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떠날 수 있다면 (3)
“자타브가 길목을 막고 있어서 못 간다고요?”
“그래. 비가볼 족장의 비밀 병기니 검은 뱀이니 하며 독이 바짝 올랐는데… 어찌 됐건 비가볼의 영역으로 가려면 무조건 자타브랑 한판 붙어야 할 것 같아.”
“베르세르크는 싸울 자신 있다.”
“당신은 싸울 수 있어도 우리 마탑은 싸우면 안 되거든? 겨우 대삼림에서 재료를 구해 올 수 있게 됐는데, 싸우면 길이 다시 막힌다고!”
“그럼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협상을 해야지. 아마 높은 확률로 안 받아 줄 테지만…….”
“하면 두 분과 합류하는 것은…….”
“죄송해요, 용사니임. 며칠 좀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아…….”
* * *
비가볼의 영역에 도착했다.
【어떻게, 어떻게 너희가…….】
잡음 없이 귀환하여, 귀한 대접 받은 후 산군과 만난다? 각오는 했었으나 역시나였다.
【어떻게 너희가 이럴 수 있어!】
【하, 닥쳐! 나는 분명 네게 번번이 경고했어, 아타르트. 듣지 않은 건 너야!】
【타포샤카! 삼마르!!】
예상대로 반란이 일어나, 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네… 그, 괜찮은가? 표정이 영.”
참고로 진압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아타르트를 따르던 세력이 여즉 남아 있기도 했고, 주민들 전체가 내란에 가담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쪽에 엄청난 실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념 싸움이다 보니까 찝찝함에 무기는 안 들고 싸웠는데도 쭉쭉 밀려나더랬다.
【흐어어엉.】
【시끄러우니까 입 닥쳐!】
그러나 진짜 사건은 마지막 가서 터졌다.
반란이 실패할 위기에 처하자 반란군 놈들이 민간인들로부터 대여섯 살 아기들을 납치, 냅다 인질로 잡아 버린 것이다.
사망자가, 특히 휘말리는 민간인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던 내 눈이 뒤집힌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암, 부모님이 애지중지 보호해 줘서 어른으로 자랐을 새끼들이 지 어린 시절 까먹고 애를 인질로 잡는데 내가 왜 용서해. 이 미친 새끼들. 개자식들.
“묻는다.”
전통 유지고 뭐고 아이들을 건드리는 시점에서 그 새끼들이 내세우는 모든 주장과 명분은 힘을 잃었다.
나는 그 점을 확실히 뇌리에 새기며 칼자루를 잡았다. 내 앞에는 마지막 반항으로 내성을 점거한 채 인질극을 벌이는 반란군들이 있다.
“저 버러지들을 죽여도 되나.”
반란군의 수장이 아이 하나를 안은 채 인질 잡고 있고, 남은 아이들은 반란군 주동자 중 하나와 함께 성벽 한편에 꿇려 앉아 있다. 밧줄에 동동 묶인 건 덤이다.
“…자네.”
아크메이지가 진중하게 나를 불렀지만 무시했다.
대신 아이를 붙잡고 있는 이를 눈에 담았다.
팔이 여섯 개나 돼서 아이에게 피해 없이 여섯 개를 다 자를 수는 없겠고, 아이의 정수리가 턱에 닿도록 들고 있으니 목을 자르는 것도 어렵고.
거기에 저놈을 공격한다 해도 다른 아이들의 안위가 문제다. 다음 수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
“죽여도 좋다. 머리만 남겨 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고마울 것이야.”
그렇게 신중의 신중을 기울여 답을 막 찾아냈을 때. 아타르트가 확답을 내려 주었다. 그거면 되었다.
“전해라.”
“……?”
“눈을 감으라고.”
허공에 새까만 빛이 새겨지고, 상대의 미간을 꿰뚫었다.
쾅!
동시에 내 몸 역시 대지를 박차고 단번에 떠올랐다.
쨍그랑.
투명한 벽 같은 게 깨짐과 동시에, 내성의 나무 벽을 부수고, 밟아 가며 올라간 몸이 뒤로 넘어가는 시체 앞에 섰다.
【흐헝.】
아이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문득 가슴보호구 잃어버린 게 지금만큼은 호재처럼 느껴졌다.
【무, 뭔─.】
이후는 글쎄. 몸을 다른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틂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아타르트가 전하란 말을 전한 것인지 아이들은 대다수가 눈을 감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서걱!
살들이 예리하게 잘리고 피분수를 쏟아 냈다.
