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그걸로 충분한 (6)
후… 끝내주는 연기였다.
나는 먼저 자리를 뜨는 데브의 기척을 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졸지에 내 절망 어린 연기를 전부 지켜본 뱀은 다소 뻘쭘한 기색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 뭐라 하진 않았다.
당연했다. 여기서 잘못 입 털면 컨셉 바로 흑화 루트 탄다. 목 뎅강뎅강 하려 들 거라고.
그러니 눈치가 있다면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그, 인자 돌아갈까요?]
끝이 아니라 중간이 올라가는 구수한 성조가 내 안색을 살피며 슬금슬금 제안했다.
거절할 필요 없었다. 나도 슬슬 돌아가고 싶던 차였다.
폭포 물이 아무리 맑아도 중간중간 껴 있던 나뭇잎과 나뭇조각이 머리에 묻은 채로 말라서 찝찝했거든.
[그, 음. 제 태생이 좀 불온한 것과 별개로 저는 이번에 얻은 능력이 좀 좋다 아입니까. 전대 산군들은 몸뚱이만 드-럽게 크 가지고 밖에 싸돌아댕기기도 어려웠는데 저는 요 능력 땜시 그런 제한이 없거든요. 제사장들 눈 피하기도 좋고.]
내가 제안을 받아들인단 의미로 앞으로 걷자, 뱀도 꿈틀꿈틀 몸을 움직였다. 몸뚱이가 커서 유턴하는 것도 확실히 힘겨워 보였다.
나무를 통과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산림의 수호자가 아니라 그냥 파괴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웃기게도 제가 요로코롬 태어난 덕분에 변질된 마력도 해결할 수 있었다 아입니까.]
“…무슨 소리냐.”
[그, 지가 이렇게 태어난 게 늪에 마력이 녹아들어, 흩어지지 못하고 케케묵는 바람에 그런 거거든요. 고게 영향을 끼쳐서. 근데 제가 마력이랑 마기를 먹을 수 있으니까는, 태어난 후엔 그것들을 다 먹었지요. 그러더니 원래의 늪으로 돌아왔고.]
본인이야 이미 그렇게 태어나서 바뀌진 않겠지만, 변질된 마력이 제거된 이상 다음에 태어나는 애들은 평상시랑 똑같을 거라며 뱀은 꼬리를 휘휘 저었다.
[아, 자타브 저놈들 영역에 생긴 곳은 아직 심각한 것도 아니겠다, 저거들끼리 뭐 해 보길래 함 해 봐라 함서 그냥 내비뒀었는데… 이번 일도 있겠다, 그쪽도 호로록 정리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보다 얘, 진짜 필사적으로 변명한다. 나는 주변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고민 끝에 발언했다. 잠긴 목소리가 숙연하게 울려 퍼졌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지.”
[어…….]
그러자 뱀이 당황했다.
[그, 알고 싶으실까 봐……? 일행들 보니까는 이거 조사하러 오신 것 같드만, 아니었습니까?]
그,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거 조사하려고 온 것도 맞는데.
나는 뱀의 태도가 너무 호의적이고 필사적이어서 물어본 거였다.
나는 에둘러 컨셉에 맞게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뱀이 머리 한 대 맞은 양 뻣뻣해졌다.
[그걸 몰라서 물으십니까……?]
갑자기 내가 엄청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 엄청난 양의 마기 겸 마력을 품은 데다가, 제 조상님과 동급이자 저보다 격 높은 이의 힘을 응축한 구슬도 가지고 계시면서……?]
그러나 듣다 보니 그럴 만했다.
내 마기량은 그렇다 쳐도, 내가 가진 구슬은 태곳적 짐승 중 하나가 양도해 준 힘이었다. 쟤는 다른 태곳적 짐승 하나의 피를 물려받았고.
그런 점에서 쟤가 내 눈치를 보기엔 충분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솔직히 저는 손님이 숲에 들어올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갑자기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질 않나, 마기도 품고 있는 것 같은데 와중에 저보다 격 높은 힘도 가지고 있질 않나.]
내가 말없이 수긍하고 있으려니, 뱀도 그제야 본심을 토로했다. 억누르고 있던 게 꽤 많았는지 봇물 터지는 느낌이다.
