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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13화 (113/389)

◈113화 머나먼 땅으로 (7)

부화한 악마를 추적한 지 하루.

암묵적으로 불침번의 초번과 후번을 정해 휴식을 청했을까. 아크메이지는 잠에서 깬 직후 후번을 맡으려 했다.

그녀가 깬 것을 확인한 악마기사가 냅다 출발하려 들지만 않았어도 퍽 순탄했을 작업이었다.

“제발 좀 자게!”

악마를 쫓는 게 급하긴 하다. 그러나 얼추 거의 다 따라잡은 지금, 휴식이 더 우선되었다. 지친 몸으로 악마를 상대하는 게 좋을 리 없던 까닭이다.

해서 그녀는 애원에 가까운 설득을 행했고, 겨우 악마기사의 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5분의 신경전 끝에 얻어 낸 것이었다.

“쯧.”

사람 고집이 어찌 저리 센지.

그녀는 미간을 주무르며 벌레 쫓는 풀과 모닥불을 확인했다. 풀이야 불만 붙여 두면 되니 그렇다 쳐도, 모닥불은 열심히 관리는 한 듯하지만 묘하게 서투른 흔적들이 설핏 보였다.

그의 모험가 경력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다.

동시에 모포 한 장 없이 자는 모습을 보거든 참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저이는 모닥불의 온기 없이 겨울을 지샐 것만 같았다.

“…….”

그게 정상적인지는, 글쎄. 그건 마땅히 아니겠지.

본인의 안위를 버리고 목적에만 매달린 채 사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행위도 아닐 것이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알면서도 사지로 걸어가는 자와, 그것을 알면서 지금껏 방관해 온 그녀 역시 멀쩡한 사람은 못 될 거란 이야기다.

“혐오감… 인가.”

그녀는 거의 처음으로, 청년을 자세히 살폈다.

그의 위험성을 확인하고자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파악하고자 보는 건 분명 이번이 최초였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게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작게는 눈 아래 짙게 드리운 피로나 유난히 마른 입술이, 크게는 맨살 하나라도 보일까 꼭꼭 가린 옷차림과 잠든 얼굴이 참 어려 보인다는 것 따위가.

그리고 그가 얼마 전 대악마에게 한 번 집어삼켜졌고, 마음 추스르기도 전에 또 다른 대악마를 대면하고야 말았다는 사실들이 말이다.

『…그놈은 과거를 읽는다. 아마 악몽이라 불릴 수 있는 기억들을. 참고해라.』

아크메이지는 나태의 대악마를 두고 악마기사가 서술한 말들 또한 떠올렸다.

그때는 봉인이 흔들린 건 아닌지, 나태가 또 한 번 공격해 오는 건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느라 깊게 사유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다시 사고하거든 저 말에는 정보 전달 외의 의미가 하나 더 있다. 아무렴,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정보를 악마기사는 어떻게 알아냈겠는가.

결국 악마기사는, 아마도 그 자신의 악몽을…….

“하.”

태도가 담담한 것이 상처받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순 없다. 일신의 강함이 마음의 강함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한데도 왜 그녀는 지금껏 외면해 왔는지. 깨달음에 비례하여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네도 무고한 피해자이긴 매한가지인데.”

되돌아보면, 그녀가 악마기사를 인간적으로 대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악마의 그릇에서 관리만 잘하면 유용한 패가 될 수 있는 일행으로, 폭주한 이후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여겨 왔을 뿐.

표출하기가 무례할 따름이지 기반되는 성정이 선하다거나 표현이 다소 서툰가 하는, 성격에 대한 고찰과 별도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정말 악마기사를 한 사람으로 여겼다면, 그녀는 악마기사가 스스로를 헌신짝처럼 여긴다는 걸 안 시점에서 무언가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가 폭주한 이후, 같은 일이 벌어질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의 심신이 어떠했는지를 먼저 살폈어야 했다.

그가 대악마를 대면했을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먼저…….

“…흰바람에게 감사를 해야겠군.”

어쩌면 ‘죽어도 괜찮다’란 마음이 옮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차라리 죽어 버리면 대악마도 죽어 버리니, 급한 순간에는 그게 더 효율적인지도 모른다고. 장본인도 본인을 학대하는 마당이니 그녀가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더라도 악마기사는 별말 안 할 거라고.

