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머나먼 땅으로 (8)
격자무늬가 있는 하얀 천장을 보았다. 쉐엑쉐엑. 어디선가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다 시야 끄트머리에 비친 줄 하나를 따라가면…….
───!
「아직, 아직 아니에요. 그러니 제발…….」
아, 그렇구나. 나는 아직…….
* * *
주르륵, 하고 흐르는 눈물의 존재와 함께 시야가 밝아졌다. 온전한 밝음은 아니었다.
횃불의 주홍빛에 아스라이 물든 동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덕분에 꿈에서 설핏 보았던 백색이 완전히 파묻혔다. 아주 그리운, 그리고 슬프기 짝이 없는 색이 그렇게 흩어지고 만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그저 감정만이 남는 형태로.
【어, 어! 깼다, 깼다!】
그 설움에 오래 젖고 싶었다. 동시에 덮어 버리고 잊고 싶었다.
【깼어요!】
그러나 삶에 있어, 어떤 순간들은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그러하듯.
【많이 아프셨나 봐요. 눈물이…….】
【…그가 눈물을 흘렸소?】
【넹.】
나는 떨어진 곳의 목소리가 가까워지기 전, 왼팔을 들어 눈가를 덮었다. 컨셉은… 컨셉은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이유였다.
“악마기사, 깼나?”
그리고 딱 눈을 짚었을 타이밍에 아크메이지가 다가왔다.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게. 해독은 했다지만, 독의 여파가 꽤 크니.”
그런가. 하긴 뱀의 이빨에 꿰뚫린 직후 기절했었지. 리트 안 당한 게 용하다. 시야가 깜깜해질 때만 해도 죽겠구나 싶었는데.
나는 그런 사유와 함께 감정을 완전히 갈무리했다. 어렵지 않았다. 그냥, 컨셉에 집중하면 됐다. 내가 아닌 컨셉에.
“상황은.”
그러면 비참함도 덮을 수 있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뱀의 독에 당해 쓰러진 건 기억하나?”
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아크메이지도 답을 기대한 적 없는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뒷말을 이었다.
“그 자리에서 자네를 치료하기가 여의치 않아, 숲의 주민들에게 도움을 좀 청했네. 이 동굴도, 해독제도 그들이 제공해 주었지.”
왜 동굴인가는 둘째 치고, 모르는 목소리가 껴 있더라니. 내가 구해 준 사람들이 도와준 거였구나.
“사로잡았던 뱀은… 마력으로 만든 사슬마저 먹어 치우고 도망치던 것이 보여 죽일 수밖에 없었네.”
한데 뱀을 죽였다고? 제압하는 게 어려웠던 건 아니니만큼 별로 아깝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건가.
“그래도 흰바람에게 연락을 넣긴 했으니 너무 걱정 말게. 급한 불이 꺼진 이상 여기서 푹 쉬고 돌아가면 되네.”
이 정도면 파악할 건 대충 다 파악했다. 나는 슬슬 손을 치웠다. 치우는 과정에서 아닌 척 눈물을 닦은 건 덤이다.
딱 한 방울 흐른 거 닦은 거니까 안 들켰겠지?
“…어깨가 아프진 않나? 상처는 완벽히 치료하긴 했는데…….”
찰나, 아크메이지가 약간의 머뭇거림을 담고 내게 물었다. 왜 저리 눈치 보나 싶긴 하지만 대답 못 할 말은 아니었다.
스윽.
대답 안 해 줄 말이었지.
“……! 일어나지 말게. 자넨 아직 더 쉬어야 하네.”
나는 아크메이지의 말을 무시한 채 일어나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와. 등이 바닥에서 한 10cm 떨어지기 무섭게 중력이 몸을 덮쳐 왔다.
아프진 않으나 전체적으로 몸이 좀 뻣뻣하게 굳은 느낌이었다. 특히 오른 어깨.
“내 급한 일은 다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쉬게, 제발.”
어우, 오른팔이랑 어깨에 진짜 힘이 안 들어가는데.
나는 아크메이지의 제지를 피해 팔을 확인했다. 다소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는데, 덕분에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나가라!”
어쩐지 덮고 있던 이불의 촉감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지더라! 건틀릿은 고사하고 옷이랑 붕대 다 어디 갔어!
“악마기사─.”
“나가라고 했다!!”
나는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모아 아크메이지를 내쫓았다. 치료를 위해 벗긴 거라는 건 알지만 컨셉으로선 결코 용납 못 할 일이니 당연했다.
“…옷은 여기 있네. 그리고… 무리하지 말게.”
