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머나먼 땅으로 (4)
─대현자님, 악마기사가 조사에 응하지 않고 떠나 버렸는데 어떻게 할까요?
응접실에서 흰바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아크메이지의 눈썹이 살풋 내려갔다.
“으응, 어쩌다 그랬는데?”
─악마에게 잠식된 순간에 어찌 되었냐고 물었는데…….
“그럴 줄 알았지이. 그냥 내버려 둬. 괜히 사람 보내서 잡지도 말고.”
─알겠습니다.
맹렬한 흰바람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외려 당혹스러워진 건 그녀였다. 아크메이지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를 보내도 되는 건가?”
“본인이 저렇게 싫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데 어떻게 잡아.”
“하지만 봉인구를 만들기 위해 조사하는 것 아니었나. 저러면 봉인구를 제대로 만들기가…….”
“그래. 불가능하지. 아까도 말했잖아. 네가 바라는…… 그런 절대적인 봉인은 영원히 불가능할 거라고. 고분고분 협조해 줘도 어려울 판에 저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래도 힘들지.”
“그게 그런 이유에서였나? 나는 기술이 부족하단 의미로 알아들었네만. 하면 차라리 내가 설득을…….”
악마기사는 중요한 자원이다. 무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존재 자체만으로 상대해야 할 대악마 하나를 배제해 주는 이니까.
그렇기에 보험이 될 수 있는 봉인구 역시 중대한 일이다. 악마기사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일에는 어떻게든 양보를 끌어내야 한다.
“소용없어.”
아크메이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죽으면 죽었지 이 이상 해 주진 않을걸.”
언제나 생글생글 웃던 맹렬한 흰바람이 표정을 비스듬히 굳힌 채 속삭이지만 않았어도 행동으로까지 이어졌을 거다.
“그걸 자네가 어찌 아나.”
“나도 저런 부분이 있으니까. 너도 그렇잖아?”
흰바람이 꿀을 찻잔에 퐁당 집어넣었다. 티스푼이 빙글빙글 돌 때마다 꿀이 따끈한 찻물에 녹아들었다.
“머리론 이게 옳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란 걸 알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지. 타협을 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그런 것들.”
그 물은 달 것이다.
달 것인가?
“난 그를 존중해.”
꿀이 한 스푼, 두 스푼, 계속해서 늘어 갔다. 찻잔의 물이 넘치고 그 열기가 꿀을 더 이상 녹이지 못할 때까지.
가슴에 남는 응어리가 정도를 넘기면, 이성에 녹여 흘려보내지 못하는 것처럼.
“위기의 순간, 심장을 날릴 수 있는 물건을 준 것도 그 때문이고.”
“……! 그, 무슨!”
“오히려 난 네가 이러는 게 참 의외다 싶은데. 나보단 네가 더 사람을 존중할 줄 알지 않았나? 아니면, 너 자신을 향한 혐오감이 그 애송이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니?”
“……!!”
“뭐, 중요한 건 아니지. 네가 알아서 잘할 테니.”
“…내가, 그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나?”
“그 정도까진 아니고. 용사 때문에 예민한 건가 다른 이유 때문에 예민한 건가 싶은 수준? 난 네가 이렇게 다그치듯 설득하려 들 거라 생각 안 했거든. 최소한 시간은 좀 두고 설득할 줄 알았지. 이런 건 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봉인구 개발 시간 얼마 안 준 것도 그렇고.”
꿀이 절반인 찻물을 흰바람은 냉큼 들이켰다. 단맛이 진할 텐데도 내색 하나 않는 얼굴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뭐, 개발 기간 촉박한 거야 다들 그러니 제쳐 두고, 앞의 것도 네 개인 문제니까 이 이상은 터치 안 할 거야. 네가 구태여 설득해 보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설득 성공하면 꼭 보내 줘야 한다며 맹렬한 흰바람은 손가락으로 가벼운 체스처를 보였다.
“그 외 나머지 문제도 걱정 마. 악마를 처리하는 방법이야 당연히 연구해 줘야 할 문제고, 신성력 응용 방식도 용사님이 마탑에 있는 한 전적으로 협조할 테니.”
아, 끄나풀 수색도 당연히 해야지. 흰바람이 가볍게 당부했던 모든 문제를 한 번씩 되짚어 주었다.
아크메이지의 손이 말없이 찻잔을 매만졌다.
“…고맙네.”
“별말씀을.”
바깥의 전경이 투사되지 못하되, 바깥의 광경을 마도구로 촬영해 전사해 둔 정경이 그들 주위를 비췄다.
“아! 맞다, 다른 건 몰라도 악마기사한테 의뢰 하나 맡겼어야 했는데! 그거 깜빡했다!”
