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세상은 (4)
나는 가느다란 온기에 머리를 기댄 채 그것의 목소리를 들었다.
언젠가 이런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렴풋한 기시감은 귀에 닿은 말로 인해 흩어졌다.
그렇구나.
나는… 집에 갈 수 있는 거였구나.
돌아갈 수 있었어.
돌아갈 수 있어…….
* * *
데스브링거는 눈이 돌아간 마이스터를 보며 반사적으로 찔끔 물러났다.
“우리 가야 하는 거 알고 있죠?”
“알지.”
공방의 청색 등에 마이스터의 제비꽃 눈동자가 서늘하니 빛났다.
“근데 그게 더 중요해.”
젠장! 역시 믿는 게 아니었어!
데스브링거는 그리 사고하며 빠르게 마력 배터린지 뭐시기를 선점했다. 재빠른 손으로 그걸 낚아챈 뒤 인질 잡듯 쥔 것이다.
“아, 빨리 가자고요!!”
“왜 빛났는지 알아내기 전엔 안 가!”
“처음부터 반짝반짝 빛났구만, 그걸 어떻게 알아낸다고!”
“뭔 소리야! 아까 봤을 땐 안 빛났거든!”
“댁이야말로 뭔 소립니까! 내가 주울 땐 반짝반짝했─!”
콰앙!
이히히힝!
서로 고함을 지르는 설전이 이어지려 했을까. 진동이 건물을 강타하고, 불쌍한 말의 울음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우앗.”
그 과정에서 데스브링거는 들고 있던 배터리를 놓쳐, 그대로 떨어트릴 뻔했다. 아래로 추락한 배터리가 간신히 그의 손에 붙잡혔다.
배터리의 빛이 조금 더 강해졌다.
“…너!”
그것에 주변 물건을 잡아 가며 균형을 잡던 마이스터의 눈이 확장되고 말았을까.
캬르륵.
이히히힝.
기괴한 음성과 함께 말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균형을 되찾은 두 사람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캬륵.
열린 문 너머, 말이 서 있던 자리에 큼직한 괴물이 내려앉아 있는 게 보였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가여운 말은 그것의 다리에 짓밟힌 상태에서 반항 한번 하지 못했다.
쩌억, 쩍. 샛노란 부리가 뼈와 살을 분리해 가며 말을 통째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폰Gryphon. 매의 머리와 앞발, 사자의 하반신을 가진 악마이자, 말을 너무 좋아해서 말 도살자란 별명도 가진 괴수의 등장이었다.
두 사람의 몸이 쩍 굳었다.
‘X됐다…….’
‘소리 내지 마.’
저 악마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저 녀석이 그들의 존재를 안다면 썩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들은 눈짓과 달싹이는 입술로만 의사소통을 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으적으적.
그나마 다행인 건 그리폰이 이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 마이스터는 살살 움직여 공방 뒤쪽으로 물러났다. 데스브링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일평생 써 왔던 집중력을 부활시켜, 어질러진 물건들을 피해 공방 구석으로 호다닥 대피했다.
‘이제 어쩔 거예요!!’
‘아니지, 나에게 감사해야지. 내가 아니었으면 말에 탄 상태에서 그리폰에게 습격당했을 텐데.’
‘습격은 무슨! 안전하게 합류했겠지!’
매의 머리를 가져서인가. 그리폰의 시력은 좋기로도 유명하다.
하여 그들은 책상 뒤에 쪼그려 숨은 후 입술을 와구와구 움직였다. 소리를 듣고 반응이라도 할까, 목소리는 차마 내지 못했다.
‘시끄러워, 지능 부족. 이 주제는 더 말해 봐야 가치가 없으니 앞으로의 일이나 생각하지?’
‘불리하니까 화제 돌리는 거 잘 봤습니다. 망할.’
‘난 불리해서 화제를 돌린 게─’
‘여기 뒷문 없어요?’
‘…없어.’
‘엿같네.’
그들은 서로에게 엄청난 짜증을 느끼면서도 하나의 목적 앞에서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폰이란 변수는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출구는 정말 저거뿐인 거죠?’
‘그래.’
‘빌어먹을, 그럼 저게 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건가.’
‘그것도 하나의 수겠지.’
그렇지만 대책을 세우고자 해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암, 마력을 다룰 수 없는 그들이 악마를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나.
차라리 인간형이었다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테니 저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데스브링거는 자신의 상상을 정정한 뒤, 책상 밖으로 힐끔 고개를 빼려 했다.
