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그걸로 충분한 (4)
이걸 죽일까, 말까. 나는 바르작거리는 놈을 보며 찰나간 고민했다.
컨셉으로 따지면 죽이는 것이 백번 옳으나, 그것을 행하기엔 오류와 함께 무산된 스킬이 걸렸다.
【사, 살려…….】
분명 격노 스킬은 에러와 함께 발동이 취소되었다. 격노 스킬의 트리거가 진짜 분노가 맞으며, 화를 꾸역꾸역 참지 않고 적절한 때 분출하면 스킬을 발동하지 않고도 화를 낼 수 있다는 가설이 성공한 셈이다.
물론 계산이 약간 어긋난 것인지 에러가 뜨긴 했는데… 그거야 나중에 고민하면 될 문제고.
내가 지금 거슬려 하는 건 ‘에러로 인해’ 발동이 ‘취소’된 점이다.
스킬이 시전 안 된 게 아니라, 시전은 됐는데 에러로 불발된 거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뜨는 건 당연하다. 스킬이 정말 불발된 게 맞는지, 그저 안 보일 뿐 시전된 상태는 아닌지 등.
그렇다면 이놈을 죽이는 건 과연 나에게 이득이 될까? 되돌아 보니까 광기 게이지가 사람 죽일 때마다 유독 잘 오르던데, 얘 죽이면 광기 게이지 오르는 거 아니야?
【잠깐, 잠깐만요!】
그때 누군가가 우다다 달려왔다. 아카타였다.
【내가, 내가 죽이게 해 줘요.】
아이의 손에는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칼이 날을 번뜩이고 있다.
명백한 살의가, 울분이 소녀의 두 눈에서 뺨으로 흘러내렸다.
【제 부모님이 잘못했다는 걸 알아요. 당신에게 잘못 없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하지만 그놈은 아니에요. 그놈은, 아타르트는……!】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알 것 같다. 그렇다고 하면 좀 말이 이상할까.
【너 따위가……!】
그때 아타르트가 발버둥을 쳤다. 아이의 말을 듣고 발버둥을 치는 게 뻔히 보이다 보니 외려 죽여야 하나 싶던 마음이 팍 식었다.
“젠장, 날 죽여라! 차라리 네 손으로 날 죽게 해!”
하물며 저런 말까지 더해져서야.
나는 입술을 살짝 씹었다. 아이가 아타르트를 죽이게 해 줘야 하나, 아니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먼저 아타르트를 죽여야 하나.
그런데 내가 죽이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한 행위긴 한가?
그렇지만 아이가 사람을 죽이는 걸 어른으로서 두고 보기는 좀…….
“무엇을 망설이나?”
그때 내게 사냥감을 빼앗겨 뚱한 얼굴의 버서커가 말했다.
“넘길 거면 빨리 넘겨라. 복수를 한다고 무언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원한이 남는다.”
딴에는 순서 빼앗긴 마음에 불평하는 듯 보이지만, 그 내용물만은 제법 도움이 된다.
나는 조금 더 고민한 끝에 결국 가슴팍을 밟던 발을 떼었다. 아카타가 조금은 화색을 하고, 아타르트가 얼굴을 구겼다.
“네놈……!”
콱!
검날이 그 심장을 찔렀다. 커억. 단말마의 비명이 빠르게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왜, 왜?】
“복수 끝에 구원은 없다.”
복수를 위해 목숨마저 내버린 인물이 남의 복수를 부정할 리는 없다.
그렇지만 역시 아이가 누군갈 죽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도 않다.
【왜…….】
“그러니 인간이 아닌 것을 죽이는 것으로 너를 망치지 마라.”
원한을 해결하는 대가로 짊어져야 할 살인의 광기는 아이의 몫이 아니다.
“너는 너의 삶을 살아라.”
이게 옳은 선택일지는 글쎄. 어쩌면 이게 틀린 선택일 수도 있겠지. 아이가 스스로 원한을 갚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지도 몰라.
시대상 내가 이 인간을 죽여 준다고 해도 저 아이가 결국은 손에 타인의 피를 묻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 아이가 어린 시절에 누군갈 죽였다는 과거를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복수의 기회를 앗아 간 개자식으로 기억되도 좋으니, 적어도 이 어린 손에 아직은 피가 묻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아직 인간이지 않나.”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그것이 설사 옳음을 행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결국 인간성 한 조각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왜……! 왜 내가 복수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함에도 원망과 증오가 남아 힘들다면.”
