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세상은 (6)
「왜, 왜, 어째서……! 그들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에요! 저 망할 놈에게 넘어가지 마세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 * *
쾅!
“으아아아!! 이제 어쩔 거예요!!”
“어떻게 하긴, 이대로 버텨야…….”
쾅! 한 번 더 거대한 충돌음이 울려 퍼지고, 건물이 요동쳤다.
쩌적. 땅울림과 함께 푸스스 떨어지는 가루는 금이 간 벽면과 천장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것이다.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리 말하려던 마이스터의 입이 아교로 붙인 것처럼 딱 붙었다.
“…그 전에 건물이 무너지려나?”
“지랄 마요!! 댁이랑 단둘이 묻히는 건 사절이거든요!?”
“나라고 너 같은 머저리랑 묻히고 싶은 줄 알아!? 평상시였으면 너 같은 건 내 무덤에 안부 인사도 못 해!!”
그들은 서로의 머리채를 잡을 것처럼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다가, 또 한 번 건물에 부딪쳐 오는 그리폰을 보며 이를 지르물었다.
한곳에 무덤을 세우는 것으로 사이좋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면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저놈을 죽이고 가는 수밖에!”
“좋아요, 근데 무기는!?”
“하, 마이스터의 공방을 무시하지 말라고!”
마이스터의 손이 제작 도구들로 옮겨졌다. 평소 금속을 절단하는 데 쓰이거나 무언가를 녹이거나 얼리는 데 쓰이는 도구들이었다.
쾅쾅!
“이러다 다 죽어요!!”
“시끄러워!!”
달그락달그락. 마이스터는 다급하게 조임쇠를 죄고 간이 손잡이를 부착해 무언가를 만들었다. 탁탁. 그가 몇 번 두드리자 전방에선 화염이 한숨처럼 튄다.
“좋아, 불맛 좀 봐라!”
화아아아아악!
마이스터는 그것을 그대로 그리폰에게 쏟아부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왔던 부리와 머리깃에 열기가 쏟아졌다.
끼에에엑.
“통했나?”
그리폰 머리가 건물 밖으로 잠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콰앙!
“으아아아! 화만 더 났잖아요!!”
“젠장, 급조했더니 화력이……!”
꿈도 꾸지 말라는 양, 그리폰이 건물에 몸을 부딪쳐 왔다. 머리를 더는 들이밀지 않을지언정 그들이 있는 구조물 자체를 무너트리려 드는 것이다.
마이스터의 입이 궁해졌다.
“젠장, 댁의 잘난 발명품 중에서 이 순간 도움 될 만한 게 정말 없는 겁니까!?”
“너는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뭐라는─ 아!”
그러던 찰나, 데스브링거의 말에 마이스터의 눈이 빛났다. 그의 동공 끝에 붙잡힌 건 마력 배터리다.
“으아악! 왜 또 멀거니 있어요! 대가리 깨지고 싶은 게 아니면 머리라도 보호하든가!!”
“나불거리는 입이나 다물어 봐, 좀!”
데스브링거가 기함하며 마이스터를 감쌌다. 후드득. 천장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들이 그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데스브링거의 보호가 아니었으면 마이스터의 정수리는 떨어져 내려온 돌 파편에 얻어맞았을 것이다.
“그게 되면… 그렇지만…….”
그러나 마이스터는 그런 것에 일일이 감사를 표할 만큼 인성을 키운 사람이 아닌지라.
그는 데스브링거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대신 중얼거리며 머리를 팽팽히 굴렸다.
여기서 살아 나가게 해 주면 그게 감사 아닐까? 그런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정작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의 의견 따윈 구하지 않은 훌륭한 결단이었다.
끼아아아악!!
“젠장!”
한편, 마이스터를 돌 파편으로부터 구해 주던 데스브링거는 욕설을 잇새에 담으며 머리를 휙 돌렸다. 육중한 덩치로 건물에 몸을 부딪쳐 오던 그리폰이 또 한 번 고개를 들이민 까닭이다.