【흐으윽.】
그 잠깐 새에 콧물과 눈물로 가슴팍이 축축해졌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가슴팍에 얼굴을 문대고 있다는 건 시야가 막혔단 뜻이고, 시야가 막혔다는 건 주변을 못 본다는 거니까.
들썩.
나는 아이를 고쳐 안되, 아이의 눈이 어깨 너머로 삐져나오지 않게 하며 생존자를 확인했다.
아이들이 성인보다 체구가 작고, 무릎을 꿇은 상태라 머리의 위치가 더 낮다는 걸 고려해 검을 휘둘러서 그런가.
검격에 휘말린 건 인간도 아닌 새끼들뿐이다. 아이들은 피만 좀 뒤집어썼을 뿐 상처 하나 없다.
최소한 육체적 상해 없이 구하자는 계획이 성공했다.
“눈은 계속 감아라.”
말이 안 통할 걸 알지만 뉘앙스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얘들아.
나는 그런 의도로 헛된 경고를 하며 가슴팍의 아이를 인질로 잡힌 무리에 내려 두었다.
그러곤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해 어버버거리는 이들을 훑었다.
인질로 잡힌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했겠다, 이제 진압만 하면 된다.
【아이들이 구출되었다! 안으로 들어가!】
【차라리 아이들을 이쪽으로 먼저 옮기는 것이 나을 겁니다, 족장. 그가 움직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그런가. 그게 더 낫겠군!】
내가 물꼬를 틀자, 잠시 막혔던 진압도 궤도에 다시 올랐다.
아크메이지의 마법에 결계─내가 아까 부숴 먹은 후 급하게 다시 친─와 막힌 문이 박살 나고, 전사들이 우르르 진입한 것이다.
【타포샤카… 삼마르…….】
그 가운데는 아타르트도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인계받기 위해 성벽 위로 올라왔다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 끝엔 미간에 구멍이 뚫린 남성의 시체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여성의 시신이 있다.
애틋함과 분노가 뒤섞인 눈길이 끝내 눈꺼풀을 내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저들끼리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관계가 아니란 건 알겠다.
“이제 내가 맡지.”
뭐, 무슨 사이건 내 알 바는 아니다.
나는 아타르트와, 캐스팅할 때의 안전을 위해 붙어 있는 아크메이지에게 아이를 맡긴 후, 자리를 떠났다.
쿵.
성벽 아래로 착지한 몸이 약간의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앞으로 전진했다.
【…대부분 산 채로 제압하는군. 나중에 있을 처형을 위해 배려해 주는 건가.】
【꼭 그런 이유는 아닐 겁니다만…….】
나는 끝까지 저항하던 반란군들을 두들겨 패고, 제사장이 있다는 건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반란군 전사들이 아직 서 있긴 하지만, 그건 비가볼 전사들에게 맡겼다.
나는 제사장(마법사)들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미로가 거의 완성되었어! 이것만 하면 못 들어올 거야!】
그리고 건물을 냅다 달려, 목소리가 들리는 방문을 걷어찼다.
쾅!
【좋아, 완성─?!】
【뭐, 뭐야!】
【이렇게 빨리 들어왔다고?】
【이 더러운 이방인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는지는 글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구겨진 걸 보면 욕이라도 하나 싶다. 뜻을 모르기에 타격감은 제로지만.
【아, 아이들을 어서 인질로─.】
오히려 그 외침이 시끄러워서라도 나는 그들을 냅다 쥐어팼다.
폭력은 미봉책이 될지언정 진정한 해답이 될 순 없고, 폭력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놈들은 애들을 인질로 잡다 못해, 안쪽에 예비로 갖다 두었던 아이들을 인질로 잡으려 들었다. 끼리끼리 논다고, 바깥에 있던 놈들이랑 아주 똑같았다.
“너희가 포기한 인간성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기를 바란다.”
이 개호로 잡놈들아. 애들이 앞에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라. 애들 보는 앞이라서 내가 참았다.
“하면 수치심으로 혀를 깨물고 죽을 수밖에 없게 될 테니.”
진짜 인간말종 개쓰레기 새끼들…….
【파, 팔이 없는 사람…….】
【괴물이 우릴 잡으러 왔나 봐…….】
【흐어엉. 엄마아아.】
나는 먹먹함 속에 들려오는 이명을 들으며 심호흡을 했다.
내 표정이 많이 더러워진 까닭인지, 아이들이 날 보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치솟았던 화가 당혹감에 짓눌려 스러졌다.
“…울지 마라.”