“의뢰?”
“아아! 이제 와서 찾으러 보낼 수도 없고. 다 너 때문이야! 네가 해결해!”
“무슨…… 그런 억지를.”
“네가 해결해애애애.”
* * *
나는 매달리는 이를 두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염치가 없으니 손발도 잃었나 보지.”
사이드퀘가 저절로 찾아와 주면 나야 좋지. 안 그래도 메인퀘…… 인지 아닌지 모를 커다란 스케일의 퀘스트만 계속 처리하던 참이니까.
한데 별개로 마탑이 의뢰자다? 스스로 처리하더라도 한 번쯤은 튕겨 줘야 하지 않겠어?
“에잇, 아까 한 말은 사과할게요. 제발 들어 보기라도 해 주세요.”
사과가 너무 건성이지 않냐마는…… 그래 뭐. 어리니까 봐준다.
나는 사촌 동생을 보는 마음으로 일단 들어 주겠단 자세를 취했다. 화색으로 변한 아이가 종알종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주 전부터 호수에 뱀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본래도 뱀이 없던 건 아닌데, 저렇게 커다란 뱀은 이번이 처음이라고요.”
심지어 뱀이 공격적이라서 지금처럼 다리 위 사람들까지 공격한다며 아이는 투덜거렸다. 덕분에 마탑을 방문하는 손님이 줄었다고도.
“마탑이 운영하는 랩실 중 소규모 랩실들은 마법을 팔아 연명하는 편이에요. 그런 마당에 손님이 계속 줄면 그 랩실들은 전부 망하겠죠. 그것만은 막아야 해요!”
절대 본인이 속한 랩실이 그런 상황이어서 막아야 한다는 건 아니라며 상대는 주장했다. 내가 보기엔 그 이유가 99%였다.
“그래서.”
근데…… 난 항상 이런 퀘스트를 보면 궁금했어. 모험가 길드로 의뢰를 떠넘기는 거야 그렇다 쳐. 거긴 원래 이런 잡다한 일 대신 맡아 주는 데니까.
그런데 이렇게 급하면 마탑 자체가 나서도 되지 않나?
“그, 그래서라뇨. 그러니까 의뢰를 받아 달라고…….”
왜 안 나서지. 이유가 있나.
“…제발 부탁이에요. 모험가 길드도 이 의뢰를 거절했단 말이에요. 피해를 본 랩실 소속 마법사들이 나서려고 했지만 죄다 연구 쪽이라 허약하기 짝이 없어서…… 전투마법사가 낀 다른 랩실들은 자기 알 바 아니라며 안 도와주고…… 대현자님도 신경 끄라고만 하시고…….”
내가 잠깐 의뢰의 배경을 짐작해 본 사이, 아이가 기죽은 얼굴로 조잘조잘 변명을 주워 삼켰다. 덕분에 왜 내게 부탁하는진 알았다. 추가 궁금증은 생겨 버렸지만.
“…모험가 길드가 거절해?”
“씨이. 이게 다 신전 때문이에요! 저희가 범인 아니냐며 스스로 책임지라잖아요! 모험가 길드도 그거에 동조해 버리고!”
어어, 신전이? 그거 이상하네. 거기 무상 봉사도 자주 할 정도로 남 돕기 좋아하는 쪽 아니냐. 모험가 길드도 일단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쪽인데 걔네가 왜?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물론 몇몇 랩실이 연구하던 여파로 도시가 벌레에 뒤덮이거나, 지반이 흔들려서 집 몇 채가 무너지거나, 물 빠지는 구멍이 막혀서 하층 쪽 집들이 죄다 물에 잠겨 버린 적이 있긴 하지만. 이번은 우리도 정말 피해자인데!!”
…이유가 있었잖아. 누가 봐도 그것 때문 아니냐고.
그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번씩 반복됐으면 뒤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너희가 범인처럼 보일 텐데.
“지들이 무상 치료 해 주면 단가. 우리도 나름 피해 보상 해 주고 하는데!”
거기에 무상 치료도 한두 번이지 매번 너희 뒤처리 해야 하면 싫을 수밖에…….
나는 공공의 선을 이행하는 두 단체가 학을 뗀 이유를 깨달으며 숨을 깊게 뱉었다.
아무튼 본인들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 그렇다고 해결할 상황도 아니라 하니 나서기는 해 볼 요량이다. 악마 관련은 아니지만 고작 뱀 사냥이니까. 오래 걸리진 않겠지.
“…뱀을 다 잡으면 되나.”
“제발…… 예?”
“뱀을 다 잡으면 되느냐 물었다.”
계약서는…… 에이 몰라. 내가 돈이 없어 가오가 없어. 주면 좋고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넘기지 뭐.
