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세상은 (12)
[너.]
마몬은 증발하듯 사라진 도시의 절반을 앞에 둔 채 입을 떼었다.
[소원 계약을 했구나.]
인간을 몰살하기 위해 뿌렸던 용암은 더 이상 없다. 그것 또한 이미 증발해 버렸다.
[인간과 소원 계약을 해 버렸어.]
절반에 해당하는 육신도 마찬가지다. 마몬은 사라진 자신의 절반을 손으로 감싼 채, 손톱을 세웠다.
관장하는 영역이 분노도 아닐진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인간과 악마의 계약은 대개 대여 계약이다.
그리고 대여 계약이란, 계약자가 대가를 지불하면 악마는 받은 대가만큼의 힘을 계약자에게 빌려주는 형식을 말한다.
받은 대가로 본인을 강화하든 다른 악마와 거래를 하든, 일단 계약자에겐 힘을 빌려줘야 한단 말이다.
하나 악마 입장에서 보면 대여 계약은, 자신이 움직일 귀찮음도 덜고 계약자가 죽어도 빌려준 힘만 상실할 뿐,─운 좋으면 회수도 가능하다─악마 본인에겐 별 손해가 없다.
반면 소원 계약은?
소원 계약은 좀 다르다. 바쳐진 제물은 반드시 악마에게 힘의 형태로 주어지며, 악마는 그걸 받은 대가로 계약자의 소원을 들어줘야만 한다.
힘을 빌려주지 않았으니 계약자가 죽어도 힘을 상실할 일은 없겠지만, 그 대신 본인이 직접 움직일 걸 감수해야 한단 이야기다.
또한 소원 계약은 계약자가 죽더라도 이행해야만 한다. 소원의 허점이 많다면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허점이 없다면 악마에겐 손해만 가득한 계약이 될 수 있다.
소원이 어떠한 형식인가에 따라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대체 누구와? 난 네게서 계약의 흔적을 찾지 못했는…….]
그러나 그런 소원 계약에도 이점은 있다. 소원 계약에 한해, 그것은 제물을 바치는 족족 곧장 오래된 마법으로부터 힘을 받을 수 있다.
처음 한 번만 가능한 게 아니라, 계약자와 악마의 상호 협의가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매번.
메피스토가 방금 모든 걸 생략하고 곧장 지극한 이치에게서 힘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설마?]
[눈치채는 게 늦네.]
하나 저 메피스토 놈이 누구와 계약을 했으며, 그 계약자는 대체 무엇을 소원으로 내걸었단 말인가.
마몬은 그것을 추측하던 도중 진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네놈이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마저 그릇에 집착할 리 없는데도……!]
싸움 시작 전, 사탄이나 그에게 영혼이 사로잡힐 걸 감수하면서까지 메피스토가 그릇을 포기하지 않는 것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컨대… 인간의 영혼이 메피스토의 영혼을 붙잡으려 들어서 그릇조차 못 버리는 게 아닌가라고.
그러나… 만약 인간의 영혼과 메피스토가 소원 계약을 했다면? 인간 쪽에서 어떤 순간에도 메피스토가 그릇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을 걸 소원으로 내걸었다면 어떨까.
자신이 잠식될 걸 각오하면서까지, 어떤 순간에도 그릇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면…….
[네 계약자가, 너와 공멸하기라도 바랐나 보지……?]
메피스토가 그릇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그릇이 깨져 버리면 메피스토도 같이 죽는다. 악마를 증오하던 그릇의 성정을 떠올려 보면, 그건 어쩌면 가능성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제, 그렇게 가설을 세우면 방금 일이 설명되지 않지만 말이다.
암, 계약자가 정말로 메피스토와 공멸하길 바랐다면 방금 힘을 줄 이유가 뭐가 있었겠는가.
[맞아. 그래서 꽤나 골칫거리야.]
[…이런, 네가 순순히 인정하니까 갑자기 아닌 것 같아지는데.]
[신뢰가 너무 없네. 서럽게.]
…아니다. 이유는 있을지도 모른다.
마몬은 아까 메피스토가 쓸데없이 용사를 치운 걸 기억해 냈다.
만약 메피스토의 계약자가 인간을 지키고자 함이라면, 악마와의 공멸보다 누군가 살리는 것을 우선했다면. 방금 같은 모순도 설명이 된다.
메피스토는 확실하게 그릇의 본주인과 계약을 맺었다. 계약의 조건은 아직 불확실하나, 분명.
