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모든 것이 순리대로 (9)
나는 X됐음의 기운을 강력하게 인지한 채 신전으로 돌아갔다. 데브가 탈주 안 하고 그나마 함께해 준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사실 하나도 다행이지 않지만.
“일찍 돌아왔군.”
아크메이지님, 제발 저 조련할 게 아니라 얘부터 케어해 주세요. 자존감 Min 설정은 내 컨셉에 있는 건데 얘는 또 왜 이래!!
“너!”
“자네 뺨이… 괜찮나?”
“엥?”
다행히 데브의 뺨을 일행들은 놓치지 않았다. 특히 인퀴지터의 반응이 제일 강력했다.
“그, 어, 도둑질하다 걸렸나?!”
야.
“…….”
고기만두 너는 왜 가만히 있어. 평소처럼 ‘장난해요, 샌님?’ 내지 ‘댁은 날 뭘로 보는 겁니까?’ 이래야 하는 거 아니야?!
“인퀴지터.”
“아, 그. 전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인퀴지터.”
“…죄송합니다.”
“어린 사냥꾼아, 누구한테 맞았나?”
“…별거 아닙니다요.”
“아, 맞은 만큼 돌려줬나?”
인퀴지터가 아크메이지에게 혼나고, 버서커가 데브에게 말을 툭툭 걸었다. 데브는 부정도 긍정도 안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일단 치료부터 받게. 인퀴지터, 부탁합니다. 그리고 악마기사, 자네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아나?”
그 태도에 아크메이지는 걱정을 한가득 품은 채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가장 받고 싶던 질문이자,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다.
컨셉 붕괴 회피와 구체적인 설명의 절충안이 솔직히 없거든.
“본인을 두고 내게 묻는 건 어디 절차지?”
그렇지만 어떻게든 대답을 해 줘야 해! 데브에게 최대한 부정적 효과를 안 주는 방향으로!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 냈다.
“이이가 말할 것 같지 않아서 그렇네.”
아, 그래! 여기서 중요한 건 데브 잘못이 아님을 알리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하면 죄지은 자에게 가서 물어라. 저놈을 왜 때렸는지.”
이러면 최소한 인퀴지터의 오해는 풀릴 거다. 치료야 이미 해 주고 있고.
“죄지은 자라니…….”
“뭐야, 상대 안 죽였나?”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자네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별거 아니라 했잖습니까. 그냥… 휘말린 것뿐이에요. 그보다 저 피곤한데, 쉬어도 됩니까?”
“아아, 그러게. 피곤하면 쉬어야지.”
“일단 치료는 다 됐다. 부종은 곧 가라앉을 테니 신경 안 써도 된다.”
고기만두는 인퀴지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숙소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제 방입니까?”
“맞네.”
그러곤 본인 방을 찾아 쏙 들어갔다. 거실 비슷한 곳에 남겨진 일행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다만 목소리를 갈음하듯 버서커는 물음표를, 나머지 둘은 식은땀을 하나씩 달기 시작한다.
나? 나도 당연히 식은땀을 흘렸다. 속으로.
“그, 어쩌죠. 제가 너무 심한 말을.”
“인퀴지터…….”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나중에 사과하십시오.”
“네…….”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군. 허 참. 대체 무슨 일에 휘말렸기에.”
“그냥 양아치랑 시비 붙은 거 아닌가?”
“으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손에 망토가 들려 있었으니……. 녹발을 싫어한다곤 들었지만 설마 상관도 없는 여행자를 폭행할 정도였나?”
그래도 이성의 아크메이지는 곧잘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애석해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확인, 경비대를 쪼아야겠다며 말을 마쳤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놈, 잡히면 척추를 부숴 주겠다.”
“그러면 안 되네. 경비대에 넘겨야지, 사적 보복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베르세르크는 그런 거 모른다.”
반면 버서커는 물리적 복수를 다짐해 주었다. 내 입장에선 다소 말리고 싶은 부분이었다.
아크메이지의 말마따나 사적 보복은 옳은 게 아니며, 데브가 그놈에게 맞아 준 건 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과거가 발목을 잡아서였을 것이므로.
“저…….”
“왜 그러십니까, 인퀴지터?”
“저희 준비한 후 소성주님을 뵈러 가야 하지 않습니까……?”
“아.”
“그, 근데 저놈을 그냥 두고 가도 될지…….”
아크메이지가 눈을 사뭇 떨며 우리 면면을 살폈다. 그녀도 데브를 혼자 두고 가긴 싫은 모양이다.