어차피 용비늘…… 을 넘긴 대가도 아직 내 지갑에 잠자고 있는데 흐흑. 아, 갑자기 눈에 먼지가.
“네, 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거 뱀 어떻게 잡냐. 보통의 게임에선 그냥 필드에 돌아다니는 몹 정해진 숫자만 잡으면 됐는데, 여기는…… 어, 잠깐만.
“수중 호흡이 가능하게 되는 물건이 있나.”
“아, 그럼요! 가, 가져올게요! 아니, 아니다. 아예 같이 가요! 필요한 아이템은 다 제공해 드릴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나. 퀘스트창을 본 지가 좀 된 것 같은데?
어?
* * *
퀘스트가 안 뜬다는 걸 깨달았지만 깊이 궁리할 시간은 없었다. 딴 생각을 하기엔 당장 마주한 의뢰자의 열망이 너무 짙었던 까닭이다.
더불어……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서 더 이상 창을 안 띄운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없었다.
버그 미쳤네. 이대로 튕겨서 강제 로그아웃까지 당하면 좋을 텐데, 따위의 감상 외에는 정말 시도할 게 없단 말이다.
그렇다고 불안에 잠식되어 공포에 질릴까? 그럴 순 없다. 나는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잡고 원인 알기를 미뤄 두었다.
이건 나중에, 이 퀘스트가 끝나고 쉬면서 사유해도 늦지 않았다. 하다못해 저 호수를 탐색하면서 생각해도 될 테고.
아무렴, 퀘스트가 안 뜨는 것도 모르고 몇 주를 넘게 보낸 것 같은데 하루 이틀 더한다고 설마 뭐 터지겠나. 그럴 거였으면 진즉 문제 터졌겠지, 젠장.
“저희의 구원!”
“빛!”
“감사합니다!”
하여 나는 미루기를 충실히 행한 채로, 의뢰자를 따라가 그네들 랩실에 방문했다.
수중 호흡을 가능케 하는 아이템이나 잠수병을 막아 줄 약, 저체온증 대비 핫 팩 같은 아이템을 받은 건 덤이다. 물속에서 쓸 수 있는 전등도 마찬가지고.
“저,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어요?”
다시 밖으로 나와, 나는 군화와 코트를 벗어 인벤토리에 곱게 넣어 두었다. 벗지 못할 만큼 급한 상황도 아닌데 굳이 껴입어서 불편하게 헤엄칠 이유 없었다.
또 그 두 개 벗는다고 모습이 흐트러지는 건 아니니까.
“이것도 챙겨 가세요. 버튼을 누르면 압축됐던 공기가 풍선을 만드는데, 순식간에 수면까지 부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보다 여기, 수중 대비가 너무 잘된 거 아니냐? 나는 과거 해 보았던 해양 생존 게임을 떠올리고, 지금 내밀어지는 아이템을 다시 보았다.
하네스처럼 생기되 등 쪽에 공기주머니가 달린 형식이라 착용해도 모양새가 나쁘진 않을 듯하다. 제일 좋은 건 안 쓰는 거지만.
나는 손목, 발목, 허리와 가슴팍에 끼워 둔 핫 팩─손가락만 한 돌 형식의─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수중 호흡 도구를 입에 물었다.
“다녀오십쇼!!”
“힘내세요!”
첨벙!
다이빙 소리에 살짝 묻힌 응원용 외침들이 오늘따라 미묘하게 열받았다.
푸르르르.
나는 호흡 도구가 잘 작동하는 걸 느끼며 안쪽으로 헤엄쳤다.
도시와 연구소가 근처에 있다 보니 물은 굉장히 탁했다. 녹조라 해야 할지, 흙먼지라 해야 할지. 부유물이 장난 아닌 것이다.
뽀륵, 뽀그륵.
그래도 아예 안 보일 지경은 아니니까.
기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좀 더 아래쪽으로 헤엄쳤다. 나뭇가지나 나뭇잎, 해초 따위가 자잘하게 스쳐 지나가고, 슬슬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
이상한 수풀들이 바닥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거 괜찮은 건가. 나는 딴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나이프를 들고 대비를 시작했다. 모래 바닥이어도 위험할 마당에 저런 수풀들이 있으면 뱀의 접근을 알기 힘들다.
나는 일정 깊이 이상 내려가지 않으며 적당히 헤엄쳤다. 물고기 몇 마리가 나를 스쳐 가고 곧 뱀도 두엇 다가오기 시작했다.
