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그걸로 충분한 (3)
【저기, 정말 이렇게 와도 괜찮으신 건가요?】
【사전에 연락하지 않고 타 부족의 마을에 방문하는 건 분명 무례입니다만… 일단 동맹이니 어찌저찌 넘어갈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작 그 동맹, 버리실 생각을 하고 계시면서?】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뒤통수를 먼저 맞은 건 저희인 걸요.】
도적과 투사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타브들이 갑자기 물러갔다. 덕분에 그들은 비가볼의 영역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 흰바람은 세르항의 족장과 함께 이동하는 중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산군님과의 문제니까요.】
원인이라면 글쎄. 흰바람이 혹시나 물어본, 산군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심화된 쪽이라 할 수 있겠다.
【늪의 제사장과 접촉할 수 없음에도 허세를 부린 거라면, 여러분들껜 죄송한 말이나 우리에겐 달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들과 접선할 수 있다면… 예. 그것이 걸리는 즉시 대삼림의 모든 부족들은 비가볼에게 칼을 겨눌 것입니다. 그들과 동맹을 맺은 이상 우리 부족도 화를 입을 가능성이 크고 말입니다. 전 그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카티나 기간 때 산군을 만나는 게 그 정도로 예민한 문젠가 보네요?】
【산군님의 선택을 받은 자는 카티나의 결과와 상관없이 바로 대족장의 자리에 오르니까요.】
【산군의 선택을 받은 자라면 오히려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예. 그 말이 맞습니다. 대삼림의 부족들도 그렇게 여겨 왔었구요. 그러나 80년 전, 카티나에서 이길 자신이 없자, 늪의 제사장들을 포섭하여 산군님의 선택을 받았노라 거짓말을 한 채 대족장이 된 자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산군님이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한 작전이었지요.】
【아, 그래서?】
【예. 해서 그 후로, 산군님이 모든 이들 앞에서 선택을 내보인 게 아니거든, 거짓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늪의 제사장들 역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접촉을 금했고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세르항 족장이 예민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흰바람은 참 별의별 규칙이 많은 부족들이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제 이 언덕만 넘으면, 비가볼의 마을이 보일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묘하게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흰바람은 슬슬 숨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다. 언덕 너머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싸움?】
【…이런.】
왜 자타브가 물러났나 했더니, 아무래도 이걸 위해서였나 보다.
그들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타브와 비가볼을 보며 혀를 찼다. 이대로라면 비가볼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 아니, 있다 해도 들어가면 안 된다. 싸움에 휘말리게 될 거다.
【다시 돌아가야─.】
“잠깐.”
그때, 후미에 서서 마법사들의 기력을 북돋아 주던 용사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슬슬 목을 덮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찰랑 흔들렸다.
“저주가 느껴집니다.”
“네?”
“먼저 가 보겠습니다!”
대체 무슨? 갑자기 웬? 어째서?
흰바람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급히 마력에 집중했다. 전문 분야는 아니나, 기본 소양으로 익히고 있는 정밀 탐색 마법이 사방으로 기운을 뻗었다.
“…진짜잖아!”
【저,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저분을 보내도 되는 건지…….】
“지금 그게, 아니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저곳에서 저주가 발생했어요!】”
악마와 연관이 된 이상 이건 개입을 피할 수 없다. 흰바람은 사건이 왜 이렇게 커지는 거냐며 비명을 지른 후 다급히 용사를 따랐다.
【자, 잠깐.】
【족장님, 어떻게 할까요?】
【…저주라면 악마와 관련된 것일 터. 산군님께서 돌보는 숲에 악마가 있어선 안 됩니다. 갑시다!】
【예!!】
영문을 모른 채 세르항의 인물들도 그들을 쫓았다. 졸지에 세 부족의 삼자대면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 * *
【사, 살려 줘!!】
【저주다! 저주라고!!】
【자타브 저 미친놈들, 대체 뭘 가져온 거야!!】
【죽음이 다가온다!!】
【지, 지휘관님! 지휘관님, 제발 살려 주세요!】
【뭐, 뭐야. 이방인 놈들 대체 뭘 준─!】
데브가 인기척을 죽이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니, 그걸 이용해 인질들을 풀어 줄 생각을 했을 뿐인다.
그런데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는 마을 한복판에 퍼지기 시작한 검은 물을 보았다. 죽음과 부패의 냄새가 났다.
오른팔이 간지럽다.
【물러나, 당장 물러나!】
“도망쳐라!”
이건 방관하면 안 된다. 나는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이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경험상 맨살에만 닿지 않으면 괜찮았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으아악!】
휘익!