[태곳적 짐승 하나 죽이고 그 힘 빼앗은 건 아닌가 하고 고민도 했다고요. 그래서 손님이 가실 때까지는 쥐 죽은 듯이 있으려고 했는데… 하. 그래도 며칠 가만 보니까는 손님 인품이 꽤 괜찮구나,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싶더니 저거저거 저 미친놈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진짜. 저 정말로 손님이 힘 쓰실 때 ‘아, 드디어 숲이 망하는구나’ 싶었다니까요? 하필 또 저주도 막 퍼지려고 하고…….]
그, 그래.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어쩐지 막판에 가서야 고개를 들이밀더라. 나한테 죽을까 봐 납작 기었던 거구나.
[그래도, 지금은 좀 안심했습니다. 괜히 바닷분이 힘을 주신 게 아닌갑다 하고.]
근데 이렇게 되면 끼어든 것도 내 낌새 보고 끼어든 것일 테니까… 어쩌면 대족장을 세르항의 족장으로 뽑은 것도 나 때문일지 모르겠네.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래도 내가 보기에 결과가 나쁘진 않다. 세르항 족장은 최소한 저것들처럼 쓰레기는 아닐 것 같았거든.
그러니 뭐, 괜찮은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부족으로 돌아갔다.
【당신들이 날 도우려는 걸 알아요. 그건 부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지만, 당신들이 날 도우려 하는 것과 별개로, 당신들. 외지인들에 의해 부모님이 죽은 것도 맞잖아요.】
[으잉.]
한데 그렇게 마을로 돌아갔을까.
뱀 녀석이 제 몸을 특정 인물에게만 보이도록 설정할 수 있다는 기능마저 알게 됐을 즈음. 나는 아카타와 흰바람, 아크메이지, 세르항 족장과 제사장, 비가볼 부족으로 보이는 누군가까지 딱 여섯 명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도움은 분명 고마워요. 고마운데… 그렇다고 당신들의 도움이 받고 싶진 않아요. 당신들을 볼 때면, 계속, 계속 아빠가 생각난단 말이에요…….】
하물며 그 여섯의 인원 중 아카타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근처 건물 뒤에 숨은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쿡쿡 쑤셨다.
[하이고… 저 꼬맹이도 참 복잡하게 됐습니다. 반역자의 자식인 것도 모자라 족장까지 죽이려 들었던 이상 여기 남긴 힘들 텐데.]
…와중에 이 예상은 또 맞았네.
나는 아이가 왜 내게 칼을 겨누었는가 고민하며 세웠던 가설을 떠올렸다. 아타르트가 보낸 암살자면 그건 그것대로 서글프지만, 이쪽이라고 나은 건 아니다.
[보니까는, 그, 데려오신 인간들이 애 챙겨 가려는 것 같은데. 애가 저렇게 싫어해서야 쪼매 어렵겠습니다. 우짠답니까.]
나로 인해 사로잡힌 사람 중에, 어쩌면 내가 죽인 사람 중에 저 애의 가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 남기를 택하겠다?】
【…그렇다고 당신들을 따라갈 순 없잖아요.】
그때 흰바람이 발언했다. 나는 주먹을 죔죔 하다가 뱀에게 눈치를 주었다.
통역해. 왜 저를 그리 보시는지……. 통역하라고.
눈빛이 몇 번 오간 끝에 뱀이 알아들었다. 거니채는 능력이 꽤나 좋다.
【하지만 여기 남아서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그렇지 않나요, 임시 족장님?】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전 족장 아타르트를 직접적으로 죽인 건 아니지만… 죽이려 든 걸 모두가 보지 않았습니까.】
【…그럼.】
【못해도 추방, 최대 사형을 요구할 겁니다. 아타르트가 잘못을 저질렀건 뭐건 간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아직 많으니까요.】
【죽인 건 우리 쪽 인사입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다른 부족에 보내는 쪽으론 어렵겠습니까?】
【불가능하진 않지만… 아시잖습니까? 보통 이런 때는…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자보다 자신이 건드릴 수 있는 만만한 자에게 분노가 향한다는 걸요. 다른 부족에 보낸다고 해도 분명… 죽이려 드는 자들이 나올 겁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상황이 달라요.】
하여간 그 족장에 그 부족이라고.
