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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25화 (225/389)

225화 세상은 (10)

끼아아악!!

악마의 울음소리가 귀에 꽂힌 순간, 가물가물하던 데스브링거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그는 기절해도 될 상황이 아니었다.

“……!”

그는 자신을 깔아뭉개는 판자를 살짝 들추며 주변을 확인했다. 건물이 무너진 건지 그의 사방은 건물이었던 것으로 가득했다.

끼이이이익!

“…….”

다행히 그는 건물 파편에 덮여 있어 악마에게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건물 파편이 그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 구조인 것도 아니었다.

아마 천장이었을 나무판자만이 그를 뒤덮은 덕에, 그는 아주 멀쩡하게 몸을 보신할 수 있었다.

건물이 3층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무너지던 건물 고층에 있어서인지. 아무튼 천운이었다.

“아파라…….”

문제는 이 천운이 마이스터에게도 적용되었을까인데……. 데스브링거는 거기까지 생각한 후, 팔에서 통증을 느꼈다.

몸을 옹송그린 채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거길 더듬어 보면, 피가 축축히 묻어난다. 무언가의 파편이 어깨에 꽂힌 것 같았다.

“빌어먹을…….”

건물에 깔리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인가.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인 수준의 상처긴 한데.

그즈음 데스브링거의 머리가 퍼득 기억 한 조각을 떠올렸다.

이 건물이 무너진 이유는 악마들 때문이 아니다. 포격 장치가 공격과 동시에 폭발하는 바람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 포격 장치에 가장 가까이 있던 건…….

“으.”

그 순간 낮은 신음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근처였다.

“이봐요, 살아 있어요?”

속삭이듯 물은 말에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근처가 살짝 들썩였다. 악마들이 난리 치며 건드린 것 같진 않았다.

그럼 마이스터인가? 아래에 묻히기라도 한 거야? 아니, 묻힌 것 같진 않은데. 저쪽도 운 좋게 천장을 이루던 파편 몇 개에만 깔린 모양이다.

그래도 어디 관통되거나 했으면 출혈사로 죽을 가능성이 커서.

그는 걱정에 몸을 들썩였다. 끼이이익! 여즉 밖에서 돌아다니는 악마만 아니었어도 밖으로 나갔을지 모른다.

“…제발 좀 가라.”

하나 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악마들은 상공 위를 뱅뱅 돌기만 했다. 피 냄새를 맡은 건지, 아니면 들썩임을 감지한 것인지는 몰랐다.

그냥 도통 물러갈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일이었다.

마이스터도 빨리 파내야 하고, 어깨의 출혈도 동여매든 뭘 하든 해야 하는데 저놈의 악마가 물러가기 전까진 뭘 할 수가 없다.

당장 목숨만 부지했을 뿐인, 여전히 위험에 처한 이가 이를 갈았다.

콰앙!

하나 그를 구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악마였다. 나무판자와 건물 파편 사이로 보이는 저편에서 새까만 불길이 마구잡이로 피어올랐다. 천둥도, 용암도 마찬가지였다.

그 소란에 깜짝 놀란 악마들이 꺅꺅거리더니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방향을 보니까 줄행랑이라도 치는 것 같다.

콰아앙!

그러나 그럴 만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광경은 도무지 현세의 것이 아니었다.

“시발, 저게 싸움이냐……?”

빠르게 튀어나가, 마이스터를 찾으려던 데스브링거의 입술이 앙 다물렸다.

“빵으로 그림 지우는 게 저것보단 덜 깔끔하겠다.”

예전에 나리가 그림 그릴 적, 빵으로 잘못된 선을 몇 개 지우는 걸 봤다.

그땐 ‘저 아까운 빵을’ 뭐 이딴 생각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다.

염병, 저 미친 악마들은 빵으로 그림 지우듯 대지에 솟아 있던 건물들을 지워 버리고 있었다. 손짓 한 번에 대지 위에 가득했던 무언가의 편린들이 잔재만 남긴 채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다 저게 이쪽으로 방향 틀면 흔적도 못 남기고 죽겠다.

