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외쳐 보지만 (1)
한 달보다 조금 더 되는 시간이 더 흘러, 나는 베뮈르헨에 도착했다. 그래, 드디어 이 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내가 진실의 일부를 알게 될 도시에, 기어코.
“…삼엄하네요.”
“머맨들과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 치러 온 도시니 말일세.”
다만 바다의 적들과 싸우는 것이 도시의 주된 일이라서 그런가. 베뮈르헨은 보편적인 항구도시와 많이 달랐다.
정박한 함선은커녕 선착장조차 없는 것부터가 그러했다.
더불어 성벽은 대륙 쪽이 아니라 바다와 인접한 면이 더 높고 두꺼웠으며, 성벽 너머의 바다에는 여러 갈래로 꼬인 둑과 방파제가 있었다. 둑 중간중간에 세워진 포탑이 사뭇 위협적인 건 덤이다.
전부 외세의 적을 위한 대비였다.
“들어갑세.”
거기에 도시 내부도 적의 침입을 대비한 형태로 지어져서야.
“…길이 진짜 이중이네요.”
“정말이군. 아랫길은 대체 뭐지?”
“베르세르크 배고프다. 밥집 가자.”
나는 은근한 눈으로 길 아래쪽을 살폈다.
이걸 수로를 팠다고 해야 할지, 그냥 건물을 높게 짓고 2층 높이에 입구와 길을 또 한 번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
근데 수로라 치기엔 또 물이 흐르지 않으니, 따지면 후자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길이라기엔 너무 좁고 깊은 게 또 의아하지만.
“드문 경우지만, 머맨들이 쓰나미와 함께 올 때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아, 침수를 대비한 것입니까?”
“그것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 도시에 물이 차면 머맨들이 그걸 타고 이동하며 사람들을 죽이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는데, 그거 맞습니까?”
“잘 아는군. 그게 맞네.”
“지금도 물이 흐른다. 법사야, 이것도 머맨이 왔다 간 건가?”
“그건 어제 비가 와서라고 생각하네.”
그런 거였나. 나는 이유 없이 만들어지는 건 역시 없다고 생각하며 위쪽 길을 건넜다.
다리 형태의 길은 돌로 이뤄져 있어 무너질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대부분의 도시가 흙길로 이뤄져 있음을 고려하면 약간 근사한 느낌이기도 했다.
베뮈르헨은 무려 도시 전체가 돌길인 셈이니까.
“아무튼 식당부터 가세.”
음. 바스락거림 없이 탄탄한 느낌. 나는 돌바닥 특유의 든든함을 느끼며 일행과 방향을 달리했다.
“…내일 점심 직후에 마탑에서 보게나. 얼마나 머물지에 대한 견적도 그때 알려 주겠네.”
그런 내 뒤로 아크메이지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앞서 들른 세 개의 도시를 토대로 정립된 규칙이었다.
도시에 들어가자마자 떠날 날짜를 정하고, 이날 정할 수 없다면 중간에 만날 약속이라도 잡을 것.
이때 사적인 일정은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예컨대 악마의 흔적을 조사하는 일이나 악마를 사냥하는 일, 날짜를 잡기 위해 만나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결코 묻지도 말해 주지도 않는 거다.
겉으로 보기엔 썩 괜찮은 관계였다.
“저, 악마기사! 푹 쉬십시오!”
…그 선언 이후, 아직까지도 고집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인퀴지터만 빼면.
“…쉬십쇼.”
데스브링거라고 특히 다르진 않다. 날이 갈수록 의기소침해지긴 하지만… 저쪽도 아직 포기한 기색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끈질긴 놈들이 아닐 수 없다.
“…….”
그렇지만 한번 마음 먹은 일, 쉽게 그만두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컨셉이 그렇단 이유 하나만으로 똥무기 들고 소울라이크 장르 엔딩까지 본 사람이 나다. 뚝심 하면 나도 지지 않는다. 절대로, 지지 않을 거다.
“가자! 배고프다!”
“옙. 갑시다요.”
나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도시를 나아갔다.
처음 온 도시에서 막무가내 전진이라니. 길을 잃기 딱 좋은 행위였으나 별 상관 없었다. 헤매고 헤매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보일 테니까.
“이게 얼만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앙?!”
뭐, 지금은 출구보다 다른 게 먼저 보이긴 한다.
히잉.
나는 프레드릭을 다독이며, 대로에서 벌어진 싸움을 확인했다. 주변에는 이미 구경꾼들 여럿이 붙어서 관람 중이다.
“얼만지 알고 말하는 거냐고!”
뭐,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이랑 싸움 구경이라니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나는 하필 저 건너편에 보이는 식당 겸 여관을 힐끗 보았다. 나는 싸움 구경보다 저기를 더 가고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렵겠지? 나 혼자만 있으면 몰라, 프레드릭까지 있으니까.