나는 뱀의 통역을 듣다 말고 이를 뿌득 갈았다. 차라리 나한테 덤비면 중지만 올려 주고 말 텐데, 아이를 노린다면 나로서도 어쩔 방도가 없던 까닭이다.
내가 그 애를 평생 보호할 수는 없으니까.
【저희 부족에서 맡는다면…….】
【…저는 반대입니다. 대족장님께선 이 일이 마무리되자마자 족장 자리를 위임하셔야 하고, 대족장의 일도 정식으로 승계받으셔야 하는 입장이 아닙니까.】
【하지만 제사장님.】
【이건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대족장님께서도 신경 쓰기 힘든 환경에 저흰 지리적으로 비가볼 부족과 가깝기까지 합니다. 마을 위치는 가려져 있지만 교류는 자주 이루어져, 그쪽에 감화된 부족원도 많고요. 거기에… 아시잖습니까? 족장에 대한 위협에 우리 부족원들이 얼마나 예민한지. 우리가 단속을 해도 분명 차별이 이뤄질 겁니다.】
【…그래도. 다른 곳보단 저희가 나을 겁니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가 좀 더 신경 쓰면 될 일입니다.】
【…그건.】
【잠깐, 잠깐. 두 분의 의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아이의 의견은 들어 봐야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네. 당사자의 의견도 듣긴 해야지.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남아 있으면 죽을 가능성이 크거나 죽지 않더라도 매우 힘겹게 살아가야할 텐데, 괜찮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편히 살고자 당신들을 따라가고 싶진 않아요.】
그쯤 되어서, 나는 내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다시 돌아보았다.
내가 아이들을 구하고자 그들을 죽인 것을 후회하진 않으나 더 좋은 방법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인질로 잡힐 걸 걱정해 데려갈 게 아니라, 아카타가 그 광경을 볼 수 없도록 숨겨 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흐음. 그런가. 근데 눈치를 보니까 막 죽고 싶은 건 아닌가 보네?】
【…그건 당연하잖아요!】
【그래. 결국 죽기는 싫지만 우리 도움은 받기 싫단 거지.】
그러나 리트라이는 불가능하다. 나는 뱀의 통역을 들으며 가만 팔짱을 끼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오해가 있을까 봐 미리 말하는데, 난 지금 널 비꼬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야. 네 심정에 공감한다는 말은 물론 거짓이겠지만, 가족이 살해당한 걸 용납하기가 쉬울 리 없다는 것 정돈 알거든. 그러니 부정할 필요는 없어. 누구도 네 심리를 비난하지 않아. 난 그냥 말투가 이런 것뿐이야.】
【…….】
【별개로, 네 안위를 신경 쓰는 사람이 참 많단 말이지. 흐음.】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나.】
【……?】
【일단 우리를 따라서 바깥으로 나가는 걸세.】
【하지만 전…….】
【끝까지 들어 보게. 바깥으로 같이 나가자고 했지, 우리랑 계속 있자는 건 아니니.】
【…우리랑 연관 없는 이들에게 맡기려고?】
【그럼 그것밖에 수가 있나.】
【하긴, 얘가 우릴 싫어하는 건 결국 우리가 부모님의 죽음에 관여해서지. 그럼 연관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게 확실히 베스트일지도.】
【…그 사람도, 외지인이잖아요.】
별개로, 아까도 느꼈지만 아카타는 썩 협조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친지들이 다 죽고 혼자 남은 마당에 복수마저 흐지부지 끝나 버린 처지임을 생각하면, 하물며 남은 건 자신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몇몇 고향 사람들과 제 처우를 두고 떠드는 고위층뿐임을 고려하면.
아이의 틱틱거림은 차라리 가여울 뿐이다.
【그럼? 당연히 외지인이지. 근데 모든 외지인이 너희 부모님을 죽이려 든 건 아니잖아? 그 사람들까지 미워할 거야? 뭐, 그건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살고 싶다면, 이 부분은 네가 양보해야 할 거야. 우린 이 이상 제안할 생각은 없거든. 아무렴, 네가 뭐라고 우리가 이 이상 신경 써야 하니?】
【…….】
저 모든 불량함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게 그 자신뿐이라는 판단하에 나오는 것일 게 분명하므로.
