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흘러가지 않는다며 (8)
용사에, 분노의 그릇에, 자잘하지만 거슬리게 하긴 충분한 신의 개들까지.
명백한 포위망에 레비아탄은 당황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런 생각은 차마 할 수도 없다.
“계약 위반은 아니었습니다요?”
[감히……!]
처음, 엄청난 신성력의 덩어리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을 땐 그저 우연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두 번이나 자리를 옮겼음에도 정확히 그가 있는 방향을 쫓았을 땐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저 망할 것들은 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거다.
[인간 주제에……!]
그러나 그 원인이 다른 무엇도 아닌, 그가 이용해 먹고 내버릴 예정이었던 비천한 인간이었을 줄은 몰랐다.
지금껏 그 어떤 인간도 그가 강제한 계약의 허점을 뚫지 못했던 까닭이다.
애초에 계약을 강제해 가며 이용해 먹은 존재의 수가 적어, 표본의 양이 근소할지라도 그렇다.
단순한 만큼 가장 확실한 형태였는데, 어째서?
아니, 그보다 저 인간은 어떻게 그의 위치를 알았지? 계약 대상의 위치는 그조차도 이만큼 섬세하게 파악할 수 없건만, 어떻게.
저 망할 광신도들이 저놈을 살려 둔 것도 마찬가지다. 발견한 즉시 죽일 놈들이 어째서 이번은……!
“절대로, 살아 돌아가게 하진 않겠다……!”
“크하핫! 베르세르크도 함께한다. 전우만 즐기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심지어 목적했던 배신의 칼날까진 못되더라도 동료가 배반했다는 충격만은 선사할 수 있으리라 여겼건만, 그것도 영 실패한 듯하다.
레비아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포위망을 더욱 완벽하게 짜기 시작한 신의 개들과, 제게 서서히 다가오는 분노의 그릇을 보았다.
이건 위기다.
[하, 그릇 하나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머저리가!]
“나의 검에 승리를.”
“으하하하!! 대악마는 처음 사냥해 보는군!”
[내가 이대로 당할 줄 아느냐!]
“저 하늘에 영광을.”
“부디 베르세르크를 즐겁게 해라!”
위긴가?
[고작 너희 따위에게, 이 내가 당할 줄 알아!]
레비아탄은 본인이 떠올린 생각에 본인이 몸을 떨었다.
그는 결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고작 인간 하나로 인해 위험에 처했다니. 억울할 정도로 분해서 도무지 현실로 간주하기 싫단 말이다.
“저 악마에게 죽음을……!”
“간다!!”
하므로 레비아탄은 힘을 끌어올렸다.
왕의 권역도 아니고 물도 없어서 본신의 힘을 다 낼 수 없다는 사실은 잊었다. 대악마라도 단신으론 상대하기 힘든 존재가 용사와 분노의 그릇이며, 각각도 아니고 동시에 둘을 상대하게 된 상황이라는 것 또한 외면했다.
[나는 시기의 좌, 모비 딕이다─!]
퍼엉!
까만 마기에 물든 검과 묵색의 할버드가 그의 비단 자락과 부딪쳤다.
동시에 그저 대지였을 뿐인 자리에 간헐천처럼 솟아오른 물이 저 높은 하늘로까지 솟구쳤다.
구름보다도 더 위, 숨조차 희박할 공간에 유영하던 하늘고래가 크게 울었다.
* * *
나는 거꾸로 흐르는 폭포처럼 솟은 물과 사라진 악마, 갈음하듯 모습을 드러낸 하늘고래─아마도 모비 딕일─를 보며 조용히 사유했다.
왜 레이드를 뛰는 족족 적이 땅에 있지 않은지, 어쩌서 매번 내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기적을 행해야만 잡을 수 있는 구조인지 말이다.
‘레이드가 원래 그런 겁니다.’라고 하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하다.
보통 그런 레이드는 타격할 위치로 갈 수 있게 발판이라도 주든가, 적이 직접 내려온다고.
“막겠습니다!”
지금처럼 위에서 폭격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콰앙!
나는 모비 딕이 뿜어낸 물줄기를 금빛 막이 가로막는 걸 보았다. 인퀴지터를 선두로 한 사제 무리의 이적이었다.
“용사님의 부담을 덜어 드려!”
“신이시여, 저희에게 악에 맞설 용기를!”
처음엔 너무 많이 끌고 오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 보니 꽤 괜찮은 것 같다. 악마를 포위하여 말려 죽인다는 계획은 실패했어도 인퀴지터의 체력 소모는 확실히 덜 수 있을 듯하니까.
“위로 올라갔나. 저러면 때릴 수 없다! 내려와라!”
한편 버서커는 그런 소리나 내뱉으며 분개했다. 단순함과 별도로 나 또한 동의하는 바라 딴죽은 걸지 않겠다.
“역시 대악마였나……. 자네, 몸은 괜찮고?”
“예, 예. 아직까진 버틸 만합니다요.”
“그럼 다행이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러나 있게. 혹시라도 저 악마가 자네에게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넵.”
아크메이지의 경우는 데브의 안위를 챙긴 뒤 본격적으로 주문을 외웠다.
