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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56화 (156/389)

156화 흘러가지 않는다며 (6)

“…뭐?”

“엥.”

“…….”

“하, 하하핫.”

이건, 이건 되는구나. 이건 악마가 내게 말해 준 정보도, 그 녀석과 접촉했다는 정보도 아니니까.

다만 내가 스스로 알아낸 정보니까 가능하구나.

“흐.”

그것이 어찌나 우습고 기꺼운지.

데스브링거는 제 찢겨진 그림자의 위치를 여실히 느끼며 킥킥 웃었다. 그 잘난 악마 새끼 면상에 엿을 날릴 수 있다니 너무 즐거웠다.

비록 그러기 위해선 저들의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건 즐거운 거였다.

“방금도 말했지만 믿는 건 자유입니다요.”

저와 계약한 악마, 라는 정보는 건넬 수 없다. 그림자를 붙인 덕에 아는 거라는 말도 아마 안 될 거다. 그림자로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건 만남이 선행되었단 뜻이니까.

대악마란 정보 자체도 아마 계약 위반일 확률이 높다. 처음 대악마의 위치라고 말하려던 때 피가 울컥 솟아 나왔으니 거의 확실하다.

단번에 죽지 않은 건 다행이나, 말할 수 없는 부분임은 명확한 셈이다.

“함정입니다.”

“아직 모르네. 그 악마가 누군가?”

그런 이유로 이것도 대답할 수 없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침묵도 나름의 대답으로 취급하는지 피가 좀더 올라왔다.

속이 어질어질하고, 눈의 핏줄도 터졌는지 눈앞이 붉어졌다.

“너!”

“…질문은 그만하도록 하지요.”

아, 가능하면 끝까지 참고 싶었는데.

그는 웩, 하고 핏덩이를 토해 냈다. “사냥꾼아, 괜찮나?” 베르세르크가 후다닥 달려와 그를 걱정해 주었다.

“설마 저것을 믿으실 겁니까?”

“전… 믿고 싶습니다.”

“악마의 꾐일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만.”

반면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의 경우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손을 들어 주려 했다. 진짜 고마우면서도 참 너무 믿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가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러울 정도다. 제가 진짜 악마에게 넘어갔으면 어쩌려고.

“무리하지 마라. 더 쉬어야 할 것 같다.”

“전, 전 괜찮습니다요…….”

굳이 따지자면 온몸을 묶은 쪽이 더 고생스러운…….

촤륵.

온몸을 옥죄던 끈이 단번에 잘려 나갔다. 그로 인해 든 해방감에 데스브링거의 눈이 커졌다. 베르세르크가 끊어 줬다기엔 그녀는 줄을 잡는 기색이 없었다.

“자네…….”

“아직 논의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하면, 줄을 끊어 준 것은.

“독단은……!”

그 사람은.

“으하핫, 전우여, 역시 너도 못 참았던 거구나!”

“악마기사!”

데스브링거는 낄낄거리는 베르세르크의 웃음소리와 경악하는 신전 사람들, 화색하는 인퀴지터나 아크메이지를 지나쳐 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보다도 더 묵묵하게 자리를 뜨는 이가 있었다.

“근데 어딜 가나?”

“가게 내버려 두게. 자네들도 너무 뭐라 하지 말고.”

악마기사였다.

“…나리.”

데스브링거는 그 광경에 잠시 미뤄 두었던 의구심이 몰려왔다.

악마기사가 그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 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자신이 기절하기 전 보았던 광경은 정말 그의 착각이기만 하고?

세상의 모든 슬픔과 설움과 애달픔을 모아, 그 위에 밀랍만을 부어 굳혀 낸 인형처럼. 그러나 세월에 녹고 깨져 부스러진 조각처럼.

오직 그림자에 담겨 퀴퀴하게 영락한 얼굴은 진정 당신의 것이었나.

쿵.

그러나 이미 문은 닫혔고, 대답을 구할 곳은 없다. 언제나처럼.

* * *

“출발은 네 몸 상태가 좀 나은 뒤에 하겠다.”

객혈한 것을 고려해, 데스브링거는 인퀴지터의 감시하에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 끝에 나온 결과는 내상으로 인해 최소 하루는 요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력은… 아.”

“뺀질이 놈, 지금 받으면 오히려 독이 될 거다. 약이나 먹어라.”

그는 신성력에 의해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리고 신전이란 곳이 온갖 구더기 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불편함을 깨달았다.

뭐, 전자야 악마기사의 모습을 반추해도 느낄 수 있는 지점이지만, 대상이 제가 되니 더 잘 느껴졌다, 이거다. 후자는… 악마기사가 지금껏 어떻게 버텨 왔나 싶은 생각만 들고.