나는 팔다리를 부러트린 인간말종들을 내버려 둔 채, 엉엉 우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내가 무서운 건지 손이 닿을라치면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게 좀 상처였지만… 나 같아도 어른을 뚜까 팬 성인 남성─옷차림이 시꺼멓고 덩치가 큰─이 다가오면 무서울 터였다.
내가 두드린 게 납치범인 것과 별개로 시각적 정보로 오는 위협감이 있잖아. 심지어 얘들은 전후 사정을 고려해 판단할 나이가 안 된 것 같아서.
【흐윽. 흐어어엉.】
【으아아아앙!!】
【아빠아아아아!!】
근데 귀에서 피 나올 것 같은 감상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넝쿨을 엮어 만든 밧줄을 뜯다 말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걸 봐라.”
【흐윽, 킁.】
【…이쁘다.】
악성 재고 줬다고 욕했던 모험가들아, 사과한다. 너흰 선견지명이 있었다.
나는 타타라의 선물 보따리에서 정말 쓸데없고 가치 없지만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들을 골라 꺼냈다.
한국의 자개를 연상시키는 팔각 장식품, 오색실로 만든 매듭 장식, 조그만 종, 부분부분 색을 칠한 목각 인형, 저급 수정을 알알이 엮은 팔찌 등등.
어른인 내 눈에도 제법 고운 것들이 이 애들 눈엔 얼마나 신기해 보이겠는가. 아이들이 단번에 시선을 빼앗겼다.
우드드득.
바로 지금이다. 나는 아이들이 히끅히끅거리는 사이 넝쿨을 엮어 만든 밧줄을 마구 뜯었다.
수고스럽게도 아이들을 일일이 묶고 단체로 한 번 더 묶은 탓에 일이 많았다. 애들 피부에 밧줄 자국 남을 만큼 세게 묶은 건 덤이었다.
개자식들 나갈 때 보자.
【뒤, 뒤에.】
응? 나는 막 풀려난 아이가 내 뒤편으로 시선을 가져다 대는 걸 보고 숨을 푸욱 내뱉었다.
퍼억!
【컥!】
아이가 알려 주지 않았어도 다리 저는 소리 때문에 일찌감치 눈치채긴 했지만… 참 징그럽네. 이럴 끈기로 반란 대신 족장과 역전재판이나 하지 그랬냐.
나는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이를 두고 얼굴에 주먹을 박았다. 마력 안 싣고 때렸으니까 아마 안 죽었을 거다.
코뼈는 박살 났는지 코가 비틀어지고 코피가 주륵 나긴 했다마는.
“괜찮다.”
그보다 아타르트가 부리는 전사들 왜 이렇게 안 와? 나한테 하청 주고 놀고 있냐 설마?
나는 온갖 장식품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전부 풀어 준 후, 일단 데리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전부 제압했다지만 범죄자들 속에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었다.
“가자.”
사용 언어는 달라도 눈치는 통했다. 나는 매듭 장식을 만지작거리던 가장 어린 아이를 왼팔로 안고, 나머진 머리나 다리에 매단 채 바깥으로 나갔다.
아이들 매달리기 편하라고 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더니 무장이 다소 빈약해졌지만 괜찮았다.
아저씨 맨손으로도 납치범 이길 수 있어.
“자네 거긴 어떻게 들어갔……?”
그러다가 들어오던 이들과 마주쳤다.
병아리들을 쫑쫑 이끌고 나온 내 모습에 말문이 막혔는지, 아크메이지가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인질들을 바깥으로 인도하는 게 캐붕은 아닐 텐데. 아까도 말했지만 인질을, 그것도 애들을 납치범들이랑 같은 공간에 두고 나올 수도 없고.
그래서 이 정돈 괜찮겠거니 한 건데… 아닌가? 나 뭐 잘못했나?
아크메이지의 반응을 두고 내 머리가 치열하게 굴러갔다.
“…자네가 아이들에게 너그럽다는 건 알았지만, 으음. 일단 전사들에게 넘겨 주게. 아이들이 이곳에 있어서 좋을 것 같진 않으니.”
나중에 뒤통수 맞을까 걱정은 되지만, 그 부분은 반길 말이었다. 말 안 해도 넘길 참이었거든.
떠넘길 사람이 있는 마당에 내가 계속 데리고 다니는 건 캐붕이 맞으니까.
【너, 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자, 가자.】
【감사합니다, 팔 없는 전사님.】
【전사님, 안녀엉.】
【그보다, 너희 뭘 들고 있는 거야?】
【저 전사님이 줬어요.】
비가볼 전사들이 후다닥 아이들을 챙겨 나갔다. 그 과정에서 내 품에 안겨 있던 아이도 받아 갔는데…….
