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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91화 (191/389)

191화 남아 있을 수 있다고 (7)

지금쯤이면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가 내 이야기를 실컷 듣고 있겠지.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전부 전해 들었겠지.

나는 그 사실을 상기하며 눈을 짚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정말 가늠할 방도가 없었다.

“미리 선수 쳤어야 했나…….”

제가 울었다는 건 비밀로 해 달라는 당부를 미리 했어야 했을까.

그렇지만 누가 물어볼 것을 상정도 안 했던 상황에서 그런 걸 당부하는 것도 좀 우습다. 심지어 부탁을 해도 쉽게 잊을 아이까지 있는데.

“아니면 앞질러서…….”

그렇다면 아까 그 셋이 떠나자마자 뒷문으로 뛰어내려서 먼저 방문이라도 했어야 했나? 곧 누가 와서 뭘 물어볼 건데, 그때 제가 울었다는 사실만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하게?

“…아, 몰라. 내가 이런 것까지 어떻게 예상한다고.”

…미친 상상도 정도껏이다.

나는 가능성 없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그냥 후련히 내던졌다. 이렇게 계속 붙잡고 있어 봐야 시간이 돌아가는 것도, 이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난 차라리 겸허한 태도로 받아들이겠다. 그게 스트레스는 덜하다.

“…그래도 약간 기대는 하고 싶은데.”

그게 스트레스는 덜한 편인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딱 잘라 돌아가진 않아서.

나는 슬그머니 기대를 키워 보았다.

만에 하나, 그러니까 정말 운이 좋아서.

그분들이 참 지성 있고 배려심 있는 분들이라서.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쏙 빼놓고 말해 준다면……?

그런 기대였다.

“그럴 리 없지.”

하나 조금만 생각해도 그런 일이 없을 거란 건 쉽게 예상이 된다.

암, 재미 삼아 입에 올린 건 아닐지언정, 조카의 과거사조차도 초면인 사람에게 말해 준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이 내가 울었단 사실을 빼먹었을 것 같진 않다.

역시 가망이 없다. 남은 건 혼란뿐이다.

“설마 악마 이슈가 다시 터지진 않겠지.”

악마기사가 울었다고?! 그 사람은 피밖에 없는 분이다. 고로 눈물 흘린 것은 악마다! 악어의 눈물이다! 라거나.

아니면 그분들이 너무 과한 기억력으로 내가 말한 것들을 그대로 읊어서, 그분이 이렇게 말을 길게 할 줄 알았다고?! 존댓말을 쓸 줄 알았다고?! 역시 그건 악마다! 라거나.

그런 식의 전개가 일어날 것 같아서 두렵다. 그렇게 된다면 대응할 방도도 없다는 게 특히 더.

“…염병이다, 진짜.”

나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결국 다시 한번 싫증을 냈다. 그러곤 손을 눈가에 얹었다. 이로 인한 여파를 헤아리려니 벌써부터 넌덜머리가 나는 기분이었다.

“…잠이나 자자.”

결국, 나는 응급조치를 취했다.

지금 고뇌해 봐야 계속 생각만 엉키고 짜증만 배로 부풀 것, 잠이나 푹 자고 맑은 정신으로 대책을 세우자는 판단이었다. 어차피 당장 해결할 방법도 없는 게 작금이기도 하고.

심지어 내겐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있다.

현실이었다면 이럴 때 자고 싶어도 못 자겠으나─눈 감으면 “아니 근데, 저게 먼저”라고 그라데이션 분노가 치미며 뇌를 깨웠을 테니─나는 수면 시스템 버튼만 누르면 끝 아닌가.

매번 생각하지만, 수면 시스템은 진짜 신이다.

나는 현실에 가져갈 수 있는 걸 고른다면 꼭 이걸 가져가고 싶다 생각하며 시스템을 켰다.

「 ▲ 7시간 00분 자기 ▼ 」

문득, 귀 너머로 여전히 왁자지껄한 주점의 소란이 들려왔다.

“빈둥대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클레오르, 사랑해! 내 귀염둥이 클라라도 사랑해! 엄마 자식으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와하하하! 산후조리 끝나자마자 술이냐!”

“클레오르 꼴 좀 봐라! 쟤가 애 엄마지! 누가 애 엄마냐!”

“아, 알 바 아니고! 클라라 태어난 기념으로 마셔!”

그와 동시에 시야가 어둠에 잠겼다. 마치 빗줄기처럼 고여 드는 어둠이었다.

