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이 대지 위에 (2)
“이왕 부를 것, 한 삼 주쯤 부를 걸 그랬어. 한 달 꽉 채워서 가게.”
캄버러 소성주, 미아는 그리 중얼거리며 며칠 전 일을 회상했다.
분명 출발 일정을 맞춰 주겠다고 전했음에도 그녀에게 일정을 물어보러 온 기사에 대한 회상이다.
“미아, 방금 뭐라고 했어?”
“별거 아니야, 레온.”
처음 그 질문을 들었을 땐 전달이 잘못되었나 싶었던가.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악마기사가 직접 찾아온 점에서, 그녀는 그 가정을 철회했다.
정말 전달이 잘못되어서 물어볼 사람을 보낸 거라면, 악마기사보단 전령을 써먹었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혹은 용사 일행 중 가장 대외 활동을 잘하는 아크메이지 본인이 오거나.
“그러지 말고. 궁금하잖아.”
“…당황해서 일주일 부른 것 말이야.”
해서 넌지시 ‘들은 게 없나요?’라고 떠보고, 악마기사의 찌푸려진 미간을 통해 새로운 답을 내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용사 일행이 악마기사에게만 정보 공유를 안 했다는 답을.
“아… 그거라면야.”
그래서 눈치껏 ‘전령이 엇갈렸나 보다. 파티에겐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얘기했다.’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했는데…….
“결과적으로 실수는 아니었지만… 역시 아쉬워.”
나중에 아크메이지를 불러 보니 악마기사에게만 정보 공유가 안 된 게 맞긴 하더랬다.
그 이유가 그가 제발 쉬었으면 해서이며, 소성주쯤 되는 사람의 의견이어야만 말 들을 것 같아서였다는 건 좀 우스웠지만.
“나도.”
“정말로?”
“이번에 가면 또 몇 달은 못 볼 것 아니야. 도시 재정비하느라 결혼식도 미뤄질 텐데.”
그녀는 뒤에서 제 허리를 휘감으며 다가온 이에게 몸을 기댔다. 잡혀진 손이 위로 올라가며 손등에 보드라온 온기가 닿았다.
“결혼한 후에도 제대로 못 볼 텐데, 그건 괜찮아?”
“…그러게. 역시 젊었을 때 어머니 아버지께 동생 낳아 달라고 졸라야 했어.”
“왜 안 졸랐어?”
“어머니는 낳아 주겠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네 엄마 고생하는 꼴을 네가 못 봐서 그럴 수 있는 거라며 고래고래 소리치잖아. 하여간 영감, 참.”
닿아 오는 온기가 퍽 간지러워서, 그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버님이… 야속하거나 하진 않아?”
“에이, 그런 걸 가지고 어떻게 야속해해. 아버지 말도 틀린 건 아닌데.”
“동생 말고. 널… 포기한 것 말이야.”
그렇지만 그 웃음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미아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다정한 사람의 얼굴이 시야 대부분을 채웠다.
“응. 하나도 그렇지 않아.”
“…….”
“비류호에게 나를 바쳐야 할 것 같다, 그 말을 전한 날 밤… 방에서 서럽게 우시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자기 눈물 많은 건 아버님 닮은 건가 보네.”
“아마도.”
그리고 그 다정함만큼 강인한 사람이기도 해서.
“오히려 야속한 게 있다면… 네가 두드려 패서 제압한 반란군들이 더 야속하지 않을까?”
“섭섭함을 느낄 만큼 가까운 사이였어? 널 죽이려 든 사람들인데?”
“아니… 가깝다기보단, 음. 내가 직접 두드려 패주고 싶었거든. 그, 얼마 전에 전 성주를 죽인 게 나와 아버지가 아니라면 당장 진범을 내놓으라고 며칠간 시위를 한 사람들이라. 그때 얼마나 얄밉던지…….”
“아…….”
그녀는 기분 풀라는 의미로 레온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댔다. 그러자 레온이 이마를 살짝 부비다가 쪽 소리 나도록 입술을 부딪쳤다.
“미아, 너야말로 가족들이 야속하진 않아?”
“아, 괜찮아. 야속함을 느끼기엔 너무 멀리 왔거니와… 이젠 골칫덩이조차 못 될 거거든.”
“…실각했어?”
“비슷해.”
그녀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이래, 그녀의 눈치만 보는 가족들을 떠올렸다. 그녀가 명령하는 순간 자신들의 뱃가죽이 갈라질 수 있음을 이제야 깨달은 자들이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젠 더 이상 날 못 막아, 그것들은.”
기실 그녀가 자리를 비울 수 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그들은 이제 그녀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헛된 마음을 먹지 못할 것이다. 도시 전체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을 테니까.
“그거 다행이네.”
