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이 대지 위에 (3)
드디어 캄버러에 도착했다. 며칠 이내로 떠날 거긴 하지만, 하여튼.
“감사의 의미로…….”
“필요 없다.”
“그러지 말고, 저와 대화 한 번만……!”
“꺼져라.”
그런데 왜 이렇게 달라붙는 게 많아.
나는 슬쩍 숟가락을 얹으려는 건지, 아니면 용사의 위명에 눈이 멀어 허튼 짓을 하고 싶어진 건지. 아무튼 일을 벌이려는 캄버러의 성주를 밀어냈다.
소성주의 말로는 레임덕 비슷한 상태라던데.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건가? 아무튼 짜증난다.
“모험가 길드에서 훈장이… 엇.”
“자, 잡았다.”
“저, 저, 귀한 훈장을 저렇게 막…….”
“머, 멋있다.”
이번 사건에 힘을 보태진 못했지만 그래도 명예 업적 인정은 해 줘야겠다며 악성 재고를 가져온 모험가길드도 귀찮긴 마찬가지다.
나는 길드 카운터 보던 사람에게 훈장을 (던져서) 되돌려 주고 건물을 나왔다.
[진짜, 지인짜 관심 없습니까? 아, 그 인간은 이미 임자 있는 몸이랬지. 그럼, 음. 아, 용사님은 쪼매 안 어울리는데. 따로 관심 있는 사람도 없십니까?]
그러자 캄버러까지 뽈뽈 따라온 산군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이런 말 하긴 싫은데, 쟤 동부는 언제 되살리러 가는 건지 모르겠다.
“…쓸모없는 소리 말고 가라.”
물론 이렇게 말해도 정말 타박하고 싶은 마음뿐인 건 아니다.
아무렴, 산군은 동부의 메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귀한 몸이지 않나. 거기에 헌신의 대가가 없을 거라 말했음에도 기꺼이 나서 준 호인好人… 아니, 호사好蛇기도 하다.
그런 마당에 어찌 감히 타박을 하겠나. 내가 뭐라고.
[히이잉. 지가 말입니다, 결혼식에서 주례 서 보는 게 꿈이란 말입니다. 제사장 띨빡이들이 주례 서는 게 진짜 재밌어 보여서. 기사님 결혼식이며는 내도 주례 설 수 있을 긴데.]
와중에 왜 이렇게 남 연애사에 집착하나 했더니.
단순히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아서였나.
나는 어이없는 진실에 할 말을 잃었다. 산군은 그동안 내게 이 사람 저 사람 거론하며 열심히 치대는 중이다.
“꺼져라.”
그런데 내가 연애와 결혼을 하겠냐고. 다른 어디도 아니고 여기서, 이 판국에.
[히이이잉.]
산군이면 어른스럽게 굴란 말이야.
나는 열심히 꼬리 치는 뱀을 외면하며 주변 가판에서 둥근 울외 하나를 샀다. 손에 쥐자 내 주먹에 딱 들어오는 것이 제법 기분이 좋았다.
거기에 베어 물었을 때 쭉 흘러나오는 과즙이란.
향도 단맛도 과일치곤 약한 편이나, 박과 식물 특유의 시원한 맛이 나서 오히려 좋다.
즙이 너무 많아서 손에 묻는 건 좀 불편했지만.
[지도 하나 주세요.]
“…한 상자. 얼마지.”
“헉, 한 상자 말입니까?”
그보다 저 커다란 몸뚱이에 주먹만 한 과일을 어떻게 비벼. 간에 기별 가긴커녕 입가심도 안 되겠다.
나는 울외 한 상자를 사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구석으로 옮겼다.
그러자 산군이 긴 혀를 이용해 울외를 하나하나 건져 먹었다. 상자째로 먹을 줄 알았는데, 그건 싫었나 보다.
[맛있당.]
뭐, 먹는 방법이 뭐가 중요해. 맛있게 먹으면 된 거지.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거리를 응시했다. 슬슬 와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어째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가 않았다.