“음.”
근데 우리 파티 면면이 어디 남아서 데브를 챙겨 줄 인성인가?
내 컨셉의 경우 위로는커녕 각각 방에 처박혀서 각자만의 고민을 곱씹을 성정이고, 인퀴지터는 이런 인간관계 자체가 서툴다. 아까 걱정하는 말을 못 꺼내고 핀잔부터 내놓은 게 그 증거다.
하면 버서커? 버서커가 의외로 잘 챙겨 주긴 하는데… 그, 음…….
“으음…….”
아크메이지도 그 사실을 깨닫고 이마를 짚었다.
우리 셋만 소성주에게 보냈다간 세계가 폭발할 걸 알아, 차마 본인이 남겠노라 할 수도 없는 사람의 침음이었다.
“한 사람이 빠졌다고 이렇게 사회성이…….”
죄, 죄송합니다. 제가 컨셉질만 안 했어도 이 모양 이 꼴은 안 났을 텐데……. 아니, 근데 이건 내 잘못만이 아니라 당신들도.
“베르세르크, 이따가… 자네가, 음. 남아서 저이를…….”
“음? 아! 어린 사냥꾼의 기력을 회복시키면 되는 건가??”
“…제발 웨폰마스터 좀 불러 주게.”
“하핫! 언니까지 부를 일 아니다! 걱정 마라! 내가 알아서 다 한다!”
아, 그래. 웨폰마스터도 있었지. 정작 나는 파 에녹 이후로 그녀를 한 번도 못 봤지만.
나는 꽤 꿀팁이었을 수도 있던 것을 남기고 간 이를 떠올렸다. 젠장. 아직도 뒷부분 못 들었다. 분하다.
“이게 맞는지…….”
어쨌거나 남을 사람과 갈 사람이 정해졌다.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품은 채 고속으로 샤워를 마친 후─고속이라곤 하나 비린내란 말을 들은 게 너무 마음에 걸려서 빡빡 씻었다─소성주가 있다는 성으로 향했다.
* * *
“음. 기분 좋아지는 덴 역시 먹을 게 최고다!”
한편, 남겨진 베르세르크는 자신이 어린 사냥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역시 답은 하나뿐이었다. 기분을 끌어올려 주거나 감정을 진솔하게 쏟아 내도록 도와주는 술과, 허한 속을 채워 줄 맛있는 음식이었다.
마침 그녀에겐 맛있는 음식도 있었다. 비록 식었지만, 그건 사제에게 데워 달라 부탁하면 될 일이다.
“아니다, 차라리 그 요리사한테 새걸 달라고 하는 게 낫겠다.”
절대로, 그 가게 주인장이 만든 다른 음식을 그녀가 먹고 싶어서 선정한 방법이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베르세르크는 겅중겅중 그 가게로 달려갔다.
“이봐, 주인장!”
“예, 예?!”
시간이 한 시간도 채 흐르지 않은지라 테이블은 아직 한 개밖에 차 있지 않으니, 이 정도면 배달을 요청해도 될 것이다.
“신전까지 배달 되나?”
“신, 신전 말입니까? 신전이라면 물론 해 드립니다만…….”
“그럼 음식 좀 부탁한다! 가격 상관없이 여기서 제일 맛있는 고기 요리로! 아, 달달한 것도 있으면 그것도 줘라! 어린 사냥꾼은 단것을 좋아한다.”
베르세르크는 음식을 대충 주문하며 호쾌하게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금화와 은화가 달그락거렸다.
저번에 다리를 부쉈던 것처럼 그녀가 엮일 사건 사고를 대비해 모아 둔 돈이었다. 그녀가 직접 모을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언니가 닦달하여 모은 것이지만.
“너, 너무 많습니다.”
“받아라! 많다면 많은 만큼 더 맛있게 해라!”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돈이 많이 투입될수록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만큼은 안다.
베르세르크는 주인장의 거절에도 동화와 은화를 한가득 쥐어 주었다.
“내 친구가 슬픔을 떨치고 다시 웃을 정도의 맛으로!”
“……! 네!”
그럼 이걸로 음식은 되었다. 그녀는 다시 신전으로 돌아갔다. 사제에게 음식이 오면 그들에게 전해 달라는 당부 역시 잊지 않았다.
그녀는 어지간한 건 다 넘기는 호인이지만, 허락 없이 제 음식이 남에게 넘어가는 꼴만큼은 못 봤다.
