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결국 (4)
어렵사리 성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다신 성 밖으로 몰래 나가지 말아야지. 그런 다짐은 덤이었다.
콰앙!
“잡아라!”
“한 놈 빠져나간다! 쫓아!”
“놓치지 마라!”
그런데 이 소란은 뭐람.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거리가 어수선하단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새벽녘부터 체포 작전 및 추격전을 벌이는 듯했다.
“비키지 않으면 죽……!”
다만 그 속에서 나는 고찰했다.
망할 사건들은 왜 하필 나의 근처에서, 내가 돌아가는 길에 터지는가에 대한 고찰이었다.
퍼억!
“커억!”
“버러지가…….”
하나 더한다면 이것도 있다. 이놈의 범죄자 자식들은 얼마나 운이 없으면 이 많은 거리를 두고 하필 내가 있는 곳으로 오냐.
심지어 해가 뜰락 말락 한 시간대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꼴랑 나 하나뿐인데도.
헉. 아니면 설마 이것도 하나의 음모인가? 미쳐 버린 우연으로 나를 골탕 먹이고자 하는 세계의 계략?!
“끄으으으.”
그럴 리가 있나.
나는 과대 해석을 빠르게 쳐 내며 이놈이 대체 어떤 범죄자인지 대강 추측을 해 보았다.
일단 경비대가 빠르게 따라붙는 점이나 시간대로 보나, 경비대 쪽에서 작정하고 기습 작전을 펼친 것 같긴 한데.
“당신은……!”
“가져가라.”
“악마숭배자 체포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악마추종자일 것까진 없잖아.
저번 사건─검문소 폐쇄를 불러온─때문에 대대적으로 소탕 작전을 펼친 건가? 며칠 안 됐는데도 잘 찾았네.
“끄윽.”
어찌 됐건 체포될 만한 대상인 건 매한가지다.
나는 내가 제압한 이를 경비대에 넘겨주었다. 명치 한 대 맞고 바닥에 패대기까지 쳐져서 그런가, 녀석은 엄청나게 끙끙거렸다.
“아, 도움에 감사합니다.”
“비, 빌어먹을……!”
“가만히 있어!”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경비대원은 제압된 이에게 추가로 폭력을 쓰기도 했다.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말릴 의향이나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제기랄! 시기께서… 시기께서 계셨더라면… 너희 따위는!”
“……?”
한데 어째 내가 죽인 이름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잡혀 가는 악마숭배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와서 새삼 잡아다 심문할 필욘 없지만… 시기의 이름을 외치는 걸 보니까 시기의 추종자들인가 보지. 근데 시기 이미 죽었잖아. 추종할 가치가 있나?
“닥쳐!”
퍼억!
“컥!”
나는 시기의 추종자들이 왜 여기 있는지, 왜 전 애인처럼 구질구질하게 굴고 있는지 고민해 보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악마숭배자들은 마치 바퀴벌레와 같아서, 왜 여기 있냐고 사유하는 건 큰 의미가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잠이나 자자…….”
결정적으로 새벽 대련 때문에 잠을 몇 시간 못 자서 좀 졸리다. 나는 다시 여관으로 기어올라 갔다.
쾅!
“잡아라!”
…그리고 다시 내려왔다. 아무래도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도시에서 작정하고 수색하는 것이 맞나 보다. 정말 사방에서 소란이 그치질 않네.
* * *
인퀴지터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소탕… 말입니까?”
“예, 방금 작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체포한 자들은 현재 심문실로 이동된 상태입니다.”
도시에 숨어 있었던 악의 종자들이 전부 붙잡혔다니. 좋은데 어딘가 얼떨떨한 소식이었다.
그녀는 일단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덜컥. 와중에 그녀의 다른 손은 의자를 뒤로 빼, 엉덩이를 붙인다.
“알았다면 저도 도왔을 텐데요.”