그녀가 그녀의 연구 결과를 두고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듯, 인간의 몸에 악마를 담은 사람 역시 경멸해도 좋다고.

“이 나이 먹고도 여즉 올바름을 못 찾는 것이 어찌 대현자라 불리는지…….”

참으로 어리석은 결론이었다. 악마기사는 이미 스스로를 충분히 억제하고, 경멸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뭐라고 그에게 짐을 더 얹는단 말인가.

저 어린 것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으면서, 그녀가 어떻게.

“…사과는 어찌 해야 할지.”

그나마 일찍 깨달은 것이 다행일까. 애초에 일찍이란 단어를 써도 되긴 한가.

그녀는 한숨과 함께 불을 뒤집었다. 제 실수를 깨달았으니 이제 고칠 차례였다. 악마기사가 그 사과를 받아 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번뜩.

그러던 찰나, 잠들었던 악마기사의 눈꺼풀이 뜨였다. 핏기 없는 살갗 때문일까. 마치 죽은 자가 눈을 뜨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일인가?”

악마기사가 갑자기 일어섬에, 아크메이지도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서걱!

답을 얻어 내기도 전에 검은 참격이 숲을 갈랐다.

“왜 그러나, 자네.”

알람 마법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런데 왜? 악마기사가 아무리 예민하단들 그녀의 결계 역시 반경이 좁은 편은 아니었는데.

“버러지가.”

그녀가 잘못한 것과 별개로, 역시 악마기사의 성격이 좋지는 못하다.

아크메이지는 사정 설명 하나 없이 튀어나가는 이를 두고 골치가 아파졌다. 제발 뭐라 힌트라도 줬으면 좋겠다.

* * *

아크메이지의 설득과 몰려오는 수마에 속절없이 당했을까.

본능적으로 어떤 기척을 느꼈다. 은밀하고, 다소 길다란 기척이었다.

피곤함에 외면하고 싶다가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억지로 눈을 치떴다.

“무슨 일인가?”

저도 몰라요. 그냥 뭔가가 거슬리는 걸 어떡해.

나는 멍한 머리를 짚으며 검을 쥐었다. 스르륵. 얕디얕은 기척이 다시 한번 잡혔다.

서걱!

반쯤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검에 의해 참격이 날아갔다.

“왜 그러나, 자네.”

참격은 특성상 손맛이 없다. 그러나 기척의 유무로 대상이 죽었다, 안 죽었다 판단하는 건 가능한데…….

“버러지가.”

씁. 계속 움직이는 거 보니까 안 죽었네.

나는 솜털을 비죽 서게 만든 기척이 여즉 존재하는 걸 두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에도 눕고 싶다는 욕망이 계속 들어, 대고 있던 손바닥으로 이마를 더욱 세게 압박해야만 했다.

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졸렸다. 아예 안 잤다면 모를까, 잠깐 자고 깼더니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바스락.

나는 쏟아지는 잠으로부터 정신을 챙기기 위해 걸음을 세게 하고, 눈도 부릅떴다. 뜬 것에 비해 시야 가장자리가 어둑어둑했지만 안 뜬 것보단 나은 듯했다.

“그곳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래서 내 잠을 방해한 괘씸한 게 무엇이냐. 나는 선명한 검흔을 따라 걸었다.

배배 꼬인 기척이 멀어지는 게 도망이라도 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 걸음 속도보단 느렸다.

심지어 S 자로 구불구불 움직여서야.

콱!

잡았다, 뱀 새끼.

나는 7m도 채 나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칼날을 내리찍었다. 얼룩덜룩한 무늬가 수풀과 흡사하여, 분간이 잘 안 가는 뱀이 그제야 몸을 떨었다.

마치 핀으로 고정된 벌레 표본 같았다. 그저 아직 살아 있을 뿐인.

“이, 무슨…….”

뒤따라온 아크메이지가 경악했다.

“…후.”

뱀은 아직 안 죽었으나 놓칠 걱정은 덜었다.

