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머나먼 땅으로 (3)
결국 다 같이 사이좋게 마탑으로 내려왔다. 신전에선 그 사실을 두고 다소 만류하고 싶단 눈치였으나, 끝내 말리진 않았다.
뱀 조심하란 이야기와 다친 사람 있으면 보내 달란 이야기는 했지만 말이다.
참고로 내려오던 중, 버서커가 예고했던 대로 파쿠르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선 구구절절 말하고 싶으나, 최대한 압축해 평하자면 데브 두개골이 깨질 뻔했단 말이 되겠다.
“다음부턴 절대로 혼자 할 겁니다.”
“고작 그걸로 빠지는 건가, 어린 사냥꾼!”
“댁만 갈 수 있는 길을 강요하지 말라고요, 이 양반아!”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속도를 따라가긴 다소 힘겨웠지만…… 도로 외 갈 수 있는 길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데브가 그런 건 파쿠르가 아니라며 학을 떼는 사이, 인퀴지터가 주먹을 꼬옥 쥐었다. 녹색 눈동자와 볼이 상기되어 풋풋한 빛깔로 반짝이는 것이 꽤 괜찮은 경험이었나 보다.
지켜본 입장에선 소질은 별로 없는 듯 보였다마는.
“악마기사도 다음에 같이……!”
안 해. 최소한 이 도시에선 안 해!
나는 김치만두의 초롱초롱 눈동자를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그런다고 내 공격력이 깎일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이눔아.
“자자, 어서 들어가세.”
그때, 아크메이지가 태연히 우릴 안으로 이끌었다. 호수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마탑이 문을 열어젖힌 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성 베드로 성당이나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 부분을 똑 떼 온 것 같은 디자인이었다.
“마탑 건물이 작다 싶었더니 본관은 아예 수중에 있네요……?”
“본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도시가 발전하고 물길이 틀어지며 이리 되었네. 그래도 물 덕분에 소음이 덜 새어 나간다며 마법사들이나 주민들이나 만족스러워하니 다행이지.”
어쨌거나 마탑에 들어가려면 저기까지 가야 한다.
우리는 호수 위에 놓인 길을 타고 걸었다. 양쪽에서 넘실거리는 수면이 꼭 배에 탄 느낌을 내었다. 흔들다리가 아니고 단단히 고정된 다리인데도 묘하게 속이 울렁거린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다 이것 때문인가.
“벽에 금이라도 가는 순간 단체로 수장…….”
“그런 무서운 말 말게. 그리고 그렇게 쉽게 깨지진 않을걸세. 물에 잠기기 시작한 이후로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챙긴 게 안전이었으니.”
보통 그렇게 확신하면 제일 먼저 깨지더라. 바다가 아닌 호수라서 그나마 헤엄치긴 쉬워 보인다만.
나는 물기슭이 가장 가까운 방향을 미리 눈여겨봐두며 마탑 내부로 걸음을 내디뎠다.
열린 문틈 사이로 안내 데스크 따위가 보였다. 내부 장식은 생각보다는 단순하되 객관적으로는 화려한 편이었다.
“맹렬한 흰바람을 보려고 왔네. 들어가도 되겠나?”
“대현자님을요? 약속이 있으신지…….”
아크메이지는 대답 대신 그녀의 징표를 내놓았다. 대현자라는 증거에 데스크에 있던 이가 펄쩍 뛰어 올랐다. 뻣뻣히 앉아 있던 다리는 펴지고, 허리는 굽어져 90도 인사를 만들어 낸다.
“연구동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허허, 너무 과하게 예 차릴 것 없네.”
“아, 아, 아닙니다. 아크메이지님!”
데스크 직원은 덜덜 떠는 손으로 우리에게 방문증을 나눠 주었다. 절대 벗지 말란 당부도 함께였다.
대충 연구동의 보안이 삼엄해서 방문증이 없으면 바로 구속되어 심문실로 끌려간다나.
다만 목에 거는 것이 죄금 불편하여, 나는 팔찌처럼 손목에 둘둘 감았다. 직원이 뭐라 하지 않았으니 이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쪽입니다.”