데스브링거는 그 비참한 상상에 치를 떨며 마이스터를 찾았다. 세상에 시체도 수습되지 못하는 죽음이 많다는 거야 잘 알지만, 그래도 한 줌의 뼛가루조차 못 남길 죽음은 싫었다.

“빌어먹을, 댁도 운은 괜찮네요.”

데스브링거의 손이 마이스터를 깔아뭉개던 판자와 돌멩이 몇 개를 치웠다. 혼절한 상태의 마이스터는 다리가 좀 깔렸을 뿐, 크게 상처가 난 것 같진 않다.

“이건 왜 이렇게 안 움직여……!”

그는 마이스터의 다리를 깔아뭉갠 걸 치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어떤 구조로 돼먹은 건지, 다리를 압박하고 있는 건물 파편은 들릴 생각을 안 했다.

상처를 지혈하고자 임시로 동여매 둔 천 조각이 더욱 새빨갛게 변했다.

“악마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쾅!

시발, 그냥 말하지 말걸.

그는 말이 씨가 된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과 함께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쿠궁. 그 순간에도 땅은 울리며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뭔.”

전부 도륙 난 악마의 사체였다.

데스브링거의 다리가 순간적으로 힘을 잃은 채 뒤로 넘어지듯 했다.

“빌어먹을…….”

그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뒤로 기며 옆에 쓰러져 있는 마이스터를 깨웠다.

“이봐요, 일어나 봐요.”

반쯤 본능에 따른 행위였다. 마이스터를 깨운다고 상황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최소한 삶의 끝이 고독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시발, 우리 뒈지게 생겼다고…….”

바삭.

그런 데스브링거의 앞에 인간과 비슷하되, 밋밋하기 짝이 없는 무언가가 섰다.

비행종 악마를 전부 조각내어 죽인 존재이자, 그런 행적에도 불구하고 아군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자였다. 솔직히 생명인지도 의심 갈 정도로.

“으으…….”

한데 저것의 손에 들린 인퀴지터는 대체 뭐란 말인가? 데스브링거가 뜻밖의 존재에 당황한 순간, 그것이 손을 뻗었다.

녹는 밀랍처럼 떨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데스브링거의 온몸을 넝쿨처럼 얽었다. 마이스터도 마찬가지였다.

마이스터의 다리를 깔아뭉개고 있던 건물의 파편은 갑자기 피어오른 검은 불길에 갉아 먹혀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이 미친…….”

저항해야 하나? 그러나 온몸이 단단히 결박되어 부정검을 꺼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데스브링거가 이대로 끝인가, 하며 좌절하려는 순간 시야가 갑자기 뒤흔들렸다. 그를 붙잡고 있는 존재가 갑자기 튀어 나간 탓이다.

평상시 겪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에 온몸이 압박감을 느낌과 동시에 속이 진탕이 되어 구토감을 자극했다.

회색, 검정색, 붉은색, 하얀색. 휙휙 뒤바뀌는 시야는 사방을 구분조차 힘들도록 한다.

“무슨!”

한참 뒤, 흔들림이 멈추고 시야가 좀 안정되었을까.

귀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어왔다. 하나 반응해 주기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몸이 헛구역질을 너무도 우선시해서.

그는 몇 번 토를 한 뒤, 간신히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양옆에 널브러진 인간이 눈에 들어왔다. 인퀴지터와 마이스터가 기절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투사 나리.”

더욱이 놀라운 건 인퀴지터 바로 옆에 엎어져 있는 베르세르크다. 피로 점철된 데다가 미동도 없어서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아, 악마가…….”

서걱!

그가 비틀거리며 베르세르크에게 기어가는 동안,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정체 모를 존재는 손짓 한 번으로 사위의 악마 대부분을 도륙 내 버렸다.

악마와의 대치로 죽어 나가던 자들을 살려 주는 손짓이나, 정말 그런 의도뿐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배려 없는 공격으로 인해 악마의 몸뚱이에 깔려 버리거나 휩쓸려 같이 죽은 자가 속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악마가 계속 살아 있는 것보다야 이것으로 잠깐 나올 피해가 적은 건 사실이지만… 정말 아군이라 봐도 되는 건가?

휘익.

