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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23화 (223/389)

223화 세상은 (8)

「…그럼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만약… 집으로 반드시 갈 수 있는 길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불확실해지는 대신 사람들을 확실히 구할 수 있는 길. 이 두 가지가 선택지로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고를 건가요……?」

* * *

삼십 년을 유지해 온 고집이 없어진 감각은 참으로 후련하고, 그 이상으로 아팠다.

당시에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스스로 만든 모닥불을 태양이라 속여 가며 가려 둔 고통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흐으.”

그러나 그 괴로움에 붙잡혀 있기엔 상황이 썩 좋지는 않은지라.

[배, 배, 뱀께서.]

“네놈만 아니었어도.”

죽을 상황이 당도하지만 않았어도 이 고통을 맛볼 일이 없었을까?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마주해야 할 광경은 아니었나.

그렇지만 그런 거 알 게 뭐야. 베르세르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돌을 집었다.

상실이 너무 아파 힘들다. 그게 언젠가 겪었어야 할 것이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정 자매를 위한 길이고 자신을 위한 선택이란 것도 중요한 게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녀가 지금 고통스럽고 거기서 이는 화를 풀 만한 대상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다.

[화, 화내시면, 아, 안 되는데.]

베르세르크는 어설프게 언어를 따라 하는 악마를 보며 얕게 웃었다.

구강 구조로 인해 평생 어눌한 발음만 흘릴 그것은 인간 언어 솜씨보다 몸뚱이를 움직이는 솜씨가 훨배 낫다.

[거, 거, 거북, 잘, 도, 도, 돌봤는데.]

“죽여 버리겠어.”

그마저도 그녀가 죽여 버릴 것이지만.

그녀는 그게 자신의 의지인지 마기가 만든 충동인지 모를 감정으로 앞을 향해 뛰었다. 이지가 깎여 나가는 순간조차도 머리의 명령을 착실히 따르는 몸뚱이가 순식간에 속도를 내었다.

촤아아악.

연속해서 밀려난 물살은 점차 깊어지더니 이제 그녀의 허리마저 삼킨다. 찢어진 상처 사이로 들어간 핏물이 침식과 광기를 더했다.

그녀의 온몸에 돋아난 검은 핏줄이 울룩불룩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모, 몰라. 주, 주, 죽어.]

그리고 마침내, 그녀와 거대한 머맨의 몸뚱이가 가까워졌다. 쾅! 머맨의 꼬리가 바닥을 후려친 순간 핏물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아래가 드러났다.

물론 그곳에 베르세르크가 깔리는 일은 없었다.

촤악.

종이 한 장 차이로 꼬리를 피하되, 물살이 갈라질 걸 염두에 두고 몸을 납작 엎드렸던 이가 참았던 숨을 토했다.

그녀를 감쌌던 핏물은 사방으로 물러나 그녀를 더 이상 속박하지 않고 있다.

피비린내가 코 점막을 찔렀다.

콰앙!

그녀는 피의 끈적임을 외면한 채 발에 힘을 주었다. 허리까지 찼던 피가 빠짐에 따라 운신이 훨 편해진 몸은 수 미터를 곧장 떠올랐다.

서걱!

그에 질세라 머맨이 손톱을 휘둘렀다. 거리가 부족하다. 그녀는 자신을 베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손 하나를 확인하고, 그다음으로 오는 손을 직시했다.

그녀를 베려는 건지 잡으려 드는 건지 모를 손은 그녀가 발판 삼을 만하다.

콱!

베르세르크는 거대한 손이 자신을 움켜쥐기 전에 손가락을 밟아 튄 후, 손에 쥔 돌을 던졌다.

그녀의 몸이 회전하며 건너편에 착지하는 사이, 날아간 돌이 머맨의 미간을 찧었다. 노린 건 눈알이었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미끈미끈한 외피가 약간의 생채기만 남긴 채 돌멩이를 미끄러트렸다.

캬아아악!

머맨의 꼬리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근처에 착지한 그녀를 내려치려 들었다.

베르세르크는 가뿐히 그것을 피한 후, 역으로 그것을 잡았다. 미끄럽다곤 하나 손잡이─꼬리에 자라난 지느러미─가 있어서 제법 휘두를 만했다.

어마어마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팔에 핏줄이 도드라진 순간, 머맨의 몸뚱이는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흐읍!”

뱅글뱅글 도는 것으로 원심력을 더한 이가 머맨을 저편으로 내던졌다.

혈호血湖의 한가운데, 섬처럼 존재하는 공간까지 던져졌단 이야기다.

