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결국 (6)
이번에 내가 받아들인 의뢰는 모험가 길드를 통해 들어온 지정 의뢰다. 의뢰자는 군, 내용은 정찰 협력인 의뢰기도 하다.
푸르륵.
별개로 말까지 데리고 갈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프레드릭을 데려올 걸 그랬다. 괜히 동선 낭비했네.
“괜찮은 말이군.”
그래도 말을 데려올 시간은 줘서 다행이다.
나는 프레드릭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심기 불편해하던 대장의 눈썹이 올라가는 걸 확인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프레드릭은 범상치 않아 보이는가 했다. 역시 명마 프레드릭이다.
“출발한다.”
“예!”
각설하고, 정찰대 대장의 외침에 병사들이 각 잡힌 답을 내놓았다. 수십 명의 정찰병이 말을 타고 절도 있게 구는 모습은 제법 장관이다. 이번 한정으로 끼게 된 나까지 괜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입대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각다각!
나는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을 따라 프레드릭을 채근했다.
혼자 시원하게 뛰지 못한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던 녀석은 그래도 무리에 곧잘 맞춰 주었다.
통 통 통 하는 리듬의 좌속보가 제법 경쾌했다.
“사람들을 물려라!”
“양옆으로 물러나!”
그리고 그 정도 속도로 거리를 가로질러 성벽에 다다랐을 때, 앞뒤가 깔끔해진 성문이 보였다.
말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목을 정리한 것이다.
“속도를 올린다!”
덕분에 우리는 성문을 나가자마자 속도를 바로 올릴 수 있었다. 두두두두. 다듬어진 흙길 위로 서른 명의 병사와 한 명의 모험가가 탄 말이 내달렸다.
“우로!”
그러나 다듬어진 가도를 달리는 것도 잠시, 정찰이라는 목적에 맞춰 한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먼저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면, 지금 갈 곳은 아마 해변일 것이다.
철썩!
나는 자갈과 바위로 이어진 해안을 힐끗 보며 감탄했다.
서부에서 보았던 해안은 대부분 모래였는데, 여기 베뮈르헨 주변은 죄다 자갈 해안이다. 멀리 있는 곳은 심지어 갯벌처럼 보인다.
“거리를 벌려라! 개펄에 진입한다!”
아, 보인다가 아니라 진짜 갯벌이었네. 그런데 말이 갯벌에도 들어갈 수 있어? 발이 안 빠지나?
나는 의아함과 놀라움을 목구멍 뒤로 삼키며 병사들을 따랐다. 되니까 가는 거겠지. 그런 심정이었다.
촤악, 촤악.
역시나 말들은 빠지거나 하는 일 없이 물을 튀기며 개땅 위를 내달렸다. 바닥을 이룬 흙이 내가 아는 갯벌의 그 질퍽한 뻘이 아니라, 물에 잠긴 모래에 가까워서 가능한 일 같다.
푸드드득.
습지 위에 존재하던 새들이 말 무리를 피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머맨 및 세이렌 따위를 발견한다면 즉시 신호를 보내!”
그보다 이렇게 달리면서 주변만 살피면 끝인 건가.
이상한 걸 발견하면 신호를 주면 된다고 부대장이 설명하긴 했는데, 그 ‘이상한 게’ 뭔지 알아야지.
생각할수록 나를 왜 고용했는지 의문만 든다. 나는 곁눈질로 속도를 맞추며 사위를 살폈다.
문득, 저기 수평선에서 약한 움직임이 보였다.
파도인가? 그런 것치곤 좀 부자연스러운데… 꼭 뭐가 물장구치는 것처럼 물이 철썩철썩 튀는 게…….
“우측 3시 방향, 물장구!”
내가 그것을 보다 확실히 살피려는 순간, 누군가 외쳤다. 우측 3시면 내가 발견한 것과 위치가 거의 동일했다.
“전원 습보!”
오… 그냥 물장구만 보여도 말하는 거구나.
나는 다음 발견부턴 그냥 말하기로 하며 말 머리를 틀었다.
