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삶은 잔인하고 (8)
꽈아앙!
코앞에서 듣는 우레는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요란한 나머지 고막이 나가 버려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다.
‘…이건.’
용암인을 막 베어 넘기던 내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 바르르르 떨며 무릎을 꿇었다. 시야가 희게 번쩍번쩍 튀고 귀가 더없이 먹먹했다. 삐이이이. 이명은 이제 머리를 어지럽힐 지경이었다.
FPS 게임에서 코앞에 섬광탄 터졌을 때 시야 부옇게 문대고 프레임 잘라서 연출하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젠장, 일어나!’
“쿨럭.”
하지만 이렇게 보낼 시간이 없다. 내 앞에는 아직 적이 있었다.
‘망할 새끼, 언제 레비아탄의 힘을……!’
나는 거스러미처럼 남은 이성으로 하여금 겨우 눈을 떴다. 안구가 익은 것처럼 뜨겁고 피부 속을 기어다니는 피가 마치 용암 같았지만 악착같이 이겨 냈다.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까부터 어딘가 제멋대로 구는 마력이 멋대로 심장에 모여드는 걸 느꼈다.
‘이건, 위험한데.’
쾅! 망치로 심장을 후려친 듯한 느낌과 함께 편린뿐이던 이성이 조각조각 맞춰졌다. 정신이 퍼득 들었다.
‘이길 수 있나?’
콱.
동시에 억지로 통제력을 되찾은 팔이 땅을 밀어 내는 것으로, 몸을 굴렸다. 나를 노리던 용암인의 팔이 빈자리에 처박혔다.
퍼억!
연이어 나는 발로 잡몹을 걷어찼다.
적이 밀려나고 반동으로 일어났던 내 상체도 다시 뒤로 나자빠졌다.
넘어질 때 옆으로도 조금 기울어진 몸이 좀 더 기울어, 엎드린 상태가 되었다. 내 팔이 땅을 짚었다.
“웩.”
검은 피가 입 밖으로 게워졌다. 산소가 부족해서 저 색깔이 된 건지 온몸을 훑고 간 전류가 피를 구워 버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온몸이 따갑고 어지러웠다.
[놀라워라. 그 녀석의 번개를 버틸 줄은 몰랐는데.]
그래. 나도 사실 놀라워. 번개 맞고 살 확률이 생각보다 높다는 이야기야 들어 봤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거든.
그리고 빌어먹을, 용암만 다룰 줄 알았던 악마가 번개 또한 다룰 수 있다는 것도!
“하아.”
나는 멍한 머리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며 더운 숨을 뱉었다.
폐부까지 익은 건지 화끈한 바람이 나왔다. 해룡구슬 때문인지 덥지는 않았는데도 더운 기분이었다. 좀 X같다.
[그보다 뱀은 아직인가?]
스윽.
함에도 싸워야 한다. 아직 적이 살아 있으니까. 아직 싸울 것이 남아 있으니까.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하여간, 거북이의 껍질을 쓰는 놈 아니랄까 봐 느려 터졌어.]
끼이이이익.
쇳소리가 내게 들리지 않는 영역에서 조용히 울었다.
탁.
나는 허리를 굽혀 화산탄을 피하고 언제 떨어트렸는지 모를 투헨더를 붙잡았다.
슬슬 힘이 돌아온 건지, 몸에 대한 통제가 돌아오고 있다. 비록 손끝 발끝의 감각은 여전히 무뎠지만.
서걱!
그래도 대각선으로 베이고 내 발에 다시 얻어맞아 잘려 나간 잡몹의 일부분이 뒤로 무너졌다.
갯벌처럼 눅눅한 느낌인 만큼 곧 수복될 터이나 최소한 10초는 걸릴 거다.
[…아, 그래. 너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무례겠지?]
‘젠장, 검 위로 던지고 마력 둘러.’
그러다 잠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한쪽에 기울였다.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옆으로 넘어지는 식이 다였다.
부웅.
그와 함께 위로 던져진 투헨더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게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마력이 내 몸을 한 겹 감싸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꽈르르릉!
그리고 마력 사이로 비친 빛이 내 눈을 찔렀다. 떨어진 곳에서 지켜본 섬광은 오후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종류의 것이 결코 아니다.
