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모든 것이 순리대로 (8)
“전우여, 네 입맛이 이상한 게 아닌가? 이게 맛없을 리 없는데.”
나도 사실 맛있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버서커 이 자식이?
“네놈의 한심함과는 어울리나 보지.”
아 몰라. 사장님의 말 한마디로 입맛 버린 건 사실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나는 이게 주인장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부러 싸가지를 부렸다. 아무렴 나라고 항상 좋은 사람만 되진 못했다.
나도 팔은 안으로 굽는 사람이다.
드륵.
“…자네도 가나?”
“그, 음. 말 보러 가겠습니다요.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조금 어정쩡해진 데브도 결국 따라서 일어섰다. 내 덕에 주변인들은 그가 자리 뜨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충 내 뒷바라지 하러 가려니 여기는 듯하다.
젠장. 다행인데 뭔가 기분 나쁘네.
“밥은 다 먹고 가라, 어린 사냥꾼아.”
“괜찮습니다요.”
나는 데브가 반 정도 비운 그릇을 내버려 두고 나오는 것까지 확인했다.
물론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본 건 아니고, 기척으로 안 사실이다. 이미 가게를 나와 말이 있던 쪽으로 가는 내가, 반 박자 늦게 가게를 나오는 데브를 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컨셉이 뒤돌아볼 위인이냐면 그것도 아니었고.
“젠장, 말이 여섯 마리잖아.”
“어떤 부자가 저기에…….”
“심부름꾼 하나만 있는 건가?”
“아서. 아까 마법사가 마법을 걸고 갔다고.”
그렇게 데브가 여섯 걸음 뒤쪽에서 잘 따라오고 있음을 확인하며 걸었을까.
나는 우리가 공터에 둔 말을 두고 눈독 들이는 이들을 발견했다. 공터로 가는 길목에서 서서 주절거리고 있는지라 내가 원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꺼져라.”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갈 텐데, 그렇게 길을 막듯이 서 있으면 내가 말을 걸어야 하잖아.
나는 그것에 살짝 불평하며 목소리는 최대한 음산하게 긁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넌 뭐냐─.”라고 외치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나와 눈을 마주했다.
“기, 기, 기사.”
“죄, 죄송합니다!”
“저, 저흰 절대로 기사님의 말을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퍽이나 그랬겠다. 눈에서 침이 흐를 기센데.
“죄송합니다!”
그러나 귀찮게 일로 키울 생각은 없다. 나는 그것들이 도망치는 걸 내버려 두고 말에게로 다가갔다. 말 앞에서 빠릿빠릿하게 서 있던 아이가 나를 보고 흠칫거렸다.
“가라.”
나는 아이에게 동전을 튕겨 주었다.
다리 보상금으로 돈이 훅 나간 데다가 정기적으로 나가는 돈─세면도구나 식량 같은 소모품 충당─이 있어서 지갑이 조금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팁 정도 줄 돈은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화색이 되어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말없이 내 뒤를 따라오던 데브가 그 아이를 힐끔 보곤 내 근처로 다가왔다.
“저, 나리…….”
데브는 담벼락에 등을 기대 눈 감는 나를 보더니 그만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쪼그려 앉아 건초를 먹는 말들의 콧잔등을 살살 쓸었다.
“…저 망토 좀 더 사 오겠습니다요.”
망토? 지금도 후드 달린 망토를 쓰고 있… 아. 귀까지 가리려 그러나.
나는 쫑긋 솟은 귀와 후드 사이로 드러난 머리카락을 슬며시 보았다.
후자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지만, 전자의 경우 분명 치명적인 헛점이었다. 귀로 인해 털색이 들키거든. 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도 그렇고.
큰 윗귀(정수리 쪽에 위치한 귀)의 단점이었다.
뭐, 윗귀가 아니라 옆귀(측두골 쪽에 위치한 귀)여도 귀가 크단 이유로 후드 양쪽에 구멍을 내는 슬랜드족을 보면 그냥 귀가 큰 게 문제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각설하고, 나는 자리를 다시 떠나는 이를 보았다.
일부러 혼자 두지 않으려고 미리 일어난 거였는데… 아니, 그보다 너. 악마한테 타깃 된 적 있지 않니? 이대로 가도 되는 거야?
심정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함께하자니 언제나처럼 컨셉이 걸림돌이라.
결국 나는 데브가 후드만 사고 돌아올 것을 믿기로 했다. 악마를 염두에 둘 머리가 있는 애가 데브니, 꼭 막연한 믿음도 아니었다.
해서 나는 데브를 따라가는 대신, 미리 사 둔 사탕을 입에 넣었다. 없는 돈 굳이 써 가며 산 사탕이었다.