쿵. 머맨이 섬 한가운데, 오목하게 튀어나온 것을 피해 어떻게든 착지했다. 아니, 사실 부딪혔는데 오목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너무 단단해서 안 부러진 걸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는 아니다.

[가, 가, 가아암히.]

적만 던져 놓고 가만히 있는 건 취향이 아니다. 그녀는 충격으로 사방에 퍼진 피들이 돌아오기 전에 드러난 대지 위를 달렸다. 찢어지고 망가진 전통복이 작은 쪼가리만 남아 펄럭였다.

[거, 거, 거북, 다치면, 배, 배, 뱀이 화내.]

쾅!

그리고 분명 보이지 않아야 할 공기의 흐름이 보일 정도로 강하게 뜀박질을 한 순간, 그녀의 몸이 단숨에 머맨 근처에 다다랐다.

[화, 화, 낸, 내, 낸다고!!!]

서걱!

그냥 당해 주진 않겠다는 양 머맨의 손톱이 강하게 허공을 가르고 공기를 조각냈다. 그러나 그녀는 머맨보다 체구가 작았다. 공격에는 불리할지언정 회피에는 유리하단 이야기다.

휘익. 교묘하게, 마치 기예처럼 육신을 활용해 피한 자가 머맨의 뱃가죽을 후려쳤다. 알을 품은 것도 아니고, 비늘조차 없어 미끈거리는 외피로 인해 충격이 분산된 듯하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0인 건 아니었다.

머맨도 생물 구조상 뼈와 내장은 있었으니까.

캬아악!

그런 연유에서 둔탁한 통증에 노출된 머맨은 곧바로 짜증을 냈다. 거대한 몸이 침착하게 움직이며 제 바로 앞 공간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베르세르크의 발이 그것을 교묘하게 피하는 위치로 움직였다. 퍼억! 연이어 그녀의 돌려차기가 머맨의 팔을 후려쳤다. 관절을 역방향으로 꺾는 방향의 공격이었다.

[나, 나가! 이, 이, 이곳에서, 나가!]

하나 그대로 부러트리기엔 힘이 부족했나 보다. 약만 오른 머맨이 팔을 움직여 그녀를 쫓고, 베르세르크는 뒤로 뛰며 공격을 피했다.

무기가 있었다면. 날카로운 것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외피로 인해 재미를 보지 못하는 주먹과 다리에 실처럼 남은 이성이 도구를 요구했다.

“하!”

그리고 그대로 끊겼다. 도구? 도오구??

나약한 소리! 그녀는 이미 가장 위대한 무기를 쥐고 있다. 탄탄한 육체, 정련된 근육, 예리한 오감 전부를 말이다!

그러니 도구 따위 필요 없다. 저것을 죽이는 덴 그녀의 육신만으로 충분했다. 시간 단축을 위하면 모를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겠답시고 도구를 찾을 이유는 없단 말이다!

“웨폰마스터의 싸움을 알려 주마, 악마!”

웨폰마스터. 세상이 오해하기로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자’. 그러나 진실된 의미는 ‘모든 것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자’.

그 이름 그대로 제 몸뚱이마저 무기로 삼는 존재가 이를 악문 채 정권을 내질렀다. 근육 한 올 한 올까지 통제한 공격이 머맨의 공격을 피해 그것의 오금을 후려쳤다.

캬악!

머맨과 인간의 신체 구조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사지가 달려 있고 머리가 달려 있으면 어딘가 겹치는 것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베르세르크는 그것을 정확히 노렸다. 오금을 엊어맞은 머맨의 발이 살짝 틀어졌다.

퍼억!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머맨보다는 작다는 걸 이용해 가랑이 사이라는 애매한 위치에서 타격을 이어 나갔다.

머맨의 미끄러운 외피에서도 보이는 근육의 결을 따라 그 안에 있을 뼈의 위치를 가늠해 가며, 그녀가 생각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관절을 공격한 것이다.

물론 머맨은 그걸 두고만 보지는 않았다. 그러기만 했다.

머맨은 너무 컸고, 큰 만큼 사각이 많았다. 마기에 이성이 한 줄기 한 줄기 뜯겨 나가는 베르세르크조차 내버린 이성 대신 본능으로도 피할 수 있을 만큼 그랬다.

몇 번은 자리를 이동하고, 몇 번은 꼬리와 팔을 짓밟았던 이가 또다시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다리 대신 땅에 닿아 몸을 지탱하던 손목이 뒤틀리며 온몸을 흔들었다.

