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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22화 (222/389)

222화 세상은 (7)

「…지금 깨어나 봤자 아프기만 할 거예요. 엄청, 엄청 아플 거라고! 지금은 봉인 때문에 조절도 안 돼서 정말로……!」

흐느끼던 목소리가 숫제 겁주려는 것처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내가 일어나는 게 싫은가 했다.

* * *

마기 침식은 참으로 독하고 교묘해서, 처음엔 고통이랄 게 하나도 없다. 눈이 벌겋게 변하고 검은 핏줄이 도드라질 때까지 아픔의 ㅇ 자도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다.

그러나 이성 한 자락이 깎여 나갈 즈음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프다. 기절할 정도의 과한 고통이 아니라 서서히 좀먹듯이 아파 온다. 살점 한 겹 한 겹을 떼는 것과 비슷했다. 통증이 누적되며 파도처럼 몰려왔다.

“하!”

그렇지만, 그래서 뭐? 온몸에 용암이 끼얹어져도 견뎌 내는 자에겐 그런 아픔 따위 의미 없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이었다.

“죽어!”

꺾여도 좋다. 죽어도 좋다. 그런 거라면 고향을 떠나 이 땅을 밟은 시점부터 이미 각오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 가지는 않을 것이다. 악마가 대상이라면 더더욱!

“으하하하!”

그녀는 머맨의 손톱에 도려진 어깨살을 내버린 채 돌을 쥔 손을 휘둘렀다.

아무리 단련해도 돌보다 단단해질 수 없었던 주먹 대신, 바위의 편린이었던 것이 머맨의 두개골을 깨부쉈다.

스승의 머리통을 박살 낼 때와 비슷했다. 두피가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며 뇌수와 피를 토해 냈다.

이어 허리는 살짝 뒤틀리는 것으로 뒤편에서 달려들던 머맨의 공격을 피했다. 알을 배었음에도 굼뜨지 않은 녀석들의 손톱은 기어이 허리에 상처를 남겼으나, 내장이 흘러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그 상처를 갈음하겠다는 양 그녀의 빈 왼손은 방금 덤벼든 머맨의 눈알을 찔렀으니. 그대로 구부러진 손가락이 눈알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 주었다.

“빙하의 시련만도 못하는구나!!”

고르고 고른 부족의 대전사들만이 대적할 수 있는 빙하의 시련과 널리고 널린 한낱 악마를 비교하자면 당연히 후자가 후달리겠지만… 그녀의 알 바는 아니다.

그녀는 머맨들을 비웃으며 발로 머맨의 뱃가죽을 후려쳤다. 퍼억! 그녀를 둥지 삼고자 했던 악마가 절명하고 바깥에서 긴급 구원 나온 놈들이 새로이 공간을 채웠다.

있잖아.

콰악!

그래도 상관은 없다. 그녀는 고인 핏물을 첨벙 튀기며 쥐고 있던 돌을 던졌다. 도구 없이 하는 돌팔매조차 그녀의 근력이 더해지니 제법 위협적이게 됐다.

머맨의 외피에 흐르는 체액이 녀석을 미끄러트리긴 했지만, 충돌할 때의 충격이 완전히 흩어지진 않아 한두 번 비틀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이곳에서 죽는다면.

그녀의 손아귀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머맨의 손을 움켜쥔 그녀는 녀석의 손목을 꺾어 자신의 손톱에 자신의 목이 찔려 죽는 모습을 연출해 주었다.

본인 손톱에 찔려 죽은 머맨이 혓바닥을 꿱 내밀며 뒤로 넘어갔다.

너는 어떤 비드르의 죽음을 추모할 거니.

서걱! 그리고 다섯 갈래로 찢어진다. 그녀를 노렸으나 위치 선정 실패로 애꿎은 동족의 사체만 찢어발긴 것이다.

첨벙. 그러나 동족을 공격하는 건 비단 머맨뿐이 아니다. 그녀의 움직임이 한순간 멈췄다가, 간신히 다른 개체의 공격을 피했다.

촤악! 미처 피하지 못한 것들은 상처로써 몸에 흔적을 남긴다.

나? 아니면…….

“그만.”

그녀의 손가락이 머맨의 입안에 걸렸다.

찌이익! 이빨을 교묘히 피해 걸쳐진 것은 씹혀 잘려 나가기 전에 상대의 입가를 그대로 찢어 버린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안 하기로 약속했다.”

죽음을 앞둔 순간이잖아.

“언니.”

베르세르크.

이어 그녀의 몸이 유연하게 휘어졌다.

상체가 뒤로 넘어가며 활처럼 휘어진 허리 근육이 순간적으로 몸 전체를 지탱하는 순간, 그녀의 뱃가죽 위로는 머맨의 손톱이 허공을 가른다.

