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아직까지는 (6)
데스브링거는 가장 어렵다는 평원 위의 미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악마기사의 걸음은 그 후로도 멈추질 않아, 그는 숲도 가로질러야 했다. 악마기사의 걸음이 빨라서 따라가는 것도 제법 고역이었다.
어딜 가시는 거지?
그는 지금이라도 방향을 선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더 따라가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러 아이템으로 관찰해 본 결과,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악마기사가 맞았던 탓이다.
문제는 그가 왜 혼자 숲으로 가는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여긴…….”
다행히 악마기사는 해가 지기 전 목적지에 도달해 냈다. 불탄 나무들의 잔재가 사방에 널려 있고 땅 위는 새까맣게 그을린 대지였다. 데스브링거가 익히 아는 장소기도 했다.
“설마 악마를 쫓아오신 건가?”
데스브링거는 그럴싸한 가설을 검토해 냈다.
아무렴 이곳은 비류호 토벌전이 이뤄짐과 동시에 새로운 대악마─인퀴지터 딴에는 대악마 같다더라─가 출현했던 땅이었다.
악마를 향한 악마기사의 증오를 감안하면 흔적이라도 쫓고자 이곳에 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나리, 제발…….”
이상할 게 없긴 하지만, 제발 몸 좀 신경 쓰면 안 되는 건가? 아크메이지가 몸 건사하라고 당부한 게 고작 몇 시간 전이었는데!
그는 얼굴을 팍팍 치며 까만 기둥 뒤에 숨었다. 재 가루가 옷과 얼굴에 옮겨 붙었지만 그거 신경 쓰면 진다.
데스브링거의 눈동자가 악마기사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따랐다. 들킬까 봐 거리를 최대한 넓게 벌렸더니 세밀한 움직임이 눈에 잘 안 들어왔다.
“……?”
그렇지만 그가 기묘한 방향으로 휙휙 돌아다니는 건 얼마든지 보였다.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직선으로 길게 걸었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른 방향으로도 길게 걸어 보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이젠 뱅글뱅글 선회한다. 어찌나 크게 도는지, 데스브링거는 황급히 숲 뒤쪽까지 몸을 물려야 했다.
악마기사가 슬 지나간 자리엔 검으로 긁은 듯한 자국이 남는다.
설마 마법? 아니, 다른 건 몰라도 마법까지 능통한 사람 같진 않던데.
거기에 악마기사가 그은 선은 다소 삐뚤빼뚤─미치게 오락가락한다기보다 반듯하게 긋되 정교함에 투자를 안 했다는 느낌으로─했다.
아크메이지가 말하길, 마법은 세밀함과 일정함이 생명이랬으니 아마 마법은 아닌 듯 싶다.
그럼 대체 뭐지?
데스브링거는 악마기사의 의중이 헤아려지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악마기사가 한참 만에 불타는 대지 중심에 섰을 땐 ‘아, 이거 혹시 중심을 가늠하기 위한 거였나?’란 사고가 섬찟 머리를 스쳤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게 정말이라면, 왜 중심을 계산하는지가 문제였다.
악마를 추적하는 게 목적이라면 불타는 땅의 가운데를 찾아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나리가 의미 없이 움직일 분도 아니고…….”
그는 그런 생각과 함께 악마기사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헉, 돌았다.”
그리고 그가 악마기사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 악마기사가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도시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데스브링거는 서둘러 몸을 내뺐다.
다리는 다리대로 혹사당하고, 저녁은 저녁대로 굶었으며, 그런 주제에 얻은 것은 없는 하루였다.
곧 해가 질 상황임에도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일 큰 난관이긴 했지만.
* * *
“늦었군.”
나는 해가 내 발밑에 있을 시각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늦으려고 늦은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정보길드 나와서 간 곳이 생각보다 멀더라고. 저번에 갔을 땐 그렇게 멀게 안 느껴졌었는데.
“잠시 자리 좀 함께 하겠나?”
그보다 아크메이지님, 지금까지 안 주무신 거야? 설마 나 기다리느라?
물론 내가 아무 언질도 없이 늦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가 보호자의 개입이 필요한 수준으로 사리 분간이 안 되는 사람도 아니고, 솔직히 여기서 나 이길 수준의 능력자가 갑툭튀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드르륵.
머릿속은 다소 ‘굳이?’란 생각뿐이나, 그래도 날 기다려 준 사람이다.
나는 이 대화가 얼마나 길어질지 가늠해 보며 일단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한가운데에만 켜 둔 양초 몇 개가 주변을 은은하게 밝혔다.
“일단 한 잔 들게.”
아, 차.
