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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94화 (194/389)

194화 외쳐 보지만 (3)

“감사합니다. 덕분에 피해가 적었습니다.”

나는 경비대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곤 막 다가온 이를 향해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사제가 신발 아래쪽에 묻은 저주를 정화해 주었다. 검은 액체가 사라지는 광경이 꼭 부츠가 살짝 오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원인은.”

각설하고, 컨셉은 감사 인사 받으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다른 사제들이 막 정화해 낸 구역을 쳐다보았다. 성벽을 통과하는 자리는 사람들의 시신과 그들이 가져온 짐으로 가득하다. 구할 틈조차 없이 저주에 휘말려 죽은 자들이다.

“…악마추종자들이지요, 뭐.”

내가 구한 사람들이 꽤 된다곤 하나, 전체 피해자 수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하다.

나는 그 사실에 애석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각도로 인해 가려졌던 안쪽 상황이 시야에 더 많이 들어왔다.

“빌어먹을, 악마숭배자들 말입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검문소로 보이는 곳에서 죽은 병사와 모험가였으니. 모험가와 병사 사이엔 나무 상자와, 상자 안에 든 수십 개의 호리병이 있다.

전부 깨져 있는 것이, 정황상 저 호리병에 저주가 들어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신이시여, 가여운 자들에게 평온을…….”

경비대원 하나가 병사의 주검을 거두며 기도했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

숙연함이 공기를 푸르게 물들였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

“자주까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드물지도 않지요.”

내 옆에서 마찬가지로 기도하던 사제가 대답해 주었다.

“이미 북쪽의 도시 몇 개는 이런 식으로 당한 걸로 압니다.”

제법 끔찍한 소식과 함께였다. 남쪽에선 이런 말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쪽 전선이 유독 치열하다더니, 그래서 북쪽에만 이런 소식이 치중되어 있나 보다.

“그래도 이번은 피해가 적었습니다. 도시 내로 들어가는 건 막았으니까요.”

글쎄. 이게 과연 피해가 적은 걸까. 도시 안까지 저게 이송됐다면 더 많은 피해가 일었을 것은 자명하나, 그게 더 큰 피해일 뿐이지 이게 작은 피해는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오늘 하루는 모든 성문이 폐쇄되겠군요. 어쩌면 내일까지.”

나는 한쪽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시신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

“다가오지 마라!”

“저, 저희 짐을…….”

“물러나! 짐은 정밀히 수색한 후 돌려줄 것이다!”

“검문은, 그럼 검문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문은 닫을 것이다!”

“잠시만요, 그럼 저흰 언제 들어갈 수 있는……!”

“물러나!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전달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의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 * *

“이게, 무슨 난리지?”

“…면목 없습니다.”

“면목 없으면 다야?”

보통의 미들족 남성보다 머리 하나는 큰 여인이 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썩. 커다란 손이 제 앞의 남성을 후려쳤다.

“위협이 될 만한 게 있다고 조사 결과가 나왔으면, 미리 단속을 해라. 그놈들이 우리 장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미리 처리해라.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어? 누누이 말하지 않았냐고!”

“말, 하셨습─.”

“그런데 그거 하나 못 지켜? 어? 아랫사람한테 그거 교육 못 해서 이 사달을 일으키도록 하냐고!”

“죄, 죄송…….”

“죄송? 죄송?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여기까지 올라온 주제에, 그것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어?”

남성이 휘청였지만 그녀는 봐주지 않았다. 철썩! 겨우 균형을 잡은 이가 또 한 번 뺨을 맞고 넘어졌다.

“네놈이 고른 쓰레기 때문에 검문소가 막혔어. 이제 어쩔 거지? 오늘 우리가 본 손해는 어떻게 충당할 것이며, 앞으로 더 빡빡해질 검문으로 인해 생길 피해는 어떻게 보충할 건데?”

