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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36화 (136/389)

◈136화 이야기가 아니기에 (4)

“으하하하! 전우여! 땀을 흘린 후의 기분이 어떤가! 개운하기 짝이 없지 않나!”

나는 핫핫핫 웃는 버서커를 보며 눈을 흘겼다.

오랜만에 즐겜하듯 싸우고 나니 마음이 후련한 건 사실이다마는…….

“…지금 웃음이 나오는가?”

혈압이 치솟다 못해 어딘가 허탈해 보이는 아크메이지를 앞에 두고 있자니, 즐겜하느라 빼놓았던 양심도 다시 일을 해서 말이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눈동자를 돌렸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컨셉으로서도 이번 건 좀 과하긴 했다.

“이야. 알차게도 부쉈네…….”

그도 그럴 게… 우리 둘의 싸움으로 인해 마탑과 마을 사이를 잇던 다리가, 호수 위에 있던 다리가 거진 완파되었다.

난간부터 기둥, 발판까지 어디 한 구석 성한 곳이 없도록 변한 것이다.

심지어 어느 구간은 부서지다 못해 침수되어 끊기기도 했다. 마탑 본관에 피해가 없는 것이 유일한 다행이었다.

애초에 그쪽에 피해 안 가도록 내가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어쨌든.

“와중에 신전 쪽도 사람을 보냈네. 음! 하긴 그 난리를 보고 사람을 파견 안 하기도 어렵지!”

덕분에 이 자리엔 마탑 인사들뿐 아니라 도시 경비대, 모험가 길드에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모험가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뛰쳐나온 신관들까지 아주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구석에 앉아 있는 나와 버서커를 보는 중이고.

참고로 왜 보기만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무서워서 그런가? 다들 ‘네가 가라’, ‘아니, 네쪽이 가라’ 이러면서 투닥거리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은데.

“…이유는 벌써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묻겠네. 왜 싸웠는가?”

그로 인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아크메이지였다. 배를 타고 건너온 그녀는 해탈한 눈으로 우릴 응시하며 물었다.

그러나 염치가 있다면, 저쪽이 시비를 먼저 걸어서라고 말해선 안 된다. 시비라 여기지도 않을 뿐더러, 진짜 시비더라도 내가 일부러 받아 준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닌 까닭이다.

내가 원했던 건 아닐지언정 싸움에 열중하다가 이 꼴이 난 것 또한 부정해선 안 될 일이고.

“베르세르크는 지금 싸우고 싶었다! 그래서 싸웠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 침묵한 나와 다르게,─이것도 본체 이야기지, 컨셉은 아니다─버서커는 당당히 외쳤다.

너무 당당해서 누가 보면 우리에게 죄가 없는 줄 알지도 모르겠다.

“투사 나리이이…….”

“그건 자랑이 되면 안 되는 내용 같습니다만…….”

그러나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뒤늦게 달려와 우리를 말리려 들었던, 그러나 다리가 끊겨서 허망히 싸움을 관전해야만 했던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애써 외면했다. 아카타는 더더욱 외면했다.

철없는 어른이란 게 들킨 기분이라─기분이 아니라 진짜 들킨 거라서 더─엄청 쪽팔렸다.

그, 그치만 캐붕 내면 난 목숨이 날아가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준 거니까? 물론 즐기기도 했지만 나도 나름 피해 줄이려 노력했으니까?

참작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악마기사, 자네는?”

그래요, 없겠죠. 아무리 컨셉이라도 이 정도 단위의 사고가 용납될 리 없잖아. 으아아.

“말 안 할 건가?”

나는 내게 물음을 걸어오는 아크메이지를 힐끗 보았다. 당연하지만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은 없었다.

“악마기사.”

…그, 그래도 저 좀 억울한 건 좀 있는데.

전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요.

버서커가 난간을 걷어차는 것으로 박살 낸 시점에서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이동하려고도 했고.

버서커가 워낙 싸움에 능해서 몸을 빼는 데 실패했을 뿐이지, 난 최후의 수단으로 내 몸을 호수에 던지기까지 했어!

남들한테 피해 안 가게 하려고 호수에 자진 입수했다고! 사람들 휘말릴 것 같으면 샌드백도 자청했고!

무엇보다 다리 부순 건 실질적으로 버서커인데! 나는 진짜 부순 거 얼마 없는데!

“악마기사!”