나는 빠르게 퍼지는 검은 물들로부터 사람들을 건져 냈다. 보다 정확히는, 삼켜지기 직전의 사람들을 잡고 뒤로 던졌다.
“벽을 세워라, 마법사!”
“대지여, 솟고 굳어라.”
아크메이지는 딜러보단 서포터가 적격인 걸까. 어쨌거나 흙벽이 솟아오름으로써 검은 물이 막혔다. 나는 그 뒤로 사람들을 계속해서 넘겼다.
비가볼, 자타브. 소속을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이 역병 앞에서 싸움은 무의미하다.
【아, 아이들이!】
아, 젠장.
나는 아이들이 인질로 잡힌 곳까지 들이닥친 물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매달린 아이들은 그나마 낫지만, 문제는 한데 뭉쳐 바닥에 무릎 꿇려진 아이들이다.
내가 가진 힘과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중, 적어도 저들 전부를 안전하게 구해 낼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신이시여!!”
젠장. 그렇다면 내가 들 수 있는 최대한의 아이들이라도─.
“부정을 멸하소서!!”
일순, 거대한 빛의 폭풍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HP가 쫙 달았음에도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다.
“제법이군.”
“……! 악마기사!”
으아아! 우리 와기만두 타이밍 맞추는 거 진짜냐! 역시 용사님! 우리 만두가 최고다!!
나는 발그레 달아오른 뺨을 힐끗 보곤 아이들을 구속하던 끈을 찢었다.
아이들을 감시하던 새끼들은 일찌감치 뒤로 도망친 상태라, 방해 같은 건 받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구해라.”
【가, 감사합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단검을 내밀고,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간단하지만 명확한 의사표시에 아이들이 느낌표를 띄웠다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통한 것 같다.
“핫! 그보다, 악마기사. 어째서 저주가…….”
하면 내가 할 일은 이쪽인가.
나는 인퀴지터의 질문을 두고 속으로 곱씹었다. 글쎄다. 자타브 놈들이 던진 건 봤는데 저놈들이 왜 가지고 있는진 나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그런 생각은 덤이었다.
일단 상황 파악이 먼저다. 나는 반강제로 소강상태가 된 상황을 쓱 훑어보았다.
직격으로 맞은 비가볼 녀석들도 많이들 당했지만, 자타브도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부딪치고 있던 전사들 대부분이 절명했거나 저주로 끙끙대고 있다.
인퀴지터가 주변을 신성력으로 물들이고 있으니 더 이상은 안 죽겠지만, 다 나을 때까진 고통으로 괴로워할 게 자명하단 거다.
“던진 자, 누구냐.”
그러나 본인들이 자초한 일이다. 물론 아랫사람들이 저 효과를 알았을 거란 생각은 잘 안 들지만…….
쟤네가 애들이야? 아니잖아. 앞가림할 성인들이, 그것도 전쟁 걸어온 애들이 죽었다고 내가 동정해 줄 이유가??
죽음을 두고 안타까워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제일 가여워해야 할 대상들은 희생될 뻔한 무고한 자들이다.
“누구냐고, 물었다……!”
하물며 악마와 관련된 저주 아이템이 등판해 버렸죠? 컨셉 성질머리 절대 못 참죠?
진짜 가지가지 하는 새끼들. 한쪽은 인간성을 버리고 한쪽은 인간성을 버린 놈과 손을 잡은 거 실화냐? 저런 놈들이 다음 대 대족장으로 뽑힐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도 실화냐?
환멸나는구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와중에 세력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나는 뚫린 벽 사이로 우르르 넘어오는 마탑 사람들과 세르항 족장을 확인한 후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체 무슨 일이래.”
흰바람은 꼬깔모자가 뒤로 날아가지 않게 잘 잡은 상태로 총총 달려왔다. 난장판이 된 상황을 보고 입가를 가린 건 덤이었다.
“하나 실험체로 가져가고 싶네. 안 되겠지?”
…방금 발언은 부디 없던 걸로 하자.
【너는……!】
【세르항 족장! 잘 왔습니다! 동맹으로서 부디 도움을……!】
전사들을 뒤로 배치한 후 다시 전선을 정리하던 아타르트가 다급히 외쳤다. 세르항의 족장이 아타르트 쪽을 힐끗 보더니 얼굴을 굳혔다.
내가 만나기 싫은 사람 만났을 때 종종 짓곤 하던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겉으로 웃는데 등짐 쥔 손으로 X 날리는 그 표정.