아까와 비슷한 감각이 온몸을 덮쳐 왔다.
이젠 아프지도 않았다. 모든 감각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하, 이런 건 찰떡같이 알아들으면서…….’
“쿨럭.”
이게 투헨더라는 중간 완충재가 하나 있어서 그런 건지 혹은 마력을 둘러 몸을 보호해서 그런 건지. 그도 아니면 한 번 당해 봤다고 그새 익숙해진 것인지.
나는 싸움 도중 이렇게 당하는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물론 눈은 계속 감고 있었다. 아까 눈뽕당한 게 너무 컸다. 생리적인 눈물이 줄줄 흘렀다.
뭐어, 어쩌면 그 이유뿐만이 아닐 수도 있고.
‘계약, 시발, 계약이 사람 하난 제대로 골랐어. 안 그래?’
철컥.
대신 나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 자루는 바싹 타 불씨까지 머금은 상태로 내 가죽 장갑을 또 한 번 구워 버린다.
‘빌어먹을… 곤란해. 이대로 가면…….’
한데 꺼낸 검신이 부스스 조각 나 떨어졌다. 붉게 부예진 시야로 슬그머니 확인해도 같았다.
‘X발.’
낙뢰 맞고 깨졌나 보다. 상황은 갈수록 환장하는데, 정말 도움이라도 되는 것들이 없다. 헛웃음이 나온다.
댕그랑!
그래도 던지는 용도론 쓸 수 있겠지.
나는 그걸 그대로 마그마─잡몹의 몸뚱어리 재질도 일단 마그마니까?─에 퐁당 담가 버렸다.
어차피 깨졌겠다. 머리 좀 굴려 보니, 저걸 가지고 있어 봐야 걸어 다니는 피뢰침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겠다 싶어서였다.
옷 안쪽에 가득한 단검도 그렇다. 여기엔 모비 딕 레이드 때처럼 천장을 만들어 줄 인퀴지터가 없다.
나는 철로 된 제품들을 대충 인벤토리에 쑤셔 박았다. 여분의 공간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쾅!
내 다리에 얻어맞아 방향이 틀어진 화산탄이 잡몹을 팀 킬 하며 마그마를 튀겼다.
[자, 계속 가 보자고.]
재물을 쥔 악마의 여섯 손 중 하나가 한 줌의 진주를 들어 올린 건 그때였다.
바닥에 깔린 용암들이 한순간에 끓어오르며 가시를 마구 만들고, 구름이 또다시 우짖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능력이 약했던 건지, 네가 강한 건지 난 정말 궁금하니까.]
‘…망할! 피해!’
꽈르릉!
그리고 곧 땅벼락이 내려쳤을 때, 악마가 쥐고 있던 진주 한 알이 사라졌다. 남은 진주는 이제 대략 백 개였다. 혹은 그 이상이거나.
쏴아아.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꽈앙!
세 번째 번개가 쳤을 때, 성주는 정신을 차렸다. 그의 몸이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의 영역에서 몸을 파드득 떨었다.
“용사님.”
그러나 이럴 때가 아니다. 지원 요청 신호탄이 쏘아지지 않은 지금, 그가 신경 써야 할 곳은 저곳이 아니라 바로 이쪽이었다.
“저흰 저 괴수를 공격할 수 있는 병기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의 수가 적고, 발동에 시간이 걸려 용사님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아, 예. 예.”
어딘가 멍해 보이는 용사의 눈이 빛을 되찾았다. 오물거리는 입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끝내 속내를 토설하진 않았다.
“더불어… 그것이 명확한 효과를 보일지 아닐지 확신이 없습니다. 해서… 저것이 적대적이라는 가정하에 만에 하나 그것이 효험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성주는 용사의 사정보다 그의 도시를, 그의 병사들을 구하는 데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이기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게 그가 짊어진 가장 큰 책무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어, 어어어!”
그때 위쪽에 위치한 병사가 이상한 소리를 흘렸다. 자연히 그 소리를 들은, 그리고 그 소리에 집중할 여유가 있는 자들이 그 병사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달칵달칵. 불빛이 무언가의 신호를 보냈다. 다른 도시 사람들은 못 알아볼 것이나, 성주만큼은 잘 알고 있는 신호였다.