“하루나 늦어지면… 기사 나리가 뭐라 하실 것 같은뎁쇼.”

“난 모른다. 아까 나가신 후 뵌 적 없으니까. 신전에 돌아오셨단 이야기도 들은 적 없고.”

한데 악마기사가 아직도 신전으로 안 돌아왔다라.

평소 같았으면 악마에 미쳐 닦달했을 양반이 내외하고 있다니 조금 웃기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그것부터 따지려면 먼저 그를 살려 둔 것부터 이야기해야겠지만.

촤르륵.

그는 명목상으로만 채운 족쇄─그것마저도 한 손에 채웠을 뿐인─와, 그 족쇄로부터 이어지는 사슬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인퀴지터가 가축의 목줄을 잡듯 사슬을 잡고 있는 게 보인다. 시큰둥한 표정이 언제나처럼 멍청해 보였다.

“이봐요, 샌님.”

“뭐냐.”

그래도 당장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저 샌님밖에 없다. 그는 지나가는 것처럼 질문을 내놓았다.

“나리는… 나리는 왜 절 살려 뒀을까요?”

겉보기에 그는 스스로 선택해 악마계약자가 된 것처럼 보일 터이다. 선택지 없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존재는 아니니까.

하면 결국 그는 기사 나리가 용납할 수 없는 부류라는 건데.

“왜, 왜 저를…….”

그는 악마기사가 그 순간에 지었던 표정을 재차 상기했다. 낙루 한 점 없이, 일그러짐 한 조각 없이 한순간 매몰되는 유적처럼 무너지던 얼굴을 떠올렸다.

“별걸 다 묻는군. 그분도 네놈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서가 아니겠나.”

아,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걸 믿을 수 없을 뿐이지.

“…허. 제가 어떤 놈인데요?”

그는 멍하니 되물었다.

그가 어떤 짓을 저질러 왔는지 알면 그들은 절대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을 텐데. 스스로를 항한 비웃음은 덤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그 양반이─.”

“뻔뻔스럽고, 멍청하고, 뺀질거리고, 무례한 데다가 비밀까지 많은 놈이다.”

“어이구, 그러십니까. 근데 그걸로 되겠…….”

“그렇지만 눈치가 빨라 중요한 정보를 쉽게 알아내고, 세상사 아는 것이 많아 사리에 밝으며, 사람을 분석하는 데 뛰어나 우리가 놓치는 많은 것을 잡아낸다. 그 공은 그 단점들로 가려질 게 아니지.”

“되겠…….”

“아, 눈에 띄진 않지만 노숙 준비나 사냥, 요리 등의 행위에도 탁월하여 여정에 가장 큰 보탬을 하고 있다. 아마 네가 없었다면 우리는 더 많은 고초를 겪으며 이 땅을 돌아다녀야 했을 터. 그 역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활약이다.”

“…어.”

“자, 어떠냐. 아직 네놈만은 못하지만, 나도 네놈을 본받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도 너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 뭐냐 그 표정은?”

분명, 그러해야 하는데.

“무슨.”

지금 그가 들은 말들은 대체 뭐지? 지금 저 망할 샌님이 뭐라고 떠든 거지?

사, 사리에 밝아? 놓치는 것들을 잡아내? 도움이 돼?

이, 이, 이 무슨.

“열이라도 오른 거냐? 얼굴이─.”

“대, 댁은 대체 낯가죽이 뭐로 되어 있기에 그런 말을 그냥 합니까!!”

그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열이 흠뻑 오른 얼굴을 서둘러 가렸다. 저 미친 샌님은 하여간 부끄러움이란 게 없어서……!

“뭐라는 거냐! 내 낯가죽은 평범하다! 그리고 열이 오른 거라면 어서 보여라. 내상이 도진 걸 수도 있다!”

“저, 저리 가요!!”

미친, 진짜 미친.

입바른 말이라고 해 버리면 차라리 코웃음 치며 넘기기라도 할 텐데. 저 융통성 없다시피한 양반이 빈말을 할 리가 있나.

저건 결국 순도 100%의 진심에서 비롯된 말일 거다. 그래서 더 창피했다.

“얼굴 좀 보이라니까! 상태를 봐야 진단할 거 아닌가!”

“저리 가라고요!”

데스브링거는 이 순간에도 눈치 없이 덤벼드는 이를 피해 침대에 그대로 엎어졌다. 샌님은 그걸 또 억지로 보려 들었지만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질 수 없었다.

“댁은 눈치 좀 탑재할 수 없어요?!”

“나, 나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 왜 나오나!”

망할 샌님. 우리 둘이 싸운 건 생각도 안 나나. 그가 일방적으로 폭언을 하고 자리를 그대로 피하기까지 했는데, 그건 기억도 안 하는 거냐고.