몸 일으키는 걸 기다리는 것도 짜증난다. 그녀는 냅다 남자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키 차이로 인해 남성의 발끝이 간신히 땅에 닿고, 컥컥 소리가 났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이번 일은 상단의 사활을 건 행위라고.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할 거라고. 그런데 이 꼴을 내? 감히? 감히 네가??”

퍽! 그리고 남성의 숨이 거의 넘어갈 때쯤, 그녀는 남성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녀의 복슬복슬한 회청색 머리카락이 한 번 들썩였다.

“네가 고른 쓰레기다. 그러니 당장 나가서 책임지고 그 쓰레기를 치워. 영원히 내 눈에 띄지 않도록!”

“예!”

“재산도 전부 압류해! 저놈이 상단에 입힌 피해를 메꿔야 하니까! 네놈 월급도 마찬가지야!”

그녀는 마지막으로 남성의 정강이를 후려친 후, 남성을 내쫓았다. 그러곤 짜증으로 정돈된 손톱을 깨물었다.

그분께 혼날 거야. 어쩌면 실망했단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고. 그녀의 머릿속은 초조함과 분노,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빌어먹을.”

이것으로 노리던 자리는 더 멀어지게 생겼다. 그것도 그녀의 아랫사람으로 인해.

“아아악!”

저 새끼는 눈이 삐꾸인가? 사람을 골라도 어떻게 저딴 걸!

“보좌!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저 새끼 강등해! 아랫사람 교육도 못하는 새낀 필요 없어!”

“네.”

치미는 화를 풀어 내는 데엔 폭력만큼 확실하고 쉬운 방법도 없다. 그녀는 짜증난 얼굴로 테이블을 뒤집었다.

원목으로 만들어 무겁기 짝이 없는 테이블이 벌러덩 뒤집어졌다.

“젠장, 이러면 손해가…….”

물론 그런 순간에도 그녀의 머리는 열심히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분노와 별개로 노는 장사치의 이성이 냉정하게 상황을 응시했다.

“…차라리 잘됐어. 이 기회에 시기의 추종자들을 전부 뿌리 뽑는다. 어차피 우두머리가 사라져 힘도 잃어버린 것들, 방심을 위한 대가로는 충분하지.”

짤랑.

그녀의 귀에는 진주를 닮은 둥근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나는 혹시나 모를 사태─숨어 있던 악마계약자─가 튀어나올 것을 대비해, 저녁까지 자리를 지켰다.

중도에 인퀴지터가 달려오긴 했으나 특별한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정확히는, 인퀴지터가 틈이 날 때마다 말을 걸고 싶어했으나 내가 그 신호를 모조리 무시했다.

그 외의 특별한 사항은 없었다.

악마계약자는 나오지 않았고, 죽은 이들과 그들의 짐은 전부 수습했다. 악마숭배자로 추정되는 이의 사체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성문은 완전히 닫혔으며 밖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내일까지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그중 들어올 기회를 얻은 건 오직 사건을 전부 목격하여 기억하고 있는 자들뿐이었다.

그마저도 엄중한 감시하에 범죄자 압송하듯 대해졌지만 말이다.

똑똑.

어쨌거나 거기까진 내가 개입할 일이 아닌지라, 나는 돌아가길 택했다.

내 장갑의 현 상황이 궁금한 나머지, 여관 가던 도중에 마이스터 공방으로 잠시 빠진 건 덤이다.

똑똑.

근데 왜 문을 안 열어 줘. 아니면 벌써 퇴근한 거니?

나는 문을 한 번 더 두드려 보았다가, 안에 없는 것 같아서 이만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덜컹.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는데, 마침 잘 왔어.”

이거, 자동문 기능도 있었나 보지. 나는 사람 없이 열린 문을 넘어, 문을 살그머니 닫았다. 철컹. 최대한 조용히 닫는다고 닫았는데도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독도독.

그사이, 마이스터는 제작하던 물건에 무언가를 새긴 후 그것을 조심히 내려 두었다. 그의 얼굴은 어째 반나절 만에 거뭇해진 것 같다.

