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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81화 (181/389)

181화 이 대지 위에 (1)

“잠시만……!”

“사제야, 그만둬라.”

“예?”

“악마기사가 거부했잖나.”

“하, 하지만 베르세르크. 악마기사는…….”

인퀴지터는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과, 그녀를 붙잡은 이를 차례로 쳐다보았다. 베르세르크가 그녀를 왜 잡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였다.

“선택을 존중해라, 사제야.”

그런 그녀에게 베르세르크는 또박또박 말했다.

“너에겐 그에게 개입할 권리가 없다. 그보다 약하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제가 많이 부족하단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약한 것이 그에게 손 뻗을 자격과 관련이 있진 않습니다!”

무력의 고하가 권리를 가져오진 않는다. 하물며 그녀는 앞서 저 뺀질이와 다짐한 것이 있지 않은가? 그녀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외친 순간, 베르세르크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평상시엔 맹수나 태양을 닮았다고 생각되던 호박색 눈동자가 마치 금처럼 빛났다. 천 년을 땅 밑에서 해묵으며 어딘가 변해 버린 금이었다.

“틀렸다, 사제야. 약한 자에겐 그 어떤 자격도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타인에게 손 뻗을 자격과 권리는 용기 하나면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력과는 관계 없습니다.”

“사제야.”

인퀴지터의 시선 속 베르세르크가 한순간 늙어 버렸다.

주름이 더 졌다거나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베르세르크는 숨 한 번으로 눈동자의 무게를 바꾸었다. 천 년의 금이 지하로, 심해로 가라앉았다. 이제 더는 광채도 흐르지 않는다.

“네 말을 모르는 게 아니다. 나도 용기 내어 투쟁하는 자들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세상엔 용기와 끈기, 간절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오직 일신의 힘만으로 매듭 지을 수 있는… 그런 일이 있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뜨거운 금이 차가운 철로 변했다.

“왜… 왜 이게 일신의 힘만으로 해결되는 일인 겁니까? 어째서? 악마기사는 그저 아픈 것뿐인─.”

“악마기사가 미쳐 날뛴다면, 넌 그를 제압할 수 있나?”

“그, 그건 노력할 겁니다. 어떻게든 그분을 제압해서…….”

“그 ‘어떻게든’을, 분명한 형태로 그릴 수 있나? 너뿐 아니라 악마기사를 납득시킬 수 있을 수준으로?”

“…….”

“사제야, 사람을 구하는 것은 알량한 힘으로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 손을 붙잡고, 같이 죽어 주는 것도 누군가에겐 구원일 테니. 하지만 지키는 건 다르다. 지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란 말이다.”

베르세르크가 한 자 한 자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냉기가 내렸다.

“폭력배 앞에 놓인 노파를 보호할 때 필요한 건 힘이다. 사채꾼에게 쫓기는 아이를 보살필 때 요구되는 것 또한 힘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결투에 뛰어드는 이를 살릴 때조차 힘이 없으면 안 된다. 금력이든 무력이든 권력이든,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힘이 있어야만 네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칼날보다 차갑고 설산의 눈보다 지독한 혀였다.

“네가, 그리고 어린 사냥꾼 네가 악마기사를 지킬 권리도 기회도 받지 못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너희의 능력으로는 그를 지킬 수 없다. 나아가 그를 구할 수조차 없을 거다.”

적어도 인퀴지터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칼날은 막을 수라도 있지, 저것은 귀를 막아도 들릴 것이기에 더더욱.

“…그럼, 투사 나리는요? 저희가 약한 건 알아요. 그렇지만 투사 나리라면…….”

“어린 사냥꾼아.”

그렇지만 제일 서러운 것은, 인퀴지터를 가장 비통하게 만드는 것은.

“힘의 한계를 두고 분한 게 너뿐이라고 생각하진 마라.”

그리 말하는 베르세르크의 표정이야말로 애달프기 그지없었단 현실이었다.

“나설 수 있었다면 진즉에 나섰다. 악마기사는 드물게 재밌고, 또다시 붙어 보고 싶은 상대니까.”

베르세르크 그녀도 사실은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는 걸 알아서… 인퀴지터는 서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 흘리는 대신 붉어진 눈가로 외쳤다.

“결국 제가 강해지면 해결되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포기하는 대신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할 일이니까.”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것이 인퀴지터의 삶이었으므로.

“…마음대로 해라, 사제야. 다만… 아니다. 그냥, 늦지 말아라. 운명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베르세르크가 지친 얼굴로 그녀를 응원했다. 그 얼굴은 여전히 그것의 불가능을 점치고, 언뜻 회의감과 후회마저 느껴졌지만, 최소한 제지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거면 족했다. 누군가의 동참이 없어도 그녀는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뺀질이, 네놈도 갈 건가?”

