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아직까지는 (7)
청년을 붙잡아 물어보길 잘했다. 나는 골목골목으로 움직이는 이를 보며 질린 얼굴을 했다.
거기에 막 당도한 서점 건물은 간판조차 없었으니. 햇빛이 들지 않도록 창문도 죄다 막아 놓은 게, 이거 안내 없었으면 절대 못 찾았다.
나는 이 우연과 몇 분 전 내 선택에 감사 기도를 올렸다.
“손님이 직접 찾아오시는 경우는 드물어서… 가게가!”
덜컹!
“…좀 더럽습니다. 죄송해요.”
그동안 잠금쇠를 푼 청년은 나를 안쪽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촛불을 켰는데, 창문이 없다 보니 자연광 대용으로 켠 것 같다.
종이 서적 사이로 촛불이라니. 조금 위험한 게 아닌가 싶다가도 어쩔 수 없다 싶다. 전기는 없고 마법등은 비싸니까.
“그래서 어떤 책을 찾으신다고요?”
“…책이 생각보다 많군.”
“책이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거니까요.”
청년은 하핫 웃곤 손으로 책 더미를 하나하나 가리켰다. 저건 풍속소설, 저건 춘화도, 저건 마법에 대한 글, 저건 기사에 대한 글, 저건… 그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깔끔하게 모아 두어서 책을 찾아 읽기는 편할 것 같았다.
“원하시는 걸 찾아보시면 됩니다. 아, 글은 읽으실 줄 아시는 것 맞지요?”
“안다.”
그보다 그냥 읽게 해 주는 건가. 하기야 내가 들렀던 다른 서점들도 읽는 건 뭐라 한 적 없긴 하지. 안 사 가니까 뭐라 꿍얼거리는 곳은 있었어도.
팅.
그런 건 별로다. 나는 지금까지 서점에 들렀을 때마다 지불했던 금액만큼 청년에게 튕겨 주었다.
“엇, 읽으시기만 하는 거면 돈은 안 주셔도 되는… 헉.”
비류호 사체를 팔면 다시 차고 넘치게 될 것이 바로 돈이다.
나는 말없이 책을 골랐다. 악마에 대한 책들이 있기에 그것부터 잡은 건 덤이다.
“그, 위층에 창가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읽으시겠습니까……?”
내가 준 돈의 단위가 단위라서 그런 건지, 청년이 벌벌 떨며 위층을 가리켰다. 나는 그 배려를 거부하지 않았다.
내게도 등이 있긴 하지만 자연광만은 못하지.
끼이익.
“저는 작업을 하고 있을 테니 오가시며 편하게 읽으세요.”
청년은 다락방 사다리처럼 생긴 것을 내려 준 후 위층 공간으로 먼저 올라갔다. 따라가면서 힐끗 보면 바닥에 어질러져 있는 담요나 음식을 먹은 그릇 따위를 치우고 있다.
“헤헤… 좀 더럽죠?”
뭐, 창가는 깨끗하니까.
나는 창가의 널찍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책들은 내용을 대충 훑어본 후, 몇 개를 집어 가져온지라 한동안 내려갈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콧등 위, 미간 쪽을 살짝 눌렀다가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했다.
* * *
탕탕탕!
작업에 들어가면 시간과 주위 상황을 종종 잊곤 하는 사람이 제이콥이라.
그는 한창 작업을 하다 말고 들려온 소리에 퍼득 고개를 들었다.
탕탕탕!!
“야! 제이콥!! 밥 받아!!”
“아아아아! 잠깐만!”
벌써 점심시간이 됐나 보다. 동생이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은 아까부터 동생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는지 창가를 통해 바깥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당탕!
그게 어쩐찌 창피해서─어쩔 수 없다. 모든 남매는 서로를 부끄럽게 여겼다─제이콥은 서둘러 사다리를 내려갔다.
“느림보 새끼야, 어서 튀어나오라고!”
“잠깐, 간다, 간다고!”
“어떻게 이 새끼는 발전이란 게 없어? 점심시간을 왜 매번 까먹냐고!”
“아, 간다고!”
벌컥!
“너 진짜─!”
“아아아! 에바, 제발! 지금 위층에 손님 있어!”
“매번 이럴, 뭐?”
이 괄괄함은 언제쯤 죽을까. 그는 혀를 차며 동생에게서 밥을 받았다. 동생은 그동안 한 발짝 물러나 위층 창가를 쓱 본다.
“헉, 멋있어! 근사해! 등신아, 이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
“말할 시간을 주기는 했고……? 아니, 그리고 손님이 온 걸 너한테 왜 말해.”
“멋있잖아!”
하여간 이 망할 동생은 오빠를 헛것으로 알지.
그는 급하게 내려오느라 흐트러진 안경을 고쳐 쓰며 파리 내쫓듯 손을 휘저었다.