“그렇지?”
그래도 슬슬 돌아가긴 해야겠지. 그렇지만 한 달은 채웠어야 했는데. 그녀는 아쉬움에 작게 한숨 쉬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소성주님!”
“……?”
“들어와.”
“네… 헛.”
에드니엄 소성주, 레온의 허락에 보좌관이 문을 열고 방에 들어왔다. 물론 들어온 보좌는 찰싹 달라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커허허험 헛기침을 해야 했다.
“이따 돌아가시는 것 때문에 아쉬움 넘치시는 건 알지만, 제 옆구리가 너무 시립니다, 소성주님.”
“그럼 연애해.”
“그런 말은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주시고 말하셔야죠…….”
“하하. 알았어. 이번 사건이 다 끝나면 휴가 줄게.”
“아싸.”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 급한 일은 아닌데… 보고를 늦추는 것도 좀 애매한 일이 벌어져서 말입니다.”
“뭔데?”
레온의 물음에 보좌관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한 후, 각 잡은 모습으로 말을 뱉었다.
“비류호 토벌 건으로 불타 버린 숲이… 미약하게나마 재생되었습니다.”
* * *
아, 하품 나올 것 같다.
“분위기가 왜 이럽니까?”
“아, 자네 왔나.”
“출발 안 해요?”
“하긴 할 거네. 다만 경로가 조금 바뀔 것 같네. 많이 돌아가야겠지만… 비류호를 잡았던 그 숲에 들를 것 같군.”
나는 잠 부족으로 새어 나오는 하품을 인지, 혀를 살짝 씹어 가며 참았다.
암, 잘생기고 예쁜 사람도 얼굴 망가트리는 하품이다. 그런데 그걸 컨셉으로 한다? 그냥 가오 죽으란 소리지.
“왜요?”
“그곳에 이변이 벌어졌다는 보고가 들어와서라네.”
“…설마 악마가?”
“그건 아닐 것 같네. 겉보기엔 긍정적인 변화였다니.”
“긍정적인 변화라면…….”
“풀이 자랐다더군.”
“엥.”
“그래도 방심해선 안 됩니다! 이유 없는 변화가 없을 리 없습니다!”
하나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건 눈꺼풀이라고.
나는 따끈하게 쏟아지는 햇살과 솔솔 부는 바람에 점점 나른해졌다. 차라리 강행군이라도 하고 있다면 몰라, 상황이 노곤노곤하니까 진짜 졸 것 같다.
“아크메이지님, 이제 출발할 것 같은데…….”
“아, 준비가 다 됐나. 그럼 하게.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네.”
다행히 내가 잠에 지기 전,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승마의 시간이었다.
히잉.
내 기마 실력이 지난 몇 달간 많이 늘긴 했으나, 그렇다고 자면서 탈 경지는 아니다.
해서 나는 말의 템포에 집중했다. 조금 불편해하던 말이 곧 편안한 기색을 풍겼다.
“저…….”
좋아. 그렇다면 이제 따분함과 싸울 시작이군.
매번 느끼는 거지만,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면 항상 자동차 타고 시골로 내려가는 기분이 난단 말이야. 훨씬 느리고 재미없지만.
“저, 악마기사. 몸은 괜찮으신…….”
그래도 사건이 터지거나 하는 걸 기원하진 않는다. 여기 이벤트들은 뭐만 하면 메인 스토리랑 이어져서 짜증나거든.
정말이지. 내가 하고 싶은 건 하루 이틀이면 해결될 사이드 퀘스트지 메인 퀘스트가 아닌데도.
“악마기사.”
물론 이때 말한 사이드 퀘스트는 ‘샐러드 재료 모으기’나 ‘샐러드 전달’ 같은 거다.
절대로 ‘산적토벌: 절멸’이나 ‘흉악범 깔끔하게 자르기★’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다.
“뭐해요, 샌님.”
“아니, 난… 아니다.”
그사이 내게 말을 걸려던 이가 드디어 퇴치되었다. 잡념을 열심히 돌리며 눈길조차 안 준 보람이 있었다.
지난 일주일처럼, 이번도 무사히 넘어갔다.
“…….”
나는 옆까지 다가온 말의 기척이 멀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거리가 안전하다 싶을 때, 반쯤 참고 있던 숨을 제대로 몰아쉬었다.
떨어진 곳에서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이, 시무룩하게 수그려진 고개가 괜히 가슴 한편을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하.”
그래도… 이게 맞다. 그래, 이게 맞아.
나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숨을 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의 속도 모르는 하늘은 참으로 파랬다.
쏴아아아아.
“아, 여름눈이다.”
“다들 입이랑 코에 두건 쓰세요. 여름눈이 코에 들어가도 책임 안 집니다.”
