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모든 것이 순리대로 (4)
데스브링거는 기어코 밤을 새워 가며 수색하는 이들을 보고 어깨를 축 늘였다.
본래도 낮보단 밤과 친했으며, 저들과 함께하는 동안 밤을 지새우는 것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렸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몸이 슬슬 무거워졌다.
“배도 안 고픈가.”
수면 부족뿐이 아니라 허기도 문제였다.
오랜 굶주림은 그의 친구였고 공복으로 하루종일 움직이는 상황 또한 그의 단짝이었지만… 그게 괴롭지 않단 말은 아니다.
밤을 새울 거면 제발 뭐라도 좀 먹여 줬으면 좋겠다. 그는 배고픈 게 달갑지 않았다.
“…….”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무능한 그가 무슨 자격으로 식사를 논하겠는가? 애초에 고향에선 불만이 될 수도 없던 일인데?
데스브링거는 차오르는 불편함을 삼켰다.
그러곤 그의 과거를 되새겼다. 하루를 넘어 며칠을 굶던 날들이나, 복수 하나만을 위해 뜬 눈을 감지 못하고 보냈던 하루 따위를.
그가 요즘 누려 온 편의와 풍족함은 오롯이 저들의 재력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것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는 결심 따위를 말이다.
그러자 속이 조금은 나아졌다.
스슥
“……?”
하지만 각오를 다지느라 너무 넋을 뺀 모양이다.
그는 짐승의 기척이 제 지척에 다다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건 못 피한다. 오랜 경험이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하면 피해라도 줄이자. 죽지만 않으면 샌님이 살려 줄 테니까.
데스브링거는 능숙히 몸을 낮추고 급소를 보호했다. 팔이나 다리쯤은 얼마든지 내줄 자세기도 했다.
푸욱!
퍼억!
그러나 고통은 오지 않았다. 피육이 터지는 소리가 났을 뿐.
반사적으로 감았던 두 눈꺼풀이 다시 떠올랐다.
“방심했구나, 어린 사냥꾼아!”
앞이란 말도 모자라 십여 미터 너머까지 나아갔던 베르세르크가 그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어어… 고맙습니다요, 나리.”
“하, 뺀질이 놈. 멍청하긴. 뒤를 똑바로 봐라. 다친 데는 없나?”
“타박을 할 거면 타박만 하십쇼.”
샌님도 참 웃기게. 딱 봐도 다친 데 없건만, 굳이 물어볼 것까지 있나?
데스브링거는 간질간질한 귀를 괜히 쫑긋거리며 베르세르크의 도움으로 일어섰다.
다가온 둘과 다르게, 계속 나아가는 악마기사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방해가 되는 건 두고 가겠다고 말하던 사람답다.
“…빨리 갑시다요.”
그는 입안이 묘하게 쓴 걸 느끼며 옷자락을 털었다.
“그래, 가자!”
그러다 잠깐. 그는 자신을 습격하려다가 베르세르크의 주먹에 처맞고 날아간 맹수를 보았다.
우습게도, 그놈의 머리통에는 엄지와 검지를 붙여 만든 동그라미만 한 구멍이 있었다. 관통흔이었다.
“아, 그렇지. 전우여, 베르세르크 배고프다. 밥 먹고 움직이자.”
“뱃속에 돼지 새끼를 넣어 놨나 보지.”
“방금 죽은 저거 구워 먹자!”
“쯧.”
“아, 식사입니까? 도구와 조미료를 안 챙겨 왔는데…….”
데스브링거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이지, 저 기사님은 대체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휴. 그럴 줄 알았습니다. 나와요. 조미료랑 건빵 정도는 제가 챙겨 왔으니까.”
“오!”
“참고로 다 구워 버릴 겁니다요. 냄비는 무거워서 안 들고 왔으니까.”
본인에게 아무도 간섭하지 않길 바란다면, 그 본인부터 상냥하지 않으면 될 텐데.
