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이야기가 아니기에 (1)
휴델렌에 다시 돌아왔다. 현대 출신으로서 여기도 썩 문명권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좌제가 살아 있는 야만은 벗어난 것이다.
“물을 준비해라.”
“네.”
어쨌거나 마을로 돌아왔으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역시 이거다.
“기사들은 다 그런가? 어차피 흘릴 땀, 참 자주도 닦는군. 베르세르크는 귀찮아서 안 닦기로 했는데.”
“…너무 냄새나도 문제 되지 않습니까?”
“아, 어린 사냥꾼은 자주 씻을 수밖에 없겠군. 그렇지만 베르세르크가 사냥하는 것들은 냄새를 맡고 도망칠 정도로 코가 좋지 않다. 괜찮다.”
아니, 제발 좀 씻어. 같이 다니는데 내가 더 불편해.
나는 먼지와 땀, 온갖 것으로 더러워진 상태임에도 멀뚱히 식당에 앉는 버서커를 보며 속으로 이마를 팍팍 쳤다.
인퀴지터는 신전 출신이라고 몸을 정결히 하는 편이고, 아크메이지도 제법 자주 씻는다. 암습 전문이라서 그런가 데브도 냄새 지울 겸 종종 목욕했고 말이다.
그런데 버서커는. 버서커는…….
“저놈 것도 올려라.”
“엥.”
“네놈의 더러움은 천박한 언어로 충분하다.”
합류한 이후로 씻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참다 못해 버서커의 목욕물도 주문했다. 목욕물이 비싸긴 하지만, 어차피 여긴 신전. 내게 값을 청구하지 않는다.
하니 망설일 이유 있나. 데브가 날 따라 강제로 양치하게 된 것처럼, 버서커도 마을에선 반드시 씻게 만들고 말 것이다.
“어차피 더러워질 건데…….”
“어차피 배고파질 것, 밥도 처먹지 않길 바라지.”
씻어, 씻으라고. 사람이면 좀 씻어!
“베르세르크는 싫다. 나랑 싸워 주지도 않으면서…….”
“그럼, 네놈의 더러움을 참고 검을 맞댈 거라 생각했나?”
씻기 전에는 안 받아 준다. 가라.
“…그럼 씻고 나선 받아 주는 건가?!”
다행히 버서커에겐 그 정도 눈치가 있었다.
나는 대답 없이 눈만 슬쩍 감았다.
“베르세르크, 씻겠다!”
“아직 물이 준비 안 됐을 텐데요.”
“음, 씻으실 겁니까? 그럼 저랑 욕실을 같이 쓰시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저도 씻을 참이라 욕실을 미리 부탁해 둔…….”
“좋다!”
“샌님, 비위도 좋습니다. 전 저런 근육뇌랑 같이 씻으라면 못 씻을 것 같은데.”
“비위까지 필요할 게 있나?”
안 그래도 씻는 방법 모를 것 같아서 걱정이 됐는데,─이성이니만큼 나설 생각은 없었지만─ 다행히 김치만두가 자청해서 맡았다.
“그럼 저도 함께하지요, 인퀴지터. 아카타도 마침 씻어야 하고.”
【……? 제 이름은 왜……?】
“아. 【별거 아닐세. 씻자는 얘기였네. 자네도 함께하겠나?】”
하물며 아크메이지까지 더해서야. 저러면 씻었는데도 더러운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물 준비가 다 됐─ 예?”
“간다!”
“아, 저분 몫으로 준비한 물은 제 욕실로 보내 주십시오, 자매님. 그리고 베르세르크, 거기가 아닙니다! 반대쪽입니다!”
“그렇군!”
심지어 타이밍 좋게도 그쪽 욕실에 물이 막 마련되었다.
나는 골든 리트리버와 그에게 휘말린 주인이 우다다 달리는 환상을 피해 내 물이 마련되길 기다렸다.
“기사님, 준비가 다 됐습니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 *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혼자서만 몸을 푹 담그는 호사를 부렸을까.
나는 몸을 데우는 동안 슬금슬금 자라는 머리카락도 다듬고, 옷도 주물주물 빨았다. 자동 세탁 기능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찜찜했던 까닭이다.
직후엔 냄새 난단 말을 피하기 위해 때도 벅벅 밀었다. 칸칸이 남겨진 트라우마란 이다지도 짙었다.
뭐, 그래도 그 덕분에 쓸데없는 생각은 안 들더라.
나는 따끈해진 몸을 옷으로 칭칭 감싼 후 보들보들한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러운 것이 피부에 닿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수염 설정 안 하길 잘했지.”
별개로 수건에 얼굴을 부비다 보니 그런 잡념은 잠깐 들었다.