다만 문제는, 그리폰의 몸통 박치기로 벽 일부가 기어이 허물어졌단 것이다. 뭉그러진 벽에 구멍을 뚫고 말겠다는 양 그리폰이 계속 부딪쳐 오는 것도!
“이봐요, 이거 어떻게 한다고요?!”
저대로 계속 두거든 건물이 폭삭 주저앉거나 저 벽만 무너져 그리폰이 안으로 들어오거나 둘 중 하나는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두 개의 결말 중 그들에게 좋은 거라곤 하나도 없다.
데스브링거는 그것을 알고 화염방사기라도 다시 쥐었다. 화력이 부족한 건 알지만 급한 대로 잇몸이라도 써먹고자 함이었다.
“대답 좀 해 보라고, 이 미친 마법사 새끼야아아악!!!”
까마귀가 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이스터가 벌떡 일어섰다.
“여긴 이렇게! 여긴 이렇게! 됐냐?!”
“그래요. 됐다, 이 새끼야!”
“그럼 그대로 버티고 있어!”
“뭐, 시발아?!”
“저 망할 새대가리를 날려 버릴 거니까 그동안 시간 좀 벌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라고요! 머리 좋다고 말 존나 생략하네, 개새끼가!”
그래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새로이 나타나긴 했나 보다. 새대가리를 날려 버린다는 발언에 데스브링거는 약간이나마 희망을 얻었다.
콰앙!
…비록 망할 먹물쟁이가 새대가리를 날리는 게 빠를지, 저 새대가리가 벽을 뚫고 그들을 입안으로 쑤셔 넣는 게 더 빠를진 미지수지만 말이다.
“X이나 먹어라, 악마 새끼야!”
하나 이미 한배에 타 버린(강제) 입장이다. 침몰의 위기가 코앞에 있는 지금, 믿음이 가지 않더라도 살기 위해선 협조하는 수밖에 없다.
마이스터랑 한날한시에 죽고 싶지 않았던 데스브링거는 가르침받은 대로 화염을 분사했다.
끼에에엑!!
쥐를 잡으려 드는 고양이처럼 구멍 새로 머리와 앞발을 들이밀던 그리폰이 비명을 질렀다.
데스브링거가 특별히 연해 보이는 살 쪽으로 불을 쏴 준 덕에 반응은 더욱 좋았다.
콰앙! 쾅!
그러나 깃털이 그을리고 연한 살이 타 버릴지라도 그리폰은 포기할 생각을 안 했다.
아니, 오히려 역동적으로 덤벼들었다. 안구가 익을 뻔하기까지 하자, 약이 오르다 못해 악에 받쳐 버린 듯했다. 매의 앞발을 닮아 노랗고 길쭉한 발가락이 검은 발톱을 매섭게 세웠다.
쾅쾅!
그사이 부분부분 금 가고 구멍 난 벽은 놈의 발악에 더 많이 부서지며 틈을 배로 키웠다.
마이스터가 제 공방의 보안을 키우고자 벽 안쪽에 철근을 심어 두지 않았다면 진즉에 뚫렸을 충격이었다.
푸화하, 카칵, 칵.
“뭐야, 이거!? 왜 멈춰!?”
하나 뭐가 잘못되었는지 화염을 분사하던 고철 덩이의 맛탱이가 가 버렸다. 데스브링거가 녀석의 겉면을 몇 번 두드려 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몇 번 화염을 더 토해 낸 그것은 제 사명을 다해 버렸다는 것처럼 픽 죽어 버렸다. “우아아아악!!” 무기가 사라진 데스브링거가 비명을 질렀다.
쾅쾅!
반면 그리폰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졌다. 안쪽에서 쏘아져 오던 열기가 사라지자 더욱 집요하게 구멍을 뚫기 시작한 것이다.
콱!
“시, 시발, 그래!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보자, 새대가리 새꺄!!”
아슬아슬하게 그리폰의 발톱을 피한 데스브링거가 죽기 살기라며 부정검을 집어 들었다. “죽어도 네 목구멍은 찢고 죽는다!!” 악바리 그 자체의 포효가 조금 효과 있었는지 그리폰이 뒤로 물러났다.
