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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87화 (187/389)

187화 남아 있을 수 있다고 (3)

아크메이지는 인퀴지터와 요청을 받고 달려 나간 신관 손에 끌려온 이를 보고, 인퀴지터를 보고, 끌려온 이를 다시 보았다.

“악마기사를 악마계약자로 오인하셨던 모양입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악마기사의 인상착의가 신전에 전달되어 있긴 하나, 그건 완벽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말로 전달된 외관과 실제로 보는 외형에는 어찌할 수 없는 괴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전… 아직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마기를 품은 자가…….”

“악마기사는 악마추종자들과 다릅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물론 악마기사의 경우, 머리색이 워낙 독특하여 그 부분만 기억해도 알아보긴 쉬우나… 세상엔 저 이단심문관처럼 기억할 의지와 여유가 없는 자들도 있는 법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징을 설명하고, 더없이 눈에 띄고 뚜렷한 개성을 말해 줘도, 눈앞에 들이닥치기 전까진 절대 담아 두지 않을 사람들 말이다.

“악마들의 간악함은 신께서도 경계하라 하신 것인데!”

거기에 특정 무언가를 향한 증오심과 혐오감이 더해지거든, 말은 더 이상 길어질 필요가 없다.

그런 이들의 시야는 언어로 확장할 수 있는 성질이 결코 아니다.

“한데 그런 자를 어떻게……!”

“그만! 그만하세요, 다니엘 심문관님.”

“주교님!”

“저는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더한 권위나 권력만이 그를 막을 수 있을 뿐이지.

“하지만……!”

아크메이지는 그 시점에서 약한 한탄을 했다. 이래서 악마기사를 신전까진 데려오려 한 건데. 미약한 후회는 덤이었다.

“심문관님, 제가 심문관님의 사정을, 심정을 몰라서 이러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저는 심문관님께 참회실을 권고드리겠습니다.”

“…주교님.”

“생각을 식히고 오십시오. 지금 다니엘 심문관님은 감정이 너무 격앙되어 있습니다.”

아무렴 관계 개선이나 일정 파악을 떠나, 해당 교구에 악마기사의 존재를 알리려면 직접 데려오는 것이 가장 빠르다.

모두에게 악마기사를 보여 주고 절대 적대하는 일이 없도록 당부하는 것이 가장 빠르단 소리다.

“저는, 충분히 이성적입니다.”

“납득할 의향도 없고 설득될 생각도 없는 마음을 이성이라 말하진 않습니다. 하니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필요 없으십니까?”

“…다녀오겠습니다.”

더불어, 그렇게 하면 신전의 결정보다 자신의 신념과 감정을 우선시하는 이들도 빠르게 배제할 수 있다.

악마기사가 짐을 푸는 동안, 지금처럼 참회실에 보내 버리든 악마기사와 경로가 안 겹치게 심부름을 보내든 하면 되니까. 나가 있는 사람도 사람을 보내서 부탁하면─악마기사는 짐을 풀면 꼭 목욕을 했으므로 시간은 충분했다─그만이고.

“…죄송합니다. 심문관님이 워낙 강경하셔서…….”

“아닙니다. 이해 못 할 심정은 아니니까요. 저도 한때 그러했던 적 있고…….”

그러나 지금처럼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헤어진다면… 앞으로 이런 일은 빈번하게 터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신전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을 반강제적으로 데려올 수도 없고.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주교님.”

“예, 아크메이지님.”

결국 어느 쪽이든 답이 없다. 아크메이지는 주교의 사과를 받는 인퀴지터를 보며 한숨만 반복했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절 불러 주시지요.”

“예.”

“인퀴지터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네도.”

“네!”

“예, 알겠습니다요.”

그래도 최소한, 이런 말이라도 둘러 두면 앞으로 있을 사태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주교와 다른 이들에게 신신당부한 후, 몸을 틀었다.

그녀가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였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은 애써 무시했다. 당장 생각나는 게 없으면 없는 거다.

“죽겠군…….”

그녀는 갈수룩 부치는 체력에 일단 침대에 누웠다. 여정 초기에 비하면 눈에 띄게 강파른 몸이 추욱 늘어졌다.

“옛날엔 어찌 다녔는지 모르겠어.”

그러나 머리는 버릇처럼 사유했다. 연구소의 위치를 직접 보고 정하겠다며 도시 몇 개를 순회했던 시절이나, 기어이 한 곳을 찾아 건물을 올렸던 순간이나, 그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의 모습 따위를…….

“…이런.”

아크메이지는 오랜만의 추억과 자연스레 새겨지는 아픔에 생각을 틀었다. 애저녁에 극복한 사건이라지만, 슬픈 기억을 구태여 꺼내 들 필요 또한 없었다.