머리카락도 자라서 맨날 다듬고 있는데, 수염까지 있었으면 정말 귀찮음 지옥이었을 게 분명했던 탓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현실만 해도 그렇다. 나는 하루에 한 번 꼴로 면도했던 나날을 회상했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 편이라 하루면 턱이 까끌까끌해져서 매일 아침마다 면도했어야 했지. 정말 죽도록 귀찮았는데.
“데브 그놈이 내 수염 가져가면 좋겠네.”
수염 하니까 자연히 데브도 떠올랐다. 누군 하루 만에 그 모양이 되는데, 걔는 수염 기른다고 기른 게 그 모양인 까닭이다.
물론 본인은 엄청 짜증내는 중이긴 하다. 왜 이렇게 안 자라냐고. 체질이 뭐 이따위냐고.
내가 보기엔 걔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 같다마는, 어쨌든 참 배부른 소리였다. 수염 관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 그 소리 못 할 텐데.
어쨌거나 지금 쓰는 캐릭터는 수염이 안 자라는─혹은 존재하지 않는─몸이라 다행이다.
나는 애처럼 맨들맨들한 턱을 매만지며 식당으로 나갔다. 맨날 거기서 모이다 보니 반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안녀엉! 빨리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늦네!”
한데 그렇게 식당에 다다랐을까. 분명 마을 입구에서 헤어져, 마탑으로 갔던 흰바람이 깨끗한 차림으로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뭐냐.”
우리 아직 일이 남아 있나? 마력뱀은 결과 나오면 얘기하기로 하지 않았어?
설마 벌써 끝난 거야?
“보수 얘기 하러 왔지! 이런 건 원래 빨리빨리 끝내야 감정이 안 쌓이는 법이잖아?”
아. 보수.
완전 까먹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 본래 약속했던 것에다가 추가금으로…….”
나는 문 앞에 선 채 맹렬한 흰바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 베르세르크, 아카타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욕이 끝나고 식당으로 모이려나 보다.
딱히 약속을 한 적은 없으니, 그들도 결국 무의식적인 걸음일 테다.
“다른 걸로 받겠다.”
“응?”
나는 그 무의식적인 걸음에도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파티고 뭐고 컨셉질이 우선이다 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길들여졌나 싶어서.
“첫째로, 가슴보호대. 새것을 받고 싶다.”
“어렵진 않은데… 혹시 망가졌어? 망가진 거라면 얼마든지 고쳐 줄게.”
“사라졌다.”
“…그게 사라졌다고? 가슴에 항상 끼고 다녔을 거 아니야?”
각설하고, 계속 여기 서 있을 수는 없다. 난 적당히 의자를 골라 앉았다.
약점을 직접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약간 기분 상해 하는 연기는 덤이다.
“…부상을 입었을 때 사라졌다.”
말하기 죽어도 싫지만, 가져간 사람이 휘말릴 수도 있으니 말해야지.
나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린 채 짓씹듯 토로했다. 흰바람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거… 조금 이상하네에. 치료하던 사람이 가져갔나. 뭐, 사라졌다니 어쩔 수 없지만. 알았어! 새로 만들어 줄게! 잃어버린 건 저기 대삼림에서지?”
“그래.”
“그럼 추적도 겸사겸사 해 주지, 뭐. 내 발명품에 애꿎은 피해자가 나오는 건 별로 바라지 않으니까.”
오, 그건 좋은 소식.
나는 흰바람이 얹어 준 덤을 고맙게 받아들이며, 두 번째 조건을 말했다. 사실상 이게 마지막 조건이었다.
“두 번째로는 저 아이. 저 아이의 미래를 대가로 받겠다.”
흰바람의 눈이 오묘한 빛깔로 물들었다.
“…당신이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아? 저 아이가 당신에게 폐를 끼치면 끼쳤지, 뭘 해 주진 않았을 텐데.”
“내가 네게 이유를 알려 줄 필요 또한 없겠지.”
“…뭐, 그건 그렇지. 좋아. 그럼 저 아이가 성인이 되어 본인의 삶을 누릴 때까지, 우리 마탑이 신경 쓰는 걸로 값을 치르면 될까?”
“…하나 더 추가하지. 아이가 모르도록 해라.”
“하하. 애가 기분 나빠할까 봐? 배려가 참 깊네.”
흰바람이 새롭게 꺼낸 종이에 글자를 빠르게 적어 나갔다.
적당하고 부족함 없는 보호시설. 보호시설에서 거주하는 동안 아이에게 문제가 없는지 주마다 확인. 주마다 용돈 지급. 이후 아이가 독립할 즈음 추가 지원금. 지원은 아이가 모르도록 할 것.
