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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97화 (197/389)

197화 외쳐 보지만 (6)

쿵!

아크메이지는 단호히 돌아선 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악마기사에게 통할 거라 여겼던 그녀가 너무 낙관적이었다.

“이 정돈 괜찮은 시도라 생각했는데…….”

그의 사정에 간섭하려던 것도 아니다. 악마기사의 심경을 바꾸려 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냥 그의 편의만 아주 조금 봐주려 했을 뿐인데… 역시 그녀가 나서면 안 되는 거였을까? 인퀴지터나 데스브링거를 통해야만 가능성이 있었을까.

“걸렸군.”

“거, 걸린 겁니까…….”

확실한 건, 악마기사를 위해 의뢰했던 물건이 더는 의미 없어졌단 것이다. 내막을 파악한 악마기사는 앞으로도 계속 거부할 테니까.

그녀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그러던 차, 가운데 껴서 침묵하던 이가 발언했다.

“참고로 환불은 오래 걸려요.”

“…그런가?”

“네. 수중에 돈이 없어서.”

딱히 돈이 궁한 처지는 아니지만… 그보다 정말 청산호의 양자가 맞나? 친자가 아니고?

아크메이지는 물망초 같은 처연한 인상과 반전되는 입담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얼굴 자체는 안 닮았을지언정, 생긴 거랑 다르게 노는 건 청산호랑 아주 똑같다.

보고 자란 게 있다지만 너무 과할 정도의 일치율이었다.

“…오래 걸리든 말든, 환불밖에 답 없지 않습니까요? 나리는 안 받아 줄 것 같은데. 애초에 나리가 협조하지 않으면 제작도 불가능할 거고.”

아니면 그냥 마법사라서 그런 걸까. 혹은 머리색 두 개인 사람은 인성이 파탄 난다는 약속이 있거나?

아크메이지가 잠시 의문을 품는 사이, 데스브링거가 한마디 했다. 마이스터의 눈썹이 위로 살짝 들렸다.

“협조가 없다고 불가능하단 건 어디서 나온 말이지?”

“…뭐요.”

“물론 당신 같은 사람에겐 불가능하겠지. 그렇지만 난 아니야.”

“……?”

“다음부턴 사고란 걸 하고 혀를 움직이길 바라. 네 지능이 안쓰러워지니까.”

그 순간, 아크메이지와 인퀴지터, 데스브링거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말을 좀 길게 하는 악마기사인가?

“말 다 했─.”

“자, 자, 참게.”

그러나 익숙하다는 게 용납하겠단 소리는 아니다. 악마기사에게만 성격 죽이는 데브스링거가 오랜만에 시비를 받아쳐 주려는 순간, 아크메이지 또한 나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명장과의 관계를 파탄 내서 좋을 건 없는 까닭이다.

“그보다 악마기사의 협조가 없어도 만들 수 있는 건가?”

“당연하죠. 한 번 봤잖아요.”

치수를 재는 게 더 정확하긴 하지만, 눈대중으로 못 만들 것도 없다며 마이스터가 살짝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프라이드가 높은 것 하나만은 악마기사랑 똑같았다.

“그럼 의뢰는 진행하는 쪽으로 부탁하겠네.”

덕분에 대할 방법은 바로 감이 잡혔다.

그녀는 정말 가능하겠냐고 되묻는 대신 간결하게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그러자 마이스터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의뢰에 추가 사항이 생기면 오늘내일 안으로 사람을 보내세요. 없다면 닷새 뒤 공방으로 오시고요. 그때까진 완성할 거니까.”

“알았네.”

“아, 오늘은 이곳에 계속 있을 거니까 공방 말고 여기로 보내세요. 내일부턴 공방에 쭉 있을 거니까 상관없고. 그 외 용건은 없겠죠?”

“음… 의뢰로는 없고, 질문거리는 있네.”

이런 사람은 질질 끌지 않고 요점만 따닥 내미는 게 낫다. 아크메이지는 빠르게 말을 고른 후, 질문했다.

“악마기사랑은 어쩌다 알게 됐나?”

“의뢰자에 대한 정보는 발설하지 않으니까, 저한테 묻지 마세요.”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럼 가세요. 저도 갈게요.”

…청산호가 인품 한번 제대로 물려줬군.

아크메이지는 젊었을 적의 청산호를 떠올리며 떠나가는 이를 내버려 두었다.

“저 싸가진 뭡니까, 진짜?!”

그리고 마이스터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데스브링거를 놓아 주었다. 인퀴지터도 말만 안 했을 뿐 살짝 불쾌한 얼굴이다.

“대명장이라지만 싸가지가 아주……!”

“왜 그렇게 화내는 거냐, 어린 사냥꾼아?”

“젊은 나이에 대명장이 됐다는 건 알지만, 너무하잖아요! 예의를 밥에 처말아 드셨나!”

“…장인은 다 저러지 않나?”

“그런 건 아닙니다. 신전에 딱 한 분 계신 대명장께선 저러지 않으셨습니다!”