【왜, 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마저!】
“내게 넘겨라.”
【왜!!】
“내가 짊어지고 갈 테니.”
나는 버서커와, 아이─아타르트에게 뺏었던─를 달래다 말고 아카타를 붙잡는 데브를 지나쳤다.
자타브에게 가서 저주에 대한 걸 따져 물을까 했으나, 그쪽은 이미 담당하는 자들이 있다. 산군이 데려온 제사장이라 말이 통할지 아닐지도 모르겠고.
하여 나는 자연스레 흰바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주의 시작점을 명확히 해야 할 거다.”
“그럼, 그럼. 걱정 마. 관련이 있다면 대삼림의 그 누구도 저들을 감싸진 못할 테니까. 그리고 그땐 반드시 네게 넘겨 줄게.”
그 다음은, 흠. 잘 모르겠다. 내게 딱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갈 곳이 없는 건 언제나 그랬다.
* * *
아크메이지는 그녀의 부탁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도적 청년과 투사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 직후 악마기사가 비가볼 족장을 죽였고, 그 과정에서 아카타가 제게 기회를 달라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외치긴 했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심각한 문제긴 했는데, 산군이란 존재가 일단 넘어가라 명하면서 당장은 아무 문제 아니게 됐다. 그거면 충분했다.
시간과 말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녀는 충분히 해명할 자신이 있었다. 모두의 앞에서 족장을 죽이려 든 아카타의 처우는 조금 어려움이 있겠지만서도.
“와, 이게 무슨 일이래!”
그때 흰바람이 천천히 다가왔다. 온갖 일이 얽히고설킨 상황인데도 태평한 게 참 여상하다.
“감이 쬐에금 이상해서 족장님 가는 거 따라와 봤더니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네.”
“동감일세.”
비가볼과 자타브가 전면전을 벌이질 않나. 비가볼 족장은 인간성을 버리고, 자타브는 악마와 손잡은 건지 뭔지 그쪽 물건을 쓰고. 와중에 난데없이 끼어든 산군으로 인해 세르항 족장이 대족장으로 뽑혔다.
이런 난장판도 쉽게 구경하긴 힘들 것이다.
“그래도 좋게 끝나서 다행이지.”
그러나 사건이 얼레벌레 어리둥절하게 굴러갔을 뿐, 결과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산군의 등장으로 두 부족 간의 분쟁이 완벽하게 멈췄다. 반항이나 저항 없이 완전히 소강상태가 된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일방적으로 내려진 판결에도 순응했다. 신실함을 증명하란 제사장의 한마디에 모두 칼을 내려놓고 신문에 응해 준 것이다.
물론 족장이 죽은 바람에 비가볼은 조금 소란이 있긴 했다.
최고위권자가 사망하자 지휘를 맡을 다른 사람을 뽑느라 인 소란이라고 보면 되겠다.
와중에 족장을 죽이려 든 아카타를 벌해야 한다든가, 죽은 족장이 제 자식들의 목숨을 건 게 맞느냐고 진위를 묻는 자들도 나왔고.
산군이 짜증나니까 작작 하고 대족장─세르항 족장─의 지시나 따르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실랑이가 있었을 테다.
졸지에 대족장이 되어서 일하게 돼 버린 세르항 족장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만.
“아이고, 부모님이 잘 찾아와서 다행이네. 근데 저놈은 뭐길래 애를 머리에 데리고 있었답니까?”
그때 아타르트로부터 아이를 낚아챘던 이가 돌아왔다. 부모님을 찾아 아이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듯 그의 손엔 아무도 없다.
“아… 인질이었네. 아이가 죽는 걸 보기 싫으면 참전해 달라더군.”
“어머.”
“…뭐요?”
“아이를 낚아채고 나서야 악마기사가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아니, 그, 기사 나리가 왜 지금까지 납뒀나 싶긴 했는데, 그게 그것 때문이었어요??”
참고로 인퀴지터는 언제나처럼 다친 사람들을 치료 중이고, 베르세르크는 산군의 허락하에 어디 싸울 거리가 없나 하며 주변을 돌아다니는 중이다.
누구 하나 반항이라도 했다간 베르세르크에게 팔다리 하나쯤은 박살 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저건 인질 잡힌 아이 때문에 새긴 자국?”
