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결국 (1)
“오호통재라. 환기 시스템이 담배 연기를 못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다니. 제보하면 회사에서도 박수 치며 환풍기 개선을 도와 달라 초청할 듯.”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친구가 거침없이 현관문을 뜯고 들어왔다. 허락 없인 들어올 수 없도록 시스템을 다 바꿔 놨더니 이젠 물리적 수단을 쓴 듯하다.
“참고로 네 부모님이 허락하신 거다.”
“크, 이런 친구들이 세상에 어디 있냐.”
뜯은 문을 한쪽으로 치우던 놈들은 그따위 말이나 지껄이고 있다.
“…나가.”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너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한발 나아가 담배 좀 줄여 보는 게 어떨까? 이렇게 종종 찾아오는 앙큼한 비흡연자를 위해서라도.”
“아오 신발, 저 새끼 왜 또 지랄이야.”
“냅둬. 북두칠성 빡쳐서 힘나게 만들 작정인가 보지.”
짜증난다. 피우던 담배를 잘근잘근 씹으며 진행하던 게임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사박. 통 넓은 바지가 시야 한편을 가렸다.
“비─.”
“깜찍한 비흡연자가 부탁했죠? 그러면 들어줘야겠죠?”
게임 화면이 안 보이는다는 것에 화를 내기도 전, 입에 물려 있던 담배가 쏙 하고 빠져나갔다.
뚜룩, 뚜뚜뚜루뚜루뚜.
더불어 캐릭터도 사망했다. 시야가 가려졌을 때 판단을 잘못한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엔딩을 코앞에 두고 노 데스 글리치리스 스피드 런이 깨졌다. 생애 최초의 스피드런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되나 보다.
“오오, 북두칠성 개빡친 표정. 존나 귀해.”
“저거 당하고도 화 안 나면 그게 생불이지. 미친. 와, 내가 더 킹받네.”
시발.
나는 사망 효과음이 뜨자마자 게임기를 던지고 얼굴에 손을 덮었다. 어떻게 너희까지 그래. 부글부글 차오르는 화와 설움이 머리를 후려쳤다. 이유 없이 눈가가 뜨거워졌다.
“우냐? 울어?”
“뭐? 북두칠성 울어!?”
“우는 사람한테 우냐고 물어보면 어떡하니, 얘들아. 그냥 창문이나 열어. 담배 냄새 독해서 죽겠으니까.”
“이장화, 네가 제일 쓰레기 같으니까 배려하는 척 놀리지 말고 그냥 입 다물어. 김태균, 강정희 너희도 적당히 놀리고.”
“와, 선비 왔다!!”
“꼰대다! 도망쳐라!!”
“잠깐, 선림아. 나 억울해. 내가 뭘 했다고?”
그사이, 또 한 사람이 합류했다. 신발, 닭강정, 찻잎광인, 선비. 평상시 몰려다니던 놈들이 다 모인 거다.
“강정희, 너는 커튼 치고 창문 열어. 김태균, 넌 네 분신들 줍고. 이장화, 너도 적당히 깝치고 태균이 도와서 쓰레기 주워.”
“네, 훈장님.”
“잠깐, 내 분신이 쓰레기면 나 쓰레기란 거잖아.”
“깝… 나 안 깝쳤어! 박선림, 이제 보니 누명 씌우는 데 고수네?”
“장화야, 그게 깝치는 거야. 그러니까 닥치고 쓰레기 주워.”
떠드는 목소리들이 익숙하다가도 짜증난다. 아니다, 고마웠다. 고마운데 싫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창피하고, 억지로 일으켜 세워지는 것도 싫었다. 제발 혼자 뒀으면 좋겠다. 왜 귀찮게 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와, 억울해. 난 시키기도 전에 담뱃갑 줍고 있었는데, 내가 왜 깝친다는 평가를.”
“아냐, 신발이 넌 내가 봐도 깝치는 게 맞긴 해.”
“닭강정, 너도 그러기야?”
“그만 싸우고 너희 이거 봐 봐. 쓰레기 봐라. 이 자식 청소기 안도 안 비운 것 같은데?”