악의 무리를 토벌할 줄 알았다면 기도는 잠시 미뤘을 것이다. 인퀴지터는 그 사실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인퀴지터의 마음을 누군들 모르겠습니까만… 땅콩 깨는 데 대망치까진 필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분명 그들로도 충분하니 협력 요청을 보내지 않은 것일 겝니다.”
그러나 아크메이지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선택지가 없다면 모를까, 알맞은 수단이 있는데도 지나치게 과한 힘만을 동원하는 건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인퀴지터는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그보다 정보는 대체 어떻게 얻었답니까?”
“나도 모르네. 이건 전적으로 경비대 쪽에서 꾸민 작전이니까.”
그사이, 그녀보다 아주 조금 더 빨리 온 이가 질문을 던졌다. 아크메이지의 손이 본인의 턱을 쓸었다.
“신전은 단지 만일을 대비해, 그리고 효과적인 제압을 위해 협조 요청을 받은 정도에 불과하다고 들었네만.”
“흐음.”
“무슨 문제 있나?”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뺀질이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여서 좋았던 적은 별로 없다.
인퀴지터는 단숨에 표정을 굳히고 대화에 집중했다. 혹시 몰라서였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다 찾아낸 것이 좀 이상해서요.”
그런… 가? 하긴 그럴지도 모른다. 악마숭배자들은 마치 좀벌레와 같아서, 세상을 끊임없이 갉아먹되 쉬이 발견되는 일이 없었다.
죽여야 하고, 죽이고 싶지만, 우연이 아니면 눈에 잘 안 띈다는 말이다.
“나도 그 지점에는 좀 신기했네만… 베뮈르헨의 경비대는 본래도 악마추종자들을 1년에 한두 무리씩은 색출해 내는 편이네. 하니 이번도 열심히 일한 결과가 아니겠나.”
“그래도 1년에 한두 무리 잡는 거랑, 지금처럼 7개로 산개해 있는 잔당을 단번에 체포하는 건 차원이 다르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은 없네만… 며칠 전 일의 여파 또한 나름대로 있지 않겠나?”
“…경각심이 들어서 더 열심히 수색했다? 하긴.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죠.”
그러나 아크메이지와 뺀질이가 대화하며 서로 수긍시키는 걸 보면, 그녀의 귀도 잇따라 얇아졌다. 역시 경비대의 노력……?
“그래도 너무 빨리 찾은 것 같은데……. 아무리 경각심이 들었다지만 고작 며칠이 흘렀다고 지금껏 안 보이던 걸 딱…….”
아, 아닌가……?
“거기에 머맨들의 움직임을 경계하느라 정찰대도 꾸준히 보내던데. 경비대도 결국 군인인 걸 고려하면 인력이 모자라지 않나?”
“그럼 자네는 뭘 의심하는가?”
“아니, 뭘 딱히 의심한다기보다는… 걱정이 된다는 거죠.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한 결과물이라면… 뭘 노리고 이런 걸지도 모르니까.”
“틀린 시각은 아니군. 문제는 이게 계획적인 소행일 경우, 대체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을 벌였냐는 것인데…….”
인퀴지터가 혼란해하는 사이 아크메이지와 데스브링거는 꾸준히 의견을 나누었다.
“같은 악마추종자들의 짓이라 가정해도… 그들에게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있나 싶네. 성문에서 일을 벌였던 이상 언젠가 발각되긴 했겠으나, 그래도 남겨 뒀다면 이용해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같은 악마추종자가 아니고서야 놈들의 위치를 훤히 아는 자가 있을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야. 애당초 한패가 아니고서야 악마숭배자의 위치를 알면서도 지금껏 침묵했을 리 없지.”
“그럼 뭔가 얻을 만한 게 있다는 건데… 그게 있나?”
“…이건 심문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군.”
안타깝게도, 그들로선 아직까지 답을 낼 수 없었다. 그들은 결국 결론 내기를 나중으로 미뤘다.
“기왕 사건 터질 거면 검이 완성된 후에 터졌으면 하네요.”
“그건 동의하는 바네. 며칠이면 완성될 것이라 했으니…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군.”
“수프는 어디 놔 드릴까요?”