휘익! 그리고 손톱이 그녀를 지나갔을 때, 그녀는 그것들을 앞으로 되돌렸다. 허리 근육 외에 팽팽하게 당겨졌던 전거근은 풀어지는 즉시 전방으로 어깨를 쏘아 보낸다.

손바닥에 정확히 턱주가리를 얻어맞은 머맨이 그대로 날아갔다.

아니면 웨폰마스터라고 불러 줄까?

“언니…….”

그래. 어느 쪽이든 좋아. 난 단지… 네가 직시해 줬으면 좋겠어.

이어 배근육이 소용돌이처럼 꼬이며 손톱을 간발의 차로 피하고, 허리가 휠 때 올라갔던 팔뚝이 아래로 내려오며 머맨의 목을 붙잡았다.

인간과 다르게 머리보다 더 두꺼운 목이 그녀의 팔뚝에 한가득 찼다.

애도하면서도 애도의 대상이 살아 있다고 말하는 네 모순을.

우드득. 그러나 가슴과 팔 사이에 낀 목의 미래는 대개 한 가지뿐이라.

그녀는 힘 주어 그것의 목뼈를 부러트렸다. 그것이 발악하며 그녀의 허벅지와 골반에 손톱 자국을 냈지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대신 그녀는 자유롭던 나머지 손으로 그 사체를 잡아 그대로 휘둘렀다. 연이어 들어오던 몇 개의 공격이 고기 방패에 막혀 스러졌다.

너의 일면일 뿐인 것에 언니라 부르는 행위를… 나는 그만뒀으면 하는 거라고.

적의 공세를 막은 것에 안도하여 안주하면 안 된다. 그녀는 공격이 빈 틈을 타 그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순간적인 힘을 받아 도드라진 허벅지 근육이 핏물을 쭉 뿜으며 그녀의 몸을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까지 빼내었다. 안착할 자리에 있던 적은 발에 미간이 짓뭉개져 죽었으므로 생각할 필요 없다.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

우리 제발 그만하자.

“하아.”

생겼나? 그녀는 더운 숨을 토해 냈다.

그 열기의 원인을 재거든, 몇 발짝을 무호흡으로 움직여서인지 혹은 마기가 머리 꼭대기에 서기 직전이어서인지 알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죽음이 목전에 다다른 순간마저 비드르의 죽음을 제대로 추모할 수가 없잖아.

다만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빌어먹을!!”

그녀는 올라오는 마기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듦에 괴로워하며. 혹은 기어이 인정하기 싫은 선택지가 눈앞에 들이밀어진 것에 울부짖으며 손을 움직였다.

콰직! 그녀의 손에 눈알이 짓이겨지고 안와가 깨진 머맨이 또 하나 생성되었다.

“안다, 나도 안다!!”

…베르세르크.

“나도 잘 알고 있다!!”

서걱!

하나 슬슬 한계다. 몰려오는 머맨의 수는 너무 많았고, 마기에 흐려지는 이성 역시 그녀를 궁지로 내몰았다.

판단의 옳고 그름을 모호하게 만든 정신이 기어이 폐 근처에 관통상을 냈다.

“나도 네가 죽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리고 한순간 모든 게 멈췄다.

아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13살. 그 어린 날에 멈춘 그녀의 시간마저, 다시.

“나도 언니가 죽었단 건 알고 있다고─!!”

쿠웅!

“……!”

대신 시간이 멈췄나 싶었던 순간, 바닥이 무너졌다. 썩은 살점이 수십 마리의 머맨을 버티지 못하고 아래에 생겼던 빈 공간에 그들을 떨어트린 것이다.

쿵, 쿵

평탄하지 않은 지대가 그녀를 떨어트리고, 굴리고, 다시 떨어트렸다.

거구의 몸체가 미끄러운 육편 위를 구르며 완전히 피투성이가 됐다. 베르세르크. 그 이름에 참으로 알맞는 모습이었다.

데구르르.

그러나 이것으론 부족하다는 양, 그 몸뚱이는 더한 곳으로 향했으니. 가장 거대한 피의 구덩이에 그녀의 몸이 다다랐다.

첨벙!

구르는 걸 멈추기보다, 상황에서 몸을 일시적으로 빼는 데 써먹고자 그대로 방치한 이가 핏물에 빠진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촤악. 구덩이의 가장자리임에도 정강이까지 들어찬 핏물이 물살을 일으키며 찰랑였다.

마치 호수를 보는 것 같았다.

“하.”

머맨들은 여기까지 굴러 들어오지 않았는지 그녀 외의 기척은 아직 거리가 멀다.