정말이지, 뭐야. 오늘 출발하는 것 아니었어?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나는 모험가길드에서 만나기로 했던 일행을 떠올렸다.
내가 신전에 머물 수 없다 보니─머물기 싫다 보니─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합류하기로 한 건데… 내가 통보하듯이 일방적으로 의견 낸 게 싫었나? 그래서 나 버리고 따로 갔나?
[아, 인자 옵니다.]
휴. 그건 아닌가 보다. 다행이다.
[하믄 지도 슬슬 가겠십니다.]
한데 일행들이 다가오는 게 보이자, 산군도 몸을 일으켰다.
혹시 날 따라다니는 식으로 동부를 순회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건 아닌 모양이다.
[동부 싸돌아댕기다가 또 마주침 좋겠지마는 고건 쪼매 어렵겠지요.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고. 지 죽기 전에 또 봅시다.]
근데 이 녀석, 사망 플래그를 밟고 있네?
나는 알아서 클리셰를 밟는 산군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곤 남은 울외를 한 입 더 베어 먹으며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휙.
비류호의 심장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다가 산군의 꼬리에 붙잡혔다.
마법사들이 짠 봉인─투명한 큐브 형태─에 들어 있어서 바닥에 떨어졌더래도 문제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반사 신경 나이스다.
[엥, 이건?]
“비류호는 악마의 사체를 먹고 강해졌다. 하면 너도 그럴 수 있겠지.”
[그냥 먹는다고 강해지는 건 아니지마는, 뭐, 글킨 하지요. 근데… 이거 그, 지가 받아도 되는 겁니까?]
아, 진짜 되긴 하는구나. 이럴 용도로 남겨 둔 건 아니었지만, 나름 운이 좋았네.
나는 산군 꼬리 위의 심장을 보았다.
지갑이 빈약한 만큼 가죽이나 발톱, 꼬리, 내장 등은 전부 팔아 치울 수밖에 없었지만… 심장은 만에 하나란 말로 남겨 뒀다.
딱히 산군에게 주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나도 모르는 가능성을 위한 선택이었다.
심장에 가장 많은 기운이 깃들어 있단 소리도 있겠다, 나중에 어떤 사건이나 장비 제작에 쓰일지 몰라서.
[진짜요? 진짜 지가 먹어요?]
그렇지만… 솔직히 이걸로 장비 만들 날이 올 것 같진 않다.
보통 게임이면 강화 재료로 가장 쉽게 거론될 소재긴 한데, 여기가 뭐 보편적인 게임 상식이 통하는 곳이어야 말이지.
하니 그렇게 묵혀 둘 바에야 산군에게 주는 것이 낫겠다 싶다.
산군은 확정 아군이고, 황폐한 땅 복구도 가능하고, 마기와 마력도 먹는 등 요긴하게 쓰일 만한 능력이 많으니까.
강화해 두면 언젠가 도움 청할 일이 있겠거니 하는 느낌이다. 바로 지금처럼.
“먹어라.”
[허…….]
해서 나는 눈치를 주는 대신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자 산군도 내 진심을 알아챘는지, 결국 그것을 입에 들이밀었다.
쨍그랑.
봉인 큐브가 부서지고 심장이 산군의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뱀의 둥근 눈은 평상시보다 더 까맣게 빛난다.
[기사님, 함 지켜 보시라요. 동부가 어떻게 될지.]
글쎄. 내가 그걸 볼 일이 있을까? 나는 그 상념을 떠올리되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화악!
돌풍과 함께 하얀 뱀이 도시를 떠났다.
“악마기사!”
이제 나도 떠날 시간이다.
* * *
“베뮈르헨은 정말 멀군요.”
“동쪽 끝의 도시란 별명도 있는 도시니까 말입니다.”
“동쪽 끝… 그, 이번에도 막 바다짐승이 나타나거나 하진 않겠죠? 배를 탄다거나?”
“설마 그러겠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데.”
“…대비함세.”
