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삶은 잔인하고 (3)
아이템을 동원하지 않고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는 마법사는 드물다. 하여 직접 나와 본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무언가가 그의 눈에 잡혔다. 상회 건물에 있을 이유 없는 거대한 은폐 마법에 파도치는 청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고해야겠군.”
“무언가 찾으셨습니까?”
“아마.”
제품을 보호할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차폐 마법을 걸어야지, 누가 은폐 마법을 거나.
똑같이 가리어 덮는 마법이라도 차폐는 보호에 목적을 두고, 은폐는 숨김에 목적을 둔다. 그 결정적인 차이를 모르는 마법사는 없다. 그리다나쯤 되는 상단도 몰라선 안 된다. 차폐와 은폐의 구분도 못 하는 놈을 담당자로 올릴 놈들이면 대상단도 못 됐을 테니까.
“나는 좀 더 조사를 하고 있을 테니 신고는 네가─”
그는 그 사실에 더욱 확고한 의심을 품으며 호위를 전령으로 쓰고자 입을 열었다.
쨍그랑.
그러다 무언가 깨지는 것 같은 환각과 함께, 지금껏 은닉되어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되, 그것은 이음매와 바늘 자국이 없는 비단옷과 가죽신을 신고 뜨거운 얼음으로 만든 주머니에 세상 모든 부를 담으려 드는 것이니. 함에도 주머니의 속은 무저갱과 같아 무언가를 담고 담아도 만족을 모르고, 귀한 것을 찾아 헤매는 손은 정작 본인을 귀하게 만들 줄을 몰라 갈수록 누추해지기만 한다. 그런 존재였다.
그런 ‘본질’이었다.
“…망했군.”
본질을 ‘본다’라는 건 추상적인 개념을 감히 눈으로 지각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만큼 직관적인 파악도 없고 의심할 거리도 없다.
하여 청산호는 지금껏 봐 온 탐욕 중 가장 지극한 탐욕을 두고 이마를 쳤다. 마기까지 두르고 있으니 저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악마다.”
저건 탐욕의 악마였다.
“예?”
“싸울 준비를 해라. 안쪽에서 악마가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이지, 세상이란 왜 이렇게 마음 먹은 대로 돌아가질 않는지.
“그건…….”
전투는 딱히 전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전공이 아닌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청산호는 호위의 말을 흘려들으며 신호탄을 쏘았다.
피유우웅, 타닥타다다닥.
과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로 주변에 위기 상황임을 알리고, 색으로 악마출현이 주제임을 밝히며, 쏘아 올린 궤적마저 선명히 남기는 것으로 지원군에게 위치를 알려 줄 신호탄이다.
“뭐야?”
“어, 어어! 저거!”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어, 어디에…!”
“거기서 나와 이쪽으로 달려! 당장!”
이제 지원군이 와 주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사람 대피는 뭐, 덤이고.
“어, 어디로 가면……!”
“……! 피해!”
“예─ 커헉!”
그러다 잠깐, 그의 인도를 따라 상회 밖으로 나오려던 짐꾼 하나가 배에 구멍이 뚫려 죽었다.
그보다 한 발 앞에 있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바깥으로 나왔다.
“…왜 들켰나 했더니, 당신이 왜 여기 있죠?”
와중에 사람의 배를 손으로 꿰어 죽인 자는 피투성이 여인이라.
청산호는 머리 색과 거대한 체구로 어렵사리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리다나 회주의 비서 직함을 가진 이였다.
“세상이 내 앞길을 다 막으려 드는 거야?”
그때, 회주의 비서가 손에 마력을 모았다. 아니다. 청산호의 눈에는 그것의 본질이 보였다. 그건 마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신이 이곳에 나타날 리 없는데……!”
마기가 덧씌워지며 기괴하고 거대하게 부푼 손이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들었다.
이틀 전 마주쳤을 때만 해도 계약의 낙인이 없었건만, 그사이에 계약을 맺었는가 싶다. 물론 악마를 추종해 온 건 훨씬도 전이겠지만.
“난 네 앞길을 막으려 든 적 없다.”
하긴. 생각해 보면 많은 상인 중에서도 유독 탐욕스럽고 지저분한 본질이긴 했다. 드물지언정 세상에 없는 수준은 아니라 크게 신경 안 쓰고 교류해 온 것이 문제일 뿐.
그러니 다음부턴 저것도 따져 가며… 따져… 잠깐. 세상에 본질이 깨끗한 사람이, 그것도 상계 쪽에서 얼마나 된다고 저걸 따져 가며 교류해.
