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그걸로 충분한 (2)
협박범 새끼가 지금 벼랑에 떨어졌다고 악수를 좀 뒀는데, 내가 그거에 휘둘려 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저런 새끼가 내 도움으로 살아남아 족장으로서, 혹은 대족장으로서 활동하는 게 더 최악이다. 자타브가 어떤 부족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아타르트 저 새끼는 주민들의 삶을 몇십 보 후퇴시킬 놈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최후의 패를 꺼내들었다.
“하, 왔군. 역시 아이들은 못 버리겠나 보지?”
아카타─아크메이지가 아이를 그렇게 부르더라─는 내버려 두고 와 봤자 인질로 잡힐 것 같아, 그냥 데리고 왔다. 잔인한 장면이고 자시고 일단 생존이 우선 아닌가.
그러나 아카타가 안전해도 나머지 아이들은 여전히 목숨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당장 아타르트가 손에 쥐고 있는 아이만 해도 그렇다.
손이 여섯 개랍시고 손 두 개를 이용해 아이 하나를 목마 태우고 있다. 목마에 탄 아이가 울고 있는 걸 보면 좋아서 타고 있는 건 아닐 터였다.
“자네가 마법이라도 부리면 내가 곤란해져서.”
아. 그러니까 내가 마력창으로 대가리 꿰뚫을까 봐 고기 방패로 아이를 머리에 얹고 있겠다?
“참고로 그쪽 제사장도 주의해 주게.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마법의 전조는 알고 있거든.”
심지어 수작이라도 부린다면 아이들을 죽일 거라며 아타르트는 뒤쪽을 가리켰다. 어른의 키에 맞춰 곳곳에 매달린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전부 내가 반란자들을 제압할 때 보인 걸 고려해 한 처사 같았다.
이렇게 철저한 개자식도 오랜만이었다.
“그럼, 이제 좀 도와주겠나? 놈들은 소수 정예로 지금 쳐들어온 상태네. 우리에게 제사장이 없다는 걸 이용해, 마법을 위주로 하고 자후카타도 동원했지. 그래도 수가 많진 않아. 잘만 하면…….”
그걸 보니 눈가에 열기가 화악 치달았다.
‘화가 나지.’
정말로.
‘죽여 버리고 싶진 않아?’
짜증난다고.
‘참지 마.’
나는 말이다. 내가 호구같이 사는 게 한 번도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내가 입은 손해는 항상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때로 내 손해가 남에겐 바꿀 수 없는 기회가 되곤 했던 까닭이다.
‘네가 참을 필요는 없어.’
그러나 가끔, 내 선의를 이용하려는 자들을 보면 진절머리가 난다.
‘전부 죽여 버리자.’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만만하게라도 보이는 걸까? 난 한 번도 만만한 사람인 적 없었는데.
“악마기사?”
「격노」
나는 부글부글 끓는 화의 깊이와 크기를 인지했다. 이건 못 참는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심한 마당인데, 이따위 X같은 상황까진 감당 못 한다고.
“악마기사!”
「격노를 제외한, 걸려 있는 모든 상태이상을 무효화…….」
하나, 그래도 상관없다.
「하──@# 추가 상태4#^을 무7%$합$$^&[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화를 억지로 참다간 어떻게 되는지, 터진 분노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악마기사, 대체 뭘 하려는─!”
「Error!」
나는 가장 먼저 주변에 가득한 아이들과 민간인들을 피해 분노의 대상을 좁혔다.
‘…어떻게?’
섬에 있을 때완 달랐다.
그땐 아이들을 핍박하던 적과 피비린내 가득한 광경 등 정말 많은 것에게 화가 났고, 그럼에도 감정을 억압해야 하던 처지였다. 그래서 화가 더 증폭되다가 기어코 격노 상태이상으로 화한 거고.
그러나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지금의 나는 분노가 뇌를 마비시키기 전에 터트릴 수 있다. 그래도 되었다.
‘어떻게 화를 통제할 수 있어?’
더불어 분노의 대상을 직시하고, 정당함과 행동의 가치를 갖춘 채 올바른 방향으로 쏟아낼 수 있다면 화라는 건 꼭 나쁜 게 아니다.
댐이 부서지기 전 물을 흘려보내는 건 인내심이 짧은 게 아니라 현명한 행위다.
‘어떻게.’
하여 나는 대상을 특정한 다음, 오른팔에 요동치는 마력을 한 점으로 집중했다.
‘인간 따위가.’
“악마기사─!”
그리고 마력이 온전히 한 점으로 모여들었을 때, 나는 모든 분노와 설움을 그것과 함께 토해 냈다.