나는 복잡한 눈으로 찻잔을 받았다. 향기를 맡아 보면 항상 얻어먹던 그거 같은데…….
난 입술을 살짝 떼었다가, 곧 다물었다. 차의 열기가 촛불의 주홍빛을 입어 하늘하늘 올라갔다.
“이렇게 앉아 대화하기도 오랜만인 것 같군. 안 그런가?”
글쎄… 오랜만이라고 한다면 그러지 못할 것도 없긴 하지. 사람이 추가로 합류하지 않을 게 확정된 상황에서 단둘이 차 마시는 건 워낙 드문 일이니까.
“무엇을 하고 왔는지는 말해 주지 않겠지?”
그보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빙빙 돌까. 나 지금 오래 앉아 있고 싶은 심정이 아닌데.
“용건.”
나는 찻잔에 손을 대었다. 손잡이 없이 매끈한 잔은 다소 미지근하다. 차갑던 것에 열기가 막 퍼지는 느낌의 미지근함이었다.
“…그거 아나? 이럴 때마다 나보다 자네가 더 마법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항상 생각하는 건데, 마법사들은 대체 어떤 존재들이야? 나야 컨셉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회성 말아먹는 쪽이지만, 이것에서 연상되는 마법사들은 대체…….
“후.”
어쨌거나 아크메이지는 쉬이 굴하지 않았다. 몇 달간 내 싸가지에 익숙해졌다는 태도가 다소 웃기고 서글펐다.
그치만 이 싸가지의 과실 비율은 내 탓 50%에 당신들 탓─컨셉을 강제하게 만든─50%니까, 눈총 줄 거라면 스스로부터 하라고.
“뭐가 문젠가?”
또 이런 모호한데 이상하게 핵심에 근접하는 질문도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답하기가 어렵잖아.
“말해 주게. 뭐가 문젠가.”
나는 다소 뜬금없기도 하거니와, 총체적으로 난국인 말을 두고 무심코 찻잔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빠득. 아까부터 파들파들 떨리던 찻잔에서 위험한 소리가 났다.
“이렇게 말하면 자네는 간섭 말라고 하겠지. 하지만, 악마기사.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요즘 자네는 정말로…….”
“내가 보일 반응을 예측했음에도 구태여 묻는 저의가 뭐지? 네 멍청함을 증명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네 알량한 자기만족?”
아, 실수했다. 이렇게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스스로의 위치를 주지해라, 마법사.”
그렇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찻잔을 쥔 손에서 힘을 푼다고 이미 금 가 버린 찻잔이 본래대로 돌아오지 않듯이. 뚝뚝 새어 나온 물방울이 도로 찻잔에 담기지 않듯이.
“악마들과 악마들의 왕을 죽인다는 목적이 없었다면, 너와 내가 같은 공간에 서 있을 일은 영원토록 없었을 것임을.”
나는 물이 새는 찻잔의 내용물을 미련 없이 탁자 위에 부었다.
이미 쏟아져 버린 말과 감정. 돌이킬 수 없다면 차라리 이용이라도 하겠다는 심보였다.
“또한 내게 필요한 건 네놈의 같잖은 동정과 이해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무자비한 심판임을.”
어차피 이른 시일 내에 선을 그어야겠다고 사유하던 참이기도 했으니까.
“명심해라. 네놈들이 할 일은 악마를 죽이는 것이고, 내가 할 일 또한 악마를 죽이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네놈들과 내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가치다.”
협탁 위로 퍼져 나간 더운물이 어렴풋한 향기를 풍겼다. 죽은 식물의 잔재를 바싹 말린 후 짜낸 향이었다.
빠르게 식어 가는 열기 위로 반사되는 촛불의 주홍빛이 꼭 용암인 양하였다.
달칵.
아크메이지는 찻물로 흥건해진 테이블과 막 닫힌 악마기사의 방문을 보았다.
정말이지, 성깔 더러운 건 알아 줘야 했다.
“거리를 두자는 말을 참 길게도 하는군.”
저리 요약을 못해서야, 역시 마법사는 못 될 것 같다며 그녀는 농담을 뇌까렸다. 그녀 자신도 웃지 않을 농담이었다.
“…무자비한 심판인가.”
본래도 썩 본인의 미래를 그리는 사람 같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발언은 예전의 것보다 훨 노골적인 구석이 있다.
일말의 희망마저 내버린 것처럼.
“무엇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대체 무엇이? 모비 딕과의 싸움 이후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끼익.
그때 숙소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질렸음을 알 수 있는 청년이었다. 녹색 귀가 아래로 축 처지고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들었나?”