청산호는 자기반성을 하려다가 바로 포기한 후, ‘본질을 보는 눈’의 허점─계약 안 하고 추종만 하면 알아낼 방도가 없다는 것─만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스윽. 호위를 맡은 전사는 그의 앞에 서서 그를 보호할 준비를 한다.
“네가 네 스스로 앞길을 막은 거지.”
사람들도 거진 대피했겠다, 청산호는 눈치 보지 않고 폭발 마법이 걸린 아이템을 던졌다. 퍼엉! 폭발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 *
마력을 먹는 머맨의 존재는 이번이 첫 등장인가 했다.
나는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진 성벽을 확인한 후 마력을 더 끌어 올렸다. 조금이나마 더 많은 머맨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전체 수만 보면 별 티도 안 날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더럽게 많네, 썩을 생선들……!”
아, 소리치지 마라. 머리 아프다.
나는 터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았다. 마력창은 대상을 인지, 다음 움직임을 예상한 후 그곳으로 쏘아 내야만 타이밍이 맞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지금은 노리는 적의 수가 많으니 생각할 거리도 배다.
솔직히 이쯤 되면 바다에 입수한 다음 가로로 참격이나 슉 날리고 싶다. 높이만 잘 맞으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리스크가 큰 데다가 제법 잔인하지만 성공만 하면 효율적이고 빠를 텐데.
…많이 잔인하고 위험하긴 하지만.
“터진다!”
나는 예민하게 곤두선 감각으로 하여금 날아오는 공격 하나를 잡아챘다. 아까는 늦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퍼엉!
공중에서 폭발이 일었다. 포탑에서도 그 소리가 들려오긴 했으나 아까처럼 진동이 일 정도는 아니었다.
“댁 최고야!”
“마법사인 거야? 그렇게 생겨서 마법사 출신이야?”
야야야야. 등 치지 마세요. 집중 풀리잖아. 지금 마력창 두 개 빗나갔잖아!
아!
나는 흥분해서 내 등을 두들기려는 모험가를 피했다. 이 순간에도 머맨은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어, 나는 열심히 공격을 지속해야 했다.
첨벙!
그때 내가 커버하던 범위 바깥에서 머맨들이 공격을 시도했다. 목적지는 다리였다.
쾅!
와… 지금까진 육안으로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공격하나 했더니, 그냥 무족형 머맨이 육탄 공격으로 꼬리 치기 하는 거였나.
미친놈들.
“다리를 노린다!”
“내버려 둬! 앞에 있는 거나 죽여!”
나는 다리를 꼬리로 내려친 머맨이 도로 바다에 빠지는 걸 보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본인 꼬리가 뭉개지고 부러질 걸 알면서도 저러고 싶나? 보니까 인간만큼의 지성은 있는 놈들 같던데. 악마라서 공포는 덜 느끼는 건가?
“그래도 평소랑 다를 것 없어서 다행이구만. 이번엔 너무 늦어서 쓰나미라도 같이 오나 싶었는데.”
그러던 차, 내 옆옆옆 자리 모험가가 그런 말을 뇌까렸다.
S… T… AY! 플래그 멈춰……!
쓰나미가 올 것 같은 그 발언 멈춰……!
콰앙!
“……!”
저 봐! 당신 말 끝나자마자 뭔가 터지잖아!
나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고개를 쳐들었다.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것만은 확인해야겠다.
나는 발에 살짝 힘을 주었다가 뛰는 것으로, 사다리용 구멍을 통과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한 층 더 가야 지붕이다.
“잠깐, 어딜 가는 거냐! 항명은─!”
탁!
내 몸이 다시 한번 뛰어올라, 기어이 포탑의 꼭대기에 닿았다. 그러자 드문드문 밝혀진 밤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려와! 당신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 해도……!”
퉁퉁퉁.
나를 이곳까지 안내했고, 이곳을 진두지휘하던 병사가 결국 올라왔다. 그는 굉장히 열받은 것 같았으나, 나는 차마 신경 쓸 수 없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잖아! 당장…….”
“저게 안 보이나?”
“…뭐?”
밤바다에 떠 있는 것을 눈에 담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게 될 것이다.
“…저게 뭐야.”
분명 낮에 본 바다 저편은 수평선만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어렴풋하게 육지가 추가되었다.
다소 동그랗고, 거대한 육지가.
점점 커지는 것이 꼭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는 게.
“웬 섬이……?”