사각.
어쩌면 휘두른 발톱과 부정검이 부딪치며 난 피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폰은 앞발에 난 예리한 상처에 경계하며 뒷발로 벽면을 찼다.
“망할 명장 나리! 아직도 멀었습니까!?”
“거의 다 됐어!”
데스브링거가 그렇게 모든 걸 동원해 가며 입구를 꽁꽁 틀어막고 있었을까.
마이스터라고 놀고만 있진 않았다.
철컥, 철컥.
그는 작업실에 있던 모든 고철과 장비를 모아 하나의 장치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건 뭐예요!?”
“시가 6억 1천만 갈짜리 1회용품.”
이것에 쓰인 장비들의 구매가를 합치면 대략 6억 1천만쯤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게 그가 떠올린 이론대로만 굴러간다면 저 그리폰의 대가리는 날아가고 이 장비들의 무더기 역시 녹아 버리겠지.
“시발, 더럽게 비싸네…….”
“내 목숨보단 싸.”
그러나 이깟 장비 따위, 그가 앞으로 해낼 많은 것들에 비하면 사소하기 짝이 없다.
마이스터는 그가 십여 년 동안 차곡차곡 마련해 온 모든 물건들을 미련 없이 써먹었다. 외판을 떼어 부품만을 떼 오거나 외판을 고정대로 쓰거나 하며 아무튼 엄청난 무언갈 만들어 낸 것이다.
깡.
“좋아, 됐다.”
“된 겁니까?”
“신호 주면 납작 엎드려. 아까 성벽에서 쏜 거랑 똑같은 거니까.”
“시발, 그거 만드는 데 3천만 갈 든다면서요.”
“거기에 작업 시간만 1년이지. 그 1년이면 우리가 천 번은 잡아먹히고 남을 텐데, 기다릴래?”
“아뇨.”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시간을 돈으로 대체할 수가 있다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다. 본래라면 시간만큼 제일 귀한 것도 없으므로.
“좋아, 애미 애비도 없는 꼴통 새대가리. 내 자식 같은 장비를 녹게 만들었으니 나는 네 모가지를 녹여 주마.”
해서 마이스터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회로에 마력 배터리를 넣었다. 아까부터 그가 열심히 흔든 마력 배터리는 더없이 밝게 빛나는 상태다.
콰앙!
“그러니, X같은 아가리 벌려! 네놈이 평생 볼 빛을 그 목젖 너머로 쏴 줄 테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벽이 허물어지며 그리폰이 기어코 그들 앞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뒈져.”
마이스터가 방아쇠를 당긴 순간, 거대한 마력 파동이 그리폰의 입안을 꿰뚫었다.
직선상에 있던 모든 걸 녹이는 빛줄기가 대지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
퍽, 퍽, 퍽!
“하, 됐네.”
“염, 병. 드디어 된 겁니까?”
그리폰에 의해 벽 한쪽이 허물어지고, 빛줄기가 토해지며 그 충격으로 지반이 한 차례 더 흔들렸을까.
그로 인해 연약한 건물은 기어이 천장을 무너트렸고, 붕괴하는 천장에 납작궁 깔렸던 데스브링거와 마이스터는 간신히 잔해로부터 빠져나왔다.
“후. 다음 공방은 기필코 지반 설계부터 내가 한다.”
“제발 그러십쇼. 다신 이러지 않게.”
구조물이 통째로 내려앉은 게 아니라, 천장만 뜯어지듯 떨어져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이렇게 기어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젠장.”
뭐, 그래 봤자 불행 중 다행인 수준인 거지, 정말 행운 그 자체인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마이스터는 무너진 천장으로 인해 더욱 엉망이 된 공방 안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피해를 수습하더라도 남는 게 있을지 의문이었다.
“우오…….”
반면 데스브링거는 다른 것에 감탄했다. 잔해를 막 들추고 나오자마자 보인 게 구멍이 뻥 뚫린 그리폰의 사체였던 까닭이다.
“깔끔하게 구멍이 뚫렸네…….”