“무릎 꿇고 사과해도 못 봐줄 가격인데……!”
히잉.
“기다려.”
나는 얼떨결에─혹은 어쩔 수 없이─싸움 구경을 하게 됐다. 그린 듯한 진상의 발언이 계속해서 내 귀에 꽂혔다.
“후.”
그다음으로 들어온 건 한숨 소리였다. 진상의 상대 격인 슬랜드족이 내쉰 것 같다. 갈색과 핑크색이 섞인 머리카락이 살랑 흔들렸다.
“어디서 한숨이야!”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다시 한번 상대를 살폈다.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단아한 얼굴의 미인… 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 사람한테 갈색과 핑크색 조합의 투톤 머리를 준 건 대체 누구냐? 심지어 장발 포니테일까지? 그따위 생각이 머릿속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스윽.
이 와중에 고쳐 쓰는 안경은 붉은 테고, 민소매로 인해 드러난 팔뚝은 문신으로 빼곡하다. 이쯤 되면 과도한 특징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진짜 조합 쩐다.
“하여간 가난한 것들은…….”
“이상하네.”
그런데 어째, 저 과한 특징이 언젠가의 기억에 있는 것 같다면 그건 과연 기분 탓일까.
“운 좋게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으면 인간의 말을 할 것이지, 왜 짐승 말을 지껄이지?”
사람 면전에다가 욕설 없이 욕할 수 있는 성질머리를 분명 본 적 있다면?
“뭐? 쓰레기? 지금 말 다 했─.”
퍼억.
나는 망설임 없이 주먹으로 안면을 깨 버리는 이를 보며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러자 아주 아슬아슬하게 기억 하나가 튀어나왔다.
“눈치도 지능순이랬나… 이 정도 수준의 눈치도 챙기지 못할 지능이면 손해배상도 못 받겠네. 짜증나게.”
…설마, 2주년 기념 패치 때 나왔던 신규 직업도 존재하는 거야?
“이야…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베뮈르헨의 미친개다워.”
“사람을 봐 가면서 시비를 걸 것이지. 저 멍청이는 눈알을 어디다 쓰는 거야? 외지인이야?”
“마법사 로브랑 휘장이 안 보여서 만만하게 보였나 보지.”
“…저 복장도 딱히 만만하게 보이진 않지 않아? 딱 봐도 기술자란 게 티가 날 텐데.”
“그걸 알아볼 눈이 있었으면, 머리색부터 보지 않았겠어? 마법사보다 대명장의 이름값이 더 높잖아. 머리색이 두 개인 대명장은 한 명뿐이고.”
“그건 그런데… 이크. 이쪽 본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트레일러에서 본 건 다섯 명뿐인지라, 무의식적으로 이 인원이 끝일 거라 여겼던 탓이다.
그런데 한 명이 더 온다? 그것도 적폐 of 적폐여서 밸런스를 터트려 버렸던 신규 직업이? 밸런스는 둘째 치더라도 세계관과 살짝 어긋나기까지 하는 그 직업군으로?
이거 실화냐?
잘그락잘그락.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 기어코 상대에게서 지갑을 찾아낸 이가 그 내용물을 탈탈 털었다.
몇 개의 동화와 한 개의 은화가 그의 손에 떨어졌다.
“하, 돈도 없잖아.”
상대는 전리품이 마음에 안 드는지, 잠시 내려놓았던 짐을 챙기며 기절한 이를 꾸욱 밟았다. 유독 새것처럼 보이는 망토에 선명한 흙발 자국이 남았다.
“역시 미친개…….”
“쉿. 들으면 어쩌려고.”
이야, 그보다 저 직업이 나한테 인상적이긴 했나 보다. 내가 저 직업을 플레이한 전적은 딱 한 번뿐인데, 그 한 번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걸 보면.
주로 이 캐릭터의 인성은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캐릭터 장사를 하는 게임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캐릭터에게 특징을 이렇게 몰빵해도 되는 것인가.
얘는 직접 싸우는 계열도 아니면서 왜 스크립트에선 매번 주먹질을 하고 있는가 등등.
그런 하찮은 기억들이긴 하지만.
“이만 가자, 다 끝난 것 같으니까. 그리고 누가 경비대한테 저놈 좀 데려가라 그래. 옷가지까지 다 털리면 불쌍하잖아.”
“털리면 그건 시비 걸 상대를 잘못 고른 그놈 탓이지.”
다만 그런 기억들은 있어도 갠스에 대한 기억은 잘 안 난다.
그럴 만했다. 과거의 나는 기존 직업군만 죽어라 팠거니와, 이 직업은 버프기도 많은데 깡딜(계수 추가 없이 스킬 자체에 붙은 대미지)이 너무 세서 도중에 접었다. 뭐만 하면 몬스터들이 픽픽 죽어서 재미없었거든.