[네가 이렇게 계속 뭘 숨기고 있는데… 어떻게 믿겠어!]
마몬은 남은 마기를 끌어모아 방어를 단단히 굳혔다.
계약은 대체 어떻게 가린 거지? 미처 해결되지 않는 물음은 그 저편으로 내던졌다. 그건 나중에 해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쾅! 쾅! 지금 시급한 건 그의 재생을 노리고 달려드는 메피스토 견제다.
[빌어먹을!]
메피스토펠레스와 다르게 그는 재생력이 제법 취약한 편이다. 용암을 깔아 두어 몸을 숨기고 거리를 내주지 않은 채 원거리공 격으로 깔짝거리기만 한 것엔 다 이유가 있단 소리다.
그러나 반신이 날아가며 그 균형이 위태로워졌다. 방어에 전념하자니 몸이 무너져 내리고, 회복에 전념하자니 메피스토의 공격이 너무 매섭다.
마몬은 그것에 울분이 차올랐다. 안심했던 부분에 계속해서 예상치도 못한 변수들이 파고들며 벌어진 사태가 너무 뼈아팠다.
[왜 그래, 발악을 즐겁게 지켜봐 준다더니! 그 사람 어디 갔어?! 어?!]
[망할!]
솟구치는 용암이 베였다. 그 사이로 파고든 검격은 어느 순간 폭발해, 그가 두른 방어막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구멍이 조금이라도 난다 싶으면, 침처럼 뾰족하게 라텔이 치고 들어왔다. 그것을 다시 밀어내는 작업만 해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하나 더욱 분한 것은 이 모든 순간, 메피스토가 사용하는 마기는 극소량에 불과하단 것이다. 승기를 잡은 놈은 회복되는 양만큼만 소모해 가며 그를 몰아붙였다.
방어에 급급하여 소모량이 극심해진 자신과 다르게.
이대로 가면 진다. 마몬은 그것을 깨달았다.
[왕! 뭐라도 해 봐!]
하다못해 지켜보고 있을 사탄이라도 채근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미 내린 가호만으로도 충분히 무리가 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는 간다.
[젠장!]
이해는 되지만, 원망은 든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여기서 죽기 싫어.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 나는, 나는 세상 모든 걸 손에 넣어야만 한다고.
[너, 너! 날 죽이면 넌 영원히 혼자─!]
[질 것 같으니까, 협박하고 싶어졌어?]
마몬은 다급한 마음으로 거래를 시도해 봤다. 이신에겐 메피스토도 똑같은 침략자. 그런 마당에 아군이 될 수도 있는 지옥까지 등져서야 메피스토도 손해일 거란 게 요지였다.
[그런데 어째.]
그렇지만 그게 통할 리가 있나.
[적뿐인 세상은 내게 익숙한 거라서.]
상대는 지옥조차 멸망시키고 싶어했던 분노였는데.
콰직!
라텔이 마몬의 모든 방어를 뚫고 기어이 몸에 틀어박혔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육신 또한 피해가 아예 없진 않았으나, 그는 녹아 버리는 살갗을 모조리 무시한 채 마몬과 시선만 마주해 왔다.
[슬슬 끝내자고.]
새빨간 빛 속 가로 동공이 그를 히죽 비웃었다.
이유 없이 재해처럼 찾아왔던 불행과 그로 인해 겪었던 모든 고초, 나약하기 짝이 없던 시절 감수해야만 했던 모든 치욕을 떠올린 메피스토펠레스가 그 모든 증오를 그대로 터트렸다.
.
.
.
팍!
지름 수십 미터의 구덩이 속에서 메피스토는 라텔을 뽑아 들었다. 남아 있는 마몬의 사체는 죄다 찢어지고 박살 나, 대부분이 파편의 형태다.
비록 이름과 가진 바 힘은 아직 흩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직 살아 있어.」
그사이 영혼 일부를 소모하며 지친 기색이 되어 버린 이가 건조히 속삭였다.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바싹 갈라진 와중에도 참으로 강단지다.
‘저것까지 죽이라고?’
「저걸 내버려 둔 채 돌아오면 네 목숨도 위험할 텐데.」
틀린 말은 아니지. 메피스토는 금세 수긍했다.
그러나 그대로 따라 주기엔… 조금 자존심이 상해서.
‘사체는 내 거야.’