“…어디를요?”

“악마기사를 따라가야 할 것 아닌가! 그분이 우리에게 기댄다 아니다를 떠나, 최소한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지 아닌지는 알아내야 한다!”

“…아, 그렇죠. 그래야죠.”

그러나 뺀질이 녀석만큼은 동참시켜야겠다. 그녀는 약하다는 한 마디 듣고 또 음울해진 녀석을 보며 그 등짝을 후려쳤다.

짜악!

“──!!!”

그거 한 대 맞았다고 갓 잡힌 생선처럼 파닥이며 녹아내리긴!

그녀는 자신이 평균 30, 40kg를 이고 다니는 사람이란 걸 망각한 채 바닥에 쓰러진 망종을 쳐다보았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힘 빠진 소리 내지 마라! 넌 악마기사 곁에서는 게 장난인가!”

“…….”

“대답해라!”

“…….”

“…그, 사제야.”

“왜 그러십니까?”

“어린 사냥꾼, 기절한 것 같은데.”

“예???”

* * *

⌈성에서 건강검진 받을 악마기사 급구⌋

⌈선물 전달과 사과할 기회를 주실 악마기사 구함⌋

저 두 가지의 정체가 무엇인고 하니.

여관에서 산뜻하게 자고 일어나 아침 먹으러 내려온 내게 보인 글귀였다.

“악마기사!!”

“나리!!”

나는 여관 밖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상상을 초월한 형태로 나오는 두 사람이 너무 당혹스러워서 머리가 그만 하얘졌다.

…쟤네 진짜 뭐 해?

“저, 손님. 혹시 아는 분…….”

한데 그렇게 멍하니 있으려니, 종업원이 슬그머니 다가와 묻는 게…….

“모른다.”

“넵.”

도저히 답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렴, 당황은 당황이고 창피함은 창피함인 법이다. 엄청나게 부끄럽다.

나는 평소보다 더 살벌하고 삼엄하게 종업원을 돌려보낸 후, 마력을 가다듬었다.

콰직!

“엇!”

“우왓.”

작게 형성된 마력창이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 손에 들린 피켓만을 부수고 사라졌다. 길 가던 사람들이 살짝 놀란 것 같으나 그들을 배려할 때가 아니었다. 휴. 드디어 쪽팔린 게 사라졌다.

“악마기사, 피켓을 부수셨다는 것은 역시 저희와 대화할 의향이 있으신─!”

…아니다. 아직 안 사라진 것 같다.

나는 피켓이 부서지자마자 여관의 1층, 주점 형식으로 된 곳에 들어오는 둘을 보았다. 마치 개가… 아니지. 광인이 달려오는 모양새였다.

“주문하신─ 우왓!”

“흐엇!”

나는 반사적으로 내 근처에 있던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 테이블의 앞에 앉아 있던 손님과, 그 테이블에 다가오며 음식을 내려 두려던 종업원이 심장을 부여잡는 게 보였으나 피해는 없었다.

“홋챠!”

부웅 날아간 테이블이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에게 직격했다. 인퀴지터가 테이블을 잡아채, 뱅글 회전한 후 안전하게 내려놓긴 했지만 어쨌든.

그사이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나가는 문이 또 하나 있는 걸 알고 한 행위였다.

“손님, 여긴 들어오는 곳이… 아닌… 그, 얼마든지 쓰시죠.”

짐을 항상 인벤토리에 넣고 다녀서 다행이지.

나는 쩔쩔매는 요리사를 지나 주방의 뒷문─옆에 달려 있으니 옆문이라고 해야 할까?─으로 나갔다. 여관과 여관 바로 옆 건물 사이 골목이 나타났다.

“아앗, 악마기사!”

“나리, 같이 가욥!!”

미친놈들. 나는 문을 쾅 닫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대로에 사람들 많으니까 거기에 섞여 드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악마기사!!”

“나리!!”

큰 소리로 부르지 마! 창피해!

나는 결코 달리지 않되, 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쳤다.

참고로 달리지 않은 이유는, 내가 결코 도망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다. 내가 뭐가 찔려서 필사의 도주를 해야 해. 엮이기 싫으니까 자리만 피하는 거지.

“악마기사아아!!!”

“나리, 자격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해야겠다 싶어서……! 아잇,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다행히 저 녀석들도 뛰진 않았다. 사람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탁, 탁, 탁.

어쨌거나 나는 다시 골목으로 빠졌다. 목적지는 어제 갔던 서점이다.

원래는 성에 가서 일정을 물어보고 다음으로 괜찮은 대장간을 수소문하려 했지만… 차마 저 둘을 달고 다니긴 그래서.

“나리 정말 빠르시네요…….”