본인의 갑옷을 제작해 준 대명장을 떠올리며 인퀴지터가 말했다. 그러자 베르세르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그냥 다른 사람한테 맡겨라. 장인이 드물다지만 찾아보면 한둘은 더 있을 거 아닌가. 아, 이왕이면 나이 있는 놈으로 찾아라. 나이가 다는 아닐지언정 세월이 주는 노련함은 무시 못 한다.”

“뭐, 연륜이 중요하단 거야 틀린 말도 아니고, 베뮈르헨에 대명장이 하나 더 있는 것도 맞긴 하네만…….”

굳이 그럴 필요 있느냐 싶거니와, 베르세르크의 뉘앙스가 어째 무언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자네, 혹시 장인과 명장, 대명장이 뭔지 아는가?”

“…그것들에 차이가 있나?”

아크메이지의 물음에 베르세르크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 보니 오해가 아니라 아예 개념을 모르는 눈치다.

“명장은 모험가 길드나 신전, 마탑, 기사학교 등 권위 있는 단체 중 최소 한 곳에서 인정받아야만 얻을 수 있는 이름이네. 일종의 공인된 장인인 셈이지.”

“그런 거였나? 그럼 대명장은?”

“명장과 비슷하네. 한 곳이 아니라 세 곳에서 인정받아야만 하는 걸 빼면.”

이미 한 곳에서 인정받은 실력, 두 곳에서 더 인정받는 건 쉽지 않나? 싶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각 단체마다 요구하는 기술이 다르니까.

“그리고 방금 그이는… 열다섯 살에 명장이 되었고 스무 살에 대명장이 된 사람이네. 재능은 연륜을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을 전면에서 깨부순 청년이지.”

저러한 이유로 대명장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대현자보다 수가 적었고, 그만큼 가치는 드높았다. 저런 인품을 가져도 아무 말 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거기에 그는 마법사이기도 하네. 이쯤 되면 대체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지.”

“오… 그럼 예의 밥 말아 처먹어도 된다.”

“엘리트주의적인 사고관에 찬성하고 싶진 않네만, 다들 그렇게 여기긴 하네.”

후자의 경우 마력 없는 마법사라고 낮잡아 보는 자도 많지만… 이건 굳이 발설할 필요 없겠지. 아크메이지는 뒷문장을 목구멍 뒤로 삼켰다.

“그, 그래도 그건 너무 과합니다!”

“옳소, 옳소!”

“…음, 이런 말까진 하기 뭐하지만, 인품은 별로더라도 천성은 꽤 괜찮은 청년입니다. 너무 미워만 하진 마시지요.”

“저런 인간이요?”

“행실만 보고 판단할 거면 악마기사도 최악이란 걸 기억하게.”

“아니, 그건…….”

아크메이지는 그들이 납득할 수밖에 없는 팩트를 휘두르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천성이 괜찮은지는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인퀴지터가 물어본 탓이다.

“그건… 그가 지금 연구하는 것 때문에 아는 겁니다. 인품과 천성이 동일했다면, 그가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위한 연구를 할 리 없으니까요.”

“…일반인을 위한 연구?”

“예.”

대현자의 손자이자 대명장인 이의 성격은 덜 알려져 있으나, 그가 하는 연구는 널리 알려져 있다.

“공기 중의 마력을 흡수 및 저장하는, 가칭 ‘배터리’를 만들어 마력이 없는 사람도 배터리만 가지고 있으면 마법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그의 연구 내용입니다.”

일명 마법의 보급. 마력이 없는 마법사가 꾸는 미래였다.

* * *

친구들이 말하길, 직장은 가 족같아서 정 하나 안 쌓인댔는데. 왜 이 파티는 그런 직장이 될 수 없는 걸까.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그런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속절없이 정을 줘 버려서? 그렇지만 그건 내 입장이잖아.

당신들까지 다정할 필요는 없잖아.

“젠장!”

꾸준하게 다가옴에 위로받고, 은근한 호의에 온기를 느낀다.

그러나 그것들을 돌려주기엔 내 상황이 너무 버겁다. 힘겹다.

…만에 하나 있을 일을 버틸 자신이 없다.

“왜 안 되나 했더니 잘못 새겼잖아!”

그래서 거리를 벌리려는 건데, 그사이에 생기는 외로움을 또 기가 막히게 찌르는 꼴이란.

정말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씹.”

나는 벽돌 모양의 물건을 한창 확인하던 마이스터가 작업대를 후려치는 것을, 그런 다음 머리를 부여잡는 걸 망연히 지켜보았다.

밑그림 레이어에서 선 따는 실수 비슷한 걸 했나 보지. 아무렇게나 지껄인 생각이 기분을 좀 환기해 주었다.

“담배… 담배…….”

“나가서 피우라니까!”

“즐.”

그리고 그런 시야에 중지를 들어 올리며 주섬주섬 담배를 무는 마이스터와 뒷목 잡는 카를 현자가 다시 들어왔다.

…담배.

담배?