직원은 양쪽으로 갈린 길 중 한쪽으로 우릴 안내해 주었다.
반대쪽이 뭐 하는 곳인진 모르겠지만 일반인 차림새의 사람들 두엇이 드나드는 걸 보면 그쪽 관련 건물이겠거니 싶다.
“밖은 안 보이는군.”
“물을 밀어낼 정도의 결계를 치느니 건물을 짓고 강화 마법을 새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서 그렇네.”
“…그럼 창문도 하나 없겠네요?”
“아마 그럴걸세. 수압을 견디되 밖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소재가 세상에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그렇겠지.”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따라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창문 하나 없이 등만 존재하는 계단은 꼭 지하철 역을 연상시킨다.
“허. 그런 곳에서 살면 답답해서 살 수 있나?”
“하하, 마법사들은 쥐새끼들보다 더 바깥을 안 보거든! 그러니 답답한 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다 잠깐. 계단 끝에 다다라 본격적으로 연구동에 진입했을 때, 일행의 것이 아니되 들어 본 적은 있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흐, 희희희흰바람 대현자님!”
“응. 여기서부턴 내가 할 테니 넌 돌아가렴. 그리고…… 오랜만이네! 건강해 보여서 참 다행이야. 응응. 그런 김에 여기 오면서 봉인구가 박살 난 이야기 좀 자세히 말해 줄래? 듣긴 들었는데 본인한테 듣는 것만은 못하잖아.”
떴다. 연구광인.
“우리가 올 줄은 어떻게 알고 마중 나왔나?”
“응? 아아. 마중이 아니라 우연이야! 어떤 머저리가 마법 사용 금지 구역에서 몰래 실험하다가 벽 부수고 우리 모두를 물귀신으로 만들 뻔했지 뭐니. 근데 그거 혼내고 오는 길에 너희가 보이더라구!”
맹렬한 흰바람, 멀록이 꺄하하 웃는 얼굴로 전혀 웃기지 않은 이야길 내놓았다. 일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법사 나리, 쉽게 안 깨진다면서요……!”
“…내가 내부의 적을 잊고 있었군. 사과함세. 안전이란 말은 취소하겠네.”
“이봐요!!”
“흠. 베르세르크는 수영할 줄 안다. 급하면 호수 위까지 헤엄쳐서 탈출하면 된다!”
“베르세르크 나리는 댁만 살면 답니까?!”
머리를 부여잡던 데브가 마지막 희망으로서 인퀴지터를 바라보았다. 어딘지 결연한 얼굴의 김치만두가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방어막을 펼치면 물길을 막을 수 있으니, 제가 막는 동안 여러분들은 대피를……!”
이쪽은 그나마 정상적인데 자기 희생을 기반으로 깔고 있다. 데브가 결국 손바닥으로 본인 안면을 찰싹 짚었다.
시트콤의 한 장면인가 했다.
“자 자, 어쨌든 가자. 내가 너희 도착하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런. 자네가 이리 고대할 줄 몰랐는데. 내 마음이 다 아프군. 자네는 그 연구에서 빠져야 할 걸세.”
“왜?!?!”
밥그릇 빼앗긴 강아지처럼 경악하는 흰바람까지 정말 완벽해.
“왜긴 왠가. 내가 자네와 할 말이 있으니 그렇지. 봉인구를 자네 혼자만 연구하진 않았을 테고, 연구를 같이한 메이지가 있을 텐데, 그에게 맡기고 자넨 나와 대화 좀 함세.”
“안 돼! 안 돼!!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에에!!”
“부탁은 나한테 하게.”
흰바람이 징징거렸지만 아크메이지는 단호했다. 그녀는 흰바람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을 불러 지령을 내렸다.
흰바람이 지부의 주인일 것임에도 흰바람보다 아크메이지의 명령이 우선되는 게 조금 웃겼다.
“자, 가시죠. 악마기사님.”
…내가 이제 저 광기의 중심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너무 슬프지만.
“자네들도 마탑을 견학하고 있게. 도움되는 무언갈 발견할 수 있을지 어찌 아나. 특히 인퀴지터, 기술을 시험할 장소를 빌려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빌려줄 것입니다, 그들의 지혜 역시. 참고하시지요.”