돌려차기가 머맨의 관절 역방향으로 꽂히며 기어이 다리가 꺾였다.

캬아아아아악!!!

머맨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기우뚱 넘어졌다.

“아핫, 아하하하하!!!”

넘어지는 몸뚱이를 잘도 피해 낸 베르세르크가 광소를 터트렸다. 더는 이지란 것이 보이지 않는 붉은 눈에선 피가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죽어!!”

머맨이란 자고로 다리 하나 끊어진다고 숨통까지 멈추는 생물이 아닌지라. 그녀는 위로 뛰어 꼬리의 공격을 피한 후 부러진 다리를 악착같이 붙잡아, 그대로 뜯어냈다.

뼈와 뼈를 잇는 연골이 뜯겨 나가고 근육이 찢어지며 피를 콸콸 쏟아 냈다. 머맨이 더욱 비명을 지르며 꼬리와 손발을 휘둘렀다.

하나 그녀에겐 이미 새로운 무기가 쥐였다. 아무렴, 머맨에겐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우드득!

다리가 뜯기는 것에 이어 발가락까지 뜯어 낸 이가 거기에 매달린 발톱을 휘둘렀다. 원주인마저 베어 낼 수 있는 예기가 독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걱!

머맨의 사지가 순식간에 잘려 나가고 꼬리도 반 토막이 났다. 이 순간에도 목숨줄은 안 끊겼다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흐으.”

하나 곧 죽을 놈이다. 베르세르크는 가래 끓는 목소리로 웃으며 발발거리는 머맨의 몸에 올랐다. 발톱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그녀는 튀어나온 뼈 비슷한 것을 부러트려, 돌멩이 쥐듯 쥐었다.

『너, 너! 이게 무슨 짓─!』

『네가 바랐던 거다.』

『망할 새끼가! 내가 이딴 개싸움을 바란 것 같아!? 내가 바랐던 건……!』

『신성한 결투와, 정당한 죽음. 안다. 아니까 이러는 거다.』

『……!』

『가장 비참하게 죽어라, 스콜.』

『망할 애새끼가─』

과거가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가, 광기에 먹혀 그대로 사라졌다.

콰직!

희미한 마력이 스며든 뼛조각이, 머맨의 두피를 깨고 골을 으스러트렸다.

그녀의 스승의 머리를 깨 버릴 때와 비슷했다.

쩌적.

그리고 그 피가 튄 곳, 섬의 한가운데 오목히 솟아오른 곳 안쪽에서 그녀가 모를 반응 하나가 일었다.

둥그러니 놓인 알에 금이 갔다.

* * *

그런 물음이라면 난… 난 분명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는 싶지만…….

그게 인퀴지터나, 그 외 사람들을 매정하게 버린 채 갈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냥 이별하는 거면 몰라, 이건 저들을 불구덩이 속에 내버려 둔 채 나 혼자만 살러 도망치는 꼴 아닌가.

반면 돌아가는 게 불확실해진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돌아갈 확률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란 이야기다. 즉, 나중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난… 난… 확실하게 사람을 구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기에 더 옳은 일으므로.

「지금껏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도?」

그건 그렇긴 한데, 말은 똑바로 해야 하지 않나?

내가 힘들고 괴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뒤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고 설명도 안 해 준 누구 씨들 때문이지, 그들이 협조했으면 진즉 이겨 내서 으쌰으쌰 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래. 무엇보다 그게 이 도시 사람들 탓인가? 그 이유들이 내가 저들을 포기해도 되는 사유가 되나?

그건 아니잖아.

「…….」

그러니 괜찮아.

난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무언가 방법이 있다면 써 봐. 내가 돌아가는 걸 미루면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지금 그 말을 꺼낸 걸 거 아니야.

「…미안해요.」

난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문득 내 머리를 받치고 있던 온기가 쑥 하고 꺼진 기분이 들었다.

트이지 않았던 시야가 도리어 어둠으로 꺼졌다.

* * *

데스브링거는 마이스터가 내준 고글을 눈에 댄 채 주먹을 꽉 쥐었다.

대악마를 노릴까, 구조물을 노릴까, 봉인된 사람을 노릴까. 긴 고민 끝에 선택한 건 제법 효과가 있는 듯했다.

신전처럼 보이는 구조물은 더 이상 악마를 뱉지 않는다. 목숨 걸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어떻게 됐어!?”

“악마 둥지가 침묵했습니다요!”

“그거 좋네!”