용아병을 잡아 본 바이브가 있어서 그런가. 그리고 그때와 달리 마력도 넉넉해서 대왕 물뱀을 잡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내게 접근하던 왕물뱀들이 반으로 갈라져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
한데 그런 물뱀들의 사체를 수풀이 감싸기 시작했다. 수류 때문에 흔들리거나, 물뱀 사체에 짓눌려 살랑거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명백히 추락한 사체를 휘감고 끌어들이는 중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좀 망한 삘이 오지 않아??
포르륵.
일단 내 착각일 수도 있으니 좀 더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나는 다른 뱀을 찾아 돌아다녔다. 내가 가긴 쬐끔 쫄리니까 어차피 죽여야 할 놈들로 실험해 볼 심산이었다.
물론 뱀한텐 미안했지만! 사실 터전 잡으러 찾아온 애들보고 유해 조수니까 퇴치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정말 미안했지만!! 인간이 미안해애액.
서걱!
나는 세 번째 뱀을 찾아 놈을 베었다. 그러곤 침잠하는 사체를 낚아채, 길게 쥐었다.
내 손에 낚시줄처럼 잡힌 뱀의 몸뚱이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사르륵.
“……!”
역시 붙잡는 거 맞잖아!
나는 뱀의 사체에 얽히기 시작하는 수초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곤 수초의 강도를 확인하기 위해 뱀을 당겨 보았다.
조금 억세다 싶은 감은 있으나 뜯기긴 했다.
하면 이제 올라갈까, 조금만 더 조사해 볼까.
나는 실험에 쓰인 뱀을 고이 보내 주며 수풀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검푸르게 흔들리는 것이 다소 짐승의 아가리 같기도 했다.
뽀그르르르.
…약간만 더 살펴보자. 이게 원래 이런 놈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랬다면 마법사들이 말해 줬을 것 같긴 한데, 까먹고 말 안 했을지 누가 알아.
거기에 이게 이상 상태더라도, 최소한 표본은 채집해 가야 마법사들에게 뭘 물어볼 수라도 있을 터였다. 이 수풀이 어디까지 퍼졌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해서 나는 뱀은 뒷전으로 미뤄 둔 채 호수 바닥을 살피기 시작했다. 굳이 뱀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놈들이 알아서 덤벼 주었기에 꼭 신경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수풀이 너무 넓게 퍼진 게 좀 불안한데.
나는 호수 밑바닥을 거의 점령하다 못해 마탑의 건물─로 보이는 것─마저 뒤덮은 걸 보며 미간을 구겼다.
물기슭에는 다행히 퍼지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면 거기도 다 이 수초로 가득 찰 것 같다.
무엇보다 물고기가 별로 없어. 나는 수초가 없는 곳에서만 보이는 고기들을 보며 다시 발장구를 쳤다.
뱀도 열댓 마리 잡았겠다, 수초가 퍼진 범위도 대략 알았겠다, 수초를 조금만 뜯어갈 요량이었다.
“……!”
근데 이거 왜 이리 질겨!
나는 사방에서 잡히는 것보단, 한쪽에서 잡히는 게 낫겠거니 하며 변두리 쪽에서 수초로 접근했다.
옳은 판단이었다. 순식간에 팔다리를 얽어 오는 것들은 굉장히 억척스러웠다.
우드득!
겨우 팔 하나를 자유롭게 한 내 손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끼이이익. 쇠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풀이 우수수 잘려 나갔다.
나도 이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푸르륵.
진짜 속박되는 거 왜 이렇게 기분 더럽냐. 나는 치를 떨며 잘려 나간 수초 일부를 쥐고 위로 올라갔다. 잘려 놓고도 아직 살아 있는지 미역 줄기 같은 풀들은 계속해서 내 팔에 얽히고설켰다.
첨벙!
“아, 나오셨다!”
어우, 두 시간 정도 수색한 것 같은데 이거 은근 힘드네. 나는 멀쩡한 손으로 호흡 도구를 뺀 후 천천히 다리로 다가갔다. 난간 일부를 뜯어 두었기에 올라가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어, 어때요. 뱀은 좀 잡으셨…….”
“이건 뭐냐.”
뱀이고 자시고 이것부터 묻자. 내가 생각 없이 수풀에 다가갔으면 어쩔 뻔했어 진짜.
“풀?”
“접근하자 날 잡아당기려 들었다. 해명해라.”
“잡아당기려 들었다니 그 무슨─.”
나는 물에 젖어 축 늘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사이사이에 부유물이 낀 것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음, 그에 대해서 말인데. 내가 설명해도 될까?”
그때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대현자님!”
“대현자님께서 어찌!”
이름값 하겠다는 양 바람처럼 나타난 맹렬한 흰바람이었다.
“원래 의뢰 맡기려 했던 부분이거든.”
별도로 사건이 어째 커질 것 같단 느낌이 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