보다 자세한 확인을 위해, 그는 다급히 관찰 아이템을 썼다. 마이스터에게 돌려받은 것이 그의 시야를 밝혔다.
“…하, 악마가 아니어도 적이긴 하다 이건가!”
거대한 괴수 거북이 몸을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치는 게 보였다. 명백히 파도를 일으키기 위한 행위였고, 그들 도시에 적대적인 행위였다.
“수문을…….”
성주는 이를 갈며 대처 방안을 떠올렸다. 그가 아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딱 하나뿐이었다.
“성주님?”
“수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럴 땐 수문을 열어야 한다. 그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물이 빠져야 곧 덮쳐 올 파도가 조금이라도 낮아질 테니까.
그러나…….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불의 거인이 날뛰지 않는 서쪽과 남쪽. 그곳엔 빛나는 점들이 파도처럼 넘실넘실거린다. 전부 대피령을 따라 도시를 나가는 사람들의 횃불이다.
그런 마당에 나머지 1번~4번 수문을 연다? 머맨의 수가 많이 줄었다지만 분명 섞여 들어갈 것들이 있다.
평소처럼 경비를 배치해 섞여 들어온 머맨을 사냥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 이대로는 사람들이 위험해질 것이란 말이다.
“수문은 열지 않는다! 다들 버텨라! 우리는 싸울 힘이 있는 자들이지만, 수문을 열면 싸울 힘조차 없는 자들이 머맨을 맞이하게 된다! 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해라!!”
“예!!!”
그는 이를 악물며 결단을 내렸다.
그런 후엔 용사를 쳐다보았다. 가능하면 용사가 먼저 발언해 주길 바랐으나, 이젠 시간이 없었다. 저 파도는 막아야 했다.
“용사님!”
“…예!”
강렬한 부름에 완전히 잡념을 떨쳐 낸 용사가 응했다. 일순, 금빛 막이 악마들을 또 한 번 밀어내 바다를 정리했다.
숨통이 트인 병사들이 악을 내지르며 창을 던지고, 던져진 아이템이 해수면을 터트리거나 얼렸다.
“거대 괴수가 지금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혹시 그것을 막을 방도가 있습니까?”
“…예, 가능할 겁니다!”
성주는 다소 기대심을 꺾은 채로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에겐 행운이게도 인퀴지터는 한때 덮쳐 오는 파랑을 막은 전적이 있었다.
“그럼 그것을 부탁드려도─”
“그것은 저의 사명입니다, 성주님! 그러니 부탁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인퀴지터는 파도가 몰려온다는 말에 바다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며 울렁거리는 눈을 깜빡였다.
“이 몸 바쳐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니, 애초에 이런 상황을 대비해 지금껏 힘을 아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괜찮습니다. 어떤 힘겨운 요구를 내세우셔도, 그것에 대의가 있는 이상 제가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일이 힘겨울 걸 알아 회피하고 싶다거나, 저것이 결국 적으로 판명되어 아쉽다거나 해서 생긴 일렁임은 결코 아니었다.
아, 후자는 조금 있을 수도 있으려나? 그래도 그 감정은 이렇게까지 마음 쓰일 정도가 아니었다. 그건 원인이 아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싸움에 임해 주십시오.”
함에도 그녀가 계속 정신을 빼 놓고 있는 것은.
아까부터 신경을 쓰지 않고선 못 배기게 된 곳은…….
“저희는 이 전투를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합니다.”
뺀질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샌님.” 인퀴지터는 그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크게 홉뜬 눈이 어딘가 벼랑에 몰린 사람처럼 가쁜 호흡을 했다.
“자리 만들어!”
그때 누군가가 갈라진 목으로 소리쳤다. 언성을 높여도 일정 음 이상 올라가지 않는 음성. 마이스터였다.
“비키라고!”
그는 장인들과 함께 거대한 장치를 가져왔다. 전면에 두꺼운 철 막대 두 개가 11자로 나란히 달려 있고, 겉면엔 무언가의 수식이 빼곡히 새겨진 물건이었다.
어찌나 큰지, 성벽 위로 올리는 것만 해도 하나의 일일 것 같다.
“옮기면 되나요?”
“저도 돕겠습니다요.”
“그러면 되는데…….”