“미리 말해 두는데, 이건 내 잘못 아니야.”

그런데 포문을 트는 말이 어째 불안하다. 나는 막 일어선 마이스터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길이 맞닿자 보라색 눈이 데굴 굴렀다.

“네 장갑, 사라졌어. 흔적조차 없이, 갑작스럽게.”

덩달아 내 눈썹도 와락 찌푸려졌다. 내 장갑이? 사라졌다고? 왜?

“다시 말하는데,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아니,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네 장갑이 사라질 만한 짓은 안 했어.”

이번에도 마이스터의 빠른 변명이 떨어졌다. 눈동자가 살짝 옆으로 향해 있는 것이 이번엔 찔리는 구석이 없잖아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내가 사유하기에, 이번 일이 그의 잘못일 것 같진 않았다. 망가트린 수준이라면 모를까,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다른 영역 같거든.

“정황을 명확히 해라.”

“…일단, 내가 장갑에 가한 실험 내용부터 설명해 주겠어.”

그래도 감을 잡으려면 그가 한 일을 들어야겠다.

“나는 그것의 재질을 먼저 파악하고자 했어. 가죽인지, 가죽과 비슷한 것인지. 그런데 그건 놀랍게도 완벽한 가죽이더라고. 해서 그다음으론 가죽이 복원되는 원인을 찾았지. 그를 위해 동원된 것이 이것들인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이스터의 설명은 천재의 것치고 제법 이해하기 쉬웠다. 문외한인 나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건 그의 실험이 무엇을 목적으로 행해진 것인지 쪽이지, 그것의 원리 쪽은 아니었다. 과학만 쓰였어도 어려웠을 텐데 마법까지 사용되었으니 당연하다.

“사라졌을 때의 순간은, 어땠지.”

“장갑에서 분리된 조각이 사라졌을 때와 거의 똑같아. 녹아내리듯 사라졌으니까.”

마이스터는 그리 말한 뒤,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참고로 내가 그때 하고 있던 실험은 그런 식으로 녹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어.”

딴말이지만, 약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성과를 보이지 않는 기업인을 다리 꼬고 지켜보는 투자자의 기분 말이다.

내가 마이스터에게 내준 건 기껏해야 장갑뿐인데도.

“정말이야.”

그런데 진짜 왜 사라진 거야? 주인에게 되돌아가는 성질의 귀속템도 아니면서. 그래, 귀속템도 아니면서.

…잠깐, 귀속템?

나는 갑작스레 스치고 간 가능성에 설마설마하며 허리춤의 인벤토리를 열었다.

「하프팜 가죽 장갑(검정, 왼손)」

역시나, 장갑은 그곳에 있었다.

“…그래. 그런 것 같군.”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그것을 꺼냈다. 이 기분을 구태여 해석한다면 그건 아마 장비의 기원에 대한 의문과 불안감일 테다.

“……?”

별개로 갑자기 가방에 손을 넣는 내 행동에 눈썹을 올렸던 마이스터가 곧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왜 거기서 나와?”

나도 몰라. 이런 기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날 놀리는 거야?”

“그런 적 없다.”

나는 내 손에 잡혀 있는 장갑을 매만지다가, 마이스터의 작업대 위로 그것을 툭 올렸다.

“…당신도 모르던 사항인가?”

“그래.”

“어떻게……?”

그나마 마이스터가 머리 좋은 사람이라서 오해가 길게 갈 일을 덜었다.

나는 간단한 추론으로 오해를 풀고 다른 추측을 시작한 이를 둔 채 팔짱을 꼈다. 머리가 복잡했다.

“좋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네.”

그를 두고 마이스터 역시 그만의 반응을 보였다. 작업복을 벗더니 한쪽에 걸린 외출복을 몸에 걸친 것이다.