결국 아크메이지가 한 수 져 주었다. 동굴에 나 혼자만 남는 데 성공한 것이다.
비록 고함치는 데 움직일 힘까지 다 써 버려서, 옷가지를 주워 입는 건 좀 미뤄야겠지만서도.
힝.
“…추워.”
그런데 정작 옷 입기를 미루려니, 맨살이 공기와 닿으며 묘한 으슬으슬함을 가져왔다. 이불을 덮어도 사라지지 않을 오한이었다.
나는 결국 아득바득 상체를 일으켜, 옷을 주섬주섬 들었다.
시작은 붕대였다. 자동 세탁 및 복구 기능이 있는 덕에 요긴하게 쓰이는 붕대가 오른팔을 서서히 감기 시작했다.
“뭔가 빠진 것 같은데…….”
근데 뭔가, 뭐어어언가 잊은 게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손바닥부터 시작해 손목, 팔뚝, 팔꿈치를 타고 올라오던 차, 나는 묘한 찜찜함을 두고 계속해서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붕대가 어깨 직전까지 닿았을 때 번개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봉인구가 없어졌다.
“어……?”
아크메이지가 치료하느라 뺐나? 옷 더미 사이에는 안 보였는데.
나는 멍하니 본래 봉인구가 있던 자리를 더듬었다. 상완삼두근과 삼각근이 맞닿는 지점이었다. 까맣게 물든 피부가 본래 색으로 돌아오는 지점이기도 했다.
봉인구를 뺄 수 없어서, 씻을 때마다 봉인구랑 그 사이에 끼인 붕대를 피해 몸을 닦느라 어깨에 남은 상처─냄새 난다는 말 이후로 때를 좀 세게 밀고 있다─가 손끝에 두둘두둘 걸렸다.
일단 여분이 있으니까 그거라도 찰까.
나는 인벤토리 가방을 찾기 위해 몸을 틀었다. 바스락. 바닥에 깔린 담요 위로 무언가가 움찔거렸다. 산 생물은 아니고 금속조각 같은 것이었다.
“…와 깜짝아.”
순간 바퀴벌레인가 식겁했네.
나는 손을 뻗어 그게 뭔가, 하고 살폈다. 우습게도 내가 찾던 봉인구의 행방이 여기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던 중에 뽀개졌나 보다.
뭐, 그래도 결과가 확정되니 훨 낫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것보단 이유는 몰라도 부서져 있었다로 결론 나 있는 게 낫지. 그게 덜 불안하니까. 근데…….
나는 이거에 대해서 아크메이지에게 말해야 하나, 말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 말해야 할 건 맞는데 그분이 요즘 잔소리가 너무 심하단 말이지. 또 박살 난 거 알면 분명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그러나 말하지 않는 건 역시 그렇다. 이런 게 나중 가서 플래그가 되는 일도 있고.
결국 나는 잔소리 더 듣자는 마인드로 체념했다. 대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붕대를 두르고, 여분의 봉인구를 찬 뒤 옷을 완전히 갖춰 입었다. 중간에 오른팔의 감각이 돌아와 준 덕에 그다지 힘들진 않았다.
흰바람에게 받은 가슴보호구는 또 어딜 갔는지 모르겠다만.
아니 정말로, 가슴보호구는 왜 또 사라진 거야? 그거 함부로 다루면 위험한데.
도와주신 분들을 의심하긴 좀 그렇지만… 설마 가져간 거 아니겠지?
【아, 나왔다!】
【뭐? 벌써?】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동굴 밖으로 몸을 이끌었다. 가슴보호구 외 사라진 물건은 더 없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치비넝의 독을 반나절도 안 돼서 털고 일어난 거야?】
【용맹한 숲의 전사들도 사흘 밤낮은 앓았는데!】
【강한 전사인가 봐.】
【그러면 뭐 해, 오른팔에 저주를 품고 있다잖아!】
【병이 아니라?】
【병은 아니랬어.】
그런데 나가니 보이는 건 내가 있던 동굴을 중심으로 둥그러니 모인 집과 그 사이를 노닐던 사람들이라.
내가 나온 걸 쉬이 눈치챈 이들이 내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이건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원시 부족을 연상시키는 복장도 그렇지만, 공통된 외관 특징이 보통 접하던 네 종족이랑 많이 달랐던 까닭이다.
슬랜드야 귀만 뾰족한 정도니 제치고.
현실에선 인외로 취급되던 큐어티족이나 샤기족 또한 게이머로서 종종 접하던 외관이라 대부분 놀라지 않고 넘길 수 있는데…….
이분들은… 그, 큐어티족으로 보이는 것과 별개로 좀 낯설다.