“악마기사! 어디 가십니까? 신전으로 가시는 겁니까? 아, 검사는 성에서 하셔도 됩니다! 아크메이지님께서 성에서 하는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도 결국 따라잡혔다. 나는 경보이고 저놈들은 반쯤 달리는 것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둘은 두 걸음 뒤에 붙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저, 그, 나리. 그러니까…….”

“말 더듬지 말고 제대로 해라.”

“…죄송합니다. 이제 와 할 말은 아니지만,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니까…….”

“말 끌지 말고!”

“댁은 좀 들어가 있어요! 아,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닙니다. 나리, 너무 늦은 건 알지만…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그때… 그러니까, 공격한 것.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진심은 아니었어요, 정말로요. 전, 전 그러니까… 그냥, 아니, 그냥이 아니라… 단지 그때 좀…….”

그러다 잠깐. 내가 들을 일 없다고 생각했던 사과를 들었을 땐 잠시 머리 한구석이 멍해졌다.

“그러니까… 아 씨, 죄송하다고요. 정말로… 정말로 죄송해요……. 혹시 상처받으셨다면…….”

“아 씨가 뭔가, 아 씨가! 제대로 해라!”

“아잇! 댁은 제발 빠지라고요! 나, 나도 제대로 하고 싶은데 지금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거니까!”

내가 싫어진 건 아니었구나.

…내가 죽일까 봐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어.

“이런 사과 같은 건 처음이란 말입니다……. 그, 그러니까… 아잇, 요, 용서 같은 거 바라지도 않으니까요! 단지, 단지 정말 죄송하다는 마음 하나만은… 그, 나리가 꼭 알아주실 필욘 없지만, 그래도, 그, 전하고 싶어서……. 제가, 제가 정말 잘못한 거니까… 전, 전 정말 그때… 멍청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나는 끝끝내 울먹거리는 데스브링거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 돌리고 싶은 심정을 겨우 억눌렀다.

“대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 장검 하나 사 뒀는데… 그거라도… 받아 가 주시면, 안 될까요. 받아 가신다고 감히 용서받았노라 여기진 않을 테니까…….”

“사과 하나 못 하는 게 역시 멍청이답군. 그렇지만 악마기사! 이 녀석도 정말 많이 참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개입할 일이 아니고 용서를 강제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만, 그래도 그가 사죄할 기회만은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쩔 수 없다. 그의 사과는 조금 늦었다. 어쩌면 많이. 혹은 당연하게.

필연처럼.

“…….”

나는 어제 데스브링거가 껴안고 있던 장검의 정체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가, 곧장 닫았다.

이제 와선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나리?”

“악마기사, 들으셨습니까?”

나는 귀를 닫기 위해서라도 길 찾기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골목이 보였다.

똑똑.

“여긴 어딥니까?”

“…창문이 하나밖에 없네요.”

나는 노크와 함께 안쪽의 기척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일찍 왔나 보다. 들려오는 소리가 없다. 하기야 아침 시간이니까 출근까지 좀 남았을 수도 있지만.

“어라, 손님?”

“응?”

“……?”

“…어?”

운 좋게도, 얼마 안 가 책방 주인이 출근했다. 그의 시선은 잠시간 내 뒤에 붙어 있는 두 사람에게 향한다.

“저, 신전분이 왜……?”

책방 주인 씨, 신전이랑 사이가 안 좋나. 나는 창백해진 상대의 얼굴을 보며 턱짓을 했다.

“열어라.”

“저… 손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악마기사! 이분은 누구십니까?”

“그, 필사가 같은데… 맞습니까요, 나리……?”

“……??”

이 집단적 독백을 어찌해야 할까. 그리고 책방 주인은 오늘따라 왜 그래. 오해는 또 뭔 오해.

“…그, 사제님. 가게 검문하러 오신 게 아닙니까?”

“……? 아닙니다만?”

“아, 아아아! 그러셨군요! 그럼 필사 의뢰……?”

“필사가셨습니까?”

나는 숨을 뱉곤 힘을 주어 문을 두드렸다. 쿵.

“안 연다면 가겠다.”

“아뇨, 아뇨! 잠시만요!”

두 사람에게 정신 팔려 있던 가게 주인이 호다닥 문에 달라붙었다. 덜컹. 낡은 문이 열렸다.

“어서 들어오세요. 없는 책이야 많지만 필사는 전부 가능─.”

쿵!

“엣.”

“어엇, 나리!”

“악마기사?”

나는 책방에 들어간 직후,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가 들어오기 전에 문을 닫아 버렸다. 막 촛불을 켠 가게 주인도, 밖에 남겨진 두 사람도 당황한 소리를 냈다.

“저, 밖의 두 분은 안 들어오셔도……?”

잘그락.

“들이지 마라, 절대로.”