‘뒈질래?’
그리고 경멸과 짜증에 비벼져 하얗게 된 마이스터의 눈과 마주쳤다. 멱살이 잡힌 건 덤이었다.
‘그럼 저거의 동태를 어떻게 살피게요?’
‘지식이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말을 하지 그래. 고개를 안 내밀어도 코너 너머를 살펴볼 방법은 있거든?’
마이스터는 그리 말하며 책상 바로 위의 물건을 집어 들었다. 볼록거울이었다.
‘고개를 내미나 손을 내미나 그게 그거지…….’
‘면적이 다르다고, 지혜를 좇을 생각 없는 머저리 놈아.’
가볍게 말다툼을 한 그들은 어쨌건 거울에 집중했다. 각도를 잘 맞추자, 볼록거울은 잘도 그리폰을 비춰 주었다. 그 잠깐 새에 말의 육신은 거진 뼈만 남아 있다.
‘잘만 하면 곧 가겠는데.’
‘그거참, 다행인 소식이네요.’
그들을 대신해 죽은 말에겐 미안한 일이나, 덕택에 목숨을 부지한 입장에선 또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마이스터는 성주에게 군마값을 갚아 줘야 하는 건지 아닌지 고민하며 거울을 거둬들였다.
놈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올 것 같아서였다.
‘배터리 줘.’
대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암, 어차피 그리폰이 갈 때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그동안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쳤습니까?’
‘내 시간 내가 정당하게 쓰겠다는 데 네가 뭔 상관이지?’
‘미쳤어, 진짜.’
그는 내민 손을 강조했다. 그러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데스브링거가 배터리를 내밀었다.
아쉽게도 빛은 꺼져 있는 상태다.
‘소리 내지 마십쇼. 소리 내서 그리폰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면, 나는 댁을 그대로 던져 버릴 거니까.’
‘하. 해 보든가.’
소리 내면 안 된다는 것 정돈 그도 잘 알고 있다. 마이스터는 코웃음 치며 배터리를 건네받아 그것을 살폈다.
빛이 꺼져 있어도 조사할 것이 없지는 않으니 그의 눈은 단번에 진중해진다.
‘재수 없는…….’
이건… 홧김에 저번─반반머리와 담배 피울 때 반짝 빛났던 적이 있지 않았나─과 같은 수식을 적었던 배터리군.
데스브링거가 그의 욕을 하는 사이, 마이스터는 침착하게 대상을 파악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전적이 있던 수식을 적은 것이 또 한 번 희망을 보이다니.
한 번이라면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부터는 눈여겨볼 법하다. 그리고 세 번이 된다면…….
‘아까, 주울 때 반짝거렸다고 했지.’
‘예.’
‘흠.’
마이스터는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들어갈 때 본 순간과의 차이라고 하면 위에 있는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가와 시점밖에 다를 것이 없다.
즉, 그 두 가지 중 원인이 있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후자는 변수가 될 수 없다. 반면 전자는…….
‘추락이 답이었나?’
악마기사도 그가 떨어트린 걸 잡다가 빛나는 걸 목격했고, 이번에도 떨어진 걸 주운 이가 보았다.
하물며 그 뒤에 본 것까지 떠올리면 역시 답은 이것뿐이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녀석을 높이 들고─혹시나 그리폰에게 보일까, 책상보다 높이 들진 않았다─떨어트려 보았다.
‘미쳤어?!’
옆에 있던 이가 기함했다. 툭. 배터리가 땅에 닿기 전, 마이스터가 그것을 낚아챘다.
녀석의 빛은 돌아온 상태였다.
‘내가 함부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시간이 있으면 동태나 살피지.’
‘…아오. 말이나 못 하면.’
그는 중지로 안경을 추스른 후, 가설을 확정했다. 추락이 이것에 관여한다. 이유? 모른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성공한 겁니까?’
그러다 데스브링거가 넌지시 질문을 던져 왔다. 빡치는 상대라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중간 과정이 확립되지 않은 성공도 성공이라면.’
하나 얼렁뚱땅 해낸 것을 성공이라 이름 붙이긴 싫다. 마이스터는 당장이라도 이것을 더 연구하고 싶었으나, 상황을 고려해 할 수 있는 것만 했다.
예컨대 떨어트리는 걸 반복하면 어떻게 되는지, 마력이 제대로 모이긴 하는지. 뭐 그런 걸 확인했단 말이다.
‘중간 과정이 확립되면… 마력 없는 사람도 이제 마력 쓸 수 있습니까?’