【저는 지금 동맹의 자격으로서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악마의 기운이 관측되었다는 손님의 말을 듣고 해결을 위해 안내자를 자청한 것입니다.】
【그래요! 그겁니다! 자타브가 행했단 말입니다!】
【그게 정말입─.】
쿠구구구궁!!
한데 아타르트와 세르항 족장의 대화가 몇 마디 오갔을까. 난데없이 대지가 흔들렸다.
“무, 무슨.”
인퀴지터는 좀 놀란 듯하지만, 나는 그냥 그렇다. 이 지역 오고 나서 일이 한두 번 터졌어야지.
이쯤 되니 당황스러움도 잘 들지 않는다. 그저 깜짝 이벤트가 대체 몇 번까지 일지 궁금하기만 할 뿐.
【산군님!】
정정하자. 놀랐다. 요르문간드가 하늘에 있네.
【사, 산군님……!】
나는 하늘에 존재하는 흰 뱀을 보며 눈을 살짝 치떴다. 뱀 특유의 동그란 눈을 하고 있어서 무섭진 않은데 너무 커!!
왕뱀도 아니고 와아아앙 뱀도 아니고 저건 그냥 대와아아앙 뱀이잖아!
[와, 마. 미친놈들이네, 이거.]
그때, 뱀의 입이 살짝 열리며 뱃고동 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졌다. 어쩐지 내 귀엔 제대로 꽂혀 들리는 소리였다.
[숲 뒈지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왜 내 숲에서 자살행위를 하고 있는데? 뒈질라면 남들 끌어들이지 말고 너거만 죽어야지.]
근데 발음이 왜 미묘하게 구수한 것 같지……?
[아.]
그때 뱀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뱀의 눈이 두 번 끔뻑거리더니 미묘하게 시선을 데굴데굴 굴렸다.
[혹시 저 새끼들이 심기 불편하게 했다거나… 그래서 화나셨다거나…….]
잠깐만요. 그 덩치로 왜 이렇게 공손하게 굴어.
[제가 대신 사과드릴 테니 부디 숲만은 가만히 내버려 둬 주시면…….]
…나는 별짓 안 한 것 같은데 왜 깡패가 된 기분이지?? 저기요???
【산군님의 행차십니다! 다들 예를 갖추십시오!】
그때 뱀… 아니 도마뱀? 을 타고 있는 이들이 성벽과 건물들을 넘어 자리로 우다다 달려왔다. 옷차림이 딱 제사장들의 그것이어서 정체를 알기란 어렵지 않았다.
저 왕큰뱀이 보통 생물일 리는 없거니와 등장하자마자 주변인들이 냅다 머리를 조아린 걸 보면 분명 ‘산군’일 것 같은데… 그렇다는 건 저 제사장들은 산군을 모신다는 늪의 제사장이 아니겠나.
【산군님이시여!】
【산군이시여!】
【부디 용서를!】
【숲의 판결을!】
그보다 참, 숭배받는 뱀이었다. 세르항이고 자타브고 비가볼이고, 방금 전까지의 상황은 다 잊었다는 양 큰절을 하며 왕뱀에게 읍소했다.
【그쪽! 당장 예를!】
[니 미쳤나. 납작 엎드릴 건 저분이 아니고 니들이다. 얼른 예의나 갖춰라.]
【…산군님께서 인정을 하신 분을 뵙습니다!】
와중에 늪의 제사장들 탈룰라 오진다. 나는 얼떨결에 제사장들의 큰절을 받았다.
내 바로 뒤쪽에 있되, 나랑 똑같이 주변의 말을 이해 못 하는 인퀴지터 역시 덩달아 절을 받았다.
“저, 악마기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입니까?”
그러게… 나도 알고 싶다…….
[…화 안 나신 거 맞지요?]
“…장난하나, 뱀?”
[하이고, 진짜 화나셨는갑다. 하여튼 이 띨빡이들 때문에…….]
산군이 꼬리 끝으로 정수리를 쓱쓱 긁었다. “악마기사? 저한테 말하셨습니까?” 인퀴지터에겐 저 말이 안 들리는지 날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번만 봐줍시다, 한 번만. 제가 단디 교육할 테니까는.]
이럴 땐 진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가끔씩 컨셉 방향을 잡을 때 헷갈리는 구간이 나오긴 했지만, 이번만큼 갈등이 되는 곳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산군이시여!】
나를 구해 준 건 우습게도 내가 탈탈 털고 싶었던 아타르트였다.