조금 올라 2,941를 자랑하던 마력이 0으로 치달음과 동시에 새까만 포를 쏘아 보냈다.
───!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마치 뱀처럼 길고 긴 검은 기운이 하늘을 내달렸다.
거대한 구렁이가 지나간 자리는 꼭 거인이 숲을 한입 베어 문 것처럼 증발한 상태다.
내가 보아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마법과 검기가 존재하는 세계관인데도 신화의 한 조각이 아닐까란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해 봐라.”
그러니 개자식아. 판을 다시 짜자.
“아이들의 목숨이 곧 네 목숨이었음을 알게 될 테니.”
협박은 너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야.
* * *
…이번에야말로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아…….」
* * *
“…뭐?”
“왜, 예상 밖의 반응이라 놀랐나?”
사위가 조용해졌다. 다른 부족에서 전쟁을 걸어온 상황이라기엔 기괴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적막이었다.
“무고한 아이들의 시신을 업고 가는 걸 이 내가 두려워할 거라 생각했느냔 말이다!”
그러나 방금 내가 저지른 짓을, 그리고 그때 인 풍압이 집 몇 채를 박살 내고 사람들을 나동그라지게 만든 걸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죽여라! 이미 친혈육마저 살해한 몸, 아이들의 피가 더해진들 달라질 건 없으니!”
나를 볼 정신이 없었어도 몸이 바닥에 처박히면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었을 터. 하물며 주변 모든 사람들이 뒤편의 숲을 본다면 더욱 그쪽에 시선을 주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저 광경을 보고도 움직일 깡이 있는 사람은, 글쎄다.
“하나, 기억해라!”
내가 발언을 끝내기 전까진 없을걸?
“네놈이 그 아이들을 죽이거든, 나는 그 죄 없는 것들의 복수로 네놈의 살을 가르고 뼈를 으스러트려 내장마저 갈기갈기 찢은 후 그 아이들의 묘비 위에 뿌릴 것임을!”
그러니 가자. 치킨 게임이다.
네놈이 에이씨 몰라 다 죽어로 나가든, 아니면 이도 저도 못 해서 내 의도대로 아이들을 구할 수 있든. 둘 중 더 쪼는 새끼가 뒈지는 쪽으로 가자고.
“그럼 선택해라!”
다만 장담하건대. 이 끝의 승자가 내가 아닐 순 있어도, 패자만큼은 네가 될 거다.
“아이들의 목숨을 네 저승길 길동무로 삼을 것인지, 얌전히 네놈의 일만 할 것인지.”
어느 쪽을 골라도 네놈은 뒈질 테니까.
“무, 무슨…….”
오랜만에 컨셉이고 본체고 한마음이 되어 곧이곧대로 화를 내서 그런가. 볼로부터 열감이 느껴졌다. 분노의 온도였다.
그러나 그게 나쁘냐면, 그다지.
상황은 참 X같아도 속은 시원했다. 형편 따지지 않고 화를 낼 수 있던 건 솔직히 이번이 처음이잖아.
몬타타 때는 다소… 응. 처지가 그래서 화를 내고 싶어도 살짝 눈치 봐야 했으니까.
“아이, 아이들이…….”
콱.
그보다 이 새끼, 예상은 했지만 정말 당황해하네.
세게 말하고자 일부러 설정상 과거까지 들먹여 봤는데, 그게 효과가 있나 보다.
하긴 친혈육마저 죽인 사람이 타인의 죽음에 동요하리란 생각은 잘 안 되겠지. 나도 그걸 노리고 말한 거고.
나는 신랄히 비난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억누르며 투헨더를 내 옆에 꽂았다. 순식간에 차오른 마력이 투헨더를 붙잡은 손을 통해 검은 기운을 줄기줄기 흘렸다.
명백한 위협 신호였다.
“선택, 하라고 했다.”
그러자 구질구질하도록 아이들을 들먹이던 아타르트가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빠르게 삶을 마무리하긴 싫은지 와중에 아이들에겐 털끝만큼도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방금… 대체…….】
【검은 천둥이… 이방인의 손에서 뻗어 나왔어.】
【뱀이… 뱀이 하늘을 날아간 건가?】
그사이 응전하던 이들이 술렁술렁거렸다. 쳐들어온 쪽도, 맞서 싸우던 쪽도 차마 칼부림을 낼 용기는 없는지 엉거주춤 서 있기만 한다.
【도망친다!】
그때 아이를 안고 있는 열다섯 살 어림의 소년이 우다다 달렸다. 자타브의 전사가 그 소년을 향해 창을 빼 든 건 아마 반사적인 행위일 터였다.