대악마를 노리지 않은 건, 표적이 작거니와 공격을 막아 낼 가능성이 커서라.

봉인된 자를 고르지 않은 건 봉인을 깨는 걸 넘어 봉인된 사람에게까지 타격이 갈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바로 전력이 되어 줄지도 미지수여서였다.

반면 무한히 병정을 쏟아 내던 구조물은 어떤가?

이것 또한 공격이 안 통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통하면 악마의 전력이 증강되는 걸 틀어막을 수 있었다. 그나마 감당할 만한 리스크에 확실히 보장되는 결과값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골랐고, 다행히 먹혔다.

아주 좋은 신호였다.

“어…….”

뭐, 악마의 명령을 받은 건지 그들 있는 쪽으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비행종 악마는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서도.

“예상은 했지만 우리 X됐는뎁쇼.”

“대악마야, 따까리야.”

“따까리들이요. 근데 비행종이 생각보다 더 많았네.”

“X됐군.”

그래도 예상은 했던 일이기에 두 사람은 패닉에 젖지 않았다. 예상만 하고 대비는 못 했던지라─당연하다. 일신의 재주 약간만 빼면 그들은 일반인이었다─목숨 줄은 좀 걱정됐지만 어쨌든 그랬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나쁜 소식이 있어.”

“여기서 좋은 소식이 있을 수 있긴 합니까?”

“한 번 더 쏠 수 있을 것 같아.”

“존나 좋은 소식이네.”

“근데 아마 쟤네 오기 전에 준비가 안 될 거야. 죽어도 안 돼.”

“개나쁜 소식이네.”

데스브링거는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 맞는 심정으로 일단 몸을 움직였다. 암, 여기서 살아날 확률이 0%에 가깝다고 해서 그냥 손 놓고 죽어 버릴 수는 없지 않나.

데스브링거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좀 더 좋았고, 마이스터는 더욱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약속한 대로 짐을 챙겨 움직였다.

1층과 지하,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물 들어올 구석이 차단된 수로. 온갖 곳이 그들의 대피로였다.

콰앙!

“X발 존나 빠르네!”

“빌어먹을. 물이 찼잖아!”

“뭐요?! 수로 터트려도 여긴 안 찬다면서요!”

“내가 언제! 안 찰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

“그게 그거잖아!”

“달라! 다르거든?! 너는 100%와 80%가 같은 건 줄 아냐!?”

그들은 비행종 악마에게 머리 따여 죽기 싫었으므로 그것들이 머리를 제대로 들이밀지 못하는 공간만 써서 이동했다.

약간의 계산 실수로 일부 수로에 물에 찬 상태였지만, 그것도 나름 이겨 낼 만했다.

그들은 목숨 줄이나 다름없는 마도 장치를 아이 모시듯 품에 안은 채 수로를 우다다 뛰었다. 그 위에 내려앉은 악마들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그들을 쪼아 먹으려 들었다.

“이런 썅…….”

그러나 그런 그들의 탈출도 결국 막히고 말았다. 비행종 악마가 기어이 건물을 무너트리며 그들의 탈출로를 막아 버린 것이다.

거기에 제 무덤 제가 판다고, 용암에 고생할 용사님을 돕겠다며 터트린 수로가 그들의 목숨 줄을 죄어 오기 시작했다.

물이 차오른다.

“저기 구멍 있다. 저기로 튀자.”

“좋은 판단입니다요.”

물이 차오르는 수로에 계속 있을 수는 없다. 장치가 젖으면 큰일이거니와 악마들에게 노출이 너무 심했다.

지금은 그래도 덩치 큰 비행종만 있어 그들을 못 잡고 있지만, 이 안으로 들어올 정도로 작은 놈이 오면 큰일이지 않은가.

해서 그들은 구멍을 통해 건물로 들어섰다. 수로와 집 지하실이 돌벽 하나로만 차단된, 그러나 일부 벽이 허물어지며 들어갈 수 있게 된 건물이었다.

쾅! 콰앙!

물론 악마들도 눈이 옹이구멍은 아닌지라, 그들이 그 건물에 들어가는 즉시 난리 법석을 피웠다. 모르긴 몰라도 나무로 이뤄진 1, 2층은 금방 박살 나 폭삭 무너질 것이다.

쿵, 쿵!

그러나 여기 집들은 다닥다닥 붙여 지은 형태라 말이다. 데스브링거와 마이스터는 착착 맞는 호흡으로 그들이 먼저 벽을 부쉈다. 옆집이 그들을 반겨 주었다.