대가 없이 일해 주긴 싫으니, 챙기는 건 있어야겠다. 그는 그렇게 말했고 계약자는 아무 말도 않았다. 무언의 허락이었다.
영혼이 줄어든 지금 메피스토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손해를 보는 건 자신임을 아나, 허락하지 않고선 움직이지 않을 자신임을 아니 기어이 양보한 것이다.
메피스토의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다.
[오래된 마법이여.]
물론 그러기 위해선 메피스토도 투자할 건 투자해야 했다.
그는 불꽃을 일으켜 간이 마법진을 그리고, 마기로 붙잡고 있던 마몬의 이름과 힘을 제물의 위치에 내걸었다.
어차피 내버려 두면 사제들에게 정화되거나 다른 악마들이 채 갈 것, 제물로 바치는 것엔 망설임이 없다.
[지극한 법칙이여.]
화륵, 화르륵. 사방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춤을 추며 그 대신 주문을 외웠다. 불꽃의 입 여러 개가 마법을 새길 때마다 짙고 짙던 밤이 더욱 새까매졌다.
[우주의 천칭이여.]
그리고 세상이 가장 어두워지는 시간. 천칭이 기울었다.
[마땅한 대가를.]
메피스토펠레스의 검이 또다시 움직였다.
──! 소리조차 잡아먹는 열기가 도시의 해안가 일대를 삭제시켰다. 그곳에 남은 건 의도적으로 힘을 약하게 적용한 거북이의 껍데기뿐이다.
물론 형태만 남았을 뿐, 속 알맹이는 폭삭 익었을 것이다. 꼴에 태곳적 짐승이라고 그 속에 숨었을 뱀만 간신히 명줄을 잇고 있겠지.
[흠. 이름까지 바칠 필욘 없었나? 잔량이 너무 남는군.]
이럴 거면 일시적으로 버프 걸리는 형식 말고 힘의 총량을 늘려 달라고 빌 걸 그랬나. 후자는 바로 힘이 들어오지 않아서 전자를 고른 거였는데.
그렇다고 제가 먹어 소화하자니 그럴 시간이 없고, 본질만 흐트러지는 꼴이라 그럴 가치도 없다. 애초에 계약자가 그걸 두고 볼 리도 없고.
결국 이게 최선이긴 했던 셈이다.
메피스토는 이 시간이 끝나면 증발해 버릴 힘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두 번째 일격을 착실히 날렸다. 날아간 불꽃이 거북이의 껍데기를 갉아먹듯 불태우고, 오롯이 하얀 뱀만을 남겼다.
[먹어.]
그다음은 정해져 있다. 앞으로 내던져진 라텔이 뻥튀기된 힘을 받아 몸집을 부풀렸다.
콱!
거대한 오소리가 뱀의 목을 물어뜯고, 그대로 삼켰다.
물론 그게 정말 소화하고자 먹는 건 아니다. 라텔은 생물이 아니라 정교한 장치에 불과하니까.
대신 라텔의 몸 안쪽, 세상 바깥과 이어진 틈이 억지로 벌어지며 그 거대한 것을 꾸역꾸역 넣었다. 이 또한 버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나중에 꺼낼 때가 조금 문제긴 하겠지만, 그때쯤에는 쓸모없는 몸뚱이는 죄다 녹고 핵만이 남아 압축되어 있을 테니 상관없겠지.
메피스토는 제가 얻은 것을 두고 흡족해하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슬슬 돌아와.」
문득, 그 모든 걸 지켜보던 계약자가 힘없이 마지막 조건을 들먹였다.
‘성질도 급하셔라. 내가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조금 정돈 괜찮잖아.’
그렇지만, 그가 들어줄 이유 있나? 메피스토는 이죽거리며 발에 힘을 주었다.
쿵. 가벼운 발돋움에 몸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아니다. 순간적으로 이동한 몸이 구덩이 바깥을 밟았다.
어깨에 걸친 두루마기가 망토처럼 펄럭였다.
「약속은…….」
‘특정 인물은 반드시 살릴 것. 생존이 확보되면 주도권을 다시 그레트헨에게 돌려줄 것. 추가로 인간들을 털끝도 건드리지 않을 것과 가능하면 지켜 낼 것 등이지.’
주도권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건 짜증나는 일이나, 발악도 못 하고 마몬에게 개죽음당하는 것보단 나았다. 그래서 받아들인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봐, 정말 생존이 확보됐나?’