나는 몸을 돌려 나를 물려 드는 뱀의 머리를 사뿐히 지르밟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군홧발에 짓밟힌 뱀이 쉑쉑거렸다.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자기 전에 결계를 반경 20m 범위로 치겠다던 아크메이지의 장담이 더 신경 쓰였다.

내가 자느라 알람 소리를 못 들었나? 그런 것치고 아크메이지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어, 어떻게 마법을 뚫고……? 아니, 그 이전에 악마가 맞긴 한 건가? 어째서 마기가 느껴지질 않는…….”

그래. 혼비백산해 하는 거 보니까 처음부터 발동 안 됐다는 건 알겠다. 됐다.

나는 잠 못 자서 더 크게 이는 짜증을 억눌렀다.

객관적으로 이게 아크메이지 죄가 아닌 걸 알거니와─당연하다. 실수가 아니면 고의란 소린데 그쯤 되면 이건 화낼 문제가 아니게 된다─결정적으로 화 잘못 내면 격노 스킬 켜질지도 몰랐다.

“마기를 마력으로 바꾸는 것으로 위장한 건가, 설마……?”

그리고, 무엇보다 나 지금 화낼 기력도 없어. 졸려. 마저 자도 되나?

“잠깐, 잠깐. 절대로 죽이지 말게. 방금 가설이 정말인지 아닌지 파악하려면 산 채로 잡아가서 능력 검사를 해 봐야 하네.”

아, 그러고 보니까 죽이는 걸 까먹었네. 아크메이지 하는 걸 보면 이쪽이 더 나은 것 같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나는 아크메이지가 뱀을 사슬로 구속하는 걸 보며 목을 쓸었다. 익숙한 답답함이 살갗을 스치고 가는 듯했다.

“고맙네. 잠시만 더 그렇게 눌러 주게.”

별로. 애초에 퀘스트니까. 음, 퀘스트 맞나?

퀘스트창이 오류 먹고 일 안 하니까 좀 헷갈리네. 이놈이 퀘스트 목표물이 맞나.

“…결계에 구멍이 뚫렸군. 이래서 발동하지 않은 거야. 그렇지만 어떻게? 어찌하면 이런 구멍을…….”

그사이 뱀을 속박하는 데 성공한 아크메이지가 결계마저 싸악 훑어보았다. 갈음하듯 토해지는 건 한탄에 가까운 경악이다.

“맙소사. 위장도 모자라, 기존의 마력을 먹는 능력도 생긴 건가……?”

그 한마디에 냉수 얻어맞은 양 확 정신이 들었다.

마력을… 먹어? 그거 좀, 좀 위험한 거 아닌가?? 보통 그런 능력은 최종보스나 뭐 직전급 애들이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잡몹이 가져도 되는 능력임??

“…마력을 먹어?”

반사적으로 아크메이지의 말 일부를 따라 했다. 캐붕이 아닌가 하고 식겁했으나, 여유가 없던 아크메이지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허황된 말 같다는 건 아네. 그러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이런 식의 파훼는 불가능하네.”

도리어 친절한 대답도 내주었다. 마법에 문외한인 나로선 ‘이런 식의 파훼’가 뭔지 몰랐으나, 아무튼 전례 없는 사건임은 잘 와닿았다.

“당장, 당장 돌아가세. 이건, 이건 마탑과 신전의 불화를 걱정하여 덮을 만한 일이 못 되네. 이것이 퍼지기라도 하면, 그땐…….”

어어어. 그래야지. 나는 뱀을 챙기려는 아크메이지를 제치고 먼저 동그랗게 속박된 뱀을 들었다.

암, 내가 정면을 직시했을 때 턱선에 시선이 닿을 정도로 아크메이지가 크긴 하지만… 누누이 말했듯이 전사 직군도 나고 더 젊은 것도 나였다.

아크메이지보단 내가 드는 게 더 나을 거다. 아마도.

“고맙네.”

“필요 없다.”

약간 딴 소리지만 왜 살아 있는 건 인벤토리에 못 넣지. 그게 됐으면 가방 속 인벤토리든 이번에 새로 얻은 인벤토리든 거기다 넣어서 편하게 갔을 텐데.

───!!

그러다 잠깐.

