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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65화 (165/389)

165화 핑계를 내지른 (5)

레온 소성주는 문득, 회의가 시작될 참임을 깨달았다.

하나 너무 오래 관심을 두진 않았다. 성주들의 회의에 소성주인 그가 눈길을 줄 이유는 없었다.

물론 누군가는 소성주나 보좌관 등을 동원했을 수도 있으나… 그의 경우는 가 봤자 손해다. 대부분 암묵적으로 희생을 종용할 것이니 당연하다.

그것에 스트레스 받느니, 회의 준비로 미뤄진 일들이나 처리하는 게 생산적이겠지.

그는 그런 판단하에 일이나 했다. 마침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있었다.

아무렴 캄버러의 맹수 사태가 그쳤다는 보고는 들어왔으나,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진 모르는 일이지 않나.

여러가지 일이 겹쳐 늦어지는 것도 정도껏이지, 비류호가 언제고 봐줄 거란 믿음은 어리석다. 그는 서둘러 파혼을 공표할 문서를 작성했다.

“소성주님, 정말 그 넝쿨은 비류호 님의 화와 관련이 없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대악마의 잔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용사님과 그 동료분들이 힘을 써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도시 주민들의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비류호께서 노하신 게 아니냐며, 비류호 님이 떠나시면 도시가 방할 거란 풍문이 가득합니다.”

“근거 없는 헛소문입니다. 더불어 비류호께서 떠나신다고 어찌 이 땅이 망하겠습니까. 서부 일대만 해도 해룡이 사라졌는데 아무 문제 없지 않습니까.”

한데 안 그래도 복잡한 심정에 새로이 던져지는 돌들은 대체 뭘까.

그는 새롭게 도는 소문과 그것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와 캄버러의 소성주 그리고 비류호 사이의 치정이 밝혀지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쪽이라고 좋은 건 아니다.

만악의 근원은 비류호인데, 이 소문으로 하여금 비류호를 옹호하게 되어 버렸지 않은가.

그것만은 싫어서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고, 대악마 토벌이 모두의 관심을 끌도록 그에 대한 말만 계속 흘리고 있긴 하나… 애초에 이 흐름 자체가 좋지 않다.

사람들은 하루 만에 자라난 넝쿨들을 두고 겁을 먹었고, 아주 오랜만에 먼지가 꼈던 신앙심을 찾아들었다.

이대로라면 악마의 시신을 먹은 비류호가 악마 그 자체가 되더라도 토벌하기 퍽 어려울 것이다. 저어기 서부처럼 그들 모두가 피해 입기 전까지는.

“돌겠군…….”

그는 비류호의 존재를 꼭꼭 가릴 것을 다짐하며 본문을 마저 작성했다. 비류호의 ‘ㅂ’ 자도 나오지 않는 글이 서서히 완성되었다.

[내가 부끄러우냐? 왜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느냐? 내 분명 너는 나의 것임을 천명하라 했을진대.]

까만 숨결이, 어딘가 서늘한 온기가 그의 등을 덮었다. 썩은 고기들에게서 나곤 하던 악취가 코끝을 건드렸다.

[아니면…….]

그의 어깨를 누르는 무게감에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동시에 그가 맡은 일의 책임을 다하고자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그에게는 비류호의 상태를 파악할 의무가 있었다.

[대악마를 잡은 인간들에게 나를 죽여 달라 부탁할 셈이냐?]

그런데 벚꽃처럼 어여쁘던 분홍빛 눈동자는 어디로 가고, 탁한 적색만이 남아 그를 지켜보는가.

[아서라, 그것들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그러기 위해 이 비린 것마저 먹어 치웠으니.]

커다란 손이 그의 입을 막고 몸을 들어 올렸다.

[더는 눈치 볼 것이 없다. 내 둥지로 가자꾸나.]

* * *

데브는 기어코 나나 일행들을 따라왔다. 자신의 필요성─증언해 줄 수 있다─어필 및 신전이 거북해서 있기 싫다란 의견을 피력한 끝에 내려진 판단이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신전이 그렇게 불편한가?”

“좀 그렇습니다요.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할진 모르겠는데…….”

데브는 고민 끝에 구더기 굴, 시체 굴 같은 단어를 꺼냈다.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무슨 의미로 꺼낸 건진 알겠다.

대충 일반인이 그런 걸 봤을 때 드는 혐오감과 비슷한 수준의 거북함이 든다는 거겠지.

“마기 때문인가……?”

“지금껏 잡아 온 악마숭배자들은 이런 걸 못 느꼈답니까?”

“잡아 오는 족족 고문실에 넣어지는데 그런 감상평을 내놓는 놈이 있을 것 같나?”

“…고문실에 안 들어가서 다행이네요.”