그러나 바로 주도권을 돌려줄 이유 있나? 하물며 인간의 편을 들어 싸웠단들─속내가 어쨌든, 지켜 주긴 했잖은가?─악마로서 제대로 날뛴 지금?
메피스토는 알았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이 가져오는 두려움을.
그런 마당에 그레트헨이 다시 주도권을 잡는다고 해서 인간들이 이 육신을 살려 두려고 할까? 오히려 그레첸이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 즉 약해졌을 때 죽여 버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오래된 마법도 용인하고 있잖아. 이 몸뚱이의 안전은 아직이야.’
지옥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엄밀히 말하면 그는 한 번도 지옥을 아군이라 여긴 적 없으니, 적으로 돌렸단 말엔 어폐가 있겠지만─마몬을 죽인 이유가 뭔가. 생존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렇게 살린 몸뚱이가 인간에게 어이없이 죽는다? 그거야말로 재미없는 일이지.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런 위험 따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좀 더 확실한 보장이 필요했다.
보다 명백한 보증이.
「네놈…….」
‘걱정 마. 죽이진 않을 거니까.’
제 성격이라면 위험이 될 만한 걸 전부 몰살함으로써 예방하겠지만… 계약 자체에서 그게 막혔다. 그러니 다른 수를 쓸 수밖에.
그레트헨이 돌아오거든 나서서 죽여 달라고 할지도 모르니, 그 가능성까지 전부 차단할 거짓 수를.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인간들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가엾은 계약자가 긴장으로 바짝 굳은 게 느껴졌지만 그게 오히려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해야만, 그의 불행이 가려졌으므로.
“…온, 온다.”
다행히 인간들은 무턱대고 무기를 겨누지 않았다. 멍청한 이신의 따까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메피스토펠레스를 피해 모든 악마들이 도망가며 당장의 안전과 약간의 여유가 확보된 지금, 그것들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을지언정 악마랍시고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경계하는 눈으로,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메피스토를 제법 기껍게 했다. 암, 공포로 군림했을 때야말로 메피스토가 아는 세상은 그나마 평안해졌다.
[우두머리가 누구지?]
마음 같아선 이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데… 호구 같은 그레트헨이 그래 줄 리 없지.
망할 그레첸. 정말 상황을 쉽게 만들어 주질 않는군.
“성주님!”
얼마 안 가, 수많은 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누군가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레첸의 시야를 통해 본 기억이 있는 자였다. 아마 이 도시(였던 것)의 주인이었나?
용사가 나올 거라 생각했건만, 의외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기척을 세 보면 그것은 아직도 기절해 있는 듯하니까.
“…그대는, 누구지?”
[몰라서 묻는 건가? 저 이신의 종들이 이미 다 말했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타협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키득거리며 라텔의 형태를 바꾸었다. 의자가 된 라텔이 들썩거리는 병사들을 비웃으며 그의 몸을 받쳤다.
[나는 분노, 네놈들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 하는 대악마 중 하나다.]
“…….”
[동시에 사탄의 명령을 들을 필요 없는 존재기도 하지.]
“…그건 방금 일을 설명하는 것이오?”
[설명? 아니지, 아니지.]
메피스토펠레스는 천천히 다리를 교차했다. 꼬인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여유는 인간에게 닿았을 때 하나의 압박감이 된다.
[이건 통보야.]
산양 뼈 사이의 붉은 눈이 빙글 웃었다.
[난 겨우 얻은 그릇을 잃고 싶지 않거든.]
“…그건, 무슨 말씀이온지.”
[예컨대 이런 거지.]
동시에 파각, 하는 소리와 함께 뼈에 금이 갔다. 바닥에 질질 끌리도록 어지러이 늘어져 있던 흰머리는 위로, 위로 줄어들며 밤을 머금기 시작한다. 재와 밤이 공존하는 머리였다.
우드득. 동시에 까만 마기와 라텔에 뒤덮인 몸은 보다 더 두꺼워지고, 옷의 형태도 익숙한 것으로 바꾸었으니.
“…나리!”
“악마기사……!”
[너희가 이놈의 심장에 칼날을 박으려는 순간, 내가 튀어나오리란 사실 통보.]
새까만 마기가 얼굴을 마지막으로 훑고 지나간 순간. 파각 소리와 함께 완전히 뼈가면이 부서져 내린 순간.
온전히 드러난 얼굴로 메피스토펠레스는 싱긋 웃었다. 악마기사의 얼굴로 지어지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