빵 반죽에 원형 틀을 찍은 것과 비슷한 꼴이다. 머리는 완전히 증발하고, 남은 몸통에도 둥근 자국이 남았다.
비단 그리폰의 사체뿐 아니라 건물도 그랬다. 눈이 부셔서 직접 눈으로 관측한 건 아니지만, 빛줄기가 뻗어 나간 궤적 그대로 골이 생겼다.
마이스터의 공방뿐 아니라 건너편, 건너 건너편의 건물까지 전부!
“…이 정도면 대악마한테도 효과 있는 거 아닙니까?”
“몰라. 성벽에서 쏜 것보다 이게 강한지 실험도 안 됐고, 애초에 그것도 제대로 된 위력 측정은 해 본 적 없어.”
쏠 때마다 돈이 펑펑 나가는데 위력 측정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지만 이번 게 성벽에서 쏘던 것보다 더 강할 것 같긴 하다.
마력 배터리 속 마력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귀하디귀한 마력 증폭 장치를 일곱 개─다 합치면 못해도 3억 갈쯤 될 거다─나 박아 넣었으니까.
“…살아 있네?”
“뭐요, 시발?!”
“그리폰 말고 이거.”
“존나 놀랐네!”
그리폰을 콕콕 찔러 보려던 데스브링거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사이, 마이스터는 부글부글 끓는 쇳물 사이에서 무언갈 건졌다.
마력포를 쏘는 대가로 장치 대부분이 녹아 버렸으나, 그중에서도 건질 만한 건 있었던 덕이다.
“5개… 이 정도면 꽤…….”
마력 증폭 장치 중 3개는 곧 맛이 갈 것 같고, 2개는 그럭저럭 멀쩡하다. 2개는 완전히 녹아 버렸고.
그래도 이 정도면 완전 호사 아닌가? 그는 7개 전부 녹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던 마당이었다.
“이것도 괜찮고… 이것도…….”
거기에 궁상맞게 쪼그려 앉아 쇠 무더기를 좀 더 뒤적여 보면, 의외로 주요 부품들은 다 살아 있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긴 했지만 어쨌든 당장 쓸 수는 있었단 말이다.
“잘만 하면 한 번 더 쏠 수 있을지도.”
물론 정말 ‘잘만 하면’이다. 진짜 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이론에선 날개로 나는 수식도 실전만 들어가면 모가지 팽팽 돌려 날아오르는 꼴 나오는 게 마법 공학이란 판이었으니까.
“…그거 진짭니까?”
“확실하진 않아. 회로가 당장 녹아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장비가 너무 많아서.”
그런 불확실에 목숨을 거느니, 그냥 마음 편하게 포기하는 것이 좋다. 아무렴 이걸 전부 둘러메고 도시군과 합류할 순 없지 않나.
마이스터는 기존에 목표했던 정화 장치와 만일을 대비한 무기─부지깽이─만 챙긴 후 떠날 채비를 했다.
“뭐 해. 거기서 살 거면─”
“그럼 그거, 만들어서 저 주면 안 됩니까?”
“뭐?”
“한 번은 더 쏠 수 있다면서요.”
“확실하지 않다고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그리고 그 사실을 제쳐 두고서라도 내가 그걸 왜 너한테 줘야 하는데?”
거의 망가진 제품들이라도 시간을 들여 고치면 다시 쓸 수 있다. 그럼 가격이 얼만 줄 아나.
그리 말하려던 마이스터의 입은 다음 순간 딱 다물렸다.
“악마한테 한 방 먹이려고 그럽니다.”
…그건, 조금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성벽으로 돌아가 봤자 그 괴수에겐 이 무기가 안 통한다는 게 이미… 잠깐. 설마?
“…저 불의 거인이 있는 데로 가겠다고?”
“예.”
데스브링거는 마이스터가 두고 나온 장비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물건을 망가트릴 거친 손놀림은 둘째 치더라도 어이가 없었다.
“죽을 자리에 가겠다고? 미쳤어?”
“죽어도 내가 죽지, 댁이 죽습니까? 나 혼자 갈 거니까 그냥 만들어 주기만 하십쇼.”