마력이 심상치 않게 모여드는 것이 레이드에 걸맞은 한 방을 준비하는 성싶다. 이 원정대의 마법사라곤 그녀 혼자뿐이라 파 에녹의 수성전 때 수준은 못되겠지만 말이다.
쾅!
그리고 물줄기가 끝내 멎었을 때. 나는 한계까지 끌어모은 봄바드를, 아크메이지는 작게 뭉친 벼락을 날렸다.
“…거리가 너무 멀군.”
그러나 상대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내 공격은 닿지도 않았고 아크메이지는 닿았을지언정 하나 마나 한 상태가 된 거다.
“더불어 너무 크네. 사정거리 안인 줄 알았건만, 아닌데도 저 정도로 보일 정도면…….”
아크메이지가 꼬집은 부분 역시 큰 문제였다.
저 정도 체급이면 사정거리 안이었어도 공격이 제대로 안 먹혔을 거다. 사람의 몸에 이쑤시개를 박는 수준이 아니라, 손 따는용 침을 박은 수준이니까.
“베르세르크도 마법 쓰고 싶다…….”
“크읏. 신성력으론 공격할 방도가 없습니다.”
하면 이대로 당하기만 해야 하나? 그건 싫은데.
나는 모비 딕을 타격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하늘고래가 또 한 번 물줄기를 쏘았을 때, 그것을 금빛 막이 막아 냈을 때. 한 가지 꾀를 떠올려 냈다.
저 막, 물리력이 있다면 발판으로 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저걸 발판으로 삼아 저놈이 있는 위까지 가면 괜찮지 않나?
“너.”
“이대론 소모전이… 혹시 저 부르셨습니까?”
나는 김치만두가 멀뚱히 저 자신을 가리키는 걸 보며 잠시 갈등에 사로잡혔다. 막상 말하려니 너무 무데뽀의 방법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맞는 것도 좀 싫다.
나는 어차피 캐붕은 아닐 거라 생각하며 해당 가설을 언어로 정제해 보았다.
듣고 있던 이들이 안면 근육으로 미쳤느냐고 질문을 던져 왔지만 정작 듣고 있는 김치만두의 눈엔 서서히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너무 먼 거리에 장막을 생성해 본 적은 없지만, 제가 같이 가면 될 겁니다!”
“너, 너무 위험합니다! 위로 올라가면 숨도 부족할 것인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인퀴지터는 그리 외치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물줄기를 쏘는 것에도 쿨타임이 필요한지 모비 딕은 잠깐 동안 침묵 중이다.
하려면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대악마의 체력보다 인간의 체력이 높다고 자부하긴 어려우니까.
“다만, 악마기사. 그 경우 악마기사께선 타격이…….”
“알 바 아니다.”
아, 물론 신성력막을 발판으로 삼을 경우 접촉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겠지. 그런데 고작 접촉 정도로 깎이는 피는 그리 많지 않아서.
오히려 신성력으로 빠질 체력보단 아까 말했던 산소 문제가 더 심각하지 않을까? 고산증이나.
설마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만 하나 싶지만.
“하면 올라갈 인원은…….”
“베르세르크는 반드시 간다!”
“그, 그렇다면 저희들도…….”
“메이지님은 어떻게 하셔야…….”
무엇보다도, 나 계속 위에 있을 거 아닌데?
“네놈과 네놈 그리고 나까지만 간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인퀴지터가 조금만 실수해도 추락사하는 게 해당 작전의 문제점인데. 또 데려가 봤자 고산증이든 추위든 뭐든 간에 비전투 손실이 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그냥 짐 덩어리가 될 뿐이니까.
“그건 너무 위험─!”
“가서, 놈을 추락시킨다.”
“……!”
그런 위험성을 계속 안고 싸우느니, 차라리 적을 지상으로 떨어트려 보는 게 더 낫지 않아?
날개를 자르든 압도적인 힘으로 위에서 아래로 충돌해 떨어트리든 방법은 찾아보면 있을 테니까. 실패하면 그냥 그대로 싸우는 거고.
“크하하핫! 전우 머리 좋다! 적이 위에 있다면 끌어내리면 그만이다!”
“그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게 가능하겠나?”
어쨌거나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도,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모르는 사제들이 멘붕을 시작했다.
반면 아크메이지는 현실성을 검토할 뿐 불가능을 논하진 않았다. 완전히 풀리지 않은 의심과 안전상의 이유로 뒤편에 물러나 있는 데브 역시 ‘또 저러네, 또’ 같은 얼굴이다.
“만일을 대비해 우리는 지상에 남는 것이 낫겠군.”
그래도 싸우는 건 사제단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끝내 허락이 떨어졌다.
뭐, 사실상 시간에 쫓겨 떠밀린 것에 가깝지만 아무튼 그렇다. 인퀴지터가 메이스를 바닥에 꽂았다.
“막 자체를 움직이는 것엔 아직 익숙치 않습니다. 뛰어야 하실 겁니다!”
“크핫, 상관없다!”
“하면 가겠습니다!”