* * *
“아오, 안개 때문에 불이 잘 안 붙잖아. 아, 그렇지. 이봐요, 샌님. 그 오줌색 막으로 안개는 못 밀어냅니까?”
“오, 오줌색이라니! 그리고 신성력 막을 그런 데 쓰려 하지 마라!”
“그런 데는 무슨. 이런 데 쓰는 게 뭐 어때서요.”
“이익!”
나는 데브를 먹으려다가 오히려 먹히는 신세가 돼 버린 퓨마에게 명복을 빌어 주었다.
물론 불쌍하진 않았다. 하마터면 우리 고기만두 다칠 뻔했다.
“오오, 안개 물러간다.”
“이, 이런 데 써도 불경이 아닌 건가…….”
“시끄럽고 어서 불이나 피워 봐요. 투사 나리도 고기 최대한 작게 잘라 주시고요.”
“이 정도면 되나?”
와중에 고기만두 솜씨가 너무 좋다. 젖은 나뭇가지를 쓰면 연기가 이니, 껍질을 죄다 벗겨 내 안 젖은 부분만을 찾아 쓰는 게.
“와, 투사 나리. 매번 생각한 거지만, 도축 배워 본 적 없죠?”
“없다!”
“그래 보입니다요. 줘 봐요. 이제 제가 할 테니까.”
심지어 발골이라든가, 손질하는 걸 보면 매번 감탄이 다 나온다.
나나 인퀴지터는 고사하고, 은근히 마법에만 의지하는 아크메이지는 절대 흉내 못 낼 기술이었다.
“자, 이렇게 얇게 저며서 구우면…….”
“오!”
“다 익은 건가? 벌써?”
“빨리 먹는 법입니다요. 다른 부위로 하면 맛이 없기도 하고, 이쪽 부위가 워낙 적어서 보통은 해 먹을 일 없지만.”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데브 영입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 아크메이지의 마법을 더해도 다들 생활력이 바닥이야…….
“크, 술이 있으면 좋았을 것을!”
“내, 냄새가…….”
“댁은 대체 뭡니까? 집어도 하필이면 내장이랑 맞닿아 있던 쪽을 딱 집게. 그거 내려 두고 이거나 먹어요.”
심지어 초반엔 노숙이 없거나 짧기라도 했지, 갈수록 노숙의 비중이 커지는 걸 고려하면…….
음. 역시 우리 고기만두가 최고다.
“전우여, 정말 고기 안 먹나?”
한편, 신나게 고기를 집어 먹던 버서커가 물었다.
하기야 나 혼자 고기 대신 건조 과일이나 씹고 있으니 퍽 처량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냄비도 없어서 스프도 못 끓여 먹는 신세고.
“관심 꺼라.”
그치만 고기 먹을 바에야 곡물 가루를 퍼먹는 게 낫지. 나는 건조하게 대답하며 말린 베리를 입에 넣었다.
단맛이 강한 건 식사로 안 쳐서 그런가. 군것질하는 기분이었다.
“이봐요, 투사 나리. 잠시 좀…….”
그렇게 조금 시간을 가졌을까. 화장실 다녀온다며 데브가 버서커를 끌고 사라졌다.
졸지에 인퀴지터랑 단둘이 남아 버린 셈이다.
그래도 인퀴지터가 쓸데없이 말 많이 걸어오는 타입─혼자 조잘조잘 떠들긴 하지만─은 아니라서 제법 괜찮았다. 기껏 나온 주제도 악마 관련이라 나름 대답해 줄 수 있었고.
해서 꽤 편하게 데브와 버서커가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우악, 우아악! 샌님, 방어막, 방어막!”
“와하핫! 우리 왔다!!!”
화장실 갔다 온다던 녀석들이 기묘한 것을 끌고 돌아왔다.
“신이시여, 제게 힘을!”
당황한 인퀴지터가 다급히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쿵. 짐은 안 가져올지언정 절대 빼놓지 않은 거대한 방패가 땅을 내리찍었다.
“들어왔다!”
“어린 양들을 보호하소서!”