* * *

“왜 이렇게 기계를…….”

“노력하고 있…….”

“말소리 좀… 애 듣는…….”

살짝 열린 문틈 새로 부모님의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나밖에 없어서 방문을 제대로 닫을 필요가 없던 자취 때의 버릇이 아직 안 고쳐졌나 보다. 본가에 들어온 이상 이것도 고쳐야 하는데.

“멀었어요?”

“기다려 봐요. 이게, 그러니까… 여기로 들어가야 하나……?”

“잘하는 거 맞아요?”

별개로 두 분이 뭘 하고 계신가 본데…….

도통 모르겠다 싶으면 내게 도움을 청하시는 게 평상시였다. 하나 오늘은 별로 그러실 마음이 아닌가 보다.

나는 슬그머니 문가에 서서 그분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어차피 깨진 집중. 언제 부를지, 부르지 않는다면 두 분께서 어떻게 해내실지,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시나리오는 다 이런 걸로 볼 거 아니에요.”

“…내가 뭐 시나리오만 보지, 이런 걸 보나.”

“어휴.”

“크흠. 그래도 이번에는 맞았잖아요. 봐요.”

“정말 이게 맞나…….”

그런데 정말 뭘 하시는 거야?

나는 문을 살짝 더 열어 보았다. 다행히 두 분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여기에 웹툰이라고 적혀 있잖아요. 웹. 툰. 맞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게 다 만화예요?”

웹툰……? 웹툰 이야기가 왜 나와?

나는 당황했다. 내가 새로운 진로로 삼고자 하는 소재가 여기서 튀어나올 거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두 분이 만화란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 만큼, 더더욱.

“많네…….”

“그러게요.”

만화엔 하등 관심도 없던 분들이 갑자기 왜 저러시나.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않은 채 대화에 더욱 집중했다.

“뭐가 제일 인기가 많은 거지?”

“으으음… 뭔가 많아서, 원…….”

“일단 위에 있는 거 하나만 골라 봐요.”

“알았어요, 잠깐만요…….”

그사이 두 분은 어떻게든 인기 많은 만화를 찾아내셨다. 화면은 보지 못하나, 대화만 들으면 상단에 위치한 만화 중 아무거나 하나 고르신 것 같다.

“한번 봐 봐요.”

“잠깐만요…….”

그보다 무슨 바람이 드신 걸까. 내가 웹작 하겠다고 하니까 궁금해지기라도 하신 건가?

“…음.”

“…으음.”

나는 두 분이 뭘 보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몸을 들썩였다.

다만 문틈 새로 보이는 두 분의 미간이 점차 좁아지는 걸로 보아, 썩 좋은 만화를 고르시진 않은 것 같다.

“…내가 너무 늙었나.”

“젊은 애들이… 음, 그,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는 건 아는데… 이건…….”

진짜 뭘 고르신 거야. 19금 만화라도 고르신 건가?

나는 나중에 검색 기록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한탄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여보.”

“네. 말하세요.”

“하고 싶은 거 전부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이건 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잠깐. 나는 내가 겨우 찾은 희망 진로에 먹구름이 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음. 그래도 애가 하고 싶다는데…….”

“이건 너무… 내용이 좀 그런데…….”

“나만 해도 범죄물 영화는 몇 개 찍었잖아요. 영화도 장르마다 다른 것처럼 만화도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도 그건 검열이 되잖아요. 얘는 나이 제한도 없고, 접근하기도 너무 쉬운 것 같은데…….”

“일단 두고 봅시다. 그리고… 당신도 알잖아요. 우리 애가 이런 걸 설마 그리겠어요.”

“…그렇죠?”

다행히 아버지가 힘내셨다. ‘이런 걸 설마 그리겠어요’라는 말은 다소 안타깝지만, 어쨌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물어는 볼까요?”

“네, 네. 그러는 게 낫겠어요.”

그러다 두 분이 나눈 말에, 황급히 문을 닫았다. 물론 내가 들었다는 걸 들켜선 안 되니,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문을 다 닫은 후에는 빠르게 의자로 달려갔다. 크로키 연습을 위해 늘어놓았던 자료가 한쪽으로 밀려나고, 그리다 만 그림이 순식간에 책상 위로 올라왔다.

똑똑.

타이밍 맞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나는 쥐고 있던 연필을 놓는 척하며, 의자를 빙글 돌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막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중이었다.

“아들, 내가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네.”