그녀는 한차례 비틀거리며 근처에 있던 바위─뭔진 모르겠으나 아무튼 살점은 아닌─에 몸을 기댔다. 주르륵. 머리끝까지 몸을 적신 핏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나도 알아…….”

그에 맞춰 한탄에 가까운 목소리 또한 구덩이 위에 울려 퍼졌다. 생애의 끝을 직감한 자의 유언 같은 울림이었다.

“알지만… 내가, 내가 어떻게 그만둘 수 있어.”

여전히 기억한다. 태양처럼 빛나 설원을 밝히던 사람을. 부모를 대신해 그녀를 키우고 지탱했던 존재를. 하염없이 거대하게만 느껴지던 그 품을…….

“내가, 내가 어떻게.”

나의 태양. 나의 세상. 나의 거인.

나의…….

“언니…….”

기실 자매의 죽음을 자각한 건 참으로 오래전이었다.

악마기사에게 대련을 청하되 죽여 달란 말을 하지 못했던 것도, 스승의 소원을 박살 내는 대신 얌전히 들어만 준 것도, 그날 그 설원에서 생을 마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녀가 죽으면 자매를 향한 추모가 이상해진다. 그녀가 만들어 낸 자를 추모해야 하는가, 이미 죽었지만 그녀가 외면한 자를 추모해야 하는가.

돌고 돌아 결국은 직시해야만 하게 된단 말이다.

고집은 그만두자.

“제발, 비드르.”

나는 괜찮아. 우린 원래부터 하나였는걸.

“가여운 언니.”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뭐가 문제겠어.

그게 싫다. 그게 그녀는 너무도 싫었다.

『도전을 청합니다, 대전사.』

태양도 뜨지 않은 곳에서 당신이 죽었음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는 사지로 걸어간 당신의 끝을 인정하기 싫었다.

『조건은 단 하나. 내가 당신에게 상처 하나라도 낸다면, 당신은 내 동생을 거둬 줘야 합니다.』

유해조차 수습되지 않은 비참한 말로가 한때 내 세상이나 다름없던 당신의 종착지라고 여기기 싫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비드르를 위해서라도 그만하자.

“넌, 넌 정말 이기적이야…….”

그렇지만 아이의 고집은 언젠가 끝이 나야 한다.

30년 넘도록 지속돼 온 고집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이 스승에게 물려받고, 스승의 스승은 그의 스승에게 물려받는 것으로 백 년 넘게 이어져 온 할버드가 박살 났듯이.

부서져야 할 건 언젠가 부서져야만 했다.

그녀는 성장하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촤악촤악.

그와 함께 호수처럼 넓은 핏물 사이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지금까지 본 머맨 중 가장 거대하고 흉악하게 생긴 것이었다.

[여, 여기, 오, 오면 안, 아아안 돼.]

그리고 솔직히, 이왕 죽어 비드르의 곁에 갈 거라면 둘로 갈라진 우리보단 멀쩡한 하나가 낫잖아.

[이, 이, 인간, 안 돼.]

그렇지?

그것이 두려운가? 그렇게 묻는다면 결코 아니란 답만 돌아갈 것이라.

“…그래.”

베르세르크는 결국 인정했다.

“그 말이 맞아.”

스승을 죽이고 계승한 멍에, 웨폰마스터도 그녀의 이름이었다.

[주, 죽, 주, 죽어.]

더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괴로웠다.

* * *

「악마가 당신을 봉인에 집어넣어서, 꼼짝달싹 못 한 채로 그냥 고통만 느낄지도 몰라요. 만에 하나 봉인에서 풀려난대도 지금 몸 상태론 옴짝달싹 못 할 가능성이 커요. 그래도 일어날 건가요? 그런데도 당신은 일어나길 택할 거예요……?」

하지만 그게 기분 나쁘지 않은 건, 그 이면에 깔린 걱정이 읽혀서일 것이다.

* * *

“하아, 하아.”

인퀴지터는 턱 끝까지 차오른 호흡을 어떻게든 잇고자 크게 몰아쉬었다.

코로도 모자라 입으로 한껏 들이켠 공기는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그녀의 기도를 바싹 태운다.

[슬슬 끝이니?]

그러나 그녀가 숨을 완전히 되돌리기도 전, 용암으로 이뤄진 포탄이 날아와 오른쪽 반신을 때렸다.

갑옷 안쪽 사슬 갑옷을 꿰뚫은 용암이 그녀의 피와 육신을 노릇노릇하게 태웠다. “아흑.” 깨문 입새 사이로 비명이 흘러나오다가 멈췄다.

악마 따위에게 연약한 소리를 흘리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 못 했다.

파스스.