…하지만, 예. 그렇죠. 그런 버서커와 싸운 게 저인 이상 저에게도 책임이 있죠……. 심지어 내가 저 싸움에서 재미를 못 느꼈던 것도 아니고.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탈주를 용인하지 않는 거였는데……!

“…얼마냐.”

“……?”

“보상하겠다.”

문제는 컨셉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돈이면 다 된다는 거지 같은 마인드는 아니지만, 얘가 자존심 때문에라도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겠냐고.

거기에 내가 설정한 컨셉의 과거를 감안하면, 얜 잘못을 인정할 일도 드물고 그로 인해 사과하는 법도 못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암, 악마만 쥐어 잡는 인생에서 이런 사고를 칠 일이 얼마나 있었겠나. 사고를 쳐도 자잘한 사고를 쳤을 테고, 그런 건 대부분 위협이나 보상으로 넘겼을 게 분명한데.

그러니 반성 따위, 어림도 없다.

그건 캐붕이었다.

“지금… 내가 배상 때문에 이러는 것 같나. 배상이야 당연히 진행되어야 할 절차긴 하지만, 세상엔 그것보다 우선돼야 할 게 하나 있는 법일세.”

그렇지만, 그렇지만 역시 괴로워! 양심 아파! 양심 아프다고!

나는 조곤조곤 쏟아지는 아크메이지의 말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무렴, 내가 설마 모르겠나? 보상보다 사죄가 우선임을 내가 모르겠어?

나도 사실은 정말 정말 속죄하고 싶다고!

“악마기사.”

그런데 컨셉이 고집스러운 걸 어떡해! 캐붕 내면 당신들이 나한테 할 짓을 아는데 내가 여기서 어떡하냐고!

나는 속으로 무력하게 울며, 입은 앙 다물었다. 사죄하고 싶은데 사죄를 못 하게 만든다는 점이 미치도록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컨셉이고, 그러므로 짊어져야 할 죄책감이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했다.

억울함에 눈이 뜨뜻미지근해졌다.

“뭐가 문젠가? 베르세르크도 보상을 하겠다! 베르세르크 돈 있다!”

그사이, 버서커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아크메이지의 표정은 찰나간 다양한 각도로 변하기 시작한다.

헛소리를 듣는 사람에서, 마치 기이한 진실을 깨달아 버린 사람으로.

“…그게 아닐세. 이럴 땐… 이럴 땐 변상을 이야기 하기 전에, 용서를 먼저 구하는 걸세. 그게 도리일세.”

그 잠깐 사이에 뭘 자각하셨는지는 몰라도, 아크메이지가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세 살배기 아이만도 못한 인성임을 깨달으신 모양이다.

“사과는 보상으로 하는 것 아닌가?”

“배상은 꼭 물질적인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네. 어떤 순간은 진심 어린 말로 속죄할 수도 있지. 물론 이 경우는 규모가 크다 보니 변상도 해야겠네만.”

“그런가… 하긴, 언니도 잘못하면 먼저 사죄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아크메이지가 어르고 달랜 끝에 베르세르크가 머리를 벅벅 긁다 말고 일어났다. 아직 물이 다 마르지 않은 탓에 물방울 몇 개가 튀었다.

“좋다! 사과하겠다!”

“좋네. 그럼 일단 경비대에 가게. 그들이 묻는 것엔 다 대답해 주고.”

“알았다!”

죄책감을 같이 짊어져 줄 동지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제 혼자 남아 버렸다.

“악마기사.”

자, 잘못했다고 해? 해??

하지만, 하지만 반성하면 캐붕 소리 듣는 거 아니야? 너무 순순히 말 들었다고 미심쩍어하는 거 아니야?

슈뢰딩거의 사과에 내 눈이 팽글팽글 돌았다.

이 사과(Apology)를 열면 캐붕으로 인한 멸망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고양이가 내 뇌에서 사과(Apple)를 가리키며 말을 읊조렸다.

“저, 나리.”

그때 슬쩍 다가온 데브가 아크메이지에게 무슨 쪽지를 건넸다. 글자가 비치지 않는 재질이라 뭐가 적혀 있는진 모르겠다.

단지 아크메이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것만 확인 가능할 따름이었다.

“…일단, 지금은 넘어가지. 다만 이따 경비대가 와서 사정을 물을 땐 제대로 협조해 주길 바라네.”