그때 흰바람이 울창하게 솟은 수림 중, 원형으로 뻥 뚫려 버린 장소를 가리켰다. 그곳의 나무만 높이가 현저히 낮아져, 도저히 자연현상이라 말할 수 없다.
“아까 엄청난 마력 파동도 일었던데. 악마기사가 한 거지?”
“…맞네. 참전을 요구하자… 숲 일부를 날려 보이며 역으로 협박을 하더군. 아이들을 죽이는 순간 너도 죽게 될 거라고. 덕분에 불필요한 싸움에 끼이지 않았지.”
“현명하네.”
“…그렇지.”
방법이 과격하다 할 뿐, 아크메이지 역시 악마기사가 택한 길이야말로 가장 최선이라 믿었다. 덕분에 누구 한 부족의 적이 되는 대신 사람만을 구하지 않았는가.
다만…….
『죽여라! 이미 친혈육마저 살해한 몸, 아이들의 피가 더해진들 달라질 건 없으니!』
그녀는 목의 핏대를 세운 채 분노하던 이를 기억했다. 혹은 그가 폭주를 하는 것 아닌가 하던 불안 사이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슬픔을 상기했다.
『너는 아직 인간이지 않나.』
오롯이 죄의 무게였다. 그가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도록 만드는 죄의 무게.
타인인 그녀마저도 엄숙케 하는, 감히 한 사람이 지고 있기엔 너무도 무거운 업.
“흐응. 그래도 폭주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슬슬, 그 사내가 어떻게 서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죽음을 바라는 마음엔 정말 그 자신을 향한 혐오만이 존재하는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봉인구는 채워야겠지?”
파멸을 바라고자 하는 이도 벼랑까지 달려갈 힘은 필요한 법인데.
그는 지금,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는 한 상태인가?
“…그래야겠지.”
아크메이지는 흰바람이 건네는 봉인구를 받았다. 이것을 채워야 한다는 이성과 정말 당장 채워야겠느냐는 감성이 충돌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악마기사는 지금 자극받을 수 있는 모든 것에 자극받은 상태이니 바로 채워도 모자랄 판인 게 맞는데도.
“…그, 괜찮은 거예요? 지금 주는 게?”
“그럼? 난 솔직히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한데. 악마기사에게도 차라리 이게 낫지 않을까? 봉인구를 차면 그래도 화를 참을 필욘 없잖아!”
“그건… 그런데…….”
그녀는 봉인구를 매만졌다. 매끄러운 금속의 온기는 차갑다. 악마기사가 세상에게서 받는 온기가 그러하듯.
“…지금 건네는 건 오히려 그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것 같네. 폭탄 취급 받는 게 유쾌할 리는 없지 않은가.”
“하면?”
“그러니 자네에게 부탁 좀 하지. 일단 그를 지켜봐 주시게. 그리고 그가 좀 괜찮아졌거나… 역으로 많이 위험하다 싶으면 봉인구를 채워 주거나 인퀴지터를 불러 주게.”
“…전 마력이니 뭐니 그런 걸 몰라서 타이밍을 못 잡을 수도 있는뎁쇼.”
“난 자네의 눈을 믿네.”
“…알겠습니다요.”
결국 그녀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타협 보았다. 이게… 그녀가 작금 고를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흰바람, 자네는… 나랑 같이 산군과 그 제사장에게 접촉하도록 하지. 자타브가 저주 항아리를 어디서 공수받았는지 공유받아야 하는 상황이잖은가.”
“그럼, 그럼. 당연히 알지. 이미 애들 복구 작업에 붙여 놨어. 공짜로 도와줬는데 설마 모른 척하진 않겠지.”
“…그래. 잘했네.”
“자타브가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마력뱀에 대한 논의도 나올까? 나온다면 그쪽 조사 권한도 받고 싶은데. 산군에게도 대화를 한번 청해 보고 싶고.”
“전자는 한번 물어보게나. 후자는 말고.”
그러곤 아크메이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차례차례 늘어놓았다. 심정은 이다지도 복잡한데, 일거리는 아직도 많았다.
* * *
혹시라도 광기 게이지가 차서 폭주 디버프가 벌어지는 건 아닐까. 나는 그런 식의 상황을 대비해 마을에서 최대한 벗어났다.
그러다 저번의 그 폭포─세르항에서 비가볼로 오던 중에 알게 된 장소─로 와 버렸는데…….
쏴아아아!