나는 데스브링거와 아크메이지의 대화를 들으며 눈썹을 미세하게 내렸다. 또 바다라고? 내 머릿속에 해룡과의 싸움 등이 스쳐 지나갔다.
음. 그래도 이번은 아마 아닐 거야. 나는 이내 부정했다. 결코 내 바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나름 근거를 가지고 하는 부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에도 수전이면 벌써 세 번째나 컨셉이 겹치는 셈 아닌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지방마다 컨셉 달리 설정하는 건 모든 게임의 국룰이다. 두 개까진 겹칠 수 있어도 세 개까진 뇌절이니까 절대 그렇게 안 했을 거라고.
나는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말을 채근했다. 길가의 풀로 고개를 돌리려던 말이 다시 앞을 보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 할 것 같은뎁쇼. 시냇물도 오던 길에 봤었고.”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야영지로 쓸 만한 공간이 나왔다. 주변의 나무가 싹 정리되고, 누운 잔풀 위로 돌멩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것─아마도 모닥불을 만들 때 썼을 것이다─이 바로 증거였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애용한 야영지인가 보다. 야영지치고 너무 과하게 나무를 정리한 것 같긴 하다만.
“비가 올 것 같나?”
“예.”
“오오… 어린 사냥꾼 똑똑하다.”
“뭐, 이런 걸 가지고…….”
“비구름은 안 보이는데…….”
“아직은 안 보이겠죠. 근데 봐요, 구름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잖습니까. 그런 걸 고려해야죠.”
어쨌거나 비가 올 것 같다면 지금 짐을 푸는 게 맞다. 아직 해가 지진 않았지만… 비 맞으면서 야영지 찾는 것보단 두 시간 이르게 쉬는 것이 더 나은 법이니까.
“고삐 주십쇼.”
“여기 있다.”
“받아라, 사냥꾼아.”
나는 일행이 말을 묶어 두는 걸 확인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말을 매었다.
캄버러 소성주에게 정 고마우면 말 한 마리 내놓으라고 해서 뜯어낸 말이다. 이름은 프레드릭.
대충 어머니가 그녀를 위해 뮌문트에서 받아 온 어쩌고 그 녀석의 피를 이어받은 저쩌고… 라는데.
이쪽 지식이 없다 보니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단지 좋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히이잉.
“기다려.”
그래도 겉보기에 최상급 같긴 했다. 덩치도 크고 눈도 맑고 달릴 때도 힘이 좋은 게, 이거 보통 말은 아니겠구나 싶은 느낌?
성격은 더러운 편인지, 내가 따로 묶지 않아도 다른 애들이랑은 안 어울리긴 했지만… 컨셉에는 어울려서 그저 웃길 뿐이다.
어쩌다 이런 말이 딱 온 건지.
히이잉.
“…후.”
참고로 도도하게 구는 건 다른 말뿐이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된다.
나는 프레드릭에게 사과를 꺼내 주었다. 마음에 안 들면 종종 기수를 떨어트린다던데, 부디 그러질 않길 바라는 뇌물이었다.
프레드릭이 낼름 사과를 받아먹었다.
“저, 나리… 비가 온다는데, 차양만이라도 같이 쓰시죠.”
그사이, 내가 답 한 번 해 주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대화를 시도하던 데브가 다가왔다. 뒤에선 아크메이지와 인퀴지터가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펄럭.
나는 대답 대신 프레드릭을 묶어 둔 나무 아래에 앉았다. 시무룩해진 데스브링거가 다시 물러갔다.
툭툭.
히이잉.
…그래. 사과 하나 더 달라고.
나는 프레드릭이 나를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나를 간식 토템 정도로 여기는 것에 미묘한 기분을 느껴야 할지 고민하며 사과를 또 꺼냈다.
얼마 안 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해가 질 즈음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였다.
“불이다!”
“살았다…….”
비 맞기 싫다는 프레드릭에게만 방수 천을 씌워 주고, 나는 적당히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을까.
일행이 가려던 길 쪽에서 두 개의 인기척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누구 온다.”