“걱정 마라. 네놈이 진짜 배신하지 않는 한, 들어갈 일은 없다.”

인퀴지터의 대답에 데브가 질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크메이지가 내게 시선을 돌린 건 바로 그쯤이었다.

“자넨 어떤가. 괜찮나?”

나? 나야 뭐… 신전이란 공간이 편하지는 않지?

어느 순간부터 천 개의 바늘이 몸을 콕콕 찌르고 사방에서 눈알이 떠다니며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으니까. 자그마한 벌레가 바글바글하니 내 몸뚱이 위를 걸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컨셉이라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하므로 나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꼭 컨셉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회피하려 들진 않았겠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그런 심정을 토로하는 대신 걸음 속도를 높여 이어질 질문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로 인해, 나는 뒤에서 아크메이지가 골몰하기 시작한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곧 성에 다다르자, 안내자가 나와서 나와 일행을 안쪽으로 인도했다.

응접실은 너무 작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연회 홀로 보이는 곳이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넓네요.”

“참가자가 많으니 말일세.”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내 컨셉이 성주들에게 찍힐 일이 안 생기길, 속에선 멸망전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중이다.

“악마기사, 안 들어오십니까?”

“…….”

어쨌거나 여기까지 와서 빠질 수는 없다. 나는 기도하던 속내를 숨기며 안으로 걸음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식으로 이곳에서 회의가 열리는 겁니까?”

“마법으로 상대의 모습을 스캔한 후, 스캔한 정보를 이 위에 환상으로 송출하는 식이네. 마찬가지로 이곳의 모습 또한 그렇게 전달될 예정이지.”

입구 바로 앞쪽에선 아크메이지가 데브에게 무언갈 강의하는 중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바닥을 가리켰다.

“이 안쪽 선부터 주변 광경이 전송될 거네. 그러니 발언할 일이 있다면 이 안에 서게나. 인퀴지터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따가……?”

“자네에게 어찌 다른 규칙을 들이밀겠나.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는 좀 나중에 나서는 것이 좋겠네.”

“그럼 신호를 주실 때 나서겠습니다요.”

“고맙네.”

약간, 과학과 마법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또 한 번 실감났다. 홀로그램 화상 회의 생각나네.

“다 모였나?”

그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소성주가 이쪽 일을 전부 담당하게 되며, 지금껏 볼 일 없던 성주였다.

“뮌문트 성주님께서 불참을 선언하셨습니다. 악마 떼가 하필 지금 쳐들어왔다면서, 회의 결과가 어찌 나오든 따를 것이라 전언하셨습니다. 나머지 분들께선 전부 참석 의사를 전하셨습니다.”

“그렇군. 알았네.”

괜히 소성주에게 일임한 것이 아닌 듯, 성주는 병색이 완연한 인상이었다.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겠거니와 샤기족임에도 몸이 앙상하게 마른 것이다.

하루 이틀 병을 앓아 온 기색이 아니었다.

“아, 용사님. 현자님과 동료분들도 오셨군요.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병약할지언정 정신마저 물러 보이진 않았다.

셔츠의 품이 남아돌 정도로 말랐으되 허리는 꼿꼿하고, 털은 윤기를 잃은 채 듬성듬성해졌을지언정 두 눈엔 총기가 가득한 것만 봐도 그랬다.

“아닙니다. 그보다 슬슬 시작되려는 듯하는데, 예 같은 건 나중으로 미루시지요.”

“배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크메이지와 성주가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연회 홀에 마련된 거대한 탁자 근처로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럼 모두 모이신 듯하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뮌문트 성주께선 부득이하게도 불참하게 되셨습니다.”

주최자의 자격으로 상석에 선 에드니엄 성주가 회의를 이끌기 시작했다.

“미리 고하건대, 이번 사태에 대하여 에드니엄은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을 각오를 마쳤습니다.”

─어떤 희생이라 하심은……?

“말 그대로입니다.”

─그건 비류호와 싸우겠단 의미입니까?

“모두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그리 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 말씀은 그러니까…….

“아비 된 자가 아들의 희생을 기어이 입에 담기를 바라시면 그렇다고 말하시지요. 시간 아깝게 말 돌리지 마시고.”

─커흠.

그러나 회의의 흐름 자체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런데 이 대화가 필요한 것이긴 합니까? 에드니엄 성주껜 안타까운 일이나, 소성주만 보내면 비류호께서 이 일을 별문제 삼으실 것 같진 않습니다만.

─악마를 먹은 것도… 그냥 악마를 이 땅에 남기기 싫어서가 아니시겠습니까? 비류호께서 어떤 분이신데 고작 악마 하나 먹으셨다고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이것으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부작용이 있으리란 법도 없고, 오히려 비류호를 적대했을 때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구태여 문제 일으킬 필요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는 없어요.