“이 정도면 될까?”
“…확인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으나 이걸로 충분하다. 계약을 이행하다 보면 튀어나올 변수들을 신경 쓰는 건 컨셉에도 어긋나고, 내 본체도 지능 문제로 제법 힘겨운지라.
더불어 바깥의 목소리가 너무 가까워졌다. 슬슬 계약을 마쳐야 했다.
해서 나는 흰바람의 양심을 믿고 서명했다. 적어도 독소 조항이 없는 건 확인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마탑이 이행 안 해 봤자 나만 손해 보는 거지, 애한테 위협이 갈 건 또 아니니까.
“가끔 당신의 친절이 궁금할 때가 있어. 아무도 몰라줄 텐데 왜 굳이 그러는지.”
그런데 흰바람이 내게 물었다. 복도의 목소리는 거의 코앞이나 다름없다.
“그건 내가 묻지 않는, 당신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걸까?”
그리고 목소리가 문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나는 눈꺼풀을 감았다.
지금 말하면 바깥에 들리겠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겠지. 마침 아크메이지에게 내 손으로 죽인 혈육 어쩌고 저쩌고 했겠다, 관련해서 약이나 더 쳐 두자.
“죽은 자에게 금은 필요 없다.”
나는 부러 중의적인 어조로 말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설정상 가족들은 이미 다 죽어서, 그들을 위해서라도 돈 모을 이유가 없는걸?
거기에 컨셉 자체도 미래를 계획하지도 않으니 굳이 저축할 이유 없다.
더불어 나도? 가오 아니면 솔직히 돈이 필요 없는 입장인지라.
아무렴 온라인 게임 아닌 솔플용 게임에서 돈 필요한 경우가 어디 있다고. 기껏해야 장비 바꿀 때나 소모품 채울 때 정도인데, 그 정도 금액은 알아서 잘 벌린다.
나는 아직도 넉넉한 지갑 사정을 생각하며 심드렁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하. 그렇지.”
반면, 내가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대는 것과 반대로 흰바람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달칵. 흰바람이 뚜벅뚜벅 걸어 식당의 문을 열면 밖엔 멀뚱히 서 있는 이들이 있다.
“다들 점심 맛있게 먹어!”
아,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었나? 하긴 해가 머리 위에 떠오르기 직전에 휴델렌으로 진입했으니까.
신전까지의 이동 시간과 샤워에 걸린 시간 포함하면 조금 늦은 점심시간은 됐겠다.
“…먼저 왔군.”
살짝 젖은 아크메이지가 헛기침과 함께 말문을 텄다. 그러자 베르세르크가 배고프다 소리치며 우르르 들어왔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인퀴지터가 한 말은 심지어 그거였다.
나는 했겠냐는 의미로 그녀를 흘겨보곤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카타가 어디에 앉을지 갈팡질팡하다가 내 옆옆 자리에 앉았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차마 하지 못하는 듯 입술이 계속 떨어졌다가 붙기를 반복했다. 여기까지 오며 항상 보이던 모습이었다.
“악마기사, 약속했다! 밥 먹고 대련이다!”
와중에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린 채 달려온 베르세르크가 책상을 탕탕 쳤다.
어째 아크메이지와 인퀴지터가 옆에서 비명 지르는 듯했지만 조금도 신경 안 쓰는 게 그녀다웠다.
“여전히 천박하기 짝이 없군.”
그런데 보다 보니까 저것도 나름 정이 드는 것 같긴 해?
거기에 요즘따라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들고 이번에 겪었던 일이 정치랑 살짝 엮인… 더럽기 짝이 없는 내용이라 그런가.
단순하고 호탕한 버서커를 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약간, 돌아보니 선녀였다. 이런 느낌이었다.
뭐, 아이나 인질로 잡으며 협박하는 자식들과 비교하면 누군들 선녀가 아니겠느냐마는.
“뭐야, 거절이냐?!”
나는 거짓말을 한 거냐며 책상에 엎어지는 버서커를 두고 웃음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악마기사는 거짓말쟁이다.”
“베르세르크, 엄밀히 따졌을 때 악마기사는 밥 먹고 대련하시겠다 약속한 적이 없으십─.”
“징징거림도 더는 못 들어 주겠군.”
대신 웃음을 가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내 말을 두고 무언갈 눈치챈 듯, 버서커가 금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손봐 주지.”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오냐. 한판 붙자.
어차피 휴식이겠다, 할 일도 별로 없겠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괜한 생각에 빠지는 것보단 몸이 뻑적지근해지도록 대련 좀 하지 뭐.
“으하하!”