“혹시… 그, 네가 되고 싶다는 직업 말이야……. 다 이런… 잔인한 그림만 그리는 건… 아니지?”

그러면서 당신의 전자 노트를 내미셨는데, 그 위엔 아슬아슬하게 19금을 피한 만화가 펼쳐져 있었다.

부도덕적인데 어린 주인공의 쾌락형 폭력이 주가 되는 내용이었다.

이런 것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모를까 만화에 익숙하지 않은 두 분껜, 특히 아동 인권 신장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껜 많이 자극적인 내용이기도 했다.

“…다 그런 거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일상 만화나 로맨스 만화도 많은데 하필 보셔도 이런 걸…….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두 분의 걱정을 덜어 드렸다. 예시가 될 만한 만화도 보여 드리자, 두 분의 심각한 표정이 풀어진 건 여담이다.

“그렇지?”

“크흠… 그래. 그래야지.”

정말이지, 어이없는 하루였다.

…내가 도전하려는 장르가 판타지 범죄극이라는 사소한 문제만 빼면.

“갑자기 찾아와 이런 소리나 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나는 내가 그릴 작품을 숨겨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며 뒷목을 긁었다.

“아들.”

한데 어머니가 먼저 나가신 후, 아버지가 따라 나가시기 전 내게 말을 거셨다. 나이를 먹으며 더 중후해진 얼굴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저렇게 말해도… 네가 정말 하고 싶다고 하면 응원해 줄 사람이 네 엄마다. 알지?”

“…그럼요.”

“그렇다고 대놓고 잔인한 그림만 그리진 말고. 서사도, 의미도 없이 그냥 잔인하고 선정적이기만 한 건…….”

“작품이 아니라 자극만 좇는 무언가에 불과하죠. 알아요.”

“그래. 너라면 잘 알 거라 생각한다.”

한데 그 윤곽선이 사뭇 흐린 것 같다면 그건 착각인가?

“힘내렴. 저번에도 말했지만, 아빠는 언제나 널 응원한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그럼에도 당신의 다정함이 바다처럼 깊게 느껴진다면, 그건.

“네.”

나는 마지못해 웃었다.

차마 사랑을 두고 울 수는 없었으므로.

* * *

“아.”

어제도 그렇고, 오늘 일어날 때도 그렇고. 일어날 때의 기분이 왜 이리 뒤숭숭하지.

나는 꿈을 꾼 듯, 아닌 듯 오묘한 기분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다음 도시로 출발할 날짜가 된지라 꾸물거리는 건 불가능했다.

스윽. 무의식적으로 눈가에 올라간 손이 물기를 훔쳤다.

“가자.”

히잉!

별로 밥을 먹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나는 그대로 체크아웃을 한 뒤, 프레드릭을 데리러 갔다. 새벽부터 일어난 프레드릭은 마구간지기의 보살핌 덕에 털이 반지르르 빛나고 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나는 팁을 받고 행복해하는 마구간지기를 뒤로한 채, 합류 장소로 향했다.

참고로 첫날 밤 이후 일행과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를 찾아왔던 심문관과 그 가족의 일이 잘 해결되었는지, 그 뒤로 아무도 찾아온 적 없는 탓이다.

“그때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아, 방문이 없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일행은 아닐지언정 그때 그 심문관이 다시 찾아왔다.

비록 내가 이날, 이 시간에 출발하려 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뭐, 일행에게 듣기라도 했나?

“사과가 늦은 것 또한 사죄드립니다.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눈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벗겨 내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나는 그가 찾아온 방법을 궁금해하기보다 그의 사과에 집중했다. 그의 사과를 들으며 기분이 오묘해진 건 덤이다.

그 이후, 딱히 사과받는 걸 기대하진 않았던 까닭이다. 내가 저 같은 입장이어도 비슷하게 움직였을 테니까.

“사과는 필요 없다.”

“…필요 없으시더라도, 사과드리겠습니다. 그게 마땅히 옳은 일이니까요.”

해서 미쳐 버린 우연을 두고 어이없어할지언정, 심문관이 흘렸던 악의는 이미 잊었는데…….

나는 심문관들은 다 이런 우직함을 품고 있는가 하며 마지막 남은 불만도 버렸다.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푸륵.

“참아.”

뭐… 프레드릭은 아닌 듯 보이지만. 아무래도 자기를 공격하려 했던 사람임을 알아본 것 같다. 하여간 머리 하난 비상하다.

