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모든 것이 순리대로 (3)
이 빌어먹을 악마 놈은 어디로 숨은 건지.
신전에 소속된 사람들, 신전을 오간 이들, 기타 등등. 사흘 내내 이 잡듯이 털었지만 나오는 정보는 없었다.
데스브링거가 추가해 준 외형까지 더하면 그렇게 흔한 외관이 아님에도 목격 정보 하나 안 나온 것이다.
“쥐새끼 같은…….”
더 짜증나는 점은 놈이 숨어 있는데 우리가 못 찾는 것인지, 아니면 놈이 다른 도시로 튀어서 못 찾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점이다.
기실 다른 도시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 도시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우리의 수색 범위 바깥이기도 하고.
그 때문일까. 어쩐지 시간 낭비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컨셉처럼 열불이 터지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허탕 쳤다는 마음에 약한 짜증은 난다.
“가증스러운 악마 놈들… 빛을 피해 숨어드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군요.”
열받은 건 내 컨셉뿐이 아니다. 인퀴지터 역시 독이 바짝 올랐다. 오늘 아침, 도시 전체에 신성력을 뿌렸을 정도니 설명은 필요없다.
“그쪽은 뭐 알아낸 것 없습니까?”
“없는뎁쇼.”
그러나 성질이 뻗친 건 우리들 한정이다. 버서커와 데브는 오늘분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음식들을 먹어 치우는 중이다.
“어린 사냥꾼아, 이거 먹어라.”
그보다 둘이 사이가 많이 좋아졌네. 나는 버서커가 데브에게 먹을 것을─과일이 들어간 음식을 특히─밀어 주는 걸 감상했다.
훈훈한 광경이었지만, 데브가 웃는 낯짝 그대로 창백하게 굳어 가는 걸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았다.
“고, 고맙습니다요.”
호의는 차마 거절 못 하고, 와중에 배는 부르고.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란 게 딱 보였다.
솔직히 좀 웃기다.
“정말 하나도?”
“그렇게 물어도 저 같은 게 뭘 알겠습니까? 짐승 노린내밖에 못 맡았다고요.”
그래도 남 보기에 웃기지, 데브 입장에선 곤란하기 짝이 없을 거다. 난처해서 삐죽 올라간 말투만 봐도 그렇다.
“정 궁금하면 댁이 오든가요.”
데브가 투덜대며 과일을 입에 밀어 넣었다. 아직 버서커가 밀어 준 샐러드가 남았지만 그건 과감히 포기하려나 보다.
“으음…….”
그렇지만 그 말 자체엔 뼈가 있단 말이지.
나는 내 몫의 스프를 마시며 내일도 악마를 찾을지, 아니면 데브의 말대로 짐승 사냥에 나설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가 더 나을 것 같긴 했다.
내가 추적 전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흘이나 투자하지 않았던가.
이런데도 안 나온 걸 고려하면 그냥 포기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대신 짐승 사태의 원인이나 찾는 거지.
이대로 육식동물의 씨를 말리는 것도 해결 방법이 되겠지만, 이건 너무 근시안적인 방법이니까.
“음! 으으음므믐!”
그때 고기를 야무지게 입에 넣은 버서커가 소리를 내었다. 볼이 빵빵해지도록 음식을 물고 있는지라 말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베르세르크, 음식은 삼키고 말하시지요.”
“크하!”
술 한 잔에 그 많은 음식이 넘어가는 건 좀 신기하지만 말이다.
“베르세르크, 숲에서 이상한 거 본 것 같다!”
“예?”
“두 눈으로 본 건 아니고… 으으으음.”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이더니 곧 느낌표를 띄웠다. 물론 비유다.
“뭔가 짜증나는 놈이 나나 어린 사냥꾼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짜증나는 놈……?”
“혹시 악마입니까?!”
“모른다! 감이다!”
“아, 감입니까.”