내가 드디어 대련을 받아들이자 버서커가 대소를 터트리며 기뻐했다. 전염되기 딱 좋은, 순박하고 해맑은 미소였다.
“…자네, 심장 찔린 지 얼마 됐는지 알고 하는 말인가?”
물론 옆에서 지켜보던 아크메이지는 십 년쯤 늙은 얼굴로 이마를 붙잡았다.
하긴 마법으로 치료했어도 그렇지, 죽을 위기 넘긴 지 며칠 안 돼서 대련한다고 하면 좀 미친 것 같긴 할 거다. 아니, 미친 짓이 맞지.
“……! 설마 취소할 거냐!”
“내가 그딴 것에 굴할 것 같나? 날 모욕하지 마라.”
근데 제가 합니다, 그 미친 짓.
나는 ‘몸을 안 챙기는 전형적인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보며 뒷목 잡는 동료’의 상황 중 전자를 담당하고자 뻔뻔히 나갔다.
백날 외쳐 봐라, 내 컨셉이 듣나!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나는 버서커와 짝짜꿍을 맞췄다. 아크메이지 혈압 오르는 소리가 BGM으로 뚱땅뚱땅 들려오는 듯했다.
으하학, 재밌다. 버서커 의외로 합이 맞는 동료일지도.
“…그럼 내일 몸 검사 해야 한다는 것도 아나?”
하지만 이 공격은 좀 예상 외인데.
음. 근데 딱히 상관없지 않나?
독의 후유증은 처음부터 못 느꼈고 심장 부상도 질병이 아니라 외상이니까. 흉터도 없이 나은 시점에서 완치 아닌가?
거기에 비가볼 부족에서 깽판 치던 순간도 그렇고 오는 내내 멀쩡한 걸 보면 몸에 이상이 있을 것 같진 않거든.
더불어 다칠 때마다 마력을 끌어 쓰느라 봉인구 박살 난다는 가설이 신경 쓰인다면, 오히려 이 대련은 거의 필수라고 본다.
버서커랑 한판 뜨는 데 내가 안 다칠 리 없고, 그렇게 다치면 오히려 가설 검증할 때 쓸 수 있잖아.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걸 아크메이지라고 모를 리 없다. 내 서늘한 눈빛에 아크메이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일로 미뤄 주기라도 하게.”
고작 한마디 섞었을 뿐이지만, 그녀는 말리기를 포기한 듯 보인다. 버서커가 아쉬움과 기쁨을 반반 섞어 OK 사인을 보냈다.
“하루 뒤에 할 거라면, 제대로 하지! 마력까지 써서!”
“아니, 그건…….”
“스스로 패배를 재촉하는군.”
오, 마력 사용을 허용하면 나야 좋지. 안 그래도 맨몸으로 싸우면 신체 능력이 조금 딸려서 걱정되던 참인데.
나와 버서커는 아크메이지가 얼굴을 짚으며 울고 싶어하든 말든 와하학 웃으며─마땅히, 난 속으로만─내일 대련 조건을 정했다.
말이 대련이지, 상대를 죽이지 않는 것 빼곤 실전이나 다름없는 형태였다.
“괘, 괜찮으신 겁니까?”
“자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도는…….”
“뭐야, 제가 제일 늦었습니까?”
그때 데브가 막 식당에 들어왔다. 이참에 옷도 다 빨았는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머리는 제대로 말리지 않아 군데군데 뭉쳐 있다.
“…어, 문제 있습니까요?”
그로 인해 말이 잠시 끊겼을까.
주위 신경도 안 쓰고 전의를 살살 흘리던 나와 버서커, 말리려고 노력을 다하는 아크메이지, 사이에 낑겨서 안절부절못하던 김치만두와 아카타 때문에 조금 달아올랐던 공기가 다시 평온해졌다.
더 뭐라 할 수 없는 분위기는 덤이다.
“…안 늦었으니 어서 앉게. 식사가 오려면 좀 남았으니 차라도 들고.”
하핫. 아크메이지 패배 선언.
나는 결국 말을 돌리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아까부터 우리던 찻물을 받아 마셨다.
“……!”
대삼림에서 맛있게 먹었던 그 차였다.
“향기가 좋습니다.”
“킁킁. 뭔가 이건?”
“차일세.”
“엑. 베르세르크는 차보다 술이 더 좋다.”
“아, 뜨뜨뜨뜨.”
“…술도 시켰으니 걱정 말게. 그리고 자네는 좀 더 식혀서 먹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때 인터셉트한 거 끓인 건가.
당시엔 쬐금 얄미웠지만 이렇게 공유해 준다면 말이 달라진다.
“더 있으니 마음껏 먹게.”
헤헤,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