나는 먼젓번 자리 잡았던 그 바위에 다시 앉았다. 이끼가 보슬보슬 낀 바위가 푹신하니 나를 반겨 주었다.
나무가 그나마 적어서 살짝 드는 햇빛도 좋았다. 눈을 찌를 정도로 강하진 않되, 햇살의 존재가 촉감으로 와닿는 것처럼 존재감이 느껴지는 게… 포근포근하니 나른했거든.
주위 온도에는 동요치 않는 몸이다보니 덥다는 감상도 없어서 더 좋다.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다.
「체력 2,457/2,457
마력 2,941/2,941
피로도 17
포만감 84」
그렇지만 이렇게 시간 보내기만 할 상황도 아니다. 나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HP를 빼 둘까 말까 고민했다.
사람을 죽일 때 광기 게이지가 잘 올랐던 것 같다, 란 사실은 알아도 광기 게이지가 무엇을 기준으로 오르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즉, 가만히 있었을 때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 확신이 없다.
그리고 후자가 아닌 전자라면… 응. 좀 문제가 되겠지.
난 꽁꽁 구속되었던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더불어 내가 한 흔적이라며 보여 줬던, 가루가 된 성도.
이번이라고 그 광경을 못 피할 것 같진 않은데… 그렇게 되면 진짜 목 댕강 아니냐고. 절대 피해.
“아, 봉인구…….”
지금 봉인구 있었으면 좀 좋았을 것 같기도 한데.
없으니 뭐 다른 수가 있나. 나는 여분을 하나만 들고 다닐 게 아니라 여러 개 들고 다니기로 다짐하며 단검을 들었다.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3만 까자. 힐링 스킬 마스터를 위해 피를 일부러 까야 했던 모 게임 시절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일부러 빈사 상태를 만들고 중독 상태 유지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추억이 잠시 나를 담그고 지나갔다.
“으아아아아!! 나리, 뭐 하는 거예요!”
퍼억!
그런데 내가 추억에 잠시 잠겨 있었을까.
나 버렸다, 교통사고.
첨벙!
바위에 앉아 있다 말고 뒤에서 다가온 기척이─피하려다가 목소리 듣고 그만두었다─나와 충돌했다.
당연하지만 나는 바위에 앉아 있는 상태였고, 거기서 충돌이 났다면 바위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위 앞은 폭포였고.
나와 데브가 나란히 폭포에 잠수했다.
“어푸푸푸!”
그나마 폭포 아래, 물이 고이는 못 부분이라 빠른 물살에 휩쓸리는 일 없다는 게 다행이다. 깊이가 가슴팍까지라는 것도 참 다행이고.
“…죽고 싶나?”
그렇지만 안전과 별개로 컨셉은 다행 아니야!
나는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 내곤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물에 닿자마자 털을 바짝 세운 데브가 흐아악 소리를 내며 뻣뻣히 굳었다.
“자, 자해는 나쁘단 말입니다요…….”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저지르려 했는데.
라고 사유하기 직전 내 뇌가 급제동을 걸었다. 내가 하려던 일은 게이머 입장에서야 HP 빼는 거였지, 쟤네들 입장에선 그냥 자해였다.
아.
“차, 차라리 봉인구를 거십쇼. 왜 자해를…….”
그, 오해야. 오해는 아닌데 오해라고. 내가 물론 폭주를 걱정해서 일부러 HP 떨구려고 한 건 맞는데, 그게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건 아니고. 아무튼 네가 걱정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심오한 상황을 두고 입술을 지르물었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자존감 낮음 설정이 심화되어 버렸다. 곤란하다.
“합!”
그때 내 앞에서 눈치 보던 데브가 단검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반사적으로 단검 든 손을 뒤로 뺐다.
미친놈아, 날을 잡으려 들면 어떡해! 손 베이잖아!
“꺼져라……!”
“단검만 가져가겠습니다요!”
안 한다고! 안 한다고!
나는 데브의 머리통을 꾸욱 밀어내며 단검 든 손을 뒤로했다.
내 손에 짜부된 데브가 팔을 휘적휘적거렸지만 아쉽게도 내 캐릭터가 데브보다 10cm 좀 안 되게 더 컸다. 그만큼 팔도 더 길었고.
그러니 절대 못 닿는다. 저리 가라, 도적놈!
“아잇. 나리, 왜 이렇게 팔이 길어요!”
“꺼지라 했을 텐데……!”
감기 걸려, 이놈아! 물 밖으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