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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90화 (190/389)

190화 남아 있을 수 있다고 (6)

종종 현실이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더한 경우가 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만큼 변칙적이고 파행적인 성질의 것도 없다.

“우연이란 말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문제는 그것에 해명이 필요해질 때다.

그저 운명처럼, 필연처럼 벌어진 일에 감히 원인과 결과를 정하고 그것을 설명해야만 할 때가 온다는 거다.

“우연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게 우연일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런데 그걸 과연 풀어 말할 수 있을까? 이유는 없으나 벌어진 일이고, 원인은 없으나 결과는 존재하는 일을 명확하게 서술할 수 있어?

“대화할 자세를 갖추고 와라. 받아들일 생각 없는 자에게 떠들 생각 없다.”

우연에 이유를 따지는 건, 결과적으로 ‘왜’는 어째서 ‘왜’냐고 묻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다른 말로는 어리석은 행위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원리는 있어도 목적은 없는데, 그것에 신의 진노니 뭐니 이름 붙이며 난리를 일으키는 것처럼.

“너……!”

그런 점에서 전부 제 탓을 하는 건 관두길 바랍니다. 당신도 섬뜩하겠지만 나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라고.

“우연이라잖습니까.”

“저걸 믿으란 거냐!”

“형제님, 대화하기로 약속했잖습니까.”

“인정하기 싫어서 뻗대기는.”

“난 뻗대는 게……!”

나 참.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음…….

잠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돌이킬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은데.

암. 거리에서 운 것까지 잘못이라고 하면, 그건 너무하잖아. 아이와 만난 것도 내가 먼저 다가간 게 아니고, 이후 전개도 그렇고.

“이제 가족분들께 돌아가 보지요! 그분들의 이야기도 들어 봅시다!”

“그래요. 가 봅시다. 원래 이런 건 양쪽 이야길 다 들어 보는 거라굽쇼.”

“…그래 봤자.”

“그래 봤자 뭐요. 나리 말 틀린 거 없습니다? 들을 생각 없고 고집만 부릴 거면 그냥 가든가요.”

“…….”

그러니까 내 잘못은 없다. 상황과 각자의 입장이 안 좋았을 뿐이다.

…아마도, 그럴 거다.

“자, 갑시다. 갑시다.”

“늦을수록 가족분들만 힘드실 겁니다! 그러니 어서 갑시다!”

별개로 쟤네들, 지금 가서 상황에 대해 들으면… 내가 울었다는 사실까지 듣게 되는 것 아니야? 그건 조금 곤란한데.

“그분들의 설명까지 들으면 분명 형제님의 오해도 풀릴 겁니다.”

아니, 많이 곤란한데……!

망했다!

* * *

“대니! 그렇게 갑자기 뛰쳐나가면 어떡하니! 걱정했잖아!”

“아까 한 말은 대체 뭐였… 아, 손님?”

다니엘은 느릿한 손길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귀한 양초를 켜면서까지 그를 기다려 준 사람들이 보였다.

이 땅에 남은 그의 가족들이었다.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다치지 않았다면 그걸로 됐어. 네가 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다음부턴 가능한 그러지 말아 주렴.”

“네.”

그들이 내어 주는 걱정은 씁쓰름하고, 어쩔 수 없이 부드럽다. 다니엘은 다정함이 전해 주는 온기에 미미한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따뜻했다.

“그보다 뒤의 분들은……?”

“아… 이분들은…….”

그러다 다시 당황했다. 두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던 까닭이다.

한쪽은 그보다 직위가 너무 높은데 또 함부로 공개할 만한 사항은 아니라서, 한쪽은 그도 잘 몰라서였다.

“안녕하세요. 과분하지만 이단심문관으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늦은 밤에 찾아뵈어서 다소 송구스럽습니다.”

다행히 그가 나서기 전에 다른 이들이 먼저 나서 주었다. 다니엘은 살짝 비켜만 주었다.

“아, 직업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부르긴 편히 불러 주십시오!”

“아, 이단심문관이시라면 그럴 만하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악마숭배자들은 때때로 이름을 통해 사람을 저주한다.

물론 이름만을 알고 거는 저주는 굉장히 약하고─무의미하다 싶을 정도로─또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사례는 무척이나 드문 편이지만… 세상 일은 본래 모르는 법이다.

이단심문관처럼 악마와 직접적으로 치고받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은 아니고, 역으로 이용해 먹겠다며 이름을 밝히고 다니는 사람─다니엘처럼─도 비록 있긴 하지만.

“저희도 평소와 다를 건 없는걸요. 저 애가 워낙 걱정해서…….”

“이해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저도 뭐… 대충 모험가라 불러 주시면 됩니다요.”

“네, 모험가님.”

각설하고 그런 사정을 알기에 다니엘의 가족들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단출한 소개의 끝이었다.

“그,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그 후에는 집 안에 들어가 자리를 갖췄다. 무언갈 물어보러 왔다고 대답하자 부부가 마련해 준 자리다.