“아, 이곳에 놔 주게. 고맙네.”
“별말씀을요.”
대신 그들은 나오는 음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치를 피하되 간소하지는 않은 음식들이 하나둘 식탁에 올라왔다.
“…늦네요.”
다만 뺀질이의 말마따나, 이쯤 되면 와야 할 사람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베르세르크께서 보이지 않는군요.” 하고 인퀴지터는 눈을 껌뻑이며 동조했다. 괜시리 또 한 사람의 빈자리가 생각나, 기분이 눅눅해진 건 여담이다.
“그녀라면 이미 늦을 거라고 말하고 갔네.”
그러나 아크메이지의 말로 인해 그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둘 수 있었다. 답하는 아크메이지의 얼굴이 평온하니, 큰 문제 없을 거란 판단이었다. 물론 그녀가 앞서 베르세르크의 거절을 받아 보았고, 악마기사의 일까지 겹치면서 타인에게 개입할 자신감을 잃어버렸음을 알았다면 그렇게 태평하진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떤 식으로 단련을 할 생각이기에 늦는다는 말까지…….”
“훈련이 아니라 강자를 만났다든가……?”
“그것도 말은 되네요.”
하나 모르기에 안심하며 기다리게 된다. 나아가 그럴싸한 추측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보다, 기준점 높은 투사 나리가 인정한 강자라. 누군지 궁금하네요.”
나름 맞긴 맞는 추측이었다. 대상이 되는 사람이 그들이 아는 누군가라는 건 꿈에도 몰랐지만.
* * *
여관에서 한 시간 자고 간다는 게 세 시간을 내리 자 버렸다.
나는 수면 시스템의 허점─설정한 시간을 자고 깬 다음 내가 다시 자 버릴 수도 있다는─을 새삼 깨달으며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언제나처럼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늦었다고 화낼 줄 알았던 이는 다크서클이 심하게 진 얼굴로 작업에 몰두하는 중이다.
과학실에서나 볼 법한 플라스크 몇 개와 부글부글 끓는 냄비가 어쩐지 그를 연금술사처럼 보이도록 했다.
스윽.
나는 벗은 코트를 곱게 접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러나 마이스터는 어째 관심도 주지 않았다. 지금 하는 작업이 더 중요한가 보다.
“후.”
그러다 잠깐. 한참 만에 시약병에서 손을 뗀 이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저기, 마력 넣어 줄 거.”
몇 개의 배터리가 다른 탁자 위에 쌓여 있었다.
내가 어제 공방을 떠난 시간이 7시이고, 그때까지 만들었던 배터리에 전부 마력을 넣어 주고 갔던 걸 고려하면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대체 언제 만든 거지? 내가 오늘 좀 늦은 걸 감안해도 만들 시간이 없는데.
…혹시 얘, 밤 샜나?
“후우.”
움직이는 모양새도 지난 며칠간 봐 온 것에 비하면 피로감이 상당히 짙다.
나는 배터리에 마력을 넣어 주며 마이스터가 만들던 것을 보았다. 시약병에 담겨 있어서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었다. 과학 연구라도 하는 건가.
“죽겠다…….”
뭐…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나는 마이스터가 앓는 소리 내는 걸 구경하며 카우치에 앉았다. 문득 고까운 시선이 느껴진다 싶으면 그건 마이스터의 것이다.
“졸리고 배고파.”
그는 대단히 건조하고 담백한, 어쩌면 내려다보는 느낌마저 드는 말투로 말했다.
“배고프다고.”
덕분에 나는 그의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었다.
아무렴,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결벽증 있고 예법에 집착하는 외모가 화려한 귀족 캐릭터 1’처럼 생긴 주제에 애처럼 칭얼거리는 걸 어떻게 바로 매치하겠는가. 뇌부터가 바로 이해하길 거부하지.
거기에 말 내용도 그렇다.
네가 배고픈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컨셉 이전에 넌 나하고도 안 친해……. 우리 이런 대화 나눌 사이 아니야…….