버서커의 외침에 인퀴지터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감이라는 말에 신뢰도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반면 데브는 감이란 말에 관심을 잃는 대신 ‘왜 난 몰랐지?’ 하는 낯이다. 시선이란 게 본래 추상적인 것이다 보니 믿기로 한 듯하다.
참고로 나의 경우 데브와 비슷한 마음이다. 아무렴 보편적으로 버서커 같은 캐릭터들의 감은 예지 수준으로 잘 맞는 게 전통이었다.
악마든 짐승 사태의 원인이든, 무언가가 숲에 있는 게 분명하다.
“확실한가.”
“악마기사?”
“베르세르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됐다.
나는 식탁에 기대 두었던 투헨더를 제대로 쥐었다. 하늘은 아직 해가 저무는 중이므로 시간은 넉넉했다.
“숲을 모조리 뒤져서라도 꼬리를 잡고 말겠다.”
뭐, 넉넉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컨셉은 절대로 참지 않는다.
“…….”
“으하하! 밤의 숲은 역시 운치가 좋구나!”
“그 좋은 운치, 댁 때문에 다 망가지는 것 같습니다만…….”
“밤의 숲에는 모험가가 별로 없군요.”
“있겠냐고요. 보통 모험가들은 댁들처럼 어둠 속에서도 맨손으로 맹수를 잡아 죽일 정도로 강하지 않거든요?”
당연한 수순이지만 내가 가니 버서커는 그 좋아하던 술과 고기도 마다한 채 따라왔다.
버서커가 나서니 인퀴지터도 결연한 얼굴로 ‘저 또한 악마가 있을 가능성을 두고 보진 않겠습니다’라며 따라왔고 말이다.
데브의 경우, 인퀴지터까지 따라서자 본인 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며 합류를 외쳤다.
물론 그의 본심은 진짜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도저히 급발진 삼인방만을 보낼 수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말려 줄 아크메이지는 주변에 없던 상황이니까.
“하. 내가 왜…….”
언제나 고생하는 고기만두였다.
“법사 나리에게 알리고 오는 건 진정 안 됐던 겁니까…….”
그러게. 근데 우리 셋이 브레이크 없는 조합인 걸 알면서 자리 비운 아크메이지 잘못이 아닐까?
아니면 네가 이렇게 우리 사이에 껴서 이성을 맡아 줄 걸 알기에 믿고 자리를 비웠다거나?
“메모는 남기고 왔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요.”
“그럼 뭐가 문제지?”
“어휴…….”
어느 쪽이든 데브에겐 스트레스만 줄 일이라, 나는 속으로 그에게 유감을 표하며 버서커를 채근했다.
“시선은 어디서 느껴졌지.”
아무리 악바리라고 한들, 단서 없이 숲을 뒤지는 행위를 그대로 하고 싶진 않다. 그것도 안개가 자욱한 숲을.
“여기보다 더 간 곳에서? 아니면 처음부터?”
오… 그것참… 모호한 말인데.
처음부터 혹은 깊은 곳에서라. 안쪽에서 보고 있던 걸까? 그래서 다가갈수록 시선이 강하게 느껴진 거고?
흠. 그럼 더 가 봐야 하나? 그렇지만 여긴 대삼림과 연결된 숲이라 엄청 넓은데.
“방향.”
“으음. 잘 모르겠다. 어느 방향을 봐도 시선이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없다.”
으으으음.
정말 방위도 모른 채 전부 헤집어야 하나. 그럴 리 없는데. 단서가 하나쯤은 있을 텐데.
“불만이면 돌아가라.”
“미쳤어요? 댁들을 두고 가게? 그리고 이젠 돌아가기도 너무 멀리 왔거든요?”
문득, 나는 하늘에 고래가 떠 있는 기분이었다던 데브의 증언을 떠올렸다.
본인은 구름을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며 만일을 위한 핑계를 댔지만… 글쎄다. 내가 보기엔 절대 오착이 아닐 것 같단 말이지?