【아카타.】
그러던 찰나, 잠자코 있던 세르항의 족장 혹은 대족장이 발언했다.
【하면 이곳에 남고 싶은 건 아니지만, 바깥이 꺼려져서 이곳을 택한 것으로 제가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
【당신이 역경과 고난을 참더라도 이곳에 남기를 희망하는 거라면 저는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하나 제가 보기엔 당신이 이곳에 꼭 남기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그건… 당연하잖아요. 다, 다 사라졌는데, 제가 여기 남아서 좋을 건… 하나도…….】
【알겠습니다. 그럼 아카타,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이 외지인이 꺼려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거야… 부모님을 죽인 자들이니까.】
【비가볼 부족에도 처형에 손을 보탠 자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비가볼에 소속된 모든 자들을 증오합니까? 또한, 관여하지 않은 다른 부족의 사람들도 전부 원망합니까?】
【그건……! 그건…….】
【그렇진 않겠지요. 그들에게 죄가 없음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족장이 아래에 두었던 제사장이 그러했듯, 그 역시 목소리가 나직하여 귀에 쏙쏙 박혔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외지인마저 꺼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득, 소년의 얼굴 위로 언뜻 현기가 흐르는 양했다.
【…그건. 그건…….】
【예.】
【외지인이니까…….】
【그저 외지인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외지는 나쁜 곳이라고…….】
【아, 외지가 나쁜 곳이니 외지인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이 한 이야길 떠올리지 마십시오. 당신이 겪은 것 또는 생각한 것을 말해 보십시오.】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랬다면, 지금 날 도와주고 있지도 않을 테니까. 단지, 나는… 그냥…….】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그게 당신의 답입니다. 그게 당신의 정답이에요.】
【하지만, 아버지는…….】
조곤조곤 이어지던 말 속에서 아카타가 반박을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러자 대족장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카타, 이건 조금 뜬금없는 말입니다만 저는 태어난 순간부터 어른이 되는 과정 사이에 짊어지게 되는 업이 하나 있노라, 여기는 것이 몇 개 있습니다.】
【……?】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존경하던 이들이 사실 틀렸을 수도 있음을 언젠가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업입니다.】
대족장은 한 발 나아가, 아카타의 손을 잡기도 했다.
【인정하긴 어렵습니다. 부정한 채 눈과 귀를 닫고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분명 몸을 뒤흔들 것입니다. 혹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을 향한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아닙니다. 아카타. 그것은 배신이 아닙니다. 어른이 돼 가는 과정일 뿐이고, 당신이 하나의 인간으로 독립하는 길일 뿐입니다.】
【…배신이, 아니라고요? 그게?】
【왜냐면 아카타, 모든 사람은 정답만을 고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니까요. 또한, 우리가 동경하던, 사랑하던 이들 역시 결국 한 명의 사람입니다. 그들 또한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게는 그다지도 위대했던 어머니가 사실 족장으로선 실패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런. 그런 게.】
【아카타, 사랑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사랑은 옳은 것이나, 사랑하는 이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의 사랑이 그들을 올바른 것이라 믿고 싶게 만들 뿐. 그러나 진정 옳은 것은, 당신의 여덟 개의 눈이 보고 당신의 귀가 들은 모든 것들입니다.】
【그런 게 정말일 리가…….】
연결된 온기 속에서 눈물이 다시금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므로, 그들의 말에 휘둘리기보다 당신이 내린 답을 믿고 따라가세요. 당신의 사랑에 홀려 당신 자신을 그리고 미래를 버리지 마세요.】
【…그게 정말이라면, 난, 나는.】
【당신을 품기엔 이 땅은 작았노라 말하며 망설이지 않고 저 바깥으로 차라리 나가세요.】
【…정말로, 살아남는 게, 배신이 아니에요?】
【그럼요. 그건 절대로 배신이 아니라, 오롯이 당신의 성장이고 당신을 위한 선택일 뿐입니다.】
【정말로…….】
아카타가 와앙 오열하며 대족장을 끌어안았다. 대족장도 피하는 대신 마주 안아 주었다.