거기에 바람이 분 순간, 일제히 흩날리는 풍매화 나무의 씨앗들이란.
에드니엄에 머무는 동안 열매와 씨가 제대로 영글었나 보다. 솜털이 달린 씨앗이 흡사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여름눈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살랑.
나는 그중 하나를 잡았다. 고향에선 이런 광경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상당히 생경한 기분이었다.
마치 오월의 겨울에 갇힌 것 같다. 비록 이곳은 오월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겨울이었다.
“쓰십쇼.”
그때, 데스브링거가 불쑥 무언갈 건넸다. 천이었다.
“코에 들어가면… 고생깨나 하는 놈들입니다요. 그러니까…….”
그것이 기뻤는지, 아니면 섧었는지.
나는 입술을 살짝 떼었다가, 다시 닫았다. 다각다각. 내 신호를 알아들은 말이 속도를 조금 더 높여 앞으로 나아갔다.
부스럭.
그간 나는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가렸다. 참, 쓸모가 많은 녀석이었다. 사길 잘했다.
“…노력했다.”
“…뭐라는 거예요.”
“벌써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
“진짜 뭐래. 앞이나 보십쇼, 샌님.”
“흥. 이미 잘 보고 있, 왁!”
“그러니까 내가 잘 보랬죠.”
“에, 에에엣, 엣취!”
“으이구.”
“엣츄우! 너, 너! 솜 뭉텅이가 날아오면 말을 해 줘야 할 것 아닌, 엣츄!!”
“그건 댁이 할 일이잖아요.”
…다시 한번 말하는 건데, 이 손수건 정말 잘 샀다. 덕분에 꿈틀거리며 올라간 입술도 가렸다.
“정말 변했군.”
어쨌거나, 여름눈을 지나 한참을 걸었을까. 내가 포함된 무리는 중간 목적지에 도달했다. 에드니엄에서 캄버러 사이, 악마들로 인해 불타 버린 그 자리였다.
“이끼가…….”
“그날 이후로 나무들이 이렇게나 자란 겁니까?”
“정확히는 일주일 전부터입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일주일? 일주일이면 나리가…….”
“글쎄요. 이미 벌어진 일의 가능성을 논할 이유는 없겠죠. 오히려 중요한 건 이게 문제가 되는가, 아닌가인데. 아크메이지님, 괜찮으시다면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만, 가능할는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저도 분석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어제 밤 괜히 새웠나. 여기 다시 올 줄 몰랐는데.
나는 그런 상념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까맣게 그을렸던 땅은 이제 보송보송한 이끼와 잔디로 뒤덮여 있다. 중간중간 자라난 어린 나무들은 덤이다.
“어린 사냥꾼아, 왜 그런 얼굴이냐?”
“뭐냐, 뺀질이. 감 잡히는 거라도 있나?”
“아니, 그… 의심 가는 건 있긴 한데.”
“그럼 아크메이지님께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다려 봐요, 좀!”
지금은 고작 무릎까지 올 뿐이지만 몇 년 뒤에는 풍성한 숲이 될 것이다.
쿠웅.
[왐마야. 못 만날 거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직 안 가셨나뿟네.]
…어쩌면 며칠 이내에.
[그럼 지랑 쪼매 더 떠들어 주시는 거……? 그러실 수 있는 거?]
나는 숲 저편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고 있는 뱀을. 그리고 그 머리 옆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보며 숨을 크게 뱉었다.
[아, 그래도 할 건 하고 해야겠지요. 바로 하믄 됩니까? 근데 거, 할 거며는 사람들을 쪼매 물려야 하는데.]
“…기다려라.”
정겨운 말투와 행동에 괜히 웃음이 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마법사.”
“…지금 내게 말한 건가?”
“소성주.”
“듣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물려라.”
“……?”
“당장.”
나는 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들에게 부탁… 이라기엔 다소 강압적인 당부를 건넸다.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의아함을 표했다.
“…뭐, 그러겠네.”
“기사님의 말씀이라면야. 다만, 이유를 들을 수 있는지…….”
그러나 의구심을 품을지언정 둘다 내 말을 안 따르진 않았다. 이따가 대와아아앙뱀 보여 주면 해결될 것 같다.
[아, 기사님은 안 가셔도 됩니다. 다른 놈들은, 예. 그쯤이면 됩니다. 이제 합니다?]
“악마기사, 이 정도면 되는─.”
“해라.”
“─?”
[히히.]
흰 뱀이 경박하게 웃으며 몸뚱이를 움직였다. 쿠구구궁.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곧 뱀의 머리가 땅을 뚫고 들어갔다.
“돌풍?!”
“우왓!”
그와 동시에 녹음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건 꼭 불이 번지는 형상이었다.