대신, 그녀는 주체를 바꾼 채로 사고했다. 그러니까… 그들을 마주하기 전 악마기사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음?”

그러다 문득, 지금껏 놓치고 있었던 맹점에 생각이 미쳤다.

“…정말 어떻게 다닌 거지, 그는?”

지금이야 용사와 그녀의 보증으로 도시를 편히 돌아다닌다 치자. 그런 게 없었을 과거의 그는 과연 어떻게 신전의 눈을 피했을까.

이단심문관을 죽였다면 살인범으로 수배된 게 있을 테고, 제압만 해서 도망 다녔단들 품은 마기만 보고 추적하던 사람이 많았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이걸 이제 떠올리다니 나도 늙었군.”

사소한 내용이라지만 진작 떠올릴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함에도 이제야 사유하다니.

그녀는 살이 내리면서 사고 능력까지 내린 것 같다며 머리를 주물렀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침대를 툭툭 치며 고민했다.

“모험가 등록이야 시험만 통과하면 그만이지만…….”

최소한의 실력이 있다면, 현존하는 수배지에 얼굴이 올라가 있지 않다면.

모험가 길드는 얼마든지 등록해 준다.

이름이나 나이 같은 신상도 필요 없었다. 모험가 길드가 중시하는 것은 의뢰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지, 등록할 대상의 과거가 아니었다.

“그 길드가 수배된 대상을 못 알아볼 리도 없는데……?”

물론 수배 대상자였음이 밝혀지거든 바로 등록을 취소하고 추적 명령을 내린다. 길드의 규모가 커지며 지게 된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론 그게 더 이득이라서다.

아무렴, 모험가 길드는 현상 수배로도 돈을 버는 단체임을 잊어선 안 된다.

“흐음…….”

그렇다면 악마기사는 활동 기간 내내 도시에서 신관과 마주치지 않는 행운을 거머쥐었던 걸까. 한데 그게 현실적으로 정말 가능한 일인가?

어떤 성들은 성문 앞에 신전의 사람들을 대령해 두기도 하는데.

우웅.

그녀의 생각이 깊어지려던 찰나, 연락이 왔다. 받지 말까. 아크메이지의 양심과 짙은 귀찮음이 갈등을 일으켰다.

“…왜 그러나.”

─밖인가?

그중 이긴 건 양심이었다. 연락해 온 이의 이름값 또한 한몫했음은 차마 부정 못 하겠다마는.

“방금 전, 도시에 도착했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별건 아니고, 네가 이번에 보낸 수식 말인데. 일이 좀 커질 것 같다.

“……?”

─넌 아마 그런 의도로 만든 게 아니겠지만…….

그러나 양심과 이름의 무게로 겨우 억눌렀던 귀찮음과 피로는 곧내 날아갔다.

─어쩌면 이것, 이 세계의 판도를 바꿀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간다면 좀비나… 네가 데리고 있는 기사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크메이지의 상체가 일으켜 세워졌다.

* * *

“그, 괜찮으신가요?”

어이없지만 초대받았다.

아이는 내가 계속 우니까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아이 아버지는 나랑 아이 둘만 두기엔 걱정되는데 가게를 오래 비울 수는 없고, 나는 나대로 상황 정리할 정신이 안 돼서 벌어진 일이었다.

결정적으로 아이의 집이 코앞이기도 했고.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로에서 운다 vs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의 배려를 받아들인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솔직히 후자가 낫지 않은가.

아닌 사람도 당연히 있기야 있겠지만 적어도 컨셉한테는 이게 맞다. 캐붕의 목격자는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대접해 드릴 만한 게 이것뿐이라……. 죄송해서 어쩌지.”

“이걸로도 과합니다.”

각설하고, 나는 아이의 어머니가 건넨 것을 받아 들었다. 과일을 동동 띄운 술, 뱅쇼Vin Chaud였다.

“나도, 엄마 나도! 나도 줘!”

“안 돼. 이건 감기 걸렸을 때만 먹는 거랬잖아.”

“아저씨는 감기 안 걸렸는데 줬잖아!”

“그건 손님이니까…….”

“그럼 나도 손님 할래.”

“뭐라는 거야, 얘가.”

뭐, 말이 술이지 실상은 음료에 가깝긴 하다. 따뜻하게 데우는 과정에서 알코올 전반이 날아갔을 테니까.

“…이리 와라. 나눠 줄 테니.”

“와!! 아저씨 최고!”

“어머,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런 점에서 아이에게 조금 정돈 나눠 줘도 되겠지.

나는 신나서 달려온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아이가 먼저 올라온 탓에 선택지가 없었다─잔을 조심히 들려 주었다. 사라진 뱅쇼의 온기는 아이가 대신해 줬으므로 괜찮았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체온을 두고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그, 손님. 모험가… 신가요?”