“저… 약소하지만 이건 사죄의 선물입니다.”

상대도 프레드릭이 자기를 꺼린다는 건 알아챘는지, 눈치 보며 손을 내밀었다. 동그란 나무통이었다.

“필요 없─”

“이모랑 이모부가 반드시 드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제 사죄로써 받기 싫으시다면, 그분들의 선물로써 받아 주십시오.”

그런데 여기서 거절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불기를 쓴다고?

“…제가 그대로 들고 가면, 사촌 동생도 실망할 겁니다.”

심지어 추가타까지?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린 채 심문관이 내어 준 것을 낚아채 왔다. 가죽 너머로 나무통의 따끈따끈함이 느껴졌다.

“도시락입니다. 아침을 이미 드셨다면, 점심으로 드셔도 충분할 겁니다.”

이미 도시락은 다 챙겼지만… 오늘 점심이 새로 정해진 것 같다. 나는 도시락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갑자기 사라진 도시락에 상대의 눈썹이 들썩였다. 마법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곧 표정이 나아지긴 했어도.

“용건이 더 남았나?”

그보다 왜 안 가. 사과도 받았는데, 여기서 할 말이 더 남았어?

“…악마를 전문적으로 사냥하신다 들었습니다. 정말 많은 악마를 잡으셨단 이야기도 들었고요.”

내 신경질적인 반응에 심문관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질문했다. 또 나한테 악마니 뭐니 난리 치려는 건가? 내 눈매가 매서워졌다.

“만약 검은 불을 다루고, 목소리가 어린…….”

그러나 그런 유형의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말을 잇던 심문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말이 오락가락하는 악마를 만나신 적 있으십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제 들은 것이 없었다면 그리 느껴졌을 것이다.

“…기억엔 없다.”

부모님의 원수를 찾는 듯하니, 마음 같아선 최선을 다해 성실한 답을 주고 싶다. 하지만 나 이전의 악마기사가 그것을 잡았는지 잡지 않았는지 확실치 않아서.

나는 거짓은 아닌 답만 슬쩍 내놓았다. 심문관의 표정이 조금 공허해졌다. “그렇군요…….” 하나 그 허무함이 오래가진 않았다.

“하면 혹시… 그런 특징을 가진 악마를 만나실 경우에… 그것을 죽이게 된다면, 부디 그 악마를 증명하는 무언가를 간직했다가 제게 보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상대의 사정을 두고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지만… 아무리 봐도 퀘스트였다.

“염치없는 부탁임은 압니다. 그러나…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의 원수를 제 손으로 갚진 못할지언정, 그것이 죽었다는 증거만이라도 받고 싶습니다.”

아니다. 역시 이런 사정을 두고 이런 드립을 치면 안 됐다.

나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이마를 팍팍 치고 싶은 걸 참으며, 상대에게 집중했다.

“마음 같아선 제가 직접 죽이고 싶지만, 악마를 내버려 두란 부탁은 차마 할 수 없어서……. 아, 물론 싫으시다면 이 부탁은 없던 것으로 하셔도 됩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들어주자. 미안해서라도 들어주고 싶어졌다.

더불어 이건 컨셉에게도 허용 가능한 일이었다. 투쟁할 마음이 없는 자들이라면 몰라, 상대는 본인이 복수하고 싶되 내가 먼저 복수할 가능성을 상정하고 부탁하는 게 아닌가.

내게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들어줄 만한 부탁이다.

“떠나라, 그 이상 할 말이 없다면.”

그렇지만 말은 절대 곱게 하지 않겠다. 나는 프레드릭의 고삐를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단심문관이 입을 살짝 벌렸다가 곧 허릴 숙여 인사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 신의 축복이 모험가님을 따르길 기원하겠습니다.”

첫 만남에 비하면 꽤 괜찮은 이별이었다.

여관을 나서는 내 다리가 홀가분해지며, 약속했던 장소로 향했다.

“악마기사!”

그리고 그곳에 다다랐을 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더… 더 노력하겠습니다! 악마기사께서 제게 기대실 수 있도록! 혼자 슬퍼하실 필요 없도록 더 강해질 겁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그래… 내가 울었단 사실을 빼놓고 말했을 리가 없지.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라는 것도 잘 알겠고.

“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 또한 각오를 다졌다.

이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도 컨셉을 완벽히 지키고 만다, 내가. 앞으론 절대, 저어얼대 안 울 거라고.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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