“아, 미안합니다. 야, 비켜.”
“왜 채근… 헉.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이제 와선 아무 의미 없다. 쟤가 정말 그 직업군이건 아니건, 내가 관여할 영역은 아니니까.
합류하면 합류하는 거고 스쳐 갈 인연이면 스쳐 가는 걸로 끝나겠지.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날 막고 있던 사람들을 지나쳤다. 그들이 식겁하고 자리를 피해 준 건, 뭐… 이쪽도 내가 해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생긴 게 글러 먹은 건 다시 커스텀하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다.
“잠깐.”
아, 그보다 슬슬 배가 고프다. 저 앞의 식당이 제발 괜찮은 곳이면 좋겠는데.
“잠깐, 당신.”
그런데 왜 저이가 날 부르지.
나는 울림이 있는 저음을 따라 눈동자를 힐끗 움직였다. 제비꽃 같은 보랏빛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재밌는 장비를 가지고 있네?”
* * *
“아까도 말했지만, 난 베뮈르헨의 두 번째 대명장이자 정식으로 마탑에 적을 올린 마법사야. 그런 내 공방에 온 걸 환영해. 아, 내가 먼저 초대한 거니까 감사 인사까진 필요 없어. 날 부를 때의 호칭은 마법사 말고 ‘마이스터Meister’ 쪽으로 해 주고.”
당황스러운 제안이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내게 손해될 것은 없었다. 안 그래도 이 장비의 정체를 슬슬 알아봐야겠다 싶긴 했거든.
“경고하건대, 공방 물건에 함부로 손대진 않길 바라. 일부 물건이 당신의 손을 태우거나 파쇄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 마당에 거래를 시도해 온 상대, ‘마이스터’는… 논란─밸런스, 세계관─만 빼면 완벽하게 검증된 인재였다. 신규 직업: 기계학자의 3차 전직인 시점부터가 그렇다.
더구나 기계학자의 전직 설명에는 13살에 장인 어쩌고 세계를 뒤흔들 발명 저쩌고가 있었으니.
기억이 아리까리해서 뉘앙스만 떠오르는 정도이나, 아무튼 천재라는 건 확실하다.
하면? 당장 받아들여야지. 내가 이 이상의 인증된 천재에게서 물품 검사 받을 기회가 얼마나 있다고.
“안쪽도 들어갈 생각 마. 위험한 약품이 많으니까.”
거기에, 메타적인 이유를 제해도 믿어 볼 여지는 충분했다.
아무렴, 상대는 내가 증명을 요구하기도 전에 본인이 나서서 증거를 보여 주려고 했다. 비록 옷 여기저기를 뒤집어 보더니 “휘장 또 두고 왔네.”라며 한숨을 쉬고, 마이스터란 증거도 공방에 있다며 이따가 보여 줘도 되느냐고 짜증난(스스로에게) 얼굴로 묻긴 했지만.
어쨌든, 내 눈엔 그게 연기 같진 않았다. 따라온 공방 위치도 온갖 대장간이나 마법 도구 가게 사이에 있는 게 나름 신뢰감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는 장비를 다 줄 필요 없이 장갑만 보여 줘도 충분하다는 조건을 달아 줬다. 이것을 얻은 정황이나 내가 이것의 성질을 모르는 이유도 캐묻지 않았고.
더불어 장비를 공짜로 보여 주는 대신, 알아낸 정보도 대가 없이 공유하겠다 했으니. 이 정도면 받아들이지 않는 게 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만에 하나 잃어버린다 해도 장갑 정도면 감수할 만한 손해였으니까 말이다.
“주의 사항은 이걸로 끝. 명심해,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입는 피해는 전부 당신 몫이고, 내가 배상해 주는 일도 없을 거야.”
하여 나는 이곳에 왔다. 마이스터의 공방, 기름 쩐 내와 금속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 말이다.
“머리에 충고를 새겼다면 잠깐 기다려,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 작업대 위의 종이도 건드리지 마. 공방 주인이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궁금한 게 아닌 이상.”
음. 함부로 만지고 건드릴 생각은 없으니 주의 사항은 내 알 바 아니고, 냄새를 보니까 미리 식사를 하고 오길 잘했네.
나는 마이스터의 제안 일부─점심을 안 먹었다고? 검사하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 공방에서 먹지? 아, 말도 맡겨야 하나. 그럼 어쩔 수 없네.─는 거절하길 잘했다며 몇십 분 전의 판단을 칭찬했다.