“아,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베르세르크, 마법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이참에 내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
“…전 베르세르크 나리랑 가겠습니다.”
“부탁함세.”
그렇게 우리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
* * *
제대로 된 시설에 찾아왔겠다, 보다 확실한 수치를 얻기 위해 나는 카나베스에서의 일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출력 확인을 위해 스킬 난사를 또 했다고.
“혹시 악마가 말을 걸거나 그러진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나를 쥐어짜 내던 메이지가 질문했다.
악마를 막긴 해야 하니 협조는 하겠지만 기분은 한없이 저조해졌을 컨셉을 고려해, 난 사정없이 구겨 두었던 눈썹을 위로 치켜올렸다.
“확실한 데이터를 얻고자 드리는 질문입니다.”
메이지는 맹렬한 흰바람보단 사회성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나를 채근하는 대신 입을 열어야 할 사유를 대었다. 효과적인 접근법이었다.
나는 지르물었던 이를 겨우 떼었다.
“없다.”
근데 컨셉질은 컨셉질이고, 제가 그런 걸 겪어 본 적이 없어서요. 설정상의 악마가 어떻게 말을 걸어.
“정말입니까?”
“없다고, 했다.”
나는 내게 집중되어 있는 시선을 의식해 의자 손잡이를 보다 세게 쥐었다. 철제 손잡이가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며 우그러들었다.
마법사들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악마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때의 감각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메이지는 달랐다. 그녀는 냉정하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너무 사무적이어서 외려 더 호감이었다.
“…네놈!”
그렇지만 호감은 호감이고 컨셉은 컨셉이지.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메이지를 노려보았다. 미들족인 것치고도 키가 많이 작아서, 고개를 아래로 숙이다시피 해야 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대현자에게, 이미 말했을 텐데.”
“대현자님께 말씀해 주신 것, 다시 말해도 상관없겠군요.”
우와, 담력이랑 말빨 장난 아니야. 나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람이 앞에서 으르렁대면 바로 쫄 텐데.
나는 상대의 대담함에 감탄하며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고민했다. 컨셉이라면 여기서 도망칠 것 같은데 그래도 되나.
쾅!
“앗!”
안 될 건 뭐야.
“아, 아직 측정이 다 안 됐는데!”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안 그래도 계속 오른팔 보여 달란 종용이 들어오던 차라 망설일 것도 없었다.
오른팔을 남에게 보여 주느니 혀 깨물고 죽을 컨셉인데 뭐 어때. 이건 맹렬한 흰바람에게도 양보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의외긴 했으나 흰바람도 강요하지 않았고. 그런 마당에 그 아랫사람들 말을 들어줄 이유는 내게 없지!
“자, 잠시만요!”
응, 안 들어 줘.
난 마법사들의 손을 뿌리치며 건물을 나갔다. 길이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역으로 짚어 탈출하는 것쯤은 가능했다. 크헤헤.
“흐흐, 이것만 내면 이번 달 논문도…….”
“석류차, 그놈의 석류차가 문제였어. 그 석류차만 마시지 않았어도 여기엔 안 잡혀 왔을 텐데. 으흐흑.”
“나는 말하는 감자다…… 말만 할 줄 아는 감자다…….”
“야, 야! 긴급! 청하의 메이지님이 재료랑 시설 고스란히 가지고 다른 지부로 나르신대! 그쪽 랩실 소속 애들한테 빨리 전해!”
다만, 그 과정에서 나는 마법사들의 일상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나가는 길에 좀비처럼 널브러져 있거나 하니 못 보려야 못 볼 수가 없다.
“현자님…… 제발 논문 통과 좀…….”
“수석마법사, 그거 다 부질 없다. 수석이든 일반이든 메이지님의 노예인 건 똑같은데…….”
대충 대현자(아크메이지), 현자(메이지), 수석마법사, 일반마법사 순으로 직위가 이어지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떠드는 것만 들으면 그냥 대학원 그 자체다. 진짜 대학원은 구경해 본 적 없으나 그래도 소문 들은 게 있으니까.