그사이, 아이의 어머님도 내 맞은편에 착석하셨다. 본인 몫으로는 찬물 하나가 끝이었다.

“무기를 가지고 계시길래…….”

“모험가!”

그렇지만 대화가 이어지진 못했다. 뱅쇼에 집중하는 줄 알았던 아이가 우리 대화에 반응한 탓이다.

내 무릎 위에 얹어져 있던 다리가 동당동당거리고 뱅쇼를 마시느라 아래로 기울었던 얼굴이 나를 보기 위해 뒤로 젖혀졌다.

“아저씨, 모험가예요?!”

“슈츠!”

거친 움직임에 잔 속 뱅쇼가 출렁였다. 마치 내 심장처럼.

“…모험가 일을 하고 있다.”

“진짜?! 대애애박!!”

“내가 못 살아, 진짜.”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겸, 테이블에 점점이 튄 뱅쇼를 헝겊으로 닦았다. 아까 눈물 닦으라고 어머님이 주신 거였는데… 이젠 여기에 쓰인다. 일찍 돌려드리지 않길 잘했다.

“아이고, 안 닦으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그럼 아저씨, 저것도 진짜 검이에요?”

“슈츠!”

“진짜 검이다.”

“우와아아아!”

어머님이 무엇을 걱정하는진 알지만, 괜찮다.

나는 그녀에게 손짓을 한 후, 아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무릎 위에서 들썩거리는 온기가 퍽 어여뻤다. 너무 작고 여려서 무서워질 만큼.

“만져 봐도 돼요?”

“천천히, 만져도 된다고 한 곳만 만진다고 약속한다면.”

“그럴게요!”

아이들의 호기심을 막아 봤자, 나중에 더 큰 업보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해서 나는 내 감시하에 아이가 검을 만지도록 허락했다.

“아저씨?”

“…자. 이렇게 쓸기만 하는 거다.”

문득 사람들의 피가 묻은 검을 만지게 해 줘도 되는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이미 늦어 버렸지만.

“우와…….”

“여기가 그립Grip이고, 여기가 블레이드Blade다.”

“블레이드!”

“가장자리는 만지지 마라. 베인다.”

“네……!”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나하나 말해 주는 사이, 아이가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들떠서 마구 만지는 일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제한적으로 허용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 검이란 확신이 들자 오히려 차분해진 건지. 내가 유도한 대로 검의 넓적한 면만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 본 것이다.

조마조마해하시던 어머님도 그제야 안도하는 얼굴을 하셨다.

“이건 뭐예요?”

“가드Guard.”

“왜 달아 둔 거예요?”

“그립을 쥐고 있던 손이 칼날 쪽으로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려고 있는 거다.”

“미끄러져요?”

“꼬마, 빗자루 대나… 그런 길쭉한 봉을 쥐어 본 적 있나.”

“으으음. 네!”

“그럼 그것들을 세게 휘둘러 본 적도?”

“어… 엄마가 부러진다고 하지 말래서 요즘은 안 해요.”

“그래, 잘했다. 별개로 그렇게 휘두르고 난 뒤, 처음 잡았던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을 잡고 있진 않았나.”

“어어어어… 그랬던 것 같아요! 검도 그래요?”

“그래. 그래서 가드가 있는 거다. 모든 면이 매끈한 봉과 달리, 칼은 윗부분이 날카로워서 다치니까.”

“우와아! 그럼 이건요?”

“폼멜Pommel. 무게중심을 맞추려고 있는 거다.”

“무게중심?”

“…손가락 위에 스푼을 올렸을 때, 가운데에 맞춰서 올리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본 적 있나?”

“아뇨!”

없으면 보여 주면 되지. 나는 수저를 꺼내기 위해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저… 이걸로도 될까요?”

“…충분합니다.”

다만 그 전에 어머님께서 나무 스푼을 건네주셨다. 슬쩍 얼굴을 보면 어머님도 은근히 설명이 재밌었나 보다. 고작해야 검에 대한 지식일 뿐인데도.

“자, 봐라.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손잡이보다 떠먹는 쪽이 더 무거워서 그쪽으로 기우는 거다.”

“진짜다!”

“하지만 이렇게… 가운데가 아니라 떠먹는 쪽을 받치면……. 자, 안 기울어진다. 이게 무게중심이다.”

“우와, 우와아아!!”

“다시 돌아가, 폼멜이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폼멜이 없으면 블레이드 쪽이 더 무거워서 그쪽으로 계속 기우니까, 폼멜을 달아서 균형을 맞춰 주는 거다.”

각설하고, 이렇게까지 호응해 주면 신나서 설명해 줄 수밖에 없다.