나는 멍하니 마이스터를 따라 나갔다. 한때 방을 너구리 굴로 만들었던 과거가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뭐야, 왜 따라와.”

다만 논리 없이 행동한 것인 만큼 그 이후가 곤란해졌다. 뭐라 대답해야 하지?

“너도 하나 줘?”

궁상맞은 변명일지언정 화장실에 간다고 할까.

그런 식의 구실─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이라도 댈까 고민하던 중, 마이스터가 답을 기다리는 대신 새로 제안했다. 꽤나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금연한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너무 초라하다. 캐붕이다. 또 걸리면 어쩔 거냐. 뭐 그런 걸 따지기엔… 썩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고 말이다.

그에 비해 담배는 기호 품목으로써 스트레스를 확실히 덜어 주는 편이고.

슥.

하므로 나는 핑계를 대기보다, 말없이 담배를 받았다. 잎담배였다.

“거기, 불.”

그나마 파이프 담배나 물 담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잎담배를 신기하게 구경했다. 그사이, 마이스터는 담담한데 묘하게 양아치 같은 어조로 조용히 지나가던 마법사를 붙잡았다.

라이터도 성냥도 없는 세계관에서 어떻게 불을 붙이나 싶었더니, 걸어 다니는 인간 라이터를 이용해서 피웠나 보다.

화륵.

마법사의 양순한 손길 아래 담배에 불이 붙었다.

“이것도.”

“옙.”

이 몸으로는 담배를 피운 전적이 없다는 게 조금 걸리지만… 술은 못 마시고, 커피는 따로 없으며 기타 스트레스 해소로 쓸 만한 취미거리도 없는 세상이다. 담배 정돈 괜찮을 것이다.

나는 마이스터가 본인 몫 담배에 새로 불을 붙이는 동안, 요령 좋게 담배 연기를 입에 머금었다.

현대의 담배보다 독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경력직 신입이라 그런가. 예전에 첫 담배를 피웠던 때처럼 심장 퍽퍽 치면서 고생할 일도 없었고 말이다.

“후우.”

“한두 번 피워 본 모양새가 아닌데.”

그래도 기침은 나올 것 같아서 꾹 참고 버텨 보았을까. 그게 꽤 의외로 보였나 보다.

마이스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조금 우스운 일이었다.

과거 집중적으로 흡연했던 기간─2년이었나?─에, 내가 담뱃값으로만 칠백만 원 넘게 쓴 걸 알면 저 반응은 절대 안 나올 텐데.

그렇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어색한 듯 익숙한 듯 낯선 연기만 후, 뱉었다.

마이스터도 비슷했다.

우리는 쪼그려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 선 채로 잿빛 연기만을 풀풀 흘렸다. 테라스의 탁 트인 허공을 통해 연기가 하늘하늘 올라갔다.

“내일부턴 마탑으로 올 필요 없어. 공방으로 와. 카를 현자님이 하는 꼴 보니까 마법으로 조사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거든.”

“…그러지.”

그러다 잠깐. 카를 현자님이 들었으면 울었을 말을 마이스터가 뇌까렸다. 참 냉정했다.

“할아버지가 나서면 뭔가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마이스터를 응시했다.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헤집는 그는 무척이나 골치가 아파 보였다.

단순히 내 장비 문제로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쯧. 일정 안 되는 사람 떠올려야 의미 없지.”

그러나 물어볼 사이까진 아직 아니다. 컨셉상 그렇게 될 수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되고.

해서 나는 담배에 집중했다. 대놓고 내쉴 수 없는 한숨을 대신해 올라가는 연기가 숨통을 트여 주었다.

모순이었다. 목구멍에 연기를 집어넣는 행위가 역으로 숨통을 열어 주다니.

“다 피우면 돌아와. 난 먼저 간다.”

한데 꽁초가 3/5쯤 탔을까. 그쯤 되어서 마이스터가 몸을 일으켰다.

툭.

동시에 로브 사이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아까 마이스터를 분노케 한 그 물건이었다.

“하. 언제쯤 성공할 건지…….”

복도뿐 아니라 테라스에도 카펫이 깔려 있어서 그런가. 충돌음이 둔해서 마이스터는 미처 눈치 못 챈 듯하다.

“이봐.”

“……?”

나는 마이스터를 대신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웠다. 우응.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알림음을 진동으로 설정해 둔 전자 노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왜 부르… 아.”

거기에 자세히 보면 희미한 빛이 들어오기까지.

나는 이것이 대체 무엇인고 고민하며 마이스터에게 건넸다.

“고마… 워?”

막 건네받으려던 마이스터의 눈이 커졌다.

“뭐야, 이거. 왜…….”

엥. 왜. 무슨 문제 있나?

내가 눈동자를 남몰래 굴리려던 순간, 손에서 느껴지던 미약한 진동이 끊겼다. 빛이 꺼지는 건 덤이었다.

“너…….”

마이스터의 눈이 무서워졌다.

“방금 뭐 했어?”

잠깐, 지금 오해 스택이 쌓인 것 같은데.

나 줍기만 하고 아무 짓도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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