그리고 데브와 버서커가 막 방패 뒤쪽으로 들어왔을 때, 하얀 빛이 파앗 퍼져 나갔다. 내 HP가 연례행사처럼 깎여 나갔다.
쿵!
방어막 바깥에 있는 짐승들의 돌진을 막 막아서고 있다.
“무슨 일입니까!”
“흐핫, 이제 저것들을 죽여도 되나?!”
“아이고, 조금만 기다려 보십쇼! 상황은 좀 말하고 가라고요!”
악마도 아니고 고작 금수다. 단지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
덕분에 인퀴지터는 방어를 수월히 유지한 채 상황을 물었다. 나도 듣고 싶던 부분이었다.
어쩌다 저놈들의 어그로를 끌었는지 궁금하다.
“물가에서 생선을 잡다가 갑자기 놈들이 덤벼들었다.”
“생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아, 그렇지. 그럼 갑자기 덤벼든 건가?”
“예.”
그거 이상하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들이 덤벼드는 것 자체야 자연스럽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이 뒤섞여서 덤비는 모습까지 보편적이진 않을 거 아냐.
“베르세르크는 싸우려 했다. 그렇지만 어린 사냥꾼을 보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달려왔다.”
“그러셨군요.”
“그보다, 뭐 마기 같은 건 안 느껴집니까? 아무리 봐도 저건 정상이 아닌데.”
“아직 느껴지는 건 딱히 없… 아!”
사태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계속 이대로 있을 순 없다.
해서 나는 베르세르크처럼 짐승들을 처리하기 위해 검을 뽑았다.
“신성력을, 먹고 있습니다.”
한데 바로 앞에서 보인 광경이 내 검을 머뭇거리도록 했다. 동물 중 일부가 방어막을 까득까득 긁어내며 먹으려 들고 있었다.
“예?”
“오.”
마기랑 마력 먹는 놈에 이어 신성력 먹는 개체의 출현이라. 이거 힙합이네요.
“괘, 괜찮은 겁니까?!”
“문제 될 정도로 먹는 건 아니다. 몇 겹으로 쳤으니 깨져도 뚫릴 일 없고. 하지만, 하지만…….”
“신성력도 먹을 수 있는 거였나?”
어쨌거나 이건 중요한 발견이다. 못해도 한 놈, 가능하면 두세 놈을 산 채로 포획해 가야 할 것 같다.
“네놈.”
다만 그러려면 약간의 협조가 필요하단 말이지.
“나 불렀나?”
“두 마리, 생포해라. 그 정도 분간도 못 하는 머저리는 아니겠지.”
“크핫! 생포인가! 알았다, 맡겨라!”
약간 불안하지만 방도가 없다. 거기에 여기 있으면 HP가 계속 깎여 나가서 말이지. 나가 봐야 할 때가 됐다.
“나가십니까? 원조하겠습니다!”
나는 신성력의 막을 나왔다.
쿠웅!
동시에 직사각형의 금빛 판이 생기며 보호막을 둘러싸고 있던 짐승들을 밀어냈다.
마탑에서 이것저것 연습했다더니 새로 만든 스킬인가 보다. 훌륭한 넉백 스킬이었다.
“뒤편은 제가 맡겠습니다!”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가 누르는 형식으로도 쓸 수 있는가 보다. 인퀴지터는 뒤편에 있던 금수들을 그대로 납작콩 눌러 버렸다.
나름 생포하려던 건지 터지진 않았다. 낑낑대며 빠져나오려고 했지.
서걱!
어쨌거나 훌륭한 백업이다. 나는 인퀴지터가 벌어 준 거리를 이용해, 방어막을 나가자마자 여유롭게 검을 휘둘렀다.
짐승 두 마리의 목이 검에 달아나고, 허공에 생성된 마력창은 내게 덤벼들려던 놈들을 죄 꿰뚫었다.
“크하하핫!”
버서커는 비슷하되 조금 달랐다.