큐어티족이나 샤기족이나. 지금껏 본 그들의 외관과 비슷한 동물을 뽑으라면 척추 동물에 속해 있었거든.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같은.
근데 이분들은 아무래도… 거미… 같지? 비슷한 걸 뽑으라면?
【저주를 품었으면 뭐 어때. 치비넝을 죽여 준 이상 그는 내 은인이야. 마음 같아선 그의 저주를 대신 받아 주고 싶어.】
【정말 물렸던 게 맞아? 곧은 자세가 완벽히 준비된 전사의 그것인데.】
【이방인들은 정말 팔이 한 쌍밖에 없네. 팔이 한 쌍뿐이면 얼마나 살기 힘들까? 작업을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할 거 아냐!】
싫다는 거나 차별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절지동물 닮은 큐어티족은 처음이라 놀랐을 뿐이지, 몇 번 부딪치다 보면 이것도 더는 눈길이 안 가게 될 테니까.
그러나 저들이 나를 보고 쑥덕거리는 건 역시 신경 쓰인다. 날 두고 뭘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 거야.
말뜻을 못 알아들으니까 더 궁금해……!
“내 더 쉬라지 않았나. 자네는 정말로… 고집이 세군.”
그때 내 구원자가 왔다. 몇 분 전에도 본 얼굴인데, 괜히 반가웠다. 외국에서 한국인 만난 기분이다.
“얼마나 봤지?”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컨셉이 우선이다.
나는 그녀에게 박살 난 봉인구나 사라진 가슴보호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하다가, 컨셉은 다른 걸 우선시하겠다 싶어 화제를 틀었다.
그래. 컨셉이라면 치부나 다름없는 오른팔을 가장 먼저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나.
해서 오른팔을 쥔 채 다그치듯 입을 놀렸다. 아크메이지의 청은색 눈이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얼마나 봤느냐 물었다……!”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네. 그 자리에 있었던 일곱 명과 이 부락의 치료사 하나, 그를 보조하던 사람 둘 정도지. 나를 더한다면 열하나가 되겠군.”
열하나? 그 정도면 쏘쏘인가. 쓰읍. 아닌가?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오른팔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어차피 건틀릿 때문에 꽉 쥐어 봤자 멍들 일도 없었다.
“…미안함세. 그대가 가리고 싶었던 것을 끝까지 지켜 주지 못해서.”
그런데 이걸 아크메이지가 사과한다고? 왜? 사과할 필요 없는데.
“하나…….”
잘못하지 않은 사람한테 사과를 듣는 만큼 껄끄러운 것도 없다. 나는 컨셉을 따를 겸, 아크메이지의 말을 끊기 위해 그녀를 확 지나쳤다.
다행히 아크메이지는 그런 나를 잡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봉인구 이야긴 언제 하지. 가슴보호구도 물어봐야 하는데. 큰일 났네. 나중에 말할 타이밍이 오려나.
나는 머릴 긁적이며─당연히 상상으로만 했다. 이미지를 동네 바보형처럼 만들 일 있나─천천히 그 일대를 떠났다. 동굴과 그 집 근처를 둘러싼 나무벽을 나가자, 일반 집들로 보이는 움집들의 거리가 펼쳐졌다.
아까보다 더 집요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이런 건 별것도 아니다. 나는 거리를 가로질러 부락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드디어 정글처럼 울창한 수림이 내 시야에 드리웠다.
덕분에 거침없이 나아가던 몸이 멈칫거렸다.
어… 좀 멀리 간다고 길 잃거나 하진 않겠지……?
나는 눈을 슬쩍 굴리다가 오랜만에 맵을 켰다. 확대도 안 되는 맵이지만 방향 잡는 데 쓰긴 좋았던 까닭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퀘스트창에 이어 월드맵도 오류 난 거 실화냐. 미치겠네, 진짜.
나는 표백된 창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일부러 잊은 척 미뤄 둔 상념이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덮어 두었던 감정들까지 함께 끄집어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끝까지 외면하고 또 부정하고 싶은 것들이 느리게 혹은 빠르게, 점진적으로 내 목을 조여 온다.
나는 분명 지상에 있는데 호수 아래 처박힌 것처럼 숨이 막혔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물에 잠긴 듯 먹먹해졌다.
【저기…….】
그러던 찰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나를 향한 부름이었을 것이다.
여긴 나밖에 없고, 목소리의 주인은 내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으니까.