그때 파도가 심해졌다. 당연하다. 저것의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저것이 진정 다가오는 상황이라면 놈의 움직임에서 인 물살이 파도가 되어 다가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
그러다 병사가 퍼득 외쳤다. 저걸 보고도 나한테 돌아가라 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탁월한 직업 정신이다.
그렇게 여기려던 순간, 병사가 근처에 있던 기구를 붙잡았다.
탁, 타탁, 탁, 타타탁.
탐조등이었다. 현대의 것과 상당히 흡사한, 다만 전면 가리개를 위로 들었다가 내렸다가 하는 식이라 조금 원시적인 탐조등.
더불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빛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내는 건 지구의 모스부호를 연상시켰다.
다른 도시에선 아직 봉화 수준이더만, 여긴 왜 이렇게 발달되어 있나 싶다.
“후.”
각설하고, 병사가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라고 놀 수는 없다.
저것을 관찰하고 싶긴 하니 차마 내려가진 못하겠고… 사실 머맨을 죽이는 데 위치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
나는 점점 거대해지는 육지를 지켜보며 마력창을 다발로 만들었다. 비처럼 내린 마력창이 여러 포탑 영역을 가리지 않고 수십, 수백 마리의 머맨을 사살했다.
이것으로 내가 죽인 머맨의 숫자만 어림잡아 삼사백이다. 이번 레이드 MVP는 무조건 내 거다. 바란 적도 없고, 쓸모도 없지만. 힝.
“후퇴한다!”
내가 긴장을 풀기 위해 농담 따먹기나 하는 동안, 성벽 쪽에서 신호가 왔다. 좋은 판단이었다.
거리감이 애매한 걸 보면 상대가 어마어마하게 큰 것 같은데, 그런 존재가 여기까지 도달하면 솔직히 포탑은 젠가가 될 것 같거든.
다른 말로, 몸통박치기까지 갈 것 없이 좀 세게 밀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고 할까.
“아래층 놈부터 나가! 나머진 엄호!”
병사는 나를 잊은 사람처럼 나만 두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외침에 안쪽이 좀 술렁이다가, 곧 이동을 시작했다.
머맨들이 몇 번 후려친 까닭에 다리는 제법 아슬아슬했으나 아무도 뭐라 하는 자는 없었다.
암, 뭐라 할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게 본인 목숨 줄엔 도움이 될 터였다.
자, 그럼 내가 이제 생각해야 할 건 저걸 어떻게 잡냐는 건데. 시야와 어둠 때문에 정체가 불확실해서 대책을 세우기가 쉽지 않네.
그래도 뭐, 저렇게 넙적하니 크면 밟을 데가 많으니 싸우긴 쉽겠다. 녀석이 들이받아 성벽이 무너질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까마득하긴 하다만.
“온다!”
“달려……!”
나는 다리를 무너트리기 위해 뛰어오른 머맨의 머리통을 부순 후, 탑을 타고 오르는 녀석들도 처리했다.
하여간 눈치 하난 귀신같은 놈들이었다. 후퇴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 모여드네.
“가라. 엄호는 내가 한다.”
“…빌어먹을. 당신 같은 사람이 제일 안 좋아. 규율이 흐트러진다고!”
그래도 사람이 살잖아.
나는 타박 아닌 타박─저렇게 말한 상대도 정작 표정은 나를 걱정하는 형태였으므로─을 들으며 사람들을 보냈다. 계속해서 형성되는 마력창이 마치 빗줄기처럼 해수면에 계속 내리꽂혔다. 온기 대신 목숨을 앗아 가는 비였다.
“우아악!”
겸사겸사 가까운 포탑도 신경 써 줬다. 그쪽도 후퇴 신호를 받았는지 사람들이 물러가고 있더라고.
“건너와!”
다행히 사람들이 뒤로 물러가는 덴 오랜 시간이 요구되지 않았다.
나는 반대편의 신호를 받고 슬슬 포탑을 떠날 준비를 했다. 마침 마력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라, 넘어가서 정비를 새로 해야 했다.
“어엇!”
“위험해!”
콰앙!
문제는… 그래. 어차피 다 건넜겠다, 아까부터 여러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겠다. 머리가 너무 아프기도 하고 열도 받아서 신경 껐더니만, 몇 마리가 기어이 다리를 후려쳤다.
와르르르. 전에 들었던 말마따나 다리 무너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더 빠른 듯했다.
“……!”
내 몸이 건너편에 닿기도 전, 밟아야 할 다리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