【자타브는 감히 악마의 물건을 이 땅에 들여왔습니다! 그들에게 정당한 판결을! 심판을 내려 주소서!!】
[이 새낀 또 뭔데.]
뱀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 내게 쩔쩔매던 건 어디 갔는지, 아타르트를 내려다보는 금색 눈은 서늘하기 그지없다.
【산군이시여!!】
[아아주 지랄 났지, 지랄 났어. 허이구. 지가 잘못한 건 생각도 안 하고 다른 놈들부터 심판해 달라 징징대는 꼬라지 하고는.]
와중에 산군의 말이 들리니까 아타르트가 뭐라 지껄였을지 가늠이 된다. 대충 자타브가 잘못했어요. 처벌해 주세요. 하는 찡찡이 아닐까.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글체? 잡아라. 자타브 애들 오늘 검사 함 하자.]
【산군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자타브 부족은 숲을 향한 신실함을 증명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비가볼 애들도 대기 타라 해라. 삐끗하면 숲 멸망할 뻔했다, 오늘.]
【…비가볼 부족 역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잠시만, 어째서!】
【그것이 산군님의 뜻입니다.】
어쨌거나 뱀은 비가볼과 자타브를 동시에 돌돌 말아 먹었다. 저걸로 저 두 부족은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될 거다.
저 뱀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맞다면… 아마 솜방망이 처벌도 아닐 테고 말이다.
[그리고…….]
산군이 금색 눈으로 지상을 쓱 훑더니, 곧 한곳에 눈길을 멈췄다.
[저 애가 똘똘하니 손님 심기도 안 거스르고 일도 잘하더만. 다음 대 대족장은 쟤로 하자.]
【…세르항의 족장, 에쿠아!】
【예, 산군의 뜻을 받드는 분들이여.】
【산군께서 다음 대 대족장으로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부디 이 숲의 영광된 치세를 부탁드립니다.】
【…그, 외람된 질문이오나, 저를… 산군님께서 지목하신 것이 진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잠시만, 이건 부당합니다!】
【비가볼의 족장, 아타르트! 감히 산군님의 뜻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지금 카티나인지 뭔지로 뽑는다던 대족장이 호록 뽑힌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감히!!】
[허, 저 새끼 웃기는 놈이네.]
갑자기 상황이 흥미진진해졌다. 더 이상 사람 죽어 나갈 일도 없겠다, 뱀이 뭔가 다 해결해 주고 있겠다.
나는 빡침을 연기하는 한편, 팝콘 씹는 마음으로 아타르트의 망함을 구경했다. 언어고 자시고 저놈 표정만 봐도 인생 망했다는 게 보인다.
【대족장의 자리는 마땅한 자에게 돌아가야─!】
그러나 더 큰 재미는 그 직후였다.
촤르르륵!
【─! 제사장 따위가!】
하얀 사슬이 아타르트를 구속하려 들었다. 간발의 차로 아타르트가 사슬을 피했으나, 직후 달려든 건 거대한 할버드였다.
“으하하! 네가 가장 강한 전사라지?! 베르세르크와 한판 싸우자!”
할버드는 아타르트의 네 개의 팔을 오롯이 붙잡았다. 네 개의 팔로 전부 가드를 올려야만 막을 수 있고, 그렇게 하면 막히도록 힘을 준 까닭이다.
【너는 대체!】
“엇차.”
그리고 아타르트가 그렇게 팔을 전부 사용했을 때.
“아이 데려갑니다.”
나도 눈치 못 챘던 기척이 아타르트의 나머지 손으로부터 아이를 인터셉트했다. 최고의 합이었다.
“내가.”
동시에 내게도 기회가 돌아왔다.
“말했을 터다.”
아무렴, 아이가 아타르트 손에 없다면 내가 놈을 향해 검을 겨누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남은 인질도 이미 풀리고 난 후였는걸.
“아이들의 목숨이 곧 너의 목숨임을.”
【……!!】
“엥, 잠깐 걘 베르세르크의 사냥감─.”
서걱!
해서 나는 단번에 아타르트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 번의 검격이 허공에 궤적을 새기면 오른쪽 팔 세 개가 전부 나가떨어진다.
【커헉!】
나는 아타르트가 주변에 무어라 명령하거나, 주변이 먼저 반응할 시간 따윈 주지 않았다.
그 몸이 균형을 잃기도 전에 가슴팍을 발로 밀듯 지르밟고, 그 몸이 바닥에 내리꽂힘과 동시에 칼로 어깨를 찍은 것이다.
“지옥으로 보내 주마.”
사이다가 멀리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