그녀는 할버드를 길게 잡고 그대로 휘둘러, 반경에 있던 놈들을 싹 밀어냈다. 그사이에 뛰어든 것들은 터프하게 받아 주었다. 제 몸에 상처가 나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태도였다.
“생포, 투사 나리, 생포!!”
저 봐라. 까먹을 줄 알았지.
나는 신성력을 까먹었던 동물을 찾아 그 몸뚱이를 걷어찼다. 그러곤 녀석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목덜미를 밟았다.
‘인간이 미안해’를 외치기엔 주변 광경이 워낙 험악해서, 양심은 잠시 집어넣었다.
서걱!
이어 주변에 있던 녀석들을 베고, 그중 신성력을 먹는 것처럼 보인 놈을 또 찾아 목덜미를 낚아챘다.
마침 놈이 내게 달려들어 주어, 손으로 목을 움켜쥐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걸로 두 마리다. 인퀴지터가 잡은 것까지 더하면 여덟 마리 정도.
커헝커허어엉!
나는 표범의 발톱이 내 다리를 할퀴지 않도록 조심했다. 목덜미를 밟힌 녀석은 그래도 조용한데 얘는 왜 이렇게 발악적인지 모르겠다. 이게 정상이긴 하지만.
“앗, 한 마리 죽었다.”
“할버드를 그렇게 휘둘러 놓고 안 죽길 바라는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요…….”
“아니다. 이놈 안 쳤다. 봐라. 상처가 없다.”
“엥, 진짜네.”
안에서 마냥 보호받지만은 않았는지, 단궁을 막 내린 데브가 방어막 밖으로 나왔다.
필요성을 못 느낀 건지, 인퀴지터가 힘을 거둠으로써 막 자체도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수십 구의 사체와 금획된 아홉 마리다.
“……?”
그런데 이거 왜 이래. 나는 발로 밟고 있던 녀석이 죽은 걸 확인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목뼈를 부러트리지 않도록 계속 신경 써 왔고 그 밖의 상처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죽은 거지? 내가 고민에 빠지려던 찰나, 데브가 “어!” 하며 탄식을 흘렸다.
“이놈, 죽었는데요? 이놈도.”
“아, 안 죽을 정도의 압력만 넣었는데……?”
나는 그나마 살아 있는 녀석을 단단히 붙든 채 그쪽으로 합류했다. 인퀴지터가 생치한 녀석 중에서도 죽은 놈이 나왔나 보다.
“왜 죽었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잡은 아홉 마리 중 다섯 마리가 추가로 사망했다.
우리는 남은 네 마리가 죽지 않도록 조심하며 입과 팔다리를 묶었다. 이대로 도시까지 나를 것이다.
“정말이지… 이게 무슨 봉변인지.”
그러게 말이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하필 식사 시간에 사건이 터지네.
“마기는 느껴지지 않고… 대삼림에서 보았던 그 뱀과 비슷한 종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끄응. 그러면 일단 단서는 되려나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버려 둘 만한 것은 아니니… 단서라 봐도 되겠지.”
“베르세르크, 힘쓰니까 다시 배고파졌다…….”
“아, 그러십니까? 한데 고기는 다 식어 버렸을 것 같은데…….”
“어차피 이것도 도시로 날라야 하는데, 돌아가서 제대로 먹죠?”
“음?”
“…설마 안 돌아갈 건 아니죠?”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닌데…….”
나는 자연히 내게 모인 시선을 두고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악마는 못 찾았지만, 악마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큰 단서를 찾았다. 거기에 얘네를 계속 달고 수색하는 것도 불편하고.
그럼 컨셉이라도 당연히 돌아가자고 하지. 그런데 왜 날 봐? 내가 설마 이거 지고 더 수색하자고 할 줄 알았어?
“돌아갑니까?”
…내 컨셉, 이 정도로 혐성처럼 보이나?
* * *
“저기 오는군.”
내 컨셉의 인성은 어디까지 가는가. 그런 떨떠름함을 품은 채 우린 도시로 복귀했다. 아크메이지가 성벽까지 마중 나와 있던 건 덤이었다.