“무족無足형 머맨 한 마리! 낙오 개체로 추정!”
“한 마리가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곧 얕은 지표면 사이로 인어를 닮은 것이 보였다. 녀석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물골에서 막 빠져나와 바닷물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썰물 때 빠져나가는 타이밍을 놓친 모양인데… 하필 무족형─여기와서 알았는데 머맨은 다리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고 한다─이라 나가지도 못하고 구덩이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낙오 개체란 말이 딱 어울린다.
“모험가, 실력을 보겠다! 사살해라! 나머진 속도를 줄인다!”
근데 머맨이 너무 납작 엎드려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지가……?
“부대장, 도와!”
“옛서.”
아, 깜짝이야. 내가 호명될 줄은 또 몰랐네.
“속도 줄이지 말고 머맨 있는 곳까지 전진하십쇼! 적당한 거리에서 지급한 작살을 던져 고정하면 됩니다!”
엄격한 대장과 달리 데브처럼 유들유들한 부대장이 내게 슬 외쳤다. 아까 설명 들을 때 겪어 본바 제법 친절한 사람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장창으로 확인 사살 필수입니다. 말 발목 잘리는 꼴 보기 싫으면 접근할 때 주의하고요!”
대장과 마찬가지로 내게 호의적이진 않지만, 성정 자체가 넉살 좋아서 친절한 쪽이랄까. 덕분에 여러모로 도움받는다.
“어찌, 자신 있으십니까? 확인 사살은 제가 해요?”
“그냥 죽이면 되나.”
“예. 붙잡는다고 심문할 수 있는 놈들은 아니니까요.”
별도로 저걸 붙잡아서 뭐 할 건 아니란 거지. 그럼 굳이 저기까지 갈 것 있나? 그냥 여기서 죽이지, 뭐.
서걱!
나는 지급받은 작살 대신 장검을 뽑아 검기를 사출했다.
마력창으로 죽일까 검기로 죽일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건데… 고른 이유는 하나다.
대장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고, 마력창은 잘 안 보여서 마력창으로 죽이면 혹시라도 못 보고 의심할 것 같았다.
“오…….”
“…뭐야?”
반면 검기는 색이 검어도 크기 때문에 잘 보이는 편이니까.
“멈춰, 멈춰.”
히이잉!
내 노림수가 최소한 부대장에게는 먹혔나 보다. 그가 놀란 얼굴로 말을 다급히 멈춰 세웠다.
첨벙첨벙. 나도 프레드릭에게 같은 신호를 주었다.
“검, 검기가 날아가기도 하네…….”
부대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눈을 껌뻑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확인할까요?” 그의 시선은 대장에게 닿아 있다.
“…일단, 확인하도록.”
“허, 몸뚱이가 반으로 쪼개졌는데도 살아 있으면 머맨이 아니겠지만. 알겠습니다.”
부대장이 고개를 양옆으로 기울인 후 천천히 말을 몰았다.
“머맨 볼 거면 당신도 오십쇼. 본 적 있으면 안 와도 되고.”
앗. 그러면 볼래.
나는 부대장을 따라 통 통 통 나아갔다. 출발하기 전, 그림으로 머맨의 모습을 확인하긴 했으나─게임에서도 보긴 했지만─실물로는 본 적 없는 까닭이다.
“…미친. 이게 이렇게 쉽게 죽네.”
그리고 그렇게 확인한 머맨은 말 그대로 인어의 형상이었다.
비록 보통 매체에서 묘사하는 인어와 달리 해양 생물에 더없이 가까운, 원작 영웅전설에서도 ‘와! 크툴루 친족!’ 했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툭툭.
나는 부대장이 장창으로 머맨을 툭툭 찌르는 걸 지켜보다가, 그가 머맨과 두는 거리를 가늠하는 쪽으로 신경을 돌렸다.
어쩐지 창을 3m짜리─가운데 분리가 가능해서, 말에 탄 상태엔 1.5m짜리 두 개로 나눠 둔다─로 주더라니, 저 정도로 거리를 벌려야만 하나 보다.