그사이 인퀴지터의 갑옷 위에 눌어붙은 채로 식었던 용암 일부가 바스라지며 가루를 흘렸다.

불결한 것을 정화하는 힘조차 부족하여 나온 결과물이었다.

[독하긴.]

함에도 장막은 거둬들이지 않는다.

인퀴지터는 혀에 덕지덕지 붙은 탄 맛을 삼키며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데워진 갑옷이 서로 부딪치며 짤그락 소리를 냈다.

반평생을 차 온 무게임에도 그것이 참으로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움직일 힘이 없다.

문대진 시야 가장자리가 참으로 부옜다.

“…나는.”

지지 않는다.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도 못한 채 옆구리를 꿰뚫는 아픔에 입을 벌렸다.

이 정도쯤 되면 통증이란 감각은 없어져도 좋겠건만. 어째서 이 몸뚱어리는 모든 아픔을 손수 챙겨 오는지.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가 완전히 힘을 풀었다.

[아직도 고집이야? 그냥 포기하면 되잖아.]

그러나, 그러나…….

“신이시여.”

그녀는 엉망이 된 몰골로 빌었다.

부디 이 도시를 굽어살피소서. 가엾은 자를 굽어살피소서.

악마에게 잠식당했을 뿐인, 그러나 그 누구보다 숭고한 자의 헌신을 굽어살피소서.

[정말이지. 인간이란…….]

…또한 다음이 있다면 이 부족한 사람 대신, 더 나은 자를 용사로 발탁하여 세상에 기회를 주소서.

[용사란 그 직위도 결국 적합한 그릇에게 주어지는 이름일 뿐일진대.]

더 많은 자를 구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하, 신이 욕보이는 건 정말 싫은가 봐?]

“존귀하신, 그분을…….”

[어쩌라고. 그래 봤자 우리의 왕과 동격인 일개 존재일 뿐인데.]

자신이 이겼다는 확신이 들어서인가. 탐욕이 본신인 채로 다가와 그녀를 짓밟았다.

암석과 불꽃으로 이뤄진 다리가 그녀를 지그시 지르밟자 갑옷이 뜨거워지며 그대로 인퀴지터의 피부를 녹였다.

빠져나가지 못하는 열기가 갑옷 내부를 맴돌며 고통을 더했다.

[우린 우리 왕도 공경하지 않는단다. 그러니 내가 너의 신 따위 공경할 일도 없는 거야.]

“악마란…….”

하지만 아직, 아직이었다.

“다 그렇지……!”

[……!]

인퀴지터는 흐무러졌던 눈매를 똑바로 세우며 아까부터 박박 긁어모으던 힘 한 조각을 내세웠다.

면의 모서리를 이용한 참격이 악마의 몸뚱어리를 살짝 가르고, 판데모니엄이 뒤쪽으로 크게 도약했다.

[그래, 이번 건 내 실수였네.]

“…모신다는 단어도 모를 패륜아들. 너희의 공경 따위 우리 신께선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죽어라.”

그동안 인퀴지터는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사방에 잔재한 용암이 문제였다. 이것들은 그녀가 조금만 회복해도 온갖 잡것들과 가시를…….

콰아앙!

쏴아아아아!

[……?!]

그녀가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저편에서 무언가가 몰려왔다. 수로를 어떻게 터트렸는진 모르겠으나, 도시 일부를 침수시켜 버릴 기세로 몰려오는 파도였다.

바닷물에 닿은 용암 일부가 그대로 굳으며 열기를 잃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죽을 쥐새끼 같아서 내버려 뒀더니, 이렇게 나올 줄이야.]

판데모니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너, 가서 죽이고─]

콰앙!

연이어, 판데모니엄이 고풍스러운 구조물을 지키고 있던 악마에게 명령하려던 찰나.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유성과 같은 빛줄기가 지상을 강타했다. 구조물과 그 앞의 악마를 정확히 저격한 빛이었다.

쿠웅. 악마들이 끝없이 기어 나오던 구멍이 사라지고 구조물만이 남았다.

그 앞을 지키던 악마 역시 하반신만 남긴 채 소리 없이 죽어 버린 후였다.

[…….]

판데모니엄이 침묵했다.

“이건…….”

반면, 인퀴지터는 반쯤 직감적으로 깨닫고 입술을 어색하게 올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쩐지 손 흔들고 있을 뺀질이가 보이는 듯했다.

[어리석은 인간이……!]

“멍청한 자식……!”

이상하게, 다시 일어날 힘이 났다.

판데모니엄의 분노를 따라 용틀임하는 용암을 금빛이 또다시 막아섰다.

* * *

하므로 나는 웃으며 그 걱정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누군가는 살릴 수 있을지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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