본래 켜고 있었던 촛불과, 뱅쇼가 담긴 찻잔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불은 제 걸로 켭시다요.”

그때, 데스브링거가 어둠을 물리기 위한 광원을 교체했다. 촛불 대신 마법으로 작동하는 등불을 테이블 위에 올린 것이다.

은근한 배려에 부부는 아닌 척 기뻐했다. 이단심문관 조카 덕에 초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도 양초는 여전히 귀했다.

“저, 그래서 무엇을 물어보러 오신……?”

“별건 아니고… 그, 오늘 찾아왔던 손님을 기억하십니까?”

“네, 그럼요. 한데 무슨 문제라도…….”

“저 애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뛰쳐나갔는데, 혹시 그 모험가님이 범죄자라거나 하는 겁니까?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부부의 의문에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곤 천천히 말을 골랐다.

악마기사는 어쩌다 만났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악마기사가 특별한 행동을 보인 적은 없는지 등. 편견을 피하기 위한 말 고름이었다.

“최대한 자세히 말해 주세요, 이모. 중요한 거니까요.”

“어려운 일은 아니니 상관은 없지만…….”

한데 참… 부부의 회색 머리가 누군가와 닮았다. 이목구비는 전혀 다르지만, 회색 머리가 다른 지방에선 퍽 드물다 보니 오는 동질감이었다.

데스브링거와 인퀴지터의 시선이 자꾸만 부부의 머리카락을 향했다.

“슈츠가 그 모험가분에게 먼저 다가갔습니다. 아, 슈츠는 제 아이입니다. 어리기도 하고, 지금은 자고 있어서 부르지 않았습니다.”

“네.”

“큼, 어쨌든 그분이 거리에서 울고 계셨던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슈츠가 먼저…….”

“예? 뭐라고요?”

“울어요??”

그러다 상상치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의 입은 쩍 벌어졌다. 다니엘도 놀라긴 똑같았다.

악마기사의 눈물에는 그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놀라게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 어떤 식으로 우셨……?”

“눈에 띄게 울고 계신 건 아니었습니다. 저도 슈츠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알았으니까요.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 몇 줄기만 흘리시는 정도였는데…….”

오, 오열하신 건 아니구나. 아니, 그래도 눈물 흘린 것부터가. 피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눈물이 있긴 있으시구나.

두 사람의 머릿속, 악마기사에 대한 이미지가 혼란을 일으켰다.

“왜, 왜 우셨는지는 아시는……?”

“그건 저도…….”

하긴 그것까진 모르겠지. 두 사람은 시무룩해져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뒤로는 뻔했다.

악마기사는 초대를 받아들였고, 대화를 조금 했고, 하늘이 붉어지기 전에 헤어졌다. 그게 끝이었다.

의도한 것이라기엔 너무 변수가 많은, 하여 우연일 수밖에 없는 만남이었다.

물론 부부가 묘사하는 악마기사가 무척이나 유하고… 또 유하고… 너무 유한 건 마음에 걸렸지만.

“악마기사가 설명도 하실 줄 아는 분이었다니……!”

“아니, 그. 애들한텐 상냥하신 편이잖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 까……?”

“……?”

그들은 다니엘을 설득하기 이전에 머리를 맞댄 채로 혼란을 잠재우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쉬운 편은 아니었다. 그들이 아는 악마기사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렇지만 그게 저 정도까지였나……?”

“저도 몰라요. 근데 저희 아닌 다른 사람은 은근 편하게 대하실 때도 있긴 있었으니까… 의뢰받을 때나 길드에 방문할 때나…….”

“그, 그럼 우리한테만……?”

“아마도, 네…….”

“역시 우리는…….”

하여 그들은 생각하다 말고 자기혐오에 빠졌다. 악마기사에 대한 의심으로 고뇌하던 다니엘마저 당황할 수준이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저, 그 모험가분이 무슨 잘못이라도……?”

“그, 그런 건 아닙니다! 그분은 그냥… 잘못은 없지만…….”

인퀴지터는 말을 하다 말고 다시 추욱 늘어졌다.

악마기사가 그녀를 도와주었듯 그녀도 그를 돕고 싶은데… 그녀는 악마기사가 슬퍼한 이유도 물어볼 수 없는 처지란 게 떠오른 탓이다.

“저희가…….”

심지어 그녀는 저들이 받은 수준의 친절도 받은 적이 없다.

아마 앞의 것과 같은 이유겠지만… 그녀의 무지와 어리석음, 나약함이 불러온 업보겠지만…….

그래도 슬픈 건 슬픈 것이다. 인퀴지터는 그대로 울상이 되었다.

“그, 일단 모험가분이 두 분에게 위해 끼친 건 없다는 거 맞죠?”

“그럼요. 오히려 슈츠와 너무 잘 놀아 주셔서… 제게도 엄청 정중하셨고. 그런데 정말 문제없는 거 맞죠?”

“그럼요. 애초에 음, 저희랑 같이 다니는 분입니다요. 근데 이 인, 이분이 나리를 너무 의심해서… 그거 해명하려고 온 겁니다.”

