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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38화 (138/389)

◈138화 이야기가 아니기에 (6)

“어디 다녀왔나?”

나는 실을 사자마자 바로 신전에 돌아왔다.

가게가 하층에 위치한 덕에, 왕복만 1시간이라 몰래 다녀온다는 계획은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아크메이지가 식당 겸 거실에서 차를 기울이고 있었다.

─누구 왔어?

그녀 앞엔 구슬 같은 것이 놓여 있었는데, 아무래도 소통용 물건인가 싶다. 거기서 흰바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악마기사니 걱정 말게.”

─아하. 아침부터 부지런하네.

추궁당하진 않을까 걱정하던 것에 비해 쉬이 넘어갔다. 의외라면 의외고, 아니라면 아닌 일이었다.

아무렴 휴일 아침 어딜 다녀왔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보편적인 건 아니지 않은가. 단지 어제 친 사고가 있고, 기타 특징이 있다 보니 지레 찔린 것뿐이지.

나는 그것을 티 내지 않고자 노력하며 거실을 가로질렀다.

이곳 숙소는 일반 가정집처럼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연결된 구조라 방에 가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마저 말할게. 이번에 먼저 이송했던 마력뱀 있잖아. 걔네들 이야긴데…….

하나 이 이야긴 좀 넘기기 그런데.

나는 자후카야 이야기가 나오자 문에 댄 손을 멈췄다. 악마와 연관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주제라, 안 듣고 들어가기 참 애매했다.

그걸 눈치챈 아크메이지가 말없이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달그락.

─결론만 말하자면 아직까진 발견된 특이 사항이 없어.

나는 거절 대신 묵묵히 그녀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네 마리밖에 없어서 애들이 조심조심 다루느라 아직 제대로 된 실험을 못 해 봤거든.

이미 끓여 둔 차가 있는 상태임에도, 아크메이지는 굳이 새 물을 올렸다. 잘 마른 찻잎이 물에 퐁당퐁당 잠겨 들었다.

우러나는 색이 다른 게, 다른 찻잎으로 끓이려나 보다.

─알아낸 것도 기껏해야 결계처럼 물질에 담기지 않되 허공에 고정해 둔 마력을 먹는다는 것. 일정 거리 안이라면 물질에 담겨 있든 아니든 마력의 위치를 가늠하고 그쪽으로 향한다는 것 정도?

그사이 흰바람은 재잘재잘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 저번에 잡았던 그놈은 마기의 잔향이 남았다고 한 반면, 이번 애들은 그것도 없더라. 며칠간 관찰해 본 결과, 애초에 마기 자체를 품은 것 같지가 않아. 마기를 마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괜히 앉았나 싶을 정도로, 우리 입장에선 별 소득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렴, 마기를 품고 있지 않다면 굳이 쫓을 이유가 없다. 마력을 먹는 거야 마법사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고.

“마력의 밀집에서 태어났다고 다 마기를 품는 건 아닌가.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그러면 뭐 해? 마력을 먹는 능력은 다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 이러다 죽어.

“그러지 않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는 게 아닌가. 괜찮네.”

─짜아아즈으응나아아아.

그런 이유에서 나는 우러나는 차를 지긋이 보았다. 흰바람이 징징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기도 하고, 달리 볼 게 없기도 해서 멍하니 고정한 시선이었다.

한데 어째 풍기는 향이 내가 좋아하던 차랑 비슷하다?

“수고하게. 대삼림 쪽은 아직인가?”

─아직 자타브의 영역으로 이동 중이라 들어온 보고는 없어. 그나마 산군이 이야기해 준 건 있는데… 일단 산군 본인은 마기를 품고 있긴 하다더라. 본인도 불쾌해서 체내의 마기를 전부 마력으로 바꿔 둔 상태라고 하고.

“본인의 태생을 불쾌하게 여긴다라. 그건 그것대로 신기하군.”