거기에 어느 방향을 봐도 시선이 따라오는 느낌은 보통…….
“그 시선. 위였나?”
위지? 아무리 봐도 하늘이지?
내 물음에 버서커가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빛을 받아 백금색으로 빛나는 눈이 둥글게 접혔다.
“그래. 위였다.”
내 시선이 자연적으로 하늘을 살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아, 별과 달이 가득한 하늘이었다.
내 칼날이 위를 향했다.
* * *
콰앙!
[저 미친놈.]
레비아탄은 밤보다 더욱 짙은 어둠이 저 천상으로 쏘아지는 걸 보았다.
어찌나 섬뜩한 광경인지, 옆에 있던 판데모니엄도 멍하니 입을 벌렸다.
[…다시 말해 봐. 쟤 진짜 분노 아닌 거 맞아? 저 과격한 성질머리는 둘째 치더라도, 그릇이 되어 버린 인간이 무리 없이 분노의 힘을 저 정도로 다룬다고?]
[부, 분명 그릇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는데…….]
분노가 주도권을 되찾은 거라면 정말 큰일이고, 그릇인 인간이 주도권을 가졌는데도 저 정도라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다.
판데모니엄과 레비아탄은 갈등에 사로잡혔다.
[아냐. 저건 그릇이 맞아. 놈이었다면 저렇게 힘을 낭비할 게 아니라 이 일대를 불태웠을 테니까.]
[하. 그것참, 좋은 소식이네.]
[…기껏해 봐야 마기 난사일 뿐이야.]
[그래. 단순히 보면 그렇지. 우리가 왕의 권역에 들어가야 가능한 짓을 인간이 하고 있어서 문제지.]
[…….]
[그레트헨 걔도 참 걔다. 본체도 아니고 왕의 권역도 아니라서 힘이 1/4로 줄었을 텐데. 심지어 그릇이 다루는 거라 그 힘도 다 내지 못할 텐데 저런 게 된단 말이지? 태생이 그 따위여도 두 번째 분노로 선별된 데엔 다 이유가 있다니까.]
판데모니엄의 말에 레비아탄은 입술을 지르물었다. 사역마인 뱀이 그의 기분을 달래려는 듯 혀를 쉑쉑거렸으나 이 끔찍함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창백한 안색 뒤에는 ‘하늘에 두었던 본체를 옮겨서 다행이다’라는 안도와 ‘어째서 한낱 그릇에게도 이기지 못하는 것에게 난 두려움을 품는 거지?’라는 열등감이 부글부글 끓는다.
[일단, 자리를 뜨자. 난 저 미친 그릇이랑, 그것도 용사를 데리고 있는 놈이랑 정면에서 붙고 싶지 않아. 체류를 두고 겨우 타협 본 지주에게 의심받고 싶지도 않고.]
[…들을.]
[응?]
[…들을 빌리지. 거기에 나태에게서 악몽의 조각을 사는 것도 맡기겠어.]
[…어머나. 그것의 대가는 뭔지 알고 말하는 거야?]
[하. 네놈과 거래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는 건 알지.]
[그런데도 하려고?]
[…그래.]
레비아탄은 이 선택이 올바른지 아닌지 굳이 깊게 따지지 않았다.
[놈을 골탕 먹일 수 있다면, 이깟 것 아깝지도 않아.]
질투와 시기야말로 현명함과 가장 거리 있는 감정이었다.
* * *
콰앙!
나는 마력을 한도까지 박박 긁어 넣은 일격을 마지막으로 검을 내렸다.
마땅하게도. 사방으로 쏘았던 공격엔 그 어떤 것도 걸리지 않았다. 정말 하늘에 없는 건지, 내 기술의 사거리가 부족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력이 부족하신 거라면, 제가 이어 해 볼까요?”
“…댁까지 저 또라이 짓에 동조하지 말라고요, 이 망할 샌님아.”