서걱!
그러나 용납할 수 없다. 나는 내가 한 짓임을 명확히 선보이고자, 손을 휘둘러 마력창을 쏘아 냈다.
손끝에 마력을 맺은 후 나이프나 카드 던지듯 던졌다고 보면 된다.
허공에 생성하는 것보다 배는 편하고, 마력도 덜 소모된 창이 빠르게 날아가 자타브 전사의 창을 잘랐다.
전사의 표정이 황망하게 변하고, 아이가 후다닥 도망쳤다.
“감히.”
웃기는 양반일세. 내가 아타르트 싹수 더러워서 비가볼 손 안 들어 주는 게, 쳐들어온 너희를 옹호해서 그런 줄 알아?
“내가 저 버러지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너희의 침략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하니 날뛰어 봐라. 무기를 들지 않았거나 대항할 의지가 없는 자들까지 노리는 순간, 내 직접 그 수급을 취해 줄 테니.”
나는 자타브의 전사를 사납고 집요하게 응시했다. 어딘가에 못 박힌 듯 흔들림 없는 동공은 살인자의 눈이란 소리를 들었기에, 시선은 최대한 미동 없도록 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전사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자타브의 전사들에게 전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손님의 자격으로 비가볼 부족에 방문한 상태이며… 이 싸움에 개입할 의사가 없습니다. 적어도 그대들이 저항할 의지가 없는 자들을 공격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쟤네는 내 말을 못 알아듣던가? 그래도 상관없다. 아크메이지가 통역해 주는 듯하니까.
【부디 부탁하건대, 그대들이 지지든 볶든 신경 안 쓸 테니 도망치거나 항복한 민간인들만큼은 내버려 두길 바랍니다. 우리가 끼어들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니 내가 꼭 UN 같은 국제기구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기는 하는데… 아무렴 어떤가 싶다. 이미 드러낸 힘, 사람들 살리면 좋은 거지.
【이방인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믿지 않으면? 그러면 어쩔 것인지요? 미리 경고하지만, 내 옆에 있는 이가 나만큼 정중한 태도로 그대들을 상대하진 않을 것입니다.】
【……!!】
【다시 말합니다. 그대들에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부디 우리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행히도, 아크메이지가 잘 전달했는지 자타브는 더 이상 민간인들에게까지 칼을 뽑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건 결국 중립을 가장한 채 자타브 편을 드는 것이다! 당신들은 내 손님이면서 우리 부족이 다 죽도록 방관할 셈인가!】
【선을 먼저 넘은 건 족장님 같습니다만. 또한, 비가볼 부족을 벼랑으로 떠미는 진정한 이는 우리가 아닌 것 같군요.】
【우리가 가엽지도 않단 말인가!】
나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내 뒤로 모여드는 걸 지켜보며 다시 아타르트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진 몰라도 뻔뻔한 낯짝으로 보아 썩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진 않던 까닭이다.
아크메이지에게 징징대던 아타르트가 흠칫거렸다.
【우리가 끼어들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말한 건 아타르트 족장, 당신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가여움을 논해!!】
동시에 아크메이지가 노성을 터트렸다. 저 새끼가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족장에게 동조하는 당신들도 마찬가지일세! 인질로 잡히는 것이 반역자들의 자식이란 이유로 방관해?!】
와, 아크메이지 제대로 빡쳤다.
나는 왠지 모르게 내 분노가 쏙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저번도 그랬지만, 평상시에 인자하기 짝이 없던 아크메이지가 역정을 내니 괜히 내 심장마저 쪼그라들었다.
컨셉이 아니었으면 두 손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을 거다.
【어리석기 짝이 없어! 저 아이들이 죽으면 다음으로 잡힐 인질은 뻔하디뻔한데!】
【……! 그 무슨!】
【잠깐, 무슨 소리를!】
【마지막으로 말 한마디만 남기지. 족장은 저 아이들의 목숨만 걸지 않았네. 이 마을 전체의 아이들을 우리에게 내걸었지.】
왜 화내는지 몰라서 더 무서워잉.
【족장님……?】
【거짓말이다. 동요하지 마라! 적이 앞에 와 있다!】
【…….】
근데 뭐어어언가 사기가 흐트러지는 것 같기도?
【진짜예요!!】
그때 내 뒤에 있던 아이가, 아카타가 버럭 외쳤다.
【저 인간은 나한테 이 사람을 죽이라고도 했다고!! 자길 돕지 않았다면서!!】
저기, 왜 날 가리키면서 말하니…….