─아마 완벽히 마기로 변한 마력 속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그런가 봐. 본인이 태어나고 케케묵은 마력을 전부 흡수했는데, 마기보다는 조금 옅었다니까.

나는 이미 차를 끓여 놓은 마당에 굳이 새로운 차를, 그것도 내가 유독 마음에 들어한 차를 끓인 게 과연 우연인지 고민했다.

티가 났나. 근데 내 입맛을 굳이 맞춰 줄 이유가 아크메이지에게 있진 않을 텐데.

“…그런 거라면, 자후카야가 마기를 갖지 못한 것도 설명될지 모르겠군. 마력의 변질 정도에 따라 마기를 품고 태어날지 말지가 갈리는 건가?”

─나도 같은 생각이야. 자타브가 뱀을 키우는 곳을 확인해 봐야 확신할 수 있겠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그렇겠지.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그만 사고를 멈췄다. 아크메이지가 내 입맛을 챙겨 주든 우연이든, 나는 그냥 감사히 받아먹으면 됐다.

─이건 다시 확인해 보고… 오늘 언제 올 거야?

“오늘 검사 진행할 건가?”

─그럼 해야지. 너희가 언제 출발할 줄 알고 검사를 미뤄?

“…배려는 고맙군.”

대충 들은 대화는 뭐, 요약한다면 앞으로 뒈지게 고생할 거란 이야기밖에 안 되니 더는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다.

아무렴, 앞선 대화가 마력 먹는 몹이랑 마력을 먹다 못해 마기도 품는 몹, 둘 다 나올 거란 예고가 아니면 뭐겠는가.

산군을 고려하면 지성체에서도 저런 케이스가 나올 듯하니, 피아 구분 잘하란 심화 문제도 분명 등장할 거다.

“들었나, 악마기사?”

한편, 차가 다 우려진 듯 아크메이지가 차를 옮겨 담으며 말했다. 흘려들었다고 해서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은 건 아니기에 나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시간.”

─편할 때 와. 낮에 오면 더 좋고.

“그럼 오늘 식사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네. 어떤가?”

밥 먹고 가면 나야 좋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메이지가 그것으로 일정을 정리하며 흰바람과의 통화를 끊었다.

“자, 들게.”

대신 그녀는 찻잔을 내밀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으려 했다.

휙.

“……?”

내가 잔을 건네받기 직전, 아크메이지가 찻잔째로 손을 회수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랬을 거다.

“받게.”

무슨 장난인가 생각하려니 아크메이지가 잔을 또 내밀었다. 그러나 내가 받으려던 차, 그녀는 또다시 잔을 거둬 갔다.

“…뭐냐.”

뭐냐. 진짜 뭐냐. 아크메이지님 저 조련하세요? 똥개 훈련?

“고맙다는 말 좀 한번 해 보게.”

…농담이었는데 정말로 조련이었어?!

“뭔 소릴─.”

“자네한테 고맙다는 말 한번 들어 본 적 없어서 그렇네.”

그, 그, 그렇긴 한데. 컨셉상 한 번도 내뱉은 적 없긴 한데.

나는 쏟아지는 팩트와 그에 대항하는 컨셉 사이에 낑겨서 눈을 깜빡였다. 여기서 눈동자를 흔들 순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맙다는 말만 해 보게. 그럼 주겠네.”

근데 이건 좀! 이건 좀!!

나는 어안이 벙벙함과 상황에 대한 우스움, 아크메이지가 갑자기 왜 이러는가에 대한 고찰, 아무리 컨셉질의 여파라지만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래야 하나 싶은 현타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던져졌다.

“하.”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앞에는 컨셉이 있었다.

“내가 네 개새끼인 줄 아나 보군.”

아니, 컨셉이 어린애도 아니고 무엇보다 고작 차 가지고 자존심을 굽히겠냐고. 먹거리에 진심인 설정도 아닌데.

거기에 본체 입장에서야 스트레스가 풀린 상태지, 컨셉은 지금 상태가 좋을 수 없다.