“어디? 헐, 진짜네. 나 먼지 이렇게 쌓인 거 처음 봐. 청소기 제때제때 안 비우면 이렇게 되는구나.”
어두컴컴하던 방이 열린 커튼과 켜진 전등으로 인해 밝아진다. 밀폐된 채 담배 연기만 가득하던 공기도 퀴퀴함을 벗겨 낸다. 먼지와 쓰레기가 가득한 바닥도, 가구도 마찬가지다.
“빨래도 안 했네. 그동안 뭐 입고 살았냐?”
“선비야, 냉장고 안도 가망 없는데? 아무래도 요리는 못할 듯.”
“…뭐, 어차피 나갈 거였으니까 괜찮아. 그렇지만 냉장고 정리는 좀 해야겠다. 다 버려.”
“오케이.”
“선림아, 얘 휴지도 거의 다 썼어. 새로 사야겠는데?”
“그래, 잘했어. 또 뭐가 부족한지도 찾아봐. 이참에 다 사 놔야지.”
빨 생각을 하지 않아 불어 터진 빨래 통도.
요리 재료 없이 인스턴트만 가득한 냉장고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엉망인 기타 필수품도.
“가…….”
“친구야, 사람이면 사람답게 말해야지. 네가 지금 인간으로서의 품위 전반을 포기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언어 습관까지 짐승으로 회귀할 필욘 없잖아.”
“시발 놈들아, 가라고…….”
“응, 우린 사람이라서 짐승의 말 같은 거 못 알아들어요. 그러니 안 가요. 안 갈 거예요. 정 혼자 있고 싶으면 북두칠성은 사람으로 돌아와서 다시 부탁하세요.”
“선비야, 나 장화 쟤 한 대만 쳐도 되냐?”
“이따 갈 때 쳐.”
웅크린 채 울던 몸이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부탁 못 할 거면 자, 가자.” 팔을 붙잡은 손은 억세서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보조기를 차지 않아, 힘이 들어가지 않는 한쪽 다리가 더없이 분했다.
“시발, 개새끼가…….”
“오, 세상에 이렇게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내 친구라서 고맙다고? 걱정 마. 오늘 살 모든 물건과 음식값은 네 지갑에서 나갈 테니까.”
“이장화 저거 쓰레기 아니야?”
“근데 뭐… 우리가 사는 것도 아니긴 하잖아. 쟤네 부모님이 내주신 카드로 결제할 거니까.”
“자, 자. 그보다 옷부터 갈아입자. 네 명예가 실추되는 건 상관없지만, 너랑 같이 다닐 난 뭔 죄니.”
“…별개로 이장화 저놈은 쓰레기가 맞다.”
“하하. 김태균, 너도 도와야지?”
“아, 난 왜.”
“나 혼자 갈아입히라고? 아니면 닭강정이랑 선비한테 부탁해? 인성 터졌네.”
“염병…….”
거기에 한 놈이 더 붙었다. 나는 결국 머리도 강제로 감겨지고, 옷도 갈아입혀진 채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이 새끼,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계속 튀려고 해? 형벌이다. 더 먹어라. 다 먹어라. 넌 살 좀 쪄야 한다.”
“야, 백화점 가는 김에 이불도 바꾸자. 집의 그건 너무 안 빨아서 가망이 없어 보이던데.”
“찬성한다. 이왕이면 개씹덕 이불로 하자. 창피해서라도 스스로 이불 사러 나올 생각이 들게.”
“그게 가능하겠냐? 쟨 이미 씹덕인데.”
1년 만의 외출이었다.
그땐 정말 울분이 차오르고, 짜증나고, 열받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더없이 행복했던 외출.
“…재미없었냐? 갑자기 우네.”
“아, 닭강정. 계속 마크했어야지. 딴 생각 못 하게 하랬잖아, 내가.”
“지는.”
“왜 그래. 우리가 너무 과했어?”
나는 뿌연 얼굴들을 두고 눈물을 후두둑 떨어트렸다.
“미안해. 우린 그냥, 네가 힘냈으면 해서…….”