“더 넘어가, 더!”

그들은 한 사람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은 창문을 통해 뛰어넘고,─악마의 눈을 피하는 건 어렵지만, 목숨 내버리는 것보단 나았다─종종 벽도 부수며 몇 집을 더 이동했다.

비행종 악마의 눈이 그들이 처음 들어간 건물에만 꽂혀 있어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숨 돌렸다.

두 사람이 집안 복도에 털썩 주저앉아 하얗게 질렸던 피부 아래에 산소를 공급했다.

“다신 하고 싶지 않은 추격전이었어.”

“…댁이랑 마음 맞고 싶진 않지만 이번은 저도 동감입니다.”

일반인의 몸으로 악마와 추격전을 왜 찍고 있는가. 그들은 자괴감에 몸부림치면서도 ‘이럴 거면 그냥 튈 걸 그랬다’라며 후회하진 않았다.

“…이번은, 후. 인정해 줄게. 너 같은 지능 처참한 녀석에게 내가 도움받는 날도 오네.”

“욕을 하든가 칭찬을 하든가 하나만 하라고요. 그치만 뭐, 댁도 좀 잘했습니다.”

방금 해낸 짓거리는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의 최선이었으며,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 번 더 쏩시다.”

“뭐, 인마?”

“한 번 더 쏠 수 있다면서요.”

“방금 일을 또 하자고? 정말 돌았네.”

“방금 게 용사랑 도시에 도움은 됐겠지만, 전황을 완전 바꿀 수준은 아니었잖습니까. 한 번 더 해야 해요.”

“하, 그걸 누가 모른다고…….”

마이스터는 데스브링거의 제의에 질린 얼굴을 했다가, 곧 머리를 짚었다. 그의 이성도 사실 비슷한 판단을 내린 까닭이다.

“…빌어먹을. 그래, 해! 어차피 여기서 살아 나갈 확률도 0에 가까운데, 또 뭐 한다고 달라지겠어?”

기왕 죽을 거라면 제대로 불사르고 죽어야지, 겁난다고 물러서면 이도 저도 못 된다.

마이스터의 자존심이 꼿꼿하게 섰다. 처음부터 살아 돌아가길 포기한 데스브링거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올라가. 높은 건물에 자리 잡아야 해.”

“걱정 마십쇼.”

그들은 여기까지 고이 챙겨 온 것들을 다시 고쳐 들며 계단에 발을 올렸다. 운 좋게도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이 근방에선 가장 고층이라, 더 높은 건물을 찾을 필욘 없었다.

3층 창가에 자리 잡은 마이스터가 장비를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다.

“증폭기 두 개가 망가져서 아까 같은 위력은 안 나와. 안정성도 엿 먹어서 발포도 안 되고 터질 수도 있어. 악마들 이목만 존나 끌고 얻는 건 없을 수도 있단 소리야. 각오했지?”

“시발, 그딴 건 여기 올 때 다 했어요.”

“좋아.”

증폭기 하나가 망가질 때마다 위력은 처참하게 떨어진다. 하물며 남은 증폭기는 세 개. 제대로 된 위력은 못 낸다고 봐야 한다.

처음 것과 비교한다면 칼과 이쑤시개 정도로 차이 날 거란 말이다.

“표적은, 대악마?”

“…아뇨, 그것보단 저걸 노립시다.”

“뭐? 봉인?”

“대악마를 노려 봤자 재미는 못 볼 것 같고, 그러면 사람 한 명이라도 풀어 봐야죠.”

“저쪽을 풀어준다고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마이스터는 데스브링거가 가리킨 곳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래. 네 판단을 한번 믿어 보지, 뭐.”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서 데스브링거의 판단은 대개 옳았다. 하므로 그는 이번도 믿기로 했다.

완성된 포신이 사람을 봉인하고 있는 고치를 겨누었다. 사람이 적중당했다가 녹아 버리면 안 되니, 사람 자체에게선 살짝 벗어난 궤도였다.

“그럼 간─!?”

콰앙!

그리고 그가 장치를 발동하기 전, 건물이 흔들렸다. “젠장! 들켰어요!” 데스브링거가 부정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내밀었다. 쩌적! 건물 벽이 뜯겨져 나간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쏴요!”

지금이라도 포신을 돌리면 당장 앞에 있는 악마는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데스브링거는 그것을 사전에 거부했다.

콰앙!

그러니, 마이스터도 그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폭발음과 함께 도시를 가로지르는 빛이 뻗어 나갔다.

[아, 드디어.]

누군가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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