항상 가진 악마 이슈에, 이번에 대삼림에서 겪은 개자식에, 도시로 돌아와선 버서커가 휴식을 방해하는 바람에 한판 붙기까지.

그뿐인가? 산군으로 인해 가치관 문제도 건드려졌다. 즉, 좋은 반응이 나오려야 나올 수 없는 거다.

“내가, 완전히 우습게 보였어.”

해서 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표정은 당연히 엄청나게 화난 쪽으로 만들었다. 이걸로 컨셉 속의 아크메이지 호감도는 -100이다.

물론 본래 호감도라고 해서 + 쪽은 아니다.

“네놈이 지금, 악마를 빌미로 내 목줄을 쥐고 있노라 착각하는 모양인데─.”

탁탁탁!

마지막으로 내가 입꼬리와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언성을 높이려던 찰나, 숙소 바깥에서 기척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게 꼭 도망쳐 오는 것 같기도 하고, 공격을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쾅!

내 다리가 재빨리 책상을 걷어차고─공간 확보를 위해 밀어내고자 하는 의도였다─검에 손을 올렸다.

“무슨…….”

내 행위에 아크메이지 또한 지팡이부터 치켜들었을까. 그녀가 엉겁결에 일어남과 동시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들어온 이가 조금만 더 힘을 주었다면 분명 문짝이 뜯겨 나왔을 것이다.

“허억, 허억.”

그러나 상대가 거칠게 들어오든 말든,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들어온 건 고기만두였다.

안색이 다소 파리한 고기만두.

“자네…….”

“그─.”

데브면 경계할 필요가 없다. 나는 검 자루에서 손을 떼곤 살짝 벌렸던 다리를 도로 돌렸다. 문을 짚고 숨을 몰아쉬던 데브가 막 입을 열었다.

“그.”

“그?”

아니, 열렸다가 말았다.

“…아닙니다요.”

누가 봐도 무슨 일 있구만, 뭐가 아니란 거야.

나는 어물어물 말하길 포기하는 이를 두고 눈썹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데브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나도 묻질 못하므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문제는 데브로 인해 산통이 다 깨져서 아크메이지랑 기싸움을 더 이어 나가기도 뭐하단 것이라.

결국 나는 대각선으로 쭉 밀려난 책상을 지나, 데브가 들어온 문으로 향했다. 책상이 밀려날 때 차들도 다 엎지른 상태라, 물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도 했다.

숨을 막 고르던 데브가 나가는 나를 한 번, 아크메이지를 한 번 돌아보았다.

“그, 무슨 일 있으셨…….”

어, 있었어. 그렇지만 설명은 아크메이지에게 들으렴.

나는 표정을 딱딱히 굳힌 채 데브를 완전히 지나쳤다.

갈 곳? 글쎄다. 슬슬 밥 때도 됐겠다, 저 상황에서 밥 먹을 순 없으니, 적당히 맛있는 곳 찾아서 한 끼 때우고 마탑 가면 될 것 같다.

눈치 안 보고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먹어야지.

* * *

“진짜 무슨 일 있었어요??”

데스브링거는 아침만 해도 기분 나빠 보이지 않던 악마기사의 얼굴과, 막 지나간 얼굴을 대조하며 다급히 물었다.

그 역시 기분이 썩 좋았던 상황은 아니지만, 악마기사가 저런 인상을 하고 있으니 제 화가 도리어 다 달아났다.

“그냥 평상시랑 비슷했네. 내가 좀 실수를 했을 뿐이지. 그보다 무슨 일 있는 건 자네 같네만.”

“이, 있긴 했는데.”

방금 전이야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악마기사가 있어서 그랬던 것뿐이다. 본능적으로 그에게 말하면 안 된단 판단이 들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험악한 악마기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 꽤 충격이었던 걸까. 생각해 둔 모든 문장을 까먹어 버렸다.

데스브링거는 달려오며 난 것인지, 아니면 악마기사의 살기로 인해 난 땀인지 모를 것을 쓱 닦았다.