【으, 어떡하지. 아까 보니까 우리 말 못 하는 것 같던데.】
【샤기족 이방인을 불러와야 할까?】
【아까 다투는 것처럼 보였는걸. 우리가 저주를 봐서 기분 나빠하는 걸지도 몰라.】
【하긴 나라도 기분 나쁠 거야.】
물론 언어의 장막으로 인해 막히긴 했다. 나는 뒤를 보기 위해 살짝 틀었던 골반을 본래대로 돌렸다.
다가오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내 근처로 우다다 달려왔다.
【그, 그! 고마워요! 당신 덕에 살았어요!】
【자타브 부족을 피해서 변경으로 사냥 갔다가 치비넝을 만날 줄은.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을 거야!】
나는 말이 안 통하는 걸 고려해, 허우적거리면서라도 뜻을 전달하는 이들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전달되는 감사는 작고 투명하다.
차오르던 울분이 어느 정도 가셨다.
수렁으로 빠지던 생각이 고작 저들의 웃음 하나에 걷히고 마는 것이다.
【당신은 최고의 전사예요.】
【팔과 눈이 한 쌍뿐인 건 좀 그렇지만, 얼굴 자체는 꽤 잘생긴 것 같아.】
【얀마, 그건 칭찬이 아니잖아.】
【당신 근데 엄청 크다. 샤기족 이방인도 그렇고, 바깥 사람들은 다 그렇게 커요?】
임시방편이긴 해도 없는 것보단 낫다. 나는 재잘거리는 이들을 내버려 두었다.
컨셉이라면 내쫓을 거다. 그런 계산을 하기엔 조금 지쳤다.
【말이 통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맞아, 그러면 더 많은 걸 물어볼 수 있을걸.】
【마카카라도 불러올까?】
…너무, 너무 지쳐 버렸다.
【응… 어! 사절단이다!】
【드디어 돌아오시나 봐!】
그리고, 숲 저편으로부터 깃발을 세운 무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 * *
아크메이지는 계란프라이처럼 고급 인력과 일반 주민들로 나뉜 거주구를, 또한 그중 흰자를 담당하는 일반 거주구를 보았다.
일반 거주구를 둘러싼 외벽에선 일단의 무리가 들어오는 중이다.
“흐음.”
그녀는 자신의 지팡이를 쓰다듬으며 그 무리를 살폈다.
그들을 도와준 부족은 세르항, 풀잎 문양이 상징이니. 반면 지금 들어오는 무리가 든 깃발의 문양은 다르다. 다른 부족이란 의미다.
【부족을 이끄는 분들께서 출타하신 사유가 다른 부족의 사절을 만나러 간 것이었소?】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악마기사를 치료해 준 것이야, 그가 구해 준 사냥꾼들의 목숨값을 생각하면 빚진 것은 아니다.
하나 도리가 있지, 부족의 우두머리를 만나 최소한의 감사는 전하려 했건만…….
【네. 카티나 기간이 되면서, 동맹을 확실히 하기 위해 사절을 맞이하러 가셨어요.】
우두머리들이 자리를 비운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임을 알았다면 예법에 어긋나더라도 일찍 떠났을 것이다.
세르항 부족은 그나마 이방인의 취급이 좋지만, 다른 부족들은 이방인을 굉장히 싫어하는 까닭이다.
심지어 그들이 이 부락에 발을 들일 수 있던 건 그들에게 구함받은 사냥꾼들의 독단이다. 즉, 족장과 제사장은 그들의 존재를 아직 모른다.
그런 마당에 다른 부족의 사절이 온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해 문제 삼기라도 한다?
【그런 중대사에 이방인이 눈에 띄어 좋을 건 없겠지. 악마기사를 찾은 후 바로 떠날까 하는데, 족장님과 제사장님껜 대신 감사를 전해 줄 수 있겠소?】
【엑, 벌써 가시게요?】
그들도, 이 부족의 우두머리들도 피차 곤란해질 뿐이다. 그런 소란을 감수하느니 그냥 무례한 자가 되는 게 낫다.
어차피 저들은 그들의 신분도 모르지 않는가.
【대삼림의 주민들이 이방인을 꺼려 하지 않소. 동맹이라면 중요한 일일진대, 그런 것에 폐 끼치기 싫소. 하니…….】
【아, 그런 거라면 괜찮은데요. 이번 비가볼 족장은 이방인에게 우호적이라 들었거든요.】
【그렇소.】
그렇다 해도 굳이 엮일 필욘 없다. 그녀는 맞장구를 쳐 주되 의견을 철회하지 않았다.
【저기, 눈에 안 띄고 가시고 싶던 거라면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린가?】
【저기요. 동료분 아니에요?】
철회하고 싶지 않았다.
【…악마기사.】
악마기사가 사절단과 함께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거다.
아크메이지의 손이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