슬랜더족 특유의 가는, 그러나 그의 직업이 반영된 것인지 근육으로 가득한 팔이 마법사들이 종종 입는 로브에 가려졌다. 아무래도 낮의 일을 반복하기 싫어서 입는 것 같다. 옷을 걸치는 얼굴이 오만상이다.

“술집으로 가지. 아무래도 이것을 탐구하기 위해선 당신이 이걸 ‘우연히’ 얻었다던 상황을 더 들어 봐야 할 성싶으니까.”

그보다 결국 설명해야 되는구나. 나는 번뇌를 짓누르며 마이스터를 따라갔다.

어차피 저녁 못 먹었으니까, 이참에 저녁이라도 먹지 뭐. 허탈한 채 떠올린 생각은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슬슬 이야기를 시작하지?”

저녁까지 내가 살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이스터가 한턱 내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음식을 추가 주문 했다. “너무 시간을 끌 필욘 없잖아.” 마이스터가 대화를 시도한 건 딱 그 타이밍이었다.

“일단, 이 장비 어디서 얻은 거야? 마탑? 아니면 어느 집안 가보?”

나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고─또 음식이 나올 거긴 하지만, 거슬리니까─물을 한 모금 삼킨 후 마이스터를 직시했다.

“숨기고 싶으면 차라리 숨겨. 대신 우연히, 라는 말은 꺼내지─.”

“모른다.”

“뭐?”

“어느 순간부터 내 수중에 있었으니까.”

음.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변명─기억상실─참 쏠쏠히 써먹네.

나는 소스가 묻은 부분을 안쪽으로 접어 내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도독, 도독. 마이스터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기억은 왜 잃었는데?”

“알 것 같나.”

“하긴 알았으면 이러고 있지 않겠지.”

마이스터는 입가에 손을 얹으며 사뭇 심각한 얼굴을 했다.

“기억이 없는 건 장비를 얻을 때의 순간뿐?”

다만 그와의 대화는 따라가기 위해서 사고력을 조금 요구했다. 단어를 생략하는 게 아니라 사고 단계를 생략하는 탓이다.

뭐, 조금만 고민하면 알 수 있는 정도라 모양 빠지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장비를 얻은 게 원인일 확률은 낮나.”

도독도독. 버릇인 듯, 마이스터가 계속 탁자를 두드렸다.

“음식 나왔습니다.”

그동안 내가 추가로 시킨 부야베스와 카포나타가 나왔다.

뭐, 말이 부야베스고 카포나타지, 실상은 잡어만을 넣어 끓인 수프와 소스를 뿌린 채소 요리에 가깝다. 현대처럼 그렇게 고급스럽진 않단 이야기다.

맛은 있으니까 더 시킨 거지만.

“당신이 쓰는 모든 장비, 다 공통이야?”

“그렇다.”

“그 가방도?”

나는 인벤토리를 가리키는 물음에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각 장비마다 가진 능력은 동일하고?”

“…가방에만 물건을 더 담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것 외엔 같다.”

그보다 이 장비는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내가 로그인한 시점에 저절로 생긴 걸까? 아니면 그 이전에?

해결할 수 없다며 미뤄 둔 질문이 계속해서 차올랐다. 삐이이. 귀가 잠시 먹먹해졌다.

“그걸 지금껏 입고 다닌 건 역시 실용성 때문?”

“그래.”

…그래도 이 옷 자체가 증오스럽거나 하진 않다. 얘가 아니었으면 지금껏 옷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을 테니 당연하다.

“하긴 나라도 이렇게 기능 좋은 옷이 있다면 언짢음을 참고서라도 입고 다니겠어. 지금껏 입고 다닌 걸 보면 저주나 부작용도 없는 것 같은데.”

마이스터의 긍정 또한 내 기분을 한결 낫게 해 주었다.

것봐. 이런 옷 있으면 다 입고 다닐 거라니까.

처음부터 안 입었다면 모를까, 무지로 인해 착용하고 다녔을 적 온갖 편의를 느껴 버렸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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