“으아, 답답해. 여기서 이렇게 갈궈지느니 청산호 님의 마탑으로 가는 게…….”
“머저리 아냐, 이거. 흰바람 님도 못 버틴 마법사를 거기서 받아 주겠냐?”
“마력 없는 마법사도 받아 주셨다는데 나 정돈 괜찮지 않을까……?”
“빡추 아냐, 이거.”
“받아 주고 자시고, 거기 가면 머맨 잡는 데 동원될 텐데?”
“젠장!”
연구광이란 이미지만 있었는데 마법사들도 의외로 힘들게 사는구나.
나는 괜히 안쓰러워졌다. 과거, 날 연굿감으로 보던 시선이 떠오르거든 바로 정색하게 될 마음이었다.
“누구신데 일반인이 연구동 쪽에서…….”
나는 손에 걸린 방문증이 잘 보이도록 슬쩍 팔 각도를 틀곤 계단을 올랐다. 데스크와 로비, 나가는 문이 보였다.
드디어 밖이다.
쏴아아아.
던지듯이 방문증을 반납한 뒤, 나는 후다닥 다리로 다가갔다.
자연광이라곤 하나도 없는 곳에 두세 시간 있었다고 스트레스 좀 받았는지, 바로 상쾌함이 닥쳐왔다.
잘 몰랐는데, 나 트인 곳 좋아하나 보다. 하긴 그래서 지하철도 잘 안 타긴 했지.
“난간에 너무 가까이 가시면 먹힐 수 있어요.”
근데 누가 이런 상냥함을…… 잠깐, ‘빠질 수 있어요’가 아니라 ‘먹힐 수 있어요’?
“경고판을 못 보셨어요?”
나는 고개를 살짝 틀어, 내게 경고한 사람을 살폈다. 대충 로브 입고 표식 단 게 마법사 같았다. 굉장히…… 어렸지만.
“아무튼 떨어지세요. 그러다 봉변 본 사람만 지금 수십 명이니까.”
나는 내 가슴팍을 조금 넘는 아이를 보고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물론 어리단 이유로 너무 당황하는 것도 실례니까 금방 추스르긴 했다. 키가 작을 뿐 실제론 성인이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
“뭐 해요? 나오시라니까요.”
그보다 상냥함과 별개로 말투가 굉장히 퉁명스러우십니다. 나처럼 표지판 안 보고 난간 근처에 서는 사람이 하루에 열댓 명씩 나오나 보지.
“진짜 말 안 듣네. 눈이 멀어서 귀도 먼─.”
그렇지만 인신공격은 선 넘지 않았어!?
“피해요!”
나는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 검을 뽑았다.
서걱!
호수 윗면이 살짝 베여 나가며 붉은 체액을 튀겼다. 물을 뚫고 나와 나를 노리던 무언가였다.
“경고할 사람을 잘못 찾았다, 꼬마.”
그래서 날 덮친 게 뭐냐…… 어우, 여기가 중남미도 아니고 왕물뱀이 여기서 왜 나와.
이거 난간 근처로 다가가면 안 된다고 해야 할 게 아니라 호수 출입 금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쩐지 신전 사람들이 마탑으로 가겠다 하니까 뱀 조심하라더라!
“배, 뱀이, 한 번에.”
나는 반으로 잘려 물속으로 가라앉는 물뱀을 힐끗 확인한 후 난간에서 떨어졌다.
얘네가 습격하는 건 별로 안 무서운데, 저 불꽃 인신공격을 듣고도 난간에 붙어 있고 싶진 않았다.
“잠깐, 잠깐!”
한데 불꽃 모욕러가 날 다시 붙잡았다. 사납게 쳐 내려던 손이 자그만 체구를 눈에 담는 순간 힘이 쇽 빠졌다. 톡 정도의 느낌으로 붙잡은 손이 밀려났다.
“혹시 의뢰 받아요?! 받으면 저 뱀 좀 처리해 주면 안 돼요?!”
별개로 이게 사이드퀘로 이어진다고?
“제발, 부탁이에요! 이대로 가면 마법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다 사라질 거라고요!!”
개꿀인가……?