나는 가벼운 예시들을 동원해 아이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었다. 설명이 하나씩 적립될 때마다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저씨는 착한 사람 같아요. 형은 이런 거 하나도 안 알려 줬는데!”

“……?”

“사촌형 말하는 거예요. 그 애도 검을 쓰거든요.”

“형은 짱 나쁜 사람이에요. 내가 보여 달라고 했는데, 한 번도 안 들어줬어!”

그렇구나. 나는 아이의 회갈색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보다가 들어 올렸던 왼손을 다시 내렸다.

무릎 위에 올려 두는 것까진 해도, 쓰다듬는 건 차마 못 하겠다.

“그 애가 쓰는 건 손님이 쓰시는 것보다 더 작지만…….”

“맞아요. 형이 쓰는 검은 요만해요. 얼마 전 본 병사님들도 요만한 검을 썼어요. 아저씨 검은 근데 왜 길어요?”

“…이건 양손검이라서 그렇다.”

“좋은 거예요?”

“글쎄.”

파워풀하기로는 한손검보다 양손검이 더 낫겠지만, 근력과 체력이 부족하고 기량도 안 되면 양손검은 안 잡는 게 낫다.

…라는 말은 아이에게 들려 줄 만한 답이 안 될 것이다. 나는 단어를 좀 더 골라 냈다.

“양손검은 한손검보다 무겁다. 그러다 보니 쓸 수 있는 사람이 적고, 그래서 비교가 어렵다.”

“양손검이 더 무거워요?”

“더 크니까.”

“아아. 그럼 더 좋은 거 아니에요?? 더 무겁고 크니까!”

“글쎄, 그럴지도.”

“헉! 그럼 형한테 말해 줘야 해요! 양손검이 더 좋은 거라고!”

역시나 하던 결과가 왔다. 아무렴, 저 나이대 애들은 크고 무거운 게 제일 강해 보일 시기다.

“…양손검은 비싸겠죠?”

…뭐어. 나이를 먹어도 검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오해할 만하지.

“…무턱대고 바꾸는 것보단 쓰던 걸 갈고닦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아, 역시 그럴까요?”

혹여라도 어머님이 양손검을 그 ‘사촌 형’이란 이에게 사 주는 일이 없도록, 나는 애써 말을 돌렸다. 다행히 먹혔다.

“그 애가 제 친자식은 아니지만… 죽은 언니랑 형부를 봐서라도 계속 챙겨 주게 되더라고요. 제 몸 안 돌보는 것도 느껴지고…….”

“맞아요. 형 맨날 안 쉬고 일하러 가. 아빠가 그러면 일찍 죽는댔는데!”

아… 부모님이 돌아가셨구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애도를 표했다.

“하는 일도 워낙 위험해서…….”

별개로 그 사촌 형이란 사람, 검을 쓴다는 말도 그렇고 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도 그렇고, 모험가나 병사 같은 전투직인가 보다.

사냥꾼이라기엔, 그들은 활이나 함정을 쓰지 검을 쓰진 않으니까.

“모험가인가.”

“아뇨… 그, 이단심문관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답을 바란 건 아니었어.

나는 괜히 물어봤나 했다가 이미 깨진 컨셉, 조금 더 터트린다고 문제 되겠냐 싶어 마음을 편히 먹었다.

암, 이단심문관에게 말이 좀 흘러 들어간들, 설마 용사 파티에게까지 닿겠는가?

“마음 같아선 그만두라고 하고 싶은데…….”

“그만하라고 하면 엄청 화내요. 짱 무서워.”

“그, 하. 언니랑 형부가… 음. 하필 이단심문관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거라…….”

그런데 말하시던 어머님의 말투가 살짝 흐려졌다. 그녀의 시선은 내 품의 아이에게 닿아 있다.

이후는 아이가 들을 말이 아니라 판단하신 모양이다.

“으잉?”

나는 아이의 눈을 잠시 가린 채 입술을 달싹였다. “복수?” 내 입술 모양에 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놔 주세요.”

“네… 흉수를 찾아서… 기필코… 하겠다고.”

그건… 정말 확실한 이유였다. 부모님의 복수만큼 강렬하고 말리기 어려운 사유도 없으니까.

“아저씨이.”

“하지만… 벌써 몇 년이나 흐른 만큼 슬슬 그만뒀으면 하는 마음도 커요. 더군다나…….”

아이의 어머님이 볼을 긁적이시더니,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방긋방긋 말하셨다.

“언니와 형부가 죽은 날… 그 애도 그 자리에 있었는 걸요.”

뭐라고 해야 할까.

“혼자만 간신히 살아남는 게 다였던 상대인데… 그걸 그 애가 어떻게 잡겠어요?”

들을수록 컨셉이 생각나는 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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