“이게 왜 또라이 짓인가! 네놈이야말로 악마기사께서 하신 일을 모욕하지 마라!”
“그럼 하늘에 다짜고짜 저, 저, 저걸 쓰는 게 정상입니까!”
“하, 하늘에 적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아니, 내가 한 짓을 두고 왜 너희 둘이 싸워.
나는 만두 두 마리의 투닥거림을 보고 얕은 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방금 전 행위로 인해 소멸해 버린 나무를, 그로 인해 다섯 평짜리 공터가 되어 버린 주변을 살폈다.
안개조차 풍압에 다 밀려 나가, 시야는 탁 트여 버린 채다.
나 참. 기왕 스킬 쓰는 거, 범위는 좁히고 사거리는 늘리는 연습도 겸했건만 그래도 이 꼴인가.
아무래도 스킬 마스터는 아직 멀었나 보다.
“오오! 저번에도 봤지만 역시 신기하다. 어떻게 마력을 그렇게까지 뭉치나?”
반면, 버서커는 내 무식한 행위를 두고 오히려 감탄했다.
“나도, 나도 쓰고 싶다!”
단순한 성정에는 직선적이되 파괴력이 엄청난 방금 공격이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음, 이렇게? 이렇게?”
그렇다고 그걸 한 번에 따라 하려 들면 내가 서러워지지 않을까?
나는 마력을 어떻게든 뭉쳐 내는 버서커를 주시했다. 손에 쥐똥만 한 빛을 맺은 그녀는 소위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는 얼굴이다.
퍼엉!
“프하!”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버서커는 이 기술을 쓸 수 없다.
“마력이 안 된다…….”
마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최소치조차 충족 못 할 정도로.
“우우.”
완성되지 못한 마력의 구가 터졌음에도 버서커는 아무런 타격 없다는 양 굴었다.
실제로 그녀의 허연 손바닥에는 조금의 상처도 없었고 말이다. 가죽이 두꺼운 건지 마력이 그만큼 적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어떻게 하면 너처럼 마력이 많아지나?”
글쎄다. 내게 있어 마력과 체력은 레벨업하면 차곡차곡 늘어나는 거라.
수련으로 늘릴 방법은 나도 알지 못하는데. 있으면 나도 좀 하고 싶은걸? 공짜 스탯 상승 못 참지.
“마력량은 전적으로 타고나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엑. 그런 건가?”
“예. 수련을 하면 쌓이기도 한다지만, 유의미한 변화는 없다고 압니다.”
…그런 거야?
그럼 봉인구 뺐을 때 내 마력이 두 배 가까이 되는 건 무슨 이유지.
감 잡히는 구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으음. 그건 가능하면 아니길 바라는지라. 이건 일단 없는 셈 칠까.
그냥 이 캐릭터가 많이 타고난 것으로.
“그거 아쉽군.”
그사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거란 이야기에 버서커는 부루퉁해했다.
날뛰진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녀도 불가능은 불가능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그럼 이제 어쩌실 겁니까요. 하늘에 없는 것 같은데…….”
반면 마력이고 뭐고 데브는 앞일을 걱정했다. 확실히 중요한 문제였다.
단서들을 토대로 혹시 하늘에 있는 건 아닐까 하며 내지른 건데, 결국 없다는 것─최소한 내 공격에 맞은 건 없었다─으로 결론이 났으니까.
하면 이제 남은 선택지는 두 개다.
“돌아가는 게 어떨─.”
안 되는 걸 인정하고 돌아가거나.
“악마를 두고 가진 않겠다.”
인정은 개나 줘 버리고 계속 숲을 뒤지거나.
참고로 컨셉은 무조건 후자다. 이쯤 되면 악마 새끼가 ‘쫄?’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절대 못 물러나.
“와하하핫! 가자!”
“네! 계속 탐색하지요!”
“으아아아.”
으하학.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