대부분의 성주는 이번 사태를 어물쩍 넘기고 싶어 했다.

─에드니엄 소성주의 희생을 너무 당연히 여기는 것 같은데, 이게 맞습니까?

─에드니엄 성주님껜 죄송한 일이나… 에드니엄 소성주 한 사람 때문에 다른 모든 도시가 피해를 입을 순 없잖습니까.

─만일 에드니엄 성주께서 아들을 구은하기 위해 나선다면 그 선택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는 할지언정, 베뮈르헨은 그 의견에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뮈르헨 마탑 지부도 동일한 의견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엔 악마가 가득한데, 이 일대의 주인까지 적으로 두고 싶진 않소이다.

레온 소성주의 희생? 그건 논란거리가 되지도 못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비류호를 달랠 수 있다는데 그러면 된 것 아니냐. 그런 눈치였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세상에 빈번하단 건 알지만, 너무 맡겨 놓은 것처럼 굴어서 다소 역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을 희생하게 생긴 아버지와, 연인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된 캄버러의 소성주가 이 자리에 모두 있어서 더욱 그리 느껴졌다.

─캄버러의 피해도… 솔직히 큰 편은 아니잖습니까? 도시가 망할 뻔한 것도 아니고.

─지금 말 다 하셨습니까? 피해가 크지 않아? 지금 시위 중인 우리 시민들에게 그 말 면전에서 해 보시겠습니까?

─커험… 캄버러 소성주, 말이 좀…….

─먼저 사람 말을 하셔야 저도 사람 말로 응대해 드리죠.

물론 두 사람 다 그 사실을 티 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의연해서 사정 아는 사람들이 더 눈치 보게 되었다.

성주 한 명이 거침없이 사람을 물어뜯는 캄버러 소성주를 보며 “역시 기사의 딸은…….” 하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저…….”

덜컥.

한데 아크메이지가 슬슬 참여하려는지 손을 막 들어 올리던 찰나.

연회 홀의 문이 열렸다. 소리가 크지 않아서 성주들은 눈치를 못 챈 기색이다. 애시당초 저쪽은 마법으로 전달되는 영역이 아니라서 저들에게 보이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성주님.”

그새 기사로 보이는 이가 딱딱히 굳은 얼굴로 성주에게 다가갔다.

“소성주님이…….”

나름 귓속말이라고 소리를 낮춘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내겐 다 들렸다. 비류호가 벌써 사고를 쳤나 보다.

“소성주가 납치……!”

“아크메이지님!”

아까부터 좌불안석으로 끼어들고 싶어 하던 인퀴지터가 아크메이지를 휙 돌아보았다. 아크메이지 역시 이런 전개는 생각 못 했는지 얼굴을 조금 굳혔다.

─무슨 일입니까, 에드니엄 성주?

─우리에게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한편 제 아들이 사라졌단 소식을 들은 에드니엄 성주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비류호께서 제 아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기분 탓인지,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가라앉은 듯했다.

─문제가 되는 겁니까? 어차피 바칠 예정이었는데…….

─머릿속의 지식이 가볍다면 입이라도 무거워야 하지 않을까요, 되르푸마인 성주님?

─캄버러 소성주! 그런 무례한 말을!

─에드니엄 성주님께도 당신의 지능은 무례일 겁니다.

캄버러 소성주도 조금 동요하는 기색이었다. 동요한 것치고 입을 너무 잘 놀리긴 했지만.

“야단났군… 비류호가 이렇게 나올 줄은.”

그동안 아크메이지는 조용히 뇌까렸다. 소성주의 안위도 걱정되거니와, 소성주가 사라짐으로써 곤란해질 많은 것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사람만 염려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크메이지쯤 되는 사람은 뒷일도 생각을 해야 하니 말이다.

“이건 폭거입니다!”

“호랑이 잡으러 가면 되나? 베르세르크 호랑이 잘 잡는다.”

“아직이니까 흥분하지 마십쇼…….”

그리고 나 또한 걱정되긴 매한가지였다.

나름 사랑하는 인간이니 잡아가서 죽였을 것 같진 않은데, 목숨이란 게 붙어 있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서.

거기에… 좀 냉정한 말이지만 소성주가 없으면 평화적으로 비류호의 상태를 알 방도가 없다.

다른 인간들이 비류호에게 질문을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소성주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애당초 소성주도 그걸 알고, 비류호를 부르게 되면 은근슬쩍 그 형편을 알아봐 주겠노라 약속해 준 참이었다.

비단 악마를 먹음으로써 얻었을지도 모를 부작용뿐 아니라, 비류호가 했던 발언─악마 어쩌고─의 근원까지.