“실례되는 말은 그만하고, 그만 가. 아무래도 기사 같다고.”
나름의 경고는 덤이었다.
그의 일주일 치 수익을 팁으로 주는 점이나, 고급스러운 옷차림, 교육 없인 다룰 수 없는 투헨더를 등에 매단 점에서 손님이 제법 급 있어 보인 까닭이다.
다른 말로는 함부로 대해선 안 될 사람이 되기도 하고.
“뭐? 기사?! 너무 좋아!!”
…설마 그 점을 더 좋아할 거라는 건 미처 생각 못 했지만 말이다.
“나 손님 얼굴 한 번만 보고 가면 안 돼?”
“가라.”
“아, 한 번만. 대신 내일 주방장님 몰래 고기 좀 더 넣어 줄게.”
“얼마나 더 넣어 줄 건… 아앗, 그래도 안 돼.”
“손님은 식사 안 하신대? 식사하고 오셨으려나? 아, 식사 안 하셨으면 내가 다시 배달해 드릴 수 있는데!”
“아오.”
돌겠네, 진짜. 제이콥은 스스로의 이마를 팍 쳤다.
더러운 곳도 스스럼 없이 들어오는 점에서 손님 넉살이 제법 좋아 보이긴 하지만, 그게 이런 무례까지 용서해 줄 정도인지는 아직 모르는 탓이다.
“에바, 기사님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왁!!”
더 위험한 존재다. 그렇게 말하려던 제이콥의 입은 다물렸다. 에바가 그의 옷깃을 붙잡은 채 흥분해서 방방 뛴 탓이다.
또각또각.
하물며 뒤편에선 군사교육 받은 자들 특유의 각 잡힌 발소리가 들려왔으니.
“식당 종업원인가.”
“네, 네!”
그의 바로 뒤편에 손님이 섰다. 경직되고 절제된 움직임에서 묻어나는 엄격함은 제이콥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기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은 기사다.
그는 전선에 오래 있던 전사들은 가만히 있어도 기세를 풍긴다는 글귀가 진짜였음을 실감했다. 비록 직접 체험하고픈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아무튼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디 있는 가게지.”
“저기 저쪽 사거리에 있는 ‘즐거운 하루’란 곳인데…….”
에바아아아. 그런 걸 다 말하면 어떡해!
그는 인정하긴 싫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땐 예쁘장한 동생을 걱정하며 은근슬쩍 동생을 제 등 뒤로 밀었다.
손님은 미들족이고 그들은 샤기족이라서 미의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건 제쳐 두었다. 미의 관점은 달라도, 엄격함에서 오는 근사함이나 활기참에서 오는 발랄함은 인종 관계없이 모두에게 통용되었다.
퍽.
“억!”
물론 오라버니의 깊은 뜻을 모르는 동생은 그의 옆구리를 후려치고 기사 앞으로 쫑쫑 나아갔다.
이 멍청아, 해코지당하면 어쩌려고. 제이콥은 속으로 울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요리가 있나. 생선은 상관없다.”
“고기가 없는 거요? 음… 아, 생선을 넣고 고은 토마토 수프는 있어요.”
“그럼 그걸로. 샐러드는 있나.”
“네! 치즈가 들어간 거랑 과일이 들어간 게 있는데.”
“치즈로.”
다행히 이 손님은 멀쩡해 보이는데…….
세상엔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 너무 많다. 제이콥은 어려서 조심성이 없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손님을 집요하게 살폈다.
“호밀빵 한 덩이랑, 치즈 샐러드, 생선 토마토 수프, 채소볶음 하나. 이거 맞죠?”
“…고기 요리도 하나 더.”
“고기 요리도요? 어, 뭘로…….”
“네가 추천하는 걸로 해라. 가격은 상관없다.”
“넵! 그럼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팡팡 치킨으로 해 드릴게요! 그럼 다 해서, 어, 음.”
“…2만 3,600갈. 더하기 빼기 정도는 내가 하라고 했지?”
“누군들 하면 됐지!”
동생이 일하는 가게의 음식 가격쯤은 외우고 있다.
제이콥은 손가락을 접어 가며 계산하는 동생을 안쓰럽게 보며 단번에 셈했다. 얄미운 동생이 엄지를 치켜세우곤 기사님께 돈을 받았다.
“어, 3만 갈?”
“거스름은 가져라.”
“헉! 그래도 돼요? 역시 기사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사람 정도면 좋은 사람이 아닐까?
그는 하루 치 일당을 팁으로 벌어 가는 동생을 보며 잠시 흔들렸다.
그렇지만 곧장 고개를 휘휘 저어 가며 생각을 지웠다. 돈에 넘어가는 건 하류의 짓이었다.
“음식이 오려면 좀 걸릴 테니 안쪽에서 기다리시죠.”