“죽은 건 확인했으니까… 돌아갑시다. 모험가 형씨, 제법이네요.”
“내버려 둬도 되나.”
“수습할 여력이 없어요.”
그렇구만…….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며 일행 곁으로 다시 돌아갔다. 다시 본 대장의 얼굴은 표정이 아까보단 누그러져 있다.
“괜히 추천한 건 아니었나 보군.”
내 검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모험가, 앞으론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니 처리한 후엔 알아서 따라붙도록!”
그렇지만 대우가 바로 좋아지진 않았다. 원래 그러한 성격 같았으므로 억울하진 않았다.
정찰 겸 머맨 정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 * *
“이곳에 자리를 잡는다!”
정찰은 내일까지 진행된다. 다른 말로는 노숙으로 오늘 밤을 넘겨야 한다는 거다.
“3조, 나와 함께 주변 정찰에 나선다. 4조와 5조는 말들을 보살피도록. 6조는 경계를 담당한다.”
“예!”
“부대장, 내가 없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라.”
“옙.”
식사도 그렇다. 점심은 빵으로 대충 넘겼으나, 저녁까지 그럴 순 없었다.
“자, 들었지? 4조, 5조는 어서 말들 관리하고, 6조 적당히 거리 벌려서 사주 경계 시작한다. 1조, 2조는 식사 및 야영 준비!”
해서 여섯 명씩 나뉜 조, 나로 인해 한 조만 7명인 조가 각자 맡은 일을 시작했다.
그중 내가 속한 1조는 어쩌다 보니 식사 준비 및 조리 담당이다. 2조는 야영 준비.
“그, 모험가 형씨.”
한데 불피우기를 자청한 부대장─대장과 부대장도 1조다─이 그 일에 나를 끌어들였다. 아무래도 나랑 대화하고 싶었던 듯하다.
“혹시… 기사 출신입니까?”
그러나 어울려 주기에 내 코가 석 자라 말이다…….
직접 불 피울 일이 몇 번 없어서 이런 건 아직도 서툴다.
나는 바닥의 돌을 고르고, 근처 시내로부터 물을 끌어오기 위해 도랑을 파는 2조를 부러워하며 부싯돌을 열심히 움직였다.
운 좋게도 세 번 만에 불이 붙었다.
“정찰에 필요한 정보인가.”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답하지 않겠다.”
별도로 착잡한 마음에 너무 칼같이 대응한 걸까. 부대장이 살짝 머쓱해했다.
“좋아요. 이제 솥을 걸자고요.”
요리를 하려면 솥을 걸어야 한다. 나는 요리 재료를 다듬는 나머지 병사를 힐끗 보았다가, 부대장을 도왔다.
물론 몇 번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보다 못한 부대장이 뺏어서 다 해 버렸다. 나 하는 꼴이 너무 답답했나 보다.
“이봐요 형씨, 모험가 맞아요?”
“…….”
모험가 주제에 이런 거 못 해서 미안하다…….
나는 할 말이 궁해졌다.
“…요리는 좀 합니까?”
“…할 줄은 안다.”
이쪽도 비슷했다.
내가 요리를 극단적으로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 만화 캐릭터처럼 연금술사 수준으로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좀… 설익히거나 좀 태우거나 하긴 하거든. 아니면 둘 다 하거나.
“…….”
“…….”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세상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거니까.”
그, 그렇게 말해 줘서 감사합니다…….
나는 오묘한 표정으로 부대장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사실 남을 위해서라도 그러는 게 맞긴 했다.
암, 캐붕이라곤 하나 과한 수준은 아니고 맛없는 요리를 먹는 것보단 낫잖아……. 일행이랑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신 저쪽 천막 치는 거나 도와주십쇼. 어차피 요리는 나 혼자서도 가능하니까. 다 한 다음에는 2조 쪽 일 도와주시고.”
그 정도야, 뭐.
나는 우리 조에 대장이 있다는 이유로 요리 준비에서 빠져 혼자 천막을 치게 된 병사를 도와주었다. 대장 전용─다른 말론 1인용─천막이기에 큰 힘이 들지는 않았다.