그러나 이곳엔 갑옷을 풀 장착한 인퀴지터마저 번쩍번쩍 드는 사람이 있다. 일반인 기준에 한해서라곤 하나 은근히 힘 좋은 청년도 있고 말이다.
베르… 아니 웨폰마스터와 데스브링거가 창질로 머맨 죽이는 걸 잠시 멈춘 채, 장치 옮기는 데 힘을 보탰다.
물론 그들─특히 웨폰마스터가─도 들고 옮기긴 힘든 무게인지, 수레를 이용해 끌고 왔다.
“제법 무겁네요.”
“숨 한 번 안 돌리고 옮긴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
쿵! 성벽 위에 올려진 기계가 성가퀴 너머로 막대 부분을 내밀도록 설치되었다.
시니컬하게 답한 마이스터는 곧바로 장치를 단단히 고정할 준비를 한다.
“마이스터!”
“네.”
“쏴! 죽여!”
“아… 결국 적인가 보, 실드! 내가 분명 실드부터 치라고 말했을 텐데!”
성주의 요청에 실망조차 내비치지 않은 마이스터가 바로 수긍하다가, 그대로 역정을 토했다.
그에 그 옆에 있던 사람이 찔끔한 얼굴로 재빨리 보호막을 만들었다. 마법사도 끌고 온 모양이다.
또한 보호막을 만든 이 외의 다른 이들─그들도 마법사로 보인다─도 장치에 손을 얹었다.
기운의 흐름으로 보아 마력을 안쪽에 불어넣는 듯했다.
무려 세 명의 마법사가 붙어서 마력을 불어넣어야 할 정도의 장치인지는 지금 알았지만 말이다.
장치에 새겨진 수식이 푸른빛을 흘리더니 두 막대로 빛을 모았다.
“이건 뭡니까요?”
“실패작, 돈 잡아먹는 하마, 1회용품.”
“…예?”
“그보다 용사님, 저 거북이를 대비해서 힘 아끼는 건 알겠는데, 상황을 봐 가면서 아껴야 하지 않을까? 파도랑 머맨 몰려오는 것 안 보여?”
그에 맞춰 머맨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법이 시작될 때면 수십 마리가 점프하며 홀로 마법의 위력을 감당하려 드는 것과 비슷했다.
녀석들은 거대한 게 올 거라는 걸 잘도 알아내, 방해하고자 우르르 몰려왔다.
그 뒤편에는 일시적으로 낮아졌던 해수면이 거대한 파도와 함께 몰아쳐 오고 있다.
“우와악, 온다!”
“흠. 물속이라서 참 귀찮네요.”
“머맨들이 몰려온다! 대응해라!”
“다들 힘 좀 내 보라고. 이거 망가지는 순간, 투자금 3천만 갈이 그대로 녹으니까.”
“3천만… 헙.”
성가퀴에 쇠사슬을 걸던 마이스터가 응원이랍시고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의욕을 불어넣고자 한 모양인데…….
인퀴지터가 상상치도 못한 금액에 눈을 둥그러니 뜬 것과 별개로 병사들을 불러모으던 성주는 갑자기 속이 쓰려 왔다.
말이 1억 갈이지, 대괴수용 병기 전체 투자 비용을 따지면 10억 갈은 훌쩍 넘기는 까닭이다.
그중 저 개체만 개발하는 데 든 돈이 딱 3천만 갈쯤 되는 거고.
“…3천만 갈이나 들었는데 1회용품인 겁니까?”
“어.”
함에도 저조차 한 번 쏘면 망가지는 실패작에 불과하다.
두 막대기에 밀집된 마력들이 서로 반발을 일으키며 그 여파로 중간에 있는 탄환을 튕겨 내는─빛처럼 빠르게─것이 저 장치의 요점인데, 정작 그 반발을 이겨 낼 소재가 세상에 아직 없는 탓이다.
보다 정확히는, 만들 수는 있는데 돈이 정말 많이 들었다. 진짜, 정말로, 엄청나게.
가격을 들은 그가 ‘발사대는 포기하고 탄환만 그렇게 만듭시다…….’라고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성주의 안색이 당시 회상만으로 거무죽죽해졌다. “놈들을 떨쳐 내라!” 그 순간에도 병사들을 재촉하는 건 책무가 만들어 낸 본능에 가깝다.