아크메이지를 앞질러 가려던 찰나, 어떤 소리가 내 귀에 냅다 박혔다. 시야에 닿진 않으나 소리는 들리는 거리에서 무언가 소란이 인 게 분명했다.

“왜 그런가?”

문제는 저 소음에 사람 비명 소리가 섞여 있단 점이라.

“…….”

아, 피곤한데. 정말 피곤한데.

그래도 그냥 가면 안 되겠지?

쿵.

나는 동그랗게 말린 뱀을 다시 내던지곤 고함이 들린 쪽으로 달렸다. 아크메이지가 또 앓는 소리를 냈지만 사람 목숨이 걸린 거니까 봐주길 바란다.

【─막아!】

【아디사, 피해!】

【차라리 도망을……!】

발을 한 번 박찰 때마다 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외침이 명백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으나, 위급한 순간이란 것만큼은 여실히 느껴졌다.

【안 돼!】

그리고 내가 소란의 중심에 다다랐을 때, 소동의 원인으로 보이는 거대한 뱀이 사람을 삼키려 들었다.

딱 내 정면에서의 일이었다.

“비켜라.”

【…무슨.】

미안하다, 내가 크게 말할 기운이 없다.

나는 뱀을 향해 활을 쏘려던 이를 밀치고, 뱀의 입 앞에 섰다. 뱀에게 삼켜지기 직전의 사람 역시 내게 밀려나 옆으로 기우뚱 넘어졌다.

퍼억!

그사이, 나는 뱀의 아래턱에 검을 박아 고정하고 위턱은 손으로 짚어 닫히는 걸 막았다. 참격을 날리기엔 뱀 뒤에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푹!

근데 졸려서 각도 실수했다. 뱀의 이빨이 내 오른쪽 어깨를 뚫었다. 30cm쯤 되는 이빨 중 고작 5~8cm 정도 들어간 거지만, 하여튼.

【다, 당신은…….】

어질어질하네. 그래도 어깨 좀 구멍 나고 사람 하나 살린 거면 충분히 이득이지.

나는 이빨이 더 들어가지 않도록 위턱을 짚은 손에 힘을 더 실었다.

그러곤 뱀의 턱을 고정하는 데 쓴 투헨더 대신, 허리춤의 장검을 들어 뱀의 위턱을 가로로 잘랐다.

입 쪽에 머리가 몰려 있는 뱀의 특성 덕에 그 한 번의 칼질로도 뱀은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어깨에 박힌 이빨을 뺄 수 있던 건 덤이다.

【가, 감사합니다!】

【뱀이 순식간에…….】

【강하다…….】

와, 방금 전에 잡았던 뱀도 크다 싶었는데 얘는 한술 더 뜨네. 진짜 코끼리 하나 잡아먹는 거 아니야?

나는 막 잡은 뱀의 시체를 살피며 괜히 감탄했다. 과장 않고 정말 집채만 한 뱀을 만나니 징그럽다는 감상이고 뭐고 놀라움만 이어졌다.

【아!】

그때 내가 구해 준 사람 중 하나가 내게 허겁지겁 달려왔다. 네 쌍의 눈과 세 쌍의 팔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 있는 전원이 같은 종족인 듯 해당 특징은 전부 동일했다.

【독, 독!】

“……?”

그보다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언어를 쓰는 건가?

【당장 독을 빼야 해요! 안 그럼 죽어요!】

…뭔가 다급해 보이긴 하는데. 음. 한 손은 나를 가리키고 다른 손들로는 어깨를 가리키는 걸 보면… 아, 상처 얘긴가? 괜찮은…….

【젠장, 이방인이라서 말이 안 통해!】

잠깐. 얘 설마 독 있는 뱀 아니지?

【빨리 옷 벗어요, 피 빼야 해!】

나는 옷을 벗으라는 느낌의 제스처를 두고 상황을 파악했다. 얘 진짜 독 있는 뱀인가 보다.

망했다.

“……!”

심지어 효과도 빠른 독인가 보다. 무어라 반응도 하기 전에 머리가 핑 돌며 코피가 터졌다. 망했다.

【아, 안 돼─!】

기울어지는 시야를 마지막으로 필름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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