각설하고 당장 이상한 짓은 안 했으니까. 동생 보는 눈에 사심도 달리 안 보이고.
제이콥은 다시 손님을 안쪽으로 데려갔다. 제 음식은 잠시 내버려 두었다. 손님을 내버려 두고 먹기엔 좀 그랬다.
“먼저 먹어라.”
“아하하, 괜찮습니다. 샌드위치라서.”
더구나 손님의 음식은 경험상 십 분이면 도착할 거다. 샐러드는 금방 만들어지고 수프는 끓여 둔 걸 담아 오면 그만이니까.
채소볶음이나 고기볶음은 좀 더 걸리겠지만, 애초에 한꺼번에 가져오기엔 손이 부족하다. 여러 번에 걸쳐 가져다줄 터.
못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차, 이럴 게 아니지.”
작업을 다시 하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하여 제이콥은 음식 놓을 자리를 준비했다. 원래라면 작업하던 자리에서 먹겠으나, 지금은 손님이 있으니 책상 위치를 옮겨야 했다.
“아, 다 읽으신 책은 그냥 한쪽에 모아서 놔 주기만 해 주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그는 손님이 앉을 의자도 꺼내 오며, 슬쩍 손님이 읽던 책 목록을 확인했다.
동부의 역사, 베르가르트에 대해, 세계의 기사학교, 기사란 무엇인가, 악마가 부리는 마법. 종류가 참 다양했다.
“저런 책이 있었나?”
그런데 마지막 책 제목이 조금 낯선데. 그는 그 책을 두고 잠시 눈을 끔뻑였다. 기억에 없는 제목이었던 탓이다.
“문제 있나?”
“어… 잠시만요.”
가끔 책을 다량으로 들여올 때 그가 미처 확인 못 한 책이 섞여 들어오곤 한다. 이것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지만… 하필 악마를 다뤘다는 게 문제다. 악마에 대한 찬양이라도 적혀 있다면, 그리고 그걸 손님이 신전에 고발하면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어서다.
“아, 아닌가. 읽었던 건가?”
운 좋게도 손님은 아직 이 책을 보지 않은 눈치다.
제이콥은 슬쩍 책을 가져와 앞부분을 확인했다.
⌈악마는 계약을 토대로 힘을 선사하고 그 대가로 영혼을 가져간다. 또한 악마는 가져간 영혼으로 자신의 영혼을 키우는데…….⌋
악마에 대해 조금만 조사하면 나오는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어떤 책이든 악마와 그 능력에 대해 거론할 때면 반드시 언급되는 문장들이 단어 선택만 달리해서 적힌 것이다.
팔락.
⌈…여기서 필자는 확신했다. 악마들이 제물로 삼을 수 있는 건 인간뿐이 아니다. 그들은 같은 악마들도 제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1/3쯤 넘어서 내용을 좀 달리했다. 어떤 책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의견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
⌈더불어 악마들의 마법은 사실 두 가지가 존재하며, 한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의 힘이고 두 번째는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문제는 증거라곤 하나도 없이 그냥 필자의 추측만을 주르르륵 늘어놓았단 것이라.
금서의 냄새가 풀풀 났다.
이건 위험하다.
“……?”
“아하하, 이건 아무래도 확인이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이런 게 왜 있지. 아하하.”
제이콥은 판단이 든 순간, 탁 소리가 나게 책을 덮었다. 손님이 그를 의아하게 보았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잠시만욕!!”
그는 후다닥 아래층에 내려가, 뒷간을 열었다. 그러곤 한곳에 숨겨 둔 화로를 끄집어내 책을 집어넣었다.
“좋아, 잘 탄다.”
화르륵!
서둘러 붙인 불꽃이 책을 삼켜 버렸다. 완벽한 증거인멸이었다.
“……?”
“아하하하.”
그러니까, 위층으로 다시 올라갔을 때 마주친 기사님의 의구심 어린 눈만 빼면. 아마도.
“식사 왔습니다, 기사님!! 제이콥 너도 내려와! 많으니까!!”
“앗, 에바!!”
평소엔 도움 안 되던 동생이 드디어 한 건 했다.
그는 기사님의 시선을 피해 우당탕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잘못 치댄 빵 반죽 같아.”
“입, 입. 제발 입.”
“뭐래. 그보다 기사님은?”
“…빠르군.”
“기사님!!”
“…저걸 동생이라고.”
고맙단 심정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음식이나 주고 가, 인마!”
“아, 귀여운 동생을 왜 못 보내서 난린대!”
“니 입으로 귀엽다는 소리가 나와? 우엑, 우에에엑. 밥맛 떨어지는 소리 말고 어서 가!”
“저 동생 아낄 줄 모르는!!”
제이콥은 왁왁 소리나 지르는 동생에게 대항하며, 음식들을 받아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손님이 식은 음식을 먹게 할 순 없었다.