‘마력을 요구하는 장치를 다룰 수 있다, 로 정정하지?’
‘꼬투리 더럽게 잡네.’
‘오, 내가 너였다면 휘두를 혀만 탑재되고 그에 맞는 머리는 주어지지 않은 인생에 비관하며 일찌감치 다음 생을 노렸을 거야.’
그 과정에서 또다시 말다툼이 일었으나… 역시나 그리폰이라는 분노 억제제 덕에 싸움으로 불거지진 않았다. 악마가 이뤄 낸 화합이었다.
‘…….’
‘…….’
비록 서로를 향해 양손 중지를 날카롭게 세운 형국이 최선일지라도.
‘각설하고, 그래. 작동 방식이 밝혀지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니까… 아마 보급화 될 수 있겠지.’
‘빈정 상할 대로 상하게 만든 상태에서 설명해 봐야…….’
‘물어본 건 대답해 줘야지. 이럴 때 아니면 네 무식한 머리가 언제 지식을 채워 놓겠어?’
‘아, X발.’
데스브링거는 고민했다. 그리폰이 물러간 다음 이 자식의 대가리를 깨도 될까? 심각하게 구미가 당기는 충동이었다.
‘됐고, 그리폰은 물러갔─’
그러던 찰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깜빡. 천장에 달린 등들이 빛을 한 번 꺼트렸다 다시 비추었다.
뭐야? 데스브링거와 마이스터는 당황해서 거울을 황급히 주워 들었다. 쾅! 동시에 또 한 번 충격이 사위를 몰아쳤다.
“망했군.”
“소리 내면─ 잠깐?!”
쾅!
문틈으로 고개를 밀어 넣으려 하는 그리폰을 보며 마이스터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쾅! 그리폰은 그들을 잡아먹고자 택도 없는 문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몸을 계속 부딪쳐 오고 있다.
“처음부터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본데.”
요약하자면, 제대로 몰린 상황이었다.
깜빡.
등이 불안하게 껌뻑였다.
* * *
그런데… 지금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 * *
“살려 줘! 살려 줘!!”
“으아아악!!”
“공격해! 공격하라고!”
“흩어지면 안, 토니!”
“끄으윽!”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폭발과 화마가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순서를 지켜 대피하던 사람들의 행렬은 이제 뒤죽박죽이 되어 질서랄 게 없다. 오롯이 혼란뿐이었다.
“뒤로 물러나세요! 뒤로!”
“달려! 달리라고!”
“흐아악!”
“서둘러!”
“계속 가, 달려!”
함에도 이 혼란을 잠재워야만 할 이유가 그들에겐 있다. 달려온 병사들이 사람들을 붙잡아 뒤로 던지듯 밀었다.
“쏴!”
투두두둑.
그동안 날아간 수십 개의 화살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하피들에게 따끔한 경고를 건네는 중이다.
“보조해라!”
그리고 기사가 나타났다. 마력으로 온몸을 강화하거나 검에 예기를 더하는 초인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기사님을 엄호한다!”
기사라고 해서 악마를 단칼에 베어 죽이는 능력은 없다. 그렇지만 병사들처럼 그렘린만 견제할 정도로 약하지도 않다.
“발받침!”
기사, 디트리히의 외침에 병사 하나가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꿇은 무릎 위에는 깍지 낀 손이 있어, 디트리히가 그것을 밟는 순간 위로 던지듯 쳐올린다.
날아오른 기사가 몸을 강화하던 마력을 검으로 돌려 절삭력을 더했다.
서걱!
키아아악!
병사들을 노리며 짓쳐들어오던 하피의 안면이 그녀의 검에 대각선으로 베였다.
악마의 몸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균형을 잃은 채 추락했다.
“피하고! 움직여!”
추락 지점에 있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로 물러나고, 다른 곳의 병사들은 오히려 앞으로 전진하며 그렘린과 다른 악마들을 밀어냈다.
“밀어, 밀어붙여! 악마들을 밀어내!”
그건 전부 하피와 함께 추락한 기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물러난 병사를 대신해 하피를 감싸듯 선 자들이 그렘린들을 견제하는 사이, 착지한 기사가 검을 추켜세웠다.
“둘러싸!”
또한 디트리히가 하피의 발버둥에 대응하며 녀석이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막는 동안, 물러난 병사들은 하피에게로 창을 들었으니.
사방에서 들어온 창에 하피가 몇 번 꿰였다. 물론 몇 개의 창은 악마의 몸부림에 그대로 부러지고 만다.