쾅, 쾅콰광!
몰려든 병사들이 죽을 것처럼 창을 움직였다. 인퀴지터가 서둘러 추가로 친 방어막에는 머맨들이 사력을 다해 부딪치고 있다.
“온다!”
“모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숙─!”
촤아아아악!
그러나 아직 생생한 인퀴지터의 보호막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으니.
거대한 파도마저도 금빛 막이 완벽하게 막아 내며 그것 전부를 돌려 보냈다. 파도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고자 성벽에 매달려 있던 자들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들었다.
“신이시여, 제게 모두를 지킬 힘을!!”
금빛 막이 도미노처럼 넘어가며 성벽 전체를 덮친 물을 다시 밀어냈다. 머맨들이 파랑에 쓸려 나가며 일시적으로 전장이 한가로워졌다.
경이로운 이적에 모두가 멍하니 인퀴지터에게 주목했다.
“용사…….”
성벽을 가호하는 것보다, 사람 수십을 단번에 치료하는 것보다, 성벽에 매달려 있는 머맨 일부를 밀어내는 것보다도 더욱 확실한 각인이었다.
“뭐 해! 안 묶고!”
꽈악.
그렇지만 신 따위 중지나 먹으세요 마인드의 마이스터는 달랐다. 그는 인퀴지터의 기적에는 한 톨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장치에만 신경을 썼다.
떨리기 시작한 장치를 가져온 도구로 눌러 고정하고, 쇠사슬로 여러 겹 둘러 묶고, 심지어는 쇠그물까지 덮어 가며 장치를 뿌리 박도록 하는 손길은 섬세하기 그지없다.
“이, 이거 떨리는데요?”
“지금은 안 터지니까 묶어!”
덜덜덜.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은 진동인데? 데스브링거가 질린 얼굴로 손을 보탰다. 어찌나 단단히 속박하는지, 이게 사람이었으면 고정되다 못해 숨막혀 죽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몰려온다!!”
“대열을 가다듬고, 공격!”
그사이 인퀴지터가 뒤로 무르게 했던 적들이 다시 찾아왔다.
장치를 막기 위함인지, 이 일대에 유독 몰려든 광경은 이제 ‘물보다 머맨이 많다’라고 할 만하다.
“전부 죽여!”
탕, 탕, 탕, 탕.
거대한 화살을 쏘아 내는 기계가 계속해서 돌아가고, 병사의 창을 빌린 웨폰마스터가 전사장들만을 골라 머리통을 깨부쉈다.
“마법이 온다!”
꽈르르르릉!
“좋았어!”
거기에 상황을 알고 제때 온 마법의 원조가 튀어 오르는 머맨들의 방해를 뚫고 수십 마리의 악마를 바싹 튀겼다.
병사들이 한숨을 돌릴 틈이 났다.
“됐다!”
쿠웅.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덜덜덜 떨리던 장치가 눈이 부실 정도의 빛까지 발할 즈음.
거북이 몇백 미터 안으로 들어왔다. 쿠르릉. 도시가 만들어 둔 둑을 밟은 것인지 지반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용사님, 장치를 중심으로 양옆과 위, 뒤로 보호막 만들 수 있어?!”
“가능은 합니다.”
“그럼 신호 주는 순간 전체 보호막 풀고 만들어. 너흰 물러나고!”
큰 문제는 아니었다. 마이스터는 거북이 접근하건 말건, 인퀴지터의 확답을 받고 사람들을 물렸다.
마력을 주입하던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떨어지고 머맨들을 상대하던 병사들이 성주의 외침에 공포와 안도를 반반 섞은 표정으로 물러갔다.
“지금! 만들어!”
“예!”
또한 그의 지시에 따라 인퀴지터의 보호막이 앞과 바닥 부분만 제외한 정육면체 형태로 장치를 가렸으니.
구우우우!
다가오던 거북이 길게 운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녀석이 얼굴을 길게 빼더니 입을 쩌억 벌리며 울었다.
하나 그것을 경계하여 공격을 취소하기엔 이미 늦었다. 녀석이 우는 순간 뇌성보다도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어어엉!
장치가 그대로 터져 나가며, 인퀴지터가 만든 금빛 막 안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이 뾰족한 탄환을 그대로 튕겨 내듯 쏘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