간신히 베르세르크의 생존을 확신한 데스브링거가 그 부분으로 다시 의문을 돌렸다. 아군이 아니라면 겨우 산 목숨 다 죽게 생겼으니 당연했다.

그는 어쩌다 보니 가장 챙겨 주지 못했던, 그럼으로써 가장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이를 보호하듯 감싸며 정체 모를 것을 보았다.

하나 그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 그의 등이 불현듯 가벼워졌다. 상황이 상황이라 어디 빼놓고 다니지도 못했던 애물단지 장검이 상대에게로 넘어간 탓이다.

반 박자 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데스브링거의 눈이 커졌다.

“그건─!”

악마기사에게 줄 물건이다. 그렇게 외치려던 순간, 검을 챙긴 상대는 그대로 그림자 속에 풍덩 빠졌다.

아니, 그걸 그림자라도 해도 되는가?

그림자처럼 고여 있던 마기의 불길 속에 그것이 잠기는 순간, 작은 구멍 속으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마기가 줄어들며 금세 자취를 감췄다.

“사라졌어…….”

정말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자네!”

“망할 손자 놈……!”

멀리서 두 대현자가 달려올 때까지, 데스브링거는 계속 그래야만 했다.

* * *

──!

소리조차 삼킨 공격이 일대를 휩쓴 순간, 마몬은 몰려오는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식탐, 바알제붑을 죽였다는 섬격인가.

[전성기가 아니어서 망정이지……!]

볼 때와 직접 겪을 때란 이다지도 다르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워 동경해 왔던 불꽃이건만, 직접 겪고 나니 미추고 뭐고 암담한 감정만 드는 것이다.

[왜 그래, 겁 먹은 것처럼.]

물론 마기가 많이 드는 만큼 저쪽도 난사는 못 하겠지. 바알제붑을 상대할 때도 섬격을 쓰는 건 몇 번 보지 못했으니.

그러나 섬격을 직접 맞대 본 이 순간, 마몬은 판단을 내렸다.

이걸 제대로 맞으면 마기의 격차고 뭐고 그냥 죽을 거다. 저쪽이 쓴 마기의 배를 소모해 가며 방어했음에도 욱신거리는 온몸이 그걸 증명했다. 정말 치가 떨리는 위력이었다.

[너 같으면 겁 안 나겠어?!]

[글쎄… 나는 내게 겁준 놈들은 죄다 죽여 와서 말이다!]

그래, 그렇겠지.

본인을 애완 인간 삼으며 괴롭히던 아스모데우스도, 영역을 침범했다며 사냥하려 든 바알제붑도 어떤 수를 써서든 역으로 죽여 버린 인사가 뭔들 무섭겠어.

저치에겐 공포조차도 본인의 불길을 키울 땔감에 불과할 텐데.

마몬은 ‘분노’의 이름을 얻기 전, 기만과 농간이라 불리던 시절에도 세상 모든 것을 향해 화내던 존재를 떠올렸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분신으로 저걸 관찰할 게 아니라 본신으로 직접 가서 죽여 버렸을 텐데.

때늦은 후회였다.

서걱!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싸움이 시작된 이상, 그는 저걸 이겨야만 했다. 메피스토는 결코 그를 살려 두지 않을 테고, 사탄 또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래… 그럼 나도 그래야겠네!!]

그러나 이기면 지옥의 만금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것이 그가 움직일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는 이길 것이다.

마몬의 손짓에 사방에서 치솟은 땅덩이가 활화산처럼 용암을 분출해 냈다. 하늘을 뒤덮고 허공을 꽉 메울 질량이었다.

메피스토의 접근을 막되, 놈의 마기 소모를 유도할 것들이기도 했다.

첨예한 공격이 몇 번 용암을 갈랐다. 큰 효용은 없었다.

마기를 소모해 용암을 불태울 게 아니라면, 액체에 가까운 마그마는 베어도 의미가 없다.

[쯧.]

[왜 그래! 공격이 안 통하는 것처럼!]

그렇게 몇 번 메피스토가 헛손질을 하는 걸 보니, 마몬도 자신감이 붙었다.

본체라면 모를까 저 상태로 메피스토의 공격은 자신에게 닿지 않는다.