“진짜 뭐 하셨길래 나리 심기가 저리 된 겁니까? 아까까진 괜찮아 보였는데.”

“별건 아닐세. 그가… 우리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제법 많은 것을 인내하는 편이지 않나. 그것이 악마를 의식한 것인지 우리와 말도 섞기 싫어하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그래서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누그러든 듯해서… 그 거리감을 재 볼 겸, 슬슬 관계를 제대로 정립해 볼 겸 그 첫발을 내디뎌 봤네. 보다시피 이렇게 됐지만. 아직은 일렀던 모양이야.”

“법사 나리이이…….”

듣고 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발을 내디뎠기에 악마기사가 저리 분노했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거쳤어야 할 일이지 않나.

목표가 부합하여 모인 관계라곤 하나, 모두가 악마기사의 눈치를 살피는 사이는 어딘가 기형적인 게 맞다. 완벽한 수평까진 아니어도, 상호 간의 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변화는 분명 필요했다.

“그보다 자네는, 괜찮나? 혹 누군가에게 공격받은 건 아닌가?”

“공격… 은 아닐 겁니다요. 아마도.”

“아마도?”

걱정이 가시니 이제 제 문제만이 남는다. 데스브링거는 아크메이지의 눈길을 받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진 않았으니까요.”

“…상해를 입지 않았단 게 피해를 입지 않았단 말과 동일하진 않지. 무슨 일인가.”

글쎄.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할까.

데스브링거는 아까 마주쳤던 이를 떠올리고, 그가 지껄인 말을 떠올렸다.

『현저히 떨어지는 무력에 분하단 생각, 해 본 적 없어? 동경해서 따라왔는데, 정작 도움이라곤 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환멸이 난 적은?』

“…모르겠습니다.”

까만 혀가, 그의 귀에 새겨 넣은 말들을 되새겼다.

『너무 경계할 필요 없어. 난 그냥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솔직히 짜증나잖아. 그 맹한 사제가, 답답하기 짝이 없는 아이가 너보다 더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건.』

“그냥, 그냥…….”

『하지만 난 널 도울 수 있어. 네가 바란다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그냥…….”

『그래, 난 널 용사님보다 더 강해지게 해 줄 수 있어.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건 그가 대삼림에서 구해 온 독보다 더욱 지극한 독의 낱말이었다.

“하 씨.”

되새김질할 수록 제 처지만 처량해진다.

그것을 알기에 데스브링거는 머리를 탈탈 털고는 눈을 꼭 감았다.

“그냥 악마에게 홀린 것 같습니다요. 그게 정말 악마였는진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그냥, 지껄이고 간 말이 딱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사기꾼 내지… 뭐 그런 거요.”

“대체 무슨 소릴 들었기에…….”

“별거 아닙니다. 용사님이 질투 나지 않냐느니, 널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느니 이딴 말만 하고 갔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그는 이런 것에 넘어갈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이런 걸 숨길 정도로 생각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고.

너무 당황했던 나머지, 그림자를 붙일 생각도 못한 건 멍청한 짓이 맞겠지만 적어도 저런 사탕발림에 속아 이상한 짓에 손 거들진 않을 거란 말이다.

“자네가, 용사의 동료인 걸 알았다고?”

“예에. 그 지점만 아니었어도 사기꾼이겠거니 싶었을 텐데. 역시 수상해서 말입니다요. 거기에 검이 반응하기까지 했단 말이죠? 착각인지 뭔지, 고래 같은 것도 본 기분이고.”

물론, 그래.

그 제의에 조금이나마 동했다는 말은 아무리 그라도 고백할 수 없었다.

“…보통 사안은 아니군. 일단 이건 모두에게 비밀로 함세. 이 얘길 들었다간 간신히 갖게 된 휴식이고 뭐고 뛰쳐나갈 군상들이니.”

“예엡.”

타고나길 용사였고 답답할지언정 언제나 올곧은 용사는, 볼품없는 고아 도적 놈이 질투해도 될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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