정작 주고 싶은 사람한테는 못 주고 있지만.
* * *
“아이고, 제가 괜히 입을 놀려서…….”
인퀴지터는 떠나는 이들의 등을 시무룩하게 보며 수프를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방금까지 맛나던 음식이건만, 둘이 떠나고 나니 묘하게 허전한 느낌이 났다.
“인퀴지터, 배부르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래도 자신이 시킨 음식을 남길 수는 없다. 그건 죄악이니까.
하여 그녀는 얼른 수프를 한입 뜨고, 고기를 야금야금 잘라 입에 넣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 때문에 손님들 기분이 상하신 건 아닌지…….”
“괜찮네. 호의로 이야기해 준 것 아닌가.”
그녀는 음식을 먹으며 의미 없이 시선을 돌렸다. 빈자리에 남겨진 그릇들이 보였다.
뺀질이도 뺀질이지만 악마기사도 음식을 거진 반이나 남기고 갔다.
입맛에 어지간히 안 맞았던 모양이다. 어딜 가든, 하다 못해 그녀마저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맛없는 집을 가도 그릇을 가능한 비우던 사람이 그였는데.
심지어 싫어하는 고기를 모르고 내줬을 때마저 다 먹었던 사람인데.
“악마기사께선 토마토 스튜를 싫어하시는 걸까요.”
“저번에 토마토 잘만 먹지 않았나?”
“음.”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향신료? 단맛? 둘 다 그렇게 과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냥 그놈 입맛이 이상한 거 아닌가?”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악마기사가 괜히 싫어할 리 없으니, 그저 이 음식에 그녀가 눈치채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인퀴지터는 끙끙대며 고민에 빠졌다. 답이 나올 일 없는 문제였다.
“그보다 주인장, 그 소문에 대한 것이나 말해 주게.”
“예?”
“소문의 원인이 있을 것 아닌가.”
“아…….”
아니면 설마 악마?!
인퀴지터는 가게 주인을 설핏 훔쳐보았다.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왼팔에 흉터가 있고 다리를 살짝 절긴 하지만 그게 숭배자의 증거가 될 순 없었다.
“그, 조금 예민한 이야기인데.”
“부탁함세. 우리가 이곳에 온 일과 관련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어서 그렇네.”
“예? 아, 그렇죠. 모험가들은 의뢰를 받고 움직인다고 들었으니까.”
쳇. 이럴 때 그 망종 녀석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아쉬움과 약간의 질투심을 느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뺀질이는 사람을 분석하는 능력 하나만은 정말 뛰어났다.
아크메이지가 괜히 끌어들인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가끔 저의 부족함과 한심함을 돌아보게 할 정도로.
“…제가 이야기한 건 비밀입니다.”
“그럼. 반드시 지켜 주지.”
그녀는 그놈처럼 사람의 외양에서 많은 정보를 읽어 낼 수도, 능청맞은 태도와 능글능글한 언변으로 자료를 얻어 낼 수 없으니까 말이다.
“…아까, 길거리 사람들이 적은 이유를 물으셨죠? 그거랑 연결된 이야깁니다.”
인퀴지터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또 한 번 되새기며 수프를 꿀꺽 삼켰다.
“9년 전인가, 10년 전인가.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당시 성주를 죽였거든요.”
그러곤 주인장의 말에 집중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길거리 출신이란… 그러니까, 집 없이 거리를 전전하던 소매치기나 거지 중 하나란 소문이 돌아서…….”
하면 언젠가, 그놈만큼 잘하진 못하더라도 얼추 따라 할 수는 있을 테니까.
“성주의 가족이 그날로 도시 내, 거리를 전전하던 거지나 소매치기 같은 이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데 지금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진짠가?
“딴에는 뒷골목에서 암약하는 범죄자들을 청소하는 것이라 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습니다. 그게 보복이었다는 걸.”
인퀴지터는 본능적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음식점 주인도 반쯤 무의식적으로 흉터가 진 팔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죽었죠.”
동시에 상대의 눈빛이 변했다. 일개 범부가 아닌 옳음을 향해 싸워 나가는 투사의 것이었다.
“달가운 이웃은 아닐지언정, 그들이 죽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도시에 없었으니까.”
* * *
“으음. 신께 기도드려야겠습니다. 너무 과식한 것 같아서…….”
“허허. 이 정도는 신께서도 용서하시지 않겠습니까.”
“베르세르크는 또 가고 싶다.”
으음. 난 분명 믿었는데. 데브를 믿었는데.
요놈의 고기만두는 왜 아직도 안 돌아올까.