마이스터가 너무 음식을 집요하게 봐서, 쟤도 안 먹었나 하는 마음에 마이스터 몫도 시키느라 돈이 좀 더 나가긴 했지만… 돈 좀 더 내는 게 기름 냄새 나는 곳에서 먹는 것보단 낫지.
겸사겸사 마이스터가 마이 웨이인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뻔뻔했다는 깨달음이랑, 약간의 추억 회상 기회도 얻었고.
스륵.
근데 쟤 왜 갑자기 옷 벗음?
“뭐 하는…….”
나는 다짜고짜 상의를 벗는 이를 두고 당황했다가, 밋밋한 가슴팍을 보고 겨우 평온을 되찾았다.
“왜, 여잔 줄 알았어?”
…틀린 말은 아니어서 부정은 못 하겠다.
그렇지만 내가 마이스터를 여자로 오해한 건 딱히 외형 때문이 아니라고. 원작에선 여캐로 나왔던지라 아무 생각 없이 얘도 여자일 거라 생각했을 뿐이지.
지금까지 만났던 주요 인물들은 설정에서 어긋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장비를 보여 주기로 했으니 이번만은 봐주지.”
아니, 그러니까 난…….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다가, 변명하면 할수록 더 추해지기만 함을 깨달았다. 억울한 일이었다.
“너도 벗어.”
그사이 작업복(추정)으로 갈아입은 마이스터가 담담한 얼굴로 손을 척 내밀었다.
별말 아닌데 왠지 한숨이 나왔다.
“찢으면 안 되겠지?”
“상관없다.”
나는 왼손의 하프팜 장갑을 그에게 건네준 후 공방 벽면에 몸을 기댔다. 내 허락에 마이스터가 눈을 빛낸 건 여담이었다.
“그럼, 사양치 않고.”
마이스터는 장갑을 다짜고짜 가위로 잘랐다. 사각사각. 오려진 천 조각이 뭔지 모를 물에 담겼다.
“내가 쓰고 있는 안경엔 무생물에 한해 본질을 보게 해 주는 마법이 걸려 있어. 내 조부가 걸어 주신 마법이지.”
이어 새로운 조각을 더 생성해 낸 그는 다른 약품에도 천 조각을 퐁당퐁당 담갔다. 이런 것에 문외한인 나는 저것이 무엇을 위한 행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마력이 많이 들어서 흔한 것에는 반응을 하지 않아. 지금껏 발견한 적이 없거나, 희귀한 것이라고 등록되어 있거나, 내가 바랄 때만 마법이 발동할 뿐.”
그나마 설명이라도 해 줘서 다행이지.
나는 마이스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하는 짓을 전부 지켜보았다. 그는 이제 아이템을 동원해 옷을 태워 보거나 얼려 보거나 하고 있다.
“그중 당신의 장비는 첫 번째에 속해, 겉보기엔 그냥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옷에 불과한데도. 당신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반쯤은.”
“제대로 알진 못한단 거네. 하긴, 그러니까 내 요청을 들어준 거겠지.”
그러다 문득, 장갑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앞서 찢은 조각들을 찾아보면 그것들은 어느새 사라져 있는 상태다.
파괴될 경우 알아서 복원을 시작한다는 건 알았지만, 찢겨 나간 파편이 사라진다는 건 지금 처음 알았다.
“…이래서 찢어도 된다고 한 건가. 신기한데.”
마이스터 역시 흥미진진해하는 중이었다. 그는 복원된 장갑을 이리저리 들춰 보더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들도?”
“…복원 능력이라면, 그렇다.”
“굉장해.”
그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은 후, 안경을 고쳐 썼다.
“동시에 놀라워. 이건 마법이 걸린 아이템이 아닌데… 어떻게 자동으로 수복되는 거지?”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다.
아크메이지는… 그런 말 없었는데. 자동 복원이라는 고위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하면 했지.
“…대현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베뮈르헨의 대현자에게 들은 말이 아니면 잊어. 그 어떤 대현자도, 아이템 분석에 한해선 본질을 보는 마법사들을 이기지 못하니까.”
어… 그러니까, 일종의 전문 지식 차이라 보면 되는 건가. 과학자도 생물학 전공과 물리학 전공, 전기전자공학 등으로 나뉘어서, 전공 아닌 지식을 물어보면 대답 잘 못해 주는 것처럼.
“그래서, 네가 본 본질은 뭐지?”
“…글쎄, 이 안경은 만능이 아니라서. 과거에 분석한 종류가 아니라면 답을 내주지 않아.”
“난 네 안경에 대해 묻지 않았다.”
각설하고, 이쪽 전문가가 이들이라면 이들 말을 들어야지.
나는 경청을 위해 마이스터의 말에 집중했다. 마이스터가 입술을 살짝 깨문 건 그때였다.
“…난, 마법을 쓸 줄 몰라.”
엥? 소리가 절로 나는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