“왜 지금은 안 와?”
시야가 더욱 부예지며 안 그래도 보이지 않던 얼굴이 더욱 흐려졌다.
“그때 화내서?”
그건 싫다. 나는 눈물을 닦아 냈다.
“미안해. 다신 화 안 낼게.”
그래도 다시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위로해 주러 오면 안 되냐?”
외로워서 눈물이 났다.
“나 혼자 있기 싫다…….”
외로웠다.
* * *
“대명장님, 이것 좀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지금껏 사용했던 수면 시스템은 ‘눈을 감았다 떴더니 개운한 아침이다.’라는 감각이었다.
그런데 요즘 때때로, 깰 때의 기분이 영 이상하단 말이지. 개운하긴 한데, 묘하게 축 처지고 슬퍼진다고 해야 하나.
“성?”
“예.”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뒤숭숭한 아침으로 인해 멍해도 문제가 발생할 일 없다. 나는 마이스터의 공방 한구석에 앉아 멍한 머리를 뉘었다. 마이스터가 선심 쓰듯 내준 의자는 카우치 형태라 모양 빠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납품량은 분명 지켰을 텐데.”
“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머맨들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서요.”
“…아, 하긴. 머맨들이 쳐들어오고도 남았을 시간이긴 하지.”
한편, 내가 그러는 동안 마이스터는 찾아온 손님을 응대했다.
달칵달칵하는 소리가 대화 사이로 계속 들려오는 걸 보면, 응대하는 순간에도 작업을 진행하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예전처럼?”
“네네. 예전처럼 닷새에 한 번씩 이만큼만… 추가로 제작해 주실 것 같습니다.”
“귀찮게…….”
별도로 머맨들의 행태가 평상시랑 다르다, 이거지? 어쩐지 아크메이지 쪽도 명확한 일정을 주는 대신 늦어질 것 같단 말로 뭉뚱그리더라.
역시 그쪽도 이걸 알고 출발 일자를 안 잡은 거겠지. 머무는 동안 뭔 일 터질 것 같아서.
“확인했어. 그만 가.”
“예.”
그렇지만 바다 보스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은데. 지상 보스는 정말 안 내 주는 건가? 정말로?
솔직히 이번에도 바다 레이드면 정말 선 넘는 건데.
“후, 이번엔 되려나…….”
나는 기도했다. 때마침 손님을 내쫓은 마이스터도 비슷한 행동을 자처했다. 하늘에 대고 열심히 비는 꼴이, 아무래도 물건에 수식 각인 하는 걸 마쳤나 보다.
“부탁.”
그런 다음으로 그가 한 행위는, 완성된 그걸 내게 던지는 것이다. 마력을 넣어 달란 의미기도 했다.
처음엔 “부탁 좀 할게.”였고, 두 번째는 “부탁할게”였으면서, 세번째인 지금은 “부탁”이란 게 어이는 좀 없지만.
탁.
어쨌거나 내 손이 그것을 보지도 않고 붙잡았다. 검은 마력이 주입되었다.
“젠장. 또 반응이 없나…….”
당연하지만 이번에도 반응은 없었다. 빛도, 진동도 일지 않은 거다.
“선반에 놔 줘.”
그래도 저번과 같은 사례가 있을지 모르니 진열대 위에 세워 둔다.
나는 마이스터가 욕설을 지껄이건 말건, 물건을 근처 협탁에 올렸다. 팔 하나는 눈가에 얹은 채, 다른 팔로만 진행한 일들이었다.
“후…….”
그렇게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러. 새로 들어온 의뢰를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걸 하는 건지 혹은 본인의 연구를 하는 건지 모를 마이스터가 스트레칭을 했다.
우드득.
시원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각또각.
그는 스트레칭하러 일어난 김에 한쪽으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내 장비를 확인하러 가는 것 같다.
그의 기척이 내 코트와 장갑, 베스트가 담겨져 있는 시약병 쪽으로 옮겨졌다.
찌직찌직.
공기의 유동과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귀를 툭툭 건드렸다.
