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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96화 (196/389)

196화 외쳐 보지만 (5)

“그, 그냥 무슨 마법이 걸린지만 알아보려고…….”

“죽어!”

리암이 사고 친 마법사의 명치를 후드려 팼을까. 그 꼴을 지켜보던 마이스터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요. 로브는 그렇다 치죠. 그런데 손님한텐 정말 손 안 댔어요? 내가 보기엔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손대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손님께서 요청한 검사야.”

리암의 말에 마이스터는 나를 보았다. 대충 저 말이 맞느냐는 뜻 같다.

나는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살짝 내렸다. 끄덕임 수준의 확신은 못 되어도 마이스터의 눈치면 긍정임을 알 것이다.

“…좋아요. 납득했어요.”

오해 아닌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보다 넌 손님을 어떻게─.”

“공방 손님이요.”

“…그래.”

“됐고, 당신. 코트 줘요.”

“코트……?”

비록 용사 일행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했지만 말이다. 심지어 마이스터가 내게 코트를 요구하니 더 당황스러워한다.

그들의 시선이 내게로 몰려들었다. 내가 설마 들어주겠느냐는 눈빛이었다.

휙.

그러나 나와 마이스터는 이미 딜 한 게 있는 사이라.

“끝나면 이쪽으로 와. 로브는 남에게 넘기지 말고.”

나는 언제 돌아왔는지 모를 코트를 던져 줬다. 귀환 기능이 발동되지 않도록 봉인한 다음 관찰하겠다던 작전은 실패했나 보다.

쿵.

어쨌거나 폭풍처럼 쳐들어왔던 마이스터는 다시 폭풍처럼 떠나갔다.

남은 사람들이 봉변을 당한 사람처럼─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봉변이라면 봉변은 맞았으니까─허탈한 얼굴을 했다.

“…저, 악마기사. 아는 분이십니까?”

“그, 악마기사. 혹시 알고 만난……?”

별개로 마이스터, 진짜 능력이 좋은가 보지.

카를이라는 ‘현자’도 마이스터를 막 대하지 않은 시점에서 눈치채긴 했지만… 리암이라는 또 다른 현자에게 저리 굴고도 제지를 안 당하네.

“검사는, 끝났나.”

뭐, 중요한 건 아니다. 마이스터가 그렇게 능력 있을수록 내겐 이득이니까.

“아,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럼 해라.”

나는 용사 일행의 말은 최대한 무시한 채, 검사를 마저 끝내기 위해서 마법사들을 재촉했다.

얼떨떨한 얼굴의 현자와 마법사들이 퍼득 일을 하기 시작했다.

* * *

마법을 동원한다고 해서 과정 없이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 마법을 안 쓸 때보타 훨씬 단축될 뿐인 거지.

하므로 카를과 마이스터는 실험의 결론을 내기 위해 인내의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 각자만의 일을 한 건 덤이다.

“아직도 그런 거나 붙잡고 있냐?”

한데 마이스터가 그의 개인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을까. 카를 현자가 툭 하고 그런 말을 내뱉었다.

마이스터의 손이 잠시간 멈칫했다.

“네, ‘그런 거’나 붙잡고 있습니다.”

카를 현자는 도움 되는 구석이 많지만, 좋은 이해자가 되지는 못한다. 마이스터는 새삼 그 사실을 되새기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난 네가 뭘 보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것이 분노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는 타인의 이해를 받을 수 없음을, 이미 오래전에 알아 버린 까닭이다.

해서 그는 상처를 받기보다 담담하게 흘려 넘겼다. 저들의 어두운 시야를 언젠가는 밝혀 내리라는 다짐과 함께.

“그보다 이거… 정말 뭐지? 본질이 보이지가 않아.”

“잘난 마법으로도 안 됩니까?”

“그래. 네 쪽은?”

“반응이 나오기 전에 이게 사라져 버리는데 어떻게 압니까.”

“뭐야. 네놈이 신봉하는 그것도 결국 쓸모가 없잖아.”