【제게 넘겨 주세요.】
【으잉.】
콰악.
애기야, 머리카락 안 쥐어뜯은 건 고마운데 옷이랑 안대는 좀.
아이의 힘이 어찌나 센지 뒤쪽에서 안대를 고정하던 단추 부분이 튿어지며 안대가 훌렁 벗겨졌다. 내 손이 빠르게 오른쪽 눈을 가렸다.
【싫어어. 안 갈래. 흐엉.】
【으아악!】
【피이인!!】
내게서 강제로 떨어진 아이가 펑펑 울며 안대 쥔 손을 마구 흔들었다. 쥐고 있던 옷도 쉽게 놓을 것 같진 않다.
【그럼 안 되지. 좋은 전사는 이별에 울지 않는다.】
【자, 이걸 보려무나.】
그러나 뒤에서 느지막이 등장한 누군가와, 아크메이지의 필사적인 마력 묘기 덕에 아이의 시선이 찰나간 돌아갔다.
전사들이 그 틈을 타 아이를 떼어 내고 안대를 뺏어 내게 돌려주었다.
【흐아아아앙!!】
아기 운다. 허엉.
“【우는 소리가 크군. 어서 데리고 나가게. 그리고 귀하에겐 참 미안하게 됐군. 아이가 실례를… 아.】 아이의 실례를 대신 사과하지. 제대로 교육을 못 해서.”
“…필요 없다.”
교육은 무슨. 저 나이대 애들이 다 그런 거지.
나는 돌려받은 안대를 빠르게 착용한 후,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아까 안 꺼낸 장난감이 하나 있을 텐데.
“제사장들이 미로의 결계를 쳐 놨는데, 잘도 안에 들어갔군. 귀하를 초대한 건 역시 탁월한 결정이었어. 역시 검은 뱀의 전사다워.”
아, 왜 늦게 들어오나 했더니 그런 게 있었나. 하긴 너무 안 온다 싶긴 했어.
나는 대충 그러려니 하며 인벤토리만 뒤적거렸다. 보따리를 풀었더니 인벤이 온갖 걸로 차 있어서 원하는 거 찾기가 힘들다.
내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들의 행동이 기분 나빴다면 단단히 경고를…….”
뭐래 미친 인간아. 당연한 반응 두고 뭘 경고야. 애들 둥기둥기 하며 나쁜 기억 덮을 생각을 해야지. 돈 놈인가?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
나는 표정을 구긴 채로 아타르트를 쌩 지나쳤다.
“약속이나 지켜라.”
우는 아이를 두고 물러나던 전사를 내 걸음이 따라잡았다.
【흐응, 흐으윽.】
툭.
【크응.】
잠시 들린 손이 제풀에 지쳐 울음이 멎던 아이의 품 쪽에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야구공만 한 색실 공이 아이의 손에 데굴 굴러갔다.
【우와!】
【어?】
이걸로 악성 재고가 반으로 줄었다. 아싸.
* * *
아크메이지는 무심한 태도로 아이에게 선물을 내주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별것은 아닐지라도 아이는 울음을 그친 채 활짝 웃고 있다. 악마기사에게 도움을 받았던 모든 이들이 그러했듯.
【…보기보다 관대하군.】
【그렇지요?】
해서 그런가. 참 의외라 해야 할지, 정말 그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결같이 타인에게 적대적이다가도 가장 얕보이기 쉬운 존재들─예컨대 다치고 죽을 위기에 처한 자들, 많은 것을 잃어버려 살 날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 어리기에 아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 같은─에게 너그러워지는 모습은, 정말로.
【행동거지와 말투가 험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나, 참 올바른 길만을 찾아 걷는 이입니다.】
그 같은 강자가 약자에게 약해지기도 힘든데 말이다.
【이 시대에 참 보기 힘든 사람이지요.】
역시 악마기사는 좋은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한 폭탄을 스스로 심장에 매달기엔 너무도 아까운… 참으로 귀한 사람이란 말이다.
【물론, 정도만 걷느라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건 다소 고쳐 줬으면 합니다만.】
하므로, 악마기사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했다.
자살용 폭탄을 들고 다닐 필요 없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 필요 없으며, 휴식과 행복이 곁들어진 그런 삶을, 그는 누려야 했다.
그는 그래도 되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흐음.】
아크메이지는 흐뭇한 얼굴로 멀어지는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참… 훌륭한 사람이로군.】
때문에, 그녀는 미처 보지 못하고 말았다.
【참 정의로워.】
아타르트가 서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