넝쿨이 자라고 작은 새싹의 줄기가 길어져 꽃을 피우고, 나무들이 가지를 퍼트리며 몸뚱이를 키워 가는 건.
자연의 불꽃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고개를 드는 모양이었다.
“…자란다.”
“숲이…….”
그리고 난 그 모든 걸 중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경이로웠다.
쏴아아아!
[히야! 집 근처는 숲이 이미 울창해가 힘쓸 일이 없었는데. 이거 생각보다 기분 좋네요. 어디 복구할 곳 하나 더 없습니까?]
평소 같았으면 없다 인마, 하겠지만… 지금은 그러게. 나도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 또 보게.
“…수고했다.”
[으헤헤헤. 지가 좀 수고했지요.]
나는 다가온 산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산군은 거부하는 대신, 닿은 부분을 살살 움직였다. 뱀 특유의 차갑고 미끌미끌한 촉감이 느껴졌다.
[아, 근디요. 기사님. 지가 오기 전부터 요기서 지랑 바닷분 기운을 느꼈는데, 이거 혹시 기사님이 하신 일입니까?]
아. 그것도 감지가 가능한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잠시 침묵했다. 산군이 오지 못할 것을 대비해, 그리고 구슬의 효과를 확인할 겸 구슬을 며칠 묻어 둔 건 맞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산군이 옴으로써 의미가 상실됐지만.
[뭐어. 말하기 싫으심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완전히 무가치한 행위는 아니었다. 구슬을 몸에서 떼면 신성력 도트댐이 커진다는 것과, 구슬의 식물 생장 능력을 어느 정도─나 참, 식물 키울 때 안 죽고 잘 자라는 정도라고? 뻥치시네! 그것보다 더 쩔잖아!─키워 준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보다, 글체. 여기 있던 놈팡이가 일 안 하고 헛짓거리나 했담서요. 하믄, 동부가 다 이 꼬라집니까? 그러며는 지가 좀 돌아댕기면서 힘 좀 써 볼라카는데.]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차마 부탁하지 못한 부분을 먼저 말해 주는 것도 그렇고.
“…마음대로 해라.”
[와, 진짜죠? 진짜로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 맞죠? 으헤헤헤. 허락도 하셨겠다, 맘껏 돌아댕겨야지.]
“…….”
나는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붕붕 휘두르는 산군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글케 보지 마세요. 저 철부지 아입니다. 단지, 자리를 쪼매 비우는 순간 그 제사장 띨빡이들이 울고불고 그래가, 이때까지 그 꼬딱지만 한 숲에 엉덩이 붙이고 있어야 했단 말입니다. 이것도 기사님 부탁 아니었음 애들이 안 보내 줄라 그캤을 거고.]
난 철부지 보는 눈 안 했는데. 본인이 찔렸나 보지.
그렇지만 고운 마음씨도 그렇고, 주절주절 하는 변명이 웃기고 귀여워서 놀릴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는 산군의 턱 부분─아랫입술에 가까울지도?─을 살짝 쓰다듬어 준 후 손을 떼었다.
“악마기사, 이게…….”
아, 때마침 아크메이지가 왔나.
나는 그 옆에 서 있는 소성주까지 확인한 후, 산군을 보았다. 저들에게도 모습을 보여 달라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저 뱀은, 대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저들의 시선은 처음부터 내가 아닌 산군에게 꽂혀 있던 것 같다.
숲을 재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보질 못했던 것 같은데. 그새 모습을 드러냈나 보지?
“…대삼림의 산군이다.”
“산군!”
나쁜 전개는 아니었다. 설명할 일을 덜었다.
“산군이 어째서……? 아니, 이게 아니라. 감사합니다. 캄버러의 소성주가 귀한 분을 뵙습니다.”
[아이고야. 바깥 인간들은 싹 다 요로코롬 이쁘게 생겼습니까? 아, 혹시 기사님 짝?]
별개로, 얀마. 나를 못돼 처먹은 인간으로 만들지 말아 줄래? 저분 따로 사귀는 사람 있거든?
[아, 지 오햅니까. 아이고마. 아쉽네요. 어울리는데.]
참 나. 가까이 붙어 있지도 않았는데 왜 보자마자 엮는 거야. 너도 사실 그런 악질이었던 거냐?
“…이도 자네가 부른 거겠지?”
내가 짠 눈으로 뱀을 노려보았을까.
그동안 상황을 파악한 듯한 아크메이지가 탄식하듯 발언했다. 그 말을 들은 소성주가 살짝 붉어진 눈가로 날 보는 건 덤이었다.
[하아. 역시 어울리는데…….]
“…대삼림에 감사해라. 허락한 건 그들이다.”
[진짜 어울리는데… 정말 관심 없십니까?]
산군, 너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