현자의 말에 마이스터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반박하고 싶은데 아직까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무렴, 마법사란 결과물로 승부하는 자들이었고, 그는 아직도 그럴싸한 작품을 내지 못했다. 마이스터란 명예를 짊어진 이래, 자그마치 구 년이나 흘렀음에도 그렇다.

달그락달그락.

그 사실만큼은 체념한 처지로도 괜히 열이 오른다. 그는 매만지던 작업물에 힘을 더 주었다.

“차라리 포기하지 그러냐.”

“싫은데요.”

“솔직히 9년이면 많이 낭비했잖냐. 마법의 보급이라니. 그런 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마법사가 불가능부터 논하다니, 현자답지 않네요.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오, 놀라워라. 불가능이라는 단어에 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니. 당장 모두에게 공유해도 될까요?”

“하여간 싸가지하곤.”

마법사가 싸가지 운운하는 것도 우습다.

마이스터는 중지를 치켜올려 준 후 작업물에서 손을 떼었다. 당최 용도를 알 수 없는 외형의 물건에는 수식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하, 네 연구가 성공하면 마탑 외곽을 무릎으로만 걸어서 한 바퀴 돈다.”

“카를 현자님이 무릎걸음으로 마탑 외곽을 돈다고 제가 얻는 이익이 있나 싶지만, 좋아요. 손해는 없으니까 약속 받아들이죠.”

열받아서라도 성공하고 만다.

그는 속으로 성공을 빌고 또 빌며 카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론상으로, 원활한 수식의 발동을 위해서라면 최초의 순간에는 마력을 조금이나마 주입해 줘야 하는 탓이다.

“마력 좀 불어넣어 봐요.”

“양심 없긴.”

“그럼 내놔요, 코트.”

“진짜 양심 없는 놈!”

마이스터의 협박에 카를이 비명을 지르며 물건을 냅다 받아 갔다.

“옜다.”

그러곤 얼마 안 가 돌려주었다. 마력을 불어넣기만 하면 되니, 오래 걸릴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마력이라곤 한 톨도 가지고 있지 않은─그러니까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최소한의 양을 제외했을 때─마이스터에겐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좋아…….”

어찌 되었건 마중물이 되어 줄 마력까지 불어넣었다.

이제 확인할 건 이것이 정상 작동 되는지 아닌지다.

“…….”

“…….”

카를과 마이스터의 시야에 잠잠하기만 한 물건이 한동안 가만히 담겼다.

“…마력, 아무래도 안 모이는 것 같죠.”

“어.”

마력을 스스로 느끼고 다룰 능력은 없으나, 마력의 흐름을 보여 주는 아이템은 있다.

그렇지만 그 안경으로도 보이는 건 없었다. 카를의 공인까지 있는 이상 더 확실하다.

“아무래도 실패 같은데?”

그래, 이건 실패였다.

“젠장!”

분명 이번엔 성공할 거라 생각했는데! 마이스터는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자그마치 이천이백오십 번째 실패였다.

“그러게, 안 된다니까.”

“시끄러워요.”

“비싼 촉매들을 동원한다면 모를까, 그런 흔한 재료로 가능할 리 없잖아.”

“시끄럽다고요.”

듣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아.

그는 이를 지르문 채 뜨거워지려는 머리를 겨우겨우 식혔다. 익숙하지만 결코 쉬워지진 않는 작업이었다.

털푸덕 쪼그려 앉은 이의 손이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알아서 마력을 끌어모으는 기능만 해도 귀한 재료를 아낌없이 써야 겨우 만들어지는데 말이지.”

“코트 빼앗기 전에 입 다물래요, 그냥 입 다물래요.”

“…….”

마이스터는 앞머리를 넘기고 흘러내린 뒷머리도 쓸어 넘기며 숨을 골랐다. “아, 사라졌다.” 카를이 뒤편에서 딴소리를 했다. 코트가 사라진 모양이다.

“아아, 이거 짜증나네. 그놈 옆에다 두고 실험해야만 되나?”

글쎄. 그럴지도.

마이스터는 맥없이 속으로만 긍정했다. 9년을 끈질기게 매달렸다지만, 그렇다고 답이 돌아오지 않는 노력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패한 직후라면 특히 더 그렇다.