“옙.”

어제보다 좀 더 두둑한 돈주머니가 가게 주인 손에 떨어졌다. 주머니 틈새로 빛나는 은화에 주인장이 방긋 웃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럼 오늘도 위에서 책을 보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물론 이것도 저들이 더 많은 값을 지불하면 뚫릴 가능성이 크나… 데스브링거는 짠돌이 기질이 있고 인퀴지터는 돈을 들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아마 나보다 더 내진 못할 거다.

『저, 장검 하나 사 뒀는데… 그거라도… 받아 가 주시면, 안 될까요.』

…데스브링거는 짠돌인데도.

구륵.

나는 때마침 들려온 소리에 신경을 돌렸다. 아, 아침을 안 먹고 왔더니 배가.

나는 살짝 고민한 끝에 인벤토리에서 3만 갈을 더 꺼내 가게 주인 손에 추가로 얹어 주었다.

“이건?”

“어제 배달해서 먹은 것, 다시 주문하고 싶은데 대신 해 줄 수 있겠나. 나머진 가져도 좋다.”

“아아, 물론이죠!”

젊은 나이에 가게를 운영할 정도면 제법 똑똑한 사람일 텐데, 그런 이에게 이런 시시콜콜한 심부름을 맡겨도 되나 싶었으나… 크게 불쾌하진 않은가 보다. 나는 안도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저, 죄송한데 가 주시면…….”

“그, 나름 일행이긴 한데… 그래도 안 됩니까요……?”

“요즘은 가게에 들어오기 전에 문을 닫아 버리는 관계를 일행이라 지칭합니까? 단어의 뜻이 바뀌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아니, 그건.”

“그, 그게…….”

“뭐, 저야 여러분의 사이를 잘 모르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들여보내 드릴 수 없어요. 먼저 오신 손님이고, 먼저 부탁하셨으니까. 진짜 일행이면 나중에 여러분끼리 타협 보세요.”

“아, 저. 그 타협을 보려고 저희가 지금 온 거라서.”

“사과할 게 있어서 온 건데… 그것도…….”

“그 사정은 제 알 바 아니고. 가 주세요. 솔직히 제 입장에서만 보면 여러분 좀 스토커 같은─.”

“의, 의뢰! 의뢰를 할 겁니다! 네! 의뢰를 하러 온 것입니다!”

“그러십니까? 그럼 저기 가게로 가시죠. 가게 안은 어두워서 대화 나누기 썩 좋지 않거든요.”

“아니, 그게…….”

“무슨 문제 있나요?”

참고로 가게 주인은 아주 훌륭하게 그가 받아먹은 돈값을 했다.

이따 갈 때 팁 더 줘야겠다.

* * *

아크메이지는 제 앞에 있는 비류호의 사체 조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리를 두자고 했으면서도 이런 것은 일임한다라.

유대는 아닐지언정 신뢰는 받고 있다라 여겨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악마기사가 이 행위에 별 무게를 두지 않아 그녀에게 맡겨진 거라 여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일 확률이 농후하지만.

“살 건가?”

“…신전에선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럼 역시 마탑이 다 사 가겠어.”

그래도 그가 보인 헌신을 생각하면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아크메이지는 최대한 값을 높게 매길 방안을 궁리하며 도축된 것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흠?”

그러다 문득, 이것의 허벅지 뼈면 꽤 괜찮은 검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악마기사를 위해 장검을 산 게 있지만, 그것도 결국 일반 철 검. 얼마 안 가 부서질 테니 말이다.

“이건 내가 사야겠군.”

무기에 대해선 무지한 편이니만큼 베르세르크나 인퀴지터의 조언을 구하긴 할 터이나… 재질을 두고 아마 나쁜 답이 돌아올 것 같진 않다.

“마침 수식도 안정화됐으니 잘만 하면…….”

그녀는 그녀가 개인적으로 가진 재산이 얼마였는지 가늠해 보고, 또 제작을 맡긴다면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지식을 더듬었다.

운 좋게도 근래에 수식 보완 겸 아이템 제작으로 연락했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잘하면 타이밍 맞게 받겠군.”

기존 의뢰에 이것까지 맡기려니 일거리를 너무 많이 주는 것 같아 양심이 좀 찔렸으나, 실력만 보면 선택지가 없다.

아크메이지는 이때 인맥을 쓰지 않으면 언제 쓰겠냐는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아크메이지님…….”

“법사 나리…….”

“…인퀴지터? 자네?”

물론 선물이 주인에게 갈 수는 있을지에 대한 여부는 별개였다.

그녀는 뿌앵 울며 돌아온 이들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직후, 이마를 탁탁 두드렸다.

어떻게 악마를 사냥하는 것보다 유대 관계 하나 바로잡는 것이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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