“그럼 이제 해야 할 건…….”
음식이 오는 동안 그냥 기다리나? 그건 좀 그런데. 그렇다고 어린 사냥꾼에게 간다?
그녀는 아까 보았던 어린 사냥꾼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피곤해 보였다. 그런 얼굴은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할 게 없다…….”
하면 음식이 오는 동안 가만히 있나? 그건 싫은데.
그렇다고 수련이라도 하자니, 그럴 의욕이 안 났다. 이게 다 어린 사냥꾼 때문이었다.
“으잉.”
함께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 다니는 동료들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반반머리는 저릿저릿할 정도로 강하고, 붉은머리는 대련 상대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재밌던 까닭이다.
거기에 늙은이는 약하지만 언니가 생각나서 좋았고, 어린 사냥꾼은 그냥 마음에 들었다.
특히 언제나 문제를 일으켰던 그녀의 어줍잖은 말주변을 채워 주는 솜씨는 정말 최고였다. 실력에 비해 자신감이 없는 부분은 좀 웃기지만, 그래도 싸우지 말란 말에 어느 정도 어울려 줄 만큼 기꺼웠단 소리다.
그렇기에 그 어린것이 축 처져 있는 지금, 그녀도 별 힘이 나지 않았다. 베르세르크는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아!”
다행히,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척추를 접어 주고 오면 된다!”
어린 사냥꾼에게 한 대를 먹였다던 그 자식을 찾아 예고한 대로 척추를 접어 주면 된다. 어린 사냥꾼도 분명 좋아할 터였다.
그게 맞을까?
“언니?”
정말 그가 좋아할까?
그러나 그녀의 걸음은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로 인해 가로막혀 버렸다.
“좋아하지 않겠나? 베르세르크는 좋아할 거다.”
나랑은 의견이 좀 다른걸.
“언니는 그가 싫어할 거라 생각하나?”
너도 사실은 알고 있잖니.
“…베르세르크는 모른다.”
정말로?
“베르세르크는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눈을 껌뻑껌뻑 움직였다. 목구멍 안쪽이 뜨거웠다. 이유는 몰랐다.
“베르세르크는…….”
넌 이미 알고 있잖아.
그녀는, 이유를 몰랐다.
“귀찮아졌다.”
‘베르세르크’는 몰라야 했다.
“언니가 알아서 해라.”
논쟁마저도 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언니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녀보다 한참은 작은, 소복이 쌓인 눈을 핏물로 적시는 이를 외면했다.
“베르세르크는 잘 거다.”
아직은, 아직은 직시하고 싶지 않다. 아직은 좀 더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작게 꽁지 했던 머리카락을 풀었다.
“…저번 일로 자극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곧, ‘웨폰마스터’가 눈을 떴다.
“아직은 무력이, 너머의 경지가 급하지 않단 걸까?”
그녀는 꽁지를 풀어도 목만 겨우 덮을 뿐, 찰랑거리진 못하는 백금발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히고 무기를 다루며 변형된 손가락은 촉감마저 무디다.
“하지만 동생아, 그래선 안 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진짜’는 가질 수 없던 손이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일단 지금 당면한 일부터 해치우기로 했다. 오랫동안 품어 온 고민은 하루 이틀로 해결될 게 아니니 마땅한 선택이었다.
하여 그녀는 식탁을 정리하고, 곧 올 음식을 대비해 수저와 그릇을 옮겨 두고, 어린 사냥꾼이 좋아하던 것 같은 간식거리를 추가로 사 왔다.
그리고 음식들이 막 도착했을 때.
똑똑.
그녀는 방문을 두드렸다.
“자나요?”
잔다면 조금 곤란해졌을까. 그러나 잔다면 억지로 깨우기보다 계속 재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실례 좀 할게요.”
그렇지만 자지 않고 그냥 침묵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녀는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암습을 전문으로 하는 자라 그런지 자는 순간의 호흡도, 평상시의 호흡도 고르기 짝이 없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기척만으론 상대가 자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런.”
그러나 정작 문을 열었을 때 보인 것은 결코 좋은 형상이 아니었으니.
“커억!”
자면서 스스로 목을 조르는 건 대체 무엇이라 봐야 할까?
“일어나라, 어린 사냥꾼아!”
적어도 확실한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란 것이다.
“어린 사냥꾼아!!”
차분함의 색을 띠던 호박색이 한달음에 절박함으로 변했다.