인퀴지터가 메이스를 지팡이 삼아 짚은 채 허공에 발판을 만들었다. 본인 점프력을 고려한 건지 그렇게 높은 위치는 아니었다.
“오옷!”
그런데 이 정도 높이로 계단식처럼 이동하면 어느 세월에 저기까지 닿냐. 그 전에 신성력 다 닳는 거 아니야?
나는 보통 게임이었으면 스킵되었을 구간을 두고 흐린 눈을 했다. 내가 떠올린 계책이 과연 좋은 것이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장막을 밟은 순간, 나는 그 판단을 취소했다. 우리 김치만두는 똘똘한 만두였다.
터엉!
막이 우리를 위쪽으로 밀쳐 냈다. 막 자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으니, 조금만 움직여서 우리를 공중으로 띄운 것이다.
“흡!”
연이어 우리가 추락하기 직전 공중에 새로운 발판이 생겨났다. 딱 내가 고안한 모습이었다.
우리 세 사람이 점차 위로, 위로 움직였다.
부우우우!
그것에 위기감이라도 느낀 것인지, 모비 딕이 길게 울며 입안에 물을 끌어모았다. 말이 물이지, 마기를 줄기줄기 담고 있어 번쩍번쩍 빛이 나는 물 덩이였다.
“이, 이러면 막을 수 있을지가……!”
“정면 돌파인가! 좋다! 베르세르크는 버틸 수 있다!”
바닥의 막도 신경 써야 하는 마당에 위에서 쏟아지는 힘까지 막는 건 힘들 법하지. 버서커가 똥배짱 부리고 있긴 하지만 맨몸으로 저 공격을 버티는 건 솔직히 무리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 발판을 우후죽순 만들어 곱등이처럼 톡톡 뛰자니 고래가 포의 방향을 바꿔 가면 말짱 꽝이다.
보통 게임은 그런 상도덕 없는 행위를 안 하지만, 여긴 처음부터 도의를 지킨 적 없지 않은가.
하므로 나는 검을 치켜들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게 이미지화하기 편했다.
“일단 제가 어떻게든─.”
“무시해라.”
“예?”
“네가 할 일은, 디딜 땅을 만드는 것이다.”
아까 마력을 좀 쓰긴 했지만, 모비 딕이 쿨타임 채우는 동안 나도 좀 회복해서 말이다.
“뭐 하려는 건가?”
“눈치가 있다면 움직이지.”
“이, 이쪽으로 오십시오!”
나는 대삼림에서 썼던 기술의 감각을 되새기며, 검 끝을 시작으로 마력의 선을 사방에 뻗었다. 목표는 선으로 이뤄진 돔이다.
“전우여, 이걸로 어쩌려는 건가?”
“악마기사, 이건…….”
만질 생각 말고 키나 좀 낮춰, 이 양반아. 나는 인퀴지터가 버서커를 끌고 내 뒤에 딱 붙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력을 천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바람개비처럼 선들이 돌기 시작했다.
콰아앙!
또한 그 선들이 가속도로 인해 꼭 반구처럼 보이게 되었을 때, 모비 딕이 포를 쏘았다.
내 마력과 고래의 물대포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드릴로 물대포를 뚫는, 혹은 버티는 격이었다.
“……!”
“오오!”
“악마기사, 이건……!”
콰과과과곽!
그보다 이거, 들려오는 소리가 꼭 옛 방식의 자동 세차랑 비슷하네. 고압수를 쏘고 비눗물을 뿌린 후 양옆과 위를 솔로 싹 훑고 가던 순간이면 꼭 이런 소리가 났는데.
으득.
와중에 팔은 팔대로 아프다.
나는 안쪽으로도 기어이 튄 물방울의 존재를 느끼며 이를 강하게 지르물었다. 몸이 젖는 건 둘째 치고 검을 든 팔이 너무 아파서, 신음을 삼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뭐, 몸 전체에, 아니 지금 쏘아지는 모든 압력을 팔로 견디고 있는 셈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음! 이런 거면 나도 할 수 있다! 다음엔 내가 하겠다!”
“이런, 이런 식이 가능할 줄은…….”
그래도 컨셉 자존심이 있지. 약한 소리 하거나 무너지면 그렇잖아. 이런 식으로 방어하는 것도 가능하단 게 밝혀진 마당인데.
하여 나는 꾸역꾸역 버텼고, 끝내 물줄기가 끝났다.
팡!
산산조각 나듯 사방으로 흩뿌려진 마력 사이로 빛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비산했다. 희부연 담천을 배경 삼아 표산하는 검은 조각과 반짝이는 수적들은 마치 보석인 양했다.
“해냈습니다!”
“오오, 아래도 멀쩡하다!”
그 사실을 상기된 얼굴의 인퀴지터가 다시 한번 못 박았다. 손 그늘로 눈에 빛이 닿길 차단한 버서커는 아래편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밑 쪽은 별 타격도 없는 듯하다. 아마 우리가 물줄기를 다 갈아 버려서 그런 거겠지만.
“계속 간다.”
하면 어서 가자고! 이 패턴 너무 팔 아파서 세 번 이상은 갈아 버릴 자신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