“계속 찔러!”
악마는 한 번에 죽지 않는다. 그걸 아는 자들이 계속해서 공격하고, 기사는 발톱에 몇 번 할퀴어지는 걸 감수한 채 계속 하피의 시선을 끌었다.
“가고일 하나가 온다!”
“기사님, 빠지십시오!”
“맡기겠다!”
그러나 병사들만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악마가 하나 더 온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사는 병사들이 내준 틈으로 천천히 뒷걸음질해 물러났다. 하피가 아직 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체력이 거의 다 빠진 만큼, 병사들로도 어떻게 되리라 믿어 보는 수밖에는.
“으아아악!”
“빌어먹을, 어디서 이렇게 많이 온 거야!”
“으아아아아아!!!”
그러나 몰려오는 악마가 너무 많다. 어떻게든 악마의 공격을 피해 달려온 이들을 뒤로 보내며 몇 명의 병사들이 울었다.
“내 적을 섬멸해 주시오!”
다행히 그들의 부담을 덜어 줄 만한 사람이 이곳엔 있었으니.
마력을 박박 긁어모은 아크메이지가 마법을 펼친 순간,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병사들을 괴롭히던 많은 악마가 마력에 꿰여 죽거나, 그에 준하는 상처를 입었다.
“어서 사람들을 구해!”
마법사와의 협력에 익숙한 병사들이 재빨리 쓰러진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은 안타깝지만 넘기고, 아직 숨이 붙은 자들을 둘러업어 후방으로 보내는 작업이다.
“…도시가 망할 건가 보군.”
“불길한 소리 하지 마세요!”
“현실적으로 봐라.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악마들로 가득 찬 도시가 망한 쪽으로 분류될지, 안 될지.”
“그건 그렇지만 기분이란 게 있잖습니까!”
기분 같은 건 쓸모없다. 청산호는 수석 마법사의 말을 무시하며 마력을 움직였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마력을 조종하자니 다소 죽을 맛이었지만 진짜 죽는 건 아니니 상관없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거기서 한 번만 더 반동을 받으시면 분명……!”
“죽겠지. 근데 이미 죽은 사람들 앞에서 그 소리를 할 수 있겠나?”
그리고 마법을 중도에 취소하거나 수식 잘못 계산하지만 않으면 반동받을 일도 없다. 괜찮다.
그는 마력 조절이 불안한 이들을 도우며 공격 마법을 추가로 발동했다. 아크메이지가 수식을 봐줬으니 실패할 일도 없었다.
거대한 마력 화살이 생성되어, 날아오던 가고일을 요격했다. 심장이 뻥 뚫린 가고일의 몸뚱이가 거리로 추락했다.
“됐고 빠릿빠릿하게 다음 마법이나 준비해라. 악마 더 온다.”
“네? 더요?”
“꼬우면 성주에게 따져라. 검문을 뭐 이따위로 했냐고.”
물론 그러면 성주도 외칠 거다. 지난 70년간 악마추종은 개뿔, 얌전히 상행만 한 놈들을 의심할 도시가 어디 있겠냐고.
인정하는 바였다. 마탑도 그래서 덜컥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았나.
“말하러 가는 김에 여긴 대현자 둘이 붙었으니 기사도 한 명이면 족하다 전해라. 지원 필요 없으니 더 이상 기사 보내지 말라고.”
“지금 말하러 가란 이야기셨습니까?!”
그럼 지금 말하지 않고 언제 말할 건데. 청산호는 그 말 대신, 올라오는 피를 참지 않고 게워 냈다.
“으아아악, 대현자님!!”
“청산호 님!!”
주변이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다지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시끄럽다. 다물고 일이나 해.”
“옙.”
“마력 모아!”
외려 청산호는 이곳이 안정화됐음을 깨닫고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렸다.
“…서쪽은 어떨지.”
그중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서쪽이었다.
대현자 둘이 붙고 성주와 기사 여럿까지 있는 남쪽 성문조차 이 상황인데, 그조차 없는 서쪽은 어떨까. 하물며 그쪽은 악마가 날아오는 방향과 가까운데.
청산호는 어쩐지 상상하기 싫어졌다.
도출되는 답이 영 좋지 않았으므로, 당연했다.
“다 죽는 것만 피했으면 좋겠는데.”
대신, 그는 빌었다.
부디 악마들의 발톱을 피하도록 하는 행운이 보다 많은 이에게 깃들기를.
* * *
…베뮈르헨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