“아하…….”

그사이, 인퀴지터처럼 눅눅한 얼굴의 데스브링거가 간신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무리 멍청해도 이 정도면 의심을 풀겠지. 심란한 와중에도 다니엘 심문관에게 시선을 준 건 덤이다.

“무슨 오해를 했는진 모르겠지만, 그만 풀렴. 내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위험해 보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어.”

“그래. 나야 가게를 보느라 오래 접하진 못했지만… 나도 비슷한 인상이었어. 변을 당하면 당했지, 했을 사람 같진 않더라.”

“…….”

다니엘 또한 이런 변호와 증언까지 들어 놓고 더 의심할 의향은 없었다.

믿기 싫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고집일 뿐이니까. 그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예. 아무래도 제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하므로 그는 본능적으로 드는 혐오와 분노를 억누른 채 답했다. 사정과 사정이 부딪치며 일었던 사건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오해가 풀렸으면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네요. 늦은 시각에 죄송했습니다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저도… 협조에 감사드리고, 밤잠을 방해드려 죄송합니다. 좋은 밤 되시길 빕니다.”

“별거 아닌걸요. 그보다 이대로 가셔도 괜찮으신 건가요? 밤이 늦었는데 지내실 곳은…….”

“신전에서 머무는지라 괜찮습니다.”

어쨌거나 대화가 마무리되었다면 더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 없다.

데스브링거는 인퀴지터를 챙기며 떠날 준비를 했다. 베르세르크가 전해 주긴 했겠지만, 그래도 너무 늦어서 좋을 건 없었다.

“안녕히 가세요.”

“언제든 찾아오세요, 심문관님.”

“…배웅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니엘의 가족이 내미는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왔다. 다니엘 또한 책임감을 느끼고 어느 정도 거리까지 따라 나가는 중이다.

“오늘 죄송했습니다.”

“사과는 나리한테나 하십쇼.”

“…그러죠.”

“참고로 저는 선빵 친 거 사과 안 할 겁니다요.”

“…상관없습니다.”

그런 예의, 별로 필요 없다. 한번 박힌 미운털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다신 엮이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고.

“…그가.”

그러나 다니엘은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아 있는 듯했다. 데스브링거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귓구멍을 후비적거렸다. 누가 보아도 불량한 태도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고 제게 말했지요. 그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어떤 심정으로 서 있는지도.”

하나 다니엘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데스브링거가 무엇을 하건 꿋꿋이 질문했다.

“그건 어떤 의미였습니까?”

그의 고집을 푸는 데 도움을 줄… 무언가를 구하고자 하는 질문이었다.

“남의 사정을 내가 왜 말합니까요?”

“…그것도 그렇군요.”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그의 질문이 다소 실례인 편인 것도 자각하고 있던 차니까.

해서 다니엘은 순순히 수긍하며 물러나고자 했다. 데스브링거에겐 그게 더 아니꼽게 느껴진다는 건 몰랐다.

함부로 논해선 안 되는 것이나, 종종 알아 달라고 호소하고 싶기도 한 것이 바로 불행─역경과 시련이란 이름으로 새겨진─이었으므로.

“그렇지만… 가족을 잃은 게 댁뿐만은 아닙니다요.”

“……!”

“또, 당신은 친척이라도 남았지만… 누군가에겐 그조차 남지 않았을 거고요.”

“…그렇, 군요.”

그에 다니엘은 그가 간과하고 있던, 혹은 직시하려 들지 않았던 정보에 눈을 내리깔았다.

이미 상실이란 것을 겪어 보았기에,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상실한 순간의 무게를 모르기에, 차마 말을 얹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건 나리한테나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겁니다.”

다니엘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뱉었다.

“반드시… 사과할 겁니다.”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나면 더 넓은 것이 보일 거라던 말이 조금은 와닿는 듯했다.

“…별도로 드리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뭐요.”

“이번 일은 확실히 제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한 말까지 무의미하게 여기진 마십시오.”

“나리를 믿지 말라는 거요? 아직도 그 소립니까?”

“그게 아니라… 악마는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간악하고, 가증스럽다는 걸 기억해 주시란 말입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결코… 얕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기가 죽어 있던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가 그를 보았다. 한쪽은 눈이 반짝거리고, 한쪽은 ‘으, 꼰대!’라고 여기는 눈빛이다.

“걱정 마십시오!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댁보단 내가 잘 알 테니 걱정 마쇼.”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의 조언은 닿았을까, 닿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후자더라도 어쩔 도리는 없다.

다니엘, 그가 모든 증거를 보고 나서야 겨우 납득했듯이, 저들도 직면하기 전까진 이해하기 힘들 테니까.

“부디 건강하시길.”

그러니 부디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깨닫거나, 실수를 저질러도 최대한 수습 가능한 수준으로 저지른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길.

다니엘은 그들보다 어린 이들을 두고 빌었다. 조금이나마 세상을 더 산 이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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