“예? 어, 진짜네.”
“습격자입니까?”
“그건 아닌 것 같은뎁쇼…….”
“아, 지나가는 보따리장수입니다! 제발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저흰 위험하지 않습니다!”
내가 야영지로부터 좀 떨어진 나무에 자리를 잡아서인가, 아니면 모닥불조차 피우지 않아서인가.
두 사람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일행에게 먼저 다가갔다.
무해함을 알리려는 듯 두 손을 위로 올린 건 덤이다.
“거기서 멈추시죠?”
“네, 네!”
그들은 모닥불이 비추는 반경하에서 짐을 바닥으로 내리고 다시 손을 들었다.
데스브링거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 면면을 훑더니 손짓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일단 위험 종자는 아닌 것 같다는 수신호다.
“감사합니다. 숲에서 길을 잃었는데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그만…….”
“이 비면 길을 찾는 것보다 차라리 커다란 나무 아래에 땅 파고 밤을 보내는 게 나았을 것 같은뎁쇼. 보따리장수 일 한 지 얼마 안 됐나 봅니다?”
“설마 그걸 몰라서 안 했겠습니까.”
두 사람은 너스레를 떨며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봇짐에서 천을 꺼내 나무와 땅에 걸쳐 고정하고, 만들어진 삼각지대에 모닥불을 마련하는 솜씨가 보통 능숙한 게 아니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요?”
“그럼요, 그럼요. 한데 저희가 헐레벌떡 달리기 시작한 원인을 말씀드리려면 시간을 앞으로 좀 거슬러야 하는데…….”
거기에 말솜씨도 제법 좋은가 보다. 그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마련한 후, 목을 가다듬었다.
“자 자,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빗줄기가 좀 약했잖습니까? 이 정도 빗줄기면 비 좀 맞더라도 더 좋은 자리를 찾는 게 낫겠다 싶을 수준으로 말이요.”
“그랬죠?”
“저희가 구태여 한곳에 머무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하필 든 짐이 포목이라 비에 젖으면 너무 무거워지니까, 차라리 뭐라도 더 찾을 요량이었죠.”
“그런데 이런 우연이! 저와 이놈이 발을 재촉하며 숲을 좀 걷다 보니까 저 멀리에 오두막 하나가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당연히 옳다구나, 하면서 들어갔지요. 인기척이 안 느껴지는 게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빈집이라면 뭐 어떻습니까! 짐이 젖는 것보단 나은데!”
“그렇죠.”
“그래서 저랑 이놈은 바로 오두막을 향해 후다닥 달려가 문을 찾았습죠. 그런데 그 순간 빗줄기가 강해지며 천둥이 쾅! 치지 뭡니까?”
“그러면서 어두컴컴하던 주위가 화악 밝아지고 저희 시야도 탁, 트이는데……!”
“트, 트이는데?”
“자아, 이 이야기는 여기서 잠깐. 혹시 이 근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아십니까?”
“뭐냐, 말 끊지 말고 계속해라!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시큰둥하게 추임새를 넣어 주던 데브와 달리, 인퀴지터와 버서커는 단숨에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보따리장수가 말을 돌리자 발을 구를 정도였다.
“이것과 연결된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르십니까?”
“이 근방이라면 모릅니다.”
“어이쿠. 그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자 자, 여기 야영지 말입니다. 보통 객들이 머무느라 생긴 공터치곤 너무 넓지 않습니까?”
“넓긴 넓지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아아암, 당연하죠.”
순진한 인퀴지터가 의도대로 따라와 주자, 보따리장수가 신나서 분위기를 마구 엄숙하게 몰았다.
내 시선도 괜히 그곳에 향할 정도였다.
“몇 년 전에 말입니다. 이 야영지에선… 사제와 이단심문관 여럿이 죽어 나간 적이 있습니다.”
“예?!”
“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발견된 피해자들의 시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처참했다더군요. 사지가 찢어발겨지고 그 편린은 불과 열기에 일그러지고 짓이겨져… 수습하던 이들이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말입니다.”