나는 데브보다 먼저 온 일행을 두고 눈을 가늘게 접었다. 정면을 직시하고 있자니, 아크메이지의 입술 선이 달싹거리는 게 보였다.
“음? 자네 왜 혼자 있나?”
몰라요. 알면 나도 혼자 안 있지.
“뺀질이는 어디 갔습니까? 악마기사를 따라갔는데.”
흡족한 식사를 하고 온 듯 묘하게 빵실빵실해진 김치만두 역시 내게 물어 왔다. 아닌 척해도 걱정하는 모양이다.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여전히 없었다마는.
“네놈의 눈깔은 놈이 이곳에 없다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기능이 안 좋나?”
“모른다는 거군.”
넹.
“음. 어린 사냥꾼의 것 괜히 사 왔다. 음식 쓸모없어졌다.”
버서커가 포장된 용기를 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대적으로 포장된 건 아니고, 우리가 쓰던 냄비에 음식을 담은 형상이다.
“괘씸한 놈. 일부러 챙겨 왔는데.”
버서커, 은근히 데브를 잘 챙겨 준단 말이지. 인퀴지터도 요즘 들어서 동료 취급 해 주고 있고.
나는 버서커의 의외성과 우정이라 불러도 될 만두들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몸을 제대로 세웠다. 담벼락과 헤어진 등에 힘이 들어갔다.
“어디 가십니까?”
글쎄다. 컨셉상으로는 산책이고, 진짜 목적은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데브를 찾는 쪽이라 해야겠지.
마을 어딘가에 숨어서 궁상 떨고 있는 거면 차라리 나은데, 어쩐지 감이 안 좋아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안 올 확률로 고려하자니 의외로 시비 걸릴 구석이 있기도 하고.
암, 주인장이 괜히 머리색을 경고했겠나?
데브에게 심적 타격을 줘서 마음에 안 드는 것과 경고 자체가 지닌 무게는 별개다.
난 그것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가장 흔하고, 가장 귀찮은 클리셰니까.
“저녁 전엔 신전으로 돌아오게!”
운이 좋달지, 일행들은 그런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내 다리가 거리를 성큼성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 비린내.”
그런데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 중 한 명이 하필 날 지나칠 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오른팔이 갑자기 간지러워진 건 덤이었다.
혹시… 나보고 한 말은 아니겠지? 비린내라고 했으니까 나는 아니겠지? 솔직히 내가 비린내가 날 일이 뭐 있는데.
…아닌가, 나 피 냄새 나나?? 확실히 와서 아직 안 씻긴 했는데……!!
나는 칸칸이 남긴 트라우마를 상기하며 끙끙거렸다. 와중에 팔이 간지러운 거 진짜 괴롭다.
가뜩이나 긁는 것도 캐붕이라서 몰래 긁어야 하는 판인데, 건틀릿은 벗기도 힘들다고……!
심지어 입구 쪽 부분이 간지러운 것도 아니다! 입구 쪽이면 손가락 쑤셔 넣어서 긁기라도 하지, 왜 가장 안쪽이 간질간질해서.
나는 냄새 난다는 말의 무게와 긁을 수 없다는 괴로움에 울며 터벅터벅 걸었다. 이 와중에도 차마 간지를 잃을 순 없어서 표정은 똑바로 했다.
우연히 마주칠 데브한테 이상한 표정을 내줬다간 걔가 뭔 반응을 들고 올지 몰랐다.
“……!”
“…가!”
“……?”
그렇게 익익 하며 큰 거리를 나아갔을까. 상가 쪽에 다다랐을 즈음, 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발견했다.
소리로 보아 패싸움이라도 벌어지는 것 같았다.
“…기 싫으면 비켜!”
“…하네! 너야말로 꺼져!”
나는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그곳을 두껍게 둘러싸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내 키는 그 너머를 볼 수준이 되었다.
샤기족만 빼면 평균적으로 나보다 10에서 20cm는 족히 작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네가 그래 놓고도 이 도시 사람이야!?”
“하, 당연하지! 난 자랑스러운 에드니엄 주민이야! 머리색 가지고 지랄 염병인 네놈과 다르게!”
“저 놈은 머리색만이 문제가 아니라─!”
“닥쳐, 확실한 것도 아니면서 남에게 덤터기 씌우지 마!”
한데 그렇게 본 곳에선 서넛씩 한 무리를 이뤄 두 무리가 다투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중 한 무리의 뒤에 새 망토를 만지작거리는 데브가 있단 점이고.
그것도 뺨을 얻어맞았는지, 후드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빨갰다. 내 눈이 파르르 떨렸다.
스윽.