“피로를 핑계로 지능을 포기했나.”
나는 경멸보단 반보 뒤에 있는 감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내가 그에게 몇 번 호의를 베풀긴 했지만, 그게 심부름꾼까지 돼 줄 수준은 아닌 까닭이다.
“그 정돈 아니니까 그 시선 좀 치우지.”
그리고 그걸 마이스터도 안다. 그는 더 이상 칭얼거리지 않았다.
“거래하자.”
대신 다른 걸 제시해 왔다. “모험가랬으니 의뢰란 말이 더 어울리려나?” 처음부터 이것을 상정한 듯, 이어지는 말은 깔끔하다.
“내용.”
“물품 전달.”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이드퀘스트 등장이었다. 그러니까, 평화롭고 소소하고 단순하단 점에서.
“설마 사소하단 이유로 거절하진 않을 거라 믿어. 제 잇속만 챙기는 추잡한 모험가들이야 임무를 가려 받는다지만, 설마 당신쯤 되는 사람이 그러진 않겠지.”
심지어 마이스터는 내 컨셉의 자존심까지 챙겨 주었다.
거절하지 못하도록 살살 긁되, 대놓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어쩔?’이라고 역으로 강하게 나올 방도조차 없애 버렸단 말이다.
“…약은 수를.”
“칭찬 고맙네.”
“물품이나 말해라.”
덕분에 결과적으로 거절하면 나만 옹졸한 사람이 되게 생겼다. 나는 신경질적으로─속으론 소소한 사이드퀘에 기뻐하며─그를 채근했다.
“일단 저 완성품들을 각 의뢰자에게 전해 줄 것. 그게 첫 번째야.”
한데 ‘물품 전달’이라는 말 안에 꽤 많은 것이 들어가는지, 마이스터의 말이 미묘하게 길어질 뉘앙스를 풍겼다.
“완성품을 전달할 때마다 의뢰자들이 잔금을 줄 거야. 그 대금을 받아서 지정한 재료를 살 것. 그게 두 번째.”
“더 있나.”
“살 재료 중에 2차 가공이 필요한 재료들이 있어. 그 재료들을 해당 공방에 넘겨주고 가공 의뢰를 맡길 것. 그게 세 번째.”
네 번째는 남은 재료를 제게 조달하는 것이라며 마이스터는 말을 마쳤다.
간단한데 굉장히 왔다 갔다 해야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 이것도 포함해야지. 이 병과 편지를 성에 전달해 줘. 문지기에게 내 이름을 대고 맡기면 알아서 할 거야. 의뢰품이 아니니까 대금은 안 줄 거고. 그냥 전달만 하면 돼.”
음.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라고 정정해야겠다.
“참고로 오전 시간 안에 다 해 줬으면 해. 지금이야 일이 밀려서 장비 연구를 못 하지만, 오후엔 짬짬이 틈이 날 것 같으니까.”
거기에 시간제한까지.
미룰 생각이야 없었으니 시간제한은 있으나 마나지만, 정말 효율적으로 사는 것 같다. 내가 밖에 오래 있으면 장비 연구를 못 한다는 점까지 생각해 두네.
“금액.”
“흠. 10만…….”
10만?
“…20만 갈.”
지긋이 내려다보는 내 시선에 마이스터가 말을 바꿨다. 지금까지 해결해 온 의뢰에 비하면 매우 적은 것 같으나, 자세히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금액이었다.
아니, 오히려 좀 많은지도?
기억하기로, 하수도 청소 하던 의뢰가 사십인가 오십인가 했으니까.
목숨 걸고 악마를 잡는 의뢰가 그러한데 단순한 배달 의뢰가 20만이면 나쁜 편은 아니다. 아마도.
“대신 물건이 파손되거나, 잘못 배송되거나, 배송 중 잃어버리거나 하면 네가 배상해.”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럼 나야 좋고.”
마이스터는 그리 말한 후,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올 때 네가 묵는 여관에서 포리지 좀 사 와.”
그래, 배가 고프댔지. 시킬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