“코트 안 받아 올 거냐?”

“직접 가든가.”

“…삐졌냐?”

“삐졌으면 어쩔 건데요.”

그래도 다시 힘내야지. 마법을 평생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날 품은 꿈, 이대로 포기해선 안 되지.

마이스터는 각오를 다지며 내던진 물건을 다시 쥐었다. 그런 다음엔 주머니 안쪽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답답함을 풀어 버리기 위함이었다.

“미친놈아! 연구실에서 담배 피우지 마!”

현자 카를이 기함했다.

“아, 쩨쩨하게.”

“나가서 피워!”

“알았어요.”

뭐, 저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배려하기 싫었을 뿐이지.

끼이익.

하여튼 마이스터는 담배를 꼬나문 채 느릿느릿 나갔다. 목적지는 복도와 연결된 테라스다.

“뭘 봐요. 눈 깔아요.”

그의 등장에 복도를 지나다니던 마법사들이 파리한 안색으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마이스터가 피우는 담배가 독하디독한 건 둘째 치더라도, 이때 잘못 걸리면 마이스터의 별명이 왜 ‘미친개’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불 내놔.”

물론 운 나쁜 누군가는 붙잡혀 화톳불 대용이 되어야 했다. 불을 붙여 주자마자 도망가 버리긴 했지만.

“저, 나리. 어쩌다 그런 분과 인연을…….”

“코트는 아까 왜 주신 겁니까?”

각설하고, 이곳엔 그들이 마이스터를 피해 도망가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나리.”

“악마기사!”

카를의 로브를 어깨에 걸친 이가 조잘거리는 이들을 꼬리로 달고 복도 저편에서 다가왔다.

정확히 마이스터에게 다가오는 식은 아니었는데, 테라스가 개방된 형태라 중도에 서로를 발견하긴 했다.

“개성 넘치는 동료들이네.”

“아니다.”

악마를 담은 기사와 그를 따라온 용사 일행 그리고 마법을 못 쓰는 반쪽짜리 마법사 겸 대명장이 테라스와 복도의 경계를 두고 한곳에 섰다.

“아니면 말고.”

마이스터가 왜 복도에 쪼그려 앉아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나는 그의 입에 물린 것을 발견하고 입술을 꿈틀거렸다.

27살 이후 겨우 금연한 사람 앞에서 담배라니. 배려 없네.

“뭘 봐요?”

별개로 마이스터, 조금 까칠해진 기분도 들고? 말투가 묘하게 모난 것 같은데. 그냥 오해인가.

“음… 일단 만나서 반갑네. 대명장을 보게 되니 영광이군.”

“…예, 뭐. 안녕하세요.”

나와는 다른 싸가지의 맛으로, 마이스터는 가볍게 대꾸하며 담배를 계속 피웠다.

쿨럭, 킁. 담배 연기는 처음인지 옆에 있던 인퀴지터가 기침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제게 볼일이라도?”

“어, 음. 기존에 의뢰한 것을 두고 말할 게 있긴 하네.”

“아, 의뢰자셨나.

차마 의뢰자 앞에서까지 흡연을 쭉쭉 이어 나갈 순 없었나 보다.

마이스터는 반쯤 남은 꽁초를 본인 로브에 비벼 끈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터프하기 짝이 없다.

“일단 의뢰서 좀 보여 주실래요.”

“여기 있네.”

“좋아요.”

정말 의뢰를 맡긴 게 맞는지, 아크메이지가 두루마리형 종이를 건넸다. 마이스터가 그것을 조심스럽게 펼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먼저 안에 들어가 있어. 안 그래도 코트가 또 사라졌으니까.”

여기에서 어색하게 서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잘됐다. 코트가 그새 또 사라진 건 다소 아쉽지만.

“확인했다.”

그보다 계속 이러면 앞으론 근처에 계속 대기하고 있어야 하나. 그건 좀 지루할 것 같은데. 정 심심하면 책 같은 걸 읽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좀 시간 낭비잖아. 돈도 못 벌고.

“잠깐. 아직 들어가지 말게, 악마기사. 자네도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으니.”