그는 검은 불을 압도적인 질량으로 꺼트리며 용암 인형으로 일대를 마구 짓눌렀다. 아르가 아닌 헥타르 단위로 덮쳐 오는 용암엔 메피스토라도 마땅한 수가 없어, 그대로 몸을 빼야만 했다.

수로마다 바닷물을 들였던 도시가 이젠 용암으로 매몰되었다.

서걱!

물론 메피스토펠레스라고 마냥 당해 주기만 할 인사는 아니다.

검의 형태를 띠고 있던 라텔이 녹아내리고 대지를 내려찍는 메피스토의 발에 맞춰 땅 아래로 마기가 파고들었다.

쩌적!

마기에 의해 메피스토가 바라는 형태로 부서지고 치솟은 대지가 방패를 대신하여 날아오던 공격을 막았다.

콰앙!

그리고 그 너머에서 그 모든 걸 산산이 분쇄하는 거대한 포가 날아온다.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나선으로 꼰 화염을 일직선으로 날린 것이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마몬의 손짓에 용암 속에서 솟아오른 거인이 그것을 막아 내고, 역으로 비슷한 공격을 내놓았다.

순수한 마기만을 응집해 쏘아 낸 공격이 대지를 녹이고 가르며 메피스토펠레스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탁.

물론 고작해야 인간 크기에다가 빠르기까지한 메피스토가 이것에 당해 주진 않을 것이다. 마몬은 그것을 알고 연속적으로 공세했다.

수십 개의 암석이 대지에 내리꽂히며 대지를 파도치게 하고, 도시를 반쯤 침수시킨 마그마가 사방으로 튀었다.

촤악!

[느려.]

어느 틈에? 마몬은 당황하면서도 용암에 몸을 집어넣고 힘을 마구 쌓아 올렸다.

용암이 사방에 가시를 세우기 전, 진홍색 불꽃이 섬광처럼 일대를 스쳐 지나가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걸 사멸시켰다. 겨우 몸을 뺀 마몬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서걱!

그러나 메피스토의 공격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메피스토의 본신이 있던 곳 반대쪽에서 검격이 들어왔다. 여섯 개의 귀로 소리를 들으면, 그것의 정체가 정교히 구축된 인형임을 알 수 있다.

빌어 처먹을 메피스토의 검, 라텔이 생명체의 형태로 손톱을 세웠다 이 말이다.

[검을 더럽게 써먹는군!]

[그거 칭찬이야. 알아?]

쾅! 쾅! 마그마 사이에 파묻혔던 검은 불꽃이 불씨가 되어 폭발을 일으키고, 마몬은 라텔이 녹아내리며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꼴을 보았다.

꽈릉! 콰르릉!

메피스토도 마냥 여유롭지는 않아서, 그는 자신 근처에 마구잡이로 내리꽂히는 벼락을 막고자 마기를 지속적으로 소모하고 있다.

[그런 너도 좀 더럽게 싸우기 시작하잖아. 박쥐 새끼가 알면 좋아하겠군!]

제 머리 위에 불꽃의 베일을 띄운 메피스토펠레스는 손바닥에서 칼날─라텔─을 뽑아냈다.

그러곤 쾅 소리가 나도록 땅을 강하게 박차, 순식간에 마몬 근처로 접근해 들었다.

서걱! 찰나간 새까만 궤적 수십 개가 허공에 새겨졌다.

촤악!

그러나 마기라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하다못해 그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온 마탑을 털어 버린다면, 쓴 마기를 보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마몬은 그 지점을 염두에 두며 용암에 몸을 숨긴 채로 뒤로 빠졌다.

그러곤 수백 미터 너비로 용암을 소환해 쏟아냈다. 앞뒤 양옆으로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이건 못 피한다.

[같잖은 수를.]

메피스토도 그걸 알고 회피를 포기했다. 마몬이 자신의 마기를 소진시키기 위해 수를 쓴다는 건 알고 있으나, 특별한 방도가 없었다.

라텔을 고리 형태로 바꾸어 제 근처에 띄운 이가 마기를 끌어모았다.

첨벙!

해일과도 같은 용암이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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