조차 기꺼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으므로…….

그는 서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