2조의 고랑 파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냇가와 거리가 있긴 하나 예전에 정비해 둔 구석이 있고 장정 일곱 명이 달라붙으니 그 일도 뚝딱이었다.
“식사 준비는?”
“다 됐습니다.”
얼마 안 가, 병사 몇 명과 함께 캠프 주변 위협 요소를 확인하러 간 대장이 돌아왔다.
“1조부터 3조까지 먼저 먹는다. 나머지는 경계를 선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식사는 교대로 이뤄졌다.
1조, 2조, 3조에 속한 이들이 서둘러 음식 앞으로 모였다.
“어디 출신이지?”
한데 막 음식을 나눠 받던 도중, 대장이 내게 질문했다.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다.
“어느 기사 학교를 나왔냐는 거다.”
아, 그런 뜻이었나. 이걸 대장도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뮌문트? 체체바토르? 하르손? 하데네루? 오슬라? 아니면 남쪽의 자이다드?”
나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세계의 기사 학교에서 봤던 이름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말해야 할 이유가 있나.”
“말하기 싫다면 상관없다.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으니까.”
다행히 대장은 집요하게 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딱딱 떨어지는 성격이 이땐 도움이 되었다.
“다 먹은 자는 뒤의 조가 식사할 수 있도록 그릇을 닦고 와라. 단, 반드시 2인 이상 움직이도록.”
정찰대의 대장, 디트리히는 모험가의 빈 그릇을 발견한 후 넌지시 말했다.
도시에서 정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 줬다곤 하나, 이런 사소한 것까지 전달받았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다 드셨으면 오세요.”
역시나 그 말이 있고, 눈치껏 나서 준 병사까지도 생기고 나서야 모험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바로 알아듣고 움직이는 게 합류의 순간과 달리 제법 마음에 들었다.
괜히 성주님께서 직접 추천하신 게 아닌가 보다.
“대장.”
오히려 지금 와선 부대장보다 더 나은지도 모른다. 그녀는 쓸데없이 말 많은 부대장을 노려보았다.
“아, 딱딱하게 굴지 마시고요.”
그러나 부대장은 그녀보다 먼저 정찰대에 들어온 사람이고, 말주변 없는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다.
“아까 모험가가 한 일, 대장도 가능합니까?”
“…아니.”
그녀는 그 이상 눈치 주는 대신, 순순히 답을 내놓았다.
“그럼 그 어디냐, 대장이 나온 학교 사람들도 못 해요?”
“그래.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그 대답이 그녀의 위상을 깎아 먹을 수도 있다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부대장이 그러하듯, 지금 있는 병사들은 그녀와 이십 년을 함께한 자들뿐이었다. 이깟 대답으로 그녀의 권위는 꺾이지 않는다.
“다른 곳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더불어 아까 모험가가 해낸 일은, 그녀가 할 수 없다고 해서 자존심 상할 만한 게 아니었다.
저건 해내는 사람이 이상한 쪽이다.
“마력을 형상화하는 것도 모자라 날릴 수 있는 수준의 마력이면 마법사를 했지, 기사를 하진 않을 테니까.”
“그런 겁니까?”
“흠… 그냥 기사 하고 싶어 하는 괴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어렵다. 내가 배운바, 마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체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들었으니까.”
평상시 활동이야 문제없다지만, 그것도 딱 거기까지다. 마법사가 될 수 있는 마력 사용자들은 대부분 몸치─현직 기사 기준이다. 일반인 기준으론 평범하다─였다.
반사 신경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가 주인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몸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얼추 따라오는 자들은 있다고 들었으나… 그래도 저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마 저 모험가가 특이 케이스인 거겠지.”
그녀는 그리 말하며 몇 년 전 돌아가신 은사를 떠올렸다.
그분과 그분 자식이 딱 그런─노력으로 마력의 방해를 극복해 낸─유형의 사람들이었는데. 더는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된 이들의 존재가 그녀를 잠시간 음울하게 만들었다.