“…….”
상대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메이지는 들은 셈 쳤다. 침묵이 그의 답이었다.
“술은 한잔할 줄 아나?”
“…예.”
“그렇군. 그럼 앉게. 오늘 밤은 꽤 길 테니.”
그녀는 하얀 숨을 뱉으며 혹시 몰라 구비해 둔 술을 꺼냈다. 안주는 따로 없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손아귀에는 이미 밤이 주고 간 슬픔이 있었으니까.
* * *
아… 귀찮게 됐네. 침식이 너무 과했나. 이젠 여과된 신성력조차 구슬 없인 못 버티는군. 마법사가 여과기를 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나 봐?
「너… 무슨 짓을……!」
화내는 건 좋지만, 이건 좀 억울한데. 이건 정말 내 탓 아니야. 애초에 너도 알잖아? 자각하면 할수록 위험하다는 걸… 애초에 네가 저 녀석의 간절한 애원을 외면한 것도 다 그것 때문 아닌가?
「…….」
그 얼굴, 좋네. 근래에 본 것 중 제일 마음에 들어.
「…닥쳐.」
할 말 없으니까 욕인가? 하여간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란… 아. 그보다 슬슬 깨워야 할 것 같은데? 이대로 가다간 죽을 거야.
「…내가 왜?」
…아, 그래. 너한텐 그게 더 이득이었지. 그렇지만 난 아니라서…….
‘이대로 죽을 게 아니면, 이만 일어나지?’
* * *
번뜩.
나는 눈꺼풀을 들어 올린 채 본능으로 판단했다. 나가야겠다.
후드득.
한데 그런 생각과 함께 몸을 일으키자, 뭔가가 베개에 떨어졌다. 피였다.
나는 다급히 얼굴을 매만졌다. 인중 쪽에서 끈적하게 피가 묻어 나왔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지 볼에선 버석거리는 핏자국이 묻어져 나온다.
심지어 베개엔 변색된 얼룩이 있다. 오래 방치된 피의 색이다.
“악마기사, 기상하셨─.”
“오, 전우야. 오늘 나랑 대련… 피 냄새?”
나는 다급히 옷을 차려입고,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복도로 나갔다.
이럴 거면 어제 느낌이 싸하던 때 감을 따라 밖으로 나갈 걸 그랬나. 구슬 하나 없어진 여파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는데.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예? 피 냄새라뇨?”
“전우야, 너…….”
“아, 잠깐. 두 사람, 저 좀 보지요.”
“예? 하지만…….”
다행히 그 후회는 금세 사라졌다. 어제 대화의 성과─아크메이지가 주변인을 대신 떨어트려 준다는─가 눈에 보인 덕이다.
되짚어 보니 생각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지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적어도 바라던 거리감은 생겼다. 그거면 족했다.
우리에겐 이 정도 거리가 딱이다.
아, 물론 이렇다고 해서 일행에서 빠지려는 건 아니다.
이 여정 자체에 회의감이 들긴 했으나, 섣불리 파티에서 빠졌을 때 또한 문제가 많은 까닭이다.
가깝게는 용사 파티와 함께해야 엔딩─그게 존재한다면─을 따라가기 편하다는 것부터, 멀게는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거든 나를…….
…뭐, 그런 문제 말이다.
파티 입장에선 이용만 당하는 거니 다소 미안하지만, 내가 배려해 줄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느냐면 그건 아니니까.
그러니 딱 이 정도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런 속도로만 관계의 골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언젠가 협력은 해도 서로의 사정에 관심은 두지 않는 사이가 되도록.
“후.”
나는 신전에서 나오고 나서 얼마 안 가 멎은 코피를 두고 손수건을 물에 적셨다. 그러곤 젖은 수건으로 내 코와 입가를 다시 닦았다.
인벤토리에 식수를 어느 정도 쟁여 놓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남은 핏자국이 닦여 나갔다.
뭐, 그 대가랄지, 이건 더는 못 쓸 수준이 되어 버렸지만서도.
나는 빨갛게 얼룩진 손수건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꼬르륵. 옷만 챙겨 입고 나오느라 미처 채우지 못한 배가 울었다.
일단 식당부터 가야겠다.
그리고 손수건이 없으니까 손수건도 사야 하고.
그리고…….
그리고 이제 어딜 가지? 구슬 다시 가지러 갈까? 아, 그건 좀 모양 빠지는데.
아니면 소성주보고 일 언제 해결될지 물어볼까? 그 기간 동안 바깥에서 자는 방법도 있긴 하니까.
아, 맞다. 장검도 깨 먹어서 검도 사야 해.