뭐, 뭐야. 뭘 보여 줬길래 아크메이지가 물러나지. 무슨 사건이라도 터졌나?

나는 뒤돌아,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이를 두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반성하고 싶은데 반성도 못 하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고.

서럽다.

* * *

“…이게 정말인가?”

한편, 아크메이지는 쪽지 내용을 두고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암녹색 눈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군.”

가족. 가족인가.

가족에 대해 그는 회상하고 있었던 건가. 그것을 베르세르크에게 방해받은 것이고. 그리고 그게 싸움으로…….

“확실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고서야 기사 나리가 그림으로 그릴 리가…….”

“그렇겠지.”

왜 갑자기 가족 생각이 났는진 크게 고심할 필요도 없다.

아카타에게 가족을 잃은 자신을 겹쳐 보았을 수도 있고, 애초에 가족이란 것은 언제든 떠올라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니.

다만, 다만 그래.

『죽여라! 이미 친혈육마저 살해한 몸, 아이들의 피가 더해진들 달라질 건 없으니!』

그 말을 들은 주제에 그녀가 여기서 어찌 더 책망하겠나? 악마기사가 잘한 건 아니라지만, 친혈육을 죽였노라 고백한 주제에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를.

그녀가 어떻게.

“일단, 자넨 악마기사를 지켜봐 주게. 거기서 더 사고 칠 것 같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넵.”

아크메이지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며 청년을 돌려보냈다. 저 눈치 좋은 이라면 악마기사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고 관찰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긴 나눴어?”

대신 그녀는 흰바람에게로 향했다. 뒤처리를 위해 이야기를 나눠야 할 대상 중 1순위가 흰바람이었다.

“…일단, 그를 대신해 내가 대신 사의하지. 보상도 내가 대신 값을 치르겠네.”

“왜? 아무리 같은 일행이라지만 네가 이것까지 처리해 줄 이유는 없지 않나? 악마기사가 돈이 없을 리도 없고.”

“…그렇지. 내가 처리해 줄 이유는 확실히 없네. 수리 비용도 아마 그라면 낼 수 있을 테지.”

하지만, 하지만…….

아크메이지는 반성할 것을 채근하자 눈가를 옅게 붉힌 이를 곁눈질했다. 다리를 산산조각 낼 무력을 가진 주제에 고작 사과하란 말 하나에 다친 소년처럼 굴던 얼굴을 되새겼다.

정말이지. 색안경을 빼고 본 이는 이다지도 어리고 불완전했다.

“하나 아이를 책임지고 보호하는 건 어른의 의무가 아닌가.”

몸은 다 컸으면서 정신은 어찌 저리도 어릴까.

그렇지만 그가 흘린 발언들과 행동을 모아 짜 맞추거든, 그것엔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어 더욱 애잔하다.

아크메이지는 이제 더 이상 악마기사에게 화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아이?”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니 무시하게.”

“아니, 뭐. 어려 보이긴 하는데… 아이치곤 너무 강하지 않나?”

“육신의 강함과 정신의 강함은 별개지. 자네도 알잖나.”

“무어… 그렇긴 해.”

아마도 높은 확률로 어린 시절에 가족을 잃었을, 그것도 악마에게 잠식된 채 제 가족을 죽였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어찌 화를 내겠는가.

저 나이 먹고도 미성숙한 어른이라며 혀를 차기엔 그가 짊어진 과거가 너무도 무겁다.

“그렇다고 다 큰 어른 놈의 뒤치닥거리를 전부 해 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라고 다 그럴 생각은 없네. 단지 저이만 그런 거지.”

“그러니. 뭐 그래.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고 우린 보상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저 사람들은 다를 거야. 알지?”

“걱정 말게. 변명도, 사죄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라면 잘하겠지만.”

물론, 그렇다고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결여된 채 자라서 사과조차 할 줄 모르는 것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넘기는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니던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게 아니라 그 결핍을 채워 줘야 한다. 그게 인간의 그리고 조금 더 산 자의 도리였다.

“저, 아크메이지님. 악마기사는…….”

“아, 인퀴지터. 걱정 마시지요.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 아무리 악마기사라지만 이번 일은 체포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피해자인 마탑이 엄벌을 요청하지 않는 한, 벌금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제가 용사라서 그런 거라면, 그건 권력의 남용이…….”

“아, 그런 건 절대 아니니 걱정 마시지요.”