“이봐, 너희 그 숲에서 돌아온 건가?!”
“뭐야, 모험가가 살아서 돌아왔다고?”
“살아 돌아온 모험가가 있어?”
한데 아크메이지를 발견한 인퀴지터가 손을 휘젓는 사이, 나는 기묘한 사실을 발견했다.
어째 성벽 위가… 좀 부산스럽다? 밤새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지, 아침이면 보통 열어 두던 성문도 꾹 닫혀 있고.
“무슨 문제 있습니까?”
“혹시 이쪽에도 짐승들이 쳐들어온 건…….”
“전쟁인가? 전투가 벌어지나?”
성벽이 열리는 사이 우리는 심각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대체로 일이 터진 건 아닌가 하는 내용이었다.
“자네들, 저 숲에서 온 게 맞나?”
“맞습니다만…….”
그리고 드디어 사람들이 내려왔을 때.
“그럼, 간밤의 검은 기둥이 승천하는 것도 보았나?”
세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괴, 굉음과 함께 다섯 번이나 쏘아졌는데. 그 원인은 보았고?”
그, 그으으으…….
봐도, 너무 잘 본 것 같은데.
그것도 1등석에서.
“역시 자네였나?”
그러던 중 경비병과 함께 후다닥 내려온 아크메이지가 작게 속삭였다. 우리들의 표정을 보고 대충 짐작한 듯싶다.
“어쩌면 악마가 이 땅 근처에…….”
“그, 그건 아닙니다.”
“어휴, 악마는 아닙니다요.”
아니, 그게. 그.
이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지 않나? 그보다 소리도 그렇게 안 크고, 색도 검정이라 밤하늘에 녹아들어서 티 별로 안 났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설마 직접 본 건가?”
“직접 봤다면 보긴 했는데…….”
“하핫, 이 친구가 한 거다!”
어눌어눌 대화를 잇던 인퀴지터와 데브를 제치고, 버서커가 쾌활하게 외쳤다.
“하늘에 악마가 있는 것 같아서 쐈다! 문제 있나?”
“예에?”
이게 맞는 선택이었는지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저, 저 남자의 짓이라고?” 경비병들이 쩍 굳었다.
인퀴지터와 데브가 해명을 위해 다급히 말을 이었다.
“하고픈 말이 꽤 있네만…….”
그사이, 아크메이지는 우리 손에 들린 동물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잔소리는 잠시 미뤄 두고 상황부터 파악하겠단 의도가 선명히 보였다.
“몸은 괜찮은가?”
“응? 괜찮다.”
“다른 이들도?”
“베르세르크가 기억하기로, 다친 사람은 없다!”
“그럼 다행이군. 하면 그것들은……?”
“숲에서 마주친 짐승들이다! 수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덤비기에 몇 마린 죽이고 몇 마린 잡아 왔다.”
“그랬나?”
“아, 사제가 이것들을 두고 신성력을 먹는다고도 했다. 요즘 동물은 신성력도 먹나?”
“…지금 뭐라 했나?”
그러나 이 이야길 듣고도 잔소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화제가 확 돌아간 걸 확인한 후, 짊어지고 있던 표범을 바닥에 내던졌다. 넝쿨로 꽁꽁 묶인 짐승이 바르작거렸다.
“내려놔도 되는 건가?”
베르세르크도 양쪽에 지고 있던 맹수를 바닥에 눕혔다. 죽지 않도록 눈여겨본 끝에 다들 멀쩡히 살아 있다.
“…당장 검사해 봐야겠군.”
“아, 그렇지. 법사 나리, 저흰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몇몇 동물이 픽 하고 죽었단 말이죠? 혹시 몰라서 말씀드립니다요.”
“으음. 그래. 고려하지. 고맙네.”
아, 해명 끝났나? 나는 데브가 우리 쪽을 돌아보는 걸 마지막으로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경비병들이 다소 불안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으나, 사정 설명을 잘했는지 붙잡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