“이 야영지가 넓어진 것도 바로 그때 일 때문입니다. 그때 그 싸움으로 나무들 수십 그루가 박살 나 현재의 공터가 되었다더군요.”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은 겁니까?”
“그럼요!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직도요.”
이 야영지가 보통보다 넓긴 했는데, 이런 사건이 얽혀 있었나.
그런데 보따리장수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기엔 어쩐지 지어낸 이야기 같기도 해서, 나는 긴가민가해졌다. 암, 상인들의 허언에 한두 번 당해 봤어야지. 어째 저것도 좀 과장된 이야기 같단 말이야.
“자… 그럼 아까 하던 말로 다시 돌아가… 다시 천둥이 쾅! 치던 그 순간!”
“저희의 시야가 하얀 섬광으로 밝아진 그 순간!!”
“수, 순간?”
“삐걱, 삐걱 열린 문틈 사이로 백골 하나가아!!”
“허억!!”
“백골!”
“심지어 섬광이 가라앉고 다시 어둠이 찾아오자, 안쪽에선 으득,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형형히 빛나는 눈동자 한 쌍이 나타나는데… 그런 곳에 저희가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살인 현장인가??”
“서, 설마 과거의 그 범죄자가!?”
“참 나. 그냥 여우나 뭐 그런 거겠죠. 몇 년이나 된 사건의 범인이 여기 왜 있겠냐고요.”
나와 비슷한 심정인 듯, 데스브링거가 딴죽을 걸었다. 인퀴지터와 버서커가 그의 말을 듣고 아차 하며 퓌시시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굴었다.
“뭐야, 거짓말인가?”
“그런… 겁니까?”
“저희가 거기서 백골을 본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아작아작 소리를 낸 건… 글쎄요. 사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온지라. 하하.”
“저랑 이놈이 워낙 겁이 많아서요. 소리를 지르면서 정신없이 달렸는데… 그러다 발견한 게 요 빛입니다.”
“슬쩍 보는데 모닥불 사이로 갑옷이 비치기에… 기사님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바보 같은 행동이긴 합니다. 하핫.”
“에에에에. 재미없다.”
“그렇군요.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결과적으로 데스브링거의 딴죽이 옳은 것 같긴 했다. 백골이면 사람이 죽은 지 오래됐단 뜻이고, 그때까지 백골의 탄생 원인이 거기에 남아 있을 리 없으니까.
으적거리는 소리나 빛나는 눈은… 말 그대로 여우나 뭐 그런 들짐승이겠지. 새삼스럽게 백골을 먹을 린 없고, 아마 오두막에 들어온 쥐 따위를 먹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그보다 말하시는 걸 보면 거리가 그렇게 멀진 않나 보네요? 오두막이랑 저희가 있는 곳이랑.”
“아마도 그럴 겁니다. 기껏해야 10분, 15분 거리겠지요.”
“엄청 가깝네.”
보따리장수들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지, 멋쩍게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뭐, 이야기 듣는 동안은 제법 흥미로웠던 만큼, 그런 그들의 멋쩍음마저도 나름의 유쾌함은 있었다.
“으음. 그럼 내일 가다가 한번 들르는 게 어떻습니까?”
“엥, 왜요?”
“그럴 필요 있나?”
“혹시 몰라 말하지만, 샌님. 백골이 있다는 건 사람이 죽은 지 꽤 됐단 소립니다요. 범인은 못 잡아요.”
“그건 나도 안다! 그리고 범인 잡으려고 꺼낸 말이 아니다. 그저, 땅에 묻히지도 못한 분이 가여워, 그분께 간소한 묫자리라도 마련해 드리고자 건의한 것뿐이다.”
“누가 알아준다고, 그런 걸…….”
“뭐 어떤가. 전 괜찮습니다, 인퀴지터.”
“왜 하는진 모르겠지만, 베르세르크도 상관없다.”
더불어 그들의 이야기로 인해 사소한 일정까지 생겼다. 나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