나는 적당한 식당을 찾으며 일정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생각보다는 할 일이 있었다. 소성주 찾아가는 것 하나만 미뤘는데도, 오전 시간 내에 다 해결 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
그럼 이제 오후에는 뭐 하냐. 현대였으면 그냥 카페나 도서관에 짱박혀서 커피 쪽쪽 빨며 책 보는 건데.
그렇지만 이곳은 카페는커녕 찻집도 없다.
광장은 있어도 공원은 없어서 산책하기도 애매하고. 문맹률이 높다 보니까 도서관은 개념 자체부터가 없어서… 그렇다고 책 읽으러 신전이나 성에 갈 순 없다.
해서 그나마 자유로이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건 서점 정도인데…….
이 도시에 서점이 있을까 모르겠다. 찾아볼까.
“자 자, 싱싱한 과일이 막 들어왔습니다! 싸다, 싸!”
“기사의 도시 뮌문트마저 울린 연극이 곧 시작합니다!”
“그 새끼, 그럴 줄 알았어. 허구한 날 녹색 머리만 보면 두들겨 패더니… 허, 참. 반란? 시도할 걸 해야지!”
“사형은 언제 집행한대?”
나는 어수선한 거리를 지나며 온갖 좌판과 가게를 구경했다. 현대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가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아이쇼핑의 재미는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도 꽤 맛이 있었고. 대장간은 못 찾았지만 손수건은 꽤 좋은 걸로 샀고.
그렇지만 서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책은 비싼 물건이니까 위치한다면 고급 상가 거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허탕인가? 포기해야 하나?
“늦었다, 늦었다!”
한데 내가 서점을 포기하려던 찰나, 거리 반대편에서 청년 한 명이 종이 뭉치를 한 아름 안고 달려가는 게 보였다.
그의 목적지는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레스토랑이다. 들고 있던 건 메뉴판용 종이였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나 참! 이제 오는 거야? 10분만 더 늦었어도 단단히 화냈을 거라고!”
“죄송합니다!”
“가져가!”
이걸 안경에 대한 편견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먹물 냄새를 맡았다고 해야 할지.
“휴우… 안 늦어서 다행이다.”
나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노란색 표범을 연상시키는 샤기족 청년은 막 구불거리는 밀빛 머리카락을 넘기며 안도하는 중이다.
“이봐.”
“응?”
“필사가인가.”
나는 허름하지만 단정한 차림새와 손에 난 털 사이로 보이는 잉크 얼룩을 확인했다.
의뢰 물품이었을 메뉴판과 잉크 자국. 최소한 먹물쟁이일 거란 확신이 섰다. 동시에 이 사람이라면 서점에 대해 알 거란 가설도.
“아, 네네! 맞습니다! 혹시 의뢰라도……?”
“서점을 찾고 있는데.”
그럼 뭐 어떡해. 물어봐야지.
서점 찾느라 발에 땀 나게 뛰어다니며 시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일찍 가서 책을 더 많이 보는 게 내겐 더 취향인데.
“서점이요?”
하여간 내 물음에 청년은 안경을 다시 한번 고쳐 쓰곤 활짝 웃었다.
“큰 도시에서 오셨나 보네요. 에드니엄엔 책만 다루는 가게는 아무래도 없는 편입니다. 책만 사고파는 걸로는 먹고살기 어려워서요.”
역시 서점은 없는 건가.
그렇지만 책만 사고파는 곳이 없는 거지, 아예 책 파는 곳이 없는 것 같진 않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대가 필사가란 말에 긍정할 리 없다.
“물론 필사 의뢰를 겸하며 책을 다루는 곳은 있습니다! 가게로 안내해 드릴까요?”
것봐라.
“어떤 책을 다루지.”
현대야 서점에서 온갖 종류의 책을 다루지만, 내가 경험해 온 이 세계는 사뭇 다르다. 정말 비싼 책만 다루는 곳이 있고, 조잡하게 엮어 낸 책을 다루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건 보통 후자다. 전자는 보는 데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데다가 흠집이라도 나면 물어 줘야 할 금액이 살 떨릴 수준이거든.
“어지간한 건 다 다루죠. 물론 경전이나 제대로 된 마법서 같은 건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 건 필요 없다.”
경전은 신전에서, 마법서는 마탑에 가면 그만인데, 뭐. 그리고 그런 것들, 내가 얻고 싶은 정보는 별로 없더라.
잡서들이라고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건 그래도 문화에 대한 정보는 들어오니까.
“그럼 가시죠! 멀지 않습니다!”
다행히 그런 게 많나 보다.
청년은 기운차게 나를 가게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