“뒤에서 밀지─ 헉.”
“비, 비, 비, 비켜.”
“…기사다!”
“기, 기산가? 모험가 아니야?”
염병, 지금 판 꼬라지 보니까 우리 애가 이유 없이 처맞고, 그걸 본 몇몇 정의로운 시민들이 보호해 주는 것 같은데.
이거 맞냐? 맞냐고. 아무리 녹색 머리카락이 싫다지만 관련 없는─겉으로 보기엔 그러한─사람을 패는 게 맞냐고!
또 고기만두, 너! 왜 말없이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있어! 네가 뭘 잘못했다고! 고개 들어!
“뭐, 뭐야 당신.”
“못 보던 얼굴인데. 조심하세요. 저놈들은 지나가는 행인 얼굴 갈기는 무뢰배라고요.”
“뭐야?! 무뢰배?!”
“그럼, 무뢰배지!!”
나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인성이 나온다.
나는 내 안전부터 걱정해 주는 이들에게 만족하며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개입하려는 느낌보다는, 너희가 싸우든 말든 나는 내 갈 길 간다란 느낌으로 걷는 걸음이었다.
“상관도 없는 놈이 끼어들지 말고─.”
그리고 놈들이 입을 열었을 때, 일부러 딱 중간─놈들에게 내 옆모습만 비칠 정도로─에 멈췄다. 눈동자는 돌리지 않았다.
그냥 허리춤 속 칼자루에만 손을 올렸을 뿐이지.
“요즘은 인간도 아닌 것이 인간의 말을 자주 하는군.”
“…나리?”
아, 그보다 캄버러에서의 깡통 도련님도 그렇고 이 사람들도 그렇고, 요즘 일반인 협박할 일이 왜 이렇게 많냐.
“나, 날 공격하면, 아, 아무리 기사라도…….”
근데 저놈들이 먼저 나를.
“아무리?”
나는 눈동자를 힐끗 돌렸다.
“기, 기사라도 사, 사람을 죽이면…….”
“우습기 짝이 없군.”
더불어 녀석이 말 잇는 것에 맞춰 발목을 틀고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어디 도련님처럼 넘어트리진 않아서, 녀석은 선 채로 나를 맞이했다.
비록 키 차이로 인해 녀석은 목을 뒤로 젖히다시피 해야 했더라도.
“법을 무시한 채 남을 때린 주제에, 왜 네놈이 법의 보호를 받을 거라 생각하지?”
“히, 히익!”
“꺼져라, 버러지. 한 번만 더 거리를 점거한 채 날 귀찮게 만들면 네놈의 가벼운 주먹을 진정 가볍게 만들어 주겠다.”
그래도 폭력은 쓰지 않는다. 난 교양 있는 현대인이니까.
대신 눈에 살기랄지 기세를 잔뜩 담아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놈이 다리를 눈에 띄게 후들후들 떨더니, 제 뒤에 있던 일행과 함께 후다닥 도망갔다.
컨셉의 승리였다.
뭐, 부작용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나를 보며 흠칫 물러났지만, 그건 별로 상관없다.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인 걸.
“나리…….”
무엇보다 데브는 겁먹지 않았으니까.
“…저 찾아오신 겁니까요?”
“허튼 소리.”
사실 맞아. 금방 찾아서 다행이다, 야.
“…저, 금방 가려고 했는데… 시비가 붙어서… 죄송합니다, 나리.”
네가 죄송할 게 뭐 있냐. 딱 봐도 네 잘못 아닌데.
그보다 뺨 많이 아프려나. 혹시 입 안쪽 터진 거 아니지?
아. 짜증나네. 아까 도망친 놈 다시 와라. 내가 함무라비 법전을 좋아하던 사람이 아닌데 너는 좀 맞자. 네가 뭐라고 우리 고기만두를.
“나리.”
왜.
“나리가… 나리가 옳다고 생각해서 행한 일이… 만약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했다면…….”
나는 데브를 꼬리처럼 단 채 그 소란의 현장을 빠져나갔다. 내가 내딛는 걸음마다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져 주었으므로 나아가는 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리는 그때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 고기만두의 질문이 문제지.
“무가치한 질문이다.”
그런데 어쩌냐. 이런 질문은 내 컨셉이랑 상극인데.
“저지른 일의 대가조차 책임질 수 없다면, 검조차 들지 말았어야 했음을.”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자문했다.
이거 맞아? 이거 맞냐고.
“…역시 그렇겠죠.”
공중제비 돌면서 봐도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저 같은 건, 칼을 들어선 안 됐던 걸지도.”
흐아아아악!! 아크메이지님 헬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