* * *
“사람들이 슬슬 잊을 시기가 됐다고 생각해서 불러들인 거지? 이번엔 우리들을 처리하려고!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드디어 도착한 성 앞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중심에는 아까 데브의 뺨에 주먹을 갈긴─것으로 추정되는─이가 서 있다.
“난 분명 봤어! 분명 봤다고!”
여기서 저놈이 우리 말랑한 고기만두를 때렸다고 고자질하면 캐붕이겠지? 그래, 알아. 아는데…….
아, 한 대만 더 치고 싶다.
“농성을 하는가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위 내용은 다소 석연찮지만…….”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기세를 싣고 봐서 그런가. 상대가 말하다 말고 이쪽으로 시선을 잠깐 돌렸다가 그대로 굳었다.
가장 언성이 크던 이가 멈추니 다른 사람들도 의아해져서 내 쪽을 보았다. 착하게도 다들 혀를 멈춰 주었다.
“저, 아크메이지님. 저분들이 저희를 보며 조용히 하시는데, 혹시 문제가 생긴 겁니까?”
“…시끄러울까 봐 배려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크메이지는 내가 원인임을 대충 눈치챈 듯 싶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기야 ‘뒤에 있는 악마기사 보고 쫄아서 입 다무는 겁니다’란 말은 저들을 위해서도 할 말이 아니긴 했다.
“어찌 오셨는지…….”
“신전에서 사절을 보내지 않았나?”
“아! 그분들이시군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쪽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각설하고, 조용히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집사가 마중 나올 때쯤, 마지막으로 시위자들을 돌아보곤─완전히 사적인 이유의 협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고기만두가 다쳤잖는가─일행을 따라 성에 들어갔다.
땅이 메마르는 시기인 것치고 꽃과 나무가 풍성하게 자란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성 바깥에 있는 바싹 마른 풀잎들과 비교하면 기이할 정도로 생기 넘치는 화원이었다.
“마법일까요?”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만…….”
아까 식사했던 가게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거든, 이것도 소성주의 공일지 모르겠다. 그가 왔다 가면 밭이 생생해졌다고 했으니까.
“소성주님께서 직접 키우신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그때 마중 나왔던 집사가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소성주가 소일거리로 온갖 식물을 기르는데, 그의 손만 닿으면 이다지도 시푸르게 자란다는 이야기였다. 식당 주인이 했던 말과 비슷했다.
“재능……?”
“이건 재능으로 설명될 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쩐다. 저런 능력이면 조경 기사 취득하고 농장 차리고 어찌저찌해서 돈 쓸어담는 기업 하나 뚝딱 만들 수 있을 텐데.
다육이 안 죽이고 방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 수 있을 텐데!
나는 업계 동료들 사이에서 죽음의 손으로 불리는 내 처지를 떠올리고, 방 한편에 방울토마토 놓고 신선하게 따 먹는다던 동료를 떠올렸다.
에드니엄의 소성주란 사람도 그게 가능하겠지. 하. 부럽다. 부럽다!!
“내 이름에 너무 금칠하는 것 아닌가?”
“소성주님.”
남의 재능을 축하해 주지 못할 망정 시샘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었을까.
내 질투의 누아르 하트가 까맣게 빛날 즈음, 누군가가 접근해 왔다. 입이 떡 벌어지게 생긴 미인이었다.
난 몬타타 섬의 무법자가 이 세계관 외모의 끝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술 더 뜨는 인간이 있던 거다.
“에드니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에드니엄의 레온입니다.”
와, 진짜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나는 샘내기를 관두고─애초에 장난이었다─그의 인사를 받았다.
갑자기 간지러워진 오른팔은 무시했다.
“안녕하십니까, 소성주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레온 소성주님.”
아, 참고로 인사를 받았다곤 하지만, 내가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가 받았단 거지.
“저야말로 선택받은 용사님과 마탑의 고명한 대현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뒤에서 침묵을 지켰다. 묵례도 굳이 하지 않았다.
지금껏 한 번도 해 본 적 없거니와, 그렇게 해도 시비 걸어오는 사람 하나 없었기에 별 상관 없었다.
“그는 악마기사입니다.”
“아, 들어 본 적 있습니다. 악마도살자로 이름 높으신 모험가시지요. 영광입니다.”
한데…….
“비린내가…….”
“예?”
“아닙니다. 환영합니다.”
나는 그가 중얼거린 말─바람 소리에 가깝도록 속삭여서 들리진 않았지만─의 입모양을 속으로 따라 그려 봤다.
비린내……?
비린내?
나 아직도 냄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