“미친 새끼가…….”
만드는 데 드는 노동력과 그 재료는 전부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걸 잊은 건가, 이 머저리는? 물론 만들어진 후 그걸 악마에게까지 가져가는 위험은 전부 저놈이 지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거긴 대체 왜?”
“샌님, 아니 용사가 거기 갔지 않습니까.”
보다 보니 답답해서라도 저놈이 뭘 만지게 하고 싶지 않다. 마이스터는 건물 안으로 도로 돌아가, 데스브링거의 손에 잡힌 것들을 빼앗았다.
녀석도 문외한인 제가 만지는 것보단 그에게 넘기는 것이 낫단 판단이 들었는지 순순히 내주었다.
“투사 나리는 몸이 잽싸니까 정말 위험하면 몸을 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지만… 용사 나리는 그딴 것도 없단 말입니다.”
철갑을 몸에 걸친 것치고 의외로 민첩한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이다. 악마기사나 베르세르크가 비교점이 되면 인퀴지터는 결국 느림보가 된다.
“거기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악마가 왔다는 건 결국 도시 내에 악마가 퍼졌단 거 아닙니까. 그런 마당이면 용사가 저기 붙잡혀 있는 것보다, 빨리 처리하고 도시군에 합류하는 게 제일 나아요.”
더구나 인퀴지터는 전방위 방어막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호할 능력이 있다.
‘베르세르크가 인퀴지터보다 도울 가치가 떨어진다’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베르세르크보단 인퀴지터가 당장 더 많은 이를 도울 수 있단 말이다.
“그러니 어서 만들어 주십쇼. 대악마 머리에 한 발 쏘고 용사 좀 데려오게.”
약하기에, 결국 우선순위를 정해 도울 수밖에 없는 자신을 경멸하며 데스브링거는 말을 마쳤다.
마이스터의 눈이 침잠해졌다.
“미친놈.”
“시발, 댁이 할 말이야?”
“내가 만들어 준다고 네가 쏠 수는 있을 것 같아?”
“알려 주면 되잖아요!”
“가는 동안 망가질 확률이 얼마나 높은데, 그건 또 어쩌려고? 설마 고치는 방법을 일일이 다 알려 달란 건 아니지?”
“아니, 그럼 어쩌라고…….”
“네 멍청한 머리에 그걸 박아 넣느니 내가 직접 쏘고 말지.”
마이스터는 이성적인 머리로 생각했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그리고 정말 돕고 싶으면 더 효율적인 걸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머저리 놈아! 저 안쪽 금고 따! 수로를 터트려 저쪽 지대를 침수시킨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
* * *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목소리 중 하나가 말한 것처럼 그들에게서 책임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서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암, 내가 강한 거랑 내가 저들을 구해야 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럼 어째서……!」
그러니 이것을 굳이 구분해야 한다면, 이건 대충 도의쯤 될 것이다. 아니면 선의, 호의.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저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는 나의 도덕.
「그건…….」
하, 성자 나셨어. 뭐, 지금은 그래서 다행인가.
「하지만……!」
아, 그렇다고 너희한테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안도는 좀 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개고생시킨 너흴 봐줄 이윤 없지.
「……!」
딱 대. 급한 불 꺼지면 너희가 누군지, 내가 왜 여기 오게 된 건지 등등 숨겨 둔 사정부터 전부 털 거다.
그러니 더 이상은 숨길 생각 말아야 할 거야.
하, 그러든가.
「당신은, 당신은 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는 치우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둔 채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알아, 바보 같다는 거. 그렇지만 어차피 돌아갈 수 있는 집이라면, 그동안 힘들더라도 더 움직여서 사람들 살리는 게 맞잖아. 그게 옳은 일이잖아.
내가 조금만 힘내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잖아.
「흐으…….」
멋쩍게 뇌까린 말에 뺨 위로 눈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제법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당신이 어째서 침묵을 고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울어 줄 사람이긴 했구나 싶어서.
「당신을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당신을, 당신을…….」
차마 내 스스로 토하지 못하는 슬픔을 대신 호소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게,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