문제는 둘 다 아이들이라, 주책맞게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아이들이 잘못을 딛고 성장하는 이야기에 약하다고. 못난 어른들 속에서 찬란히 자라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이… 이번 대족장은 너무 잘 뽑은 것 같아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통역하다 말고 뱀이 옆에서 훌쩍거려 준 덕에 내 눈물은 밖으로 흐르는 대신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놈이 나보다 더 감격하고 있다.
[허엉, 손님한테 잘 보이려고 뽑은 거였는데 완전히 대길이었어……!!]
그보다 이 자식, 나 때문에 쟤 뽑은 거 진짜였냐?!
* * *
【죄, 죄송해요. 제가…….】
【아닙니다, 아카타.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 죄송할 뿐입니다.】
한참을 울었을까. 아카타가 벌게진 얼굴로 살짝 물러났다. 대족장은 그를 두고 사람 좋게 웃을 뿐이었다.
이렇게 말하긴 좀 그런데, 진짜 아이 안 같고 성인 같았다……. 어른이란 뜻의 성인 말고, 예수님 같은 사람들 말할 때의 그 성인.
[허엉. 지혜로운 인간 최고야…….]
넌 제발 그만 울고.
【별개로… 알지요? 잘못한 것, 그분께는 제대로 사과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구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알아요.】
【그래요. 부탁합니다.】
저놈이 우느라 통역을 관둬서 뭐라는 건지 더는 못 알아듣는다.
나는 뱀을 흘겨보았다. 거대한 뱀은 꼬리로 눈 옆을 닦느라 내가 저를 보는지 안 보는지도 모르고 있다.
뭐, 그래도 상관없나.
나는 팔짱을 풀고, 기댔던 몸을 떼었다. 저쪽으로 끼긴 뭐하니 다른 데 갈 참이다.
결말도 나름… 최선의 형태라 믿을 수 있을 만큼은 나와서 만족스럽기도 하고.
“악마기사!!”
그때 누군가 우다다 달려왔다. 발그레한 볼과 반짝거리는 녹색 눈, 빨간 머리카락. 김치만두였다.
“어디 가셨습니까?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것… 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반가워하는 거 아닌가. 아까도 봤는데.
“산군께는 어떻게 인정받으신 겁니까? 물론 악마기사께선 그럴 자격이 충분하시긴 합니다만. 아!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셨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역시 악마기사께선……!”
그래도 그게 싫진 않다. 나는 조잘조잘 떠드는 인퀴지터를 두고 숨을 길게 뱉었다.
“그, 음. 나리 오셨습니까요?”
와중에 데브도 슬쩍 끼어들었다. 내가 인퀴지터 대하는 걸 보고 접근해도 괜찮겠다 판단이라도 든 모양이다.
“거… 들으셨습니까? 임시 족장으로 선출된 비가볼 쪽 사람이, 전 족장이 저질렀던 잘못을 전해 듣고 나리께 합당한 보상을 치르겠노라 하던데.”
“어엇. 난, 난 그런 말을 못 들었는데!”
“댁이 일을 못해서 그런가 보죠.”
“아니다! 난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하여간 만두 두 마리가 아주 쌍으로 귀엽게 군다. 사람 웃고 싶어지게.
“시끄럽다.”
그렇지만 티 내면 캐붕이니까. 나는 각자의 입을 ‘합’ 하고 다문 둘을 지나갔다.
“이익, 너 때문에 한 소리 들었잖나!”
“뭐라는 거예요. 누가 봐도 댁 때문이거든?”
“네가 오자마자 시끄럽다고 하셨다!”
“난 적어도 정보를 전달했다고요! 잡담만 한 댁과 다르게!”
이명이 투닥거리는 목소리에 먹혔다. 그걸로 충분했다.
“전우여! 역시 분해서 안 되겠다! 아까 내 사냥감을 받아 간 몫을 돌려받아야겠다!! 한판 붙자!”
아니, 조금은 과할지도?
뭐, 지금은 이게 더 마음에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원래 퀘스트는 해피엔딩을 기반으로 시끌벅적하니 경쾌하게 끝나야 뒷맛이 좋은 법이니까.
원래 다 그런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