【…아카타?】
【몰라요. 어제 대충 그럴 가능성이 높다면서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가족들도 다 죽었는데, 이 부족이 살아서 뭐 해요? 아타르트가 죽는 꼴만 볼 수 있다면 이따위 부족 멸망해도 좋아.】
저기…….
【조, 족장님, 저 말이 진짜입니까?】
【동요하지 마라! 적들을 앞에 두고 반역자의 자식의 말에 넘어갈 셈이냐! 반역자들이 자타브와 내통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저 자식은 우리 부족의 명운 따위 관심 없어! 어떤 놈이 패배하면 다 죽을 목숨이라며 아이들 전체를 인질로 잡아!】
나는 소란 속 고요가 되어 시무룩해졌다. 이 양반들이 기껏 도망칠 구석도 마련해 줬더니 나만 왕따시킨다… 힝.
서걱!
그때 아타르트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아니, 원래 뽑고 있던 걸 휘둘렀다는 쪽이 맞을까?
어느 쪽이든 사람의 수급을 베어 넘겼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가장 열정적으로 아타르트에게 무어라 무어라 중얼대던 놈의 목이었다.
분노로 지글지글한 아타르트의 낯이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희의 족장은 나다. 이방인과 반역자의 말에 휘말릴 자들이라면 차라리 무기를 버리고 저들의 밑으로 들어가도록.】
카리스마가… 있나?
모르겠다. 가정 폭력범에 이어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분리수거도 안 되는데 산소만 낭비하고 있는 인간 말종 쓰레기’ 따위. 카리스마가 있어도 없다고 할 거라고.
그러나 그건 내 의견이었고, 주변인들은 바로 넘어갔다. 사람 하나가 죽었는데도 반론 대신 순응을 택한 거다.
괜히 족장이 아니었다. 그래도 쓰레기지만.
【놈들은 민간인을 공격하지 못해! 그 틈을 노려라!】
【…예!】
심지어 아타르트는 능력도 좀 있는 듯했다. 피해가 크긴 하나 어떻게든 진을 치고 버텨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내 도움도 구하지 못하고 제사장도 없다는 핸디캡을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재능이었다. 그래도 쓰레기지만.
【개자식…….】
비가볼 부족의 승패와 관련 없이 자타브가 아타르트만큼은 죽여 주길 바라는데.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인질로 잡은 놈을 보며─당연했다. 놈이 인질들을 풀어 준 순간 나는 놈을 죽일 거였다─이를 지르물었다. 놈이 공격당하면 아이도 휘말릴 확률이 크니 소원이랍시고 빌기도 좀 그렇다.
그렇다고 저놈이 살아남는 것도 모자라 이긴다? 저 애들은 자기를 인질로 잡은 개새끼들을 머리로 둔 채 살아야 하잖아.
아, 짜증나.
‘죽여. 제발.’
진짜 저놈만 어떻게 해 버릴 수 없나.
‘널 짜증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죽여!’
정말, 딱 저놈 하나만…….
“나리.”
기분 탓인가. 지금 들리면 안 될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사 나리.”
“……!”
나는 이명 사이로 들려온 목소리에 눈동자를 살금 굴렸다. 집들 사이로 설핏 녹색 귀와 꼬리가 보였다. 그 뒤에는 가려지지 않는 근육질의 투사가 빼꼼 눈을 내밀고 있다.
“어, 그. 저희 뭐 도울 거 있습니까요?”
“베르세르크는 싸우고 싶다.”
진짜 웃긴 놈들이었다. 대체 언제 온 거야? 그리고 왜 그렇게 숨어 있어. 버서커는 몸의 절반 가까이가 튀어나와 있잖…….
잠깐.
나는 다시 데브와 버서커를 보았다.
이거 잘만 하면…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마법사.”
“……? 왜 그런가.”
이건 내 머리로 될 게 아니다. 나는 여기서 가장 지능 스탯이 높을 사람을 불렀다. 모략을 짤 시간이었다.
【빌어먹을, 저항이 너무 강합니다!】
【젠장. 반역이 실패해도 세력은 깎아 둘 테니 걱정 마라 했던 주제에……! 이래서 타 부족 놈들은 믿으면 안 돼!】
【지휘관, 자후카야의 피해가 큽니다! 판단을!】
【그 수단을 꺼내라! 빌어먹을 이방인의 물건은 쓰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던져!】
짤 시간이었는데…….
【던져!】
치열한 전투가 이뤄지던 순간, 조그만 항아리가 마을 한복판에 떨어졌다.
【어?】
【어, 어어어!】
【으아아악!!!】
“…저주인가!!”
재앙이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