한데 연구실로 향하려던 내 발길을 아크메이지가 막았다. 대체 무슨 말이 남아서 붙잡나 싶었다.

아, 아니면 그건가? 일정 맞추기?

“음, 아. 이거였나. 상대는 저쪽?”

“맞네.”

그렇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그 이유는 아닌 듯하다.

나는 갑자기 나를 가리킨 마이스터를 보고 그가 든 의뢰서를 보았다. 각도상 적힌 글은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더욱 상황 파악이 힘들었다.

“뭐, 알겠어요.”

뭔데, 뭐냐고. 치사하게 너희끼리만 알지 말고 나도 알려 줘.

“…자네 장비 이야기네.”

다행히 내 눈썹이 이 이상 뾰족해지기 전, 아크메이지가 설명을 해 주었다. 이건 이것대로 당황스러웠다.

장비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신성력을 여과하는 마법이 개발되었는데, 해당 마법이 걸린 아이템을 차고 있으면 자네가 싸울 때 한결 편해질 것 아닌가. 최소한 인퀴지터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덜할 테니.”

아, 내 기존 장비 이야기가 아니라, 새롭게 선물해 줄 장비를 말하는 거였나. 근데 거기에 신성력을 여과해 주는 마법이 걸려 있는 거고?

…그런 마법은 어쩌다, 언제 개발했대? 신성력을 여과해서 얻을 이득은 하나도 없잖아. 악마나 악마추종자가 아니고서야.

“다만 그 물건을 제작하려면 자네 신체 치수를 재야 해서 말일세. 음, 마이스터가 제작 의뢰를 받았으니…….”

“내가 재게 될 거야. 필요한 부위별로.”

그러나 아크메이지에게 악마를 위해 줄 필요가 뭐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이건… 이 마법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들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배려를 거두는 사이 아크메이지는 이런 걸 준비했단 말이다.

“부디 거절하진 말게.”

그렇기에 가슴은 더욱 따끔따끔하다.

내가… 이걸 받아도 되나? 상극인 신성 대미지를 줄여 줄 장비를 껴도 되는 거야?

“이건, 그래. 자네가… 자네가 더 싸우기 용이하도록 투자한 것에 불과하니까.”

내가 당신들의 적이 됐을 땐 어떻게 하려고?

“악마기사?”

투자, 좋지. 비지니스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발언이 투자니까.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투자가 아니었다. 넌지시 말할 때의 아크메이지의 태도─누가 봐도 그런 의미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도 그렇지만, 이것이 가져올 여파 자체도 그랬다.

내가 신성력 여과 장비를 끼면 내 일상은 편해지지만, 만에 하나 벌어졌을 사태 때는 대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내가 떠올린 생각을 아크메이지가 모를 리도 없고.

결국 아크메이지는 그걸 알고도 나를 위해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선물을 내민 셈이다. 명백한 배려였다.

…그래선 안 될 선의였다.

“동정을 숨기고자 하는 구실인가?”

나는 매이는 목을 꾹 누른 채 주먹을 쥐었다. 뿌드득. 건틀릿을 낀 오른손이 마찰음을 냈다.

“아니면, 진짜 어리석은 건가?”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가 포기하지 않는 건 각오했다. 그들은 무지하고, 어리니까.

그렇기에 그들의 맹목은 더없이 거대할 수밖에 없으니까.

“…악마기사.”

“마지막 기회다, 마법사.”

그렇지만 그런 맹목에는 한계가 있다.

알아 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배움이 깊어질수록, 어쩔 수 없이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리며 바로잡게 되는 것이 성장할 자들의 맹목이란 말이다.

“선을 넘지 마라.”

그러나 나이 먹은 자들의 신망은 작지만 무겁고, 만들어지기 힘든 만큼 잘 변화하지도 않는다. 오랜 경험과 세월이 가져다준 신중함을 뚫고 만들어지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절대로.”

하므로, 하므로 안 되는 거다.

아크메이지, 당신마저 그래선 안 되는 거다.

“잠깐─.”

나도 결국 인간이라서, 알고서도 감싸 주려고 하면 기대고 싶어진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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