“…그럼 왜 모험가를 하고 있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부대장의 말을 듣고 정신 차렸다.
“개인의 의사다. 존중해라.”
“그렇긴 한데… 좀 아까우니까 그렇죠. 우리 도시에는 기사가 열 명뿐이니까.”
보통은 열 명도 많은 축에 속한다. 내지, 우리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특성상─머맨을 죽이는 데 필요한 건 정교한 검술이 아니라 더 많은 작살질이었으므로─기사 열도 많이 투자한 쪽이다.
그녀는 그리 답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편인 그녀라도, 자신의 쓸모를 구태여 깎아 내고 싶진 않았다.
“맞아, 맞아. 검문소에서도 저주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나아가는 게 모험가보단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던데.”
“……? 아, 마가리타를 구해 준 게……?”
“어. 같은 사람일걸. 며칠전 악마숭배자 잡는 데 협력하기도 했고.”
“그럼 진짜 아깝다. 모험가는 악마사냥 잘 안 하잖아. 그 재능을 그렇게 썩히네.”
“그것도 모험가마다 다른 거지. 그리고 그 사람, 알아보니까 악마사냥으로 이름 높던데……?”
“엥, 진짜냐?”
“부대장님은 은근히 이런 소식에 약하다니가요……. 저 모험가, 이명이 악마기사잖아요. 악마랑 범죄자 킬러.”
대신 부대장이 포문을 텄다고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한 병사들을 잠시 내버려 두었다.
성정에 맞는 일은 아니나, 저러면 무거운 주제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는 학습의 행위였다.
“근데 왜 악마기사야? 악마를 많이 잡아서? 악마인 기사라고 오해하면 어쩌려고.”
“그런 의미도 없잖아 있을걸요……? 무자비하고 냉혹한 데다가 싸우는 모습이 너무 악귀 같대서 붙었다고 들었으니까……. 인간 같지 않을 정도로 강하단 의미도 있는 것 같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한테 악마를 빗대냐. 그리고 그렇게 자비 없어 보이진 않던데?”
“혹시 모르죠, 진짜 악마인…….”
그러나 그것이 가벼운 잡담을 너머, 한 사람을 모욕하는 수준까지 간다면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무례한 추측은 삼가라. 악마란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불결한 것인지 알면서 감히 비유하는 데 쓰는가.”
“…죄송합니다.”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본질을 보아라. 소문은 단서지, 모든 조각이 모인 퍼즐이 아니다.”
“넵.”
소문에 완전히 귀를 닫고 살며 세상사에 어두운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하나 소문에 휘둘릴 만큼 귀를 열어 두는 것도 좋지 않다.
“그리고 그는 용사의 동료다.”
그녀는 병사에게 그것을 말한 후, 그들의 의심을 종결할 마지막 단서를 던져 주었다.
그건 그녀가 반발을 억누르고 저 모험가를 정찰에 합류시키는 데 동의한 이유기도 하다.
“예?”
성주께선 머맨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앞선 정찰대에선 병사 하나가 죽고 하나의 다리가 잘렸다.
이 상황에서 정찰대에 더 좋은 실력자를 합류시키는 건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그게 저만으론 부족하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그녀의 자존심이 약간 상하긴 했지만, 모험가의 무력을 목도한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고.
“그러니 쓸데없는 말은 삼가라.”
“와…….”
“용사가 우리 도시에 와 있었어요?”
“삼가라 했다.”
괜히 말했나. 같이 싸울 확률이 높은 만큼, 슬슬 용사의 방문을 공개할 것이라고 성주께서 말하셨기에 미리 일러 준 것인데.
“근데 용사라면 악마의 사주를 받아 비류호 님을 죽였다고…….”
“…….”
“옙. 그럴 리가 없겠죠.”
그녀는 웅성대는 병사들을 두고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피유웅, 따닥!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모두에게 지급되어 있는 신호탄이 밤을 밝힌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대장!”
동시에 그릇 씻으러 갔던 인원들이 우르르 돌아왔다.
“머맨들이 옵니다!”
무언가 일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