“이렇게 되면 으음… 일이 어렵게 돌아가겠어. 우리가 가진 패로는 설득이 어려운데.”

그러나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비류호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방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중얼거리던 아크메이지에게 시선을 주었다. 마침 그녀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어두운 안색으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대는……?

“부족하게나마 용사와 함께하고 있는 늙은이입니다.”

─아아, 대현자님이셨군요.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갑자기 끼어든 존재에 성주들이 샐쭉하니 눈을 좁혔을까, 아크메이지가 신분을 밝히자마자 허겁지겁 태도를 고쳤다.

“별건 아니고 여러분이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제가 들어서 말입니다. 섣부른 결정을 내기보다 이 이야길 먼저 들어 주심이 어떤지.”

각설하고, 그녀는 데브가 알려 준 정보들을 주르륵 토해 냈다. 대악마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점, 대악마와 비류호가 협약을 맺은 것 같다는 점.

이 두 가지였다.

─분명 대악마는 죽였다고 들었습니다만?

─무언가 실수가 있으셨던 겁니까?

“글쎄요. 수천 미터 상공에서 악마의 미간에 칼을 찌른 채 이 땅까지 추락했는데 그것을 두고 어찌 생존을 상상하겠습니까? 다만 그래요, 대악마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대지에서 살아온 존재입니다.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를 다뤄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대악마가 살아 있는 건 확실한 겁니까?

“시기와 계약을 맺은 자를 사로잡았습니다. 그에게서 얻은 증언이니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우리 동부를 멸하기 위해 함정을 파는 건지 어떻게 압니까?

─그렇습니다! 간악한 것들의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크메이지가 괜히 지금껏 입 다문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비류호와 싸움 붙기 싫어서 괜히 꼬투리를 잡었다.

이해는 가지만 솔직히 좀…….

‘그냥 다 죽이면 시원해질 텐데.’

그래. 좀 많이 답답했다.

저러다 큰코다치는 건 아주 전형적인 클리셰니까.

“……? 저건…….”

“왜 그러냐, 어린 사냥꾼아?”

“무슨 문제가 생겼나, 뺀질이?”

“…아닙니다요. 그리고 그 뺀질이 소리 좀 그만하십쇼.”

그러던 순간 데브가 귀를 쫑긋거렸다. 그러곤 다소 복잡한 눈길로 문가 쪽에 다가갔다가, 방향을 틀어서 내게로 다가왔다.

한참 우물거리던 입술은 참으로 어색하게, 겨우 말을 걸어온다.

“정보길드엔 언제 의뢰하셨답니까?”

살짝 속삭이는 말은 다소 뜬금없다 싶다. 그러나 완전히 ‘뭐냐’ 싶어지기 전, 무언가가 퍼득 떠올랐다.

데브도 정보길드 소속이지.

“…그, 저도 정보길드 사람이라 전달 수단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요. 그래서 알게 된 거니까… 의심은 말아 주십쇼.”

다만 지금 말해 주는 걸 보니 얘도 지금 전달받은 모양인데.

이 밀실에서 어떻게 전달받았대. 나는 그 지점을 궁금해하면서도 데브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여전히 나 대하기가 거북한지, 데브가 몸을 떨었다.

“내용도 안 봤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기어코 무언갈 건네긴 했다. 다소 문명이란 게 덜 느껴지는 두루마리였다. 재질이 나뭇잎이었으니 말 다 했다.

“…그.”

그러나 이것이 어쩌면 키포인트가 될 수 있다.

나는 다급히 두루마리를 펼쳤다. 알아볼 수 없는 글자와, 그 해석본이 딸려 나왔다.

“대체 뭔 얘길 나누나?”

“무슨 문제 있습니까?”

그리고 의아함을 느낀 버서커와 인퀴지터마저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다 읽은 두루마리와 해석본을 다시 말았다.

이거면 된다. 그러니까, 아마도.

“악마기사?”

“나, 나리…….”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곤 무언갈 추가로 말하려던 아크메이지의 곁에 섰다.

이것이 방해일 수도 있다거나 성주들에게 찍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아마 아닐 거란 판단이 더 앞섰다.

나는 나를 믿고 지르기로 했다.

“비류호는 죽어야 한다.”

아무렴 고구마 한 입 다음엔 사이다 한 모금이 국룰이다.

“자네……?”

“오.”

─그대는 누군데 다짜고짜…….

“매년 땅이 메마르는 게 싫다면, 그래야 할 거다.”

그러니 이 목 막히는 회의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저 사람들에게 비류호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던져 주도록 하자.

이 회의가 낸 결론은 결국, 자기네들 얻을 이익 없이 피해만 보긴 싫어서 내지른 핑계에 가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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