“돌겠네. 대체 어떻게 돼먹은 옷이야?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런…….”
한데 이번에도 결론이 안 나왔나 보다. 마이스터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것이 알아서, 무언가의 대가 없이 수복된다는 점이 가장 열받아. 너 정말 이게 왜 이러는지 몰라?”
나한테까지 불똥이 튄 건 덤이다. 저렇게 채근해 봤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말이다.
“차라리 이게 원래 재생하는 성질이 있는 무언가의 물질이라면 납득하겠어. 그런데 구조를 살펴보면 그냥 평범한 물질이니…….”
글쎄다. 그럼 원래는 재생이 가능한 무언가인데 재질만 다른 걸로 가장하고 있나 보지. 결합 구조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거야.
“…지금 뭐라고 했어?”
“……?”
아, 설마. 나 방금 소리 내서 말했냐……?
“가장한다? 다른 것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다.”
돌겠네, 진짜. 정신머리가 없다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생각을 말로 표현해? 미쳤나 봐, 나.
“잠깐 다물어 봐. 결합 구조를… 자유자재로…….”
그러나 어떻게든 캐붕을 만회하려는 내 노력을 마이스터는 단번에 쳐 냈다.
내 컨셉을 잘 몰라, 이게 캐붕인지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합 구조……!”
대신이랄지, 그는 내가 언급한 단어들을 되짚듯 중얼거렸다. 사뭇 광기 어린 형태라 나는 은근슬쩍 내렸던 팔로 카우치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근육 덩어리치고 꽤 괜찮은 발상이었어, 칭찬해 주지!”
마이스터가 유레카를 외친 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나를 근육 덩어리라 치부한 건 다소 불쾌하나, 너무 좋아하는 눈치라서 차마 타박할 순 없었다.
사고 회로를 거치지 않고 아무 말이나 지껄인 나와 달리, 저쪽은 확실한 가설을 떠올리기도 한 모양이고.
“자.”
그때 마이스터가 무언갈 던져 주었다.
“결합 구조를 알 정도면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은데, 그런 머리가 있으면 잠으로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책이나 읽어. 그럭저럭 쓸 만한 뇌에 지식을 집어넣으라고.”
책 무더기였다. 마법서부터 과학에 가까운 연금술 서적, 온갖 재료에 대한 도감, 도구 사용법이 적힌 설명서, 각종 제작서 등등.
하루 종일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니만큼, 읽을 거리가 생겨서 나쁠 건 없지만… 다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시간 때울 거리가 이렇게 생기네.
“좋아, 사실 다른 재질이었던 거라면 이제 할 수 있는 실험은… 아, 잠깐. 이러면 의뢰들을 처리할 시간이 애매해지는데. 으음.”
나는 컨셉의 성질머리를 부릴까 하다가, 제 세상에 빠져든 마이스터를 보며 이만 포기했다.
아무렴, 마이스터가 내 일행이었다면 의무적으로라도 화를 냈겠으나, 그는 아직 시간 지나면 끊어질 인연에 불과하다. 그런 그에게 안 그래도 없는 기력을 더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툭, 툭.
대신 나는 그가 준 책을 살폈다. 무수한 책 더미는 정말 지식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그러나 그중 하나, 딱 하나는 아니었다. ⌈꺾인 뿔⌋ 제목도 그렇고 살짝 펼쳐 봤을 때의 문체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소설이었다. 책의 얇기를 생각하면 동화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다른 책과 유달리 차이 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의도해서 줬다기보다 책을 뽑아 줄 때 실수로 섞인 모양인데…….
음, 실수든 뭐든 내 입장에선 땡큐다. 안 그래도 지금은 여유가 없는 상태니까. 차마 지식을 머리에 욱여넣기 어려울 정도로.
팔락.
해서 나는 ‘꺾인 뿔’의 표지를 열었다.
⌈달이 높은 탑 지붕에 걸리고 주점의 불만이 어둠을 밝히던 날, 어느 한 소년이 거리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오래된 책은 아닌지, 아직 새것에 가까운 표지가 넘어가며 현대와는 살짝 다른 글이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