“가게 오가다가 새끼발가락이나 찧어라!!”
“저걸 진짜! 하여튼 끝까지 밉상이지!”
“베에에에.”
“어서 가!”
“…동생이랑 사이가 좋군.”
“저, 저… 네? 예? 아… 손님 긍정적이시네요. 이게 좋아 보이시고.”
“정말 나빴다면 대화도 안 했을 테니까.”
“뭐… 그건 그렇죠.”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부끄럽긴 하지만, 이 모습이 좋아 보인다니 썩 기분 나쁘진 않았다.
“쟤가 저랑 열다섯 터울이라서요. 부모님 두 분이 일하시는 동안 쟤는 제가 거의 업어 키웠죠. 저 은혜도 모르는 놈은 오빠 옆구리나 후려치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추태를 두 번 보이는 건 사절이다. 그는 이따가 한 번 또 올 때는 손님은 위에 두고 그 혼자만 내려올 것을 다짐했다. 배은망덕한 동생에겐 이 정도가 딱이었다.
“소중히 해라.”
“네?”
“가족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건 정말 행복한 거니까.”
“그으렇죠……?”
그런데 손님은 갑자기 왜 진지한 발언인지. 그는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손님의 눈빛을 두고 뒷목을 긁적였다.
머쓱함과 별개로 저 충고를 우습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 기이할 정도로 절절함이 느껴져서.
“받아 가라.”
“예?”
“장소를 제공해 준 값이다.”
그러나 동생이 가져온 고기 음식이 제 앞에 내려졌을 때.
본인 먹으려고 시킨 게 아니라는 듯 손님이 쿨하게 채소와 생선 요리만 가져가서 먹을 때.
제이콥은 기사님이 진중하게 조언한 말을 까마득히 잊었다.
저 말이 와닿기엔 그는 상실의 무게를 몰랐고, 자주 사 먹지 못하는 고기 한 접시의 무게는 그에 비하면 참 크게 느껴졌으므로.
* * *
『또한 내게 필요한 건 네놈의 같잖은 동정과 이해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무자비한 심판임을.』
데스브링거는 귓가 한쪽에서 메아리치는 말 한마디와, 핏자국이 선명한 베개를 두고 망연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알고는… 알고는 있었는데…….”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대삼림에서 스스로를 찌르려던 걸 보았던 만큼, 이건 새삼스러운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새삼스럽진 못해도 충격적이긴 매한가지다. 어쩌면 허탈함까지 더해져서 더 그랬다.
지금껏 외쳐 온 말이 악마기사에게 전혀 닿지 않았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앞으론 더 닿지 않을 것임을 자각해 버렸으니까.
“…….”
그러나 이대로 있으면 악마기사는 분명 스러질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그에겐 막을 방법이 없는데,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상대는 금방이라도 죽어 버릴 것 같다는 게, 제일 큰 난제였단 말이다.
“…이제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자신에겐 악마기사를 말릴 근거도, 핑계도, 방도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어쩌긴 뭘 어쩌나! 계속 찾아봐야지! 궁상 떨지 말고 수색이나 해라!”
그때,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알싸함과 함께 샌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마기사가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는 걸 완곡히 표현한 아크메이지에게 ‘그건 옳지 않다’고 소리친 사람다웠다. 그게 지금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느냐면 그건 아니었지만.
데스브링거는 멍들 것 같은 통증에 짜증을 내려다가, 그냥 쭈그려 앉기를 택했다.
화를 내기엔 그의 심정이 너무 눅눅했다. 불火조차 붙지 못할 정도로.
“…찾아서, 어떻게 하려고요?”
“이유 없이 코피가 났을 리 없다! 부상이 도진 것일 수 있으니 당장 검사를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크메이지님도 찾지 말랬잖아요.”
“그건 악마기사께서 밤새 피 흘렸단 사실을 모르셨을 때 하신 말 아닌가. 알려드리자마자 찾아오라 하셨고.”
“…뭐 그건 그렇지만. 근데 그래서요? 병이면 뭐 어쩌게요?”
“고칠 거다!”
“고치지 않는다고 하면?”
“…병이 났는데 왜 고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게요. 나리는 왜 그럴까요.”
사람이라면 죽음이 다가왔을 때 피하는 게 본능일 텐데. 그 기사는 왜 본능마저 외면하는 걸까.
“…우리가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 거겠죠.”
우습게도,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악마들과 악마들의 왕을 죽인다는 목적이 없었다면, 너와 내가 같은 공간에 서 있을 일은 영원토록 없었을 것임을.』
“그 사람에게 있어, 우리는 목적이 일치하지 않았다면 같이 있을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니까.”
악마기사가 이미 말해 줬으니까.
데스브링거의 눈동자가 까맣게 침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