당연히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당장 용사의 사회 교육만 해도 어렵기 짝이 없으니.

그러나 난도가 높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아크메이지는 머릿속 한편에 악마기사의 사회화 교육 일정을 조금씩 짜 두었다.

지금까지는 성격이 글러 먹어서 그런 거겠거니 방치했지만, 이유를 알아차린 이상 더는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오한이.”

“예? 나리, 뭐라 하셨습니까?”

“아니다.”

다만 그로 인해 누군가가 오한에 가까운 불길함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린 것은, 안타깝게도 아크메이지에겐 닿지 않을 이야기였다.

* * *

나는 갑자기 짓쳐든 불길함에 몸을 살짝 떨었다. 이게 어디서 기인한 건지는 짐작 가는 데가 너무 많아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리, 진짜 안색이 안 좋으신데─.”

“아니라고, 했다.”

아니야… 이건 그냥 내 죄책감의 산물일 뿐이야…….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웅크렸다. 물론 절대 궁상맞게 쪼그리진 않았다. 이 이상 가오를 잃을 순 없었다.

【저…….】

그때 아카타가 슬며시 다가왔다. 소녀의 손에는 아까 받았던 실팔찌와 동일한 것이 들려 있다.

【혹시 몰라서 두 개 만들었는데…….】

어, 그. 나 또 주는 건가? 아니면 아까 잃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건네지는 팔찌를 보았다. 호수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과정에서 감정도 많이 털어 낸지라, 괜히 울컥하진 않았다.

단지 좀, 심정이 복잡했다. 아까와 비슷한 결이었다. 감정의 농도가 훨씬 옅을 뿐이지.

“…꼬마.”

그래도 덕분에 침착한 태도로 실팔찌를 받을 순 있었다.

뭐, 이미 인벤토리에 하나 있다고? 그러나 저 애가 또 주는 이유가 잃어버렸다는 오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 않나.

그리고 오해가 맞다고 해도… 여기서 새삼 안 잃어버리고 잘 가지고 있음! 하면서 꺼내 보여 주긴 좀. 머쓱함이 좀.

“…….”

나는 아이를 불렀다가, 그냥 실팔찌만 가방에 잘 넣었… 넣으려 했다. 아이가 약간 상처받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껴야 할 각이지?

근데 이걸 바로 착용하는 건 캐붕이 아닐까? 그 이전에 한 손으로 어떻게 팔찌를 차는데?

나는 차마 가방에 넣지도 끼지도 못한 채 그걸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가 슬쩍 다가와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직접 채워 줄 요량인가 보다.

내 왼손 손목에 실팔찌가 채워졌다. 목이 묶였던 순간이 생각나서 다소 꺼려졌으나 그래도 손이라서 버틸 만했다.

차마 이 상황에서 입을 열 자신은 없었지만.

지옥의 침묵이 나와 아이 그리고 얼떨결에 사이에 껴 버린 데브 사이에 내려앉았다.

“저…….”

그때 경비대원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아까 아크메이지가 협조하라던 게 아마 이걸 뜻했는가 본데, 내겐 아주 달가운 일이었다.

자, 어서 나를 이 어색함에서 구해 줘! 반성을 촉구하면 들어만 줄 테니 얼른 빠져나가게 해 줘!

“사정 청취는 거의 끝났습니다만, 그래도 말씀을 좀 해 주실 게 있어서…….”

아싸!!

나는 달달달 떠는 경비대원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상황 자체를 달가워할 컨셉은 아니기에 표정은 당연히 조절했다.

그 때문일까. 안 그래도 죽을 상이던 경비대원이 더 죽을 상을 했지만, 뭐. 표정만 이렇지 진짜 잡아먹진 않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어…….】

“따라가는 거 아닙니다요. 나랑 같이 있어요.”

【앗.】

나는 그렇게 경비대원과 함께 조사실로 끌려갔다.

다행히도 스케일만 클 뿐 젊은이들 간의 다툼으로 치부되어서 그리고 마탑의 전적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주민들이 ‘마탑이 또 마탑 했구나’라고 태연히 넘기는 바람에 그쪽 피해 또한 없어서 처벌은 크게 이어지지 않았다.

변상 비용 전체 부담과 휩쓸린 이들에게 피해 보상금을 지불하고, 추가로 벌금까지 내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된 것이다.

아주 다행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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