“진짜 멍청한 샌님이……!”

“이익! 기껏 성심성의를 다해 대답해 줬더니!”

너무 성심성의를 다해도 너무 다했다. 데스브링거는 도저히 가시지 않는 열기를 베개로 숨기며 숨을 들이켰다.

창피한데, 창피한데도 기분은 어딘가 날아갈듯 좋아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됐다! 다 필요 없다!”

그사이 인퀴지터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나 받아라, 망종!”

그러곤 무언가를 그의 머리 위로 던졌다. 딱콩. 작고 단단한 알갱이들이 든 주머니가 머리를 두드렸다. 아팠다.

“왜 때리……!”

스르륵. 입구가 열린 주머니가 내용물을 토해 냈다. 그 사이로 흘러나온 건 속에 꽃잎이 들어 있는 투명한 구슬이다. 만지면 끈적한 것이 묻어나는 게 사탕인가 싶다.

뜬금없는 존재의 등장에 머리가 멍해졌다.

“이건…….”

“사과의 선물이다! 내가 너에게 보낸 차별의 시선은 그 무엇으로도 사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마땅히 해야 하는 게 사과이기에 준비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샌님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미안하다! 네가 경멸받았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서. 너의 사정을 모르는 주제에 멋대로 비밀을 토로할 것을 강요해서.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면서 범죄자라 취급해서! 다 미안하다고! 알았나?!”

누가 용사님 아니랄까 봐, 정말 멍청할 정도로 우직한 인간이었다.

“그럼 난 가겠다!”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은 그마저 부끄러워질 만큼, 너무도 올곧고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신이 당신을 선택한 이유를 절절히 알 것 같다.

덜컥!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데스브링거는 사탕이 든 주머니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좁쌀만 하게 뇌까렸다.

“만약 내가.”

“……?”

“만약 내가, 정말 범죄자라면. 그땐 어쩌실 겁니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을 듣고 멈춘 샌님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땐…….”

그리고.

“도와주겠다. 네가 속죄할 수 있도록.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예전과 사뭇 다른 뉘앙스의 답이 돌아왔다.

“…감방에 처넣지 않고요?”

“날 뭘로 보고! 예전에, 아직 생각이 짧았을 때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상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게 있을 수도 있음을 배웠으니까!”

데스브링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문 앞에 서 있는 붉은 머리 사제가 보였다.

“더구나 내가 아는 네놈은 법과 규칙을 살짝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사적 제재에 찬성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를 녀석은 아니다. 그러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터. 그런 네놈에게 죄를 다그치며 벌할 생각은 없다!”

“그럼…….”

“물론 용서한단 건 아니다! 피해자도 아닌 내게 용서할 자격은 없으니까. 다만, 나는 피해 입었던 자들을 대신하여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것이며, 그렇기에 너의 속죄를 도울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옳은 일이니까!”

신록의 눈동자가 싱그럽게 반짝였다. 악마가 속삭였던 것과 비슷한 결의 말임에도 불쾌하지 않은 건 아마 그 눈동자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나로 인해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어도? 그때도 이해한다고 해 줄 겁니까?”

“네가 의도하거나 참여하거나, 바랐던 일인가?”

“그건, 아니지만…….”

“그럼 뭐가 문제지?”

“나 때문에… 내가 원인이 돼서 그런 거라면…….”

“허, 이해 안 가는 말은 하지 마라! 네가 개입하지 않은 일이 왜 네 책임이 되는가!”

진정 선한 사람들이 하는 쓴소리는, 얄미움마저 들지 않는다.

그것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길임을 얼마든지 알 수 있으니까.

“내가, 내가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안 죽었을 사람들이니까…….”

“멍청한 소리 마라! 그런 논리면 악법에 피해받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성주에게 대항한 자들도 죄인인가?! 그들로 인해 싸움이 크게 번졌을 텐데!”

“…그건,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아니, 비슷할 거다. 난 네놈이 자의로 움직이거든, 그것은 언제나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함일 것이라 생각하니까!”

“……!”

“과격한 방식으로 저항하던 과정에서 휘말린 피해자가 인 거라면, 상처 입은 자들에게 사죄하라. 선악을 떠나 그들에게 너는 가해자가 맞다. 그릇된 방식으로 대항했다가 질서를 어지럽혀 고통받은 자들이 나왔다면, 그들에게도 사과해라. 그것 또한 네 잘못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단 하나. 단 한 가지 사실 앞에선 떳떳하게 가슴을 펴라. 너는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았으며, 방법과 방식이 틀렸을 순 있어도 부조리에 분노했노라고.”

그는 불의를 넘길 수 없어서 나선 게 아니었다.

단순한 복수심으로 나섰던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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